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훈 감독(42)이 ‘한국 단편문학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EBS의 박정민 PD(40)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안 감독과 박 PD는 우선 세 편을 완성, 오는 겨울에 개봉할 예정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 김유정의 <봄봄>,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 등이다. 편당 러닝타임은 30분 안팎이다. 세 편을 묶어 상영한다. 이어 1년에 세 편씩 완성할 계획이다. 황순원의 <소나기> 등 고전을 위주로 하되 생존 작가의 작품도 소개할 계획이다. ‘한국 단편문학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으로 읽는 한국문학을 지향한다. 안 감독과 박 PD에게 한국 단편문학 애니메이션 만들기에 대해 들었다.

 

 

-원작에 충실하게 그리나.
“작품 고유의 언어와 감성을 살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작가가 원고지에 담아내고 싶었던 글 이전의 그림도 담는다. 사료와 고증을 통해 시대적 배경과 지역적 특성 등도 세밀하게, 정성스레 묘사하고 있다. 고전을 위주로 하면서 나중에는 생존 작가의 작품도 다룰 계획이다.”

-어떤 계기로 시작했는지.
“원래는 예순 살이 넘었을 때 성숙한 시선으로 담아내려고 했다. 지난해 경북 왜관의 한 산골 문화회관에서 <소중한 날의 꿈>을 상영한 뒤 계획을 앞당겼다. 장편 애니메이션을 큰 화면으로 보신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영화가 끝난 뒤 ‘손주들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네’ 하시더라. 그때 약속 드렸다. 앞으로 애니메이션을 적어도 몇 편을 더 보실 수 있도록 해드리겠다고. 생활에 쫓겨 읽지 못했던 우리 문학을 그분들께, 기성세대에게 들려드리고 싶다. 그리고 우리의 청소년에게 우리의 기억을 이어가게 하고 싶다. <메밀꽃 필 무렵>의 허생원과 동이, <봄봄>의 데릴사위, <운수 좋은 날>의 김 첨지 등을 통해 밥상에서 가족간에 토론과 대화가 이뤄지는 가교가 되었으면 한다.”

-해외 반응은 어떻게 보는가.
“우리 문학과 한글의 우수함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들의 창작활동에 원형이 되기를 바란다. 그림 맛으로 글 맛도 느끼게 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단편문학 애니메이션이 뿌리가 되었으면 한다. 글이 부딪히는 장벽을 애니메이션은 뛰어넘을 수 있다.”

-박 PD는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안 감독이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단편문학 애니메이션은 의미 있는 작업이고 돈도 벌 수 있는 프로젝트다. 지난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낌이 왔다. 안 감독의 스튜디오 상호 ‘연필로 명상하기’에 맞는 톤으로 제작하면 완성도와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고 본다. 투자 건을 논의하던 중 안 감독에게 첫 프로젝트 결과를 놓고 안정적으로 기획의도에 충실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보자고 했다.”

“박 PD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이번 작품은 연필로 명상하기와 EBS, 출판사 김영사가 함께 만든다. 다음 프로젝트는 훗날 논의하기로 했다. 방송국 PD와 철학을 공유하는 건 선례가 없다. 창작자에게 큰 힘이 된다. 박 PD는 <소중한 날의 꿈> 제작 막바지에 알았는데 엄상현 등 유명 성우분들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목소리 연기를 하도록 도와주었다.”

-박 PD는 직장 일과 겸직이 가능한가.
“회사에 방영을 전제로 투자 제안을 했을 때 선뜻 수용됐다. 의미 있는 작업이고 시청률과 수익성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총괄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것도. 이 일을 잘 하는 게 회사에도 도움이 된다.”

-제작비가 얼마나 드나.
“편당 2억5000만 원 정도이다. 편당 제작비가 TV 미니시리즈 한 회분보다 더 들고, 캐릭터 상품 판매나 단기간에 성과를 보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돈도 벌 수 있다고 본다. 극장은 물론 공동체상영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박 PD 전망은 어떤지.
“단편문학 애니는 시류를 타지 않는다. 극장·공동체상영의 단체관람 외 DVD 등 부가판권시장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일반 관객을 비롯해 학교·도서관·지자체 등이 소장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어서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공동체상영은 특정 단체 등의 요청에 따라 현지에서 영화를 보여주는 방식을 말한다. 독립영화가 보다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방안으로 손꼽힌다. 다큐멘터리 <우리학교>의 경우 제작사(스튜디오 느림보)에 따르면 국내외 공동체상영에서 2007년에만 약 10만 명이 관람(극장 관객은 3만4439명·한국영화연감 기준)했다.

-<소중한 날의 꿈>은 얼마나 했나.
“이제까지 60회 넘게 했다. 요즘도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오는 9~10월에는 그간의 기록을 정리해 자료로 삼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공동체상영은 만드는 사람의 태도를 바꾸게 해준다. 잘 만들면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걸 확인하게 해주고.”

 

<소중한 날의 꿈>은 안 감독이 동료이자 아내인 한혜진 감독 등과 함께 무려 11년에 걸쳐 완성했다. 운동회에서 2등을 한 뒤 육상을 포기한 ‘이랑’. 서울에서 전학온 세련되고 조숙한 ‘수민’, 엉뚱한 과학실험을 즐기는 ‘철수’ 등 청소년의 꿈과 성장통을 그렸다. 제작비는 18억 원. EBS 등의 투자를 받았고,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등의 지원을 받았다. 안 감독은 제작비가 떨어지면 애니메이션판 <겨울연가>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등의 외주작업을 했다. 완성한 뒤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첫 선을 보였다.

-극장 개봉이 힘들었다고 했다.
“부산에서 두루 호평을 받았지만 배급사가 나타나지 않아 애먹었다. 결국 <아따맘마> <명탐정 코난> 등 일본 애니를 수입한 에이원엔터테인먼트가 맡았다. 일본 애니를 수입한 곳에서 한국 애니를 도와줬다는 사실이 역설적이다.”

개봉은 지난해 6월 23일에 했다. 123개 스크린에서(이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3>가 개봉되면서 7일째에 41개, 8일째에는 18개로 줄고 말았다. 이후 예술영화전용관을 중심으로 상영됐다. 이 가운데 부산의 국도가람예술관에서는 1년 동안 장기상영을 했다. 이같은 사례는 <소중한 날의 꿈>이 처음이다. 국도가람예술관 측은 요즘 단체관람 신청을 받아 월 2~3회를 상영하고 있다. 이달 중순에는 상영 1주년 기념으로 감독판을 개봉할 예정이다.

안 감독의 스튜디오 ‘연필로 명상하기’에는 <소중한 날의 꿈>을 그리느라 짤막해진 연필 수백 자루를 모아 만든 액자가 있다. 안 감독은 “상영할 때 영화에 실제로 사용한 작화와 몽당 연필을 관객에게 선물로 드렸다”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돈이 떨어졌을 때가 아니라 우리 작업의 의미와 희망에 의문이 생길 때였다”고 했다.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단편문학 애니가 10년, 100년 이어지는 국민적·국가적 프로젝트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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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관객 1만 명은 상업영화 관객 100만 명에 해당하는 상징성을 지닌다. 정재은 감독(43)의 휴먼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 관객이 4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3월 8일 개봉, 지난달 30일까지 4만637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공동체상영 2015명 포함)이 관람했다. 정 감독과 <말하는 건축가> 제작과정 등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고 정기용(1945~2011) 건축가. <말하는 건축가>의 주인공이다. 고인은 서울대 응용미술학과와 대학원 공예과를 졸업했다. 1971년 프랑스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선발돼 파리 장식미술학교·제6대학·제8대학에서 실내건축·건축·도시계획을 전공했다. 1986년 귀국, 기용건축을 설립한 뒤 대한민국 공공건축사를 새로 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그는 자신의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평생을 월셋방에서 살았다. 가족·지인과 나무·바람·하늘·공기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말하는 건축가>는 그의 2년여 마지막 여정을 담고 있다.

-고인의 죽음을 예상했는지.
“선생님은 자신의 병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적이 없다. 나중에 사모님에게 자세히 듣고 실로 괴로웠다. 촬영한 지 6~7개월이 지난 2010년 초여름에 선생님이 건강이 너무 안 좋고, 더 나빠지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그만 찍자고 했다. 그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씀드리자 ‘그러면 됐다’면서 지리산 실상사 리모델링 하는 걸 찍자고 했다. 5년여 투병 중에 총 여섯 권의 책을 정리하셨고, 회사 일과 강의를 하시고, 다큐멘터리를 위해 일하고, 전시회를 치르고, 작품집도 정리 하고…. 그렇게 빨리 운명하실 줄 몰랐다.”

 

-마지막 봄나들이 장면이 압권이다.
“타계 1주일 전에 선생님이 앰뷸런스를 대절해 ‘기용건축’ 직원들과 함께 경기도 과천 아천동에 갔다. 급작스런 일이어서 촬영할 사람을 구할 시간이 없어 가지고 있던 아이폰으로 찍었다. 2011년 초 선생님의 건강이 악화됐고, 운명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매일 8~10시간씩 편집에 매달렸는데 보여드리지 못 했다.”

-처음에는 어떤 다큐를 만들려고 했나.
“스타일리시한 건축 다큐였다. 한 건축물이 완성되는 과정을 담으면서 그 건물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다.”

-건축 다큐를 기획한 동기는.
“평소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극영화 <고양이를 부탁해>(2001)와 <태풍태양>(2005), 인권영화 <여섯개의 시선> 중 <그 남자의 사정>(2003)을 연출할 때 도시 풍경, 건물 공간을 중시했다. 개봉 후 매 번 여러 차례 건축가들 모임에 초청을 받았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관심을 갖게 됐고, 2009년 서울국제건축영화제를 관람한 뒤 기획했다.”

-고인은 어떻게 만났나.
“누구를 할지 알아보던 중 추천을 받았다. 고인의 <감응의 건축>을 읽은 뒤 무주 프로젝트를 둘러봤는데 건축에 대한 내 생각이 편견이란 걸 깨달았다. 면사무소에 목욕탕을 만들었고 공설운동장은 등나무가 둘러싸고 있었다.”

 

 

고인은 사람·자연과 소통하는 건축을 지향했다. 건축의 사회적 양심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건축을 통해 공동체성 회복을 열망했다. <말하는 건축가>에는 도서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기적의 도서관’과 시공할 곳에 있는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그 나무를 감싼 원형 건물 등이 소개된다.

-첫 만남 때 동의를 받았는지.
“안국동의 선생님 단골 밥집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취지를 듣고 ‘그러면 네가 계속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니는 것이냐, 그것 참 재미있겠다’면서 단번에 오케이를 했다. 이후 두세 달 동안 매주 수요일에 기용건축 사무실에서 반나절 안팎 인터뷰를 했다. 지난 삶과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소격동 한옥 프로젝트를 영화의 기둥으로 삼았다.”


-그 프로젝트는 연기된다.
“두 번 정도 찍었을 때 선생님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본관 자리 옆인데 완공되면 땅의 조건과 상황이 많이 바뀔 거니까 이 한옥은 그 이후에 어떤 집으로 만들는지 결정해도 될 거다’면서 연기했다. 실상사 리모델링도 ‘100년을 내다봐야 한다’면서 몇 개월 간 세미나만 계속했다. 애초 의도를 살릴 수 없는 이런 상황이 2010년 초여름까지 계속됐다. 독립 다큐멘터리로 시작한 만큼 경비가 부담 돼 촬영을 최소화, 이벤트 중심으로 했다. 7~8개월 간 영화의 기둥이 잡히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

-제작비는 어떻게 마련했나.
“신용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받고 아르바이트를 계속 했다. EBS와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지원작 심사에 떨어졌다. ‘두타연’의 투자와 서울·제주영상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지만 후반작업을 앞두고 영화 완성과 개봉이 불투명했다. 건축 분야의 인문학적 연구작업을 지원해온 ‘심원문화사업회’ 후원 덕분에 빛을 봤다.”

-일민미술관 건축전이 비중 있게 나온다.
“가뭄에 단비 같은 소재였다. 건축전을 기획한, 선생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다른 강성원 큐레이터가 다른 분들과 달리 선생님의 말씀을 과감히 자르거나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해 쾌재를 불렀다. 영화의 보편적인 갈등의 축이 형성된 거다.”

-춘천 자두나무집과 고인의 월셋집인 명륜동 다가구 주택이 대조를 이룬다.
“자두나무집은 지은 지 10년 됐다. 선생님은 거실에서 보이는 논에 사계절 풍광이 담기도록 설계했다. 실제로 황금빛 들판이 펼쳐진 걸 보고 무척 행복해 했다. ‘이 집에서 몇 달만 쉴 수 있다면 내 병이 다 나을 텐데….’라고 하실 때 찡했다. 거실에 햇살이 드는 월셋집에 대해 ‘나의 집은 백만 평’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만족하고 의식 또한 자유로웠지만 자연에 파묻힌 자두나무집 같은 곳을 필요로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이 마을회관을 찾은 장면을 영화의 앞뒤에 편집했다.
“돌아가신 걸로 끝맺음을 할 수 없어 그 동안 찍은 장면을 다시 보고, 2년여 동행과정을 돌이켜보면서 선생님이 누굴 위해, 왜 건축을 하는지 알게 됐다. 설계를 할 때 건물을 사용할 사람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많이 듣고 반영을 하는 것이다. 엔딩 장면에 대해 스태프들은 의아해 했지만 지금 생각도 다르지 않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축물은.
“무주 프로젝트 중 ‘추모의 집’이다. 산꼭대기에 있는 납골당인데 산하와 자연을 전혀 거스르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든 좋아하는 공간에 가면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추모의 집에서 그랬다.”

<말하는 건축가> 촬영 분량은 400시간이고, 러닝타임은 92분이다. 스폰지하우스 광화문 등에서 상영중이다. 네이버·다음·맥스무비·벅스·곰TV·씨네21즐감·인디플러그·예스24 등에서 굿다운로더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정 감독은 “영화에 담지 못해 안타까운 장면이 많다”면서 “선생님을  추모하고 고인의 지인과 관객들을 위해 DVD에는 넉넉하게 넣고 유튜브에 올리겠다”고 했다. 요즘 서울시청 신청사 완공 과정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시티:홀>을 찍고 있는 정 감독은 빌딩 내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SF호러도 준비하고 있다. 배두나·이요원·옥지영 등과 <고양이를 부탁해>의 스무 살 주인공들이 마흔 살이 됐을 때 이야기도 찍기로 했다. 정 감독은 “선생님과 <말하는 건축가>는 내가 왜 영화를 만드는지에 대한 소중한 깨달음을 줬다”면서 가슴을 여미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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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택 감독(46)은 아버지·삼촌 등 아홉 명이 의사인 집안의 ‘미운 오리 새끼’였다. 영화감독이나 방송국 PD가 되겠다고 다니던 의대를 그만두면서 ‘뜬구름 잡는 녀석’으로 찍힌 것이다. 그가 1987년 그 시절에 겪은 파란만장한 병영생활과 격변의 시대상을 역은 영화 <미운 오리 새끼>를 만들었다. 곽경택의 미운 오리 새끼 시절과 칠전팔기 <미운 오리 새끼> 만들기를 소개한다.


 

 

‘전투가 벌어지면 가급적 빨리 포로가 돼 적의 식량을 축낸다’ ‘수저가 든 빈 도시락을 흔들어 적의 레이다를 교란시킨다’ ‘끝까지 복사기를 사수한다’ ‘유사시에도 오후 6시에는 퇴근한다’….도 오후 6시에는 퇴근한다’….

곽경택 감독이 방위병으로 복무할 때 들은 우스갯소리다. 영화 <미운 오리 새끼>의 주인공 ‘낙만’(김준구)은 헌병대에 출퇴근하는 ‘육방’(6개월 방위)으로 이런 모멸감이 드는 말을 들으면서 생활한다. 이발병으로 이발은 물론 부대 내 행사 사진찍기, 대대장의 심심풀이 상대 바둑 두기, 변소 청소, 영창 보초 근무 등 ‘잡병’으로 복무한다. 사진기자 시절 받은 모진 고문으로 후유증에 시달리는 아버지(오달수)가 자신의 인생에 ‘태클을 건다고 여기는 그는 복무중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육방으로 복무했나.
“실제로는 ‘십팔방’(18개월 방위)이었다. 음악평론가 강헌 형이 내 고참 방위병이었다. 형은 경리병이었다. 의대를 다닐 때에는 당연히 장교로 복무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퇴하자 고졸이 됐다. 신검 때 방위병 판정을 받았고, 헌병대에서 ‘낙만’처럼 현역병 ‘따까리’를 하면서 이발 등 온갖 잡일을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따라지’ 시절이었는데 굉장히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미운 오리 새끼>는  내 인생에서 가장 찌질했던, 민주화투쟁에 앞장섰던 386세대 동료들과 달리 부끄럽고 한심한 20대 시절에 관한 영화다. 단편 <영창 이야기>(1995)와 장편 <친구>(2001)에 이어 내 안에 있던 내 모습을 꺼내서 만든 이야기다.”

-<영창 이야기>의 헌병 이름이 ‘강헌’이다.
“이름을 짓다가 나중에 감독이 되면 군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보라고 했던 강헌 형 말이 생각냈다. ‘가장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라’는 영화과 교수님 말씀과 더불어. 내가 보고 들은 군대 감방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너무도 비인간적인, 내가 영화로 잘 만들 수 있는 이야기 소재였다. <미운 오리 새끼>는 그 연장선에 있다.”

<영창 이야기>(1995)는 곽 감독의 뉴욕대 영화연출과 졸업작품이다. ‘제 2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1996년 제 1회 부산국제영화제 등 국내외 유명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헌병 병장 강헌과 가정파괴범으로 수감된 병사 ‘천석호’ 사이의 이야기를 그렸다. 천석호는 서태화가 맡았다. 서태화는 당시 맨하튼음대에 유학 중이었다. 훗날 곽 감독의 <닥터K>(1999)와 <친구>에도 출연했다.


 

 

-주인공 아버지가 사진기자 출신으로 고문 후유증에 시달린다.
“민주화를 외치다가 고문받고 그 때문에 비정상이 된 친구를 모델로 했다. 방위병으로 복무하던 시절 민주화운동이 거셌다. 어느날 외출했다가 정말 총명했던 친구를 만났는데 대화중에 그가 갑자기 침을 질질 흘리는 걸 보고 엄청 충격을 받았다.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변호사 시절, 민주화투쟁에 앞장 섰던 고 노무현 대통령이 적은 군중 앞에서 열변을 토하던 모습도 생각났다. 정치적이라기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양심적인 삶을 살다간 지도자에 대한 그리움을 투영했다. ”

-의사 집안의 미운 오리 새끼였다고 했다.
“아버님과 삼촌 등 집안에 의사가 아홉 명이었다. 덩달아 고신대 의대에 진학했는데 영화감독이나 방송국 PD가 되고 싶어서 본과 1학년 때 그만뒀다. 그때부터 ‘뜬구름 잡는 녀석’으로 찍혀 지냈다. 이후 <억수탕>(1997)과 <닥터K>을 만들 때까지 인정받지 못했다. <친구>가 잘 되고 나서야 어깨를 펼 수 있었다.”

 

-매제(정지우 감독)가 데뷔작 <해피 엔드>(1999)로 먼저 성공했을 때 힘들었겠다.
“스트레스 좀 받았다. 하하하…. 아버님은 나와 정 감독 영화의 일등 모니터 요원이시다. 글을 잘 쓰고 시나리오도 몇 편 쓰셨다. <챔피언>(2002) 때 군수 역을 맡겼는데 한 번의 엔지 없이 소화해 내셨다. 나의 ‘이야기꾼 유전자’는 아버님께 물려받은 거다. ”

<챔피언>에서 고적대 퍼레이드 장면 촬영할 때 일화다. 몹-신(mob scene·많은 사람이 나오는 장면)을 일사천리로 진행한 뒤에 곽 감독은 한 켠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의 모습이 밝지 않을 걸 발견했다. 그 이유를 한 달쯤 뒤에 알았다.

 

“아버님이 ‘세상에는 해야 되는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너를 보면서 네가 부럽고 자랑스러웠다’고 하시더라. ‘어릴 때 동네 빈집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연극놀이 하는 걸 좋아했다’면서. 감독을 하면서 그때 아버님이 하신 말씀을 늘 되새긴다.”

 

-<미운 오리 새끼> 시나리오는 언제 썼나.
“7년 전에 썼다. 민주화세대 주역의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군대 경험담을 반영해 코미디로 구성했다. 군대 상하관계와 영창을 통해 집단 수뇌부와 하부의 부당한 권력과 폭력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그간 거의 모든 투자사에게 퇴자를 맞으면서 언제나 만들 수 있을는지 가능성이 희박해 보여 마음이 착찹했다. <기적의 오디션>(SBS)에서 김준구·정예진·조지환·고영일 등을 만난 뒤 배우와 역할의 잘 맞아떨어져 이 시점이 아니면 못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머니돈 쌈짓돈 다 넣어 밀어붙였다. 저는 물론 연기자·스태프 모두 인건비든 뭐든 다 투자해서 만들었다. 20억원 이상 들어가는 영화인데 6억원으로 완성했다. 돈이 없어 꽤 오랫동안 촬영을 못 하기도 했다.”

                     <미운 오리 새끼>의 김준구ㆍ정예진ㆍ고영일ㆍ문원주ㆍ박혜선ㆍ조지환(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이들은

                     곽경택 감독에게 열정이 넘치고 연기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영화를 만든 적이 있나.
“처음이다. 어떻게든 탄생시켜보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만든 첫 영화다. <친구> 이후 타협을 해왔는데 일체 타협하지 않은 첫 영화이기도 하다. 타협을 했다면 달라졌겠지만 관객층을 고려해 시나리오를 다듬지 않았고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을까봐 특정 장면을 빼지도 않았다. 수정은 열정이 넘치고 연기력도 뛰어난 신인들이 최대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분량을 조금씩 늘려주고, 아버지의 역할을 조금 더 강화한 정도에 그쳤다. 누구나 다 미운 오리 새끼 시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요즘 힘들어 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담았다.”

 

곽 감독은 “상업영화 감독으로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을 쳐 왔다”면서 “이런저런 점 따지지 않고 <미운 오리 새끼>에는 그냥 시원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담았다”고 했다. “오는 가을에 범죄물을, 내년 상반기 중으로 멜로가 강한 한·일 합작 사극을 찍을 계획”이라며 “받아놓은 시나리오 중에 마음이 가는 여자가 주인공인 작품에도 열정을 쏟으려고 한다”고 밝혔다. 무거운 소재를 웃음·분노·안타까움·황당·경악 등 갖가지 감성으로 버무려낸 성장영화 <미운 오리 새끼>는 오는 7월 개봉된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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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궁:제왕의 첩>, 연극 <과부들>. ‘백발의 현역’ 오현경씨(75)의 요즘 작품이다. <후궁>에선 원로 대신 ‘윤기견’, <과부들>에서는 정권의 윗선에 있는 ‘페리빼’ 역을 맡았다. <후궁>은 지난 6일부터 상영중이고, <과부들>은 10일까지 공연했다. 지난 2월 배우재교육연구소 ‘송백당’(松栢堂)을 다시 개원, 무료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의 삶과 연기철학을 들었다.

 

 

오현경씨는 서울고와 연세대 국문과 재학시 연극을 했다. 졸업후 극단 실험극장 창단(1960) 단원으로, KBS TV 개국(1961) 원년 탤런트(동기 이순재·여운계·김영옥 등)로 활동해 왔다. 영화 데뷔작은 김기덕 감독(81)의 <오늘은 왕>(1966). 김대승 감독의 <후궁:제왕의 첩>은 스물두 번째 영화다.


-영화 출연작이 적습니다.
“영화는 생리에 안 맞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 진이 빠지고, 연출·배우 간 소통 방식도 자유롭고 쌍방향인 연극과 달랐다. KBS 드라마 <TV손자병법>(1987.10.18~1993.10.14, 1992년 연기대상 대상 수상)이 한창 인기일 때 영화 출연제의를 참 많이 받았는데 안 했다. 그쪽에서는 주연을 원하는데 나는 오래 찍어야 된다는 게 오히려 싫었다.”

영화 주연작은 <여름이 준 선물>(2006) <행복한 장의사>(1999) <땅콩껍질 속의 연가>(1979) <해벽>(1972) 등이다. 2000년대 조연작으로는 <연리지>(2006) <평행이론>(2009) 등이 있다.

                  <후궁:제왕의 첩> <혈의 누> <행복한 장의사> <TV손자병법>(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후궁>에 ‘특별출연’을 하셨는데요.
“내가 원한 게 아니라 제작사에서 예우 차원에서 그렇게 한 거다. 수렴청정을 하는 ‘대비’(박지영)에게 농민들의 작황 피해를 보고하고 왕(김동욱)과 군왕의 덕목에 대해 얘기하던 중 ‘소신들을 다 죽이시더라도 종묘사직을 생각하시라’고 했다가 혼쭐이 나는 대신을 맡았다. 이 나이에 영화에서 무슨 큰 역을 하겠나. 비중을 떠나 연기를 하는 것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영화를 하면서 느낀 건 젊은 배우들이 발성 등 기본기에 약하다는 점이다. <혈의 누>(감독 김대승)는 사극인데 젊은 주인공과 호흡이 잘 맞아야 해 대사를 사전에 잘 외워 리허설을 가졌다. 그 배우도 제대로 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출연료가 100만원이 더 왔다. ‘신(scene)이 살아서 감사의 의미로 더 보내드렸다’고 하더라. 깎는 게 다반사인 세상에 더 보내줘 기분이 좋았다.”

<혈의 누>에는 ‘김치성 대감’으로 특별출연했다. 섬의 실질적 지배자로 구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원규’(차승원)와 적대적 관계에 있다. <혈의 누>는 평단의 인정을 받았고 흥행에도 성공(227만4995명·한국영화연감 기준)했다. 백윤식·김미숙 주연 <연인>(감독 김대승)에서는 단청 장인으로, 두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조연을 맡았다. 이 영화는 제작·투자사의 마찰 등으로 인해 1년 넘게 개봉이 지연되고 있다.

김 감독은 <후궁> 시나리오 작업 당시 윤기견 역에 오현경씨를 염두에 뒀다. 김 감독은 “(배역 비중이 워낙 적어)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는데 흔쾌히 허락하셨다”며 “돌아가시면 화술을 가르칠 수 있는 배우 맥이 끊기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연극배우 전형재는 2010년 경기대 문화예술대학원 연극학과 석사논문에 ‘배우 오현경은 연극무대에서는 부드러우면서도 밀도 있는 발음과 힘 있는 발성, 말을 할 때 언제 숨을 쉬는지 모를 길고 매끄러운 호흡과 함께 우리나라 화술의 전범을 보여주며 다양한 배역에서 명연기를 보여줬다. TV드라마에서는 평범할 수 있는 인물에 독특한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기억에 남는 인물과 작품을 수없이 만들어 냈다’고 기술했다.

 

-<과부들>도 특별출연작인데요.
“<봄날>의 이성열씨가 연출한, 1970년대 칠레 군사정권 시절을 다룬 작품이다. 실종·고문·의문사로 빚어지는 여인들의 아픔을 그렸다. 우리 현대사와 무관하지 않은 세 시간 분량의 대작이다. 모두 스물아홉 명이 나오는데 나는 정권의 윗선에 있는 인물을 맡았다.”

-<봄날>은 28년에 걸쳐 여러 번 공연했고 매번 아버지를 맡았습니다.
“1984·2009·2011·2012년, 모두 네 번 했다. 84년 작품(연출 권오일)은 극단 ‘성좌’에서, 2009~2012년 작품(연출 이성열)은 극단 ‘백수광부’에서 올렸다. 네 번 다 아버지로 출연했고, 하다보니 대표작이 됐다. 2009년에 서울연극제 연출상, 대한민국연극대상 남자연기상 등을 받았다. 초연 작품도 대상·연출상 수상작이다. <봄날>은 절대권력을 지닌 아버지의 회춘을 향한 욕망에 아들들이 반기를 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아버지는 독재자 등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 연극사에서 20여 년에 걸쳐 같은 작품에서 주연을 맡은 경우가 있는지요.
“레퍼토리 시스템(한 시즌에 여러 작품을 번갈아 공연하는 방식)에서는 있겠지만 48세에, 그리고 73세에 맡고, 이후에도 한 작품에서 같은 배역을 맡는 건 처음인 것 같다. <휘가로의 결혼>은 다섯 번(1969·1976·1977·1983·1985년) 했다. 매번 ‘보마르쉐’ 역을 맡았고. 그런데 언론에 대표작이 잘못 소개되고는 한다. 내 대표작은 <화니> <오셀로> <막차 탄 동기동창> <허생전> <맹진사댁 경사> <동천홍> 등이다.”

<허생전>(1970)은 제4회 한국문화대상 연극 부문 대상, <막차 탄 동기동창>(1991)은 제 15회 서울연극제 연기상을 받았다. 이밖에 <호모 세파라투스>(1983)로 제 7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아메리카의 이브>(1985)로 제 22회 동아연극상에서, <주인공>(2008)으로 제 29회 서울연극제에서 각각 남자연기상을 수상했다. 2010년 제 3회 대한민국연극대상 공로상, 2011년 제 60회 서울시 문화상 연극부문상도 받았다.

-송백당(松栢堂)을 다시 열었습니다.
 “지난 2월 7일에 개관식을 가졌다. 사재를 들여 2000년에 개관한 뒤 가중되는 경제적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 3년 만에 문을 닫은 지 꼭 9년 만에. 기성 배우들에게 발음과 화술을 가르치고, 연기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있다. 예전에 송백당을 찾은 배우가 100명이 넘는다. 이번에도 남녀 세 명씩, 여섯 명에게 하루에 세 시간 이상 2주 동안 일대일로 가르친다.”


-수강료를 받지 않는다고요.
“연극배우들은 대개 공연이 없을 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 시간을 쪼개 배우러 오는 후배들에게 돈을 받는 건 있을 수 없다. 두 칸(70평대 규모) 중 하나를 연습 등을 필요로 하는 곳에 빌려줘서 운영비를 마련해 보려고 한다. 더 늙기 전에, 말할 기운도 없어지기 전에 선배로서 내가 가진 걸 후배들에게 되도록 많이 나눠주고 싶다.”

-그간 광고 출연을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예술을 하겠다는 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세운 원칙이다. 이제까지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한창 인기있을 때에도 하지 않았는데 송백당을 닫을 때에는 돈이 참 아쉽기는 했다.”

송백은 “사시사철 푸르게 올곧게 살고 싶다”는 오현경씨의 아호(雅號)다. 식도암·교통사고·위암·목디스크 등으로 수차례 생사를 넘나들었던 그는 “어떤 무대가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며 “늘 실력을 쌓고 한 사람의 관객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는 게 진정한 배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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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제왕의 첩>. ‘에로틱 궁중사극’을 표방한 김대승 감독(45)의 작품이다. <번지점프를 하다>(2000) <혈의 누>(2005) <가을로>(2006) 등으로 각광받은 김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드라마와 에로티시즘의 조화를 꾀했다. 베드신 빈도가 높고, 강도도 셌다. 개봉은 6일. 김대승 감독에게 웰메이드 사극 에로영화 만들기를 들었다.

 

 

‘화연’(조여정)은 연인 ‘권유’(김민준)와 헤어져 ‘왕’(정찬)의 후궁이 된다. ‘성원대군’(김동욱)은 화연을 연모한다. 옥좌에 앉은 뒤에도 과부가 된 형수 화연을 잊지 못한다. 합궁까지 관여하는 ‘대비’(박지영)에게 반기를 든다. 화연을 잃고 거세까지 당한 뒤 내시로 입궁한 권유는 복수에 불탄다.

-에로틱 궁중사극을 표방했다.
“애욕의 정사(情事)와 광기의 정사(政事)를 그렸다. 화두는 ‘욕망’이다. 욕망이 우리를 가두고, 어렵게 만들고, 불행의 나락에 빠지게 만드는 점들을 관객들이 읽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화연과 권유, 성원과 ‘중전’(박민정), 성원과 ‘금옥’(조은지)…. 이들의 정사는 인과응보를 빚는다. 성원과 금옥의 베드신에는 화연이 등장하는 환상이 겹쳐지고, 화연과 성원의 정사에서 절정을 이룬다.

 

-베드신이 잇따른다.
“보여주기 위한 베드신은 없다. 드라마의 맥락상 여러 정사신은 각기 다른 기능을 한다. 진심·내심·흑심 등이 담겨 있다. 공통점은 욕망이다. 욕망의 색깔 또한 인물에 따라, 그들의 내적·외적 상황에 따라 다르다. 권력관계를 보여주고, 그것은 누가 더 사랑하느냐에 따라 전복되기도 한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가 된다. 서로 사랑하는 동등한 관계의 섹스는 화연과 권유의 것에 있다. 성원은 중전과 피동적, 금옥과 충동적으로 섹스를 한다. 시작과 과정, 끝이 각각 다르다. 화연과 성원의 정사도. 전후 상황과 밀접한 연결고리여서 제작각 달라야 했다.”

-노출 수위가 세다.
“노출 수위만 센 게 아니라 정사신 자체도 굉장히 강하다. 어느 하나 남녀 배우의 벗은 몸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찍지 않았다. 행위 자체보다 섹스를 하는 각 인물의 캐릭터와 상황의 현재와 변화를 보여주는 감정을 중시했다. 이에 따라 소품·미술·음악을 달리 사용했다. 촬영 당시 배우들이 굉장히 힘들어 했다. 정사 연기를 하는 것 자체가 힘든데 감정의 변화까지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하지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제각각의 욕망을 드러내는 장면이어서 정면돌파를 했다.”

-성원과 금옥·화연의 정사장면이 인상적이다.
“실제와 환상이 공존한다. 환상이 깨졌을 때 성원의 행위가 빨라진다. 따로 설명하지 않았는데 김동욱이 왕의 심리를 제대로 간파, 알아서 마무리를 해줘 대견했다.”

-노출 때문에 캐스팅이 힘들었겠다.
“투자사는 남녀 주인공에 우선 톱스타를 꼽는다. 감독의 의견·의지와 달리. 투자사측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조여정씨도 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방자전>을 했기 때문에. 그런데 ‘정말 배우가 되고 싶다.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면 노출은 아무것도 아니다’면서 하겠다고 했다. ‘배우로서 연기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작품’이라며. 고마웠다. 뭉클했고. 촬영에 들어간 뒤에는 더욱 감동을 줬다. 베드신 촬영 때 배우들은 예민해진다. 특히 여주인공이 툴툴거리고 불편해 하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만족스러운 장면을 찍는 게 힘들다. 그런데 여정씨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여정씨가 중심을 잡아주니까 다른 배우들이 자연스레 동참했다. 현장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은지씨가 농담으로 긴장된 현장 분위기를 풀어주는 등 일조를 했다. 여정씨에게 그랬다. ‘여정씨! 참 어른이에요’라고. 진정한 프로, 진짜 배우로서 최선을 다해줬다.”

 

-오현경·이경영·안석환·박철민·오지혜 등 조연들도 돋보인다.
“주연들은 열심히 해주고 조연들은 안정적이고. 감독으로서 배부른 캐스팅을 했다. 오현경 선생님은 <혈의 누>와 결국 개봉이 불발로 그친(마무리 후반작업을 하고 있던 중 제작사가 느닷없이 문을 닫고 말았다) <연인>에 이어 <후궁>까지 세 편을 함께 했다. 이번 역은 선생님을 염두에 두고 썼다.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는데 흔쾌히 하겠다고 하셨다. 오 선생님은 서울 사투리를 구사하는 유일한 배우이시다. 돌아가시면 맥이 끊기게 된다. 화술을 가르칠 수 있는 배우가 없다. 이경영 선배와 박지영씨는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했다. 이경영 선배와 나는 스승이 같은 분이다. 임권택·정지영 감독님이다. 처음으로 함께한 건 <하얀전쟁>(1992)이다. 당시 이 선배는 주인공, 나는 연출부 막내였다. ‘저… ’라며 소개하는데 ‘알지, 새삼스레…’라며 반겨주셨고 응해주셨다. 오지혜는 대학(중앙대 연영과) 1년 후배다. 이른바 ‘병풍’(배경) 역으로 연기하는 건 어려운 단역이어서 제의하면서 미안했다. 그런데 ‘오빠, 주인공이네, 끝까지 살아남잖아. 당연히 해야지’ 하더라. 고맙게도. 사극은 준비하고 대기하는 시간이 길다. 듬직한 조연분들 덕분에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다.”


 

 

-사극 에로영화 연출 의뢰를 선뜻 받아들였는지.
“2010년 1월에 전화를 받았다. 둘째가 태어난 날이다. 황기성 사장이 <혈의 누>를 잘 봤다며 사극을 하자고 하셨다. 액션·멜로·에로 등 여러 장르를 놓고 시놉시스(줄거리·개요)를 썼다. 에로틱 궁중사극을 만들기로 결정한 뒤 사극과 에로에 대한 선입견을 깨면 성취감이 남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기획·제작사는 ‘황기성 사단’이다. 1984년 개정된 영화법에 따라 설립된 제1호 한국영화 제작사다. <고래사냥> <에미> <안개기둥> <성공시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닥터봉> <고스트 맘마> 등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흥행에도 성공한 작품으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해 왔다.

-시나리오 작업에 여러 분이 참여했다.
“연출을 맡은 뒤 <궁녀>(2007)의 김미정 감독을 작가로 영입, 함께 작업했다. 이후 각색·윤색을 했다. 참여한 인원이 모두 여섯 명이다. 김 감독은 <궁녀> 각본·연출을 했고 나는 <춘향뎐> 조감독, <혈의 누> 각본·연출로 사극을 만들었던 게 많은 도움이 됐다. 동료 감독과의 작업이어서 호흡이 잘 맞았다. 시나리오는 촬영을 앞두고 20개월 간 했고, 4개월 간 촬영을 하면서도 계속 보완했다. 감독님(임권택) 연출부·조감독 시절에 감독님께 배운 대로 했다. 감독님 시나리오 작업은 크랭크업을 해야 끝난다. 녹음을 하다가 바꾸신 적도 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셨다.”


 

 

<후궁-제왕의 첩>에서 각 인물의 욕망은 비극을 빚고 파국을 낳는다. 김대승 감독은 “현실 상황은 영화보다 훨씬 잔인하다”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욕망이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한다”고 했다. 일례로 대비가 성원의 신혼방을 들여다보고 상궁들에게 지시를 내리도록 하는 장면을 들었다. ‘고증에 따른 설정이냐’는 물음에 김 감독은 “상상을 가미한 의도적 연출”이라고 했다. “아이들을 잡는 부모의 욕망을 보여준다”며 “동시대 감독으로서 극중에 담은 이런 행간도 관객이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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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 류승룡! 코믹 본좌 등극!’…. 배우 류승룡(41)이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 카사노바로 등장, 극중 여성들을 사로잡으면서 남녀 관객들에게도 각광받고 있다. <고지전> <최종병기 활> 등의 ‘선 굵은’ 남성을 걷어내고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여심을 사로잡는’ 남자로 변신, ‘승룡앓이’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류승룡에게 사랑의 기술과 연기 노하우를 물었다.

 


 

‘정인’(임수정)과 ‘두현’(이선균)은 7년차 부부다. 두현은 정인에게 질린다. 매사에 거침없는 아내와 헤어지고 싶지만 운도 못 뗀다. 급기야 이웃의 카사노바 ‘성기’(류승룡)에게 아내를 유혹해 달라고 당부한다. 성기는 ‘유혹 프로젝트’를 수립, 정인에게 접근해 성사를 앞둔다. <내 아내의 모든 것>(감독 민규동)은 다소 황당한 이 가상 드라마를 매우 그럴싸한 실제상황으로 펼쳐냈다. 류승룡은 개성 넘치는 카사노바로 등장, 임수정·이선균과 함께 영화의 재미를 한층 배가시켜 준다. 17일 개봉, 19일까지 54만9228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감상,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예전에 연애 많이 했는지.
“많지 않았다. 사귈 때에 상대가 복수인 적도 없었다. 한 여인에게만 순정을 바쳤다. 치열하고 아름답게.”

 

-카사노바 기질 있다고 여기나.
“없다. 하지만 장성기와 닮은 데는 많다. 유쾌함과 진지함이 공존하고, 남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섬세하고…. 장성기는 내 속의 그런 점을 끌어내 영화적으로 극대화시킨 인물이다.”


 

목격담이다. 류승룡은 이서군 감독의 <된장>(2010)에 희대의 달출범 ‘김득구’(유승목)가 검거된 경위를 통해 ‘혜진’(이요원)이 만든 된장의 신비한 맛의 비결을 밝혀내는 방송사 PD로 출연했다. 기자는 김득구 건강상태를 진단한 의사로 등장, 류승룡과 함께했다. 잠시 쉬는 시간에 류승룡은 어린 두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잘 잤어? 뽀뽀! 아침은? 그랬구나~. 엄마 말씀 잘 듣고, 재밌게 놀아….’ 류승룡이 달리 보였다. 외모는 영락없는 마초인데 저렇게 다정다감하다니.

 

-그때 의외였다. 나는 어떤지 돌아봤고.

“일찍 나오고 늦게 들어가는 날 아침·저녁에는 꼭 전화한다. 알람 맞춰놓고 그 시간에 굿모닝·굿나잇 인사 나눈다. 부모님께도 자주 전화해 안부 여쭙고.”

 

그런 그의 취미 가운데 하나는 원예다. 서울 근교 집에서 꽃밭 가꾸는 걸 즐긴다. 길가에서 우연히 본 예쁜 들꽃을 정원에 옮겨 심고는 한다. <최종병기 활> 때 변발을 하고 갑옷을 입은 채 쭈그리고 앉아 휴대폰으로 들꽃을 찍기도 했다.

 

-참고한 카사노바는.
“전혀 없었다.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정형화된 카사노바가 아닌 류승룡만의 카사노바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장성기는 이름과 달리 외모나 정력을 내세우지 않는다. 감성을 자극해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다재다능하지만 개구장이 같고, 젠틀하면서 느끼하고, 터프하지만 섬세하고 코믹하고 연민이 느껴지고…. 이런 카사노바는 장성기가 처음이지 않나.”

 

-샌드아트 등은 직접 한 건가.
“실제로 했다. 핑거댄스, 소 젖짜기도 모두. 동영상 보며 틈나는 대로 익히고 전문가에게 개인 교습도 받았다. 불어와 스페인어, 아프리카 말도 배웠다. 요리할 때 칼질은 예전에 <난타> 출연할 때 익힌 것을 활용했다. 몸 만들기 위해 식단을 조절하면서 다이어트도 했다. 내적 정서를 습득하고 체화시키기 위해 <유혹의 기술> 등 책도 많이 읽었다.”

 

-책에서 배운 카사노바의 비책은 뭔가.
“자신감을 갖고 여성을 리드하면서 때로는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거다. 배려하는 마음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적재적소에서 칭찬해주고…. 문제는 기본을 안 하는 데에서 생긴다. 장성기가 두현에게 한 ‘원래대로 여자로 대해줬을 뿐’이라는 대사가 사랑의 핵심이다. 다재다능함은 부차적이다. 두현은 장성기를 통해 그걸 알게 된다.”


 

 

-성기는 정인 이전의 국내외 여자들 마음도 그렇게 산 건가.
“아니다. 장성기는 그들을 쫓아가지 않았다. 그들이 장성기에게 온 거다. 정인이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구성작가(김지영)처럼. 장성기가 타인의 의뢰를 받고 유혹한 인물은 정인이 처음이다. 정인에 관한 정보를 두현에게 건네받아 유혹 프로젝트를 단계별로 구사한 건 속성으로 해달라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다. 해프닝과 웃음은 그 때문에, 정인·두현·성기의 캐릭터로 인해 발생한다. 배우들과 호흡이 잘 맞았고 감독님의 연출력도 좋았다. 두 번째 볼 때 더 재미있었다. 행간도 보이고.”

 

-이선균과 맡은 배역이 바뀌면 어떨는지.

“선균이는 자기를 버리고 내가 한 장성기와 전혀 다른, 그만의 개성이 묻어있는 장성기를 보여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두현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입을 옷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류승룡은 중3 때부터 배우를 꿈꿨다. 성남 풍생고 재학 때 연극반에서 활동, 시민회관에서 <방황하는 별들> 유료 공연을 갖기도 했다.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에 재수해서 입학(90학번)했고 졸업한 뒤 동락극단에서 활동했다. 다른 극단의 <난타> 등에도 출연했다. 영화는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2004)가 데뷔작이다. 서울예대 동기 정재영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에 류승룡은 단역 ‘강도1’로 출연했다.

 

-대학 동기들(정재영·황정민·최성국·임원희·안재욱 등)에 비해 영화 데뷔 늦었다.
“누구처럼 되고 싶다고 연기한 게 아니다. 연기하는 게 좋아서, 미치도록 좋아서 한 거다. 답보상태일 때 어려움이 많았다.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그럴수록 인내했다. 연기 말고는 하고 싶은 게 없으니까 인내해야 했다. 그러면서 연기를 잘 하는 데에 모든 걸 걸었다. 꽃이 피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경우에 따라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도록 내버려 두셨다. 덕분에 치열하게 연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목숨까지 걸었다고 보면 된다.”

 

-배우로서 지닌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환경 적응이 빠르다. 관찰력을 지녔다. 많은 인물의 개성을 이입·체화하는 트레이닝을 부단히 한 게 밑거름이 됐다. 한 작품을 마칠 때마다 그 인물을 완전히 털어낸다. <최종병기 활>을 마치고 5개월여 동안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장성기가 되려고 했다. 촬영에 들어간 뒤에는 두 말 할 나위 없다.”

 

-극중 인물에 다가가나, 자신에게 끌어오나.
“대부분 내 속에서 끌어낸다. 이 과정에 캐릭터의 정형성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한다. 정성기도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경우의 수가 많은, 좌지우지할 여백이 많은 역할이어서 돌발 유머와 허점, 실수 등을 집어넣었다. 이때 튀지 않도록 했다. 배우는 혼자 돋보이면 안 된다. 함께하는 배우들과 어우러져야 한다.”

류승룡은 4년 전부터 서울예술종합학교에 출강, 배우 지망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다음 영화는 <조선의 왕>(감독 추창민)이다. 류승룡은 ‘광해군’의 대리로 그와 똑같이 생긴 천민을 왕으로 세우는 ‘허균’ 역을 맡아 이병헌·한효주·김명곤·김인권 등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류승룡은 이 영화 촬영을 마친 뒤 <12월 23일>(감독 이환경)에 일곱살 난 딸을 둔 지적 장애인으로 출연한다. “사랑도, 연기도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류승룡의 또다른 변신이 기대된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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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기(45)와 한수연(29)이 영화 <이방인들>에서 주연으로 호흡을 맞췄다. 서울대 철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인 김중기가 주연을 맡은 건 <몽실언니>(2009),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를 졸업한 한수연은 <참을 수 없는>(2010) 이후 처음이다. 비록 주연은 오랜만지만 그간 꾸준히 활동해 온 이들이 꿈꾸는 배우세상은 어떤 빛깔일까?

 

 

<이방인들>(감독 최용석)은 한 여성이 의문의 화재 사고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한 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한수연은 그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여성 ‘연희’로, 김중기는 보험금을 노리고 화재를 냈다고 오해받는 장난감 공장 사장 ‘성진’으로 출연했다. 지난 10일부터 전국의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상영중이다.

-둘 사이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연희가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고, 성진에게 ‘선생님은 왜 우리 엄마에게 내 이야기를 했어요?’라고 묻는  점 등을 감안해 둘 사이가 부절적한 관계였다고 봤어요. 연희는 10대이고 성진은 유부남이고. 작은 마을이니 소문이 금방 퍼졌고 어린 연희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겠죠.”
“성진도 연희를 사랑했다고 봐요. 어느 정도 관계였는지 알 수 없지만, 성인과 미성년자, 성가대의 지휘자와 반주자 사이여서 마을과 교회에서 용납이 안 되었을 거에요. 성진이 연희 엄마에게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 말이 연희를 더욱 힘들게 했고.”
“엄마와 ‘석이’(여현수) 아빠와의 관계도 연희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에요. 이런저런 일이 엎친 데 덮쳐 몹시 힘들었고 그래서 도피하듯 마을을 떠난 거죠.”

-극중에서 딱 한 차례 만난다.
“연희가 사랑을 키운 결정적 공간에서 성진과 다시 만나요. 앞서 만나는 사람들과 성진의 만남을 통해 연희는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돼요.”
“연희가 7~8분의 독백을 하고 끝내 오열해요. 저는 전날 잠을 못 잔 데에다 종일 촬영으로 졸음이 쏟아지는 바람에 의도한 대로 연기가 안 돼 애를 먹었어요. 수연씨가 잘 했고 극중에 잘 살아 있어 다행이에요.”
“그 장면 촬영 때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선배님이 몇 마디 안 했는데 그 대사나 리액션 하나로 제가 더 몰입이 됐거든요. 오열 장면은 즉석에서 감독님과 상의해서 만들었는데 한 번 촬영으로 오케이(O.K)가 난 것도 그 덕분이에요. 새로운 경험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선배님께 감사드려요.”

 

<이방인들>은 여느 장르영화와 달리 이렇다 할 사건이 펼쳐지지 않는다. 각각 결핍의 아픔을 지닌 등장인물의 캐릭터 또한 내적으로는 동적이지만 외적으로는 정적이다.

-연기하기가 쉽지 않은 배역이다.
“연희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고, 사랑의 상처가 깊고, 엄마랑 떨어져 살았고…. 상실감이 커요. 그 굴레에 짓눌려 있고.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고 후반부에 감정을 표출하기 전까지 일정한 감정을 유지하는 게 힘들었죠. 캐릭터의 외향성은 줄이고 내향성은 깊게 판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성진은 연희보다는 연기하기가 쉬운 인물이에요. 1년 전에 화재 사건을 겪었고, 이후 아내는 집을 나갔고, 공장은 망했고, 방화범으로 오해받고…. 겉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건 장난감 행상과 실랑이하는 장면에 지나지 않지만 어떤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는 근거가 있거든요.”

-모처럼 주연이다. 제의받고 어땠나
“시나리오가 완성되기 전에 제의받았어요. 오디션 없이 제의받은 첫 영화이기도 해요. 독립·예술영화를 워낙 좋아하고, 공간을 통해 아픔을 지닌 사람들 이야기를 하겠다는 기획·연출의도가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시나리오가 완성될 때까지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눈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앞으로 연기를 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될 것 같아요.”
“저는 처음에는 비중있는 형사 역이었어요. 주연이 아니에요. 부산까지 가서 하기에는 좀 애매한데 부산에서 온 후배들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보면서 거절하는 게 곤혹스러웠죠. 거절할 수 있는 자연스런 분위기를 만들려고 함께 술을 마셨고 그 자리가 2·3차로 이어지면서 결국 하게 됐어요. 형사가 아니라 성진으로. 성진도 원래는 조연인데 촬영·편집하면서 커졌어요.”
“시나리오가 종종 바뀌었어요. 현장상황에 맞춰.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의미 또한 남달라요. 힘들었지만 신선했어요.”
“촬영이 지연돼 애초와 달리 서울·부산을 오르내려야 했고 현장이 습해 잠 못 드는 밤이 많았지만 보람있는 작업이었어요.”

-개봉 소감은.
“고마워요. 지난해 제5회 시네마디지털서울의 ‘버터플라이’ 부문에 초청받고, 제13회 부산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소개된 것으로 끝날 줄 알았거든요. 이렇게 홍보 일정을 밟고 정식으로 개봉된 게 믿기지 않아요.”
“여기까지 오는 데 어려움이 많았어요. 배우 세 명 빼고 출연·제작진이 다 부산 영화인들이에요. 그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열정 덕분에 영화가 완성돼 개봉될 수 있었어요. 많은 분들이 힘을 실어주셨으면 해요.”

김중기는 1988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남북청년학생회담 남측 대표로 활동했다. 투옥된 뒤 평생 운동을 하려면 이성적 면만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감성을 키워야겠다고 판단, 연기를 시작했다. 공연예술아카데미 연기과정 수료 후 연극원에 입학했고 김응수 감독이 러시아에서 찍은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1997)로 데뷔했다. 한수연은 초등학생 때부터 9년 동안 헝가리에서 생활하며 유럽영화를 즐겨 감상했다. 줄리엣 비노쉬를 롤모델로 삼아 배우의 꿈을 키웠다. 2001년부터 영화·연극·뮤지컬에 단역으로 출연하기 시작했고, 검정고시를 거쳐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에 입학했다. 조의석 감독의 <조용한 세상>(2006)으로 데뷔했다.

-어떤 배우를 꿈꾸는지.
“배우는 시(視)·청(聽)·후(嗅)·미(味)·촉(觸), 5감을 다 열고 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삶을 사는 게 고맙고 행복해요.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본능적으로  5감이 살아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상업영화는 물론 독립·예술영화 필모를 탄탄하게 쌓는 게 배우로서 갖는 꿈이에요. 꾸준히 활동하면서 제가 맡은 인물에 공감하는 관객들과 폭넓게 소통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싶어요.”
“연기를 하면서 인간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을 받아요. 조금씩 사람과 삶에 대해 알게 되는 경험을 하거든요. 배우가 안 됐으면 모르고 지나왔을 거에요. 그런 경험이 살아있는 연기를 잘 하고 싶어요. 결과에 앞서 과정도 중요해요. 자유롭고 열려 있는 연기로 연기를 하는 나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즐겁고 행복했으면 해요.”
배우들은 신인 시절 ‘작은 역은 없다, 출연하는 시간이 적을 뿐’이라는 말을 곧잘 듣는다. 단역이라고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의미로. 김중기와 한수연은 “주·조연보다 중요한 건 인물과 드라마가 살아있느냐는 점”이라며 “맡은 인물의 생동감을 살려내 관객의 지지를 끌어내는 소명을 다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타가 인정하는 굵직한 대표작을 남기고 싶다”는 소망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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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현상·김슬기·조아름(사진 왼쪽부터). 최초의 국악 합창영화 <두레소리>(감독 조정래) 주인공이다. ‘꿈꾸는 아리랑’ ‘두레소리 이야기’ ‘이사가는 날’ 등 완전 신명나고 흥겨운 국악 합창을 선사한다. 국악이라면 고개를 돌리던 이들도 우리 소리·장단의 매력과 합창의 마력을 맛보게 해준다. 얽히고설킨 관계와 소통을 다룬 드라마도 흥미롭다. 개봉 10일.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의 함현상 교사(36)와 조아름(20)·김슬기(19)의 영화 <두레소리> 출연기를 들었다.

 

영화 <두레소리>는 함현상 교사와 재학생들의 ‘두레소리’ 창단 과정을 그렸다. ‘두레소리’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의 국악합창 동아리다. 2008년 11월에 결성, 2009년 3월에 창단 공연을 가졌다. <두레소리>에서 함현상 교사는 주연 외 음악감독도 맡았다. 조아름(두레소리 3기)과 김슬기(〃 4기)는 창단 당시 선배들을 모델로 한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동아리 단원들이 처음에 악보를 못 읽는다. 실제로 그런가.
“판소리와 민요 전공 같은 경우는 악보보다는 선생님들께 한 대목, 한 대목씩 듣고 배우는 구전심수(口傳心授)의 방식에 익숙해요. 악보에 익숙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 하지만 요즘엔 창작 음악도 부르고 연주해야 해 많이 달라졌어요.”(함현상)

-각 파트별로 한 대목씩 가르쳤나.
“학생들은 악보에 익숙하지 않을 뿐 기본적으로 뛰어난 음감을 지녔어요. 그리고 전공 수업 때 구전심수의 방법과 악보를 병행해 더 쉽고 정확하게 가르칠 수 있었죠. 연습 당시 각 파트의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소리가 되도록 하는 데 경주했어요.”(함현상)
 함 교사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출신으로 중앙대 한국음악과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학군장교로 입대, 대위로 전역할 때까지 군악대장 등을 역임했다. <두레소리>에서 선보이는 ‘꿈꾸는 아리랑’ ‘두레소리 이야기’ ‘이사가는 날’ 등은 그가 만들었다. <두레소리>의 감흥을 고조시켜 준다.


-창단 동기는.
“전통음악 전공자들은 연습도 공연도 혼자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죠. 합창을 통해 함께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느끼게 해주고, 스스로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동아리활동을 체험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함께하는 합창에 매력을 느끼면서 긍정적 효과를 낳았어요. 생활이 바뀌고 학교생활에 흥미를 갖고…. 이후 이런 자체 동아리가 여러 개 생겼죠. ‘두레소리’는 올해 6기를 뽑았는데 무용 전공도 들어오는 등 구성원이 다향해졌어요. 일정 기간 연습한 뒤 소프라노·메조 소프라노 등 각 멜로디가 하나로 어우러졌을 때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함현상)

 

-영화는 어떻게 찍게 됐나.
“조정래 감독과 평소 알고 지내는 사이여서 창단 공연 때 촬영을 부탁했어요. 이후 창단과정을 말씀드리자 감독님이 극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해 의기투합했죠. 교장 선생님과 학교측의 전폭적 지지 덕분에 잘 끝낼 수 있었습니다. 감독님은 중앙대 연극영화과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는데 따로 북을 연마해 전국 대회에서 고수(鼓手)로 상을 받기도 했어요. 국악에 관심이 많고 국악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는데 마침 ‘두레소리’를 만난 거예요.”(함현상)
김슬기는 초등학교 3학년 때 TV드라마 <대장금> OST(오나라)에 참여한 바 있다. 국립창극단에서 어린이 창극 공연도 가졌다.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다. 국악 신동에서 차세대 기대주로 손꼽힌다. <두레소리>에서 판소리 명가의 피를 물려받은 천재 소리꾼 ‘김슬기’로 출연했다.

-오디션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나.
“어느날 연습하려고 모여있는데 영화를 찍기 위해 연기 오디션을 볼 거라고 하더군요. 노래하러 왔는데 연기를 하라고? 의아했지만 언니들이 보니까 따라서 했죠. 오디션을 볼 때 정말 어색했는데 다음날 함샘이 ‘감독님이 널 좋게 봤다. 주인공을 맡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1학년인데요? 제가요? 정말로?’ 거듭 묻고 확인하면서 기분이 좋았어요.”(김슬기)
“언니들이 주연을 맡고 우리는 조연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주연인 거예요. 믿기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으쓱했어요.”(조아름)

조아름은 올해 중앙대 전통예술학부에 입학, 국악극과에서 경기민요를 전공하고 있다.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재학 당시 전국국악경연대회 고등부 민요 최우수상, 한밭국악전국대회 학생부 대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두레소리>에서 일찍 부모를 여의고 이모 손에서 자란, 노력형 수재 ‘조아름’ 역을 맡았다.

 

-촬영 당시 즐거웠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실제 제 역을 맡았는데도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게 어색하고 어렵더군요. 극중에서는 잘리지만 실제로는 해직되지 않았어요. 정식 교사는 아니고 1년씩 재계약을 하는 강사에요. 다행히 올해에도 재계약이 돼 강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무척 좋은 경험을 했어요. 처음에 영화를 볼 때는 눈을 가릴 정도로 민망하더군요. 앞으로 음악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함현상)

“영화를 찍을 때 1학년인데 3학년 수험생 역할이어서 좀 어려웠어요. 대입에 대한 부담감을 실제로 느끼는 시기가 아니어서…. ”(김슬기)
“신기했어요. 카메라 앞에서 내가 아닌 다른 인물이 되는 게. 그 전에 해본 경험은 한 번도 없어요. 학교수업과 촬영을 병행하느라 피곤하기는 했지만 언제 또 해보겠어요? 좋았어요. 이모로 출연한 분은 진짜 배우세요. 그분과 언쟁하는 장면은 네 시간 가까이 찍은 것 같아요. 감정과 대사가 조화를 이루는 게 잘 되지 않아서. 그분께 미안했어요.”(조아름)

-둘이 다투는 장면도 실감난다.
“처음에는 약하게 시작했는데 감독님 요구사항이 점점 늘어났어요. 욕을 하고 뺨을 때리라고 하고…. 무척 당황스러웠죠. 극중에서는 동기지만 실제로는 슬기가 저보다 한 살 어리고 한 학년 아래거든요. 결국 나중에 재촬영을 했어요.”(조아름)
“저는 연예인이 된 기분도 느꼈어요. 수업받다가 촬영 있다고 열외받을 때, 서울랜드 촬영 당시 구경꾼들이 몰려들었을 때….”(김슬기)

-방과후 슬기와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진짜로 마셨나.
“아니에요. 아침햇살이라는 음료수예요.”(조아름)

-대사를 학생들이 많이 바꿨다고 했다.
“감독님이 우리 세대가 아니어서 실제와 동떨어진, 오글거리게 만드는 대사가 없지 않았어요. 감독님께 말씀드려 그런 대사는 우리 식으로 바꿨죠. 대학생이 된 ‘두레소리’ 1기 하늘벗 언니가 큰 도움을 주셨어요. 감독님은 많은 부분을 열어두시고 대사·연기를 마음 내키는 대로 하도록 하신 적이 많아요. ‘콘티’도 원래 걸 무시하고 현장 상황에 맞게 고쳐주셨고. 저희들이 자연스레 극중에 적응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거죠.”(조아름)
“일부 장면은 쉬고 있는, 자연스러운 저희들 모습을 찍은 거에요. 연기가 아닌 실제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김슬기)

이들은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내 “또 해도 아쉽고 미련이 남을 것 같다”면서 “전공 실력을 배양하는 데 더욱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많은 분들이 <두레소리>를 찾아주고 우리 소리를 더욱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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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닥파닥>. 3D 애니메이션이다.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26일~5월 4일) ‘국제경쟁’ 부문에 진출한 유일한 한국영화다. 어촌의 한 횟집 수족관에 갇힌 고등어가 펼치는 필사의 탈출기를 극화했다. ‘파닥파닥’은 그 고등어가 바다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 끊임없이 몸부림치면서 내는 소리를 말한다. 자유를 갈망하는 집념·투쟁을 상징한다. <파닥파닥> 각본·연출·제작자인 이대희 감독(35)을 전주에서 만났다.

 
<소중한 날의 꿈> <마당을 나온 암탉> <돼지의 왕>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3D> <은실이>…. <파닥파닥>은 <DINO TIME>(다이노 타임) 등과 함께 올해 한국 애니메이션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힌다. 양어장·바다 등 출신 성분과 아부·항거·방관형 사이의 갈등, 배를 드러내 죽은 체 해서 살아남으려는 처세술, 퀴즈 배틀…. 수족관 물고기들의 세상을 통해 우리 사회를 풍자한 재미와 묵직한 메시지가 퍼덕인다. 물고기들의 세밀한 동작과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 낸 3D 기술력이 재미와 의미를 더해준다.

 


-언제, 어떤 계기로 기획했나.
“졸업 후 애니메이션 회사에 다닐 때 구상했다. 직장생활이 좀 답답해 자유롭게 창작에 전념하고 싶었다. 감독 데뷔 제의를 받고 2004년부터 구체화하기 시작했고 2007년 여름에 회사(이대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설립한 뒤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물고기 세상을 소재로 했다.
“구속과 자유, 두 낱말을 놓고 고심을 많이 했다. 수족관이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바다나 양어장에 있다가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들의 세상을 우리들 세계의 축소판으로 삼았다. 이는 애니메이션만 가능하다. 반면 물고기는 사람·동물보다 생김새가 단순해 표정·감정·심리 변화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눈물도 사용할 수 없다. 감정 변화의 초점을 찾아 이를 고조시키는 걸 애니메이션 쪽에서는 ‘기어 체인지’라고 한다. 이야기와 그림의 기어를 바꾸고 가속력을 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고등어를 암컷으로 설정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구속받는 걸 상징하나.
“그렇게 볼 수 있다. 그에 앞서 수족관 지배자인 ‘올드넙치’를 수컷으로 정하고 ‘고등어’는 상반되게 암컷으로 했다. 여성의 반란이 더 극적이고, 고등어의 꿈이나 환상을 뮤지컬로 보여주는 데 있어 여성의 목소리가 더 적합하다고 본 것도 요인이다. 뮤지컬 장면이 네 번 나오는데 원래는 일곱 번이었다. 올드넙치 등이 부른 건 다 편집했다.”

-뮤지컬 장면은 기둥 드라마와 그림이 다르다.
“기둥 드라마는 현실이고, 뮤지컬 장면은 판타지다. 그래서 그림·색감 등이 대비를 이루도록 했다. 기둥 드라마는 3D지만 뮤지컬은 2D다. 뮤지컬 가사도 직접 썼고 각본 작업 때 음악작업을 미리 의뢰해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사전녹음인가 후시녹음인가.
“사전녹음이다. 3D는 선녹음을 하고 작화를 하는 게 맞다. 그렇지 않으면 실사영화에서 입모양과 소리가 안 맞는 것과 다름없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처음부터 싱크로율(정확도·완성도)을 고려해 전문 성우를 기용했다. 예산상의 문제도 있고. 모두 세 번 녹음했다.”

-각본은 얼마만에 썼나.
“그간 구상하고 메모한 걸 토대로 첫 각본은 1개월만에 썼지만 이후 1년 넘게 수정·본완을 했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자료조사와 현장답사를 1년 반 정도 했다. 극중 어촌과 횟집은 강원도 속초 동명항 갯배마을이다. 무경험자들은 위험하다고 태워주지 않으려고 해 각서를 쓰고 미술·기술감독과 함께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극심한 멀미에 시달리면서 죽는 줄 알았다. 6개월 정도 서울의 횟집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때 횟집일기를 쓴 게 작품을 구상·완성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완성하는 데 오래 걸렸다.
“2년간 준비했고, 실 작업은 3년간 했다. 처음 계획보다 두 배가 걸렸다. 중간에 자금·인력 문제 등으로 무산될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은 2D든 3D든 실사영화보다 실제 작업기간이 매우 길다. 이 기간에 한 스태프가 계속 호흡을 맞춰야 톤 등을 유지할 수 있다. 회사를 설립한 건 이 때문이다. 기관의 지원을 받으려면 법인이어야 하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파닥파닥>의 경우 15명을 메인 스태프로 많을 때에는 약 70명이 참여했다. 회사를 유지하느라 어려움이 많았지만 덕분에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서울애니메이션센터의 현금·현물 지원이 많은 도움이 됐다. ‘인디스토리’(독립영화 전문 배급사)도 제작중에 만났다.”

이대희 감독은 세종대 애니메이션학과 97학번이다. 재학생 때 단편 <THE PAPER BOY>(2002)로 자그레브(크로아티아) 히로시마(일본) 등과 함께 세계 4대 애니메이션영화제로 손꼽히는 안시(프랑스)와 오타와(캐나다) 등의 ‘경쟁’ 부문에 초청받으면서 해외에 먼저 알려졌다. 이후 제6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개막작 <신 암행어사>(2004), 안시 ‘교육’ 부문 수상작 <아이들이 사는 성>(2005), 미국 에미상 ‘TV애니메이션’ 부문 초청작 <양의 전설>(2007) 등에 참여했다.

-해외 유명 영화제를 우선 겨냥하지 않았는지.
“기획·제작 과정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잘 만드는 데 주력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전주국제영화제로부터 출품을 권유받았다. 마침 영화 완성 시기와 영화제 개최 기간이 맞아 출품했고, 국제경쟁 부문 작품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뻤다.”

-애니메이션 연출은 언제부터 꿈꿨나.
“원래는 조각 전공이었다. 조금 다니다가 그만두고 다시 시험을 봤다. 애니메이션이 하고 싶어서. 학창시절 그림에 관심이 많았고, 소질도 있었고, 만화영화를 엄청 좋아했다. 그럼에도 처음에는 방황했다. 재능이 부족하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작업이어서. 어느날 내 마음대로 그린 물체를 통해 ‘애니메이션 매직’을 느꼈다. 애니메이션 매직은 애니 전공자들 사이에 그림상의 인물·동물이 살아나는, 무생물이 생물이 되는 느낌을 받는 걸 말한다. 애니메이션은 팀웍이 중요하다. 각자의 재능을 교집합, 최상을 추구한다. 단체활동, 공동작업을 좋아한다. 기타를 치면서 펑크록밴드 활동도 4년쯤 했다.”

이대희 감독은 “애니메이션 대명사인 월트 디즈니(1901~1966)와 안철수 교수를 존경한다”며 “삶을 개척하고 영유하는 방식과 개혁적 기업가 정신을 본받고 싶다”고 했다.  “<파닥파닥>을 통해 세 가지를 구현하려고심혈을 기울였다”고 덧붙였다. ‘물고기를 통해 섬세한 감정 표현을 해보자’ ‘우리나라 환경에서 최적화된 극장판 3D 애니메이션 프로세스를 구축하자’ ‘한국 공기가 물씬 나는 작품을 만들자’ 등이다. <파닥파닥>은 이같은 노력의 결과물로 온 가족이 함께 볼 만한 동화이자 우화로서 드라마와 뮤지컬의 조화, 허를 찌르는 결말 등이 흥미롭다. 전주국제영화제 수상 및 해외 유명 국제영화제의 잇단 초청이 기대된다. 오는 여름 개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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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감독(44)이 <은교>를 내놓는다. 박범신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상상화한 작품이다. 명망 높은 70대 시인 ‘이적요’(박해일)와 10대 여고생 ‘은교’(김고은), 이적요의 30대 제자 ‘서지우’(김무열)를 통해 매혹·질투·도발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 감독은 “이적요의 순정에 관한 영화”라고 소개했다. 정 감독에게 <은교> ‘재창작’에 대해 들었다.

 

 

-‘은교’와 ‘지우’의 정사로 파국이 인다.
“베드신 수위를 놓고 많은 생각을 했다. 은교가 (현재보다) 더 나서면 경험 많은 여자로 비춰지고, 지우가 거칠어지면 폭력적 정사가 된다. 그럴 경우에는 ‘적요’가 극도의 배신감이나, 은교를 보호하기 위해 훔쳐보는 데 그치지 않고 뛰어들 수 있다. 쳐다보는 게 고통스러워 벗어나고 싶은데 마음과 달리 몸은 꼼짝 못 하는, 정사가 끝난 뒤에 무엇을 감행하게 하는 수준의 베드신을 찍었다.”

 

-은교가 지우보다 적극적인 편이다.
“은교는 지우랑 (섹스)하러 간 게 아니다. 우발적 섹스다. 적요는 은교가 지우 랑 능동적으로 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라스트신에서 납득하게 된다.”

-베드신이 <해피엔드>(1999)와 비견된다. 노하우가 뭔가.
“노하우라…. 정직하게 찍는다. 배우들과 충분히 대화를 나눠 목표를 공유한다. 베드신 수위는 야한 정도보다 감정의 문제가 중요하고 전후 흐름으로부터 자연스러워야 한다.”

-노출을 가리는 장치를 하지 않은 것 같다.
“한 걸로 안다. 했다. 기본적으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찍으면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데, 촬영감독이 앵글 잡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정 감독은 곽경택 감독의 처남이다. 정 감독의 아내, 곽 감독의 여동생은 ‘바른손’ 영화사업부의 곽신애 본부장이다.

-사위가 또 파격 성애를 그려 장인이 걱정한다고 들었다.
“아니다. 정반대다. <은교> 원작 구입부터 시나리오 작업 단계 단계마다 장인(피부과 전문의)에게 자문을 구했다. 노인의 심정, 언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많은 말씀을 해주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난해 장모 칠순 잔치에서 술 드시고 흥이 오른 장인 친구께서 <해피엔드>의 베드신에 대해 물으셨다. 뜻밖의 GV(관객과의 대화)가 됐다. 내가 말씀 드린 뒤에 장인께서 새로 나올 <은교>를 보면 더 공감할 거라고 부연하셨다. 장인께선 모니터로서 프로다. 창작인의 정서를 지녔다. 시나리오도 몇 편 쓰셨다.”

 

-원작은 언제 읽었나.

“재작년 늦여름이다. 박(범신) 작가를 찾아갔을 때 이미 여러 번 영상화 제안을 받았는데(원작은 작가의 블로그에서 2010년 1월 8일부터 3월 4일까지 연재됐고 책은 2010년 4월 6일에 출간됨) 진전이 안 됐더라. 실제 70대 배우 캐스팅, 이적요 나이는 내리고 은교는 올리고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한 것 같더라. 우리 역시 관건은 이적요를 어떻게 만드느냐였다. 애초부터 해당 나이 안팎의 배우 캐우팅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올드보이> <미녀는 괴로워> <박쥐> 등의 송종희 분장감독과 협의, 특수분장을 하기로 했다. 박해일도 송 감독과 협의를 마친 상태에서 만났다.”

 


촬영 당시 박해일은 매일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8시간 동안 특수분장을 했다. 어느 날 박해일은 김고은과 함께 분장을 한 채로 홍대 앞을 걸었는데 알아보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김고은이 신인이어서 홍대 앞 젊은이들에게 박해일과 김고은은 여느 할아버지와 손녀였다.

 


 

-원작의 어떤 점에 가장 끌렸나.
“원작은 대단히 솔직한 소설이다. 죄송한데 나도 나이 먹는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은교>를 읽으면서 이적요와 동체가 됐다. 처음부터 ‘이적요의 순정에 관한 영화’로 구상했다.”

-타이틀롤이 은교인데 영화의 중심은 이적요다.
“시사회 후 ‘은교의 영화’라는 말도 들었다. ‘위태로운 10대의 성장을 그렸다’고 하더라. 원작은 (200자 원고지) 1500장 분량이다. 영화는 100여 장이다. 시나리오 작업을 7~8개월 했다. 원작과 많이 다르다. 원작상의 은교 성장과정을 많이 생략하면서 은교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은교>는 ‘은교는….’이 아니라 이적요가 ‘은교’라고 쓰고 말한 것으로 보면 된다.”

-삼각관계가 새롭다.
“삼각형의 두 꼭지점이 가까워지려면 한 점이 불안해 진다. 그렇듯 적요와 지우가 은교를 밀치면 은교가, 적요와 은교가 가까워지면 지우가, 은교와 지우가 밀착될 때에는 적요가 흔들린다. 밀려난 한 명은 질투심 등으로 둘 사이에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다. 영화는 그런 상황을 교차 반복한다.”

-<모던 보이>에 이어 박해일과 함께했다.
“한 마디로 박해일을 사랑한다. 그는 순수하고, 영민하고, 최선을 다해 소임을 완수하는 배우다. 그래서 그와 작업해본 감독들은 또 하고 싶어 한다. 그가 이적요를 해줘 연출 의도가 살아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박해일이 대사도 직접 했다.
“성우의 후시녹음, 성우와 박해일의 목소리를 교묘하게 합성하는 방안 등을 두루 검토했고 시뮬레이션도 했다. ‘박해일’이 아니라 ‘박해삼’인 경우가 많았다. 브래드 피트 주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등을 참조한 끝에 박해일에게 맏기로 했다. 그의 연기력을 믿고. 관객의 기대치가 제각각인 데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는 점은 감수하기로 했다.”

-엔딩 크레디트에 ‘박해일 대역’이 나온다.
“70대 이적요의 손이나 발, 몸 크로즈업 장면 등에 그 연배를 기용했다. 목소리 사전 테스트 작업 때 참여한 성우도 있다.”

-완전 신인 김고은 캐스팅은.
“김고은(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2년 휴학) 전에 300명을 만났다. 가능성을 두고 몇 차례 만난 배우도 있다. 김고은을 처음 봤을 때 ‘이 친구다!’라는 느낌이 왔다. 외모도, 독백 대사를 할 때 감정묘사도 마음에 들었다. 그 감정에 따라 얼굴이 다양하게 바뀌었다. 그 다음날 투자자들과 함께 오디션을 보고 결정했다. 김고은은 개봉 이후 스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건 안중에 없어 보였다. 배역 자체에 대한 호기심과 연기 열정이 돋보였다. 그 점은 은교가 할아버지 이적요를 만나고 생활할 때 드는 궁금증·동경 등과 닿아 있다. 기대한 대로 김고은은 은교를 제대로 투영해 냈다.”

-해외판을 만들면 달라지나.
“달라지더라도 베드신은 아니다. 이적요가 은교와 지우의 정사를 목격한 뒤 작업할 때 청년 이적요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직접 하기도 하는 걸 찍었다. 박해일의 눈빛·표정이 인상적이다. 불가피하게 편집했는데 나중에 DVD에는 넣고 싶다.”

이적요는 “젊음은 상이 아니고 늙음은 벌이 아닌데….”라고 읊조린다. 이적요의 회한처럼 순정은 나이를 초월한다. 은교의 싱그러움에 매혹된, 이적요의 그 순정은 그러나 나이의 울타리에 갇힌다. 정 감독은 사인(sign)을 하면서 “(사랑은) 늦기 전에, 늦어도…”라고 썼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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