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화(56). 연극배우이자 연출가, 최근 창간 28주년을 맞은 공연예술 전문지 <월간객석> 발행인이다. 2년 전부터 영국에서 뮤지컬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오는 26일에는 주인공을 맡은 영화 <봄, 눈>(감독 김태균)을 내놓는다. 자청해서 완전 삭발을 하는 등 열연을 펼친 그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뮤지컬 <톱 햇>(Top Hat)과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를 올릴 예정이다. 이후에 귀국, 국내 활동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윤석화의 열정 넘치는 삶을 소개한다.

 

 
-<봄, 눈>은 어떤 영화인지요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네 일상의 소중한 기적을 그린 영화예요. 원래 제목은 <눈물이 아름다워>인데 제가 바꾸자고 했어요. 눈물이 아름답다는 걸 믿지만 ‘우는 영화’라는 식상한 느낌을 지레 줄 것 같아서. 극중에 나오는 노래 <봄날은 간다>가 떠올라 <봄날이 온다, 눈물이 아름다워>로 하자고 했고 이를 줄여 <봄, 눈>이 됐어요. 실제로 고난과 슬픔이 짙은 날에도 봄은 오지요. 눈물은 정화·치유·회복의 힘을 지녔고. <봄, 눈>에서 봄은 엄마의 마지막 봄과 남은 가족의 새 봄이고, 눈은 눈물(Tear)이고 눈(Snow)이기도 해요. <봄, 눈>은 한 가족을 중심으로 그런 이야기를 담았어요.”

-영국에서 출연제의를 받았는데요.
“제의를 받고 저도 정말 의아했어요. 왜 나지? 영국에 있는데? 한국에 ‘순옥’ 역할을 잘해낼 배우들이 많은데? 그리고 나름 헤아려 본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 강행을 했지만.”

-언제 받았나요.
“작년 가을이에요. 제가 연출한 연극 <나는 너다>(2011)에 출연한 후배에게 먼저 연락을 받았고 설마 했는데 실제로 시나리오를 보내 왔더군요. 이메일로. ‘1년 365일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어스름 속 새벽 첫 차를 타고 일을 나가는 어머니들께 바친다’는 시나리오를 읽고 진심을 느꼈어요. 어떤 감독인지 궁금해 영국으로 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죠. 못 올 거라고 예상하고. 그런데 일주일 뒤에 오셨어요. 4박5일 일정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와 지향점이 같아 영화의 진실성을 잘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김태균 감독은 윤석화 캐스팅에 대해 “예술적 직감”이라고 했다. “소재가 통속적인데 흔히 예상되는 여배우가 출연하면 더욱 차별화가 안 될 것 같아 고민하던 중 아내가 윤석화 씨를 추천했다”며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확신이 섰다”고 했다. “윤석화 씨가 하지 않으면 연출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뜻이 통했다”고 덧붙였다.

 

-유사 소재 영화가 적지 않은데요.
“결정 당시 제가 봤거나 들은 다른 영화와 비교하지 않았어요. 이 영화 자체로 의미가 있으니까. 배우로서 검토하는 방법이 다르고, 감성이 다르고, 그에 따라 관객들 느낌도 다를 거니까. 결정하고 나서 감독, 제작진과 유사 영화를 놓고 이야기를 폭넓게 나눴는데 그때에도 우리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봤어요.”


-실제로 완전 삭발을 했습니다.
“감독은 가발을 쓰자고 했는데 제가 삭발하겠다고 했죠. 배역을 제대로 소화하고 싶고, 고통을 온전히 표현하고 싶어서.”
항암제 치료를 받는 순옥은 머리를 감다가 머리카락이 힘없이 뭉텅이 채 빠지는 걸 보고 머리를 자른다. 공기조차 숨죽이고 있는 듯한 침묵 속에서 들리는 건 서늘한 가위 소리 뿐. 이어 가위질 사이사이에 순옥의 신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이 신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서로운 울음으로 변한다.

 

-현장 상황이 어땠나요.
“엔지가 나면 안 되니까 현장에 긴장감이 팽배했는데 새삼 배우가 거룩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김태균 감독과 스태프, 후배 배우들이 모두 울었어요. 저도 덩달아 울었고…. 저희 엄마가 암으로 4개월을 선고받았는데 15년을 살다가 돌아가셨어요. <봄, 눈> 하면서 세상에 안 계신,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놓고 가신 엄마 생각 많이 했죠. 미안하고 고마웠어요. ‘순옥’도 그래요. 사랑스러운 여자예요. 우리들의 엄마죠. 지금 저는 두 아이의 엄마인데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이어서 더욱더 순옥이처럼 잘, 열심히 살다가 새로운 봄의 소망과 기적을 남겨주고 세상을 떠났으면 해요.”

-세 번째 삭발인데요.
“연극 <덕혜옹주>(1995)와 <위트>(2005)에서 삭발했죠. <덕혜옹주>에선 옹주가 정신병원에서 겪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위트>에서는 난소암으로 죽어가는 영문학과 교수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려고 깎았어요. <덕혜옹주> 때 신혼이어서 남편에게 미안했죠. <위트> 때에는 자긍심과 연민을 느꼈고. 이번에는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는지 걱정스러웠지만 배우로서 쓰일 수 있다는 데 감사했어요.”

-<레테의 연가>(1986) 때 아쉬움이 이번에 열정을 불사른 동기가 됐는지요.
“저는 <레테의 연가>를 제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계약 사항과 달리 후시녹음 때 성우가 제 역을 했어요. 관객들이 어떻게 봤든 제가 한 역은 제가 아니에요. <봄, 눈>은 그 자체로 열정을 불사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에요. 제 마음에 들어서 제 의지로 선택했고 출연·제작진과 충분한 교류 아래 신뢰감을 바탕으로 완성한 저의 영화 데뷔작이에요.”

 

-<봄, 눈>에 앞서 출연제의를 받은 영화는.
“여러 편을 받았죠. 그 가운데 두 편은 하려고 했는데 일정 등이 맞지 않아 못했어요. 한국영화는 거의 다 봐요. 많이 다양해지기는 했지만 중장년층 배우들이 연기하고 동년배들이 볼만한 영화가 드물어 많이 아쉬워요. 앞으로 제가 확신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지나가는 할머니도, 조그만 가게 주인 역할이어도 할 거예요. 좋은 시나리오가 있으면 감독에게 연출도 의뢰하고. 좋은 영화를 함께 만든다는 기쁨을 나누고 싶거든요.”

-영국 활동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요.
“재작년 10월 팀 라이스를 만난 게 계기예요. 뮤지컬 <에비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아이다> 등 굵직한 작품의 작사가예요. 그와 작품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늙기 전에 영국 런던의 웨스트엔드에서 경험과 실력을 쌓자고 결심, 2년 예정으로 들어갔죠.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는데 그럴수록 물러서지 않았어요. 제 바이오그래피를 인정하든 않든, 동양인 여자라고 무시하든 말든,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달려들었고 거물급 제작자 리맨지스에게 인정받으면서 프로듀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요.”

지난해 7월 연극 <여정의 끝>으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고, 오는 27일부터 뮤지컬 <톱햇>을 올린다. 관객 반응에 따라 폐막하는 오픈런(Open Run) 방식으로. 그리고 오는 11월에는 뮤지컬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공연할 예정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 여름에는 귀국, 연극을 공연을 필두로 국내 활동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배우, 연출가, 프로듀서, 공연예술 전문지 발행인…. 윤석화는 “언제까지나 뜨거운, 영원한 현역으로 남고 싶다”고 기원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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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진웅(36)의 본명은 조원준이다. 예명 조진웅은 아버지(67)의 이름이다.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연기하는 것이다. 배역에 따라 몸무게를 40㎏ 정도 찌우고 빼는 것도 그 치열함에 기인한다. <뿌리깊은 나무>와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에 이어 영화 <완전한 사랑>(가제)에서 변신을 꾀하는 조진웅을 만났다.

 
-<완전한 사랑>은 어떤 영화인지.
“시나리오를 읽고 처음으로 받은 느낌은 ‘이럴 순 없다’였어요. 이웃사촌인 이들의 사랑이 과연 가능한가? 마지막 촬영을 앞둔 지금은 ‘있을 수 있다’예요. 영화는 그 과정을 보여줘요. 방은진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천재적 두뇌의 소유자인 수학교사는 류승범씨, 옆집 여자는 이요원씨에요.”

-진웅씨 배역은.
“저는 형사예요. 수학교사와 고교 동창인데 친구가 연루된 살인사건을 수사해요. 화끈한 액션을 보여주는 그런 형사가 아녜요. 사랑의 관찰자이자 안내자예요. 응시하는 시점·시선이 중요해요. 연기를 하면서 두 남녀의 심리를 쫓아 여행하는, 한 발 두 발 사랑의 실체에 다가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관객분들도 형사를 통해 그런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배역을 맡고 가장 우선하는 게 뭔지.
“전작의 캐릭터를 깔끔하게 비워요. 공허할 정도로 완전히 지워버려요. 화장을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저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새로 하는 화장이 먹히거든요.”

-어떻게 맡은 인물이 되는지.
“배역의 캐릭터와 제 캐릭터를 충돌시키고, 그 음을 제 세포 안에 집어넣는 작업을 우선해요. 완성한 뒤에야 출발선에 서요. 그리고 현장에는 모든 걸 열어놓고 가요. 상상과 현장은 다르기 때문에 미리 계산하고 설정하고 가면 어려움이 많거든요. 감독의 조율 아래 동료 배우들, 카메라·조명·미술 등 스태프와 앙상블을 이루면서 서브 텍스트로 녹아들어요. 한 피사체로서 어울리게 자리하는 거죠. 연기는 멘털 게임이에요. 심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게 중요해요.”   

-겹치기 출연 때에는 어떡하나.
“각기 다른 걸 꺼내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해요. <뿌리 깊은 나무> <퍼펙트 게임> <범죄와의 전쟁>, 세 편을 겹치기 했는데 각 촬영 때마다 10분 전 상황에 스타트 준비를 마쳤어요. 그런데 <완전한 사랑> 때에는 다른 작품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영화에만 전념했어요.”

-배우는 언제부터 꿈꿨는지.
“어릴 때 뮤지컬 <피터팬>을 ‘개구멍’으로 들어가 셀 수 없이 봤어요. 친구들과 후크 선장을 죽이려고 안달이 났었죠. 그게 현실인 줄 알고. 조금 더 나이를 먹고 그게 연극이란 걸 알고 실제로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경험들이 알게 모르게 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고등학교 때 연극반 활동을 할 때에도 꼭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놀부를 긍정적, 흥부를 부정적 인물로 그린 연극 연출을 하면서 내 길이 이 쪽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산의 경성대 연극영화과를 지망했죠. 합격한 뒤에 ‘부산연극제작소 동녘’에도 입단, 학교 수업과 극단활동을 병행했고 “연극이 종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심취했어요.”

-부산 무대를 고수했는데.
“어디서든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굳이 동숭동 대학로에서 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죠. 제가 덩치가 좀 커 대학로에 일찍 갔더라도 신체조건 때문에 역할 맡는 데 어려움이 따랐을 거에요. 부산은 층이 엷어 배우로서 안 해본 역할이 없을 정도였고, 기획·연출·분장·조명 등도 두루 해야 했어요. 그 경험이 모두 저의 자산이 됐죠.”

-<말죽거리 잔혹사>(2004)로 영화에 데뷔한 동기는.
“이따금 대학로를 찾고는 했어요. 견학 겸 나들이 삼아. 1964년에 창단한 프랑스의 세계적인 극단이 서울서 공연할 때에는 단원들과 승합차를 빌려 타고와 단체관람을 하기도 했고. <말죽거리 잔혹사>는 서울에서 우연히 군대 고참을 만났는데 공교롭게 그 분이 유하 감독의 연출부셨어요. 그 분 권유로 ‘야생마’ 패거리 일원으로 출연했죠. 연극만이 예술이라고 고집했는데 영화 연기도 흥미로웠어요. 더 해보고 싶을 정도로.”

-<말죽거리 잔혹사> 엔드 크레디트에 이름이 조진웅이던데.
“연극이 아니라 영화여서 다른 이름을 쓰고 싶었어요. 새 출발의 의미를 새기고 싶기도 했고. 그런 중 앞으로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함자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자는 생각이 들어 예명으로 쓰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죠. ‘하다하다 이제는 내 이름까지 가져가냐’면서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어요. 할머니는 계속 반대하셨고.”

-<우리 형> 때 몸무게를 128㎏까지 찌웠다던데.
“바보 ‘두식’ 역인데 오디션이 3차까지 갈 만큼 경쟁이 치열했어요. 캐스팅된 뒤 안권태 감독이 기형적일 정도로 몸을 불리라고 하셔서 살 찌우고, 비슷한 체형의 자폐아를 찾아내 관찰하고, 정신과 자료도 탐독하고, 혼신을 다했죠. 덕분에 오라는 데가 많아졌지요.”

이후 영화 <비열한 거리> <폭력서클> <GP506> <마이 뉴 파트너> <쌍화점> <날아라 펭귄> <국가대표> <베스트셀러> 등과 드라마 <과거를 묻지 마세요> <솔약국집 아들들> <열혈 장사꾼> <추노>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등에서 단역·조연을 맡았다. 연기에 늘 갈증을 느끼면서도 출연작을 골랐고, 몸무게를 <마이 뉴 파트너>(2008) 때 78㎏,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2010) 때 120㎏, <퍼펙트 게임>(2011) 때 85㎏을 만드는 등 맡은 인물을 체화해 주목을 끌었다.

-뒤돌아 봤을 때 우선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면.
“20대 때 이미 스타가 된 권상우와 장혁을 보며 마니아층 배우에 불과한 데 자괴감을 느낀 적이 있어요. 조급함의 끝을 보인 거죠. 서른이 되는 게 버겁다는 푸념을 하면서 12월 31일 술을 잔뜩 마시고 잤는데 1월 1일에 깨어났을 때 그럴 수 없이 평온했어요. 거울을 보면서 ‘이대로도 멋있다’고 자평하면서 큰 선배님들의 주름과 세월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랬던 그는 <완전한 사랑> 촬영 때 디시인사이드 조진웅 갤러리로부터 ‘밥차’ 선물을 받았다. 자신의 출연작 관람권이 들어있는 티켓북 등과 함께. <뿌리 깊은 나무>는 장안의 화제를 낳았고 <범죄와의 전쟁>은 3월 31일 현재 468만587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관람했다. 조진웅은 “부산에서 연극할 때 배우들이 각자 자신의 대사를 쓰는 즉흥극 메소드를 3년간 했는데 어느 날 그 자료를 다 불태우고 새로 시작한 적이 있다”며 “저항적으로 연극에 심취했던 시절의 열정이 배우로 살아가는 데 뿌리”라고 했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게 계획”이라며 “언젠가는 내 이름을 찾고 8년 넘게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 “영화든 연극이든 대중의 공감을 얻는 게 중요하지만 배우로서 진정성을 잃지 않는 게 우선한다”며 “언제까지든 흔들림 없이 배우의 길을 가겠다”고 약속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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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성하(45)가 <화차>(감독 변영주)로 질주하고 있다. <화차>는 그가 영화와 인연을 맺은 지 15년여 만에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 지난 3월 8일 개봉, 24일 현재 200만9185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관람하는 등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택시 운전수, 배추 장사 등을 하면서 연기를 포기하지 않은 그는 ‘한 우물을 10년 이상 파면 반드시 생수가 나온다’는 경구를 되새기게 해준다.

<화차>(火車)는 결혼을 앞두고 사라진 여인(김민희)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조성하는 약혼녀를 찾아나선 남자(이선균)의 사촌형으로 출연했다. 비리 혐의로 옷을 벗은 전직 형사, 백수로 지내며 울분을 삼키는 인물이다. 마지못해 동생을 돕던 그는 전직 형사의 직감과 실력을 발휘해 ‘화차’(지옥행 불수레) 같은 여인의 충격적 삶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밝혀낸다. 

-<화차>의 어떤 점을 높이 샀는지요.
“출연작을 정할 때 가장 우선하는 게 작품이 지닌 힘이에요. 관객분들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의미있게 그렸는지를 중요하게 여겨요. <화차>는 소재는 무겁지만 그것을 영화적으로 흥미롭게 풀어냈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점이 좋았어요.”

-맡을 역할은 어땠나요.
“재미있는, 이 시점에서 해볼 만한,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대왕세종> <성균관스캔들> <욕망의 불꽃> 등 방송을 통해 인지도가 올라갔어요. 주로 신분이 높은, 많은 걸 갖춘, 번듯한 인물을 맡았죠. <화차>의 ‘종근’은 그 인물들과 상반돼요. 아무 것도 갖지 못한, 보잘 것 없는, 백수예요. 이렇게 풀어지고 망가진 가운데 바뀌어가는 인물이어서 도전하고, 해내고 싶었어요.”

-실제 백수시절 경험을 끌어왔는지요.
“연기할 때 저는 제가 맡은 캐릭터에 다가가요. 제게로 끌어오지 않아요. 3년쯤 ‘방콕’을 했으니까, 제 안에 있는 거니까, 그 시절 경험이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됐겠지만 그것 보다는 시나리오 속으로 들어가 ‘종근’이가, 바로 그 인물이 되려고 노력했죠.”

-배우로서 <화차>가 갖는 의미는 뭔가요.

“영화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이 <화차>예요. 캐릭터 영역을 넓힌 영화이기도 하고. 주연 배우로 팬·감독·작가 분들에게 조성하는 이런 면모의 역할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봐요.”

조성하는 배우로서 외모와 눈빛이 양가적인 매력을 지녔다. 밝은가 하면 어둡다. 냉정하고 날카로워 보이는가 하면 따뜻하고 우수 어려 보인다. 어떤 표정을 짓지 않아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떻게 건드리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사연을 봇물처럼 쏟아낼 듯하다. ‘꿀성대’라는 애칭이 말해주듯 목소리 또한 미성이라는 장점을 갖췄다.

-어떤 작품을 우선 하고 싶은지요.
“멜로에요. 40대 중년의 그들다운 사랑 이야기로 관객분들과 공감을 나누고 싶어요. 양조위 같은 느낌의 배우로. 중년 관객분들이 많아져 기획·제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봐요. 기회가 주어질는지 기다려 봐야죠.”

-<색,계>의 양조위인가요.

“<색,계> <화양연화>, <무간도>에도 멜코 코드가 있죠. <황해>와 <거미숲>에서 센 노출을 한 적이 있어요. 노출에서 중요한 건 그 장면의 절대성 여부예요. 이야기의 흐름상 절대성이 있으면 당연히 해야죠. 배우로서 해야 할 연기의 하나니까.”

많은 배우들이 그렇듯 조성하 역시 시작은 미미했다. 서울예대 연극과 85학번인 그는 졸업 후 롯데월드와 극단(전설)에서 뮤지컬·연극 배우로 활동했고, 영화는 이민용 감독의 <인샬라>(1996)로 인연을 맺었다. 북한 외교부 무관 ‘한승엽’(최민수)이 구출해 내는, 대사가 몇 마디밖에 없는 병사로 출연했다.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까지 가 배역 소화 외 스태프 일도 거들었다. 그리고 김태균 감독의 <화산고>(2001)에 ‘국어교사’로 출연했고 박경희 감독의 <미소>(2003)에서 주연급 조연을 맡으면서 본격 활동에 나섰다.

-배우는 언제부터 하려고 했나요.

“고등학교 때 연극반 활동을 했어요. 선배들이 미팅을 많이 시켜준다는 말에 끌려. 그러다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으면서 ‘이게 내게 맞구나’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까지 개근상도 한 번 받은 적이 없는데 연기로 상을 연거푸 받았거든요.”

-한때 포기하려고 했다면서요.
“서른셋, 넷? 그때 그만두려고 했죠. 15년 이상 한 일을 포기하려니까 힘들었지만 가장의 소임을 해야 하는 당면 과제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저의 팬이었던 아내에게 프로포즈할 때 돈을 벌 재주는 없다고 고백했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그런데 집사람이 ‘배우 조성하를 보고 살아왔는데 포기하면 기댈 구석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영화·드라마쪽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했죠.”

더불어 택시 운전수도 했다. 로버트 드니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택시 드라이버>(1976)가 떠올라서였다. 주위의 권유로 배추 장사, 경보기 장사, 화분 장사 등도 했다.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장사를 하면서 ‘동업을 하자’거나 ‘독립할 수 있는 자금을 대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매번 사양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고 아내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여의도와 충무로를 꾸준히 찾았다. 영화 <집행자>(2009)의 연쇄살인마와 드라마 <성균관스캔들>(2010)의 정조대왕이 한 배우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넓은 연기력을 보여주면서 ‘연기파 배우’로 자리를 잡았다. <파수꾼>(2010) 등으로 각광받고 <황해>(2010)로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배역의 비중을 고려하는지요.
“주인공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연극계에서 영화계로 건너오면서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갖가지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소화하자는 게 배우로서의 목표예요. 예전보다 중년 배우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는 데 감사해요. 앞으로 더욱 그럴 수 있도록 일조를 하고 싶어요. 중요한 건 주연이냐 조연이냐가 아니에요. 배우로서 연기를 얼마나 즐기면서 하느냐, 작품 속에 깊이 녹아들어 관객분들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공감을 나누느냐가 소중해요.”

<화차> 이후에 소개될 영화는 <온전한 도시>(감독 김문흠) <오백만불의 사나이>(감독 김익로) <비상(飛上):태양 가까이>(감독 김동원) 등이다. 조성하는 10개의 에피소드가 하나의 축을 관통하는 이색 스릴러 <온전한 도시>에서는 택시 기사, 샐러리맨들의 돈에 얽힌 에피소드를 그린 코미디 <오백만불의 사나이>에서는 한 회사의 상무, 전투 조종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액션·드라마 <비상(飛上):태양 가까이>에서는 비행단장 역을 맡았다.

 조성하는 “뭐도 한 철이라는 말이 싫다”며 “앞으로 출연작을 더욱 신중하게 정하겠다”고 했다. “식상하다는 말이 들리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거북이처럼 성실하게 배우의 길을 가겠다”면서. 조성하, 그는 배우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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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감독(45)이 질주하고 있다. 새 영화 <화차>(火車)로. 개봉 7일 만에 100만 명을 돌파, 벌써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발레교습소> 이후 7년 만에. 비장의 카드로 <화차>에 올라탄 변영주 감독의 개선행진곡을 들었다.
 


'선영'(김민희)이 결혼을 앞두고 사라진다.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수의사 '문호'(이선균)는 사촌형인 전직 형사 '종근"(조성하)과 함께 연인 선영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선영은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선영이 아니다. 지옥행 불수레 '화차' 같은 존재이다.

이 영화는 '미미 여사'로 불리는 일본의 인기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가 원작이다. 변영주 감독이 각색,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도 했다. 영화적 재미와 함께 신용불량, 파산, 사채, 개인 정보 누출, 1인 가구, 무관심 등 우리 사회의 첨예한 문제를 심도 있게 짚어냈다. <도가니> <완득이> <부러진 화살> 등의 뒤를 잇고 있다.


-원작을 읽은 게 언제인지요.

"2005년 이맘 때예요. 친구인 <발레교습소>의 신혜은 PD와 함께 경주에 갔을 때 읽었어요. 경주는 제 삶의 화두 같은 걸 묻고 풀어보는 소중한 공간이에요. 대학 3학년 때 <안녕하세요 하나님>(감독 배창호)을 본 이후로. 아무튼 서울을 떠나기 전 서점에서 서둘러 두 권의 소설을 샀는데 하나가 가네시로 카즈키의 <레벌루션 NO.3>이고 다른 하나가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예요."

<레벌루션 NO.3>는 <발레교습소>와 관련해 많은 반성을 하게 했다. <이유>는 미유키에 대한 궁금증과 그의 다른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변 감독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무작정 서점으로 달려갔다. 이때 구입한 소설이 <모방범>과 <화차>. 변 감독은 이후 미미 여사의 열혈 팬이 됐다.


-여러 작품 중 <화차>가 가장 욕심이 났나요.

"<화차>는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에요. 피해자가 자신과 유사한 인물을 골라 피해자로 만드는 걸 통해 당대의 사회적 문제를 극대화했죠. 그런데 원작이 영화화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았어요. 주변에서 부정적 의견이 강했죠. 한 유명 제작자께서 저보고 '미쳤냐'는 소리까지 할 정도로."


-그럼에도 왜 <화차>를 택했는지요.

"오기민·신혜은 PD가 미미 여사의 작품 중 영화 판권을 구입한 게 <화차>였어요. 판권은 대개 자국부터 해결하고 외국에 파는데 <화차>가 먼저 풀린 거에요. 판권 샀다는 얘기를 듣고 내게 맡겨 달라고 졸랐죠. 그런 중 시나리오와 연출 제의를 받고 정말 기뻤어요. 동시에 걱정도 적잖았죠. 공간과 시간 문제로. 원작은 1990년대 초를 배경으로 버블경제 붕괴로 인한 일본의 범사회적 이상 징후를 그렸는데 제가 만들어야 할 영화의 시공간은 현재의 서울, 한국이거든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왜 다들 반대했는지 알았어요."

-시나리오 작업은 얼마나 했나요.

"3년 넘게 썼어요. 원작의 힘과 정서를 어떻게 바로 지금의 이곳으로 가져오느냐가 관건이었죠. 사건을 의뢰하고 빠지는, 원작에 없는 문호라는 여자의 약혼자 캐릭터를 만들면서 돌파구를 찾았어요. 원작의 주인공은 경시청의 지혜롭고 유능한 형사에요. 그는 사건을 사건으로 추적, 세상의 비정함을 펼쳐내요. 영화는 여자를 사랑하고, 믿고, 그녀가 절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행복한 삶을 공유했던 남자예요. 제3자가 아니라 피해 당사자인 남자를 이야기의 축으로 놓으면서 바라보는 영화가 아니라 직접 체험하는 영화가 가능했죠. 그리고 형사는 문호의 조력자로 삼았어요. 엘리트가 아니라 남자의 사촌으로, 찌질이 전직 형사, 백수로 설정해 체험의 여지를 더욱 넓힐 수 있게 했어요."


-김민희에 대한 칭찬이 자자합니다.

"민희씨의 경우 즉흥적인 캐스팅이었어요. 선영이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분량이 적어 고민하던 중 우연히 민희씨 소속사에서 보내온 달력을 보고 연락을 했죠. 주변에선 '할까?' 했지만 전 확신했고, 실제로 곧바로 확답을 받았어요. 선영이 지문을 지우는 장면은 시나리오에 없었는데 민희씨의 연기력을 믿고 콘티를 짜면서 만들었어요. 상상에 맡기지 않고 직접 보여줘도 관객분들이 그 이상을 읽을 수 있을 거라고 봤거든요."


-투자받는 건 용이했나요.

"아니에요. 시나리오는 좋다고 하면서 들어오지 않아 애를 먹었어요. 이선균·김민희 등이 하겠다고 하는 데에도. 가장 큰 문제가 감독이 저 변영주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 중 20억원 미만의 영화를 만드는 필라멘토픽쳐스가 나서줘 기사회생했어요."

-순 제작비가 20억원 미만인가요.

"18억원이에요. 배우들이 출연료를 깎아줬죠. 흥행이 되면 보전받는 방식으로. 저도 연출료를 낮췄고, 믹싱·편집팀 등도 저렴한 비용으로 해줬어요. 원래 비 오는 장면이 엄청 많았는데 선영이 사라지는 고속도로 휴게소 외에는 다 날렸어요. 그 밖에 운영의 묘를 많이 살렸는데 실패한 적이 많은 감독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준 배우·스태프 덕분에 해낼 수 있었죠."

-촬영은 얼마나 했나요.

"70일 동안 54회 나갔어요. 용산역 외 대부분의 장면을 한 대의 카메라로 찍었어요. 돈이 없어서. 문호가 자동차의 사이드 미러를 발로 차 깨는 장면의 경우 감정 리허설만 열 번 하고 부수기 전에 '컷'을 외쳤죠. 돈도 돈이지만 시간과의 싸움도 힘겨웠어요. 배우·스태프의 스케줄 때문에 70일 이내에 끝내야 했거든요. 그래서 배우들이 감독의 말만 믿고 모니터를 보지 않기도 했어요. 저와 촬영감독과 PD는 매일 시뮬레이션을 통해 여러 대안을 준비해야 했고 ."

막바지 용산역 장면 촬영 때에는 그간 아꼈던 비용을 쏟아 부어 대형 장비 등을 총동원했다. 하지만 전면 통제가 불가능한 현장 상황 때문에 순서대로 찍을 수 없었다. 감정의 흐름을 타야 하는 배우들은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지만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해줬다. 덕분에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엔딩 장면 고민이 많았겠어요.

"여러 버전이 있었는데 현재 장면을 택했어요. 논리적으로는 아쉽지 않은데 감정적으로는 아쉬움이 남아요."


-원작의 제목을 그대로 썼습니다.

"제목이 60년대 영화 같은 느낌이 들고 뜻도 확 와닿지 않기는 해요. 영어 제목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헬프리스>(Helpless)인데 우리말 제목은 <화차>보다 나은 게 없었어요. 원작이 갖고 있는 미덕을 살리고, 열심히 홍보를 하면 관객분들이 알아주실 거라고 생각해서 <화차>로 정했어요."

-원작자는 영화를 봤는지요.

"일본어 자막을 단 DVD를 보여드렸는데 굉장히 마음에 드셔 하셨어요. 한국에 돌아온 뒤 미미여사의 메일을 받았는데 세 번째 보고 있다면서 소설을 쓸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으로 인간관계를 새롭게 조명한 점을 높이 사주셨어요. 초반부터 서스펜스가 넘치고 종국에 가서는 가슴 아픈 사랑을 다룬 영화라고 하시면서. 배우들도 칭찬하시면서…."


변 감독은 <화차>의 선영에 대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주변의 이웃"이라고 했다. "<화차>를 어떻게 보셨든 보신 게 맞다"면서 "다만 평소에 무심하게 지나쳤던 주변과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되면 더할 나위가 없다"고 피력했다.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기원한다"면서. 변 감독은 또 "데뷔 이래 처음으로 연출을 의뢰하는 시나리오가 들어오고 있다"며 "다음 영화는 내년에 준비해 내후년에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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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현 감독이 새 영화 <가비>를 내놓는다. <황진이> 이후 5년 만이다. <황진이>에 이어 <가비>도 사극이다. 영화의 오락적·사회적 기능을 지녔다. 한양대 전기공학과 재학 중 독립영화 <오! 꿈의 나라>(1989)와 <파업전야>(1990) 공동연출로 영화와 깊은 인연을 맺은 그는 "격동기의 우리 역사를 다뤄보고 싶었다"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와 보여주고 싶은 영상이 잘 살았다"고 자평했다. "후회하지 않는 선택인데 그 길은 험난했다"면서. 장윤현 감독의 <가비> 만들기를 들었다.

 

가비(加比)는 커피의 영어발음을 딴 고어다. <가비>는 커피와 고종 독살 작전에 얽힌 비화를 극화했다. 실화에 상상력을 더했다. '고종'(박희순)과 일본의 고종 독살 작전에 끌려들어간 연인 '일리치'(주진모)와 '따냐'(김소연)의 이야기를 그렸다. 군왕으로서 나라를 다시 세우려고 모색하는 고종, 고종을 죽이고 연인을 지키려는 일리치, 두 남자의 꿈을 공유하는 따냐의 이야기가 흥미롭고 영화적 의미 또한 남다르다.

-다시 사극이네요.

"격동기의 우리 역사를 다뤄보고 싶었어요. <황진이>를 끝내고 여러 영화를 구상했는데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솔직하고 진중하게 한 시대를 돌아보는 의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 <가비>를 선택했죠. 역사적 이야기는 제작비가 많이 드는데 <황진이>의 경험을 살려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데에도 자신감이 있었어요."


-왜 <가비>였나요.

"커피를 워낙 좋아해요. 헝가리 유학시절부터 엄청 마셨죠. 편집 등 후반작업 때에는 하루에 열 잔 넘게 마셨어요. 아무튼 고종은 한국인 가운데 최초로 커피를 마시고 즐긴 분이에요. 왕으로서 지극히 보수적이었을 것 같은데 신문물을 먼저 즐겼다는 게 흥미로웠죠. 그와 관련해 벌어졌을 것 같은 사건들이 궁금했고. 김탁환 씨의 <노서아 가비>를 읽고 고종에 대해 공부하면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렬해졌어요. 고종에 대해 나도, 주변도 모르고 있는 흥미로운 사실이 정말 많았거든요."

-하지만 두 남녀의 러브스토리가 더 비중 있어 보입니다.

"고종과 커피 이야기에 부정적인 투자사 측의 의견을 감안, 다양한 인물을 배치시키고 아주 진한 사랑 이야기를 담았어요. 고종과 백척간두의 한반도와 커피, 고종 독살작전, 두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조율하느라 무진 애를 먹었죠. 덕분에 고종과 커피를 둘러싼 삶과 죽음, 애절하고 감동적인 사랑, 가슴 아픈 역사, 액션과 판타지가 고루 섞인 작품이 나왔어요."


원작 <노서아 가비>는 따냐라는 바리스타 개인의 이야기 비중이 높다. 장 감독은 고종과 커피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자본은 커피와 음모,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를 원했다. 이에 따라 장 감독은 2007년 말부터 2010년 말까지 무려 900여 일 동안 시나리오 수정을 자그만치 200회나 했다.


-어디까지가 실화인가요.

"1896년 아관파천부터 1897년 다시 경운궁으로 돌아오기까지 고종의 타임 스케줄에 따라 타냐와 일루치, '사다코'(유선) 등 가상의 인물 이야기를 폭넓게 가감했어요. '별입시'는 실제로 있었어요. 고종은 사조직 별입시를 활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무기구입도 시도하면서 중립국 선포 등을 모색했죠. 경운궁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 지금의 국정원에 해당하는 '익문사'를 만들었는데 근간이 별립시에요. 독립문을 세우고, 우주만물의 원리를 형상화한 태극기 문양도 직접 고안하는 등 고종은 나약한 군주가 아니었어요."

 


-독살 음모는 픽션인지요.

"아니에요. 가비는 검고 쓴 맛이 강해 독을 타는 데 이용되기도 했대요. 실제로 러시아 공사관에서 통역관으로 근무한 '김홍륙'(박혁수)이 커피에 마약을 탔고, 고종은 냄새가 이상하다고 마시지 않았지만 세자는 마신 걸로 알려져 있어요. 러시아측 인물인 김홍륙이 왜 마약을 탔는지, 일본의 사주를 받지 않았나 싶어요."

-촬영은 얼마나 했나요.

"5개월 좀 넘게 찍었어요. 전국 16개 지역을 비롯해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찍었죠. 총 촬영회차는 61회예요. 아관파천 시기인 만큼 미술·세트·의상을 통해 다양한 영상을 담아내느라 배우·스태프들이 고생 많이 했어요. 러시아 공사관, 증기기관차 등 10여 개의 세트를 제작했고, 조선·러시아·일본의 문화적 특색을 담아낸 80여 종의 복식과 분장, 헤어스타일을 살려냈죠. 조선 최초의 커피문화도 표현해 냈고. 별도로 공개한 미니 다큐는 러시아 공사관 내의 커피실, 복도, 고종의 집무실과 거처 등의 3D 미술콘티를 완성된 영화의 세트와 비교해서 한 눈에 보여줘요."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요.

"순제작비가 51억원이에요. 70~80억원쯤 든 걸로 보인다는 말을 들어요. 예산의 한계를 딛고 하고 싶은 이야기와 보여주고 싶은 영상을 잘 살려냈다고 봐요."

-영화가 묵직해요. 고전영화처럼.

"시대배경, 인물, 목숨을 바치는 사랑 등으로 인한 것 같아요. 복합장르적 유연성이 좀 떨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요즘 사극이 인기인데요.

"고마운 현상이라고 봐요. 한국이 많이 발전했는데 돌아봐야 앞으로 더 멀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비>는 커피에서 시작한 영화인데 만드는 동안에 구한말 역사에 대해, 고난의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 느낀 점이 많아요. 역사가, 나라가 아프면 사람도, 사랑도 아프죠. 역사가 힘들면 나도 힘들고. 국호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에서 시작됐어요. 고종의 구한말은 지우고 싶은 역사가 아녜요. 우리 역사인데 우리 기록은 빈약해 영화를 만들면서 일본 자료를 많이 참고해야 했어요. 더욱 돌아보고 연구하고 잊지 말고 가야 할 역사라고 생각해요."

<가비>는 영화 말미에 한국 최초의 커피숍에 해당하는 덕수궁의 정관헌(靜觀軒)에 대해 말한다. 정관헌이 만들어진 게 일루치와 따냐 등 어떤 인물과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고 암시한다. 커피 마니아로 고종의 커피 이야기 등을 쓴 에세이집 <외로워서 완벽한>도 출간하는 정 감독은  "사랑이 행복해질 수 있는 이유가 두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역사와 함께 둘러보면 좋을 것"이라며 "<가비>(개봉 3월 15일)를 통해 영화적 재미를 맛보고 정관헌도 찾아가 보는 등 역사를 다시 읽는 시간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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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21 11: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제작비가 51원이에요. <<수정하셔야 할듯요.

<부러진 화살>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해를 품은 달>. 배우 김응수(51)의 요즘 출연작이다. 제목만 보면 알 수 있듯 세 작품 모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김응수가 나오면 히트한다’는 세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는 1981년부터 극단 동랑레파토리와 목화에서 활동했고, 서울예술대학과 세계적인 거장으로 손꼽히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1926~2006)의 일본영화학교를 졸업했다. 영화배우로 활동한 지 올해로 16년째를 맞은 김응수의 남다름과 특별함을 들었다.

<부러진 화살>에서 교수(안성기)에게 석궁 화살을 맞았다는 판사,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로비스트(최민식)에게 뇌물받고 그의 뒤를 봐주는 고위 검사, <해가 품은 달>에서 왕(김수현)에게 맞서는 영의정. 공교롭게 세 배역 모두 악역이다.

-찬사와 더불어 욕도 많이 먹죠.

“친구들까지 악역 운운하는데…. 세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소개된 데에다 히트하는 바람에 악역 전문으로 비치는데 실제로는 선한 역할이 훨씬 많아요. <싸인> <나쁜 남자> <추노> <타짜> <그때 그 사람들> <선생 김봉두> <바람난 가족> 등 히트작도 많고. 최근 동네에서 맥주를 사는데 손등이 다 트신 계산대 아주머니가 ‘부러진 화살 잘 봤다’고 하시더군요. 순간 그 동안 들은 욕이 싹 달아나는 것 같았어요. 영화·드라마 등을 통해 그려지는 ‘분노의 미학’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체화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봐요. 어쨌든 요즘 정도전의 <답전부>(答田父)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부귀영화에 연연 않고 열심히 사는 그런 촌부 역할을 빨리 만나고 싶네요.”

<답전부>는 고려말 정도전(1342~1398)이 지은 문답 형식의 글이다. 정도전이 귀양살이를 할 때에 그곳에서 만난 농부와 나눈 대화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펼쳐 냈다. 김응수는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아버님 뜻에 따라 한학을 공부했다”면서 “인성 교육을 위해 한문 교육을 다시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욕을 먹는 건 그만큼 연기를 잘 했다는 거지요.

“배우로서 기쁘고 긍지를 느껴요. 악이 돋보여야 선이 빛을 발하거든요. 그런데 선악의 기준은 주체의 관점에 따라 달라져요. 박봉주 판사, 최주동 검사, 영의정 윤대형은 남들에게는 악인이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선이에요. 연기할 때에 그 점을 중시해요. 표현의 무기는 눈이에요. 눈에 그 사람을 담아요. 저로서는 모두 선을 그리지만 그것이 타인의 눈에는 선과 악으로 나뉘죠.”

-출연작마다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출연·제작진이 최선을 다한 결과지요. 간혹 ‘운이 좋다’고들 하시는데 전적으로 공감하지 않아요. 작품을 잘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한 작품이 히트를 친 거니까요.”

-작품 선택 기준은 뭔가요.

“한 마디로 ‘재미’에요. 그 재미는 삶의 희노애락이 진정성 있게 담겼느냐에 달려 있죠. 우선 그 점부터 살피고 내가 맡을 인물을, 상대방과의 밸런스를 봐요. 저보다 주인공이 더 돋보여야 해요. 나는 작품의 밀알이 되고 빠지는 게 맞아요. ‘뜨고 싶다’는 욕망이 앞서면 망한다고 봐요. 작품은 아닌데 캐릭터는 돋보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인물이 탐나도 재미가 떨어지면 스케줄 등을 핑계로 사양해요. 거절하는 작품이 많은데 그때마다 안타까워요.”

-연기력의 힘이 어디에서 나온다고 보나요.
“콤플렉스예요. 명문고 졸업해서 부모님 기대대로 판검사 못된 콤플렉스가 저의 창조력의 원동력이에요.”

군산 제일고 시절 김응수는 부모의 기대와 달리 소설가가 되기 위해 문예창작학과에 가고 싶었다. 서울서 재수를 하면서 종합예술에 매력을 느껴 연극영화과를 지망했다. 아버님은 ‘부자의 인연을 끊자’고 하셨다. 7년 전 돌아가실 때까지 아들의 출연작을 한 편도 보지 않으셨다. 아들을 볼 때마다 ‘니는 테레비에 언제 나오냐’고 하시던 어머님은 아들이 나온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른다. 김응수는 “이게 효도구나 했다”면서 “솔직히 드라마 계속 하는 건 그런 점도 있다”고 털어놨다. “진즉 했으면 아버님도 쉽게 보시고 좋아하셨을 것 같다”며 “하늘에서 보고 계신다고 생각한다”고 읊조렸다.


김응수는 또 독서와 관찰을 연기의 힘으로 꼽았다. “고전과 인문학 서적을 두루 읽고 아침에 일어나면 시를 읽으면서 발성연습을 한다”고 했다. “특히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좋아한다”며 “사기에는 인간군상이, 영화상의 캐릭터가 다 있다”고 소개했다. “인간을 많이 알면 알수록 연기하는 데 도움이 돼 관찰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서 “연기철학이 정직하자, 거듭 연습하자, 인격를 갖추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뒤늦게 일본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대학 1학년 때 오디션을 거쳐 동랑레파토리에 들어갔고 졸업한 뒤 창작극만 올리는 목화에서 활동했죠. 목화 시절 꽤 이름을 날렸지만 연극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어 서른 살에 모든 걸 뒤로 하고 일본으로 영화 공부를 하러 갔어요. 당시 일본은 유명 국제영화제 상을 휩쓸고 자국 영화 편수도 할리우드보다 많았거든요. 7년 간 연출 공부를 하면서 인간에 대해 진실하게 탐구하는 자세와 열정을 배운 게 저의 소중한 자양분이 됐어요.”


-연출은 않고 배우만 하고 있는데요.
“영화 데뷔작이 3학년 재학 때 일본에서 찍은 <깡패수업>(1996)이에요. 연출부를 하면서 한국인 술집의 웨이터로 출연했는데 이때 맺은 인연으로 귀국한 뒤에 계속 배우를 하게 됐어요. 재미있고, 경험과 인맥도 두터워지고, 모두 저의 자신이죠.”

-집에 ‘술방’이 따로 있다고 하던데요.

“서제와 통하는 조그만 방이에요. 술을 좋아해요. 직접 만들어서 마시기도 해요. 한약재 하수오, 약초 야관문 등을 넣어 저도 마시고 주변에도 줘요. 술은 제게 일종의 ‘씻김굿’이에요. 술자리에서 캐스팅된 경우도 많아요.”


다음 작품은 영화 <미스터 고>(감독 김용화)와 <나는 왕이로소이다>(감독 장규성), TV드라마 <각시탈>(연출 윤성식) 등이다. 김응수는 “신이 창조한 최고의 예술품이 여자”라면서 “하반기부터 20대 여자들을 주인공으로 노자(老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을 담은 영화 연출 준비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5공화국에서 용공으로 몰아붙인 군산 제일고의 ‘오송회 사건’도 영화로 만들고 싶다”기원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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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마틱 퍼포먼스 <자유부인 2012>. 변혁 감독(46)이 영화와 무용을 접목해 만든 새로운 장르의 작품이다. 영화와 무용이 제각기, 그리고 한 데 어울어져 남다른 감흥을 자아낸다. 변혁 감독은 “영화의 역사는 현실성 획득의 역사”라며 “앞으로 씨네마틱 퍼포먼스 같이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들이 예술사의 가까운 미래를 책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변혁 감독의 영화 만들기.


무대 오른쪽 상단 한 켠에서 신혼 부부의 아침 일상이 영상으로 소개된다. 극중의 남편이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와 무대에 선다. 그가 선 곳은 실제 무대이다. 이 무대에서 영화 속 인물들의 다양한 춤 공연이 펼쳐진다. 출연진이 이처럼 스크린과 무대를 넘나든다. 공연 도중 고 한형모 감독의 영화 <자유부인>(1956)도 상영된다.

영화(2D)와 무용(3D), 두 장르의 동거동락(同居同樂). 변혁 감독(성균관대 영상학과장)은 2010년 복합장르 멜로드라마 <자유부인 2010>을 선보였다. 씨네마틱 퍼포먼스 <자유부인 2012>은 이 작품의 새 버전이다. 오는 3월 15일부터 17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인다. 변 감독이 각본·연출, 정의숙 단장(아지드현대무용단)이 안무를 맡았다.


-우선 ‘씨네마틱 퍼포먼스’에 대해 설명해 주시죠.

“공연 같은 영화, 영화 같은 공연을 뜻해요. 무대로의 확장을 꾀한 영화죠. 공연만의 현재성과 동시성을 영화 언어의 환상·초월성과 접목했다고 할까요. 영상언어와 몸의 언어를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극장(공연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네요.

“씨네마틱 퍼포먼스의 목표가 바로 그 점이에요. 영화는 현실을 재현할 방법을 찾아 끊임없이 발전해 왔죠.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흑백에서 컬러로, 이제는 3D·4D 등등…. 씨네마틱 퍼포먼스는 그 궤도상에 있어요. 무대에서 상영·공연되는, 안경 안 쓰고 보는 입체영화예요. 극장에서 봐야지 제 맛을 음미할 수 있어요.”

-무대도 여러 각도에서 보여줍니다.

“이제까지 공연에서 관객은 무대 정면만 바라봤죠. 씨네마틱 퍼포먼스에서는 여러 각도의 카메라 시점과 다양한 크기의 영상을 통해 무용수들의 머리 위도 내려다 볼 수 있어요. 갖가지 표정과 미세한 떨림, 손동작과 손가락의 미묘한 변화도 볼 수 있고. 뿐만 아니라 공연의 이야기 구조도 영화의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어요. 춤의 접근성이 높아져 극적인 재미를 더욱 느낄 수 있죠.”

-왜 춤을 택했는지요.

“춤은 말(대사)이 필요하지 않아요. 만국 공통이죠. 글로벌 콘텐츠를 만드는 데 가장 주효한 장르예요. 초기 무성영화의 연장선에 있고, 회화나 설치미술 등 현대예술에 영상이 접목되는 경향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는데요, 정적인 조형예술에서보다는 동적인 무대예술에서 그 시너지 효과가 더 크다고 봅니다.”


-그럼 영화로 <자유부인>(1956)을 선택한 이유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주제를 지녔어요. 대사가 없어도 공유할 수 있는. <자유부인>은 춤바람을 통해 자유와 사랑을 다뤘는데 <자유부인 2012>에서는 자아 실현을 그릴 거에요. 양장점에서 일하는 원작의 주인공이 이번 영화에서는 패션계의 커리어우먼이에요. 영화팀이 찍은 패션쇼 기획 장면 등이 나오고 무대에서는 모델 한혜진 등이 나와 패션쇼를 보여줘요. 원로배우 박정자 선생이 내레이션을 맡았고, 막바지에 나이먹은 ‘자유부인’으로 무대에 등장해요. 춤도 추시고.”

-어떤 점이 힘들었나요.

“초기에 ‘왜 영화 하다가 딴 짓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마다 ‘이게 얼마나 영화적이냐’고 생각했어요. 춤과 영상의 조율·조화도 안무팀과 기획의도를 근간으로 작품의 지향성에 대한 공감의 폭을 넓히면서 풀어낼 수 있었고요.”


변 감독은 <자유부인 2010>에 이어 지난해 복합장르공연 <윤이상을 만나다>를 내놓았다. <윤이상을 만나다>는 고 윤이상 선생의 인터뷰 필름과 음악, 그리고 무용을 엮었다. 변 감독은 <윤이상을 만나다>에 대해 “다큐멘터리의 무대화를 꾀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대한민국무용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받았다. 무용계의 오스카 상으로 불리는 세계무용대전(Benois de la Dance)에 노미네이션되어 오는 5월 러시아 볼쇼이 국립극장에서 초청공연된다.

-<70mk>(70 million Koreans)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7000만 한국인>이라는 초대형 인터뷰 프로젝트예요. 거대한 한국인의 지형도를 그릴 거예요. 프랑스의 다큐멘터리계 거장이자 항공 사진작가인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은 전 지구적 인터뷰 프로젝트 <70억의 다른 사람들>이라는 <7bo>(7 billion Others)를 진행하고 있어요. 사업을 주도하는 굿플래닛재단과 업무협약서를 체결하고 프로젝트를 시작했지요. 여성·환경·교육·기아 등을 주제로 인터뷰들을 하고 있어요. 2~3년 안에 전시 형태로 소개되길 희망하지만 솔직히 몇 년이 걸릴는지 아직 예상할 수 없습니다.”


-극영화 연출 계획은 없나요.

“학교에 있다는 핑계로 게을렀었나 봅니다. 올해가 안식년이에요. <자유부인 2012> 공연 마치고 러시아에 다녀온 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려고 해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BPP에서 지원받은 프로젝트를 포함해 몇 개 기획이 모두 합작영화예요.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서래마을 영아 유기사건을 다룬 <악의 꽃>(가제)이에요. 지난해에야 재판이 끝나서 이제 본격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프랑스와 합작으로.”

변혁 감독은 뉴미디어 시대의 복합콘텐츠의 연구를 위해 인물·예술·공학이 함께하는 트랜스미디어 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변 감독은 “장르간 교류·융합(트랜스 미디어)은 앞으로 더욱 다양해지고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유부인>과 <윤이상을 만나다> 등 시리즈로 만들어 레퍼토리화하고 있는 콘텐츠들이 ‘드라마를 근간으로 하는 총체극의 전범’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변혁 감독의 ‘장르 허물기, 다시 쌓기’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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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만이다. 배우로 데뷔한 뒤 장편 극영화 주연을 맡은 게, 이 작품으로 폭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게. 배우 박원상(41)이 ‘법정 실화극’ <부러진 화살>(감독 정지영)의 열혈 변호사 ‘박준’으로 각광받고 있다. 마음을 비우고 기다린 덕분에, 박원상을 버리고 박준으로 달려든 데 힘입어. 박원상의 ‘부러지지 않은 화살’.


박원상은 최근 동숭동의 한 술집에서 자신을 알아보고 다가온 낯선 50대 아주머니의 충정에 가슴이 찡했다고 했다.
“<부러진 화살> 잘 봤어요…. 술 많이 드시지 마세요. 건강 헤치면 좋은 연기 못 보게 되잖아요….”

<부러진 화살>에서 박 변호사는 자책감을 술로 잊는다. ‘장은서’ 기자(김지호)의 중재로 ‘김경호’ 교수(안성기) 사건을 맡은 뒤 술을 끊고 변론에 최선을 다한다. 기대했던 특집 방송이 불방되자 화가 나 다시 술을 찾는다. 최종 변론을 통해 사법부에 일침을 놔 극중 방청객은 물론 극장 객석에서도 박수를 받는다.


-술 마시면서 찍었나요.

“물 마셨어요. 동료들 중에서도 몇몇은 정말 술 마시고 했느냐고 묻던데 홍조 띤 낯색은 전적으로 메이크업이에요.”

-캐스팅이 확정될 때까지 마음 졸였지요.

“아뇨. 후보라는 이야기는 이은 대표(명필름)에게 들었어요. 중간중간 누구누구를 섭외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고. 확답을 못 듣는 건 정지영 감독님께 신뢰감을 주지 못한 결과라고, 당연하다고 여겼어요. 그런 중 이은 대표가 감독님과 만나자고 했을 때 ‘제가 하는 거에요? 정말?’ 하고 반문했어요. 뜻밖이었거든요.”


시나리오는 2010년 가을에 일찌감치 받았다. 그런데 캐스팅을 위한 게 아니었다. 이 대표는 박원상에게 백기완 선생의 노래에 얽힌 인생 이야기를 그린 소극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 서는 법이다> 구성·출연·연출을 제안하면서 <부러진 화살>이 영화로 어떨는지 의견을 달라고 했다.


-어땠는지요.

“초고였어요. 120 신(scene)이 넘는. 출연한 작품은 80여 신이에요. 법정드라마여서 선입견이 있었는데 여느 작품과 달랐어요. 술술 한 번도 쉬지 않고 읽었거든요. 법정 장면이 더 좋았어요. 더 속도가 붙고 재밌고. 다음 날 전화 드렸죠. 요대로 찍어도 좋겠다고.”

-출연 확정은 언제 됐나요.

“크랭크 인 보름 쯤 전(정 감독은 상대 배우 안성기에 맞춰 톱스타를 원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에요. 그리고 3~4월 두 달 동안 일사천리로 찍었죠. 촬영 회차가 23회밖에 안 돼요.”

-○○○은 하려고 했는데 소속사 반대하는 바람에 다른 작품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가 VIP 시사회 때 악수하면서 손에 힘을 꽉 준 건가?”

-정 감독께서 원상씨에게 ‘연기로 복수해 달라’고 하셨다는데.

“감독님이 열심히 잘 하라는 말씀을 에둘러 하신 거죠. 그 말씀에 가슴이 뭉클했어요. 감독님 처음 뵈었을 때 진심으로 감사드렸고 기대에 부응하자고 다짐했죠.”


-생존 실존 인물인데 부담스럽지 않았나요.

“시나리오상의 인물을 연기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감독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창원 가서 굳이 만나볼 필요가 없다고 하시면서.”

-만났지요.

“한 번 뵈었어요. 어느날 불쑥 뵙고 싶어서 감독님께 말씀 드리지 않고 내려갔죠. 공판 기록도 받아오고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인연이 묘했어요. <부러진 화살>에서 박준 변호사가 앞장섰던 자동차 노조 사건을 다룬 단편 <빗방울 전주곡>(2003)에 해직 노동자로 출연했었거든요.”

-박훈 변호사에게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성격이 시원시원해 금방 친해졌어요. 이후 촬영장에 오시겠다고 전화를 몇 번 주셨는데 그때마다 당부드렸죠. 오시지 말라고. 최종 변론 장면 촬영 때에는 간곡히 말씀드렸어요. 오시면 촬영하지 않고 그냥 가버릴 거라면서.”


-법정 장면 촬영은 어땠나요.

“쉽게 갔어요. 법정 장면은 촬영 막바지에 일주일 간 몰아서 찍었는데 체력이 바닥나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게 오히려 도움이 됐죠. 여유가 있었으면 군더더기가 붙거나 자칫 오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감독님이 정리해 주셨겠지만. 감독님과 작업한 게 처음인데 군더더기 없고, 템포감 빠르고…. 많이 배웠어요.”

-첫 주연 영화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부러진 화살> 관계자, 관객 모두에게 감사드려요. 안성기 선배님, 문성근 극단 ‘차이무’의 직속 선배님, <하얀전쟁>(1992) 등을 보고 존경했던 이경영 선배 등과 대사를 주고 받은 게 믿기지 않아요. 행복한 인생입니다.”

박원상은 <부러진 화살>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영화 출연 후 이렇게 많은 글을 대하는 게 처음”이라며 “설왕설래 난상토론이 벌어지는 걸 고맙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몇 프로(%)가 사실이다 아니다 등 핵심에서 벗어난 소모적인 논쟁도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는 과정의 하나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어 “진실은 덮으려고 한다고 덮어지는 게 아니다”며 “권위는 주변의 인정이 뒤따라야 진정성을 지닌다”고 역설했다.


박원상은 숭실대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고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졸업 후 연극 <운명에 관하여>의 1인 7역으로 주목받은 뒤 ‘차이무’의 <비언소> 등에 출연했고 <행복한 가족> <양덕원 이야기> 등을 연출했다. 요즘 배우와 연극 연출가로 활동한, 2008년 세상을 떠난 박광정 추모 연극 <서울노트>(2~12일, 대학로 정보소극장)에 변호사로 출연하고 있다. 그림을 상속받은 여인의 기증을 도와주는 변호사다. 이와 함께 케이블 OCN에서 오는 3월부터 방영 예정인 <히어로>에서 양동근 등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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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민식(49)이 떴다.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의 전성시대>(개봉 2월 2일)로. 그가 맡은 인물은 허풍과 허세, 달변에 궤변, 혈연과 지연과 뇌물, 잔머리와 완력으로 수완을 발휘하는 ‘로비의 달인’. 능글맞지만, 비굴하고 비열하기도 하지만, 밉지만은 않다. 최민식은 맡은 인물로 변신하기 위해 10㎏ 이상 살을 찌우고, 5개월간 부산 사투리를 익혔다. 최민식의 ‘영화와의 전쟁’.


최민식은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최익현’이다. 그는 세관 공무원이었다. 뒷돈 받고, 밀수품도 빼돌리던 그는 비리 혐의로 옷을 벗는다. 이후 남다른 친화력과 로비 능력으로 ‘최형배’(하정우)가 이끄는 부산 최대의 건달 조직에 똬리를 튼다. 일반인도 건달도 아닌 이른바 ‘반달’이지만 넘버 원을 넘본다.

-실화처럼 구성했는데요.

“완전 픽션이에요. 윤종빈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어요. 모진 세월을 살아내야 했던 아버지 세대들 시절이 다시 돌아오는 느낌을 받고. 초고 시나리오가 엄청 두꺼웠는데 술술 읽혔어요. 나중에 읽은 완고는 더 좋았고.”

-어떤 점에 끌렸나요.

“자기 방식으로 충실하게,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농담 같은 이야기, 구전되는 이야기에 가까워요. 무늬는 건달영화인데 속은 지독하고 처절한 삶을 다룬 서사 드라마에요. 전형적인 캥스터 무비가 아니에요. 마초들의 삶, 조직간의 암투를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어요. 그런 작품이었으면 안 했을 거에요.”

 


-‘최익현’이 밉지만은 않아요.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죠. 풍전등화의 삶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살아내는 놀라운 생존력을 보여줘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낮술에 취해 복덕방에서 허세 가득한 과거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아저씨들 모습이 떠올랐어요. 돌아가시는 쓸쓸한 뒷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짠함이 뭉클거렸고.”

-전작들의 캐릭터가 조금씩 밴, 그것들이 한 데 어울린 처음 보는 인물이에요.

“이제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인물이에요. 그래서 도전해 보고 싶은 매력을 느껴죠. 평소 폼나게 살고 싶은데 그럴 능력은 없는, 그럴수록 발버둥을 치는 인물의 겉과 속을 그려보고 싶었거든요.”

-10㎏ 늘리고 부산 사투리도 익혔는데요.

“극중에 나오듯 최익현은 주위 사람들과 먹고 마시는 걸 좋아해요. 업무에 활용하고 몸매 같은 데 신경 쓰지 않아요. 그런 둥글둥글한 아버지가 연상돼 촬영 앞두고 최익현처럼 먹고 마셨어요. 사투리는 <악마를 보았다>에 형사로 출연한, 이번 영화에도 나오는 후배에게 배웠어요. 부산 출신이거든요.”


-진짜로 때리고 맞았다고요.

“그게 사실감도 넘치고 편해요. 여리고 착한 한 후배의 경우 절 못 때리는 바람에 자꾸 NG가 났죠. 그래서 ‘제대로 때려라, 연기잖아’라고 꾸짖었더니 정중히 ‘때리겠습니다’ 하고 때리더군요. 제대로 맞았고, 바로 오케이가 났죠.”

-술주정 연기도 진짜로 마시고 했나요.

“아뇨. 진짜로 마시고 취하면 내가 드러나서 안 돼요. 캐릭터에 맞춰 연기를 해야 하는데. 그리고 그 날 그 장면만 찍는 게 아네요. 다른 장면도 찍어야 해 마시면 안 돼요. 굳이 마실 필요도 없고.”


-<구로 아리랑>(1989)으로 데뷔하셨는데요.

“심의 때 스물네 커트를 잘라야 했어요. 오래전에 없어진 아세아극장 한 곳에서만 개봉됐고. 만감이 교차했죠. 정말 진지했고 열정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쳤던 시절인데 영화를 둘러싼 환경은 턱없이 열악했어요.”

-아쉬운 작품은.

“<파이란>(2001)이에요. 완성도가 뛰어난데 대중과의 소통에선 참패했거든요. 예전에 폐관된 시네코아에서 개봉했고 1주일 만에 내렸어요. 큰 배급사에서 맡았으면 크게 성공했을 거에요. DVD는 인기가 좋았거든요. 촬영 당시 엄청 추웠어요. 촬영장에 구경꾼이 없을 정도로. 30년 만에 온 추위라고 했거든요.”

당시 빅히트작이 <친구>. 최민식은 <친구> 출연제의를 사양했다. 사양했던 또다른 히트작은 <공동경비구역JSA>(2000). <쉬리>(1999)에 이어 또 인민군을 하는 게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민식은 “남·북한 군인들이 닭싸움 하는 장면 등이 볼 때마다 짠하다”며 “출연하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 털어놨다.


-<올드보이>는 어떤가요.

“여러 사람이 행복했던 작품이죠. 수익도 올리고 상도 받고. 결과는 그랬지만 촬영 당시 육체적·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특히 펜트하우스 장면 찍을 때에는 ‘레디 액션’ 하는데 잠들어 있을 정도였어요.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돈 구하느라 동분서주하는 제작사 대표 보면서 정신적 스트레스도 심했고. 후반부 근친상간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시나리오를 안 보여줬고, 그 장면 없애면 돈 대겠다는 데 맞서 십시일반으로 겨우 맞췄거든요.”

<올드보이>는 칸국제영화제에 처음에는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경쟁’ 부문으로 돌렸고,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최민식은 <꽃피는 봄이 오면>(2004) 촬영 중 연락을 받고 뒤늦게 칸에 합류했다. 최민식은 “상 받고 모두 울었는데 연기 인생에 그런 작품 또 할 수 있을는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하고 싶은 영화는.

“멜로영화에요. 새로운 시각으로 인물과 시대를 담아낸 중년의 멜로를 하고 싶어요.”

최민식은 <해피엔드>(1999) <취화선>(2002) <주먹이 운다>(2005) <악마를 보았다>(2010) 등 그간 출연작을 들면서 “관통하는 선정 기준은 연민”이라고 했다. “영화의 장르나 맡은 인물의 선악을 떠나 연민을 낳는 이야기를 작가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적 언어로 풀어낸 작품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싶다”고 역설했다. “윤종빈 감독과 촬영기간 내내 지겹도록 나눈 영화의 기획의도와 메시지가 관객분들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면서 “훗날 3시간 40분짜리 감독판 DVD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고 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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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다. 배우 황정민(41)이 ‘황정민’을 보여준다. 영화 <댄싱퀸>에서. ‘황정민’은 <댄싱퀸>의 남자 주인공. 수입이 변변찮은 인권변호사로서 한 정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되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너는 내 운명>(2005)의 ‘석중’, 장안의 화제가 된 ‘밥상’ 수상소감 등을 떠올리게 한다. 황정민이 털어놓은 ‘황정민’과 황정민.


황정민은 영화 <댄싱퀸>(감독 이석훈·제작 JK필름)에서 ‘황정민’이다. ‘황정민’의 아내 ‘엄정화’도 엄정화가 맡았다. ‘황정민’과 ‘엄정화’는 초등학교 때 한 반이었다. 황정민은 계원예고 동기동창인 뮤지컬 배우이자 제작자인 김미혜와 2004년 결혼했다. ‘황정민’은 경상도 남자, 황정민은 마산 출신이다.

-시나리오에 ‘황정민’이었나요.
“네. 시나리오 회의 당시 사무실에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그걸 계기로 저랑 정화라는 이름을 썼다더군요. 캐릭터에도 반영했고. 촬영을 앞두고 바꾸는 걸 고려했다가 백지화했어요. 너무나 익숙해진 데에다 새로운 시도이고 관객에게 또 다른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중간에 한 번 바꿔봤는데 이미 젖어 오히려 어색했어요.”

-연기할 때 어땠나요

“재미있게 했어요. 엄정화랑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과 <오감도>에서 함께 한 적이 있어 편했고. ‘황정민’이 살아가는 방식이나 태도, 말할 때 전해지는 솔직함이 굉장히 저를 닮아 있는 그대로의 절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어깨에 얹혀진 벽돌을 내려놓고 연기했죠. 덕분에 더욱 자연스럽게 배어나온 것 같아요. 이제껏 출연한 영화 중 실제 제 모습에 가장 근접해 보여요. 관객들도 황정민이 시장이 된다는 이야기를 제 이름으로 보여주니까 더 벽이 없이 받아주시는 것 같고.”


-로맨틱 코미디는 처음인데요.

“이전에 코믹한 캐릭터를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이번처럼 대놓고 한 건 처음이에요. 사실 <부당거래>(2010) <모비딕>(2011) 끝내고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어요. <노팅힐> <러브 액추얼리> 등 로맨틱 코미디를 무척 좋아해요. 저도 실은 유쾌한 사람이고요. 그런 저를 투영할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는 언제든 또 하고 싶어요.”

-모처럼 온가족용 영화네요.

“제 아들(7세)이나 조카들과 함께 보는 걸 상상만 해도 설레요. 예전에 ‘전체관람가’ 영화도 했지만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가 많아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죽이고 살리는 영화를 했는지. 가족영화를 하니까 이렇게 기분이 좋고 마음도 편한데.”

‘엄정화’는 대학생 때 ‘신촌 마돈나’로 손꼽혔다. 이를 기억하는 기획사 직원을 만난 뒤 남편 몰래 댄스가수로 변신, 중년의 ‘섹시퀸’을 꿈꾼다. ‘황정민’은 이로인해 후보 경선 과정에 곤경에 처한다. ‘황정민’은 전당대회 때 소박하고 감동적인 정견을 발표, 극적으로 서울시장 후보가 된다. ‘엄정화’는 화려한 데뷔 무대를 갖고.


-참고한 정치인이 있는지요.

“아뇨, 없어요. 그저 시나리오에 충실했어요. ‘황정민’은 얼떨결에 민주열사가 되고 어쩌다 보니 서울시장 후보가 되잖아요. 시나리오를 읽고 정치색을 띠지 않은 ‘꿈’에 관한 영화여서 선뜻 결정했어요. 결과물도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아녜요. ‘황정민’과 ‘엄정화’ 등 꿈을 잃고 살아온 사람들이 꿈을 찾고 이뤄가는 이야기를 그렸잖아요. 관객분들도 <댄싱퀸>을 보시고 자신의 꿈을 되찾고 다시 도전하는 용기가 생겼으면 해요.”

                                황정민이 엄정화와 호흡을 맞춘 건 <댄싱퀸>이 네 번째다. 전작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과 <오감도>(2009) <끝과 시작>(2009)이다. <끝과 시작>은 미개봉작. 옴니
                                버스 영화 <오감도>를 통해 일부가 소개됐다. 황정민은 “이번 작품을 하면서 편하게 호흡을
                                맞출 수 있었고 다음에는 ‘진한 멜로’를 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댄싱퀸>으로 이뤘듯 꿈은
                                이뤄진다”면서.


-아내가 정민씨 몰래 키워 온 꿈을 펼치겠다고 하면 어떨는지요.

“존중해야죠.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한 친구라고 생각해요. 그런 친구가 하고 싶다는 건 들어줘야죠. 응원해 주고. 부부관계는 기찻길이라고 봐요. 붙어서 가는 게 아니라 떨어져서 나란히 쭉 함께 가는….”

-평소 아내에게 잘 하는지요.

“잘 하려고 노력해요. 작품 없을 때 아이 유치원 보내고 반상회도 곧잘 참석하고. 어려운 게 아니잖아요. 어려운 것도 해야 할 마당에…. 잘 하면, 잘 하려고 노력하면 오히려 제가 더 좋아요. 밖에서 편하게 일 할 수 있고.”

-서울시장 등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황정민 후보는 순수하고 솔직하게 들이대는 사람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그런 사람이죠. 그는 정견 발표 때 가족은 다스려야 할 존재가 아니라고, 서울시민도 마찬가지라고 하죠.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각인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말이에요. 그 대사 읽으면서 감동 걱정은 붙들어 매두고 다른 점만 신경쓰자고 생각했어요. 아무튼 서울시장님도, 다른 정치인들도 시민은 다스려야 할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마음에 새겨주셨으면 해요.”


최근 <댄싱퀸>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 때 황정민은 “분명한 꿈이 있고 투비 컨티뉴드(To be continued)”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꿈을 밝히지 않았다.


-그 꿈이 뭔가요.

“혼자 간직하고 싶어요. 말씀드린 대로 To be continued이죠. 그러기 위해 현재 맡은 일에 몰입해요. 일 끝나면 백수로 돌아가 충전하고. 여행도 즐기지 않아요. 계획적 여행은 특히 별로예요. 집사람이랑 아이랑 어느날 갑자기 훌쩍 다녀오는 게 좋아요. 그 외에는 줄곧 집에 있어요. 집이 제일 편해요. 가족이 제일 좋고.”

황정민의 다음 작품은 TV조선의 드라마 <한반도>다. 그는 <한반도>에서 통일 한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다. 서울시장 후보에 이어 대통령이 되는 그는 “정치 참여는 투표를 빠지지 않고 하는 걸로 만족한다”고 했다. <한반도> 다음 작품은 영화 <신세계>. <신세계>에는 조폭으로 등장한다. 황정민은 “작품이 없어 친구 따라 괌에서 여행 가이드가 되려고 했던 시절을 잊지 않고 있다”는 말로 내일의 행보를 대신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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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ㅋㅋㅋㅋ 2012.02.07 15: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편 가시더니 인물 훤해 졌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