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궁:제왕의 첩>, 연극 <과부들>. ‘백발의 현역’ 오현경씨(75)의 요즘 작품이다. <후궁>에선 원로 대신 ‘윤기견’, <과부들>에서는 정권의 윗선에 있는 ‘페리빼’ 역을 맡았다. <후궁>은 지난 6일부터 상영중이고, <과부들>은 10일까지 공연했다. 지난 2월 배우재교육연구소 ‘송백당’(松栢堂)을 다시 개원, 무료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의 삶과 연기철학을 들었다.

 

 

오현경씨는 서울고와 연세대 국문과 재학시 연극을 했다. 졸업후 극단 실험극장 창단(1960) 단원으로, KBS TV 개국(1961) 원년 탤런트(동기 이순재·여운계·김영옥 등)로 활동해 왔다. 영화 데뷔작은 김기덕 감독(81)의 <오늘은 왕>(1966). 김대승 감독의 <후궁:제왕의 첩>은 스물두 번째 영화다.


-영화 출연작이 적습니다.
“영화는 생리에 안 맞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 진이 빠지고, 연출·배우 간 소통 방식도 자유롭고 쌍방향인 연극과 달랐다. KBS 드라마 <TV손자병법>(1987.10.18~1993.10.14, 1992년 연기대상 대상 수상)이 한창 인기일 때 영화 출연제의를 참 많이 받았는데 안 했다. 그쪽에서는 주연을 원하는데 나는 오래 찍어야 된다는 게 오히려 싫었다.”

영화 주연작은 <여름이 준 선물>(2006) <행복한 장의사>(1999) <땅콩껍질 속의 연가>(1979) <해벽>(1972) 등이다. 2000년대 조연작으로는 <연리지>(2006) <평행이론>(2009) 등이 있다.

                  <후궁:제왕의 첩> <혈의 누> <행복한 장의사> <TV손자병법>(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후궁>에 ‘특별출연’을 하셨는데요.
“내가 원한 게 아니라 제작사에서 예우 차원에서 그렇게 한 거다. 수렴청정을 하는 ‘대비’(박지영)에게 농민들의 작황 피해를 보고하고 왕(김동욱)과 군왕의 덕목에 대해 얘기하던 중 ‘소신들을 다 죽이시더라도 종묘사직을 생각하시라’고 했다가 혼쭐이 나는 대신을 맡았다. 이 나이에 영화에서 무슨 큰 역을 하겠나. 비중을 떠나 연기를 하는 것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영화를 하면서 느낀 건 젊은 배우들이 발성 등 기본기에 약하다는 점이다. <혈의 누>(감독 김대승)는 사극인데 젊은 주인공과 호흡이 잘 맞아야 해 대사를 사전에 잘 외워 리허설을 가졌다. 그 배우도 제대로 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출연료가 100만원이 더 왔다. ‘신(scene)이 살아서 감사의 의미로 더 보내드렸다’고 하더라. 깎는 게 다반사인 세상에 더 보내줘 기분이 좋았다.”

<혈의 누>에는 ‘김치성 대감’으로 특별출연했다. 섬의 실질적 지배자로 구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원규’(차승원)와 적대적 관계에 있다. <혈의 누>는 평단의 인정을 받았고 흥행에도 성공(227만4995명·한국영화연감 기준)했다. 백윤식·김미숙 주연 <연인>(감독 김대승)에서는 단청 장인으로, 두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조연을 맡았다. 이 영화는 제작·투자사의 마찰 등으로 인해 1년 넘게 개봉이 지연되고 있다.

김 감독은 <후궁> 시나리오 작업 당시 윤기견 역에 오현경씨를 염두에 뒀다. 김 감독은 “(배역 비중이 워낙 적어)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는데 흔쾌히 허락하셨다”며 “돌아가시면 화술을 가르칠 수 있는 배우 맥이 끊기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연극배우 전형재는 2010년 경기대 문화예술대학원 연극학과 석사논문에 ‘배우 오현경은 연극무대에서는 부드러우면서도 밀도 있는 발음과 힘 있는 발성, 말을 할 때 언제 숨을 쉬는지 모를 길고 매끄러운 호흡과 함께 우리나라 화술의 전범을 보여주며 다양한 배역에서 명연기를 보여줬다. TV드라마에서는 평범할 수 있는 인물에 독특한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기억에 남는 인물과 작품을 수없이 만들어 냈다’고 기술했다.

 

-<과부들>도 특별출연작인데요.
“<봄날>의 이성열씨가 연출한, 1970년대 칠레 군사정권 시절을 다룬 작품이다. 실종·고문·의문사로 빚어지는 여인들의 아픔을 그렸다. 우리 현대사와 무관하지 않은 세 시간 분량의 대작이다. 모두 스물아홉 명이 나오는데 나는 정권의 윗선에 있는 인물을 맡았다.”

-<봄날>은 28년에 걸쳐 여러 번 공연했고 매번 아버지를 맡았습니다.
“1984·2009·2011·2012년, 모두 네 번 했다. 84년 작품(연출 권오일)은 극단 ‘성좌’에서, 2009~2012년 작품(연출 이성열)은 극단 ‘백수광부’에서 올렸다. 네 번 다 아버지로 출연했고, 하다보니 대표작이 됐다. 2009년에 서울연극제 연출상, 대한민국연극대상 남자연기상 등을 받았다. 초연 작품도 대상·연출상 수상작이다. <봄날>은 절대권력을 지닌 아버지의 회춘을 향한 욕망에 아들들이 반기를 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아버지는 독재자 등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 연극사에서 20여 년에 걸쳐 같은 작품에서 주연을 맡은 경우가 있는지요.
“레퍼토리 시스템(한 시즌에 여러 작품을 번갈아 공연하는 방식)에서는 있겠지만 48세에, 그리고 73세에 맡고, 이후에도 한 작품에서 같은 배역을 맡는 건 처음인 것 같다. <휘가로의 결혼>은 다섯 번(1969·1976·1977·1983·1985년) 했다. 매번 ‘보마르쉐’ 역을 맡았고. 그런데 언론에 대표작이 잘못 소개되고는 한다. 내 대표작은 <화니> <오셀로> <막차 탄 동기동창> <허생전> <맹진사댁 경사> <동천홍> 등이다.”

<허생전>(1970)은 제4회 한국문화대상 연극 부문 대상, <막차 탄 동기동창>(1991)은 제 15회 서울연극제 연기상을 받았다. 이밖에 <호모 세파라투스>(1983)로 제 7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아메리카의 이브>(1985)로 제 22회 동아연극상에서, <주인공>(2008)으로 제 29회 서울연극제에서 각각 남자연기상을 수상했다. 2010년 제 3회 대한민국연극대상 공로상, 2011년 제 60회 서울시 문화상 연극부문상도 받았다.

-송백당(松栢堂)을 다시 열었습니다.
 “지난 2월 7일에 개관식을 가졌다. 사재를 들여 2000년에 개관한 뒤 가중되는 경제적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 3년 만에 문을 닫은 지 꼭 9년 만에. 기성 배우들에게 발음과 화술을 가르치고, 연기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있다. 예전에 송백당을 찾은 배우가 100명이 넘는다. 이번에도 남녀 세 명씩, 여섯 명에게 하루에 세 시간 이상 2주 동안 일대일로 가르친다.”


-수강료를 받지 않는다고요.
“연극배우들은 대개 공연이 없을 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 시간을 쪼개 배우러 오는 후배들에게 돈을 받는 건 있을 수 없다. 두 칸(70평대 규모) 중 하나를 연습 등을 필요로 하는 곳에 빌려줘서 운영비를 마련해 보려고 한다. 더 늙기 전에, 말할 기운도 없어지기 전에 선배로서 내가 가진 걸 후배들에게 되도록 많이 나눠주고 싶다.”

-그간 광고 출연을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예술을 하겠다는 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세운 원칙이다. 이제까지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한창 인기있을 때에도 하지 않았는데 송백당을 닫을 때에는 돈이 참 아쉽기는 했다.”

송백은 “사시사철 푸르게 올곧게 살고 싶다”는 오현경씨의 아호(雅號)다. 식도암·교통사고·위암·목디스크 등으로 수차례 생사를 넘나들었던 그는 “어떤 무대가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며 “늘 실력을 쌓고 한 사람의 관객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는 게 진정한 배우”라고 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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