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진(30)이 재난영화 <타워>(감독 김지훈)로 주목받고 있다. 개봉 7일 만에 200만, 12일 만에 300만, 18일 만에 4백만 명이 넘는 관객이 봤다. 흥행속도(400만 돌파 기준)로 보면 1000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보다 이틀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다. 700만 명이 넘게  본 <늑대소년>과 같다. <타워>는 손예진이 데뷔한 지 13년 만에 처음으로 출연한 블록버스터다. <타워>의 홍일점 손예진에게 재난영화 촬영 현장 이야기를 들었다.

 

 

손예진이 <타워>에서 맡은 인물은 ‘서윤희’다. 108층 주상복합빌딩 ‘타워스카이’의 푸드몰 매니저다. 눈부신 미모와 미소로 푸드몰 식구는 물론 주변 사람들도 살갑게 챙기던 그녀는 타워스카이가 최악의 화염에 휩싸인 뒤 더욱 빛난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아름다운 여인상을 보여준다. 구출되어야 하는 객체로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면서 구출에 나서는 주체로서의 감동도 자아낸다. “투혼이 느껴진다.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라 연기에 있어서도 완전 프로다!” 등의 찬사를 받고 있다.

 

-물·불과의 촬영이 어땠는지.
“모두들 힘들었다. 뛰고 넘어지고 휩쓸리고…. 뜨거운 열기와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연기·먼지에 시달리고. 다른 분들이 워낙 힘든 촬영이 많아서 나는 상대적으로 덜 힘들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불보다 물이 더 힘들고 무서웠다. 어마어마한 양으로 쏟아지는 강력한 물줄기에 휩쓸리며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애쓰고, 매우 추운 날씨에 납덩이를 들고 수조 세트에서 잠수도 해야 했다. 정말 힘들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촬영장 가는 게 소풍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선배·오빠들이 항상 챙겨주고, 이쁨 많이 받고,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에서 위험한 상황도 즐겁게 찍었다. 그런 현장은 처음이었다. 재난영화여서 그런 점이 없지 않았겠지만 의리와 동지애 같은 걸 느꼈다. 정말 감사하고 뭉클한 적이 많았다. 자연히 현장 가는 게 소풍가는 것처럼 설레곤 했다. 촬영이 끝날 때에는 너무 아쉬워서 주변에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하지 않으려 했다고 들었다.
“시나리오는 좋았지만 굳이 내가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캐릭터의 깊이보다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죽느냐 사느냐가 관건인 영화였다. <오싹한 연애> 찍을 때 제안받았다. 감독님이 <오싹한 연애> 현장에 자주 오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겠다고 했다. 많은 분들이 <타워>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들려줘 정말 흔쾌히 결정했다.”

-블록버스터 출연은 처음이다.
“데뷔한 지 13년 만이다. 개인적으로 블록버스터에 욕심이 없었다. 언젠가는 자연스레 하게 되려니 했는데 <타워>로 연을 맺었다. 두 남녀 주인공으로서 오롯이 책임을 져야 하는 데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주변 도움을 받으면서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영화 속에 내가 어떻게 자리하는지 궁금했다.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했고, 여러 배우들과 작업하는 데 대한 호기심도 발동했다.”

 

-서윤희 캐릭터는 어땠나.
“마음이 따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인물이다. 다들 포기하려는 순간에 좋은 에너지를 전한다. ‘실제로도 내가 과연 이럴 수 있을까?’라고 물었을 때 ‘그럴 것 같다’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자칫 교과서적인, 전형적인 인물로 비쳐질 수 있는 캐릭터여서 그 점을 경계했다. 아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해주고, 차분하게 인도하는 인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설경구·김상경과의 작업이 어땠는지.
“친동생처럼 편하게 대해줬다. 경구 선배는 언니(송윤아) 보러 집에 놀러 갈만큼 편하고 친분이 있지만 작품을 하는 건 처음이다. 연인 관계로 나오는 상경 선배는 친분이 거의 없었는데 촬영하면서 많이 친해졌다.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도맡아 줬다. 정말 감사했다. 김인권·도지환 등 함께 하는 게 처음인 배우들이 많았다. 박철민 선배는 <오싹한 연애>, 정인기 선배는 <무방비도시>에서 함께 한 적이 있다.”

-화물 엘리베이터로 탈출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 장면을 찍으면서 죽음의 공포도 처음으로 느꼈다. 밀폐된 공간에서 극한의 공포를 느끼는 걸 상상하고 최면도 걸면서 연기를 했다. 18시간을 찍으면서 에너지 소모가 컸다. 9·11 테러, 대구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처럼 실제로 이런 일이 내게 느닷없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먹먹해지고 머리끝이 주뼛 서면서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대형참사에 대해 남 얘기로 여겼고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촬영하면서 참혹함과 고통을 절감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컷’ 소리를 들은 뒤에도 눈물이 계속 났다.”

-의상이 단벌이다.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이브 하루 동안에 벌어진 일이다. 촬영기간 내내 흰색 정장 한 벌만 입고 나온다. 세탁을 하고, 앞서 찍은 장면과의 연결을 위해 다시 더럽게 만든 뒤에 입고 촬영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세탁소 아저씨가 ‘이 옷을 입고 도대체 뭘 하느냐?’고 물은 기억이 난다. 유독 가스를 많이 마셔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을 때 주민들이 재에 덮인 우리를 보고 실제로 119에 신고를 한 적도 있다.”

-몰래 카메라 사건은 어떻게 발생했나.
“촬영 초반에 내가 하자고 했다. 예전에 화보 촬영 때 간간히 한 적이 있는데 영화에서는 처음으로 했다. 외계인의 존재를 놓고 설왕설래하다가 편이 나뉘면서 인신공격까지 하는 걸로 설정했고 실제로 실감나게 언쟁을 했다. 김지훈 감독님은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고 예사로 넘기려고 했는데 우리들 연기가 출중해 믿게 되었다고 했다. 더구나 경구 선배가 쓰레기통까지 던지면서 내게 화를 내고 나도 지지 않으려고 하자 <타워> 촬영은 오늘로 끝이구나’라고 느꼈다고 하더라. 감독을 감쪽같이 속일 정도로 팀워크가 대단했다. 이 팀워크로 촬영을 마쳤다.”

-보충 촬영도 길게 했다.
드라마 부문 보완을 위해 보충 촬영을 했다. 관객의 가슴을 쥐락펴락 하는 드라마, 화려한 볼거리, 빠른 전개…. 이 모두를 만족시켜 주는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타워>는 블록버스터로서 볼거리는 물론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희노애락이 담겨 있다. 가족·연인·이웃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잘 되고 있지만 더 잘 되었으면 한다.”

 

손예진은 <타워> 이후 <공범>(감독 국동석) 촬영을 마쳤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엄청난 비밀을 감춘 범죄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된 딸이 진실 추적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손예진의 13번째 영화다. 손예진은 “여러 작품을 하는 것보다 좋은 영화에서 완벽하게 책임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며칠 뒤면 만 30살이 되는 손예진은 “우리 모두에게 한층 따뜻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하루하루를 더욱 소중하게 보내겠다”고 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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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주)영화사 비단길 대표(45)가 또 홈런을 날렸다. 16일 700만 명을 돌파한 <늑대소년>을 제작, 비단길을 다시 깔았다. <음란서생>(2006) <추격자>(2008)에 이어 세 번째다. <작전>(2009)과 <혈투>(2010)도 제작, 5편 가운데 4편이 성공을 거두면서 충무로 대표주자 군단에 합류했다. 김수진 대표의 성공 노하우는 무엇일까?

 


<음란서생>(감독 김대우)은 257만6022명(이하 한국영화연감 기준), <추격자>(〃 나홍진)는 507만1619명, <작전>(〃 이호재)은 153만4407명, <혈투>(〃 박훈정)는 4만3947명이 관람했다. <늑대소년>(〃 조성희)은 16일 오후 5시 현재 701만2145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관람했다. 한국영화 역대 흥행순위 16위에 올라 있다. <추격자>는 32위이다.

-<늑대소년>을 처음에는 얼마나 기대했나.
“손익분기점이 200만 명 정도이다. 1차 바람은 200만 명을 넘는 거였고, 나아가 500만 명 넘기기를 희망했는데 그 이상이어서 감개무량하다. 이 자리를 빌어 관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인터넷에 올라왔는데 한 여성 관객은 45번을 봤다. 관람 티켓을 찍어 공개했다. 개봉(10월 31일)후 한 달쯤이니까 하루에 두 번도 본 거다. 이처럼 여러 번 봤다는 분들이 많다. 처음에는 20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30~50대 주부들이 가세했다. 남성들도 많아졌고. 전체 성비는 6 대 4로 여성이 많다.”

-흥행 요인을 요약한다면.
“카피 문구가 ‘세상에 없는 사랑’이다. 관객들이 꿈꾸는 사랑, 영원한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인스턴트 사랑이 넘쳐나는 시대여서 관객들은 평생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철수’(송중기)의 일편단심에 감동하고 대리만족도 느끼는 게 가장 크다고 본다. 멜로에 판타지와 액션을 가미, 독창적이고 따뜻하고 재미있는 영화로 여러 층의 관객에게 공감을 얻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늑대소년>은 철수와 순이의 러브스토리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떠올리게 한다. 철수는 변종 인간이다. 한국전쟁 후 강한 인간을 만들려는 국군의 실험 중 부작용으로 태어났다. 그는 몸이 아파 시골로 이사온 문학소녀 ‘순이’(박보영)에 의해 세상에 나온다. 순이와 철수는 가족 혹은 친구 관계에서 가르침을 주고받는 사이로, 그리고 남녀 관계에 이른다. 순이의 “기다려”라는 한 마디에 철수는 평생을 기다린다.

-언제 기획했나.
“조성희 감독(33)이 영화학교 재학 당시 쓴 장편 트리트먼트(시나리오와 시놉시스의 중간 단계)에서 출발했다. 할리우드 영화 속 늑대인간의 이야기와 다른 판타지 멜로 드라마로 멜로영화의 확장을 꾀했다. 작업 과정에 한국적인 요소를 넣었다. 6·25, 전쟁고아, 낯선 아이를 집에 데려와 먹여주고 재워주고 목욕도 시켜주는 인심 등이다. 조 감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에 중점을 두고 보다 넓고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조 감독은 서울대 산업디자인과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25기)했다. 첫 단편 <남매의 집>(2009)으로 칸국제영화제 학생 단편 경쟁 ‘시네파운데이션’ 부문 3등상, 미쟝센단편영화제 대상 등을 수상했다. 중편 <짐승의 끝>(2010)으로 밴쿠버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등에 초청받았다. <늑대소년>은 그의 장편 데뷔작이다.

-<남매의 집>을 보고 손을 잡은 건가.
“대단한 연출적 재능을 읽었다. 특히 대사나 장면 사이 침묵과 정적을 잘 활용하는 독창성이 눈에 띄었다.”

 

-김대우 감독도 <음란서생>으로 데뷔했다.
“김 감독은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할 때부터 알고 지냈다. 2004년 11월에 귀국, 영화사 비단길을 차렸을 때에는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2003) 등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는 유명 작가였다. <음란서생>은 김 감독이 <스캔들> 전에 구상한 작품이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음란소설을 쓰면서 맞는 행복과 역경을 그렸다. 사극인데 댓글·동영상·폐인 등 현대의 낱말을 접목했다. 시대를 교차했을 때 발생하는 재미와 의미 등 내가 만들고 싶은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영화여서 창립작으로 선택했다.”

 

-<추격자>도 나홍진 감독의 데뷔작이다.
“<추격자>는 모든 투자사로부터 외면받았던 작품이다. 전직이 형사인 출장안마소 사장과 연쇄살인마가 주인공이고, 90% 정도가 밤 장면인데 그중 절반 이상은 비가 오고, 신인 감독에 연기력은 뛰어나지만 톱스타가 아닌 배우…. 투자사의 구미에 맞는 조건이 없었던 거다. 하지만 한 여자를 구하기 위해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잡는 플롯이 새롭고 좋았다. 긴장감이 관객들은 여자가 어디 있는 줄 알지만 주인공은 모르는 데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당시엔 스릴러 장르에 대한 산업적 이해도나 시장에 대한 예상 자체가 없었고 투자환경은 아주 좋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 고민하고 노력한 것이 더 완성도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됐다. 감독과 의논해서 시나리오를 1년 넘게 30번 이상 수정했고 신생투자사를 만나 제작에 들어간 뒤 추가된 비용은 제작사가 책임지고 완성했다. 다행히 5백만이 넘는 관객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고 이후 충무로에 스릴러 붐이 일고 안정된 스릴러 시장이 형성된 게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전>과 <혈투>는 성적이 미흡했다.
“<작전>은 본전을 넘겼다. 개봉했을 때 주식시장이 곤두박질을 쳐 영화 외적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혈투>는 <악마를 보았다>(감독 김지운) <부당거래>(〃 류승완)를 쓴 박 감독의 연출 데뷔작인데 내·외부적으로 문제가 좀 많았다. 결과도 안 좋아 못내 안타까웠다.”

김 대표는 1985년 이화여대 독문과에 입학,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영화 동아리(누에)를 만들어 8·16㎜ 영화를 만들었다. 여성문제를 다룬 페이퍼 다큐멘터리로 1000만원 상당을 벌기도 했다. 89년 졸업, 하명중영화제작소에 입사해 기획·제작·홍보·극장업무 등을 두루 익혔다. 2년 뒤 영화사(영화센터)를 설립해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이석기) <꽃잎>(〃 장선우) 등을 기획했고 외화 <퐁네프의 연인들> <레옹> 등을 수입했다. 외화 수익금을 고스란히 사기를 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99년 전셋집을 처분해 미국영화연구소(AFI)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재학 중 <다이하드> <매트릭스>로 유명한 워너브라더스의 자회사(조엘실버 프로덕션)에서 4개월여 인턴을 했고, 졸업 후 워너브라더스 본사에서 1년 6개월 동안 공동 제작 및 판권 구매 업무를 봤다.

-미국 유학·근무 때 배운 첫 번째를 꼽는다면.
“영화적인 이야기를 완결하는 거다. 재능있는 감독을 찾고 함께 일하는 방법이다. 관객들은 늘 새로운 이야기를 원한다. 새롭고, 내가 보고 싶고, 감독이 만들고 싶은 영화가 의도한 대로 나오도록 물심 양면으로 돕는 게 제작자의 역할이다.”

-여성 제작자로 힘든 점은.
“여자여서 딱히 힘든 점은 없다. 제작자들 모두가 겪는 기본적인 고난을 극복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한다. 완성도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끈기와 집념을 갖고 노력하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갈수록 제작자의 입지나 역할이 영화산업 시스템과 투자환경의 변화로 인해 점점 축소되고 경시되는 현상들이 있어 더 어렵다.”

비단길은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를 한글로 옮긴 것이다. 김 대표가 만들고 싶은 영화, 가고 싶은 길을 뜻한다. 김 대표는 “기획·제작자로서 오랫동안 좋은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는 게 꿈”이라고 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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