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제왕의 첩>. ‘에로틱 궁중사극’을 표방한 김대승 감독(45)의 작품이다. <번지점프를 하다>(2000) <혈의 누>(2005) <가을로>(2006) 등으로 각광받은 김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드라마와 에로티시즘의 조화를 꾀했다. 베드신 빈도가 높고, 강도도 셌다. 개봉은 6일. 김대승 감독에게 웰메이드 사극 에로영화 만들기를 들었다.

 

 

‘화연’(조여정)은 연인 ‘권유’(김민준)와 헤어져 ‘왕’(정찬)의 후궁이 된다. ‘성원대군’(김동욱)은 화연을 연모한다. 옥좌에 앉은 뒤에도 과부가 된 형수 화연을 잊지 못한다. 합궁까지 관여하는 ‘대비’(박지영)에게 반기를 든다. 화연을 잃고 거세까지 당한 뒤 내시로 입궁한 권유는 복수에 불탄다.

-에로틱 궁중사극을 표방했다.
“애욕의 정사(情事)와 광기의 정사(政事)를 그렸다. 화두는 ‘욕망’이다. 욕망이 우리를 가두고, 어렵게 만들고, 불행의 나락에 빠지게 만드는 점들을 관객들이 읽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화연과 권유, 성원과 ‘중전’(박민정), 성원과 ‘금옥’(조은지)…. 이들의 정사는 인과응보를 빚는다. 성원과 금옥의 베드신에는 화연이 등장하는 환상이 겹쳐지고, 화연과 성원의 정사에서 절정을 이룬다.

 

-베드신이 잇따른다.
“보여주기 위한 베드신은 없다. 드라마의 맥락상 여러 정사신은 각기 다른 기능을 한다. 진심·내심·흑심 등이 담겨 있다. 공통점은 욕망이다. 욕망의 색깔 또한 인물에 따라, 그들의 내적·외적 상황에 따라 다르다. 권력관계를 보여주고, 그것은 누가 더 사랑하느냐에 따라 전복되기도 한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가 된다. 서로 사랑하는 동등한 관계의 섹스는 화연과 권유의 것에 있다. 성원은 중전과 피동적, 금옥과 충동적으로 섹스를 한다. 시작과 과정, 끝이 각각 다르다. 화연과 성원의 정사도. 전후 상황과 밀접한 연결고리여서 제작각 달라야 했다.”

-노출 수위가 세다.
“노출 수위만 센 게 아니라 정사신 자체도 굉장히 강하다. 어느 하나 남녀 배우의 벗은 몸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찍지 않았다. 행위 자체보다 섹스를 하는 각 인물의 캐릭터와 상황의 현재와 변화를 보여주는 감정을 중시했다. 이에 따라 소품·미술·음악을 달리 사용했다. 촬영 당시 배우들이 굉장히 힘들어 했다. 정사 연기를 하는 것 자체가 힘든데 감정의 변화까지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하지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제각각의 욕망을 드러내는 장면이어서 정면돌파를 했다.”

-성원과 금옥·화연의 정사장면이 인상적이다.
“실제와 환상이 공존한다. 환상이 깨졌을 때 성원의 행위가 빨라진다. 따로 설명하지 않았는데 김동욱이 왕의 심리를 제대로 간파, 알아서 마무리를 해줘 대견했다.”

-노출 때문에 캐스팅이 힘들었겠다.
“투자사는 남녀 주인공에 우선 톱스타를 꼽는다. 감독의 의견·의지와 달리. 투자사측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조여정씨도 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방자전>을 했기 때문에. 그런데 ‘정말 배우가 되고 싶다.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면 노출은 아무것도 아니다’면서 하겠다고 했다. ‘배우로서 연기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작품’이라며. 고마웠다. 뭉클했고. 촬영에 들어간 뒤에는 더욱 감동을 줬다. 베드신 촬영 때 배우들은 예민해진다. 특히 여주인공이 툴툴거리고 불편해 하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만족스러운 장면을 찍는 게 힘들다. 그런데 여정씨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여정씨가 중심을 잡아주니까 다른 배우들이 자연스레 동참했다. 현장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은지씨가 농담으로 긴장된 현장 분위기를 풀어주는 등 일조를 했다. 여정씨에게 그랬다. ‘여정씨! 참 어른이에요’라고. 진정한 프로, 진짜 배우로서 최선을 다해줬다.”

 

-오현경·이경영·안석환·박철민·오지혜 등 조연들도 돋보인다.
“주연들은 열심히 해주고 조연들은 안정적이고. 감독으로서 배부른 캐스팅을 했다. 오현경 선생님은 <혈의 누>와 결국 개봉이 불발로 그친(마무리 후반작업을 하고 있던 중 제작사가 느닷없이 문을 닫고 말았다) <연인>에 이어 <후궁>까지 세 편을 함께 했다. 이번 역은 선생님을 염두에 두고 썼다.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는데 흔쾌히 하겠다고 하셨다. 오 선생님은 서울 사투리를 구사하는 유일한 배우이시다. 돌아가시면 맥이 끊기게 된다. 화술을 가르칠 수 있는 배우가 없다. 이경영 선배와 박지영씨는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했다. 이경영 선배와 나는 스승이 같은 분이다. 임권택·정지영 감독님이다. 처음으로 함께한 건 <하얀전쟁>(1992)이다. 당시 이 선배는 주인공, 나는 연출부 막내였다. ‘저… ’라며 소개하는데 ‘알지, 새삼스레…’라며 반겨주셨고 응해주셨다. 오지혜는 대학(중앙대 연영과) 1년 후배다. 이른바 ‘병풍’(배경) 역으로 연기하는 건 어려운 단역이어서 제의하면서 미안했다. 그런데 ‘오빠, 주인공이네, 끝까지 살아남잖아. 당연히 해야지’ 하더라. 고맙게도. 사극은 준비하고 대기하는 시간이 길다. 듬직한 조연분들 덕분에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다.”


 

 

-사극 에로영화 연출 의뢰를 선뜻 받아들였는지.
“2010년 1월에 전화를 받았다. 둘째가 태어난 날이다. 황기성 사장이 <혈의 누>를 잘 봤다며 사극을 하자고 하셨다. 액션·멜로·에로 등 여러 장르를 놓고 시놉시스(줄거리·개요)를 썼다. 에로틱 궁중사극을 만들기로 결정한 뒤 사극과 에로에 대한 선입견을 깨면 성취감이 남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기획·제작사는 ‘황기성 사단’이다. 1984년 개정된 영화법에 따라 설립된 제1호 한국영화 제작사다. <고래사냥> <에미> <안개기둥> <성공시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닥터봉> <고스트 맘마> 등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흥행에도 성공한 작품으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해 왔다.

-시나리오 작업에 여러 분이 참여했다.
“연출을 맡은 뒤 <궁녀>(2007)의 김미정 감독을 작가로 영입, 함께 작업했다. 이후 각색·윤색을 했다. 참여한 인원이 모두 여섯 명이다. 김 감독은 <궁녀> 각본·연출을 했고 나는 <춘향뎐> 조감독, <혈의 누> 각본·연출로 사극을 만들었던 게 많은 도움이 됐다. 동료 감독과의 작업이어서 호흡이 잘 맞았다. 시나리오는 촬영을 앞두고 20개월 간 했고, 4개월 간 촬영을 하면서도 계속 보완했다. 감독님(임권택) 연출부·조감독 시절에 감독님께 배운 대로 했다. 감독님 시나리오 작업은 크랭크업을 해야 끝난다. 녹음을 하다가 바꾸신 적도 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셨다.”


 

 

<후궁-제왕의 첩>에서 각 인물의 욕망은 비극을 빚고 파국을 낳는다. 김대승 감독은 “현실 상황은 영화보다 훨씬 잔인하다”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욕망이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한다”고 했다. 일례로 대비가 성원의 신혼방을 들여다보고 상궁들에게 지시를 내리도록 하는 장면을 들었다. ‘고증에 따른 설정이냐’는 물음에 김 감독은 “상상을 가미한 의도적 연출”이라고 했다. “아이들을 잡는 부모의 욕망을 보여준다”며 “동시대 감독으로서 극중에 담은 이런 행간도 관객이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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