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정 감독(39)의 <신세계>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난달 21일 개봉,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5일 현재 270만2607명(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관람했다. 흥행이 어려운 장르(누아르), 관람등급(청소년관람불가) 등을 감안할 때 대단한 성적이다. 박 감독은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2010),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2010) 등의 시나리오를 쓰고 <혈투>(2011)로 데뷔했다. <신세계>는 두 번째 각본·연출작이다. 박 감독과 <신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국내 최대 범죄조직에 위장 잠입한 지 8년째인 경찰 ‘자성’(이정재), 자성을 지휘하는 고위 경찰 ‘강 과장’(최민식), 자성을 친동생처럼 여기는 범죄조직의 2인자 ‘정청’(황정민). <신세계>는 세 사람이 꿈꾸는 서로 다른 신세계를 그렸다. 백척간두에 선 이들의 동상이몽이 흥미롭다. 각본·연기·연출, 3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한국형 범죄영화의 수작으로 손꼽힌다.

-이야기가 흥미롭다. 어떤 계기로 썼나.
“갱스터 무비(gangster movie), 필름 누아르(film noir)를 좋아한다. 해보고 싶은 영화여서 3년 전부터 작업했다. 1990년에 시작해서 2013년 이후까지 이어지는, 30년에 걸친 에픽 누아르(epic noir)를 구상했다. 이 가운데 중간 이야기를 우선 만들었다. 개인보다 조직·세력 간의 이야기를, 깡패들이 넥타이 매고 정치하는 이야기를 장르 문법에 충실하게 담고 싶었다.”

-세 배우 캐스팅이 적절했다.
“이들이 함께한 건 <신세계>가 처음이다. 최민식 선배를 만나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최 선배는 <악마를 보았다> 때 만났다. <신세계>를 읽고 강 과장과 정청 가운데 강 과장을 선택했다. 최 선배가 하는 정청도 대단할 거라고 본다. 어쨌든 대척점에 있는 정청은 황정민 선배가 맡아줘 날개를 달았다. 둘 가운데에 있는 자성은 누구를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최 선배가 이정재씨에게 전화를 하면서 이뤄졌다. 세 배우의 출연이 확정된 뒤 뿌듯했고 한편으로는 겁이 났다. 누아르 장르에서 꺼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여서 상업적 성과를 반드시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렸다.”

 

-투자 받는 게 용이했는지.
“쉽지 않았다. 데뷔작 <혈투>의 흥행 성적이 좋지 않은 데에다 누아르 장르여서 곡절을 치렀다. 감독을 바꿔라, 예산을 깎아라…. 한국에서 누아르가 원체 잘 안 되기 때문에 이해했다. 연출도 맡으면서 준비 작업을 철저히 했고 제작에 들어간 뒤에는 일정을 준수했다. 날씨가 바뀌면 그에 따라 시나리오를 바꿔 찍었다. 6월 16일부터 9월 14일까지 53회 만에 촬영을 마쳤다.”

-각본·연출 작업 때 어디에 역점을 뒀나.
“재미를 우선으로 했다. 관객들이 바로바로 읽을 수 있도록 쉬워야 한다는 점도 염두에 뒀다. 각 인물들의 밸런스 유지가 가장 중요했다. 이 점에 대해 처음에는 걱정을 했지만 기우였다. 배우들이 더 고민하고 연구를 해와서 서로를 배려하면서 연기를 해줬다. 주연은 물론 조연들도, 그리고 스태프들도 목적이 일치해 빛나는 최상의 조합을 이룰 수 있었다. 영화는 처절하지만 촬영 현장은 굉장히 즐거웠다. 작품이 끝나는 게 아쉬워 더 작업했으면 할 정도로.”

최민식은 후배들이 연기로 놀다 가도록 터전을 펼쳐줬다. 촬영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도 마다하지 않았다. 황정민과 이정재는 디테일이 살도록 만전을 기했다. 일례로 정청이 입국할 때 슬리퍼를 신고 나타나는 건 황정민의 아이디어였다.

 

-<무간도> <도니 브래스코> 등이 떠오른다.
“그 영화뿐만이 아니다. <대부> <흑사회> <헬스 키친> <히트> 등 여러 영화의 느낌과 색감이 담겨 있다. 같거나 유사 장르의 영화인 데에다 좋아하는 작품이고 영향도 많이 받아 그 작품들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역으로 더 적극적으로 담아내려고 하기도 했다.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가져가면서 각 영화들의 정수는 빼먹으려고 했다.”

-영화감독은 언제부터 하고 싶었나.
“고등학교 2학년 때(1991년)부터 영화를 많이 봤다. 집 근처 동시상영관에서 본 SF영화가 계기가 됐다. 한 과학자가 신무기 설계도를 빼앗긴 뒤 스스로를 이식 개조, 반인반기(하반신이 궤도인 사람)가 돼 복수하는 이야기를 그린,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 영화다. 이후 동네 비디오 가게의 작품을 다 봤다. 자연스레 갱스터·누아르·스릴러에 심취했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선생님은 대학에 갈 필요가 없고, 가더라도 1학년만 다녀도 된다고 하고는 했다. 성적에 맞춰 영화랑 상관없는 자연계 학과에 진학했고, 1학년을 두 번 다니고 그만뒀다.”

군대는 부사관을 지원, 5년간 복무한 뒤 중사로 제대했다. 제대할 즈음 벤처협회의 게임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돼 게임회사에 특채로 들어갔다. 그 회사가 사업 아이템을 바꾸는 바람에 동료들과 함께 게임회사를 차렸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당시 유명 제작사 싸이더스HQ가 주최한 시놉시스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시나리오 공부는 어떻게 했나.
“당시에는 번듯한 시나리오 작법서가 없었다. 영화를 보고 시나리오로 옮겨 쓰는 걸로 시작했다.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지하에 있던 ‘키노’가 유일한 영화도서관이었다. 그곳에서 <한국 시나리오 전집>을 읽고 참고를 많이 했다.”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
“10년 정도 된다.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 전에 여러 편의 시나리오 각색을 했지만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생활이 어려워 만화 스토리 작가도 했다. 만화 쪽이 돈은 많이 주지 않지만 영화 쪽처럼 지급을 어기거나 약속한 금액을 후려치지 않아 좋았다. 어쨌든 영화를 계속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분들과 인연을 맺게 돼 오늘까지 왔다.”

-범죄영화 등을 고수할 계획인가.
“그렇지 않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다른 장르도 하고 싶다. 다만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 등은 못할 것 같다. 감독을 계속 하면서 시나리오도 여러 편을 써 선배·동료·후배 감독들에게 주는 게 꿈이다.”

<신세계>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속편 이야기가 이미 거론되고 있다. 박 감독은 “더욱 성과를 내는 게 우선”이라며 “흥행 추이를 좀더 지켜보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거론된 뒤에는 <신세계>의 이전과 이후 이야기 가운데 어느쪽을 먼저 할는지는 관계자들과 논의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신세계>에 앞서 흥행에 성공한, 청소년관람불가 범죄영화로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471만9872명) <추격자>(507만1619명) 등이 있다. <신세계>가 <범죄와의 전쟁> <추격자> 등을 뛰어넘고, <무간도>나 <대부>처럼 속편을 제작, 시리즈 영화로 한국영화사를 장식할는지 주목된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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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B.E.D), <생생활활>(Eating, Talking, Fucking), <러브 컨셉추얼리>(Love Conceptually). 박철수 감독의 최근 영화다. 이 가운데 <베드>는 지난해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받았고 요즘 극장과 온라인에서 상영 중이다. <생생활활>은 개봉을 앞두고 있다. <러브 컨셉추얼리>는 후반 작업을 하고 있다.

 


<베드>는 침대와 세 색깔의 사랑과 성을 그렸다. 침대를 두고 서로 다른 꿈을 꾸는 세 남녀의 엉킴과 풀림을 그들 각각의 관점과 시점에 따라 순환구조로 엮었다. 장혁진·이민아·김나미 등이 호흡을 맞췄다. <생생활활>은 사람들의 일상과 성을 21개 장에 담았다. 오인혜가 간호장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꽃제비, 기자 및 작가, 보신탕집 아낙, 게이샤, 폭력 여고생, 여대생, TV토론 진행자, 갓 결혼한 신부, 간통녀 등의 캐릭터를 소화했다. <러브 컨셉추얼리>는 30대 이혼녀와 10대 고교생을 중심으로 사랑과 욕망의 실체, 그것의 같음과 다름에 대해 풀었다. 진혜경·김도성 등이 함께했다.


-성(性)이 최근 세 작품의 공통된 소재다.
“일상 다시 보기, 들여다 보기는 내 영화의 오랜 지향점이다. 성은 인간의 일상 가운데 하나다. 사람들은 성에 대한 콤플렉스와 판타지를 갖고 있다. 이것은 삶의 영원한 화두로 자리한다. 섹스와 섹스 사이콜로지(심리학)는 영화의 영원한 소재이자 주제다. <베드>에서 남자는 침대를 사랑의 개념에, 한 여자는 욕망의 선상에 놓고 있다. 다른 여자는 휴식의 수단으로 보고. <베드>는 그 삶의 각기 다른 이미지를 담았다. 본질적으로 섹스 영화가 아닌데, 성행위가 영화의 메인이 아닌데…. 에로로 보든 예술로 보든 영화는 관객 저마다의 평가로 남을 것이다.”

-모두 신인을 캐스팅하고, 적은 예산으로 완성했다.
“내 영화는 ‘3무영화’다. 세 가지가 없다. 스타, 거대 자본, 스토리 텔링이다. 스타·자본 권력에 휘둘리지 않은, 여느 드라마적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작업 과정을 통해 완성한 영화다. 감독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의무가 있고, 관객은 그런 작품을 즐길 권리가 있다.”

 

-평균 제작비와 촬영 기간은.
“제작비는 편당 1억5000만원 안팎이고, 촬영 기간은 보름 내외이다. 제작비는 더 줄일 수 있다. 김기덕·홍상수 감독 영화처럼 스타 배우의 참여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부단히 자기 영화의 색깔과 방식을 지켜가는 그들이 고맙다. 예전에는 내가 그들의 롤모델이었는데 요즘은 그들이 나의 롤모델이다.”

박철수 감독은 ‘충무로의 게릴라’였다. <어미>(1985), <안개기둥>(1986), <접시꽃 당신>(1988), <오늘 여자>(1989) 등으로 주목받은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자본과 스타에 의존하는 ‘할리우드적 충무로 방식’에서 벗어나 ‘감독이 창작의 주체가 되는 영화 만들기’에 앞장섰다. 저예산으로 10~20일 만에 창작성이 돋보이는 영화를 속속 완성, 국내외에서 각광받았다. 베를린·선댄스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받고 미국 등 세계 시장에 배급된 <301 302>(1995), <학생부군신위>(1996), <산부인과>(1997), <녹색의자>(2003) 등이 대표작이다.

-저예산 독립영화 제작방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자본·스타에 끌려가는 영화에 흥미를 못 느낀다. 영화의 백미는 창작성에 있다. 그래야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그것에 재미를 느낀다. 스타를 기용한 거대 자본의 영화는 창작성을 발휘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특히 도발·실험을 감행할 수 없다. 실패하면 피해가 크니까. 반대로 저예산 독립영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영화 발전은 사실 이런 도전을 통해 가능하다. 거대 자본이나 스타 시스템에 구속되지 않는 창작을 통해 발전을 꾀할 수 있다. 처음에는 콧방귀를 뀌던 할리우드가 선댄스를 주목하는 이유다. 국내 메이저에서 미쟝센단편영화제 수상자 등을 예의주시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녹색의자> 이전처럼 소재가 다양하지 않다. 성에 국한돼 있다.
“인정한다. 아직 성에 대한 판타지가 덜 깨졌기 때문이다. 인디(독립)영화가 IPTV·온라인 등의 새로운 미디어 산업과 접목하는 과정에 자의반 타의반 섹스 코드를 선정적·자극적으로 활용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늘 새로운 것을 원하는 관객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소화 매체 또한 더 많아지면서 소재와 주제의 다양성이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

-인디영화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이 절실하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닌데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어떤 선에서 풀어내느냐가 관건인데 인디 문화를 육성해야 대중문화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점을 놓고 실질적 정책이 입안·시행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되는 것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는 만큼, 환경과 여건 탓만 할 수 없는 만큼, ‘영화=필름=스크린’이라는 질서 외에 ‘영화=디지털=TV·온라인’이라는 또 하나의 길을 역동적으로 개척했으면 한다. 새 미디어를 잘 활용하면 인디가 살 수 있다. 수입이 만만찮다. 더 활성화될 것이다. 그럴 수 있도록 정책 입안 또한 필요하다.”

-여전히 작품 활동이 왕성하다.
“한국에서는 퇴물 취급을 받지만 미국에 가면 젊은 감독에 속한다. 미국 프로듀서들은 ‘이제부터가 영화를 본격적으로 만들 시기’라고 한다. 미국 활동도 병행하려고 한다. 좋은 영화는 큰 돈과 큰 배우와 고난도 기술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단히 일상과 영화의 접목을 시도하려고 한다. 한국에서 감독이 40대 이후에 생산 주체에서 도태되는 건 문화 소비층의 소비행태와 관련이 깊다. 20대 장르 영화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 증가하는 50~70대를 염두에 두는 동년배 감독들의 작품 활동이 활기를 띠었으면 한다.”

박철수 감독은 60대 현역이다.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 60대 이상 가운데 근래에 작품을 내놓은 이는 박철수·정지영 감독 등에 지나지 않는다.

 


<메데이아>(Medeia), <아버지의 모든 것>(가제), <스시바 인 LA>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 박 감독의 다음 영화다. <메데이아>는 성폭행 피해 여성의 복수를 그린다. 박철수 감독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악녀 메데이아 콤플렉스를 소재로 한 아름다운 살해극”이라고 소개했다. <아버지의 모든 것>은 한 여인과 그의 늙은 전 남편, 젊은 현 남편의 기묘한 동거를 통해 가족의 해체와 봉합·복원을 다룬다. 박 감독은 “각자의 삶을 반추, 화해와 용서가 가능한지 물을 것”이라고 했다.

또 <스시바 인 LA>는 다양한 인종의 식생활과 일상에 주목한다. 박 감독은 “<301 302> 때부터 구상했던 작품”이라며 “사람의 본능과 본질을 조명해보겠다”고 했다.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는 남북분단과 동북아 문제에 접근한다. 박 감독은 “탈북보다 탈남에 무게를 둘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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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30)이 재난영화 <타워>(감독 김지훈)로 주목받고 있다. 개봉 7일 만에 200만, 12일 만에 300만, 18일 만에 4백만 명이 넘는 관객이 봤다. 흥행속도(400만 돌파 기준)로 보면 1000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보다 이틀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다. 700만 명이 넘게  본 <늑대소년>과 같다. <타워>는 손예진이 데뷔한 지 13년 만에 처음으로 출연한 블록버스터다. <타워>의 홍일점 손예진에게 재난영화 촬영 현장 이야기를 들었다.

 

 

손예진이 <타워>에서 맡은 인물은 ‘서윤희’다. 108층 주상복합빌딩 ‘타워스카이’의 푸드몰 매니저다. 눈부신 미모와 미소로 푸드몰 식구는 물론 주변 사람들도 살갑게 챙기던 그녀는 타워스카이가 최악의 화염에 휩싸인 뒤 더욱 빛난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아름다운 여인상을 보여준다. 구출되어야 하는 객체로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면서 구출에 나서는 주체로서의 감동도 자아낸다. “투혼이 느껴진다.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라 연기에 있어서도 완전 프로다!” 등의 찬사를 받고 있다.

 

-물·불과의 촬영이 어땠는지.
“모두들 힘들었다. 뛰고 넘어지고 휩쓸리고…. 뜨거운 열기와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연기·먼지에 시달리고. 다른 분들이 워낙 힘든 촬영이 많아서 나는 상대적으로 덜 힘들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불보다 물이 더 힘들고 무서웠다. 어마어마한 양으로 쏟아지는 강력한 물줄기에 휩쓸리며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애쓰고, 매우 추운 날씨에 납덩이를 들고 수조 세트에서 잠수도 해야 했다. 정말 힘들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촬영장 가는 게 소풍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선배·오빠들이 항상 챙겨주고, 이쁨 많이 받고,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에서 위험한 상황도 즐겁게 찍었다. 그런 현장은 처음이었다. 재난영화여서 그런 점이 없지 않았겠지만 의리와 동지애 같은 걸 느꼈다. 정말 감사하고 뭉클한 적이 많았다. 자연히 현장 가는 게 소풍가는 것처럼 설레곤 했다. 촬영이 끝날 때에는 너무 아쉬워서 주변에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하지 않으려 했다고 들었다.
“시나리오는 좋았지만 굳이 내가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캐릭터의 깊이보다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죽느냐 사느냐가 관건인 영화였다. <오싹한 연애> 찍을 때 제안받았다. 감독님이 <오싹한 연애> 현장에 자주 오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겠다고 했다. 많은 분들이 <타워>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들려줘 정말 흔쾌히 결정했다.”

-블록버스터 출연은 처음이다.
“데뷔한 지 13년 만이다. 개인적으로 블록버스터에 욕심이 없었다. 언젠가는 자연스레 하게 되려니 했는데 <타워>로 연을 맺었다. 두 남녀 주인공으로서 오롯이 책임을 져야 하는 데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주변 도움을 받으면서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영화 속에 내가 어떻게 자리하는지 궁금했다.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했고, 여러 배우들과 작업하는 데 대한 호기심도 발동했다.”

 

-서윤희 캐릭터는 어땠나.
“마음이 따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인물이다. 다들 포기하려는 순간에 좋은 에너지를 전한다. ‘실제로도 내가 과연 이럴 수 있을까?’라고 물었을 때 ‘그럴 것 같다’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자칫 교과서적인, 전형적인 인물로 비쳐질 수 있는 캐릭터여서 그 점을 경계했다. 아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해주고, 차분하게 인도하는 인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설경구·김상경과의 작업이 어땠는지.
“친동생처럼 편하게 대해줬다. 경구 선배는 언니(송윤아) 보러 집에 놀러 갈만큼 편하고 친분이 있지만 작품을 하는 건 처음이다. 연인 관계로 나오는 상경 선배는 친분이 거의 없었는데 촬영하면서 많이 친해졌다.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도맡아 줬다. 정말 감사했다. 김인권·도지환 등 함께 하는 게 처음인 배우들이 많았다. 박철민 선배는 <오싹한 연애>, 정인기 선배는 <무방비도시>에서 함께 한 적이 있다.”

-화물 엘리베이터로 탈출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 장면을 찍으면서 죽음의 공포도 처음으로 느꼈다. 밀폐된 공간에서 극한의 공포를 느끼는 걸 상상하고 최면도 걸면서 연기를 했다. 18시간을 찍으면서 에너지 소모가 컸다. 9·11 테러, 대구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처럼 실제로 이런 일이 내게 느닷없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먹먹해지고 머리끝이 주뼛 서면서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대형참사에 대해 남 얘기로 여겼고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촬영하면서 참혹함과 고통을 절감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컷’ 소리를 들은 뒤에도 눈물이 계속 났다.”

-의상이 단벌이다.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이브 하루 동안에 벌어진 일이다. 촬영기간 내내 흰색 정장 한 벌만 입고 나온다. 세탁을 하고, 앞서 찍은 장면과의 연결을 위해 다시 더럽게 만든 뒤에 입고 촬영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세탁소 아저씨가 ‘이 옷을 입고 도대체 뭘 하느냐?’고 물은 기억이 난다. 유독 가스를 많이 마셔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을 때 주민들이 재에 덮인 우리를 보고 실제로 119에 신고를 한 적도 있다.”

-몰래 카메라 사건은 어떻게 발생했나.
“촬영 초반에 내가 하자고 했다. 예전에 화보 촬영 때 간간히 한 적이 있는데 영화에서는 처음으로 했다. 외계인의 존재를 놓고 설왕설래하다가 편이 나뉘면서 인신공격까지 하는 걸로 설정했고 실제로 실감나게 언쟁을 했다. 김지훈 감독님은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고 예사로 넘기려고 했는데 우리들 연기가 출중해 믿게 되었다고 했다. 더구나 경구 선배가 쓰레기통까지 던지면서 내게 화를 내고 나도 지지 않으려고 하자 <타워> 촬영은 오늘로 끝이구나’라고 느꼈다고 하더라. 감독을 감쪽같이 속일 정도로 팀워크가 대단했다. 이 팀워크로 촬영을 마쳤다.”

-보충 촬영도 길게 했다.
드라마 부문 보완을 위해 보충 촬영을 했다. 관객의 가슴을 쥐락펴락 하는 드라마, 화려한 볼거리, 빠른 전개…. 이 모두를 만족시켜 주는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타워>는 블록버스터로서 볼거리는 물론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희노애락이 담겨 있다. 가족·연인·이웃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잘 되고 있지만 더 잘 되었으면 한다.”

 

손예진은 <타워> 이후 <공범>(감독 국동석) 촬영을 마쳤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엄청난 비밀을 감춘 범죄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된 딸이 진실 추적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손예진의 13번째 영화다. 손예진은 “여러 작품을 하는 것보다 좋은 영화에서 완벽하게 책임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며칠 뒤면 만 30살이 되는 손예진은 “우리 모두에게 한층 따뜻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하루하루를 더욱 소중하게 보내겠다”고 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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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규 감독(53)은 영남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김현명 감독의 <아가다>(1984) 연출부로 충무로에 입문했다. 1986~1991년 일본대학·일본영화학교·와세다 대학원에서 영화공부를 했다. 귀국 후 프로덕션을 설립, SBS의 <꾸러기 카메라> <스타, 이런 모습 처음이야> <악마의 속삭임> <결혼할까요> 등을 연출·제작했다. 영화 데뷔작 <조폭마누라>(2001)로 공전의 히트를 친 뒤 <어깨동무>(2004) <조폭마누라3>(2006) 등에 이어 9일 박신양·김정태·엄지원·정혜영 주연 <박수건달>을 내놨다. 

 

 

“지랄 같아도 지나고 나믄 다 이유가 있는 기다” “그라믄 사람 패고 해꼬지하고, 그건 니가 할 짓이가” “다 필요 없드라. 죽도록 용 써봤자 옷 한 벌이다. 나중에 니는 무슨 옷을 입고 갈 낀데….”

영화 <박수건달>의 주제를 대변하는 대사들이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주인공 ‘광호’(박신양)다. 그는 건달이다. 그 세계에서 잘 나가던 그는 어느 날 신내림을 받는다. 박수(남자 무당)와 건달, 이중생활을 한다. <박수건달>은 바람직한 삶과 삶의 구원에 대해 묻는다. 코미디에 액션, 판타지를 곁들여 웃음은 물론 눈물도 쏙 빼놓게 한다. 그간 심심찮게 영상화된 이른바 ‘조폭 코미디’와 차원을 달리 한다. 제목은 B급 영화의 전형이지만 보고 나면 생각을 바꾸게 된다.

-왜 <박수건달>인가.
“딜레마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코미디에 딱 맞는 소재이다. <박수건달>은 딜레마에 관한 영화다. 한 남자가 성공을 목전에 두고 신이 내리는 바람에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남자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를 치러내면서 삶의 가치관이 달라지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의 재미를 더 끌어올리고 다양한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복합 장르로 그려냈다. 요즘은 관객의 욕구가 실로 다양해 한 영화를 한 장르로만 그려내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다.”

 

-언제 기획했나.
“동료인 정연원 감독에게 이야기를 들은 건 4년쯤 전이다. ‘조폭에게 신이 내렸다’는 인터넷 뉴스를 봤다면서 이 소재를 코미디로 만들 때 가장 쉽고 재미있게 풀 수 있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정 감독 얘기를 듣고 안 하겠다고 했다. ‘또 조폭이냐’는 말을 듣기 싫어서, 자칫 ‘조폭 영화 전문 감독’으로 분류될 것 같아서, 이제는 다른 장르 영화를 하려고 한다고 사양했다.”

그리고 3개월이 넘게 지났다. 조 감독은 자신의 의지와 달리 무당인 조폭 이야기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자 결국 생각을 달리 먹었다. 도망치지 말고 정면 돌파하기로. 건달이 처한 딜레마를 소재로 삶의 깨달음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장르의 생산적·발전적 진화를 꾀해 보자고 달려들었다. 우선 <사랑과 영혼>을 수십 번 봤다.

-시나리오 작업을 얼마나 했나.
“3년간 했다. 50~60번쯤 새로 쓴 것 같다. 주인공을 건달이 아닌, 직업이 검사·교수 등인 남자로도 여러 차례 설정했다. 그런데 쓰기 힘들었고, 만족도가 떨어졌고, 주위 반응도 좋지 않았다. 광호가 신을 받는 게 죽는 것 만큼 싫은데 받아야 했듯, 나 역시 주인공이 건달인 게 누구보다 싫어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데 피할 수 없었다. 마초적이고 욕망과 허세가 강한 집단이고 그 소속이어야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구축하고 복합 장르로 구성하는 게 용이한 측면이 많았다. 깨달음의 극대화도 꾀할 수 있고. 재미있고 구성도 좋은데 시나리오가 맛있게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무속을 취재하고 영화에 반영하는 건 어떠했나.
“광호의 두 면 가운데 박수를 살아있는 캐릭터로 만들어내는 게 관건이었다. 신병에 시달릴 때와 내림굿 진행과정, 작두에서 춤출 때, 무속인으로 첫 손님을 받고 점을 볼 때의 심정·모습…. 많은 무속인들을 찾아가 손님 입장으로 관찰했고, 솔직히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집요하게 물어보고 조목조목 캐내 시나리오에 반영했다. 무속을 문화적 관점으로 연구하고 문화계 인사들과 폭넓은 인맥을 지닌 황해도 만신(무녀) 이해경 선생의 조언과 도움을 많이 받았다.”


-광호 캐릭터와 박신양의 연기가 매력적이다.
“광호는 박수와 건달을 오가는 캐릭터다. 마초적인 건달은 물론 박수무당이 지닌 여성성도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를 손꼽을 때 가장 먼저 박신양이 떠올랐다. 터프한 남자와 그 남자가 커밍아웃을 선언했을 때 느낌을 표현해 달라고 했다. 기대한 대로 상반적인 두 면을 잘 조합해 냈다.”

-캐스팅은 어떠했나.
“캐스팅이 쉬운 영화나 드라마는 없다고 본다. <박수건달> 역시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박신양·김정태·엄지원·정혜영·조진웅·김성균·윤송이, 적재적소에 좋은 배우들이 들어와 자신의 역할을 십분 발휘해 주었다. 아역 윤송이는 오디션 응모자 700~800명 가운데 뽑았다. 3개월간 부산 사투리 연습을 시켰는데 이 또한 소화 능력이 뛰어나 안심하고 맡겼다. 눈물연기 등이 정말 탁월했다.”

-광호는 유령을 보고 대화도 나눈다.
“무속 취재 당시 무당이 유령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특별해야 해 박수와 유령의 접목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령이 나오는 영화의 재미는 동종 혹은 이종 간의 접촉과 대화, 이에 따른 업보의 해소에 있다. 그걸 어떻게, 다른 영화와 다르면서 재미있게, 의미있게 승화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유령은 무서운 존재로 인식돼 있지만 사실은 불쌍한 존재다. 건달은 일견 폼나 보이지만 실제로는 범법자다. 무당은 숨기고 싶은 신분인데 실질적으로 좋은 일을 한다. 이 세 점을 염두에 두고 구성했다.”

광호가 못 다한 사랑에 아파하는 여인(천민희)과 검사(조진웅), 딸(윤송이)과 의사(정혜영)의 한을 풀어주는 과정과 장면이 영화의 재미와 의미를 더해준다. 광호와 검사 사이에 진지하고 웃기고 슬픈 상황이 번갈아 펼쳐지는 취조실 장면이 압권이다. 웃기다가 울리고 다시 웃기는 걸 반복, 희·비극의 공존을 보여준다. “코미디 영화의 명장면으로 오래도록 회자될 것”이라는, “코미디 영화의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는 네티즌의 감상평이 잇따르고 있다.

조진규 감독은 “코미디는 일단 재미있어야 하지만 관객은 기존의 조폭 코미디에 식상해 있다”면서 “새로운 코미디의 방향을 계속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박수건달>에 대해 “재미와 성찰의 미덕을 담는 데 최선을 다했다”며 “다음에는 인간과 영혼, 초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삶을 돌아보고 내다보는 시간을 관객과 나누고 싶다”고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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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60). 영화 <26년>의 ‘그 사람’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조 내관’이고 <도가니>의 ‘교장 형제’이다.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중퇴한 뒤 1976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뒤 주로 성우로 활동해 왔다. 지난해 8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출연한 영화 데뷔작 <도가니>부터 개성파 배우로 각광받고 있다. 예순 살에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그에게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를 들었다.

 

 

장광의 영화배우로서의 이력은 특별하다. 데뷔작 <도가니>(2011)와 올해 출연작 <광해, 왕이 된 남자> <내가 살인범이다> <26년> <음치클리닉> 등 다섯 편으로 2200만 명이 넘는 관객과 함께했다. <도가니>(감독 황동혁)는 466만2829명(이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광해, 왕이 된 남자>(〃 추창민)는 1229만4509명(이하 22일 현재), <내가 살인범이다>(〃 정병길)는 272만9551명, <26년>(〃 조근현)은 283만5450명, <음치클리닉>(〃 김진영)은 33만8131명이 관람했다. 다섯 편 가운데 네 편이 200만 명 이상이고, 한 편은 1000만 명이 넘는다.

-흥행 성적이 대단하다. 작품 선정 때 무엇을 중시하나.
“의미 있고 재미있는 작품을 좋아한다. ‘신인’이어서 거절할 입장이 아니지만 출연작을 정할 때 이 점을 중시한다. 운이 좋았고, 하나님이 인도해줬고, 함께한 배우·스태프 덕분에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현재 H스타 컴퍼니 소속이다. <26년> 촬영이 끝나갈 즈음 경합이 붙은 서너 군데 매니지먼트사 가운데 <광해, 왕이 된 남자> PD가 추천해 준 곳과 2개월 쯤 전에 계약을 했다.

-‘전두환’ 배역과 인연이 깊다.
“MBC드라마 <삼김시대>(1998)에서 전두환 역을 맡았다. 원래 56부작인데 김기팔 작가가 작고, 작가가 교체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26부작으로 종영되고 말았다. 큰 역을 맡은 것은 그때가 처음인데 연기가 자리를 잡을 즈음 끝나 못내 아쉬웠다. <제5공화국>(2005)에서 동국대 연극영화과 동기인 이덕화가 전두환 역을 맡아 이제는 끝났구나 했는데 <26년>이 들어와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제4공화국>(1995~96)에서는 정종준이 전두환 역을 맡았다. 그는 대머리 가발을 썼다. 장광은 이 드라마에 별을 두 개 단 소장으로 출연했다. 전두환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었다. 당시 연출을 맡은 고석만 PD(현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는 양쪽 다 전두환 같아 안 되겠다며 장광에게는 실내지만 모자를 쓰라고 했다. <삼김시대>를 연출하면서 장광을 전두환 역에 캐스팅했다.

 

-<광해~>로 다소 해소됐는데 다시 악역을 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는지.
“부담이라면 <도가니> 때가 컸다. 크리스천이어서 천하에 둘도 없는 악역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반면 이번에는 <삼김시대> 때 아쉬움을 해소하고 싶었다. 5·18 당시가 아니라 26년이 지난 뒤의 이야기여서 못 했던 부분도 새롭게 하고 싶었다. 2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니고 있는 남다른 담력과 기질이 보이도록 했다. 그것이 역으로 관객들에게는 더 밉살스럽게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좀 더 악독하고 잔인하게 표현하고 싶었는데 개인적으로 조금은 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촬영 앞두고 어떤 준비를 했나.
“많은 자료를 보면서 표정·눈빛·말투 등을 관찰하고 연습했다. 재판을 받을 당시 당당함 등을 캐릭터를 설정하는 데 참고했다. <삼김시대> 때와 달리 몇 편의 영화로 경험을 쌓은 뒤여서 조금은 더 자유롭게 연기했다.”

-기억에 남는 일화는.
“영화 막바지 맞는 장면에서 고생 좀 했다. 처음에는 보호대를 했는데 몸이 부어 보여 좀 빼자고 했다. 무술감독이 촬영할 때 보호대를 대지 않는 곳에 많이 맞는다고 말렸지만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는 후회했다. 얼마나 아픈지 저절로 비명을 질렀다. 감독이 ‘그 사람’은 비명을 안 지를 것 같다고 해서 꾹 참고 다시 찍었다. 한 번 맞을 걸 두 번 이상 맞았다. 개인적으로 죽어가는 경호실장(조덕제)을 발로 차버리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조덕제는 총탄 파편이 이마로 튀어 다쳤는데 엔지(N.G.)를 내지 않으려고 계속 연기를 했다. 링거를 맞아가며 촬영을 강행한 진구 등 최선을 다하는 배우·스태프들과 함께하면서 영화배우로서의 긍지와 보람을 다시 느꼈다.”

 

장광은 동국대 연극영화과 70학번이다.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 제대 후 1976년부터 극단 멕토에서 활동했다. 멕토의 <열 개의 인디안 인형>에 참여한 성우들의 대사 소화 능력을 보고 연기력을 배양하기 위한 일환으로 78년 동아방송에 성우로 입사했다. 80년 12월 언론통폐합으로 KBS에서 활동했다. 방송사와 극장 애니메이션 <슈렉> 시리즈의 ‘슈렉’ 등 그간 성우로 활동한 작품수가 A4용지로 10장이 넘는다. 극단 제작극회·현대극장 등의 무대에 서면서 영화 <휘파람 공주>(2002)에 한 장면만 나오는 ‘북한 간부, 단장’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도가니>의 ‘교장 형제’ 역할은 경쟁률이 엄청났다.
“800 대 1이라고 들었다. 당시 연기에 대한 갈증,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영화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시>(감독 이창동) <댄싱퀸>(〃 이석훈) 등 5~6편에서는 떨어졌다. <도가니> 오디션을 볼 때에만 해도 교장 형제 역에 캐스팅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미지와 나이가 맞고 성우·연극 경력이 보탬이 됐다고 본다. 그런데 정작 캐스팅된 뒤에는 갈등했다. 원작을 읽은 뒤에는 더했다. 하지만 배우가 되려면 해야 했다. 내가 안 하면 누군가가 할 것이고, 내가 더 돋보이게 하고 싶었다. 하기로 한 만큼 최선을 다했고, 배우로 이름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시나리오가 원작보다 다소 강렬함이 떨어졌고, 수위를 낮추느라 촬영한 섬뜩한 장면이 꽤 편집됐는데, 그럼에도 개봉 이후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 영상(영화)의 힘이 대단한 걸 새삼 실감했다. 나는 지탄의 대상이 됐지만 ‘도가니법’이 제정되는 데 일조하지 않았나 하는 데에서 보람을 느꼈다.”

-<광해~ >에서는 ‘하선’(이병헌)의 멘토 역할을 하는 ‘조 내관’으로 주목받았다.
“원래는 대감 가운데 한 명을 지망했다. ‘조 내관’을 제안받고 ‘하선’에게 도망가라고 하는 장면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감독의 의중과 달라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이불 속에서 조 내관의 대사를 되새기는데 감독이 원하는 게 와닿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 다시 오디션을 봤고, 감독이 90% 만족한다면서 10%는 현장에서 찾아내자고 하더라. 사실 이미 내정했는데 다시 오디션을 보겠다는 전화를 받고 이런 열정이라면 소화할 수 있겠다고 여겼다면서.”

촬영을 마친 <신세계>(감독 박훈정)에서 그는 이정재·최민식·황정민·송지효 등과 함께했다. 요즘 <은밀하게, 위대하게>(〃 장철수)를 찍고 있다. 김수현·박기웅·이현우·손현주·이채영 등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는 “아침마다 5㎞를 뛰고 영화를 예전과 달리 공부하는 자세로 많이 본다”면서 “대학에 입학하면서 꿈꾼 삶을 40여 년이 지난 뒤에 이룬 게 꿈만 같다”고 했다. “밤샘 작업을 해도 끄떡없다”며 “어떤 배역이든, 배역이 크든 적든 다양한 인물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그려내 오랫동안 관객과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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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주)영화사 비단길 대표(45)가 또 홈런을 날렸다. 16일 700만 명을 돌파한 <늑대소년>을 제작, 비단길을 다시 깔았다. <음란서생>(2006) <추격자>(2008)에 이어 세 번째다. <작전>(2009)과 <혈투>(2010)도 제작, 5편 가운데 4편이 성공을 거두면서 충무로 대표주자 군단에 합류했다. 김수진 대표의 성공 노하우는 무엇일까?

 


<음란서생>(감독 김대우)은 257만6022명(이하 한국영화연감 기준), <추격자>(〃 나홍진)는 507만1619명, <작전>(〃 이호재)은 153만4407명, <혈투>(〃 박훈정)는 4만3947명이 관람했다. <늑대소년>(〃 조성희)은 16일 오후 5시 현재 701만2145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관람했다. 한국영화 역대 흥행순위 16위에 올라 있다. <추격자>는 32위이다.

-<늑대소년>을 처음에는 얼마나 기대했나.
“손익분기점이 200만 명 정도이다. 1차 바람은 200만 명을 넘는 거였고, 나아가 500만 명 넘기기를 희망했는데 그 이상이어서 감개무량하다. 이 자리를 빌어 관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인터넷에 올라왔는데 한 여성 관객은 45번을 봤다. 관람 티켓을 찍어 공개했다. 개봉(10월 31일)후 한 달쯤이니까 하루에 두 번도 본 거다. 이처럼 여러 번 봤다는 분들이 많다. 처음에는 20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30~50대 주부들이 가세했다. 남성들도 많아졌고. 전체 성비는 6 대 4로 여성이 많다.”

-흥행 요인을 요약한다면.
“카피 문구가 ‘세상에 없는 사랑’이다. 관객들이 꿈꾸는 사랑, 영원한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인스턴트 사랑이 넘쳐나는 시대여서 관객들은 평생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철수’(송중기)의 일편단심에 감동하고 대리만족도 느끼는 게 가장 크다고 본다. 멜로에 판타지와 액션을 가미, 독창적이고 따뜻하고 재미있는 영화로 여러 층의 관객에게 공감을 얻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늑대소년>은 철수와 순이의 러브스토리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떠올리게 한다. 철수는 변종 인간이다. 한국전쟁 후 강한 인간을 만들려는 국군의 실험 중 부작용으로 태어났다. 그는 몸이 아파 시골로 이사온 문학소녀 ‘순이’(박보영)에 의해 세상에 나온다. 순이와 철수는 가족 혹은 친구 관계에서 가르침을 주고받는 사이로, 그리고 남녀 관계에 이른다. 순이의 “기다려”라는 한 마디에 철수는 평생을 기다린다.

-언제 기획했나.
“조성희 감독(33)이 영화학교 재학 당시 쓴 장편 트리트먼트(시나리오와 시놉시스의 중간 단계)에서 출발했다. 할리우드 영화 속 늑대인간의 이야기와 다른 판타지 멜로 드라마로 멜로영화의 확장을 꾀했다. 작업 과정에 한국적인 요소를 넣었다. 6·25, 전쟁고아, 낯선 아이를 집에 데려와 먹여주고 재워주고 목욕도 시켜주는 인심 등이다. 조 감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에 중점을 두고 보다 넓고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조 감독은 서울대 산업디자인과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25기)했다. 첫 단편 <남매의 집>(2009)으로 칸국제영화제 학생 단편 경쟁 ‘시네파운데이션’ 부문 3등상, 미쟝센단편영화제 대상 등을 수상했다. 중편 <짐승의 끝>(2010)으로 밴쿠버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등에 초청받았다. <늑대소년>은 그의 장편 데뷔작이다.

-<남매의 집>을 보고 손을 잡은 건가.
“대단한 연출적 재능을 읽었다. 특히 대사나 장면 사이 침묵과 정적을 잘 활용하는 독창성이 눈에 띄었다.”

 

-김대우 감독도 <음란서생>으로 데뷔했다.
“김 감독은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할 때부터 알고 지냈다. 2004년 11월에 귀국, 영화사 비단길을 차렸을 때에는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2003) 등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는 유명 작가였다. <음란서생>은 김 감독이 <스캔들> 전에 구상한 작품이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음란소설을 쓰면서 맞는 행복과 역경을 그렸다. 사극인데 댓글·동영상·폐인 등 현대의 낱말을 접목했다. 시대를 교차했을 때 발생하는 재미와 의미 등 내가 만들고 싶은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영화여서 창립작으로 선택했다.”

 

-<추격자>도 나홍진 감독의 데뷔작이다.
“<추격자>는 모든 투자사로부터 외면받았던 작품이다. 전직이 형사인 출장안마소 사장과 연쇄살인마가 주인공이고, 90% 정도가 밤 장면인데 그중 절반 이상은 비가 오고, 신인 감독에 연기력은 뛰어나지만 톱스타가 아닌 배우…. 투자사의 구미에 맞는 조건이 없었던 거다. 하지만 한 여자를 구하기 위해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잡는 플롯이 새롭고 좋았다. 긴장감이 관객들은 여자가 어디 있는 줄 알지만 주인공은 모르는 데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당시엔 스릴러 장르에 대한 산업적 이해도나 시장에 대한 예상 자체가 없었고 투자환경은 아주 좋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 고민하고 노력한 것이 더 완성도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됐다. 감독과 의논해서 시나리오를 1년 넘게 30번 이상 수정했고 신생투자사를 만나 제작에 들어간 뒤 추가된 비용은 제작사가 책임지고 완성했다. 다행히 5백만이 넘는 관객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고 이후 충무로에 스릴러 붐이 일고 안정된 스릴러 시장이 형성된 게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전>과 <혈투>는 성적이 미흡했다.
“<작전>은 본전을 넘겼다. 개봉했을 때 주식시장이 곤두박질을 쳐 영화 외적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혈투>는 <악마를 보았다>(감독 김지운) <부당거래>(〃 류승완)를 쓴 박 감독의 연출 데뷔작인데 내·외부적으로 문제가 좀 많았다. 결과도 안 좋아 못내 안타까웠다.”

김 대표는 1985년 이화여대 독문과에 입학,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영화 동아리(누에)를 만들어 8·16㎜ 영화를 만들었다. 여성문제를 다룬 페이퍼 다큐멘터리로 1000만원 상당을 벌기도 했다. 89년 졸업, 하명중영화제작소에 입사해 기획·제작·홍보·극장업무 등을 두루 익혔다. 2년 뒤 영화사(영화센터)를 설립해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이석기) <꽃잎>(〃 장선우) 등을 기획했고 외화 <퐁네프의 연인들> <레옹> 등을 수입했다. 외화 수익금을 고스란히 사기를 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99년 전셋집을 처분해 미국영화연구소(AFI)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재학 중 <다이하드> <매트릭스>로 유명한 워너브라더스의 자회사(조엘실버 프로덕션)에서 4개월여 인턴을 했고, 졸업 후 워너브라더스 본사에서 1년 6개월 동안 공동 제작 및 판권 구매 업무를 봤다.

-미국 유학·근무 때 배운 첫 번째를 꼽는다면.
“영화적인 이야기를 완결하는 거다. 재능있는 감독을 찾고 함께 일하는 방법이다. 관객들은 늘 새로운 이야기를 원한다. 새롭고, 내가 보고 싶고, 감독이 만들고 싶은 영화가 의도한 대로 나오도록 물심 양면으로 돕는 게 제작자의 역할이다.”

-여성 제작자로 힘든 점은.
“여자여서 딱히 힘든 점은 없다. 제작자들 모두가 겪는 기본적인 고난을 극복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한다. 완성도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끈기와 집념을 갖고 노력하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갈수록 제작자의 입지나 역할이 영화산업 시스템과 투자환경의 변화로 인해 점점 축소되고 경시되는 현상들이 있어 더 어렵다.”

비단길은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를 한글로 옮긴 것이다. 김 대표가 만들고 싶은 영화, 가고 싶은 길을 뜻한다. 김 대표는 “기획·제작자로서 오랫동안 좋은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는 게 꿈”이라고 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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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관 감독(41)은 ‘올해의 감독’ 가운데 한 명이다. 서영주·이정현 주연 영화 <범죄소년>의 각본·연출을 맡아 토론토·도쿄·부산·우디네이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받았다. 도쿄에서는 심사위원특별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지난달 22일 개봉, 인권영화로는 드물게 1만 명이 넘게 본 가운데 6일부터는 온라인 상영도 시작했다. 강이관 감독과 <범죄소년> 및 ‘범죄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범죄소년’은 14세 이상 19세 미만으로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자를 말한다. 이들은 형사책임을 진다. 영화 <범죄소년>은 이를테면 강이관 감독의 해피엔딩 <피에타>다. 범죄소년(서영주)에게 어느날 죽은 줄 알았던 엄마(이정현)가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가짜 모자(母子)의 자살에 구하는 자비 못지않게 가진 것 없는 진짜 모자의 새로운 동행에 햇살이 가득하기를 기원하게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강이관 감독의 영화사 남원이 함께 만들었다. 강 감독은 <범죄소년>에 대해 ‘철없는 엄마와 조숙한 아들의 사랑 만들기’라고 소개했다.

 


-범죄소년 이야기를 택한 동기는.
“평소 청소년 문제, 특히 중학생에게 관심이 많았다. 청소년 문제는 상업영화로 만드는 게 힘들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연출 제안을 받고 물어보니 그간 공개된 작품 중 재소자·노인 문제를 다룬 영화가 없었다. 그래서 청소년 재소자, 범죄소년을 선택했다.”

-시나리오 작업은 얼마나 했나.
“시나리오 작업에 앞서 5개월간 국가인권위와 법무부의 도움을 받아 전국의 소년원, 보호관찰소, 청소년 쉼터 등을 찾아 자료 조사를 했다. 자료 조사 후반부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 3개월 만에 완성했다. 연출 제안을 받은 건 작년 4월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예산 문제로 늦어도 12월 중으로 촬영을 시작해야 했고 그래서 자료 조사와 시나리오 작업에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작년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장편 극영화를 1년 만에 만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고, 영화사도 만들어야 했고, 연출 외 돈 문제까지 신경써야 해 여러모로 힘들었다.”

강이관 감독은 고려대 사회학과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했다. 데뷔작 <사과>(2008)로 제3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 제53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신인각본상을 받았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8번째 영화 <시선 너머> 중 탈북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이빨 두 개>를 연출했다.

 

-자료 조사 때 실상이 어땠는지.
“80% 이상이 가정 환경이 안 좋은 학생들이었다.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사이가 안 좋거나, 한부모 가정 아이였다. 그리고 뉴스에 나오는 어른 같은 범죄를 지은 아이들은 일부였다. 단순 절도나 폭행으로 들어온 아이들이 70%였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관심을 받지 못하면서 절도·폭행을 반복한 거다. 개인의 잘못에 앞서 구조적인 탓이 컸다. 어른들이 그들을 만들고 사회는 그들을 사회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는 거다. <범죄소년>을 만들기로 한 출발점이 거기에 있다.”

영화 속의 법원·경찰서·유치장·보호관찰소·소년원 등은 모두 실제다. 배경으로 흐릿하게 나오는 아이들은 실제 소년원생들이다.

-중학생 아들과 30대 미혼모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한 쉼터에서 가출한 아이들이 역할극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노는 걸 봤다. 저희들끼리 엄마·아빠 역할을 하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내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때 한 소년과 젊은 엄마를 떠올렸다.”

-중학생 배우는 공모를 했다.
“우리나라에 초등학생과 고교생 배우는 많다. 중학생 때는 공부를 하느라 활동하는 이들이 적다. 배우 에이전시를 통해 적임자를 찾다가 포기하고 서울·경기 지역 중학교에 공문을 보내고 공고도 내 공개 오디션을 봤다. 서류 심사-면접-토론회를 가졌다. 면접 때 연기력과 장기를 심사, 20명을 뽑았다. 토론회 때 역할 바꾸기와 주제 토론을 갖고 서영주(15) 등 청소년 배우들을 뽑았다.”

6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서영주는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에서 어린 김윤석 역할을 맡았다. 이에 앞서 영화 <살인의 강> <쌍화점>, TV드라마 <메이퀸> <패션왕> <계백> 등에 출연했다. <범죄소년>에 ‘지구’로 출연, 제25회 도쿄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엄마 ‘효승’ 역은 이정현이 맡았다.
“극중 엄마는 17살, 여고생 때 아이를 낳은 미혼모다. 엄마 같지 않은 엄마다. 30대 초반의,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결혼하지 않은, 연기의 폭이 넓은 배우를 찾았다.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 부문 황금곰상 수상작 <파란만장>(감독 박찬욱·박찬경)을 봤을 때 이정현이 인상적이었다. <꽃잎>의 소녀만큼 돋보였다. 가수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이정현이면 충분히 소화해 줄 같았다. 배역이 미혼모여서 선뜻 응하지 않았는데 몇 차례 대화 이후 개런티도 받지 않고(재능 기부) 출연해 줬다. 장석용·강래원 등 배우들과 스태프들, 재능 기부로 참여해 준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지구는 실제 인물을 기초로 했나.
“인물과 드라마 모두 취재한 내용에 상상력을 덧붙인 거다. 지구의 경우 어렸을 때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본 적이 없다. 병든 외할아버지와 살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여자친구이다. 빈집 절도 사건에 휘말리고 돌봐줄 어른이 없어 소년원에 들어간다. 복역 중 외할아버지가 사망하고, 세상에서 완전히 버려졌다고 느꼈을 때 죽은 줄 알고 지낸 엄마를 만나게 된다.”

-엄마 캐릭터가 영화의 재미와 의미를 한층 더해준다.
“엄마는 조숙한 아들에 비해 다소 철 없어 보이는 인물이다. 모정은 절절한데 표정은 천진난만하다. 효승은 극중에 나오듯 17살에 놀러갔다가 덜컥 임신했다. 가출한 뒤 온갖 세파를 겪었다. 위기를 거짓말과 애교로 넘기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13년 만에 만나게 된 아들과 잘 살아보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다. 아들의 여자친구가 임신했었다는 데 분개하고 절망한다. 아들에게서 아들의 아빠를, 자신의 과거를 본 거다. 하지만 효승은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일어선다. 서로가 과거와 현재를 공유, 모자 간에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이뤄진 거다. 부동산 중개소 앞에서 얘기를 하는 효승의 미소와 햇살은 모자의 삶에 드리우는 희망을 말한다.”

-보호관찰소에서 가진 시사회 때 실제 인물들 반응은 어땠나.
“영화 만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찰소 관계자가 여태까지 한 시사회 중 아이들의 집중도가 가장 높았다고 하더라. 관객과의 대화 때 ‘내 상황과 맞는 부분이 많아 공감했다. 주인공들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재미있게 봤다. 의미있는 영화다. 나가면 잘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받았다…’고들 하더라. 국제영화제 관계자·관객들 평가나 개봉 이후 극장 관객들 반응도 다르지 않다.”

제작 당시 여건이 너무 안 좋아 강이관 감독은 과연 완성할 수 있을는지 걱정했다. 다 만든 다음에는 개봉할 수 있게 되기를 고대했다. 개봉한 지 2주가 지난 요즘 바람은 두 가지다. 완성하게, 개봉하게 해달라고 했던 당시보다 더 간절한 바람이다.

“좀더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해요. 범죄소년과 미혼모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이라도 불식돼 그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배려심을 갖게 되었으면, 나아가 재능 기부로 참여해 주신 배우·스태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을 할 수 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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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현 감독(44)의 영화 <26년>이 오는 29일부터 관객과 만난다. ‘액션복수극’을 표방한 이 영화는 1980년 5월 18일에 일어난 광주민주화운동 26년 뒤의 가상 사건을 극화했다. 조 감독은 2008년 첫 기획 당시 미술감독을 맡기로 했다. 올해 초 각색·연출을 맡아 감독으로 데뷔했다. 지난 여름 “배우·스태프들과 함께 이름모를 수많은 이들의 염원을 담아 모든 것을 걸었다”는 조근현 감독과 <26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전쟁(6·25)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2012년 현재 4122명)를 냈다. 영화 <26년>은 비감한 액션영화다. 지난 26년간 그날의 악몽을 잊을 수 없는 이들이 펼치는 학살의 주범 단죄 작전을 그렸다. 그날 이후 그들이 쓰고 싶은 오늘의 역사는 그날만큼 뜨겁고 그리고 비극적이다. 진구·한혜진·임슬옹·배수빈·이경영·장광 등이 주요 배역을 맡았다.

-미술감독인데 각색·연출을 맡았다.
“미술감독 출신 영화감독이 더러 있다. 앨프리드 히치콕·제임스 카메론·리들리 스콧·팀 버튼 등이 대표적이다. <걸스카우트>(2008) <심야의 FM>(2010) 등을 연출한 김상만 감독도 미술감독 출신이다.”

조근현 감독은 서울대 서양화과 출신으로 <장화, 홍련>(2003)으로 대한민국 영화대상, <형사Duelist>(2005)로 청룡영화상 미술상을 받았다. <음란서생>(2006)으로 대한민국 영화대상·청룡영화상·한국영화평론가상 미술상을 수상했다. 미술감독을 맡은 최근작으로는 <후궁: 제왕의 첩>(2012) <마이웨이>(2011) 등이 있다.

 

-연출을 맡은 경위는.
“널리 알려졌듯이 이 영화는 2008년에 크랭크인을 앞두고 (외압으로 추정되는) 투자자들의 변심으로 무산됐던 작품이다. 당시 이해영 감독이 연출이었고 나는 미술감독이었다. 영화 미술은 제작비하고 밀접한 관계에 있다. 지난 2월, 제작사(영화사 청어람)에서 예산을 줄여 다시 만드려고 할 때 미술적 아이디어를 냈다. 그 일환으로 시나리오를 수정하다가 아예 각색을 한 게 연출을 맡은 계기가 됐다.”

-연출 제안을 받은 건 언제인가.
“4월에 받았다. 각색한 걸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가 읽고 혹시 시나리오 쓴 게 있느냐고 해서 예전에 써놓은 세 편 가운데 한 편을 보여드렸다. 며칠 뒤 연출을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틀을 고민하다가 결심했다.”

 

-왜 망설였나.
“나는 연출 쪽에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이 아니다. 언제든 전력투구할 만한 기질과 풍부한 경험을 지녔지만 원체 유명한 작품이어서 부담이 됐다. 그런데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아니, 누군가는 해야 했다. <26년>은 감독의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 연출자는 원작에서 시작된 수많은 사람들의 숙원과 갈등 등을 슬기롭게 헤아려 배치하고 혼합하여 관객과 소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제한된 비용과 시간,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 점에 내가 장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제작두레를 포함하여 위에 열거한 입장들의 ‘관심’을 넘어선 ‘기대’가 최대의 부담이었다. ‘사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조차 없다면 이 사회가 건강하지 못한 게 아니겠느냐’는 최 대표의 말에 단안을 내렸다.”

 

-원작은 얼마나 봤나.
“나에겐 원작이 두 개 있다. 하나는 강풀의 동명 웹툰이고, 또 하나는 이해영 감독의 시나리오다. 웹툰은 딱 한 번 봤다. 미술감독 때에는 안 봤다. 미술감독을 했다면 끝까지 안 봤을 것이다. 나는 미술적인 창작을 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예전 시나리오는 지금 작품보다 훨씬 상업적이다. 예산을 줄이면서 불거리를 빼야 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웹툰에서 가져올 만한 것을 찾았다. 면면히 흐르는 비장미가 대단했고 각 캐릭터의 끝없는 애정을 보았다. 그 걸 가져왔다.”

-각색·연출 작업 때 어디에 주안점을 뒀는지.
“조폭 ‘곽진배’(진구), 사격선수 ‘심미진’(한혜진), 경찰 ‘권정혁’(임슬옹), 사설 경호업체 실장 ‘김주안’(배수빈)의 역할과 비중을 고루 살려 배치하려고 노력했다. 이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를 상징한다. 당시 계엄군이었던 대기업 총수 ‘김갑세’(이경영)도, 심지어 ‘그 사람’(장광)의 충복 ‘마상열’(조덕제)도 피해자다.”

-김갑세는 끝까지 그 사람에게 사과를 받으려고 한다.
“죽이면 사과를 받을 수 없다. 그 사람이 죽기 전에 국민 앞에 사과를 했으면 한다.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않는 한 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픔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영화니까 상상으로라도 ‘그 사람을 죽였으면 어떨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상상을 한 번은 했을 것이다. 그 사람이 큰 절을 받는 연회장에서 김갑세가 총을 쏘는 장면을 찍기는 했다. 시나리오에 없었지만 CG로 마무리도 했다. 그런데 편집하면서 전후 장면과 도무지 맞물리지 않아 제외했다. 곽진배가 죽일 수 있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그때 진배는 수갑을 차고 있고 총도 맞은 상태여서 불가능하다. 게다가 사람이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그게 쉬울까?”

-촬영 당시 현지 분위기는 어땠나.
“2009년 미술 작업을 위해 광주에 갔을 때에는 ‘죽여요? 못죽여요?’ 하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못 죽인다’고 하면 ‘쓸데 없는 짓 한다’고, ‘잘못하면 우리를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했다. 협조는 커녕 푸대접 받았다. 그런데 올해에는 완전히 달랐다. 통제에 한마디 불평 않고 자비로 생수며 부식을 사다 주고 간 분도 있다. 대전에서 사흘간 대로를 통으로 막고 찍을 때에도 시민들의 전폭적인 협조 아래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광주민주화운동 장면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각색 작업을 시작한 뒤에 결정했다. 사실 처음에 원작자의 웹툰을 쓰는 것도 고려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 등으로 유명한 (주)오돌또기의 오성윤 감독이 고맙게도 투자 형식으로 참여해 주었다. 사실 애니메이션은 실사를 찍는 것보다 시간과 돈이 더 드는 작업인데 심혈을 기울여 취지와 효과가 백분 살아있는 작품을 만들어주었다.”

-김주안이 ‘살아도 살 수 없다’고 하는 대사·장면 등이 인상적이다.
“영화의 주옥 같은 대사는 강풀의 원작과 이해영 감독의 시나리오에서 가져 온 것이 일부 있다. 나이트클럽 사장(안석환)이 교도소에서 곽진배에게 ‘그거슬 생각조차 못한 나는 여 들어와 있어도 싸다’면서 ‘여태꺼정 아무 생각 없이 금남로를 싸댕긴 거시 죄스럽고 인생 쪽팔린다’고 하고, 권정혁이 ‘어른이, 경찰이 돼서도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하고, 김갑세가 전직 대통령인 ‘그 사람’에게 ‘다치셨네요. 발가락. 거기다가 밴드를 감으셨네. 그거 아프다고’ 비웃는 장면이 인상적이라고 꼽는 이들이 많다.”

<26년>이 완성되는 데에는 ‘제작두레’ 방식을 도입한 게 큰 도움이 됐다. 제작두레에 가입한 회원은 1만5000여 명으로 모금된 금액은 7억여원에 이른다. 이는 세계적인 소셜 펀딩 사이트(kickstarter)에서 찰리 카우프만의 최신 프로젝트가 약정받은 금액(약 4억5천만원)보다 훨씬 많다. 조근현 감독은 “대기업 자본 없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모범 사례”라며 “관객과의 만남에서도 폭넓은 의미와 보람을 얻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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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가 더 중요해.” 배우 이경영(51)이 인터뷰 때 남긴 글이다. 이 말은 영화 <남영동1985>에서 이경영이 맡은 고문 기술자 ‘이두한’의 대사 가운데 하나다. 이경영이 다시 영화 전면에 나서면서 한 다짐이기도 하다. 이경영에게 <남영동1985> 출연기와 후일담을 들었다.

 


1985년 9월,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15호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다. ‘인간도살장’으로 통했던 그곳에서 22일간 모진 고문을 받았고, 훗날 자전적 수기 <남영동>을 남겼다. 영화 <남영동1985>(감독 정지영)는 잔혹한 휴먼드라마다. 혹독한 고문 장면으로 관객을 고문하는, 야만성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 절감하게 하는 영화다. 이경영은 일명 ‘장의사’로 불리는 고문 기술자 ‘이두한’으로 출연했다. 이두한과 그 일행의 갖은 고문에 견디다 못해 거짓 자백을 하는 민주화 운동가 ‘김종태’는 박원상이 맡았다. 명계남·김의성·서동수·이천희·김중기·문성근·우희진 등이 함께했다.

 

-<남영동1985> 이야기를 들은 게 언제인가.
“감독님의 전작 <부러진 화살>(개봉 1월 18일)이 한창 상영 중일 때다. 감독님이 다음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하러 지방에 갔다고 하더라. 고문에 관한 영화고, 김근태님의 <남영동>이 원작이고, 가제가 <야만의 시대>라고 들었다.”

이경영은 그때 ‘감독님이 왜 그렇게 서두르지? <부러진 화살>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잘 마무리를 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에너지가 용솟음칠 때 하려고 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하얀 전쟁>(1992)부터 <부러진 화살>(2012)까지 정 감독의 영화 네 편에 출연한, 정 감독과 인연이 남다른 이경영은 ‘고문관 역은 아니었으면…’ 했지만 어긋나지 않았다.

-출연 제안은 언제 받았나.
“2월 말에 감독님이 소주 한잔 하자고 하더라. 그때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반갑지 않았다는 뜻인가.
“아니다, 배우라면 도전해 보고 싶은 역이지만 두려웠다. 잘 해낼 수 있을지. 언젠가 술자리에서 (박)원상이가 형이 김종태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하더라. 자신은 김근태님과 외모가 너무 다르다면서. 펄쩍 뛰었다. 네가 <부러진 화살>에서 정의로운 변호사를 했으니까 더 어울리고, 언제 ‘민주화의 대부’ 역을 해보겠느냐고. 나는 술을 좋아하고 다이어트를 할 자신이 도무지 없다는 말도 했다.”

또 하나, 촬영 일정이 문제였다. 이경영은 <베를린>(감독 류승완) 촬영을 위해 5월 초에, <남영동1985>를 한창 찍을 시기에 출국해야 했다. 이 때문에 이경영이 고민이 많다고, 출연을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 정 감독에게 전해졌다.

-실제로 못할 수도 있었는지.
“크게 다친다거나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모를까, 못한다거나 안한다고 한 적이 없다. 와전된 말을 듣고 감독님이 ‘메일 보냈으니까 빨리 열어보라’는 문자를 보내셨다. ‘못한다는 말 듣고 마음이 무거웠다’며 내가 해야 할 세 가지 이유가 적혀 있었다. ‘이 영화로 온전한 복귀를 했으면 좋겠다’ ‘가치 있는 영화다’ 등. ‘오해하셨어요, 안한다고 한 적 없습니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그래, 고맙다’는 문자와 하트(♡)가 왔다. 가슴이 짠했다.”

-성매매 스캔들은 어떻게 종결됐나.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고, 그 친구한테 사과도 받았다. 어쨌든 가족과 선후배 동료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어 10년 가까운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 인터뷰와 <남영동1985>를 통해 미디어·관객과 다시 친숙해졌으면 한다.”

-촬영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했나.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했다. 감독님은 내가 출국하기 전에 다 찍자면서 불가능하면 내 장면을 우선 찍겠다고 하셨다. 그럴 수 없었다. 나 때문에 다른 배우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되니까,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어야 집중력과 사실성을 높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베를린에 가지 않겠다고 하자 감독님이 반대하셨다. 먼저 선택한 작품을 안하는 건, 후배의 작품에 피해를 주는 건 도의가 아니라면서.”

-출국 전에 다 찍었는지.
“다 못찍었다. 김종태에게 자백받은 게 물거품이 돼 자존심이 몹시 상한 이두한의 심경이 크게 바뀌는 장면은 귀국한 뒤에 찍었다. 처음에는 목소리 톤이 좀 높았는데 무게감이 떨어져 보여 감독님 지시대로 표정은 예전과 그리 변함없이, 감정은 격렬하게 드러냈다. 그것이 더 무서워 보였다.”

-고문하고 고문받는 장면이 끔찍하다.
“실제나 다름없는 상황이어서 고문 강도가 세질수록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매일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고, 씻지 않고 곯아떨어지는 날이 많았다. 감독님은 더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두 고통을 동시에 받고 있으니까 우리보다 몇 배나 더 힘들었던 거다. 감독님은 시사회 후 관객들께 꼭 말하신다. ‘여러분은 1시간50분 동안 힘들었지만 배우들은 두 달 동안 힘들었고, 실제 고문 피해자들은 평생 힘들다’고. 이 영화의 의미가 바로 거기에 있다. 끔찍한 현장을 고발, 다시는 힘든 시대를 맞지 말자는 데 있다.”

-사고 방지가 관건이었겠다.
“집단최면에 걸린 듯 결속력이 응집돼 사고 없이 마칠 수 있었다. 촬영을 오래 하다보면 긴장감이 떨어지고는 하는데 다행히 잘 유지했다.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에는 (명)계남이 형이 농담으로 긴장감을 덜게 해 줬다. 그나마 우리는 먹을 거 다 먹으면서 찍었는데 원상이는 안먹거나 주먹 만큼만 먹었다. 안쓰럽고 미안했지만 외면했다. 극중 인물처럼 약을 올리기도 했다. 원상이가 우리를 정말 미워하는 것 같았다.”

고춧가루물로 하는 고문, 물 고문 등은 실제로 했다. 박원상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표시를 할 때까지 했다. 전기고문은 약한 전류로 맛보기를 시도한 다음에 했다.

-시사회 때 “죄송하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눈물만 계속 났다. 객석의 울음소리, 엔딩 크레디트에 나오는 분들의 고문 체험담이 뒤엉켜 귓가에 웅웅거리고 가슴에 먹먹한 게 밀려왔다. 김근태님과 엔딩 크레디트에 나온 분들에게 죄송했다. 우리는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분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남영동1985> 같은 영화가 또 제작되는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실제 인물이 진정 사죄했다고 보나.
“그 장면 촬영을 앞두고 좀 헷갈렸다. 진심인지 아닌지. 감독님이 이 순간만큼은 진심이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연기하면서 진심과 함께 모호성도 담았다. 실제 인물이 어디에서든 꼭 보고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빌었으면 한다. 그리고 젊은 관객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고마움을 느꼈으면 한다. 1985년생, 85학번 등 1985컨셉트 시사회 때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1985년 당시 뭐했나.
“한대 연영과 1학년이었다. 제대하고 입학했는데 데모할 때 뒤에서 돌 던지고 운동권 친구들과 막걸리 마시면서 토론을 하고는 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회색분자였다. 시대상황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런 시대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투쟁에 앞장서지 않았으니까.”

<남영동1985>에 ‘전두환 정권의 개’로 등장한 이경영은 29일 개봉되는 영화 <26년>(감독 조근현)에는 전두환 응징 작전을 주도하는 인물로 나온다. <베를린>을 비롯해 <소수의견>(감독 김성제) <화이>(감독 장준환) <군도>(감독 윤종빈) 등을 통해 이제부터가 중요한, 제2의 배우 인생 초반기를 펼쳐가려 한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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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창진 2012.11.26 09: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금요이 영통 CGV에 가족들 모두 데리고 강요하다시피 해서 데려 갔습니다.
    보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봐야하는 영화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우리의 이웃이 이렇게 처참히 인권이 유린되는데..
    성장이라는 미명하에.. 빨갱이라는 누명을 씌워 이리도 잔인하게 했을까요..
    군부의 독재야욕에 희생된 많은 시민들의 고통을 많이 알릴 수 있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정지영 감독님과 고생하신 박원상님 그리고 그 외의
    많은 연기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런 감독님들과 연기자분들이 살아 있는 한국영화.. 정말이지 사랑합니다.

  2. 이현민 2012.11.26 1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출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그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보는 내내 힘들었지만
    이런 영화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3. 천사 2012.11.26 17: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작 그당시의 정권에 상황을 고려하여 생각들 해보고
    이런영화 만들시간에 그러면 민주투사는 정작 김재규다 박정희 대통령님을 죽였으니 그런영화나 만들어라
    쓸때없는것으로 사람들 혼돈하게 만들지 말고 그떄의 역사와 사회 현실을 생각 하면 만들어야지 그럼그때있던 판사나 군인들은 모두 역적인감 도대채 진실을 너무 매도해 나쁜넘들

  4. 엿머거 2012.11.27 16: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청소년매매 더러운 시키 제2 영화인은 무신 발찌나차라

  5. 최장윤 2012.11.28 1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 이두한의 휘바람소리 환청때문에
    잠을 못듭니다.
    죽이고 싶도록 미웠습니다.
    그래서 참 고맙습니다.
    만년 조연으로만 생각했던 박원상님의 연기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감독님 이경영 박원상 명계남 문성근...
    모두 고맙습니다.
    참 좋은 영화였습니다.

  6. 아나키스트 2013.01.03 05: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영동 영화는 이경영 때문에 안봤습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 2000년대의 표현의 자유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분들이 희생을 했고 또 아직도 휴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는지 잘알고 있지요..
    하필...언제 해명했는지는 모르지만 미성년 성매매 혐의로 활동중단 했다 복귀한 이경영씨가 출연했군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면..과연 도덕적으로 잘못된 짓을 하고도 버젓이 영화에 출현해도 되는지 그게 더 어불상설 같습니다. 전 앞으로도 그가 출연하는 작품은 다 안볼 생각입니다.

배우 권현상(31)과 남보라(22)가 영화 <돈 크라이 마미>(감독 김용한)에서 함께했다. <돈 크라이 마미>는 청소년 성폭력 사건을 다룬, 실화를 근간으로 한 픽션이다. 권현상은 가해자 ‘박준’, 남보라는 피해자 ‘유은아’ 역을 맡아 유선·유오성·동호·이상민 등과 호흡을 맞췄다. 권현상·남보라와 함께 <돈 크라이 마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검찰청 2009년 집계에 따르면 성폭행 사건이 하루 44.3건, 시간당 1.8건 발생했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대부분 무죄, 또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돈 크라이 마미>에서 세 청소년 폭행범 가운데 두 명은 증거불충분 등으로 무죄를 선고받는다. ‘박준’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1년 6개월을 받는다. 이에 앞서 잇단 성폭행에 시달리던 ‘유은아’는 생일에 목숨을 끊는다. 엄마(유선)에게 ‘Don’t Cry Mommy’가 새겨진 케이크를 남기고. 엄마는 개전의 의지가 없는 박준 등을 직접 응징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다.

-시나리오를 읽고 어땠나.
권현상= 어찌나 가슴이 울렁거리고 심장박동이 가빠지는지 단숨에 읽을 수 없었어요. 픽션이지만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어서 눈을 감고 가슴을 진정시켜 가면서 읽었어요. 가해자 역할이어서 특히 그랬던 것 같아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치를 떤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남보라=전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은아 입장과, 딸보다 더 고통스러운 엄마 생각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두 모녀가 너무나 안타깝고, 이런 모녀가 단지 영화속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사회에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어요.

 

-배역을 맡는 게 꺼려지지 않았는지.
권현상=주변 반대가 좀 셌어요. 박준이 은아를 잇달아 강간하면서도 죄책감을 못 느끼는 ‘인간 쓰레기’거든요.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 <혼> 등 그간의 작품에서 악역을 많이 했는데 이번 역할이 가장 세요. 악역 이미지가 고착될까봐 우려하는 주변 반대 때문에 고민하던 중 결심했죠. ‘나는 배우다, 이제 4년밖에 안된 배우다. 변신기회는 앞으로 있을 것이다. 지금은 구제불능인 박준이 되자. 그게 배우다….’ 그렇게 마음먹고 달려들었어요.

남보라=초고를 오래 전에 받았어요. 영화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 TV드라마 <로드 넘버원>을 할 때에요. 그때부터 하고 싶었어요. 잘할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들었고. 완고(完稿)는 초고와 많이 달라요. 더욱 극적이고 구성도 세련됐어요. ‘하자, 잘 하자, 극한에 처하는 인물의 격한 감정을 실감나게 연기해서 은아 같은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된다는 영화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각인시키는 데 기여하자’고 다짐했죠.

김용한 감독은 <돈 크라이 마미> 초고를 2008년 후반기에 썼다. 2009년 상반기에 완고를 내고, 하반기에 캐스팅 작업에 들어갔다. 투자를 받는 게 차질을 빚으면서 2011년 3월에야 현재의 배우들로 출연진을 확정,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촬영을 했다.

 

-촬영은 순조로웠나.
권현상=그땐 정말 바빴어요. 드라마 <공주의 남자>, 영화 <도시의 풍년>과 촬영 일정이 우연찮게 겹치는 바람에. <공주의 남자>에서는 병약한 왕세자, <도시의 풍년>에서는 부지런한 공무원을 맡았어요. 세 작품 모두 캐릭터가 달라요. 하루에 세 작품을 모두 찍은 적도 있어요. 정말 신나고 재밌었죠. 부담도 됐지만 상호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느낌을 받았고 ‘연기가 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남보라=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무척 힘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힘들 줄이야, 요즘 말로 ‘멘붕’(멘탈 붕괴)이었어요. 두 달 정도 은아의 감정을 유지하면서 일상 생활에도 지장을 받고는 했어요.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예요.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벗어나려고, 잊어버리기 위해 온 종일 잔 적도 있어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고 우울증세가 나타나 심리 상담도 받았어요.

인터넷 등에 공개된 <돈 크라이 마미> 티저·메인 예고편, 열연 영상, 사건파일 영상 등을 보면 남보라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느낄 수 있다. 성폭행이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에게도 얼마나 깊은 상처와 아픔을 주는지 전해준다. <돈 크라이 마미>가 시사하는 의미를 실로 절감하게 한다.

-남보라(은아)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겠다.
권현상=촬영할 때 보라가 많이 울었는데 그때마다 측은하고 미안했어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고. 그래서 일부러 보라 옆에 잘 가지 않았고, 말도 잘 안걸었어요. 그게 보라가 감정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니까.

-권현상(박준)을 대할 때마다 오싹했겠다.
남보라=오빠들 덕분에 제가 더 극중에 몰입할 수 있었어요. 극중 상황은, 액션에 리액션이 착착 맞아 떨어질 때 잘 살아나잖아요. 오빠들은 카메라 앞에 있을 때와 바깥에 있을 때가 달랐어요. 그런 게 눈에 보일 때 자극을 받았어요.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처음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을 때 어땠나.
권현상=박준과 ‘윤조한’(동호) ‘한민구’(이상민) 등은 정상적인 10대가 아니에요. 교복을 입은 파렴치한이에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딘가에 있을 인물이죠. 그들이 영화를 보면 엄청 찔릴 거에요. 거울을 보는 것 같을수록 그들은 반성하게 될 겁니다. 그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봐 못보게 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봐요.

남보라=종종 뉴스로 접하듯 <돈 크라이 마미> 이야기는 단순한 픽션이 아니에요. 극중의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실제로도 적지 않다고 봐요. 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들이 영화를 보면 느끼는 게 많을 거에요. 반성하고 경각심을 가질 겁니다. <돈 크라이 마미>를 만든 이유가 그런 데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권현상은 임권택 감독의 둘째 아들이다. 임 감독이 배우가 되는 걸 반대, 단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에도 쇼핑몰 사업 등을 했다. 그런 중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의 후광을 입지 않고 홀로 서기 위해 예명을 짓고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스물여덟 살에 영화 <고사: 피의 중간고사>(2008)로 데뷔했다. 올해 <돈 크라이 마미>에 앞서 MBC 드라마 <더 킹 투 하츠>, OCN 드라마 <뱀파이어 검사2>, 영화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등에 나왔다. <강철대오>에서는 미문화원을 점거한 운동권 대학생 리더 ‘남정’으로 출연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남보라는 동덕여대 방송연예학과를 졸업했다. 배우로 데뷔하기 전 MBC <우리들의 일밤-천사들의 합창>과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서 13남매의 맏딸로 주목받았다. KBS 시트콤 <웃는 얼굴로 돌아보라>로 데뷔, 영화 <악마를 보았다>와 tvN 시트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생초리> 등을 거쳐 영화 <써니> <하울링> <무서운 이야기>,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성폭행은 육체적 상흔을 넘어 영혼을 살해한다. 권현상은 “악역은 좀 그만하고 싶다”고, 남보라는 “이제는 웃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둘 다 “작품이 좋으면 또 할 것”이라며 배우로서의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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