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 감독(46)은 아버지·삼촌 등 아홉 명이 의사인 집안의 ‘미운 오리 새끼’였다. 영화감독이나 방송국 PD가 되겠다고 다니던 의대를 그만두면서 ‘뜬구름 잡는 녀석’으로 찍힌 것이다. 그가 1987년 그 시절에 겪은 파란만장한 병영생활과 격변의 시대상을 역은 영화 <미운 오리 새끼>를 만들었다. 곽경택의 미운 오리 새끼 시절과 칠전팔기 <미운 오리 새끼> 만들기를 소개한다.


 

 

‘전투가 벌어지면 가급적 빨리 포로가 돼 적의 식량을 축낸다’ ‘수저가 든 빈 도시락을 흔들어 적의 레이다를 교란시킨다’ ‘끝까지 복사기를 사수한다’ ‘유사시에도 오후 6시에는 퇴근한다’….도 오후 6시에는 퇴근한다’….

곽경택 감독이 방위병으로 복무할 때 들은 우스갯소리다. 영화 <미운 오리 새끼>의 주인공 ‘낙만’(김준구)은 헌병대에 출퇴근하는 ‘육방’(6개월 방위)으로 이런 모멸감이 드는 말을 들으면서 생활한다. 이발병으로 이발은 물론 부대 내 행사 사진찍기, 대대장의 심심풀이 상대 바둑 두기, 변소 청소, 영창 보초 근무 등 ‘잡병’으로 복무한다. 사진기자 시절 받은 모진 고문으로 후유증에 시달리는 아버지(오달수)가 자신의 인생에 ‘태클을 건다고 여기는 그는 복무중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육방으로 복무했나.
“실제로는 ‘십팔방’(18개월 방위)이었다. 음악평론가 강헌 형이 내 고참 방위병이었다. 형은 경리병이었다. 의대를 다닐 때에는 당연히 장교로 복무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퇴하자 고졸이 됐다. 신검 때 방위병 판정을 받았고, 헌병대에서 ‘낙만’처럼 현역병 ‘따까리’를 하면서 이발 등 온갖 잡일을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따라지’ 시절이었는데 굉장히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미운 오리 새끼>는  내 인생에서 가장 찌질했던, 민주화투쟁에 앞장섰던 386세대 동료들과 달리 부끄럽고 한심한 20대 시절에 관한 영화다. 단편 <영창 이야기>(1995)와 장편 <친구>(2001)에 이어 내 안에 있던 내 모습을 꺼내서 만든 이야기다.”

-<영창 이야기>의 헌병 이름이 ‘강헌’이다.
“이름을 짓다가 나중에 감독이 되면 군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보라고 했던 강헌 형 말이 생각냈다. ‘가장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라’는 영화과 교수님 말씀과 더불어. 내가 보고 들은 군대 감방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너무도 비인간적인, 내가 영화로 잘 만들 수 있는 이야기 소재였다. <미운 오리 새끼>는 그 연장선에 있다.”

<영창 이야기>(1995)는 곽 감독의 뉴욕대 영화연출과 졸업작품이다. ‘제 2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1996년 제 1회 부산국제영화제 등 국내외 유명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헌병 병장 강헌과 가정파괴범으로 수감된 병사 ‘천석호’ 사이의 이야기를 그렸다. 천석호는 서태화가 맡았다. 서태화는 당시 맨하튼음대에 유학 중이었다. 훗날 곽 감독의 <닥터K>(1999)와 <친구>에도 출연했다.


 

 

-주인공 아버지가 사진기자 출신으로 고문 후유증에 시달린다.
“민주화를 외치다가 고문받고 그 때문에 비정상이 된 친구를 모델로 했다. 방위병으로 복무하던 시절 민주화운동이 거셌다. 어느날 외출했다가 정말 총명했던 친구를 만났는데 대화중에 그가 갑자기 침을 질질 흘리는 걸 보고 엄청 충격을 받았다.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변호사 시절, 민주화투쟁에 앞장 섰던 고 노무현 대통령이 적은 군중 앞에서 열변을 토하던 모습도 생각났다. 정치적이라기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양심적인 삶을 살다간 지도자에 대한 그리움을 투영했다. ”

-의사 집안의 미운 오리 새끼였다고 했다.
“아버님과 삼촌 등 집안에 의사가 아홉 명이었다. 덩달아 고신대 의대에 진학했는데 영화감독이나 방송국 PD가 되고 싶어서 본과 1학년 때 그만뒀다. 그때부터 ‘뜬구름 잡는 녀석’으로 찍혀 지냈다. 이후 <억수탕>(1997)과 <닥터K>을 만들 때까지 인정받지 못했다. <친구>가 잘 되고 나서야 어깨를 펼 수 있었다.”

 

-매제(정지우 감독)가 데뷔작 <해피 엔드>(1999)로 먼저 성공했을 때 힘들었겠다.
“스트레스 좀 받았다. 하하하…. 아버님은 나와 정 감독 영화의 일등 모니터 요원이시다. 글을 잘 쓰고 시나리오도 몇 편 쓰셨다. <챔피언>(2002) 때 군수 역을 맡겼는데 한 번의 엔지 없이 소화해 내셨다. 나의 ‘이야기꾼 유전자’는 아버님께 물려받은 거다. ”

<챔피언>에서 고적대 퍼레이드 장면 촬영할 때 일화다. 몹-신(mob scene·많은 사람이 나오는 장면)을 일사천리로 진행한 뒤에 곽 감독은 한 켠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의 모습이 밝지 않을 걸 발견했다. 그 이유를 한 달쯤 뒤에 알았다.

 

“아버님이 ‘세상에는 해야 되는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너를 보면서 네가 부럽고 자랑스러웠다’고 하시더라. ‘어릴 때 동네 빈집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연극놀이 하는 걸 좋아했다’면서. 감독을 하면서 그때 아버님이 하신 말씀을 늘 되새긴다.”

 

-<미운 오리 새끼> 시나리오는 언제 썼나.
“7년 전에 썼다. 민주화세대 주역의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군대 경험담을 반영해 코미디로 구성했다. 군대 상하관계와 영창을 통해 집단 수뇌부와 하부의 부당한 권력과 폭력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그간 거의 모든 투자사에게 퇴자를 맞으면서 언제나 만들 수 있을는지 가능성이 희박해 보여 마음이 착찹했다. <기적의 오디션>(SBS)에서 김준구·정예진·조지환·고영일 등을 만난 뒤 배우와 역할의 잘 맞아떨어져 이 시점이 아니면 못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머니돈 쌈짓돈 다 넣어 밀어붙였다. 저는 물론 연기자·스태프 모두 인건비든 뭐든 다 투자해서 만들었다. 20억원 이상 들어가는 영화인데 6억원으로 완성했다. 돈이 없어 꽤 오랫동안 촬영을 못 하기도 했다.”

                     <미운 오리 새끼>의 김준구ㆍ정예진ㆍ고영일ㆍ문원주ㆍ박혜선ㆍ조지환(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이들은

                     곽경택 감독에게 열정이 넘치고 연기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영화를 만든 적이 있나.
“처음이다. 어떻게든 탄생시켜보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만든 첫 영화다. <친구> 이후 타협을 해왔는데 일체 타협하지 않은 첫 영화이기도 하다. 타협을 했다면 달라졌겠지만 관객층을 고려해 시나리오를 다듬지 않았고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을까봐 특정 장면을 빼지도 않았다. 수정은 열정이 넘치고 연기력도 뛰어난 신인들이 최대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분량을 조금씩 늘려주고, 아버지의 역할을 조금 더 강화한 정도에 그쳤다. 누구나 다 미운 오리 새끼 시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요즘 힘들어 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담았다.”

 

곽 감독은 “상업영화 감독으로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을 쳐 왔다”면서 “이런저런 점 따지지 않고 <미운 오리 새끼>에는 그냥 시원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담았다”고 했다. “오는 가을에 범죄물을, 내년 상반기 중으로 멜로가 강한 한·일 합작 사극을 찍을 계획”이라며 “받아놓은 시나리오 중에 마음이 가는 여자가 주인공인 작품에도 열정을 쏟으려고 한다”고 밝혔다. 무거운 소재를 웃음·분노·안타까움·황당·경악 등 갖가지 감성으로 버무려낸 성장영화 <미운 오리 새끼>는 오는 7월 개봉된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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