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달수. 사람들은 그에 대해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고 말한다. 오달수의 매력이다. 그가 빚어낸 캐릭터의 힘이다. 영화 <조선명탐정:각기투구꽃의 비밀>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이 영화에 이어 연극 <해님지고 달님안고>도 공연한다. ‘꼬라지 연기론’으로 열어온 ‘달수의 전성시대’.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조선판 셜록 홈즈’의 활약상을 그렸다. 탐정극에 코미디를 가미했다. 오달수는 이른바 허당천재 명탐정(김명민)을 돕는 눈치백단 개장수로 출연, 자신의 장기를 십분 녹여놓았다.

-<음란서생>과 <방자전>이 마음에 걸리지 않았나.

“사극에다 캐릭터도 닮았죠. 닮았지만 달라요. 특히 캐릭터는 주인공과의 관계, 각각의 상황에 따라 변해요. 이에 따른 변신을 꾀하는 게 개인적으로 도전과제였어요.”

-저번에도, 이번에도 웃겨요.

“제 임무니까요. 감독님께 내게서 얼마든지 빼먹으라고 했어요. 빼먹는 데에는 한계가 없다고 봐요. 상대 배우, 상황이 각각 달라 다 못 빼먹을 것 같아요.”



-관객 반응은 어떤가.

“좋아요. 특히 김명민씨 팬들은 열광 그 자체에요. 촬영할 때에도 느꼈지만 정말 대단한 배우에요. ‘쌈마이 연기’도 어울리잖아요. 단역시절 많은 역할을 한 게 도움이 된다더군요.”

-달수씨는 말맛이 돋보여요.

“저만큼 말 못 하는 배우도 없을 거에요. 말 더듬는 건 고쳤지만 표준어 안 되지, 발음 안 좋지…. 이걸 감추려고 하면 들키게 마련인데 오히려 드러내니까 관객도 속 편하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장점이 될 순 없겠지만 최대한 그걸 살려보려고 노력했어요.”

오달수의 이른바 ‘꼬라지 연기론’이다. 꼬라지, 즉 생긴 대로 연기하면서 발성·말투 등보다 대사에 감정을 실어내는 게,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지론이다.


<해님지고 달님안고>. 한 아이의 성장기를 그렸다. 집착이 강한 아버지와 아비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상으로 나가는 도깨비재를 넘는 아들의 이야기를 엮었다. 오달수는 아버지로 등장한다.

“2월 10일부터 공연해요. 3주밖에 안 남았는데 아직 대사도 못 외웠어요. 지금 솔직히 좌불안석이에요.”

-연극도 꾸준히 하는 게 남달라요.

“영화는 편집기술 덕분에 연기가 커버돼요. 연극은 아니에요. 발가벗겨저요. 그게 묘미고요. 어떻게 보여질지, 신뢰를 무너뜨리는 건 아닌지, 불안해요. 연극은 집, 영화·방송은 직장이란 느낌이 없지 않아요. 연기를 하는 거는 다 같지만….”

동의대 공업디자인과 출신인 오달수는 부산에서 대입 재수 때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인쇄소에서 아르바이트, 포스터·프로그램 등을 배달하러 연희단거리패 연습실을 자주 들락거린 게 계기가 됐다. 데뷔작은 이윤택 연출 <오구>(1990). 공연 내내 대사 한 마디 없는 문상객으로 출연했다. 이후 단계를 밟아 맏상주 역까지 맡았다. 1997년부터 서울서 활동했다. 2000년 의형제 사이인 작가·연출가 이해제와 함께 극단 ‘신기루만화경’을 창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달수는 “편수는 안 세어봐서”라며 “스무 편은 넘는다”고 했다.

“배우는 꿈도 안 꿨어요. 연극 보러 다니는 친구들도 이해가 안 됐고. 그런데 ‘우연히’ ‘ ‘그냥’ 하게 됐어요. 배달 갔을 때 식사시간이면 단원들과 함께 밥 먹고, 설겆이 도와주고, 내친김에 화장실 청소도 해주고, 그런 게 인연이 되려니까 ‘운명적인 만남’이 된 거에요.”

# “10년 파면 길이 열려요”


‘명품조연’ ‘조연스타’ ‘충무로 공인 감초배우’…. 오달수는 이를 뛰어넘어 주연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구타유발자들> <그림자살인> <해결사> 등에 이어 <조선명탐정…>에서 주연을 맡았다.

출연작 가운데 흥행작이 많다. <괴물>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친절한 금자씨> <올드보이> <마파도> <방자전> <음란서생> <박쥐> 등 한국영화 역대 흥행 톱100에 8편이 올라 있다.

유명 국제영화제 초청작도 즐비하다. 국내 배우 가운데 가장 많다. <박쥐> <남매의 집> <괴물> <놈놈놈> <올드보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달콤한 인생> <주먹이 운다> 등으로 칸,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로 베를린, <친절한 금자씨>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등을 장식했다.



-영화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데뷔작이 <해적, 디스코왕 되다>(2002)에요. 캐스팅디렉터인 후배의 권유로 오디션을 봤죠. 디스코장의 ‘뻘쭉남’으로 출연했어요.”

-당시 출연료는….

“많이 받았어요. 파격적으로. 3일간 찍었는데 제시된 금액의 약 10배를 받았으니까. 10년 넘게 한 연극배우의 자긍심을 살렸죠. 제가 많이 받아야 후배들도 대우를 받을 수 있잖아요.”

출세작은 <올드보이>(2003). 데뷔작이 다리가 됐다. <해적…>을 본 조감독의 연락을 받고 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를 찍고 곧바로 <올드보이>에 출연했다. <올드보이>의 경우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달수씨 놓고 배역을 쓰고 있으니까 기다리라”는 언질을 받았다. <올드보이> 이후 존재 만으로 웃음을 낳는,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배우로 각광받았다. 악역으로 전율이 일게도 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 <구타유발자들>은 잠시 망설인 작품이에요. 시나리오는 수술 통증을 잊을 정도로 단숨에 읽혔는데 쥐를 만지고 먹기까지 해야 하는 게 걸렸어요. 하등 이유가 될 수 없는데 그때는….”

<달콤한 인생>의 ‘명구’도 애착이 간다. 두 신(scene)에 나오는 인물이다. 극중 딱 중간에 등장, 힘을 빼고 보게 해준다.

“처음에는 대사가 많은 배역이었는데 제가 ‘명구’를 원했어요. 나중에 감독님이 그러더군요. 니 판단이 맞았다고.”

-배역에 다가가나요, 끌어오나요.

“끌어와요. 캐릭터를 제 안으로 들여와 오달수식으로 풀어내요. 평소의 저와 극중의 저는 전혀 달라요.”

-하고 싶은 배역은.

“못 해본 인물이요. 감성을 실어내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인물을 하고 싶어요.”

오달수 주연 멜로영화라…. 누군가가 만들 듯한 그 영화에서 보여줄 오달수의 감성연기가 기대됐다.



오달수는 자신의 연기인생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운도 준비된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운은 한두 번이고 그 운도 실력에 좌우된다고 하지 않나. 충무로에서 대체 불가능한 영역을 구축한 오달수는 “그냥, 전후좌우 살피지 않고 10년을 파면 길이 열리고 치열함과 사명감도 생긴다”면서 “단원들에게도 그렇게 주문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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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같은 아내 말 잘 듣자" "토끼처럼 귀 쫑긋 세우고 경청하겠다"…. 김승우·황정민은 영화 데뷔 동기, 20년지기다. 2일 일본 도쿄돔에서 아이티 난민 돕기 야구시합을 가졌다. 김승우·황정민의 동고동락, 2011년 신묘년 희망가 지상 트위터.



# “담배 끊어야지”

김승우·황정민은 지난 연말 어느날 공형진 등과 함께 새벽 4시까지 마셨다. 김승우는 “우리가 좋아서 자리를 오래 한다”고 했다. 황정민은 “50대에도 오늘처럼 지내려면 담배를 끊어야 할 거”라고 했다.

-넌 6개월 넘게 끊었었잖아-그런데 형도 알다시피 영화 찍으면서 담배 피는 장면 빼달라고 하기 그렇잖아. 배우가-(장)동건이 끊었대. ‘마이웨이’(감독 강제규) 촬영하면서도 안 핀다네. 나도 끊어야하는데-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면 더 안 좋대-건강도 건강이지만 2500원짜리에게 구속되는 게 자존심 상해-외국 나가면 미개인 취급하잖아-그래, 1월 3일부터 끊을거야. 뭣하면 처방받아 약도 먹을래….

김승우와 황정민은 1990년 ‘
(임권택)로 함께 데뷔했다. 김승우는 1969년 2월 24일생, 황정민은 1970년 9월 1일생이다. 한 살 차이로 트고 지낼 만한데 황정민은 김승우를 “형!”이라고 불렀다. 김승우는 “호칭이 형일 뿐 친구 같은 사이”라고 했다. “예전에 한 동네에 살았고 대소사를 의논하는 상대”라며 “첫 뮤지컬(드림 걸즈)도 가장 먼저 의논했고 정민이가 무조건 하라고 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한 동네에서 살 때에는 서로 집을 걸어서 오가고는 했는데-네가 이사간 뒤 한동안 먹먹했어. 언제라도 만나 인생사를 나눌 네가 없어서-다시 형 동네로 이사갈 거야-좋지. 집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할 시간 뺏긴다고 꺼릴까-가족모임을 많이 갖지 뭐-그래, 그러자….

김승우·황정민은 2일 도쿄돔에서 야구시합을 가졌다. UN의 친구 아시아 태평양 지부와 연계해 아이티 지진 복구를 지원하기 위한 자선경기다. 두 배우를 비롯해 연예인 야구단 ‘플레이 보이스’(구단주 김승우) 소속 공형진·안길강·오만석·이종혁·이태성·주진모·지진희 등이 함께 했다. 매진에 가까운 2만5천여 명이 관람한 이 경기에서 플레이 보이스는 일본 프로야구 출신으로 구성된 ‘드림팀’을 상대로 선전을 펼쳤다. 오는 10~11월 한국서 경기를 가질 계획이다.

-창단한 지 벌써 7년이야-형한테 제안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정민이는 ‘너는 내 운명’, 진희는 ‘대장금’ 등 멤버들이 야구단에 들어온 뒤 모두 잘돼 다행이야-형, (안)길강이 형, 진희, 나, 모두 2세도 봤잖아요. 가장 큰 축복이죠-좋아하는 운동하면서 주변도 돕고 정말 좋아-진희는 내가 데려왔을 때 야구 ‘야’자도 몰랐는데 동대문에서 사이클링 히트 기록하고, 잠실에서도 홈런 날리고, 정말 의지가 대단해요-손바닥에 피멍이 들도록 연습하잖아. 오죽했으면 마누라가 배우가 아니라 야구선수와 결혼한 것 같다고 했을까-길강이 형은 형수가 출산하러 갈 때 야구장비 챙겨서 갔고, 출산 늦어지자 연습 마치고 다시 병원 갔잖아요-우린 일요일마다 야구하는 게 낙이잖아-훗날 우리 아이들이 우리랑 똑 같은 유니폼 입고 다른 팀과 시합하는 게 꿈 가운데 하나에요-환상적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 베트남·괌에서 전업? 

김승우는 지난해 ‘승승장구’로 KBS 연예대상 쇼오락 MC부문 신인상을 받았다. 마흔한 살에 신인상 받은 건 김승우가 처음일 듯하다. 김승우는 이와 관련, 인터넷에 1974년 ‘멋진 사나이들’(임원식)에 아역으로 출연했다는 건 잘못된 정보라고 알려줬다.


-1992년 ‘장군의 아들3’(임권택)으로 신인상 받고 또 신인상이라니-소식 듣고 그냥 웃음이 나왔어. 배우 아닌 다른 일로 신인상 받아 기분은 좋겠다는 생각도 나고-엄청 떨렸고 쑥스러웠어-못 받았으면 서운했겠지?-아마도. 으하하하.

황정민은 데뷔한 지 12년째인 2002년 ‘로드무비’(김인식)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청룡영화상·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디렉터스 컷 등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는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그때 느꼈어. 노력하고 실력있는 놈은 언젠가는 된다는 걸-쑥스럽게-너 ‘장군의 아들’ 때 연기에 벽을 느꼈다며 대학로로 돌아가 10년 간 고생 엄청 했잖아-고생은, 올라갈 무대가 있다는 게 감지덕지였지-하긴, 무대가 없었으면 넘치는 열정을 발산하지 못해 폐인 됐겠지.



황정민은 한때 친구가 있는 괌에 가서 관광 가이드가 되는 걸 고심했다. 김승우도 베트남에서 장사하자고 마음 먹은 적이 있다. 김승우는 “당시 은행에 130만원밖에 없었다”면서 “헝그리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통장을 보관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한 우물 파길 잘 했지-무대가 좋아-무대에서 귀신이더라. 노래·춤·연기, 못 하는 게 없어. 돈 못 버는 거 말고-이번에 제작한 ‘넌센세이션’ 본전 할 것 같아-다행이다, 그간 번 돈 다 집어넣었는데-계속 해야지, 우리가 함께 할 작품도 정해놨어-뮤지컬이야-아닌데 합창 장면이 있어-그 정도야-그 무대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흥분 돼-나도 기대된다.


 

황정민은 ‘승승장구’에 두 번째 게스트로 출연했다. 첫 번째 초대손님은 김남주. 제작진이 섭외했고, 의향을 묻는 아내의 질문에 김승우는 “편안하게 결정하라”고 했다. 황정민이 사실상 첫 게스트인 셈이다.

-MC 제안 받고 내 주변 배우 덕보려는 거냐고 물었어. 아니래. 4~5회까지 섭외해놨다면서-그런데 2회부터 펑크날 상황이랬잖아-그러니까. 네가 무조건 하겠다고 했을 때 얼마나 고마웠는지-미안하더라, 시청률이 잘 안 나와-무슨 소리, 내가 더 미안했지.

이들은 ‘천군’(민준기)에서 함께 했다. 황정민은 ‘천군’ 중국 촬영을 앞두고, 김승우는 촬영을 마친 뒤 결혼했다. 김승우는 1녀1남, 황정민은 1남을 두었다. 둘은 “나중에 사돈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면서 좋아했다. 신묘년 새해를 맞아 김승우는 “토끼 같은 아내 말을 잘 듣겠다”며 “현재의 위치에서 늘 최선을 다할 거”라고 다짐했다. 황정민은 “토끼처럼 귀 쫑긋 세우고 주위의 말을 경청하겠다”고 했다. “갈등은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주장만 앞세워서 생기는 게 아니겠느냐”며. 둘은 일신우일신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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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운명(運命)이란 낱말이 떠오를 때가 있다. 배우이자 연극 연출가인 박원상도 인터뷰 중 이 낱말을 몇 차례 읊조렸다. '행복한 가족'에 이어 '양덕원 이야기' 연출을 맡은 박원상의 '너는 내 운명'.




# 1막 '운명에 관하여'

박원상(40)은 숭실대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연극반에서 활동했고 1993년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받기도 했다. 1996년 졸업 후 취직하는 친구들과 달리 '연극원'에 진학, 동숭동 기성 극단 진출을 꿈꿨다.

그러던 중 연극 '운명에 관하여'를 만났다. 박원상은 대학 선배가 연출한 이 작품에서 1인7역으로 주목받았다. 이를 극단 차이무(차원이동무대선·次元移動舞臺船)의 이상우 선생(연극원 교수)이 관람한 뒤 '비언소'(蜚言所) 연출을 맡은 박광정(2008년 12월15일 작고)에게 관극과 캐스팅을 권유했다.
박원상은 '운명에 관하여'를 마친 뒤 '비언소'에 출연, 송강호·이대연·오지혜·최덕문 등과 호흡을 맞췄다.


"5명이 각각 여러 배역을 바꿔 가며 27장면을 소화했어요. 극 전개가 굉장히 빠른 작품이고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어요. 연극하면 배고프다는데, 잘 먹고 잘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이내 현실을 깨달았지만…."

박원상이 졸업 후 취업을 했다면, '운명에 관하여'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상우 선생이 이 작품을 보지 않았다면, 박광정이 그를 외면했다면….
박원상은 이에 대해 "저의 오늘은 지금과 다를 것 같다"면서 "그 중심에 '운명에 관하여'가 있고, 모든 게 운명으로 여겨진다"고 술회했다.




#2막 '양덕원 이야기'


'양덕원 이야기'는 1995년에 창단된 차이무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2004년 2월에 초연, 5월에 연장공연, 2006년 12월에 앙코르 공연됐다. '비언소'에 이어 '차이무 생연극 2010' 두 번째 작품으로 공연되고 있다.

박원상은 초연 때 장남 역을 맡았다. 그런데 출연하지 못했다. 1주일쯤 연습했을 때 엎어졌던 영화 '알 포인트'(R-Point)가 촬영에 들어가게 되면서 캄보디아로 떠난 것이다.
박원상은 "배우로서는 아니지만 6년 뒤 결국 연을 맺은 운명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여건이 되면 극장을 바꿔 장기공연을 갖자는 말이 나온다"면서 "그때에는 배우로도 참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막간 '문소리'


박원상의 첫 연출작은 '행복한 가족'이다. 한 할아버지가 가족 대여업체의 소개를 받은 가짜 식구들과 함께 할머니 제사를 지내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통해 가족의 해체와 노인문제 등을 풀어냈다. 2004년 10월에 공연, 2005년 4월에 앙코르 공연을 가졌다.
영화 '이대근, 이댁은'(2007)으로 제작됐고 박원상은 돈만 주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흥신소 실장으로 출연했다.


한편 박원상은 '슬픈 연극'(2006)에서 문소리와 호흡을 맞췄다. 죽음을 앞둔 남편과 남편의 시한부 판정을 부인하는 아내의 애절한 사랑을 담은 작품이다.
박원상은 또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과 '날아라 펭귄'(2009)에서도 문소리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같은 사례는 매우 드물다. 게다가 이들은 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2006)에서는 불륜 커플로 만났다. 연극 '거기'(2006)와 영화 '작은 연못'(2010) 등에도 함께 출연했다.
박원상은 "인연이 남다르고 식구처럼 여겨진다"며 "한 자리에서 문소리씨가 남편인 장준환 감독에게 '여보!', 내게도 '여보!'라고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3막 '차원이동무대선'


박원상과 차이무는 불가분의 관계다. 차이무가 없는 박원상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원상은 "이상우 선생님을 만나 연극과 코미디에 눈을 떴다"면서 "단원들이 멀티 플레이어가 돼야 군소 극단이 살 수 있다는 데 공감한 것이 연출을 맡은 배경"이라고 밝혔다.


"이상우 선생님이 연출한 영화 '작은 연못'에 단원들이 총출동했어요. 진한 동지애를 느꼈죠. 극장을 1년간 대관해서 진행하는 '차이무 생연극 2010'은 차이무 전용관 갖기 프로젝트의 일환인데 강신일 선배님, (송)강호형, (문)소리씨가 CF출연료를 쾌척해준 덕분에 공연하고 있어요. 다른 단원들이 세 분의 뒤를 잇고 많은 관객과 함께하는 작품을 속속 공연하면 전용극장을 갖는 게 꿈만은 아닐 겁니다."

박원상은 이어 "단원들이 10년 넘게 호흡을 맞춰 차이무식 연극과 연기에 대해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며 "정통 극은 물론 다양한 장르의 창작물과 독립영화 등 멀티작업도 병행하면 전용극장을 갖는 게 오래지 않아 현실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이무가 전용극장을 갖고 레퍼토리 극단으로 더욱 성장하는 게 꿈"이라면서 "운명적인 소명감을 느낀다"고 역설했다.

‘양덕원 이야기’는


 

아버지의 마지막 바람은? '양덕원 이야기'는 이에 대해 묻고 답한다. 관객을 끌어들인 연극적 코미디가 풍성하다. 시종 웃음을 자아내는 가운데 아버지가 남긴 침묵의 유언을 되새기게 해준다.

극중에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목소리도 없다. 아버지의 지난 삶과 오늘, 마지막 바람은 세 자녀와 어머니, 동네 어른을 통해 묘사된다.

극중 아버지는 우리네 아버지다. 다른 등장인물도 우리 자신이고 이웃이다.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던 세 자녀는 결국 아버지의 임종을 보지 못한다. '양덕원 이야기'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와 그리 다르지 않은 우리네 자화상과 가족상을 반추하게 한다. 연극이 끝난 뒤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게 한다.




희곡은 '행복한 가족' '슬픈 연극' 등을 선보인 민복기 차이무 대표단원이 썼다. 어머니는 신세경·박명신, 장남은 이성민·김학선, 차남은 최덕문·조승연·오용, 막내딸은 김소진·김지현, 동네어른은 송재룡·이종욱이 맡아 번갈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오는 7월4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차이무 극장에서 공연된다. 차이무 홈페이지(www.stageship.com) 전화(02-747-1010).




박원상은 "관객과 순하게 만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연출했다"며 "작품의 본질은 유지하면서
드라마를 많이 풀어놓았다"고 귀띔했다. "관객들이 봄꽃 내음을 흠뻑 맡고 돌아갔으면 하는 게 '양덕원 이야기' 연출로서의 바람"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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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fee11 2011.08.17 00: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요즘에 아이패드2가 공짜루 생겨서 기분최고^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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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기주봉은 죽는 배역을 참 많이 했다. 과장하자면 '작품마다 죽는 남자'다. 6년 만에 출연한 연극 '사나이 와타나베…완전히 삐지다'에서도 죽는다. 기주봉은 "잘 죽어야 잘 살아난다"며 "죽으면서 새로 태어나는 인생"이라고 했다. 기주봉의 생사·상생론.





배우 기주봉(56)이
연극 무대에 섰다. '사나이 와타나베…완전히 삐지다'. <관객모독>에 이어 6년 만에 출연한 연극이다. 그는 "연극을 한 게 벌써 37년째"라며 "무대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읊조렸다.

'사나이 와타나베…'는 한국의 3류 영화감독과 재일 조선인 야쿠자 두목 와타나베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기주봉은 타이틀롤 와타나베 역을 맡았다. 죽는 인물이다. 

와타나베는 자신의 인생을 폼나게 그리려고 한다. 감독은 리얼리티를 중시하고. 이 때문에 영화제작은 늦어지고 와타나베는 부풀었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보복을 당한다. 




기주봉은
카리스마 넘치고, 허풍이 심하고, 잘 삐치고, 그리고 10대 때의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인물의 면면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인생의 비애를 자아내는 말미 장면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공연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던 객석은 와타나베가 최후를 맞을 때 숙연해 진다. 기주봉은 "모두 제각각 제 역할을 잘한 덕분"이라고 공을 함께 하는 배우·스태프에게 돌렸다.
 "죽는 배역은 잘 죽어야 잘 살아난다"면서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고 역설했다. "죽으면서 새로 태어나는 인생"이라고 덧붙였다. 


연극·영화 등은 출연·제작진의 일사불란한 호흡이 중요하다.
누구 하나라도 튀려고 하거나 실수를 하면 균열이 생겨 망치게 된다. 인생살이도 연극과 다르지 않다. 나만 살겠다는 이기주의는
갈등을 야기하고 그것이 반복되고 고조되면 결국 폭발해 모두 죽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기주봉은 이에 대해 "선배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주봉은 그간 죽은 역할을 많이 했다. 연극 '리어왕' '당통의 죽음' '붉은 산' '세일즈맨의 죽음' 등과 영화 '조용한 가족' '공공의 적' '복수는 나의 것' '주먹이 운다' '아주 특별한 손님' 등 여러 작품에서 죽었다.
죽는 배역과 인연이 깊다. 일례로 '복수는 나의 것'에서 원래 배역은 형사였는데 박찬욱 감독이 나중에 죽는 인물(팽 기사)로 바꿨다.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는 명은(김중기)의 삼촌인 시체로만 특별출연했다.




"대학 연영과
예술제에서 '악마의 제자'를 올렸는데 저는 목매달라 죽어요. 그런데 오랏줄이 잘못 걸려 죽은 뒤 고통을 참을 수 없어 그만 손으로 줄을 잡고 말았어요. 그때 놀란 엄마가 무대 앞으로 허겁지겁 달려와 '주봉아, 주봉아…괜찮아?'라고 하시는 바람에 공연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작품마다 죽는 상황이 다르고 그 의미도 다르다. 장렬한 죽음, 허무한 죽음, 느닷 없는 죽음, 예견된 죽음, 자살이냐 타살이냐….
기주봉은 "어떤 죽음이든 '죽음의 미학'까지는 아니더라도 죽는다는 것은 새로 태어난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담으려고 한다"고 했다.




와타나베는 재일 조선인이라는 장벽을 깨고 조직의 보스가 된 인물이다. '시모노세키의 전설'로 불리지만 별명 가운데 하나가 '삐질이'다. 하지만 와타나베는 '삐질이'는 외면하고 '시모노세끼의 전설'에만 도취해 있다. 진짜 남자, 남자다운 남자라고 자부한다.
그는 죽는 순간에도 그걸 지키려고 한다. 칼을 연거푸 맞고 앞으로 고꾸라진 그는 몸을 일으켜 하늘을 향해 대자로 눕고, 다시 의자에 앉은 뒤 최후를 맞는다.
기주봉은 "행동을 달리 할 때마다 표정을 달리 짓고 심리도 달리 표현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관객과의 호흡, 공감대 형성"이라고 강조했다.


'사나이 와타나베…'는 지난 6일부터 공연 중이다. 기주봉은 이에 앞서 한 달여 동안 이 작품 연습에만 몰두했다. 기주봉은 "공연 시작 며칠 전부터 배역이 몸에 붙는 느낌을 받았다"며 "하지만 더 찾아야 할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다.
"아직 내 욕심에는 미치지 못한다"며 "무의식을 존중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하는데 그것이 관객에게 제대로 먹힐 때 배우도 연극도 산다는 것이다. 




기주봉은 1977년에 형(기국서)과 함께 창단한 76극단에서 데뷔했다. 기주봉은 "100년, 그 이상 존재하는 76극단이 될 수 있도록 진정한 후배 배우들을 양성하는 게 가장 간절한 바람"이라고 했다. "죽은 뒤에도 76극단을 통해 내내 존재하는 배우로 남고 싶다"고 기원했다.

 

 ‘사나이 와타나베···’는

 

'사나이 와타나베…완전히 삐지다'. '감독, 무대로 오다'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장항준 감독이 각본·연출을 맡았다. 기주봉은 "연출이 영화감독이어서 영화적 기법을 많이 사용해서 흥미를 좀더 가미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장 감독은 각본·연출을 맡은 영화 <라이터를 켜라>와 <불어라 봄바람>을 선보였다. 이밖에 <박봉곤 가출사건> <북경반점> <귀신이 산다> 등의 시나리오를 썼다. 장 감독은 자신의 큰할아버지와 기타노 다케시 감독을 모델로 이번 연극의 희곡을 썼다.

등장인물은 5명이다. 와타나베·영화감독·집사·게이샤·자객 등이다. 이 가운데 집사·게이샤·자객은 '멀티맨'이란 배역으로 한 배우가 해낸다. 분장·의상을 바꿔가며.

와타나베는 백인철·기주봉, 영화감독은 정은표·최필립, 멀티맨은 김C(사진)·김경범·이준혁이 맡았다. 장 감독은 "장기 공연에 따른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각 배우의 개성이 뭍어나는 효과를 보기 위한 포석"이라고 설명했다.

배우 가운데 의외의 인물은 김C다. 장 감독은 "김C가 자원했다"고 밝혔다.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의 소개를 받았는데 내가 아는 인물이고 김C라고 하길래 어떤 김씨인지 궁금했는데 김C였다"고 털어놨다. "영화감독을 하고 싶어 하는 줄 알았는데 '멀티맨'을 자원했다"며 "실제로 멀티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고 영화 <애자> 등에서 받은 느낌도 좋아 단번에 캐스팅을 했다"고 덧붙였다.

'사나이 와타나베…완전히 삐지다'는 오는 6월 6일까지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공연된다. 벌써 연장공연에 대비한 후속 캐스팅에 들어갈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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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은. 이른바 무명가수다. 올해로 데뷔한 지 23년째를 맞았다. 그가 '더 사랑한다' '노브레이크' 등을 내놓고 다시 뛴다. 두 아이 등을 위해. '인간극장-이동은' 편.



 

# "아빠, 텔레비 안 나와?"

"음악이 좋아요. 할 줄 아는 게 음악밖에 없어요."

중견가수 이동은의 일성이다. 1987년 유영석과 '푸른 하늘'을 결성, 1집 '겨울바다'를 내놓으면서 데뷔한 지 올해로 23년째를 맞았다. 고1 때 스쿨밴드를 만들어 노래한 것까지 포함하면 30년이나 됐다.
그간 '겨울바다' '자유' '하나가 되어' '10년 후에' '춘기네 세차장' '사랑한다' 등의
앨범을 내고 숱한 콘서트를 가졌지만, 아직까지 인기가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한두 가지겠느냐"면서 아이들 이야기를 우선 들었다.

"큰아들이 하루는 'TV에 나오는 가수와 클럽에서 연주하는 가수 중 누가 진짜냐'고 묻는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우리 아빠 가수야 하면 아이들이 이문세냐' 한대요…. 아이들에게 힘을 주고 싶어요."

이동은은 "유치원을 일곱살 때에야 보내고, 학원을 6학년 때 처음 보냈다"며 "가장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게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다"고 고백했다. 동행한 그의 아내가 "언제나 그랬던 건 아니다"면서 "미사리에서 노래한 5년여 동안은 나름대로 풍족했다"고 남편에게 힘을 실어줬다.
남편은 "아내가 가장 든든한 응원군"이라면서 "한때 포기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제일 잘하는 게 음악이니까 끝까지 음악으로 가라'고 해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미사리 생활을 과감하게 접고 다시 곡을 쓰고 앨범을 내기로 한 것도 아내의 호응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당장의 생활보다 훗날 후회하지 않도록 창작인으로 돌아가라'는 아내의 말이 아직도 생생해요." 

이들 부부대화에 영화 '라디오 스타'가 떠올랐다. 최곤(박중훈)의 매니저인 박민수(안성기)와 분식집을 하다가 거리에서 김밥장사를 하는 그의 아내 순영(조련)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아내가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앨범 재킷 디자인을 하면서 반찬가게까지 했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반찬을 만들고 팔았습니다. 대마초 혐의로 '법대공부'를 55일 동안 한 적이 있는데, 그게 터닝 포인트가 됐죠. 뮤지션은 철 들면 끝이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신 차리고 작업에 충실하자고 마음먹었어요"

"어느날 불쑥 담배를 끊겠다고 하더니 정말로 딱 끊었어요. 그게 2000년 1월이니까 11년째예요. 독한 데가 있어요. 그런 마음으로 음악에 더욱 매진했으면 좋겠어요. 되고 안 되고는 하늘에 맡겨야죠."






# "너… 아직도 음악하냐?"


이동은은 '라이어 밴드' 리드보컬 외에 프로젝트 밴드 '대박나라' 활동도 겸하고 있다. 백석문화대학에서 보컬 트레이닝과 스몰 밴드 앙상블을 맡고 있다. 

이동은은 밴드활동에 대해 "구시대적 음악표현이고 식상한 사운드라는 편견이 없지 않다"면서 "그러나 밴드음악이 가지는 자유로움과 고유의 독특한 표현은 대중음악에 신선한 산소를 불어넣는 숲과 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밴드이름을 '라이어'(Liar)로 정한 데 대해 "진실보다 거짓이 득세하는 세상에 대한 반어적 반항의 씨앗이 되고 싶고, 바깥에서는 몰라도 무대에서만은 진실한 음악을 하자는 염원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발표한 '더 사랑한다'와 '노 브레이크'에는 이같은 마음을 담았다. 유리상자의 박승화가 프로듀스와 코러스에, 유리상자 앨범의 작·편곡을 한 김희진이 참여했다.

'더 사랑한다'는 잃은 뒤에야 깨달은 소중한 사랑을 노래했다. 이동은이 작곡했고, 아내와 함께 가사를 지었다. 함춘호의 어쿠스틱 기타, 이동은의 슬프도록 맑은 목소리와 애절한 바이올린 선율이 조화를 이룬다.

'노 브레이크'는 거친 세상살이에서 좌절하지 말고 투지를 불태우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경쾌하고 빠른 장르의 노래로 쉽고 흥겹게 부를 수 있는 점이 돋보인다. 이동은이 작사·작곡했다.
그는 "저 자신과 상위 10%가 아닌 사람에게 하는 말"이라면서 "이번 월드컵 때 많이 불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프로젝트 밴드 '대박나라'는 작년 4월에 출범했다. '박'은 박학기와 박승화, '나'는 나무자전거의 강인봉, '라'는 라이어밴드의 이동은을 말한다. 박학기와 강인봉이 기타, 박승화가 퍼큐션, 이동은이 베이스기타를 맡고 있다. 작년 5월 김광석 추모 콘서트 등을 가졌고, 올해에도 대구·대전·전주·부산·광주·마산·일산 공연 등을 갖는다. 

이동은은 "이따금이지만 '아직도 음악하냐? 이젠 다른 거 해'라는 말을 들을 때 씁쓰름하다"고 읊조렸다. "함께 시작했거나 나중에 한 후배들이 모두 이름을 얻었다"면서 "이젠 너만 되면 된다는 친구들의 바람도 들어주고 싶다"고 토로했다.
"아들이 베이스기타를 잡았고, 저처럼 가수가 되겠다고 한다"며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고 기원했다.

이동은은 누구?

이동은은 싱어송 라이터다. 그간 수백곡을 썼고, 이 가운데 30여 곡을 내놓았다. 그는 "대중에게 크게 사랑받은 노래는 없다"면서 목소리를 흐렸다. 자신의 기타 실력에 대해 "텃밭기타"라며 "내 노래를 만들고 부를 때 쓰는 수준"이라고 겸손해했다.
그는 여러 방면에서 활동했다. 1991년 영화 '돈아돈아돈아'(감독 유진선) O.S.T 앨범을 내놨고, 전인권·11월·강인원과 함께 앨범 '자유'도 발표했다.
1995년 영화 '젊은 남자'(감독 배창호)에 출연하면서 배병호 음악감독의 O.S.T에 2곡을 담기도 했다. 2007~2008년 경인방송 써니FM에서 '이동은의 한밤의 라이브쇼'를 진행했다. 그는 "당시 처음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다"고 떠올렸다.
1993년 듀엣 '소나무', 1999년 '소나무밴드', 2004년 '라이어밴드'를 결성한 그는 공연을 많이 가졌다. '희귀병 어린이 돕기 디너 콘서트' '4인4색 희귀병 어린이 돕기 콘서트' '라이어 밴드 대학로 까망소극장 장기 콘서트' '무등산 풍경소리 콘서트' '라이어 밴드 장기콘서트 라라리 쇼' '프로젝트 밴드 대박나라 콘서트' '프로젝트 밴드 대박나라 김광석 추모 콘서트' 등이다.
그는 "듀엣 소나무로 활동할 때 3년 전속금이 3000만원인데 예비 장인인 교장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 '월급이 얼마나 되는가?'라는 물음에 얼떨결에 '연봉이 3000만원'이라고 답해 승낙을 받았다"면서 "이 자리를 빌려 하늘나라에 계신 장인께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은 저를 높이 사줘 콘서트 때 악기를 무료로 대여해 준 코아뮤직 사장님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만들었다"면서 "주위 모든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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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 신씨네(Shincine) 대표가 다시 뛴다. '로보트태권V'로 한국 영상산업의 새 장을 열고, 영상문화기업의 새 모델을 내놓는다. 신철 대표가 다시 쓰는 '시네마 천국'.


 

# 열쇠는 '로보트태권V'

지난 10년간 한국 영화시장은 크게 확장됐지만 충무로는 여전히 어렵다. 신철 대표는 이에 대해 "안정된 성장모델 없이 외형만 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속 가능한 수입이 보장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련하는 게 열쇠"라면서 "로보트태권V로 새 패러다임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로보트태권V' 주인공은 30년 역사를 지닌 우리
캐릭터이고, 국기 태권도가 특기인 영웅이며, 무궁무진한 로봇산업과 접목되는 데 맞춰 '로보트태권V'를 주·소재로 한 3P(프로그램·프로덕트·플레이스)를 구축하고 그 발판 위에서 지속 가능한 안정적 성장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신 대표는 이를 위해 (주)로보트 태권브이를 설립했다. 이어 '로보트태권V' 실사 영화 및 3D 애니메이션을 준비하고 있다. 예림당과 10여 종의 출판계약을 맺었고, 완구업체 (주)손오공과 공동사업을 펼치기로 했으며, 인천시가 23만평 규모로 조성하는 테마파크 '로봇랜드'와 메인 캐릭터 약정을 맺었다. 

태권브이 게임도 만들어지고 있다. 

'로보트태권V' 실사 영화 연출은 '구타유발자들' '세븐데이즈' 등을 선보인 원신연 감독이 맡는다. 지난 2년 간 시나리오 작업을 해온 원 감독은 캐스팅 작업 등을 거쳐 오는 6~7월부터 촬영에 들어가 완성작을 내년 여름에 선보일 계획이다. 

'태권브이 타워' 등 '로보트태권V'를 메인 테마로 하는 로봇랜드는 2012년 완공을 목표로 오는 5월에 착공한다. 총 1조원이 투입된다. (주)로보트태권브이는 30년간 인천시와 함께 사업을 펼친다.




로봇산업 세계시장 규모는 60억 달러이다. 일본 등과 달리 세계적으로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로봇 캐릭터는 '로보트태권V'가 유일하다.
산업자원부가 발급한 1호 로봇등록증과 국기원 발급 명예 4단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UNHCR의
홍보대사로 사회공헌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문근영·김태희 등과 함께 연예
기획사 나무엑터스에 소속된 A급 광고모델이다.
신 대표는 "이미 900억 가치의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는 로보트태권V는 글로벌 문화콘텐츠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수호신 캐릭터를 지구를 지키는 영웅으로 격상시켜냄으로써 영상산업 및 로봇산업 부흥을 꾀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 충무로 '미다스의 손'


신철 대표는 충무로의 대표적인 '미다스의 손'으로 손꼽힌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결혼이야기' '은행나무침대' '편지' '약속' '엽기적인 그녀' 등을 기획 혹은 제작, 극장가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신 대표는 이 가운데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기회를 살리지 못해 아쉬웠던 사례로 '엽기적인 그녀'를 꼽았다.
신 대표는 "중국에서 '엽기적인 그녀'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그 영향으로 주인공 전지현을 모델로 내세운 '애니콜'이 대박을 치는 등
배우와 기업은 성공을 거뒀지만 영화 제작사에 돌아온 부가수입은 제로였다"면서 "타임캡슐만 만들어 팔았어도 대단한 수익을 올렸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신 대표는 이어 <드래곤 워리어>(Dragon Warrior) 사례를 들었다. <드래곤 워리어>는 요절한 쿵푸스타 브루스 리(이소룡)가 디지틀 액터로 출연하는 액션영화다.
신대표는 10억 달러(1조원) 매출을 목표로 이소룡 유족들과 영화화에 대한 초상권 사용계약을 체결하고 5년여 동안 이 작업에 몰두했다. 


제작비 중 상당액에 대한 해외 자본과의 선투자 약정이 성사될 정도로 기대와 가능성이 높았던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의외의 어려움이 있었다. 신 대표는 "초상권을 가진 유족측이 제작 단계마다 내놓는 추가적 요청들을 속속 수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면서 "캐릭터를 브랜드 관점에서 바라보는 계기를 얻었고 실사영화 등 <로보트태권V>를 이용한 사업은 그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우리의 브랜드와 문화 아이콘을 이용하는 작업인 만큼 의미와 성취감이 <드래곤 워리어> 작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라면서 이번 사업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철완 아톰> 등 우리들에게 애니메이션으로 익숙해진 로봇 캐릭터들은 대게 일본산이다.
국산이 아닌 캐릭터가 전체의 95%나 될 정도로 우리 문화 콘텐츠는 미미하다. <로보트태권V>는 국내외에서 '우리 것'임을 자부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콘텐츠이다.
<로보트태권V>를 활용한 3P작업과 그 성과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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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신차려 2011.07.19 1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나... 표절작을 가지고 로봇랜드? 국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네... 당장 집어치우세요.

ㆍ‘쾌찬차’ 보고 감독 꿈 부모님·연인 반대로 포기
ㆍ액션영화 ‘스페어’로 지난해 늦깎이 데뷔
ㆍ‘친구’처럼 폼나기보다 진짜 이야기 하고 싶어
ㆍ담백하게 끓여낸 돼지국밥같은 영화래요


 

바람(Wish)을 ‘바람:Wish’으로. 이성한 감독(38)의 영화 ‘바람:Wish’을 보고 든 생각이다. ‘해냈다’는 낱말도 떠올랐다.
탄탄한
직장을 그만두고 뒤늦게 영화를 시작, 37살에 액션영화 ‘스페어’로 데뷔한 데 이어 성장영화 ‘바람:Wish’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이성한 감독의 바람·바람·바람.


# 시네마 천국

영화감독이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는 데 내리는 결정은 2만번 안팎이라고 한다. 이성한 감독은 먼 길을 돌고 돌아 영화감독이 됐다. 14살에 꾼 꿈을 37살에 이뤘다. ‘의지의 한국인’이다.
영화를 전공하지도,
촬영 현장에서 조수생활을 한 적도 없다. 영화 공부는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1년간 강좌를 들은 게 전부. 이런 가운데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공식 초청받은 ‘스페어’와 ‘바람:Wish’을 잇따라 내놓은 것이다.

‘스페어’는 마당극을 연상시키는 소리와 추임새, 징소리 등에 맞춰 담아낸 이른바 아쿠로바틱(acrobatic·곡예의, 곡예적인) 액션영화로 주목받았다.
‘바람:Wish’은 국악 장단에 실어낸 청소년의 성장통과 부성애가
웃음눈물을 자아낸다. 두 편 모두 독창성 등을 인정받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영화를 시작한 이래 힘들지 않은 시간이 없었어요. 하지만 행복합니다. 영화 보는 걸 즐기던 제가 이제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란 사실이…. 제 영화를 관객들이 관람하고 웃으면서 극장을 나서는 걸 보는 게 꿈인가 싶습니다.”

이 감독은 이어 “어릴 때부터 영화를 참 많이 봤다”면서 “처음 본 영화가 ‘슈퍼맨’으로 엄마와 함께 봤다”고 기억했다.
“지금은 없지만 아치형 장식이 인상적인
태평극장과 그곳에서 엄마와 함께 영화를 보던 시절이 눈에 선하다”며 “그 기억이 영화감독이 되는 밑거름이 됐고 그런 행복한 추억을 관객들에게 돌려주고 싶은 게 영화감독으로서 이루고 싶은 첫 번째 바람”이라고 했다.




# 청룽(成龍)키드


영화감독을 꿈꾼 건 중학교 1학년 때이다. 청룽(成龍)의 ‘쾌찬차’를 본 뒤 영화감독이 되자고 결심했다. 예술고교와 대학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려 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포기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도전하려던 계획은 7년간 사귄 연인이 “영화하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접어야 했다.


“28살에 결혼했고 한겨레 강좌는 29살에 들었어요. 그냥 공부만 좀 하겠다고 했죠. 큰 애가 태어난 뒤 현실을 인정하기보다 오히려 욕구가 강해진 거예요. 훗날 아이들에게 ‘꿈’ 이야기를 자신있게 하고 싶었어요.”

곽경택 감독, 김영철 촬영감독 등 한겨레 강좌 강사진의 수업내용을 다시 숙지하면서 틈틈이 준비작업을 했다. 그러나 직장에 얽매이고 둘째·셋째가 태어나면서 6년이 지나버렸다. 영화감독이 되는 건 그렇게 멀어지는 듯했다.

“2006년 늦가을, 한 해가 또 간다는 상념에 젖었어요. 우연히 어항이 눈에 띄었고, 내가 어항 속 물고기와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신이 번쩍 나더군요. 지금 안하면 영원히 못한다는 생각에 일단 저지르기로 했어요.”

그간 준비한 시나리오 가운데 ‘스페어’를 선택했다. ‘쾌찬차’ 이후 해보고 싶었던 액션영화다. 그러나 충무로에 인맥 하나 없이 한 편의 영화를 연출·제작하는 건 고행의 연속, 완성하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미국 뉴욕한인영화제, 캐나다 판타지아영화제 등에 초청받는 등 작품성은 인정받았지만 흥행에선 참패하고 말았다.





# 꿈☆은 이뤄진다


‘바람:Wish’은 주인공 정우의 실제 경험담이 골격을 이룬다. 정우에게 들은 이야기와 그가 써온 A4용지 50장 분량을 놓고 이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도 했다. 2D 콘티는 물론 3D 동영상 콘티작업도 병행하는 등 1년여 간 사전작업을 철저히 했다.
덕분에 28일, 15회차 만에 촬영을 끝내 제작비를 절감하면서 완성도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친구’나 ‘말죽거리 잔혹사’가 아니었어요. 멋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고교시절 남학들생의 성장통을 편안하고 재미있게 보면서 아울러 교육 현장의 문제도 짚어보고 나아가 부성애 등 가족애를 느끼는 시간을 드리고 싶었어요.”

결과는 성공적이다.
“담백하고 소박하게 끓여낸 부산명물 돼지국밥을 닮았다” “폭력은 생략하고 향수를 자아내는 유머코드가 관객들을 유쾌하게 만들고 후반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공감백배 성장물” “남자들의 세계-뜨거운 감동 선사” 등 호평을 받고 있다.


이 감독은 부성애에 대해 “정우 이야기에 얹어서 내 이야기를 한 것”이라면서 “온 가족이 건강하게 사는 게 가장 큰 바람”이라고 역설했다. “김영철 촬영감독님, 3D 동영상 콘티작업을 해준 푸리비전 등 영화동지들이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다음 작품은 액션영화로 내년 2월부터 찍을 계획”이라며 “내 색깔이 있는 괜찮은 감독으로 관객들과 함께 하고 싶은 바람을 더욱 키워나가겠다”고 다짐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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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MP3로 국악 들으며 셋 다 매력에 푹~
ㆍ2007년 데뷔앨범 퓨전국악에 새바람

ㆍ‘궁S’ ‘스타킹’ 출연 ‘우리 소리 알리기’
ㆍ해외연주 열광…국내 무관심 아쉬워





‘IS’(아이에스). 세 쌍둥이가 주인공인 퓨전 국악밴드이다. 김진아·선아·민아(24). 진아는 가야금, 선아는 거문고, 민아는 해금을 연주하며
노래한다.
오는 9월23일부터 27일까지 닷새 동안 열리는 2009 전주세계소리축제(JISF)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이들은 우리 국악의 참맛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김진아



# 어느날 갑자기

김진아·선아·민아 자매는 1985년 1월15일 서울 태생이다. 진아는 선아보다 2분, 선아는 민아보다 4분 빨리 태어났다.

“부모님께선 하나만 낳아 잘 기르려고 하셨대요. 그런데 세 쌍둥이가 태어난 거예요.”
“아빠가 그래서 학업을 중단하고
회계사를 하셨어요. 군대는 다시 가라면 가겠는데 저희들 키우는 건 다시 못할 것 같다더군요.”
“엄마가 음악교사였는데 학교에 계시는 게 오히려 쉬는 거였대요.”


‘IS’는 ‘소리의 무한함’(Infinity of Sound)을 지향한다. ‘IS’ 탄생은 이들이 초등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막내 민아가 난데없이 해금을 시작하면서 비롯됐다. 국악에선 막내 민아가 맏이인 셈이다.

“불정초등학교(분당) 3학년 때부터 저는 플루트, 선아는 클라리넷을 했어요. 민아는 아무것도 안 했고요. 그런데 5학년 어느날 민아가 덜컥 해금을 가져왔어요. 어린 마음에 시샘을 했는지 언니들과 달리 특이한 걸 하겠다면서….”

이후 이들은 운명적으로 타고난 듯 국악에 매료됐다. 중학교 2학년 때 앙상블을 고려해 진아는 가야금, 선아는 거문고를 선택해 본격적으로 수련을 했다.


김선아



“중·고교 때 국악에 미쳤달까, MP3에도 국악만 담고 수시로 들었어요.”
“새벽에 일어나 연습하는 것도 다반사였죠. 한 사람이 연습하면 자극을 받아 다른 사람도 하는 등 선의의 경쟁을 했어요.”
“경연대회에서 한 사람만 떨어지거나 누군가가 슬럼프에 빠지면 내 일처럼 다독이면서 다시 뭉치고는 했어요. 국악의 활성화와 세계화, 목표가 뚜렷했고 열정이 뜨거웠기 때문에 흐트러지지 않고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고 봐요.”


전국 국악경연대회·동랑 국악경연대회·전통예술경연대회·난계 국악경연대회 등에서 각자, 함께 거둔 수상경력이 화려하다. 국내는 물론 미국·러시아·베트남·헝가리·일본·싱가포르·카자흐스탄 등 해외 공연도 수차례 다녀왔다.
선화예고, 국립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을 함께 나란히 졸업했고, 현재 모두 한예종 동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논문 과정을 남겨놓고 있다.


# 언제나 한결같이


‘IS’는 2007년 3월 데뷔 앨범 ‘Step One’을 내놓았다.
전자음 하나 섞지 않고 어쿠스틱 악기와 세 자매만의
목소리로 담은 ‘봄’ ‘백만송이 장미’ ‘밀양아리랑’ 등 11곡을 발표, 국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퓨전 국악 앨범의 진수를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민아



‘IS’는 지난 7월 두번째 앨범 ‘In Dreams Volume1’을 선보였다. 1집 타이틀곡 ‘봄’ 리믹스 버전과 ‘나는 너의 고양이다’ ‘우주연어’ ‘심야소녀’ 등 5곡의 신곡을 담았다.
이번 앨범에서는 일렉트로닉과의 접목을 꾀했다. 한국 전통음악을 팝 음악의 문법을 통해 재해석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IS가
작곡과 편곡에도 참여했다.

“국악의 매력은 연주자와 관객이 한판 놀아보는 데 있어요.”
“선조들의 삶이 녹아들어 소름끼치는 맛을 느껴요.” “국악기 소리는 연주자가 손과 몸으로 만들어야 해요. 이 과정에 혼을 담는 게 매력적이에요.”


이런 이들의 꿈은 한결같다. 국악은 지루하고 재미 없다는 편견을 깨는 것이다. 국악의 참맛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면서 함께 느끼고 즐기고 싶다.

“가장 힘든 게 우리 음악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무관심한 거예요. ‘관심과 인기를 끌기 위해 만들어진 세 쌍둥이다’ 등 우리들에 대한 시기와 오해보다 국악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이 더 힘들었어요.”

진아의 말에 선아는 보다 구체적인 어려움을 털어놨다. “거문고는 ‘국악의 왕’으로 불리는데 관현악단 구성이나 공연에 빠진다”면서 “관습·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민아는 “해금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며 “마음은 굴뚝 같은데 결과가 따라주지 않을 때 안타깝다”고 창작의 어려움을 들었다.


지난 7월 발매된 IS의 두번째 앨범




‘IS’는 영화 ‘앤티크 서양골동양과자점’, TV 드라마 ‘궁S’ ‘돌아온 일지매’ 등에도 출연했다. 예능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 동시간 순간 시청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들은 “국악을 더 알릴 수 있고 IS 성격에 맞으면 매체를 가리지 않는다”면서 “앞으로 호응이 뜨거운 해외 활동에 더 비중을 둘 계획”이라고 밝혔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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