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성(47)은 1980~90년대 연극배우 출신 영화배우 1세대로 손꼽힌다. 서울대 경영학과 84학번인 그는 1987년 극단 천지연을 필두로 한강·한양레파토리·연우무대·학전 등에서 활동했다.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1995)로 영화와 인연을 맺은 뒤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바리케이트> <억수탕> 등의 주연배우로 각광받았다. 이후 약 10년간 베트남에서 영화 수입·배급, TV드라마·연극 제작을 했다. 2010년 여름에 귀국, <북촌방향> <건축학개론> <남영동1985> <26년>에 출연했다. 요즘 송강호·이정재·백윤식·김혜수·조정석 등과 함께 <관상>을 찍고 있다.

 

 

■연극으로 사회 참여
김의성은 서울대 경영학과 2학년 때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교내 연극을 보고 뒤풀이에 따라 간 게 계기가 됐다. 김의성은 “이념 서클에 들어가고, 데모에 참여해 돌도 던졌지만 그보다 연극을 통해 발언을 하는 게 체질에 맞았다”며 “그게 지금 배우로 살아가는 운명의 출발점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듯 실존 문제로 고민이 많았어요. 암울한 시대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했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연극만 하면서 살 수 있을지…. 결국 휴학을 했고, 친구가 있는 부산의 한 공장에 취직해 공원 생활을 했어요. 영장이 나와 입대했고.”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뒤에는 1987년 대학 연극·탈춤반 출신으로 결성된 극단 천지연 활동에 주력했다. 졸업만 하면 어디든 취직이 가능한데 연극을 한다고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자 집안의 반대가 거셌다. 김의성은 극단에 불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라는 아버지와 형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연극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정진영과 함께 2인극 <동팔이의 꿈>을 전국의 공장·학교를 순회하며 1년 동안 공연하는 등 문화 운동에 앞장서고 파업 현장을 찾아 다녔다.

극단 한강 시절에는 밥만 먹어도 좋았다. 연우무대에서는 밥을 꼬박꼬박 사줘 더욱 좋았다. 학전에서는 계약까지 해줘 고마웠다. 하지만 수입은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과외교사로 한 달에 20만~30만원을 벌어 생활했다.

“당시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 월급이 70만원인가 했으니 꽤 많이 번 거죠. 당시 작품으로 가장 큰 돈을 받은 건 TV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이에요. 최하등급으로 계약한 뒤 재계약을 했는데 7개월에 1000만원 정도를 받았어요.”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에서 김의성은 정선경·이경영·최진실 등과 호흡을 맞췄다.

 

김의성은 5년쯤 연극을 하던 시기에 이현승·여균동·김성수·이재용 감독들과 알고 지냈다. 그 인연으로 영화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감독 이현승)에서 비중있는 배역을 맡았다.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김동빈)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자>(〃 오병철)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홍상수) <바리케이트>(〃 윤인호) <억수탕>(〃 곽경택)의 주연배우로 각광받았다.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맡는 등 90년대 중후반 최고의 배우로 손꼽혔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김의성은 김진성·조은숙·이응경 등과 호흡을 맞췄다.

 

■영화로 시대 발언
‘강 과장’과 ‘최 계장’. 김의성이 영화 <남영동1985>(감독 정지영)와 <26년>(감독 조근현)에서 맡은 경관 역이다. 강 과장은 <남영동1985>에서 민주화운동가 ‘김종태’(박원상)를 취조하고 동료들과 함께 고문전문가 ‘이두한’(이경영)을 돕는다. 최 계장은 <26년>에서 전 대통령 ‘그 사람’(장광)을 응징하려는 ‘곽진배’(진구) 등의 계획에 맞선다.

김의성은 두 인물의 캐릭터를 명확하게 구분했다. 강 과장은 “평범한 사람, 피곤한 사람”이라고 했다. 최 계장에 대해서는 “노련한 사람, 안위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했다.

 

“강 과장에게 고문은 일의 하나에요. 그 일을 하면서도 프로야구에 관심이 많아요. 간혹 어깨·목을 주물러요. 고문·일과, 김종태 수사가 그저 빨리 끝났으면 하는 인물이에요. 최 계장에게 경호는 관할 서에서 하는 업무에요. 그 일에 능숙하죠. 일의 결과가 자신의 안위를 좌우하기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처리해요.”


 

김의성은 두 영화에서 각기 다른 경험을 했다. <남영동1985>에서는 두 차례 소름이 돋았다. 두꺼비 출현과 귀신(?)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양수리 세트에 두꺼비가 나타났어요. 인근 숲에서 세트장까지 먼 길을 걸어 온 거에요. 그런데 인재근 의원이 ‘민청련’의 상징이 두꺼비였다고 하더군요. 뱀에게 먹혀 자신이 지닌 독으로 뱀을 죽여 종족을 보호한다면서. 그분께서 잘하라고 와주신 게 아닌가 했어요.”

김종태를 심하게 고문하는 장면을 찍을 때에는 아무도 ‘커트’(cut)를 하지 않았는데 여자가 커트하는 소리가 들렸다. 녹음도 됐다. 현장에 여자가 없었는데. 김의성은 “두꺼비 출현보다 더 불가사의했다”며 “사고가 날 수 있었던 걸 미연에 방지해준 게 아닌가”라고 풀이했다.

 

<26년>은 어렵게 시작한 데 비해 현장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김의성은 “고소공포증이 있어 크레인에 올라가 ‘심미진’(한혜진)의 저격을 저지할 때 정말 무서웠다”고 했다. “혜진이가 오르내리기 귀찮다며 더 높은 곳에서 머물며 간식도 먹는 걸 봤기 때문에 꾹 참고 촬영했다”고 털어놨다. <26년>에 대해 “촬영 기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편집본이 두 가지”라며 “상영작은 줄거리 전개가 보다 매끄러운 것보다 각 장면마다 날 것의 감정을 살린 편집본”이라고 공개했다.

 

                     지난 11월 16일 열린 ‘서울광장 <26년> 콘서트 ’에서 <26년> 출연진이 사회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재미있게 살아라”
김의성은 <남영동1985>와 <26년>에서 문성근·이경영 등과 함께했다. 김의성은 “감회가 새로웠다”고 했다. “두 분 선배를 보면서 ‘나이 먹는 게 괜찮구나’ ‘배우로 늙는 것도 참 좋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남영동1985>의 문성근은 영화 데뷔작 <네온 속으로 노을 지다>에서 만났다. 김의성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원’ 역을 맡았고, 문성근은 CF감독 ‘김규환’으로 출연했다. 출판사가 경영난을 겪을 때 김원은 말도 없이 사라지고 광고회사에 카피라이터로 입사한 ‘이상민’(채시라)은 김원을 가슴에 묻어두고 김규환과 가까이 지낸다.


이경영은 <남영동1985>에 이어 <26년>에서도 함께했다. <네온 속으로 노을 지다>에 이어 주연을 맡은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에서 호흡을 맞춘 선배다. 두 번째 영화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에서 김의성은 유부녀 ‘은재’(최진실)와 조심스런 만남을 갖는 유부남 ‘진우’(이경영)의 친구 ‘창세’ 역을 맡았다. 창세는 의부증이 있는 아내를 둔 인물로 애정 없는 남편에게 실망한 은재의 친구 ‘윤수’(정선경)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이경영과는 인연이 남다르다. <네온~>에 앞서 출연한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에서도 함께했다. 이 드라마에서 김의성은 ‘황일천’ 병장(박중훈) ‘김기수 병장(이경영)’ 등이 소속한 1소대장 ‘이 중위’로 출연했다. 김의성은 원래는 병사였다. 첫 로케이션 때 촬영 준비가 덜 돼 한 장면도 못찍고 그냥 돌아왔고, 소대장 역을 맡은 배우가 아픈 바람에 대신 이 중위 역을 맡게 됐다.

 

 

요즘 출연작은 영화 <관상>이다. 이 영화에선 송강호 등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송강호는 김의성의 연우무대 후배이다.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김의성의 소개로 출연했다. 김의성은 “어느 날 술자리에서 강호가 대뜸 ‘이 형님이 나를 맨 처음 영화하게 해주신 분’이라고 했을 때 좀 쑥스러웠다”며 “예전과 다름없이 배우로 살아가는 선·후배들과 연기를 하는 나날이 즐겁다”고 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부딪쳤던 실존 문제에 대한 고민이 30년이 지난 뒤에 완전히 풀렸다”고 했다. “연극을 한다고 노발대발하셨던 아버지가 임종 하루 전에 ‘재미있게 살아라’고 하셨다”며 “살아온 날의 삶이 녹아든 연기로 오랫동안 관객을 만나고 싶다”고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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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1985>(감독 정지영)는 ‘잔혹 휴먼드라마’다. 혹독한 고문장면으로 관객을 고신하는, 그리고 울먹이게 만드는, 휴머니즘을 역설한 작품이다. 정지영 감독은 이와 관련 “관객 여러분은 1시간50분 동안 힘들었지만 배우들은 두 달 동안 힘들었고, 실제 고문 피해자들께서는 평생 힘들다”고 밝혔다. 정 감독이 <남영동1985> 기획·연출·제작한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끔찍한 현장을 고발, 다시는 힘든 시대를 맞지 말자는 것이다.


 

남영동1985>는 또한 ‘다큐멘터리적 극영화’다. 극중 고문장면은 실제이자 픽션이다. 물 고문, 고춧가루 고문 등은 박원상이 더이상 못참겠다고 표시할 때까지, 전기고문은 약한 전류로 맛보기를 한 뒤에 찍었다. 영화의 원작인 고 김근태 의원의 자전적 수기 <남영동>과 엔드 크레디트의 증언에서 알 수 있듯 1985년 당시의 남영동 대공분실에 카메라를 들이댄듯 화면은 현장감이 넘치고 가공의 극영화처럼 관객의 가슴을 쥐락펴락한다.


<남영동1985>가 많은 유명 인사들에게 호평을 얻고 있다. 지난 29일 이효리는 자신의 트위터에 “생각보다 보기 힘들지 않았어요. 너무 잔인할까 봐 못보시는 분들 걱정 안 하고 보셔도 될 듯해요”라고 올렸다. 이에 앞서 27일에는 김정근 아나운서가 자신의 트위터에 “<남영동1985>를 봤다. 보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영화에서 고문을 견디다 못해 던진 비명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은 같지 않을까…여의도 2012…”라고 밝혔다.



지난 11월 19일 광주에서 열린 시사회에는 여느 도시와 달리 정치인과 시민단체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시사회 후 곽정숙 전 국회의원은 “잔인함, 고통, 분노를 넘어 절망이었다. 사람이 없는 짐승의 시대, 난 사람이다, 사람들과 사람의 시대에 살고 싶다”고 고백했다. 장휘국 광주광역시교육청 교육감은 “영화를 보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분노와 긴장, 허탈과 무력감에 많이 피곤하고 지쳤습니다. 이 영화 꼭 봐야 합니다”고 피력했다. 

그리고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주신 선배님들! 잘 살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김희용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 “허물기는 쉬워도 다시 세우기는 참 힘이 드는 것이 민주주의임을 배웁니다”(명등룡 광주비정규직센터 소장)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짐승처럼 대접 받으며 느끼는 모멸감. 故 김근태 의장께서 겪은, 아니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살았던 국민들이 느낀 아픔을 그린 영화입니다”(조오섭 광주광역시의회 시의원) 등 <남영동1985>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가 이어졌다.



지난 11월 14일 진행된 국회시사회 등에 참석한 정치인들은 소명감을 털어놨다. 이해찬 의원은 “반인륜적인, 반생명적인 그런 행위들을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우리 스스로 다짐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정세균 의원은 “우리 대한민국에 이런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는 것이 참담하다”면서 “정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얼마나 소중한지, 또 지구촌에 아직도 남아있을지 모를 고문이나 반민주적인 잔재들을 청산하는데 대한민국이 앞장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판사 출신인 서기호 의원은 “많은 사건들이 재심에 의해서 무죄판결이 선고돼 많은 분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있다”면서 “문제는 이런 사건들이 그냥 하나의 뉴스거리로만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영화는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 재심에 의해서 당연히 무죄판결을 최근에서야 받는 사건들이 뉴스가 아니라 내 자신의 문제로 다가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 것 같다”고 토로했다. 박병석 국회부의장은 “김근태 의원님은 가셨지만, 그 분이 가지고 있던 의지, 열망은 지금까지 남아있다”고 <남영동1985>의 기획의도에 공감을 표했다.

11월 12일 VIP시사회 후 영화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남영동1985>를 강력 추천했다. “꼭 필요한 영화가 나온 것 같다. 영화 보는 내내 뜨거운 가슴으로 봤다”(감독 강제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아프게 영화를 봤다”(감독 이명세) “엄청난 영화를 봤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졌으면 좋겠다”(배우 박중훈) “끝까지 가슴 졸이게 만들고 그때의 아픈 기억들이 다시 떠오른다. 상처받은 이들이 치유받았으면 한다”(배우 장광) “세상을 떠나신 故김근태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난다. 꼭 나와야 될 영화가 나온 것 같다”(배우 박철민) “대선 시기이고, 앞으로 우리 미래를 잘 만들어 갈수 있을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영화인 것 같다”(배우 김지훈).


이날 시사회에는 대선 후보들도 대거 참석했다. 문재인 후보는 “우리에게 민주주의나 인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우리가 얼마나 잘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인지 그런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정지영 감독이 힘들게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심상정 후보는 “故김근태 선배가 참 그립다”며 “우리 시대는 김근태 선배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압제의 고통과 맞서 싸우고 고통의 기억과 맞서 싸우고 그 분들이 온몸으로 헤쳐간 길을 따라서 민주주의가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안철수 후보는 “보는 내내 고통스러웠다”며 “우리 삶에 역사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는 느낌이었고, 그 분들께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다시는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게 우리 모두 노력해야겠다”면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고 미래를 향하는, 상식이 통하는, 국민이 이기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정희 후보는 “영화는 1985년을 그리지만 국가보안법의 사회적 고문은 그대로 남아있다”면서 “2012년에 사회적 고문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85년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많은 오피니언 리더들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민주주의의 아이콘’으로 손꼽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2일(일) 오후 2시30분,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남영동1985>를 관람할 예정이다. 이날 상영에는 정지영 감독과 박원상·이경영·김의성 등이 무대인사를 갖고 박 시장과 자리를 함께한다. 충격과 분노, 그리고 감동을 넘어 대한민국을 움직일 영화로 주목받고 있는 <남영동1985>에 유명 인사들의 추천 릴레이가 얼마나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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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민 2012.12.05 11: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방 극장에서 상영되는 '남영동1985'가 무슨 연유인지 상영 시작 이후 일주일만에 내린다는 상당히 진실에 가까운 소문-- 상영시간대도 감상하기 어려운 시간대로 -- 이 있습니다. 외부의 정치적 압력에 극장주들이 굴복한다는 소문입니다. 알아보시고 그게 사실이라면( 사실에 상당히 가까움!!! ) 언론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해하는 무리들에게 자유정신으로 돌파하기만을 기원합니다.

“이제부터가 더 중요해.” 배우 이경영(51)이 인터뷰 때 남긴 글이다. 이 말은 영화 <남영동1985>에서 이경영이 맡은 고문 기술자 ‘이두한’의 대사 가운데 하나다. 이경영이 다시 영화 전면에 나서면서 한 다짐이기도 하다. 이경영에게 <남영동1985> 출연기와 후일담을 들었다.

 


1985년 9월,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15호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다. ‘인간도살장’으로 통했던 그곳에서 22일간 모진 고문을 받았고, 훗날 자전적 수기 <남영동>을 남겼다. 영화 <남영동1985>(감독 정지영)는 잔혹한 휴먼드라마다. 혹독한 고문 장면으로 관객을 고문하는, 야만성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 절감하게 하는 영화다. 이경영은 일명 ‘장의사’로 불리는 고문 기술자 ‘이두한’으로 출연했다. 이두한과 그 일행의 갖은 고문에 견디다 못해 거짓 자백을 하는 민주화 운동가 ‘김종태’는 박원상이 맡았다. 명계남·김의성·서동수·이천희·김중기·문성근·우희진 등이 함께했다.

 

-<남영동1985> 이야기를 들은 게 언제인가.
“감독님의 전작 <부러진 화살>(개봉 1월 18일)이 한창 상영 중일 때다. 감독님이 다음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하러 지방에 갔다고 하더라. 고문에 관한 영화고, 김근태님의 <남영동>이 원작이고, 가제가 <야만의 시대>라고 들었다.”

이경영은 그때 ‘감독님이 왜 그렇게 서두르지? <부러진 화살>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잘 마무리를 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에너지가 용솟음칠 때 하려고 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하얀 전쟁>(1992)부터 <부러진 화살>(2012)까지 정 감독의 영화 네 편에 출연한, 정 감독과 인연이 남다른 이경영은 ‘고문관 역은 아니었으면…’ 했지만 어긋나지 않았다.

-출연 제안은 언제 받았나.
“2월 말에 감독님이 소주 한잔 하자고 하더라. 그때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반갑지 않았다는 뜻인가.
“아니다, 배우라면 도전해 보고 싶은 역이지만 두려웠다. 잘 해낼 수 있을지. 언젠가 술자리에서 (박)원상이가 형이 김종태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하더라. 자신은 김근태님과 외모가 너무 다르다면서. 펄쩍 뛰었다. 네가 <부러진 화살>에서 정의로운 변호사를 했으니까 더 어울리고, 언제 ‘민주화의 대부’ 역을 해보겠느냐고. 나는 술을 좋아하고 다이어트를 할 자신이 도무지 없다는 말도 했다.”

또 하나, 촬영 일정이 문제였다. 이경영은 <베를린>(감독 류승완) 촬영을 위해 5월 초에, <남영동1985>를 한창 찍을 시기에 출국해야 했다. 이 때문에 이경영이 고민이 많다고, 출연을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 정 감독에게 전해졌다.

-실제로 못할 수도 있었는지.
“크게 다친다거나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모를까, 못한다거나 안한다고 한 적이 없다. 와전된 말을 듣고 감독님이 ‘메일 보냈으니까 빨리 열어보라’는 문자를 보내셨다. ‘못한다는 말 듣고 마음이 무거웠다’며 내가 해야 할 세 가지 이유가 적혀 있었다. ‘이 영화로 온전한 복귀를 했으면 좋겠다’ ‘가치 있는 영화다’ 등. ‘오해하셨어요, 안한다고 한 적 없습니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그래, 고맙다’는 문자와 하트(♡)가 왔다. 가슴이 짠했다.”

-성매매 스캔들은 어떻게 종결됐나.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고, 그 친구한테 사과도 받았다. 어쨌든 가족과 선후배 동료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어 10년 가까운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 인터뷰와 <남영동1985>를 통해 미디어·관객과 다시 친숙해졌으면 한다.”

-촬영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했나.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했다. 감독님은 내가 출국하기 전에 다 찍자면서 불가능하면 내 장면을 우선 찍겠다고 하셨다. 그럴 수 없었다. 나 때문에 다른 배우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되니까,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어야 집중력과 사실성을 높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베를린에 가지 않겠다고 하자 감독님이 반대하셨다. 먼저 선택한 작품을 안하는 건, 후배의 작품에 피해를 주는 건 도의가 아니라면서.”

-출국 전에 다 찍었는지.
“다 못찍었다. 김종태에게 자백받은 게 물거품이 돼 자존심이 몹시 상한 이두한의 심경이 크게 바뀌는 장면은 귀국한 뒤에 찍었다. 처음에는 목소리 톤이 좀 높았는데 무게감이 떨어져 보여 감독님 지시대로 표정은 예전과 그리 변함없이, 감정은 격렬하게 드러냈다. 그것이 더 무서워 보였다.”

-고문하고 고문받는 장면이 끔찍하다.
“실제나 다름없는 상황이어서 고문 강도가 세질수록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매일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고, 씻지 않고 곯아떨어지는 날이 많았다. 감독님은 더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두 고통을 동시에 받고 있으니까 우리보다 몇 배나 더 힘들었던 거다. 감독님은 시사회 후 관객들께 꼭 말하신다. ‘여러분은 1시간50분 동안 힘들었지만 배우들은 두 달 동안 힘들었고, 실제 고문 피해자들은 평생 힘들다’고. 이 영화의 의미가 바로 거기에 있다. 끔찍한 현장을 고발, 다시는 힘든 시대를 맞지 말자는 데 있다.”

-사고 방지가 관건이었겠다.
“집단최면에 걸린 듯 결속력이 응집돼 사고 없이 마칠 수 있었다. 촬영을 오래 하다보면 긴장감이 떨어지고는 하는데 다행히 잘 유지했다.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에는 (명)계남이 형이 농담으로 긴장감을 덜게 해 줬다. 그나마 우리는 먹을 거 다 먹으면서 찍었는데 원상이는 안먹거나 주먹 만큼만 먹었다. 안쓰럽고 미안했지만 외면했다. 극중 인물처럼 약을 올리기도 했다. 원상이가 우리를 정말 미워하는 것 같았다.”

고춧가루물로 하는 고문, 물 고문 등은 실제로 했다. 박원상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표시를 할 때까지 했다. 전기고문은 약한 전류로 맛보기를 시도한 다음에 했다.

-시사회 때 “죄송하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눈물만 계속 났다. 객석의 울음소리, 엔딩 크레디트에 나오는 분들의 고문 체험담이 뒤엉켜 귓가에 웅웅거리고 가슴에 먹먹한 게 밀려왔다. 김근태님과 엔딩 크레디트에 나온 분들에게 죄송했다. 우리는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분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남영동1985> 같은 영화가 또 제작되는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실제 인물이 진정 사죄했다고 보나.
“그 장면 촬영을 앞두고 좀 헷갈렸다. 진심인지 아닌지. 감독님이 이 순간만큼은 진심이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연기하면서 진심과 함께 모호성도 담았다. 실제 인물이 어디에서든 꼭 보고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빌었으면 한다. 그리고 젊은 관객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고마움을 느꼈으면 한다. 1985년생, 85학번 등 1985컨셉트 시사회 때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1985년 당시 뭐했나.
“한대 연영과 1학년이었다. 제대하고 입학했는데 데모할 때 뒤에서 돌 던지고 운동권 친구들과 막걸리 마시면서 토론을 하고는 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회색분자였다. 시대상황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런 시대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투쟁에 앞장서지 않았으니까.”

<남영동1985>에 ‘전두환 정권의 개’로 등장한 이경영은 29일 개봉되는 영화 <26년>(감독 조근현)에는 전두환 응징 작전을 주도하는 인물로 나온다. <베를린>을 비롯해 <소수의견>(감독 김성제) <화이>(감독 장준환) <군도>(감독 윤종빈) 등을 통해 이제부터가 중요한, 제2의 배우 인생 초반기를 펼쳐가려 한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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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창진 2012.11.26 09: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금요이 영통 CGV에 가족들 모두 데리고 강요하다시피 해서 데려 갔습니다.
    보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봐야하는 영화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우리의 이웃이 이렇게 처참히 인권이 유린되는데..
    성장이라는 미명하에.. 빨갱이라는 누명을 씌워 이리도 잔인하게 했을까요..
    군부의 독재야욕에 희생된 많은 시민들의 고통을 많이 알릴 수 있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정지영 감독님과 고생하신 박원상님 그리고 그 외의
    많은 연기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런 감독님들과 연기자분들이 살아 있는 한국영화.. 정말이지 사랑합니다.

  2. 이현민 2012.11.26 1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출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그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보는 내내 힘들었지만
    이런 영화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3. 천사 2012.11.26 17: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작 그당시의 정권에 상황을 고려하여 생각들 해보고
    이런영화 만들시간에 그러면 민주투사는 정작 김재규다 박정희 대통령님을 죽였으니 그런영화나 만들어라
    쓸때없는것으로 사람들 혼돈하게 만들지 말고 그떄의 역사와 사회 현실을 생각 하면 만들어야지 그럼그때있던 판사나 군인들은 모두 역적인감 도대채 진실을 너무 매도해 나쁜넘들

  4. 엿머거 2012.11.27 16: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청소년매매 더러운 시키 제2 영화인은 무신 발찌나차라

  5. 최장윤 2012.11.28 1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 이두한의 휘바람소리 환청때문에
    잠을 못듭니다.
    죽이고 싶도록 미웠습니다.
    그래서 참 고맙습니다.
    만년 조연으로만 생각했던 박원상님의 연기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감독님 이경영 박원상 명계남 문성근...
    모두 고맙습니다.
    참 좋은 영화였습니다.

  6. 아나키스트 2013.01.03 05: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영동 영화는 이경영 때문에 안봤습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 2000년대의 표현의 자유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분들이 희생을 했고 또 아직도 휴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는지 잘알고 있지요..
    하필...언제 해명했는지는 모르지만 미성년 성매매 혐의로 활동중단 했다 복귀한 이경영씨가 출연했군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면..과연 도덕적으로 잘못된 짓을 하고도 버젓이 영화에 출현해도 되는지 그게 더 어불상설 같습니다. 전 앞으로도 그가 출연하는 작품은 다 안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