영화 <쌍화점>의 이른바 ‘대리 합궁’ 장면은 상영 당시 뜨거운 화제를 낳았다.
                                          호위무사(조인성)가 왕(주진모)의 명령에 따라 왕비(송지효)와 잠자리를 갖는
                                          장면이다. 제작진은 세 인물의 복잡미묘한 심리를 담는 등 1주일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두고두고 회자될 장면을 완성할 수 있었다.

   
베드신ㆍ러브신ㆍ섹스신ㆍ정사신ㆍ온돌신ㆍ요(이불)신ㆍ과학신…. 다 같은 말이다. 그런데 그 의미는 조금씩 다르다. 베드신과 러브신은 일반적인 장면, 섹스신은 격렬한 장면, 정사신은 불륜의 그것에 사용되는 편이다. 

베드신(Bed Scene)은 순우리말로 온돌신ㆍ요(이불)신이라고 한다. 침대가 아닌 온돌에서, 요를 깔고 하는 장면이라는 우스갯 표현이다. 과학신도 마찬가지다. ‘침대는 과학’이라는 한 침대 광고 카피에서 따왔다. 남녀 주인공 및 감독 등이 촬영에 앞서 주도면밀하게 짠다는 점에서 딱 들어맞다는 말이 없지 않다.

돌이켜 보면 출발은 좋았다. 베드신 연기 관점에서 보면. 첫 출연작에서 베드신을 한 것이다. 대학 2학년 때 출연한 연극에서, 여인을 안고 누울 때 암정되는 장면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날개>다. 이상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나는 몸을 팔아 가정을 꾸리는 이상의 아내를 찾은 손님으로 출연했다. 대사 한 마디 없는, 등장한 뒤 이내 연인을 안고 눕는 게 전부인 단역이다.

이 당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작은 배역은 없다'이다. 작은 배역이 연극 전체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솔직히 반감이 들고는 했다. 주ㆍ조연에 비해 작은 역인 건 사실이고, 그럼에도 연습시간에 빠지면 안 돼 짜증이 나곤 했던 것이다.

어쨌든 요즘 충무로에서 각광받는 동숭동 출신 배우들은 이런 과정을 묵묵히, 적극적으로 헤쳐나온 의지의 한국인이다. 자신의 배역은 물론 다른 배역도 부단히 연습, 유사시에 대타 역할도 보란듯이 해내는 밑바닥 생활을 통해 남다른 연기력을 쌓은 것이다.

<날개>에서 여주인공은 대학 입학동기가 맡았다. 가정과에 재학중인, 청순한 외모가 돋보이는. 이 친구가 누구와 결혼해서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 번 보고 싶은 여인은 동기 말고 또 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복학하기 전까지 고향의 극단에서 올린 연극 <요한을 찾습니다>에서 상대역을 맡은 여인이다.

                                  인기리에 방영된 TV드라마 <내 친구는 구미호>의 키스신(SBS 화면 캡쳐).
                                          신민아가 손으로 입술 쪽을 가리면 실제로 키스하지 않아도 한 것처럼 보인다. 
                                             

<요한을 찾습니다>에서 나는 주인공 ‘요한’ 역을 맡았다. 지방의 창단 극단으로 단원이 많지 않은 데에다 대학 연극반 활동 경력, 2년 간 서울에서 지내 사투리를 덜 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캐스팅이었다. 

어쨌든 이 작품에서 나는 ‘젬마’ 역을 맡은 상대 배우와 키스신을 연기했다. 여배우의 뺨을 어루만지듯 두 손으로 입술 주위를 가린 뒤 키스하는, 객석에서 보면 진짜로 입술을 맞춘 것처럼 보이도록 한 연기이다. 

연기 때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제야 고백하자면 딱 한 번 눈을 살며시 뜬 적이 있다. 그때 상대 배우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예뻐 진짜로 입술을 맞추고픈 충동이 일어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다. 

‘젬마’는 피부가 뽀얀 것으로 기억되는, 단발 머리가 어울리는, 시청 여직원이 맡았다. 당시 극단 대표는 요즘 풍광이 좋은 곳에서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에는 직접 무대에 오른다. 이 선배에 따르면 ‘젬마’로 출연했던 여인은 2년쯤 전까지 시청에서 근무했다. 요즘 근무지는 모른다. 그런 데에다 대표도 나도 이 여인의 이름을 잊어먹었고, 당시에 제작한 팸플릿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이름을 알 길이 없다. 이름을 안다고 한들 근무지를 알아내고 만나는 게 요원해 보인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어떻게 변했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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