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인권(34)은 동국대 연극영화과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2학년 때 박종원 감독의 <송어> 연출부 막내로 현장수업을 받다가 조연을 맡은 뒤 배우로 활동해 왔다. <조폭마누라> <플라스틱 트리> <말죽거리 잔혹사> <숙명> <해운대> <방가? 방가!> <마이웨이> <퀵> <광해, 왕이 된 남자> 등에 출연했다.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타워> 등이 개봉될 예정이고 방송인 이경규가 제작하는 <전국노래자랑> 촬영을 앞두고 있다.

 


‘태주’(송어) ‘이병장’(박하사탕) ‘상구’(아나키스트) ‘빤스’(조폭마누라), ‘동춘’(해운대) ‘방가’(방가? 방가!) ‘종대’(마이웨이) ‘명식’(퀵) ‘도부장’(광해, 왕이 된 남자)…. 태주부터 빤스는 1999~2001년, 동춘부터 도부장은 2009~2012년 영화에서 김인권이 맡은 인물이다. 10년 사이에 김인권이 펼쳐낸 극중 인물의 차이와 변화무쌍함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최근작 네 편에서는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는 김인권의 넓고 깊은 연기력을 맛볼 수 있다.

 

 

■저우싱츠(周星馳 주성치), 짐 캐리 열혈 팬
부산에서 자란 김인권은 고교시절 영화광이었다. 극장에 갈 돈이 없어 비디오를 즐겨 봤다. 뤽 베송 감독의 <레옹>(1994)을 서른 번쯤 볼 정도로 특정 작품을 좋아했다. <파괴지왕>(1994) > <덤 앤 더머>(〃) <에이스 벤추라>(〃) <마스크>(〃) 등도 수없이 보면서 자연스레 영화의 세계를 동경했다.


 

“장 르노, 주성치, 짐 캐리 등을 엄청 좋아했죠. 교회 연극에서 관객을 곧잘 웃겨 연기 잘 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하지만 배우가 되는 건 언감생심이었어요.”

 

김인권은 그래선지 배우보다 감독이 되고 싶었다. 감독이 된 뒤에 저우싱츠처럼 배우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이때가 고3 말. 김인권은 1996년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선배들 작품에 배우·스태프로 참여하면서 2학년 때 박종원 감독의 <송어>(1999) 연출부에서 활동했다. 박 감독의 추천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제자인 1기생 조의석의 단편 <환타 트로피칼>에 출연한 뒤 <송어>에 개를 사육하는 산골 소년 ‘태주’로 출연, 극의 하이라이트를 긴장감 넘치게 장식했다.

                     김인권은 박종원 감독의 <송어>에 산골 소년 ‘태주’로 출연, 극의 하이라이트를 긴장감 넘치게 장식했다.

 

7~8개월을 그렇게 지내면서 영화 오디션을 많이 봤다. <박하사탕>(감독 이창동) <유령>(〃 민병천) <주유소 습격사건>(〃 김상진) <공동경비구역JSA>(〃 박찬욱)…. <박하사탕>에 ‘윤순임’(문소리)이 면회 온 걸 보고하는 위병소 병장으로 출연한 거 외에는 모두 고배를 마셨다.

 

“극단 ‘배우세상’ 기획팀에서 막내 생활도 했어요. 김갑수·조재현 선배님이 함께한 연극 <물고기 남자>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다가 서대문경찰서에 불려가기도 했죠. 연극 <갈매기>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중고생 영·수 과외도 했어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런 중 <아나키스트>(감독 유영식)에서 주연을 맡았다. 1924년 상해 경신 대학살로 가족을 잃은 ‘상구’로 출연, 장동건·정준호·김상중·이범수·예진원 등과 호흡을 맞췄다. 4개월여 중국 촬영을 마친 뒤 유명 매니지먼트 회사에 소속, <챠오>(〃 고은기) <조폭마누라>(〃 조진규) <에이치(H)>(〃 이종혁)에서 주·조연을 맡았다.

 

                 <아나키스트> <조폭마누라><플라스틱 트리> <신부수업>(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졸업작품인 <쉬브스키>도 만들었다. 외계인, 외계인을 탐구하는 인간, 외계인 쇼를 보는 또다른 외계인의 이야기를 그린 장편이다. 각본·연출을 하면서 주연도 맡아 1인 3역을 해냈다. 2003년에 졸업, 2004년에 입대하기 전까지 <플라스틱 트리>(감독 어일선) <화성으로 간 사나이>(〃 김정권) <신부수업>(〃 허인무) <말죽거리 잔혹사>(〃 유하)에서 주·조연을 맡아 개성 넘치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반면 <파이란>(〃 송해성) <해안선>(〃 김기덕) 등은 선택받지 못했다.

 


■쥐포 구워 팔까? 탁구장 할까?
김인권은 초등학교와 대학을 함께 다닌 동기동창과 결혼했다. 입대하기 전에. 졸병 때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김인권은 집안 걱정 등으로 좌불안석의 나날을 보냈다. 2006년 11월에 제대한 뒤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2007)로 컴백, 라면 CF도 하면서 안정을 찾은 그는 <두 얼굴의 여친>(〃 이석훈) <마이 파더>(〃 황동혁) <용의주도 미스신>(〃 박용집) 등에 이어 <숙명>(〃 김해곤)에서 송승헌·권상우 등과 함께 주연을 맡았다.

 

                 

“주변에서 이 영화 개봉되면 완전 스타가 될 거라고 했어요. 조연으로 올리면 확실히 수상할거라고도 했고. 그래서 시상식에서 상 받으면 가장 먼저 누구한테 고맙다는 말을 전할까 고민했는데, 웬걸 수상은커녕 1년을 쉬어야 했어요. IMF한파 등으로 인해.”

 

당시 충무로 공기는 싸늘했다. 출연 제안을 받은 작품이 속속 물거품이 됐다. 가까스로 투자를 받은 <숙명>과 <두 얼굴의 여친>마저 흥행에 실패하면서 김인권은 데뷔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16부작 드라마에서도 이름이 안나오는 배역이 들어올 정도였다.

 

영화계 동료·후배들 가운데 대리운전에 주차요원으로 연명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스태프 중에서는 장비를 고철로 팔아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도 있었다.

“등산을 많이 다녔어요. 친구와 함께. 그 친구는 내 권유로 10년 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영화를 다시 시작했는데 그 작품도 엎어져 졸지에 백수가 됐죠. ‘길에서 쥐포를 구워 팔까? 탁구장을 할까?’….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로 괴롭고 힘든 나날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김인권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송어>에서 함께한 설경구의 전화였다. 설경구는 다짜고짜 김인권에게 “윤제균 감독 아냐? 빨리 와. 압구정동으로”라고 했다. 친구와 용인의 한 허름한 고깃집에 있던 김인권은 단숨에 압구정동으로 달려갔다.

 


그 자리에서 윤 감독과 설경구를 만난 김인권은 <해운대> 이야기를 듣고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그만큼 연기에 배고팠고 생활고도 절박했던 김인권은 ‘동춘’ 역할에 온몸을 던졌다. 품행이 불량스러운 인물을 밉살스럽지 않은 캐릭터로 펼쳐냈다. 웃음과 더불어 찡한 감동까지 자아내면서 <해운대>가 한국영화 중 다섯 번째로 ‘천만 고지’를 정복하는 데 기여했다. 부일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등 데뷔한 지 10년 만에 스타덤에 올랐다. <방가? 방가!> <마이웨이> <퀵>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변신을 거듭,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다.

“정서적으로 약자에 끌려요. 배우 유전자도 약자쪽 기질이 더 강하다고 봐요. 약자의 편에 서는 코미디가 좋아요. 망가지면서 살아남는 배역을 깊이 있게 파는 데 희열을 느껴요. 예전에는 연기의 중심에 내가 있었고 강해 보이고 싶었는데 지금은 달라요. 관객이 우선해요. 관객에게 웃음을 주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걸 중요하게 여겨요. 관객을 위한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배우, 겸손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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