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목소리>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작은 연못>…. 영화 엔딩 크레디트(Ending Credit)에 일반 관객의 이름이 나오는 영화들이다. 이들 관객은 영화 제작을 후원했다. 강풀의 동명 인기 웹툰이 원작인 영화 <26년>도 이 방식을 도입한다.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을 통해 5만원을 후원하면 완성된 영화 엔딩 크레디트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특별 시사회에 초대받고(1인 동행) 영화 <26년> 포스터와 DVD도 선물로 받고.

 


크라우드 펀딩(소셜 펀딩)은 다수의 사람들이 특정 프로젝트에 소액을 기부, 후원하는 데 따라 자금을 조성하는 방식을 말한다. <26년> 진행 사이트는 굿펀딩(www.goodfunding.net), 팝펀딩(www.popfunding.com), 소셜펀딩 개미스폰서(www.socialants.org) 등이다. 지난달 26일에 시작, 오는 20일까지 26일간 모금한다. 5만원 외 2만원도 후원할 수 있다. 후원하면 특별시사회에 초대받고(1인 동행) 영화 <26년> 포스터도 받는다.

영화 <2006년>은 액션복수극이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2세들이 펼치는 극비 프로젝트를 담는다. 그 날로부터 26년이 지난 현재 국가대표 사격선수, 조직폭력배, 경찰, 대기업 총수, 사설 경호업체 실장 등이 된 이들은 학살의 주범을 암살하자는 데 뜻을 같이 한다.

이처럼 <26년>은 ‘5·18’을 다룬 여느 작품과 다르다. <박하사탕> <화려한 휴가> 등처럼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상황을 그리는 게 아니다. 현재 시점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과 아픔을 통해 그날의 악몽을 조명한다.

 

강풀의 이 원작은 2006년 ‘다음’을 통해 공개된 뒤 1일 조회수 200만명을 기록하고 매회 2000개의 응원 글이 달릴 만큼 엄청난 관심과 인기를 끌었다. 영화사 청어람(대표 최용배) 측은 2006년 판권을 구입, 2008년에 제작할 계획이었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이해영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류승범·김아중·변희봉 등을 캐스팅한 가운데 크랭크인 열흘을 앞두고 투자사들이 잇따라 투자를 철회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이를 놓고 정부의 ‘외압설’이 나돌기도 했다. 청어람 측은 이번에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26년>이 영화화되기를 바라는지 보여준 뒤 오는 10월 중 크랭크인, 연내에 완성할 계획이다.

 

<작은연못>(2010·감독 이상우)은 필름 구매 캠페인을 가졌다. 이 영화 배급위원회에서 준비한 필름구매봉투에 1만원을 넣고, 이름·전화번호·이메일 주소를 적어내면 영화 자막에 이름을 넣어주고 100명에게 공동 명의로 상영용 필름 소유권을 부여하는 행사다.

이런 캠페인이 진행된 건 한국영화사상 <작은 연못>이 처음이다. <작은 연못> 배급위는 2010년 3월 말 울산을 시작으로 부산·대구·광주·전주·대전·서울·인천 등 전국 8개 도시에서 1만명 규모로 시민사회단체 대상 시사회를 가졌다. 이를 통해 3734명이 필름구매캠페인에 참여, 자신의 이름을 엔딩 크레디트에 올렸다.

<작은 연못>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자행된 일명 ‘노근리 사건’을 담았다. 500여명의 노근리 주민들이 피난길에 미군의 이유 모를 무차별 공격에 스러져간 사건이다. 시체를 방패 삼아 살아남은 이들은 25명. 이들은 끊임없이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한국·미국 정부의 부인으로 묵살됐고, 1999년 AP통신 기자들에 의해 전모가 드러났다. 이 보도는 2000년 퓰리처상 보도부문을 수상,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영국 BBC의 다큐멘터리 (2002)에 의해 다시 한 번 전세계에 알려졌다. 영화는 기획에서 완성하는 데까지 무려 8년이 걸렸다. 문성근·송강호·문소리·박원상 등 배우 142명과 스태프 229명이 모두 노개런티로 참여했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2007·감독 안해룡)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작품 엔드 크레디트에는 670명의 이름이 나온다. 제작비를 댄 일본 시민들,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회원들이다. 이들은 15년간 송신도 할머니의 강연·집회 등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이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다. 회원들이 1년 동안 모금한 6000만원으로 제작됐다. 재판에 진 뒤 송신도 할머니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고 일갈했다. “재판 결과보다 더 소중한, 지원모임 회원들과 함께 한 세월을 통해 인간에 대한 신뢰를 되찾았다”며.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감독 박광수) 엔딩 크레디트에는 7648명의 이름이 나온다. ‘당신도 영화제작자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신문광고 등을 보고 참여한 이들이다. 이들이 보내온 돈은 제작비의 25%에 달하는 2억5000여만원이다. 이밖에 노동조합 등이 바자회·일일찻집을 통해 마련한 수익금을 보내줬고, 문성근·홍경인 등은 출연료 전액을 제작비에 보탰다.

<낮은 목소리>(감독 변영주)는 관객의 이름이 엔딩 크레디트에 나오는 영화 원조다. 1995년 4월 22일 일반 극장에서 개봉된 다큐멘터리 원조이기도 하다. <낮은 목소리>에 이어 <낮은 목소리2>(1996)와 <낮은 목소리3-선택>(1999)도 개봉됐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가슴 아픈 삶을 조명했다.

<낮은 목소리> 엔딩 크레디트를 장식한 관객은 175명이다. 영화 2분 길이에 해당하는 필름 구입비 10만원을 후원받는 ‘100피트 회원’ 모집에 참여한 이들이다. 변영주 감독은 <낮은 목소리>에 이어 <낮은 목소리2>(1996)에서도 100피트 회원을 모집했다. 한국과 일본의 개인 375명과 56개 단체가 참여했다. <낮은 목소리>와 <낮은 목소리2>에 중복 참여한 이들이 적지 않다. 변영주 감독은 회원 모집 당시 국내 대기업과 유명 여성인사들을 찾았지만 외면당했다. <낮은 목소리3-선택>은 100피트 회원을 모집하지 않았다.

<26년> 크라우드 펀딩에는 7일 밤 10시 30분 현재 4400명(모금액 2억1434만원)이 참여했다. 2만원 후원이 1577개, 5만원 후원이 3656개다. <26년> 엔딩 크레디트에 오르는 이름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능가할는지 주목된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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