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 감독의 <참견은 노, 사랑은 오예>에 야구심판으로 출연한
                                                  걸 계기로 '카메오 인생'이 시작됐다. 

단역 출연은 우연히 시작됐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는 운명론적 관점에서 보면 ‘필연’이라는 낱말도 떠오른다. 전공은 신문방송학과지만 영화감독 지망생으로 연극을 하면서 연기를 했고, 레이디경향 기자를 하면서 한 차례 장기 공연을 했고, 그 공연을 김유진 감독이 봤고, 이를 계기로 김 감독의 영화 <참견은 노, 사랑은 오예>(1993) 통해 데뷔를 하게 된 것이다.

<참견은 노, 사랑은 오예>는 야구를 소재로 한 어린이영화다. 이 영화에 캐스팅된 것은 주간지 'TV가이드'에서 영화담당을 맡고 있던 같은 과 동기동창에게 들었다.


처음에는 그 친구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연극을 하면서 여러 차례 주연을 맡은 적은 있지만 영화에 출연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친구의 이야기는 농담이 아니었다.


“니가 <아일랜드> 보러 오라고 초대했었다며? 김유진 감독이 그 때 연극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데? 그래서 캐스팅했대. 야구심판 이미지에도 어울리고. 태흥(제작사)에 확인해 봐. 거짓말 하는 거 아냐.”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아돌 후가드의 <아일랜드> 공연에 얽힌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일랜드>는 대학 3학년 공연, 폭발적인 성공을 거뒀던 작품이다. 그 <아일랜드>를 레이디경향에 다니면서 퇴근 후 2개월 동안 연습한 뒤 2개월 동안 100회 장기공연을 했다.
대학 재학생 때 함께 연극을 했던 선후배들과 함께.


꿈이 야무졌다. 이 작품과 다음 작품들의 공연 수익금을 모아 영화사를 차리려고 한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흥행에 성공해야 했다. 창단 공연인 만큼 더욱 그랬다. 첫 작품부터 실패하면 다음 작품 공연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안성기ㆍ박중훈과 배우와 기자로서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친하다.

이를 위해 안성기·황신혜·박중훈 등 유명배우와 김유진·배창호·강우석 감독 등 영화계 인사들을 초대했다. 소문을 내기 위한 일환으로. 초대한 이들이 모두 오지 않았지만 적잖이 찾아주었고, 그럼에도 <아일랜드> 공연은 흥행에 실패했다. 빚을 진 극단은 창단 공연 후 해체되었으며 영화사 창립은 자동적으로 수포로 돌아갔다.
 

어쨌든 <견은 노, 사랑은 오 예>에 캐스팅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그로부터 1개월여 뒤, 촬영을 며칠 앞두고서야 만날 수 있었다. 출연 장면 대본을 맡은 것도 그 때였고, 대화를 나눈 시간조차 채 1분이 되지 않았다. 김 감독은 “주심이 어린이야구 심판을 맡은 걸 귀찮아하는, 자존심 상해하는 인물”이라며 “재미있게 하라”고 한 뒤 다른 작업으로 바빴다.


‘재미있게? 어린이 야구시합이라지만 심판을, 그것도 주심인데, 권위를 상징하는 인물인데, 재미있게 하라고?’

촬영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재미있게….' 이 말은 기사를 쓸 때 선배나 데스크로부터 심심찮게 듣는 말이기도 했다. 오나가나 어디서든 재미있게. ‘재미있게’가 ‘사람 잡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매일 밤 비디오로 나와 있는 야구영화를 봤다. 다른 사람의 연기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그러나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고, 촬영 날짜는 다가오고, 입술이 바짝바짝 타는 듯했다. 덜컥 하겠다고 한 게 이만저만 후회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김 감독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런 중 구원의 신이 나타났다. 그는 ‘작은 거인’ 가수 김수철이다. <참견은 노, 사랑은 오예>의 음악을 맡은 그는 <총알 탄 사나이>를 추천해 줬다. <총알 탄 사나이>에서 주인공 레슬리 닐슨이 주심을 보면서 벌이는 해프닝을 참고하면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라고.


김수철의 제안은 주효했다. <총알 탄 사나이>를 보면서 눈이 번쩍 뜨였다. 주심을 맡은 게 못마땅한 만큼 첫 대사는 다소 과장해서 불편한 심기를 담고 초반에는 그 연장선에서 귀찮다는 느낌으로, 후반에는 고조되는 경기 열기에 빠져 과장된 액션을 취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참견은 노, 사랑은 오예>에 이어 태흥영화사의 <장미빛 인생>(오른쪽)과 <태백산맥>
                             에 잇따라 출연했다. <장미빛 인생>에서는  여주인공 ‘마담’(최명길)과 선보는 남자,
                                    <태백산맥>에는 인공시절 보성군당 부위원장으로 출연했다.
 

야구시합 장면 촬영은 서울 장충동 리틀야구장에서 3일 동안 진행됐다. 휴가를 내고 촬영에 임했다. 김 감독은 레슬리 닐슨의 과장된 연기를 적당히 흉내 낸 연기에 대해 가타부타 하지 않으셨다. 말이 없다는 건 최소한 그만 하면 됐다는 뜻으로 여겨졌다. 재미있게 연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연기력이 낙제점은 아니었는지 태흥영화사의 <장미빛 인생>(감독 김홍준)과 <태백산맥>(감독 임권택)에 잇따라 캐스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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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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