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시’(김혜수) ‘뽀빠이’(이정재) ‘앤드류’(오달수) 등은 희대의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던 중 홍콩 경찰에 붙잡힌다. 경찰차로 호송되던 중 바다에 떨어진다. 뽀빠이와 앤드류는 탈출한다. 하지만 팹시는 한 손에 찬 수갑의 다른 고리가 자동차에 걸려 있는 바람에 내부에 물이 거의 다 찰 때까지 바둥댄다. 수갑에서 손을 빼내 고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배우 김혜수(41)는 이 장면을 찍을 때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독보적 관능미와 카리스마,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로 손꼽히는, 오랜 경험과 관록을 지닌 김혜수가 촬영 중 이런 두려움에 휩싸인 건 처음입니다. 이처럼 영화 촬영 중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건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훈련·촬영 전후 심경에 대해 김혜수가 털어놓은 말을 재구성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 콘티(만화처럼 글과 그림으로 구성된 대본)을 볼 때에도 이 장면 촬영에 대해 아무 걱정 하지 않았다. 부산 출신으로 컴컴한 바다에도 뛰어들 만큼 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수영도 웬만큼 해 아무 어려움 없이 뚝딱 촬영을 마칠 것으로 예상했다. 때문에 대역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연습 및 촬영 때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연습과 촬영은 4m 깊이의 수조 등을 갖춘 부산의 고양 아쿠아스튜디오에서 했다. 잠수전문가 등이 참여, 촬영 스태프와 함께했다. 극중 장소가 홍콩인 만큼 자동차는 현지에서 가져 왔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훈련장에 도착했다. 최동훈 감독 등 제작진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스윔슈트와 극중 의상을 갖춰 입었다. 그리고 물 속으로 들어가 한 손에 수갑을 차고 자동차에 묶였다. 수갑 고리에서 손을 빼내기 위해 안간 힘을 썼다.

그런데 훈련 중 머리가 어지럽고, 호흡이 가쁘고, 근육이 경직되는 걸 느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게 진정되지 않았다. 느낌이 이상했다. 불길한 생각까지 들었다.

 

훈련을 중단, 물 속에서 나온 뒤 잠수전문가에게 다른 방법이 없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없다는 거였다. 그 말이 너무 싫었다. 손발이 저리고, 숨을 쉬는 게 힘들고, 머리가 어지러운데 다른 방법이 없다니….

 

잠수전문가는 잠시 누워 있다가 다시 해보자면서 그때에는 같이 내려가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고쳐먹으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서울 무섭다니까 과천서 긴다’고, 두 번째 연습은 더욱 힘들었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가 보다, 촬영할 때에는 괜찮겠지’ 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10월 5일 아침, 촬영장에 가는 것 자체가 싫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도 촬영을 해야 한다는 게 막막했다. 다른 방법이 없고, 끔찍한 경험을 다시 되풀이 해야 하는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다. 잠수전문가는 2시간 동안 호흡이 가능한 공기박스를 준비했다면서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귀에 쏙 들어오지 않았다. 내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물 속에 빠진 자동차가 휘청거리고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장면 등은 CG가 아니다. 실제 장면이다. 자동차가 휘청거릴 때 진짜 놀랐다. 혼비백산했다. 요즘말로 ‘멘붕(멘탈붕괴)’ 상태였다. 시야를 확보하고, 호흡기를 물고 입으로 숨을 쉬는 간단한 조처도 헤맬 정도였다. 정말 무서웠다. 어떻게 마쳤는지 모를 정도로 가까스로 촬영을 마쳤다.

촬영을 마친 뒤 아팠다. 그런 중 최동훈 감독의 문자를 받았다. ‘내일 한 커트만 찍자’는 거였다. 즉각 ‘못 가요’라고 답했다. 진심이었다. 이대로 은퇴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부산에 있는 게 싫어 짐을 싸고 싶었다.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은 것처럼 우울했다. ‘이 촬영을 해야 하나? 이게 연기를 잘 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기는 한가…?’

 

뜬 눈으로 밤을 샜다. 촬영시간이 다가오고, 매니저가 숙소로 오고 있을 때 입술이 바싹 탔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심정’이란 표현이 떠올랐다. 모두들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숙소를 나섰다. 촬영을 하자고 나선 게 아니다. 못 하겠다는 의사를 현장에서 가서 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어쩌면 다시 못 볼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휴대폰으로 조카들의 동영상을 받고 통화를 했다. 배우로서 촬영을 앞두고 이런 일도 경험하는구나, 이런 시간도 맞는구나, 만감이 교차했다.

 

■촬영하다가 이대로 죽더라도 어쩔 수 없다
현장에 도착하자 최 감독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못 하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묵묵히 스윔슈트와 의상을 갖춰 입고 심호흡을 했다. 그런데 물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과호흡증에 걸린 것처럼 숨이 가빠졌다. 그런 증세를 이 상황에서 드러낼 수 없어 꾹 참았다. ‘일단 발만 담가보자’는, ‘들어간 뒤 차까지만 갔다가 나오자’는 잠수전문가의 말에 따랐다. 이를 통해 다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어차피 해야 할 거 빨리 끝내 버리자’는 심정으로 촬영에 응했다.

 

그런데 촬영한 장면을 모니터를 보니까 아니었다.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제로 놀랐고,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데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평소 연기를 하면서 실제로 이런 상황이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는데, 가상의 연기가 실제상황을 능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길게 가자는 최 감독의 말에 ‘충분히 길게 한다고 했는데….’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맴돌았다.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며 절박한 심경을 억누르고 한 건데….’ 눈앞이 캄캄했다. 좌절감에 온몸이 푹 꺼지는 걸 느꼈다.


 

 

수조의 물 온도는 섭씨 3도. 사람이 차가움,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는 온도이다. 촬영 중 심신의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마련된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들어가는 것조차 싫었다. ‘앞으로 목욕도 못 하겠구나, 왜 이러지? 내가 모르는 정신 질환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중 최 감독은 이번에 찍은 건 쓸 수 없으니까 한 번 더 찍자고 했다. 물 속이어서 눈물이 범벅인 게 모니터로 안 보이는 게 야속했다. 짧은 시간에 불과했지만 그새 손과 팔의 피부에 상처가 나 얼굴에 이런 현상이 생기면 배우 생활을 계속 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촬영 중 수중 스피커로 들리는 ‘잘 했는데 딱 한 번만 더 찍자’는 최 감독의 주문에 ‘못 하겠다’고 손으로 ‘X’ 표시를 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왜 우리는 이 일에, 이 찰나에 이렇게 매달리는가, 너무 맹목적이고 무모할 정도로. 무엇을 위한 건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관객을 위해서인가, 나 자신을 위해서인가. 무엇 때문인가, 영화를 위한 것인가, 영화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이 순간에 모든 걸 걸게 할까….’


영화와 연기에 회의감까지 들었다. 이런 가운데 ‘촬영하다가 이대로 죽더라도 어쩔 수 없다, 하자’는 심정으로 다시 달려들었다. 최 감독의 “오케이!”라는 말에 감정이 복받치는 걸 느꼈다.

 

배우가 물 속에 빠지고 가까스로 탈출하는 장면은 이전 다른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수갑을 찬 채 자동차에 갇혀 있는 게 이전 영화 상황과 다르지만. 어쨌든 돌이켜 보면 왜 그토록 위협을 느꼈는지 쉬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촬영한 지 수 개월이 지났지만 눈뜨고 볼 수 없고, 아예 보고 싶지 않아 지금도 눈을 질끈 감을 정도로 끔찍한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이 장면은 영화상에 매우 중요하지만 짧게 편집돼 있다. 이틀 동안 찍었지만 실제 촬영은 몇 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27년 동안 숱한 영화와 TV드라마를 찍으면서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는, 배우가 아니면 결코 겪을 일이 아닌 경험을 했다. 태어나서, 배우로서 처음 겪은 감정에 휩싸여 몸서리를 쳤다. 다시는 맞딱뜨리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배우로서 소중한 경험을 했다. 실제로 극도의 불안을 느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는 그것이 스크린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기는 연기로 보여줘야 한다는 걸 수중촬영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과장하면 안 한 것보다 못한 역효과를 내지만 연기는 해야 한다는 걸 절감했다. 내가 치른 고통을 보는 관객들도 느끼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려면 반드시 적절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점을 절절히 체험했다. <도둑들>의 수중장면 촬영은 원점으로 돌아가 연기생활의 전기로 삼을 수 있는 경험이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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