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은진 감독(47)이 새 영화 <용의자X>로 돌아왔다. 이 영화는 지난 18일 개봉, 6주 동안 정상에 올라 있던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끌어내리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면서 3일 동안 44만1429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관람했다. <오로라 공주>(2005) 이후 다시 달리는 방은진 감독의 개선 행진곡을 들었다.

 


<용의자X>는 살인사건을 다루면서 사랑 이야기를 녹여놓았다.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을 각색, 영상화했다. 제목 앞에 명기, 영화가 어떤 작품인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태그라인(Tagline)이 ‘천재 수학자의 완벽한 알리바이’다. <용의자X>는 이 알리바이의 전모를 보여준다. 완벽한 알리바이로 인해 미궁에 빠지던 사건은 석고의 사랑이 단서가 되면서 새 국면을 맞는다. 천재 수학자 ‘석고’는 류승범, 이웃집 여인 ‘화선’은 이요원, 형사 ‘민범’은 조진웅이 맡아 열연을 펼쳤다.

-원작 소설은 언제 읽었나.
“국내에 출간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오로라 공주> 촬영감독 권유로 읽었다. ‘죽인다’는 그의 말대로 흥미로웠다. 어떻게 하면 판권을 살 수 있을는지, 고심만 하다가 다른 작품을 준비하느라 잊었다. 일본에서 소설과 같은 제목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국내에 배급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쉬웠다. 기회가 없어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본영화 <용의자X의 헌신>은 2009년 4월 9일 개봉됐다. 9만4790명(한국영화연감 기준)이 관람했다.

-결국은 만들었다.
“판권은 케이앤엔터테인먼트가 갖고 있었다. CJ엔터테인먼트가 개발, 케이앤과 공동제작했다. 나는 CJ에 한 작품의 기획안을 내놓고 개발을 하고 있고, CJ는 어느 정도 시나리오를 끝내고 감독을 찾고 있던 시점에 만났다. 연출 제안을 받고 내가 심리를 다루는 데 장점이 있다고 보나 보다 했다. 하고 싶었던 작품이었는데 5년여 만에 내 손에 들어온 데에서 운명이란 느낌을 받았다. 앞서 두 영화사에서 준비했던 작품이 다 무산됐고, CJ에 내놓은 새 기획 작품은 해외로케 등 일정 시간이 필요했다. <용의자X>는 잘 할 수 있는 소재였고, 하고 싶은 작품이어서 달려들었다. 잘 만들어서 앞으로 연출을 하는 데 탄력을 받고 싶었다.”

 

-각색 작업은 얼마나 했나.
“각본 작업은 이공주·이정화·김태윤 작가가 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3개월 간 감독고(監督稿) 작업을 10고(稿)까지 했다.”

-각색·연출작업 때 어디에 주안점을 뒀는지.
“소설에서 사랑은 숨겨져 있다. 수면 아래에 있는 사랑을 영화에서는 위로 올렸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품은 진심과 사랑을 담는 데 무게를 뒀다. 사랑이 사람을 구원하는 이야기를 풀어넣어 울림이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감성 미스터리를 지향했다.”

-촬영작업은 어땠는지.
“촬영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개월까지 60회에 걸쳐 찍었다. 빛으로 감정을 다루는 이철오 조명감독, 핸드헬드 촬영(들고찍기)의 천재라고 했을 만큼 역동적인 순간의 감정을 포착해 내는 최찬민 촬영감독-이 영화에서는 외려 정적인 카메라이긴 하다-, 감정을 소리로 증폭하는 신이경 음악감독 등 최강의 스태프와 최고의 배우들과의 합작품이다.”

촬영할 최적의 장소를 찾는 게 힘들었다. 계단과 마당을 갖춘 복도식 아파트는 전국을 헤맨 끝에 찾은 대구의 오래된 맨션이다. 살인사건, 장르적 특성 때문에 주민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석고가 지나다니는 길목의 낡고 오래된 굴다리는 전국을 헤매다가 신촌의 외진 곳에서 기적적으로 발견했다. 중요한 단서가 되는 저수지는 강원도 화천의 오지에서 찾았다.

-일본영화 <용의자X의 헌신>은 봤나.
“각색 작업을 마친 뒤에 딱 한 번 봤다. 그 전에는 일부러 보지 않았다. 작업 후에 보니까 주요 인물(물리학자)이 없어졌고, 나이를 낮췄고, 멜로에 중점을 둬 그 영화와의 차별화 등은 굳이 고려하지 않아도 됐다.”

소설 등을 각색·영상화한 작품은 곧잘 원작과 비교된다. 문자언어와 영상언어, 표현의 무한성과 한계성, 단독 작업과 공동 작업, 작업비용 등에 걸쳐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원작에 비해 이러저러하다는 평가를 받고는 한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그린 영화에 비해 평가에서 불리한 실정이다.

-원작에 비해 어떻다는 감상평이 잇따른다.
“소설과 영화는 엄연히 장르가 다르고 그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비교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맞닥뜨리니까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미스터리에 심리·멜로를 가미해 호·불호가 있겠지만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영화의 재미를 더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먼저 읽었든 아니든, 원작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영화 자체의 재미와 의미를 느꼈으면 한다.”

 

-석고의 사랑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성별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 대체로 남자들은 ‘미친 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울컥해 한다. 여자들은 ‘완전한 사랑’이라며 ‘받고 싶다’고 한다. ‘(그런 사랑) 있으면 좋겠다’ ‘희망을 얻어간다’는 분들도 있다. 영화상의 이야기지만 가능한 사랑이라고 본다.”

심리학자 장근영 박사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석고의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석고가 화선에게 보여주는 것은 헌신밖에 없고, 화선은 석고에 대해 전혀 모르고, 석고에 대해 감정이 생기려 하지만 석고 혼자 다하고 있다”며 “이런 사랑을 스턴버그는 ‘공허한 사랑’이라고 하고 색채이론에서는 ‘아가페적 사랑’이라고 한다”고 했다. “아가페적 사랑이라는 건 신의 사랑”이라며 “가장 큰 사랑을 한 인간(석고)이 가져가고 있다는 것에 있어 굉장히 경외로웠다”고 했다.

-원작자는 영화를 봤나.
“보셨다. 격조가 있고 좋다고 했다. 과장되지 않고 차분한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라며 캐릭터들의 갈등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고 하셨다. 각색을 할 때 작가가 몇 가지 조건을 걸었다. 화선과 ‘윤아’(김보라)의 관계, 화선의 행보, 제목 등등에 대해. 이를 좀 배반했는데 모두 용인해 주셨다. 범인과 형사 사이에서 고뇌하는 물리학자가 그려지지 않은 데 대해 ‘약간 아쉬울 수 있으나 신념에 근거를 둔 과감한 각색’이라고 했다.”

방 감독은 초등학생 때 KBS 어린이합창단에서 활동했다. 아역배우도 했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중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1994)으로 데뷔했다. 박철수 감독의 <301, 302)(1995)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연기상 등을 받았다.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2000)으로 대종상 여우조연상 등을 받았다. 감독 데뷔작 <오로라 공주>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과 황금촬영상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용의자X>는 멜로가 살아있는 미스터리다. 방 감독은 “세상이 각박하고 사랑도 일회적·조건적인 데 익숙해지고 있다”면서 “<용의자X>를 보고 나서 우리가 염원하는 사랑의 절대 가치를 되찾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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