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연(41)은 하이틴 스타로 출발, 성인 연기자로 거듭난 대표적인 배우다. 데뷔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로 백상예술대상·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연기상을 받은 뒤 <눈꽃>(1993) <내 마음의 풍금>(1998) <여고괴담>(1999) <물고기자리>(2000) <중독>(2003) <태풍>(2006) <어깨 너머의 연인>(2008) 등에서 뭇 여성의 각기 다른 삶을 밀도 있게 소화, 각종 영화상 조연여우상·여우주연상과 심사위원특별상·인기상을 10여 차례 받았다. 요즘은 소지섭 등과 함께한 <회사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랑이 꽃피는 인물과 영화를….
한때 촉망받는 가수였지만 고난한 역정을 거치면서 미싱사로 일하는 여인, 아이 둘을 둔 엄마. <회사원>(감독 임상윤)에서 이미연이 맡은 ‘유미연’의 캐릭터다. 유미연은 생활이 고단하고 힘들지만 삶의 희망을 잃지 않는다. 아들(김동준)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살인 청부회사의 능력있는 사원 ‘지형도’(소지섭)로 하여금 가족의 소중함과 따뜻함을 처음으로 느끼게 한다. 킬러 생활을 청산하고 평범한 인생을 꿈꾸게 만든다.

임상윤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이미연의 팬이었다. 각본 작업할 때 이미연을 염두에 뒀다. 극중 이름도 유미연으로 했다. 이미연에게 출연 제의를 하면서 유미연 역이 지명도에 비해 비중이 떨어지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유미연이 매우 중요한 인물인 만큼, 연기와 외모로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이미연을 반드시 캐스팅하고 싶었다. 고사하는 이미연을 만나고 또 만나 합류를 끌어냈다.

 

이미연은 <어깨 너머의 연인> 이후 감정 기복이 심한 인물보다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러느라 무려 5년이나 영화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유미연은 이성적으로 뿌리치지만 감성적으로는 끌리는 인물이었다. 삶이 고달프지만 희망과 사랑을 잃지 않는 캐릭터가 마음에 와닿았다. 끈질기게 러브콜을 보내는 임 감독의 진정성을 확인, 영화 복귀작으로 선택했다.

집안 부유하고 공부 잘하고 얼굴도 예쁜,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여고생. 항상 좋은 성적을 유지하면서도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감독 강우석)의 ‘이은주’이다. 이미연이 맡았던 인물이다. 이은주는 성적은 밑바닥이지만 밝고 순수한 ‘봉구’(허석)에게 끌린다. 그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다음 시험에서 7등을 한다. 부모의 차가운 눈초리를 견뎌내지 못하고 급기야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투신한다.

이미연은 여고 1학년 때인 1987년 미스롯데 선발대회로 데뷔했다. 당시 미스롯데 선발대회는 연예계 최고의  등용문이었다. 폐지되었다가 부활된 이 대회에 엄마와 언니의 권유로 출전, 1등을 차지한 이미연은 이내 CF모델로 각광받았다. 청순한 외모와 이미지, 해맑은 함박웃음을 담은 사진을 코팅한 ‘책받침 스타’로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롯데제과 CF는 모두 다 했을 정도였고, 고3 때 출연한 가나초콜릿 CF는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런 가운데 이미연은 CF에 지쳐갔다.

이미연은 연기로 돌파구를 찾았다. KBS 가족드라마 <사랑의 기쁨>에 이어 청소년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 출연하면서 생기를 되찾았다. 한 회에 특별출연하는 인물로 캐스팅된 뒤 호응을 얻으면서 최수종·박은영과 함께 주인공으로 고정 출연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출연은 이 드라마가 계기가 됐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시나리오를 쓴 김성홍 감독(훗날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 1·2편 시나리오를 썼고 <손톱>(1994) <올가미>(1997) <신장개업>(1999) <세이 예스>(2001) <실종>(2009) 등의 각본·연출을 맡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서 소개된 김창완 주연 <닥터>를 쓰고 연출도 함)이 <사랑이 꽃피는 나무>의 이미연을 보고 강우석 감독과 영화제작사 황기성사단의 이춘연 상무(현 씨네2000 대표, 영화인회의 이사장)에게 추천, 여주인공을 맡게 된 것이다.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더라도….
이미연은 그간 받은 시나리오와 달리 <행복은~>은 마음에 들었다. 방송국으로 찾아온 강우석 감독과 이춘연 상무의 열정도 인상적이었다. 제작을 맡을 황기성 대표가 <만다라>(1981) <고래사냥>(1984) 등을 기획하고 <에미>(1985) <접시꽃 당신>(1988) 등을 만든 점도 마음에 와닿았다.

 

이 영화는 훗날 <엽기적인 그녀>(2001) 등을 제작한 신씨네의 신철 대표가 한 여학생이 유서에 적은 글(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을 보고 기획했다. 신철 대표는 청소년 500여 명을 인터뷰한 뒤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작업을 의뢰했다.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하던 중 김성홍 감독이 뒤늦게 맡았다. 김 감독은 계원예고 강사 경험을 살려 7박8일 만에 썼다. 황기성 대표는 시나리오를 경리 담당 여직원에게 먼저 읽게 한 뒤 제작을 결심했다. 그런데 당시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투자하는 지방 배급업자들의 반대에 부딪쳐 영상화를 포기하려고 했다. 신철 대표는 인터뷰로 알게 된 고교생 10명에게 점심을 사주면서 이 자리에 황기성 대표를 초청했다. 황기성 대표는 고교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제작을 다시 추진했다.

이은주의 상대역 봉구는 원래 김민종이 맡았다. 숱한 영화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신 김민종은 촬영 한 달쯤 전에 주인공에 뽑힌 뒤 천하를 얻은 듯했다. 의상을 구입하고 대사·연기 연습에 몰두하며 촬영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크랭크인 하루 전에 주인공이 허석으로 바뀌고 말았다.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김민종은 가족하고도 연락을 끊고 이틀을 방황한 뒤 강 감독을 찾아와 ‘단역이라도 하겠다’고 토로, 봉구의 친구로 출연했다.

이미연은 ‘똑 부러지는 연기’로 주위의 기대에 부응했다. 촬영장마다 이미연을 보려는 이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은주의 영구차가 교정에 머물 때 교실 창문으로 내다보면서 울먹이는 전교생은 공모로 뽑았다. ‘출연하고 사인도 받을 수 있다’는 공고를 보고 600여 명이 응모, 제작진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이춘연 상무는 이미연의 별명을 ‘가을 모나리자’라고 지었다. 이 상무는 “어린 나이인데 모나리자의 아우라가 풍겼다”고 했다.

 

영화는 1989년 7월 29일, 지금은 없어진 청계천 세운상가의 아세아극장에서 개봉됐다. 서울에서 15만5301

명(한국영화연감 기준)이 관람, <서울무지개>(감독 김호선)에 이어 1989년도 한국영화 흥행 2위를 기록했다.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신인여우상과 시나리오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신인여우상과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근간으로 한 소설도 30만 부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소설을 각색, 영상화하는 데 몰두했던 한국영화계에 경종을 울렸다.

원래 개봉관은 중앙극장이었다. 그런데 극장 측이 외국영화 <레비아탄> 상영을 연장하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아 울며 겨자먹기로 아세아극장에서 개봉했다. 개봉하는 날 비가 억수 같이 왔다. 이래저래 마음이 심란했던 이미연은 형형색색의 우산을 받쳐 들고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늘어선 관객 행렬에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모른다.

청년은 내일을 내다보고 중장년은 어제를 돌아본다고 했다. 올해로 데뷔한 지 25년째이지만, 이미연은 내일을 본다. <회사원>으로 다시 달릴 채비를 한 이미연은 행복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연기하는 자신과 극장문을 나서는 관객이 함께 따뜻한 마음을 공유하는 인물과 작품으로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더해주는 데 한 몫을 하고 싶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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