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진(30)이 재난영화 <타워>(감독 김지훈)로 주목받고 있다. 개봉 7일 만에 200만, 12일 만에 300만, 18일 만에 4백만 명이 넘는 관객이 봤다. 흥행속도(400만 돌파 기준)로 보면 1000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보다 이틀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다. 700만 명이 넘게  본 <늑대소년>과 같다. <타워>는 손예진이 데뷔한 지 13년 만에 처음으로 출연한 블록버스터다. <타워>의 홍일점 손예진에게 재난영화 촬영 현장 이야기를 들었다.

 

 

손예진이 <타워>에서 맡은 인물은 ‘서윤희’다. 108층 주상복합빌딩 ‘타워스카이’의 푸드몰 매니저다. 눈부신 미모와 미소로 푸드몰 식구는 물론 주변 사람들도 살갑게 챙기던 그녀는 타워스카이가 최악의 화염에 휩싸인 뒤 더욱 빛난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아름다운 여인상을 보여준다. 구출되어야 하는 객체로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면서 구출에 나서는 주체로서의 감동도 자아낸다. “투혼이 느껴진다.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라 연기에 있어서도 완전 프로다!” 등의 찬사를 받고 있다.

 

-물·불과의 촬영이 어땠는지.
“모두들 힘들었다. 뛰고 넘어지고 휩쓸리고…. 뜨거운 열기와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연기·먼지에 시달리고. 다른 분들이 워낙 힘든 촬영이 많아서 나는 상대적으로 덜 힘들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불보다 물이 더 힘들고 무서웠다. 어마어마한 양으로 쏟아지는 강력한 물줄기에 휩쓸리며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애쓰고, 매우 추운 날씨에 납덩이를 들고 수조 세트에서 잠수도 해야 했다. 정말 힘들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촬영장 가는 게 소풍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선배·오빠들이 항상 챙겨주고, 이쁨 많이 받고,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에서 위험한 상황도 즐겁게 찍었다. 그런 현장은 처음이었다. 재난영화여서 그런 점이 없지 않았겠지만 의리와 동지애 같은 걸 느꼈다. 정말 감사하고 뭉클한 적이 많았다. 자연히 현장 가는 게 소풍가는 것처럼 설레곤 했다. 촬영이 끝날 때에는 너무 아쉬워서 주변에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하지 않으려 했다고 들었다.
“시나리오는 좋았지만 굳이 내가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캐릭터의 깊이보다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죽느냐 사느냐가 관건인 영화였다. <오싹한 연애> 찍을 때 제안받았다. 감독님이 <오싹한 연애> 현장에 자주 오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겠다고 했다. 많은 분들이 <타워>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들려줘 정말 흔쾌히 결정했다.”

-블록버스터 출연은 처음이다.
“데뷔한 지 13년 만이다. 개인적으로 블록버스터에 욕심이 없었다. 언젠가는 자연스레 하게 되려니 했는데 <타워>로 연을 맺었다. 두 남녀 주인공으로서 오롯이 책임을 져야 하는 데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주변 도움을 받으면서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영화 속에 내가 어떻게 자리하는지 궁금했다.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했고, 여러 배우들과 작업하는 데 대한 호기심도 발동했다.”

 

-서윤희 캐릭터는 어땠나.
“마음이 따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인물이다. 다들 포기하려는 순간에 좋은 에너지를 전한다. ‘실제로도 내가 과연 이럴 수 있을까?’라고 물었을 때 ‘그럴 것 같다’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자칫 교과서적인, 전형적인 인물로 비쳐질 수 있는 캐릭터여서 그 점을 경계했다. 아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해주고, 차분하게 인도하는 인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설경구·김상경과의 작업이 어땠는지.
“친동생처럼 편하게 대해줬다. 경구 선배는 언니(송윤아) 보러 집에 놀러 갈만큼 편하고 친분이 있지만 작품을 하는 건 처음이다. 연인 관계로 나오는 상경 선배는 친분이 거의 없었는데 촬영하면서 많이 친해졌다.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도맡아 줬다. 정말 감사했다. 김인권·도지환 등 함께 하는 게 처음인 배우들이 많았다. 박철민 선배는 <오싹한 연애>, 정인기 선배는 <무방비도시>에서 함께 한 적이 있다.”

-화물 엘리베이터로 탈출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 장면을 찍으면서 죽음의 공포도 처음으로 느꼈다. 밀폐된 공간에서 극한의 공포를 느끼는 걸 상상하고 최면도 걸면서 연기를 했다. 18시간을 찍으면서 에너지 소모가 컸다. 9·11 테러, 대구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처럼 실제로 이런 일이 내게 느닷없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먹먹해지고 머리끝이 주뼛 서면서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대형참사에 대해 남 얘기로 여겼고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촬영하면서 참혹함과 고통을 절감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컷’ 소리를 들은 뒤에도 눈물이 계속 났다.”

-의상이 단벌이다.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이브 하루 동안에 벌어진 일이다. 촬영기간 내내 흰색 정장 한 벌만 입고 나온다. 세탁을 하고, 앞서 찍은 장면과의 연결을 위해 다시 더럽게 만든 뒤에 입고 촬영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세탁소 아저씨가 ‘이 옷을 입고 도대체 뭘 하느냐?’고 물은 기억이 난다. 유독 가스를 많이 마셔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을 때 주민들이 재에 덮인 우리를 보고 실제로 119에 신고를 한 적도 있다.”

-몰래 카메라 사건은 어떻게 발생했나.
“촬영 초반에 내가 하자고 했다. 예전에 화보 촬영 때 간간히 한 적이 있는데 영화에서는 처음으로 했다. 외계인의 존재를 놓고 설왕설래하다가 편이 나뉘면서 인신공격까지 하는 걸로 설정했고 실제로 실감나게 언쟁을 했다. 김지훈 감독님은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고 예사로 넘기려고 했는데 우리들 연기가 출중해 믿게 되었다고 했다. 더구나 경구 선배가 쓰레기통까지 던지면서 내게 화를 내고 나도 지지 않으려고 하자 <타워> 촬영은 오늘로 끝이구나’라고 느꼈다고 하더라. 감독을 감쪽같이 속일 정도로 팀워크가 대단했다. 이 팀워크로 촬영을 마쳤다.”

-보충 촬영도 길게 했다.
드라마 부문 보완을 위해 보충 촬영을 했다. 관객의 가슴을 쥐락펴락 하는 드라마, 화려한 볼거리, 빠른 전개…. 이 모두를 만족시켜 주는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타워>는 블록버스터로서 볼거리는 물론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희노애락이 담겨 있다. 가족·연인·이웃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잘 되고 있지만 더 잘 되었으면 한다.”

 

손예진은 <타워> 이후 <공범>(감독 국동석) 촬영을 마쳤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엄청난 비밀을 감춘 범죄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된 딸이 진실 추적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손예진의 13번째 영화다. 손예진은 “여러 작품을 하는 것보다 좋은 영화에서 완벽하게 책임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며칠 뒤면 만 30살이 되는 손예진은 “우리 모두에게 한층 따뜻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하루하루를 더욱 소중하게 보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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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60). 영화 <26년>의 ‘그 사람’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조 내관’이고 <도가니>의 ‘교장 형제’이다.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중퇴한 뒤 1976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뒤 주로 성우로 활동해 왔다. 지난해 8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출연한 영화 데뷔작 <도가니>부터 개성파 배우로 각광받고 있다. 예순 살에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그에게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를 들었다.

 

 

장광의 영화배우로서의 이력은 특별하다. 데뷔작 <도가니>(2011)와 올해 출연작 <광해, 왕이 된 남자> <내가 살인범이다> <26년> <음치클리닉> 등 다섯 편으로 2200만 명이 넘는 관객과 함께했다. <도가니>(감독 황동혁)는 466만2829명(이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광해, 왕이 된 남자>(〃 추창민)는 1229만4509명(이하 22일 현재), <내가 살인범이다>(〃 정병길)는 272만9551명, <26년>(〃 조근현)은 283만5450명, <음치클리닉>(〃 김진영)은 33만8131명이 관람했다. 다섯 편 가운데 네 편이 200만 명 이상이고, 한 편은 1000만 명이 넘는다.

-흥행 성적이 대단하다. 작품 선정 때 무엇을 중시하나.
“의미 있고 재미있는 작품을 좋아한다. ‘신인’이어서 거절할 입장이 아니지만 출연작을 정할 때 이 점을 중시한다. 운이 좋았고, 하나님이 인도해줬고, 함께한 배우·스태프 덕분에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현재 H스타 컴퍼니 소속이다. <26년> 촬영이 끝나갈 즈음 경합이 붙은 서너 군데 매니지먼트사 가운데 <광해, 왕이 된 남자> PD가 추천해 준 곳과 2개월 쯤 전에 계약을 했다.

-‘전두환’ 배역과 인연이 깊다.
“MBC드라마 <삼김시대>(1998)에서 전두환 역을 맡았다. 원래 56부작인데 김기팔 작가가 작고, 작가가 교체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26부작으로 종영되고 말았다. 큰 역을 맡은 것은 그때가 처음인데 연기가 자리를 잡을 즈음 끝나 못내 아쉬웠다. <제5공화국>(2005)에서 동국대 연극영화과 동기인 이덕화가 전두환 역을 맡아 이제는 끝났구나 했는데 <26년>이 들어와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제4공화국>(1995~96)에서는 정종준이 전두환 역을 맡았다. 그는 대머리 가발을 썼다. 장광은 이 드라마에 별을 두 개 단 소장으로 출연했다. 전두환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었다. 당시 연출을 맡은 고석만 PD(현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는 양쪽 다 전두환 같아 안 되겠다며 장광에게는 실내지만 모자를 쓰라고 했다. <삼김시대>를 연출하면서 장광을 전두환 역에 캐스팅했다.

 

-<광해~>로 다소 해소됐는데 다시 악역을 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는지.
“부담이라면 <도가니> 때가 컸다. 크리스천이어서 천하에 둘도 없는 악역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반면 이번에는 <삼김시대> 때 아쉬움을 해소하고 싶었다. 5·18 당시가 아니라 26년이 지난 뒤의 이야기여서 못 했던 부분도 새롭게 하고 싶었다. 2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니고 있는 남다른 담력과 기질이 보이도록 했다. 그것이 역으로 관객들에게는 더 밉살스럽게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좀 더 악독하고 잔인하게 표현하고 싶었는데 개인적으로 조금은 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촬영 앞두고 어떤 준비를 했나.
“많은 자료를 보면서 표정·눈빛·말투 등을 관찰하고 연습했다. 재판을 받을 당시 당당함 등을 캐릭터를 설정하는 데 참고했다. <삼김시대> 때와 달리 몇 편의 영화로 경험을 쌓은 뒤여서 조금은 더 자유롭게 연기했다.”

-기억에 남는 일화는.
“영화 막바지 맞는 장면에서 고생 좀 했다. 처음에는 보호대를 했는데 몸이 부어 보여 좀 빼자고 했다. 무술감독이 촬영할 때 보호대를 대지 않는 곳에 많이 맞는다고 말렸지만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는 후회했다. 얼마나 아픈지 저절로 비명을 질렀다. 감독이 ‘그 사람’은 비명을 안 지를 것 같다고 해서 꾹 참고 다시 찍었다. 한 번 맞을 걸 두 번 이상 맞았다. 개인적으로 죽어가는 경호실장(조덕제)을 발로 차버리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조덕제는 총탄 파편이 이마로 튀어 다쳤는데 엔지(N.G.)를 내지 않으려고 계속 연기를 했다. 링거를 맞아가며 촬영을 강행한 진구 등 최선을 다하는 배우·스태프들과 함께하면서 영화배우로서의 긍지와 보람을 다시 느꼈다.”

 

장광은 동국대 연극영화과 70학번이다.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 제대 후 1976년부터 극단 멕토에서 활동했다. 멕토의 <열 개의 인디안 인형>에 참여한 성우들의 대사 소화 능력을 보고 연기력을 배양하기 위한 일환으로 78년 동아방송에 성우로 입사했다. 80년 12월 언론통폐합으로 KBS에서 활동했다. 방송사와 극장 애니메이션 <슈렉> 시리즈의 ‘슈렉’ 등 그간 성우로 활동한 작품수가 A4용지로 10장이 넘는다. 극단 제작극회·현대극장 등의 무대에 서면서 영화 <휘파람 공주>(2002)에 한 장면만 나오는 ‘북한 간부, 단장’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도가니>의 ‘교장 형제’ 역할은 경쟁률이 엄청났다.
“800 대 1이라고 들었다. 당시 연기에 대한 갈증,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영화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시>(감독 이창동) <댄싱퀸>(〃 이석훈) 등 5~6편에서는 떨어졌다. <도가니> 오디션을 볼 때에만 해도 교장 형제 역에 캐스팅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미지와 나이가 맞고 성우·연극 경력이 보탬이 됐다고 본다. 그런데 정작 캐스팅된 뒤에는 갈등했다. 원작을 읽은 뒤에는 더했다. 하지만 배우가 되려면 해야 했다. 내가 안 하면 누군가가 할 것이고, 내가 더 돋보이게 하고 싶었다. 하기로 한 만큼 최선을 다했고, 배우로 이름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시나리오가 원작보다 다소 강렬함이 떨어졌고, 수위를 낮추느라 촬영한 섬뜩한 장면이 꽤 편집됐는데, 그럼에도 개봉 이후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 영상(영화)의 힘이 대단한 걸 새삼 실감했다. 나는 지탄의 대상이 됐지만 ‘도가니법’이 제정되는 데 일조하지 않았나 하는 데에서 보람을 느꼈다.”

-<광해~ >에서는 ‘하선’(이병헌)의 멘토 역할을 하는 ‘조 내관’으로 주목받았다.
“원래는 대감 가운데 한 명을 지망했다. ‘조 내관’을 제안받고 ‘하선’에게 도망가라고 하는 장면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감독의 의중과 달라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이불 속에서 조 내관의 대사를 되새기는데 감독이 원하는 게 와닿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 다시 오디션을 봤고, 감독이 90% 만족한다면서 10%는 현장에서 찾아내자고 하더라. 사실 이미 내정했는데 다시 오디션을 보겠다는 전화를 받고 이런 열정이라면 소화할 수 있겠다고 여겼다면서.”

촬영을 마친 <신세계>(감독 박훈정)에서 그는 이정재·최민식·황정민·송지효 등과 함께했다. 요즘 <은밀하게, 위대하게>(〃 장철수)를 찍고 있다. 김수현·박기웅·이현우·손현주·이채영 등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는 “아침마다 5㎞를 뛰고 영화를 예전과 달리 공부하는 자세로 많이 본다”면서 “대학에 입학하면서 꿈꾼 삶을 40여 년이 지난 뒤에 이룬 게 꿈만 같다”고 했다. “밤샘 작업을 해도 끄떡없다”며 “어떤 배역이든, 배역이 크든 적든 다양한 인물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그려내 오랫동안 관객과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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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진 감독(47)이 새 영화 <용의자X>로 돌아왔다. 이 영화는 지난 18일 개봉, 6주 동안 정상에 올라 있던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끌어내리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면서 3일 동안 44만1429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관람했다. <오로라 공주>(2005) 이후 다시 달리는 방은진 감독의 개선 행진곡을 들었다.

 


<용의자X>는 살인사건을 다루면서 사랑 이야기를 녹여놓았다.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을 각색, 영상화했다. 제목 앞에 명기, 영화가 어떤 작품인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태그라인(Tagline)이 ‘천재 수학자의 완벽한 알리바이’다. <용의자X>는 이 알리바이의 전모를 보여준다. 완벽한 알리바이로 인해 미궁에 빠지던 사건은 석고의 사랑이 단서가 되면서 새 국면을 맞는다. 천재 수학자 ‘석고’는 류승범, 이웃집 여인 ‘화선’은 이요원, 형사 ‘민범’은 조진웅이 맡아 열연을 펼쳤다.

-원작 소설은 언제 읽었나.
“국내에 출간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오로라 공주> 촬영감독 권유로 읽었다. ‘죽인다’는 그의 말대로 흥미로웠다. 어떻게 하면 판권을 살 수 있을는지, 고심만 하다가 다른 작품을 준비하느라 잊었다. 일본에서 소설과 같은 제목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국내에 배급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쉬웠다. 기회가 없어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본영화 <용의자X의 헌신>은 2009년 4월 9일 개봉됐다. 9만4790명(한국영화연감 기준)이 관람했다.

-결국은 만들었다.
“판권은 케이앤엔터테인먼트가 갖고 있었다. CJ엔터테인먼트가 개발, 케이앤과 공동제작했다. 나는 CJ에 한 작품의 기획안을 내놓고 개발을 하고 있고, CJ는 어느 정도 시나리오를 끝내고 감독을 찾고 있던 시점에 만났다. 연출 제안을 받고 내가 심리를 다루는 데 장점이 있다고 보나 보다 했다. 하고 싶었던 작품이었는데 5년여 만에 내 손에 들어온 데에서 운명이란 느낌을 받았다. 앞서 두 영화사에서 준비했던 작품이 다 무산됐고, CJ에 내놓은 새 기획 작품은 해외로케 등 일정 시간이 필요했다. <용의자X>는 잘 할 수 있는 소재였고, 하고 싶은 작품이어서 달려들었다. 잘 만들어서 앞으로 연출을 하는 데 탄력을 받고 싶었다.”

 

-각색 작업은 얼마나 했나.
“각본 작업은 이공주·이정화·김태윤 작가가 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3개월 간 감독고(監督稿) 작업을 10고(稿)까지 했다.”

-각색·연출작업 때 어디에 주안점을 뒀는지.
“소설에서 사랑은 숨겨져 있다. 수면 아래에 있는 사랑을 영화에서는 위로 올렸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품은 진심과 사랑을 담는 데 무게를 뒀다. 사랑이 사람을 구원하는 이야기를 풀어넣어 울림이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감성 미스터리를 지향했다.”

-촬영작업은 어땠는지.
“촬영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개월까지 60회에 걸쳐 찍었다. 빛으로 감정을 다루는 이철오 조명감독, 핸드헬드 촬영(들고찍기)의 천재라고 했을 만큼 역동적인 순간의 감정을 포착해 내는 최찬민 촬영감독-이 영화에서는 외려 정적인 카메라이긴 하다-, 감정을 소리로 증폭하는 신이경 음악감독 등 최강의 스태프와 최고의 배우들과의 합작품이다.”

촬영할 최적의 장소를 찾는 게 힘들었다. 계단과 마당을 갖춘 복도식 아파트는 전국을 헤맨 끝에 찾은 대구의 오래된 맨션이다. 살인사건, 장르적 특성 때문에 주민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석고가 지나다니는 길목의 낡고 오래된 굴다리는 전국을 헤매다가 신촌의 외진 곳에서 기적적으로 발견했다. 중요한 단서가 되는 저수지는 강원도 화천의 오지에서 찾았다.

-일본영화 <용의자X의 헌신>은 봤나.
“각색 작업을 마친 뒤에 딱 한 번 봤다. 그 전에는 일부러 보지 않았다. 작업 후에 보니까 주요 인물(물리학자)이 없어졌고, 나이를 낮췄고, 멜로에 중점을 둬 그 영화와의 차별화 등은 굳이 고려하지 않아도 됐다.”

소설 등을 각색·영상화한 작품은 곧잘 원작과 비교된다. 문자언어와 영상언어, 표현의 무한성과 한계성, 단독 작업과 공동 작업, 작업비용 등에 걸쳐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원작에 비해 이러저러하다는 평가를 받고는 한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그린 영화에 비해 평가에서 불리한 실정이다.

-원작에 비해 어떻다는 감상평이 잇따른다.
“소설과 영화는 엄연히 장르가 다르고 그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비교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맞닥뜨리니까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미스터리에 심리·멜로를 가미해 호·불호가 있겠지만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영화의 재미를 더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먼저 읽었든 아니든, 원작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영화 자체의 재미와 의미를 느꼈으면 한다.”

 

-석고의 사랑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성별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 대체로 남자들은 ‘미친 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울컥해 한다. 여자들은 ‘완전한 사랑’이라며 ‘받고 싶다’고 한다. ‘(그런 사랑) 있으면 좋겠다’ ‘희망을 얻어간다’는 분들도 있다. 영화상의 이야기지만 가능한 사랑이라고 본다.”

심리학자 장근영 박사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석고의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석고가 화선에게 보여주는 것은 헌신밖에 없고, 화선은 석고에 대해 전혀 모르고, 석고에 대해 감정이 생기려 하지만 석고 혼자 다하고 있다”며 “이런 사랑을 스턴버그는 ‘공허한 사랑’이라고 하고 색채이론에서는 ‘아가페적 사랑’이라고 한다”고 했다. “아가페적 사랑이라는 건 신의 사랑”이라며 “가장 큰 사랑을 한 인간(석고)이 가져가고 있다는 것에 있어 굉장히 경외로웠다”고 했다.

-원작자는 영화를 봤나.
“보셨다. 격조가 있고 좋다고 했다. 과장되지 않고 차분한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라며 캐릭터들의 갈등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고 하셨다. 각색을 할 때 작가가 몇 가지 조건을 걸었다. 화선과 ‘윤아’(김보라)의 관계, 화선의 행보, 제목 등등에 대해. 이를 좀 배반했는데 모두 용인해 주셨다. 범인과 형사 사이에서 고뇌하는 물리학자가 그려지지 않은 데 대해 ‘약간 아쉬울 수 있으나 신념에 근거를 둔 과감한 각색’이라고 했다.”

방 감독은 초등학생 때 KBS 어린이합창단에서 활동했다. 아역배우도 했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중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1994)으로 데뷔했다. 박철수 감독의 <301, 302)(1995)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연기상 등을 받았다.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2000)으로 대종상 여우조연상 등을 받았다. 감독 데뷔작 <오로라 공주>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과 황금촬영상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용의자X>는 멜로가 살아있는 미스터리다. 방 감독은 “세상이 각박하고 사랑도 일회적·조건적인 데 익숙해지고 있다”면서 “<용의자X>를 보고 나서 우리가 염원하는 사랑의 절대 가치를 되찾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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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인권(34)은 동국대 연극영화과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2학년 때 박종원 감독의 <송어> 연출부 막내로 현장수업을 받다가 조연을 맡은 뒤 배우로 활동해 왔다. <조폭마누라> <플라스틱 트리> <말죽거리 잔혹사> <숙명> <해운대> <방가? 방가!> <마이웨이> <퀵> <광해, 왕이 된 남자> 등에 출연했다.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타워> 등이 개봉될 예정이고 방송인 이경규가 제작하는 <전국노래자랑> 촬영을 앞두고 있다.

 


‘태주’(송어) ‘이병장’(박하사탕) ‘상구’(아나키스트) ‘빤스’(조폭마누라), ‘동춘’(해운대) ‘방가’(방가? 방가!) ‘종대’(마이웨이) ‘명식’(퀵) ‘도부장’(광해, 왕이 된 남자)…. 태주부터 빤스는 1999~2001년, 동춘부터 도부장은 2009~2012년 영화에서 김인권이 맡은 인물이다. 10년 사이에 김인권이 펼쳐낸 극중 인물의 차이와 변화무쌍함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최근작 네 편에서는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는 김인권의 넓고 깊은 연기력을 맛볼 수 있다.

 

 

■저우싱츠(周星馳 주성치), 짐 캐리 열혈 팬
부산에서 자란 김인권은 고교시절 영화광이었다. 극장에 갈 돈이 없어 비디오를 즐겨 봤다. 뤽 베송 감독의 <레옹>(1994)을 서른 번쯤 볼 정도로 특정 작품을 좋아했다. <파괴지왕>(1994) > <덤 앤 더머>(〃) <에이스 벤추라>(〃) <마스크>(〃) 등도 수없이 보면서 자연스레 영화의 세계를 동경했다.


 

“장 르노, 주성치, 짐 캐리 등을 엄청 좋아했죠. 교회 연극에서 관객을 곧잘 웃겨 연기 잘 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하지만 배우가 되는 건 언감생심이었어요.”

 

김인권은 그래선지 배우보다 감독이 되고 싶었다. 감독이 된 뒤에 저우싱츠처럼 배우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이때가 고3 말. 김인권은 1996년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선배들 작품에 배우·스태프로 참여하면서 2학년 때 박종원 감독의 <송어>(1999) 연출부에서 활동했다. 박 감독의 추천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제자인 1기생 조의석의 단편 <환타 트로피칼>에 출연한 뒤 <송어>에 개를 사육하는 산골 소년 ‘태주’로 출연, 극의 하이라이트를 긴장감 넘치게 장식했다.

                     김인권은 박종원 감독의 <송어>에 산골 소년 ‘태주’로 출연, 극의 하이라이트를 긴장감 넘치게 장식했다.

 

7~8개월을 그렇게 지내면서 영화 오디션을 많이 봤다. <박하사탕>(감독 이창동) <유령>(〃 민병천) <주유소 습격사건>(〃 김상진) <공동경비구역JSA>(〃 박찬욱)…. <박하사탕>에 ‘윤순임’(문소리)이 면회 온 걸 보고하는 위병소 병장으로 출연한 거 외에는 모두 고배를 마셨다.

 

“극단 ‘배우세상’ 기획팀에서 막내 생활도 했어요. 김갑수·조재현 선배님이 함께한 연극 <물고기 남자>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다가 서대문경찰서에 불려가기도 했죠. 연극 <갈매기>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중고생 영·수 과외도 했어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런 중 <아나키스트>(감독 유영식)에서 주연을 맡았다. 1924년 상해 경신 대학살로 가족을 잃은 ‘상구’로 출연, 장동건·정준호·김상중·이범수·예진원 등과 호흡을 맞췄다. 4개월여 중국 촬영을 마친 뒤 유명 매니지먼트 회사에 소속, <챠오>(〃 고은기) <조폭마누라>(〃 조진규) <에이치(H)>(〃 이종혁)에서 주·조연을 맡았다.

 

                 <아나키스트> <조폭마누라><플라스틱 트리> <신부수업>(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졸업작품인 <쉬브스키>도 만들었다. 외계인, 외계인을 탐구하는 인간, 외계인 쇼를 보는 또다른 외계인의 이야기를 그린 장편이다. 각본·연출을 하면서 주연도 맡아 1인 3역을 해냈다. 2003년에 졸업, 2004년에 입대하기 전까지 <플라스틱 트리>(감독 어일선) <화성으로 간 사나이>(〃 김정권) <신부수업>(〃 허인무) <말죽거리 잔혹사>(〃 유하)에서 주·조연을 맡아 개성 넘치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반면 <파이란>(〃 송해성) <해안선>(〃 김기덕) 등은 선택받지 못했다.

 


■쥐포 구워 팔까? 탁구장 할까?
김인권은 초등학교와 대학을 함께 다닌 동기동창과 결혼했다. 입대하기 전에. 졸병 때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김인권은 집안 걱정 등으로 좌불안석의 나날을 보냈다. 2006년 11월에 제대한 뒤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2007)로 컴백, 라면 CF도 하면서 안정을 찾은 그는 <두 얼굴의 여친>(〃 이석훈) <마이 파더>(〃 황동혁) <용의주도 미스신>(〃 박용집) 등에 이어 <숙명>(〃 김해곤)에서 송승헌·권상우 등과 함께 주연을 맡았다.

 

                 

“주변에서 이 영화 개봉되면 완전 스타가 될 거라고 했어요. 조연으로 올리면 확실히 수상할거라고도 했고. 그래서 시상식에서 상 받으면 가장 먼저 누구한테 고맙다는 말을 전할까 고민했는데, 웬걸 수상은커녕 1년을 쉬어야 했어요. IMF한파 등으로 인해.”

 

당시 충무로 공기는 싸늘했다. 출연 제안을 받은 작품이 속속 물거품이 됐다. 가까스로 투자를 받은 <숙명>과 <두 얼굴의 여친>마저 흥행에 실패하면서 김인권은 데뷔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16부작 드라마에서도 이름이 안나오는 배역이 들어올 정도였다.

 

영화계 동료·후배들 가운데 대리운전에 주차요원으로 연명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스태프 중에서는 장비를 고철로 팔아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도 있었다.

“등산을 많이 다녔어요. 친구와 함께. 그 친구는 내 권유로 10년 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영화를 다시 시작했는데 그 작품도 엎어져 졸지에 백수가 됐죠. ‘길에서 쥐포를 구워 팔까? 탁구장을 할까?’….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로 괴롭고 힘든 나날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김인권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송어>에서 함께한 설경구의 전화였다. 설경구는 다짜고짜 김인권에게 “윤제균 감독 아냐? 빨리 와. 압구정동으로”라고 했다. 친구와 용인의 한 허름한 고깃집에 있던 김인권은 단숨에 압구정동으로 달려갔다.

 


그 자리에서 윤 감독과 설경구를 만난 김인권은 <해운대> 이야기를 듣고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그만큼 연기에 배고팠고 생활고도 절박했던 김인권은 ‘동춘’ 역할에 온몸을 던졌다. 품행이 불량스러운 인물을 밉살스럽지 않은 캐릭터로 펼쳐냈다. 웃음과 더불어 찡한 감동까지 자아내면서 <해운대>가 한국영화 중 다섯 번째로 ‘천만 고지’를 정복하는 데 기여했다. 부일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등 데뷔한 지 10년 만에 스타덤에 올랐다. <방가? 방가!> <마이웨이> <퀵>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변신을 거듭,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다.

“정서적으로 약자에 끌려요. 배우 유전자도 약자쪽 기질이 더 강하다고 봐요. 약자의 편에 서는 코미디가 좋아요. 망가지면서 살아남는 배역을 깊이 있게 파는 데 희열을 느껴요. 예전에는 연기의 중심에 내가 있었고 강해 보이고 싶었는데 지금은 달라요. 관객이 우선해요. 관객에게 웃음을 주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걸 중요하게 여겨요. 관객을 위한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배우, 겸손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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