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74·사진)이 단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한다. 상영시간 15~20분 분량의 <주리>(Jury·가제)를 연출, 여는 제10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보인다.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손꼽히는 유명 영화인이지만 영화 연출은 처음이다.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심사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릴 거에요. 영화인으로서 심사위원을 맡는 건 명예로운 일이지만 심리적 부담감이 만만찮아요. 심사 당시 수상작 선정 과정에 의견충돌이 거세지면서 안 좋은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그간 많은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맡으면서 쌓은 경험을 살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리려고 합니다.”

시나리오는 김 위원장과 중국의 장률 감독이 각각 썼고, 두 시나리오를 놓고 <은하해방전선> 등의 윤성호 감독이 각색작업을 하고 있다. 단편영화인데, 배우·제작진이 실로 화려하다. 심사위원 역은 배우 안성기·강수연·정인기와 영국의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스, 일본 예술영화전용관 이미지포럼의 도미야마 가쓰 대표가 맡는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의 배우 박희본이 프로그래머 겸 통역으로, <무산일기>의 박정범 감독과 <로맨스 조>의 배우 이채은이 관객과의 대화(GV) 장면에 출연한다. 그리고 <만추>의 김태용 감독이 조감독, <괴물> <부러진 화살>의 김형구 촬영감독이 촬영, <라디오스타>의 방준석 음악감독이 음악, <실미도> <투캅스>의 강우석 감독이 편집, 부산국제영화제 홍효숙 프로그래머가 프로듀서를 맡는다.

이들은 모두 재능을 기부, 무임금으로 참여한다. 기자재·장소 임대료, 식대 등 진행비는 영화제 측에서 제공해 준다. 촬영은 극장과 카페, 야외에서 오는 7월9일부터 12일 사이에 사흘이나 나흘간 찍을 예정이다. 지난해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폐막 후 연출을 맡기로 한 김 위원장은 그간 함께하고 싶은 영화인들에게 올해 7월 초에 일정이 가능한지를 타진한 끝에 촬영 일정을 확정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영화제를 다녀왔고, 다니고 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게 1996년 칸국제영화제에 처음으로 갔을 때에요. 레드카펫을 밟고, 상영 후 열광적인 기립박수를 받고, GV에서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감독들을 보면서 그들이 무척 부러웠죠. 그때 훗날 감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에서도 영화인들이 그런 시간을 갖게 해주자는 다짐도 했고.”

 

이번 연출로 17년 만에 감독 꿈을 이루는 김 위원장은 1961년 문화공보부(옛 문화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88년에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맡으면서 처음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4년여 공사 사장을 지낸 뒤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고 2010년까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15년간 맡으면서 부산영화제를 세계적인 영화제로 성장시켰다. 남다른 친화력으로 해외 유명 영화인들과 허심탄회하게 교류하면서 이들을 부산으로 불러들였다.

김 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에서 물러난 뒤에 영화감독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 했다. 막역하게 지낸 대만의 허우샤오셴, 홍콩의 왕자웨이,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에게 영화와 사랑에 대해 물은 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했다. 지난해 말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장을 맡게 되면서 연출을 미뤘다. 후학 양성이 우선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물러났지만 그는 여전히 바쁘다. 오는 2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한국영화제에 참석, 안성기와 이병헌이 동양인 배우 가운데 최초로 할리우드 차이니스 극장 광장에 손·발 도장을 남기는 행사 등을 지켜본다. 8월에는 몬트리올국제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한다. 이어 러시아·중국·대만 등에서 한국 및 아시아 영화의 활로를 모색하는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어요. 이번 영화 연출도 그 과정의 하나예요. 한국영화의 내일을 열어갈 젊은 영화인들에게 제가 영화인으로서 이제까지 경험하고, 앞으로 얻는 것까지 모두 전해주고 싶습니다. 장편 데뷔는 그런 다음에 여력이 있으면 하려고 합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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