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정 감독(39)의 <신세계>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난달 21일 개봉,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5일 현재 270만2607명(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관람했다. 흥행이 어려운 장르(누아르), 관람등급(청소년관람불가) 등을 감안할 때 대단한 성적이다. 박 감독은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2010),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2010) 등의 시나리오를 쓰고 <혈투>(2011)로 데뷔했다. <신세계>는 두 번째 각본·연출작이다. 박 감독과 <신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국내 최대 범죄조직에 위장 잠입한 지 8년째인 경찰 ‘자성’(이정재), 자성을 지휘하는 고위 경찰 ‘강 과장’(최민식), 자성을 친동생처럼 여기는 범죄조직의 2인자 ‘정청’(황정민). <신세계>는 세 사람이 꿈꾸는 서로 다른 신세계를 그렸다. 백척간두에 선 이들의 동상이몽이 흥미롭다. 각본·연기·연출, 3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한국형 범죄영화의 수작으로 손꼽힌다.

-이야기가 흥미롭다. 어떤 계기로 썼나.
“갱스터 무비(gangster movie), 필름 누아르(film noir)를 좋아한다. 해보고 싶은 영화여서 3년 전부터 작업했다. 1990년에 시작해서 2013년 이후까지 이어지는, 30년에 걸친 에픽 누아르(epic noir)를 구상했다. 이 가운데 중간 이야기를 우선 만들었다. 개인보다 조직·세력 간의 이야기를, 깡패들이 넥타이 매고 정치하는 이야기를 장르 문법에 충실하게 담고 싶었다.”

-세 배우 캐스팅이 적절했다.
“이들이 함께한 건 <신세계>가 처음이다. 최민식 선배를 만나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최 선배는 <악마를 보았다> 때 만났다. <신세계>를 읽고 강 과장과 정청 가운데 강 과장을 선택했다. 최 선배가 하는 정청도 대단할 거라고 본다. 어쨌든 대척점에 있는 정청은 황정민 선배가 맡아줘 날개를 달았다. 둘 가운데에 있는 자성은 누구를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최 선배가 이정재씨에게 전화를 하면서 이뤄졌다. 세 배우의 출연이 확정된 뒤 뿌듯했고 한편으로는 겁이 났다. 누아르 장르에서 꺼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여서 상업적 성과를 반드시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렸다.”

 

-투자 받는 게 용이했는지.
“쉽지 않았다. 데뷔작 <혈투>의 흥행 성적이 좋지 않은 데에다 누아르 장르여서 곡절을 치렀다. 감독을 바꿔라, 예산을 깎아라…. 한국에서 누아르가 원체 잘 안 되기 때문에 이해했다. 연출도 맡으면서 준비 작업을 철저히 했고 제작에 들어간 뒤에는 일정을 준수했다. 날씨가 바뀌면 그에 따라 시나리오를 바꿔 찍었다. 6월 16일부터 9월 14일까지 53회 만에 촬영을 마쳤다.”

-각본·연출 작업 때 어디에 역점을 뒀나.
“재미를 우선으로 했다. 관객들이 바로바로 읽을 수 있도록 쉬워야 한다는 점도 염두에 뒀다. 각 인물들의 밸런스 유지가 가장 중요했다. 이 점에 대해 처음에는 걱정을 했지만 기우였다. 배우들이 더 고민하고 연구를 해와서 서로를 배려하면서 연기를 해줬다. 주연은 물론 조연들도, 그리고 스태프들도 목적이 일치해 빛나는 최상의 조합을 이룰 수 있었다. 영화는 처절하지만 촬영 현장은 굉장히 즐거웠다. 작품이 끝나는 게 아쉬워 더 작업했으면 할 정도로.”

최민식은 후배들이 연기로 놀다 가도록 터전을 펼쳐줬다. 촬영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도 마다하지 않았다. 황정민과 이정재는 디테일이 살도록 만전을 기했다. 일례로 정청이 입국할 때 슬리퍼를 신고 나타나는 건 황정민의 아이디어였다.

 

-<무간도> <도니 브래스코> 등이 떠오른다.
“그 영화뿐만이 아니다. <대부> <흑사회> <헬스 키친> <히트> 등 여러 영화의 느낌과 색감이 담겨 있다. 같거나 유사 장르의 영화인 데에다 좋아하는 작품이고 영향도 많이 받아 그 작품들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역으로 더 적극적으로 담아내려고 하기도 했다.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가져가면서 각 영화들의 정수는 빼먹으려고 했다.”

-영화감독은 언제부터 하고 싶었나.
“고등학교 2학년 때(1991년)부터 영화를 많이 봤다. 집 근처 동시상영관에서 본 SF영화가 계기가 됐다. 한 과학자가 신무기 설계도를 빼앗긴 뒤 스스로를 이식 개조, 반인반기(하반신이 궤도인 사람)가 돼 복수하는 이야기를 그린,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 영화다. 이후 동네 비디오 가게의 작품을 다 봤다. 자연스레 갱스터·누아르·스릴러에 심취했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선생님은 대학에 갈 필요가 없고, 가더라도 1학년만 다녀도 된다고 하고는 했다. 성적에 맞춰 영화랑 상관없는 자연계 학과에 진학했고, 1학년을 두 번 다니고 그만뒀다.”

군대는 부사관을 지원, 5년간 복무한 뒤 중사로 제대했다. 제대할 즈음 벤처협회의 게임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돼 게임회사에 특채로 들어갔다. 그 회사가 사업 아이템을 바꾸는 바람에 동료들과 함께 게임회사를 차렸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당시 유명 제작사 싸이더스HQ가 주최한 시놉시스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시나리오 공부는 어떻게 했나.
“당시에는 번듯한 시나리오 작법서가 없었다. 영화를 보고 시나리오로 옮겨 쓰는 걸로 시작했다.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지하에 있던 ‘키노’가 유일한 영화도서관이었다. 그곳에서 <한국 시나리오 전집>을 읽고 참고를 많이 했다.”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
“10년 정도 된다.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 전에 여러 편의 시나리오 각색을 했지만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생활이 어려워 만화 스토리 작가도 했다. 만화 쪽이 돈은 많이 주지 않지만 영화 쪽처럼 지급을 어기거나 약속한 금액을 후려치지 않아 좋았다. 어쨌든 영화를 계속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분들과 인연을 맺게 돼 오늘까지 왔다.”

-범죄영화 등을 고수할 계획인가.
“그렇지 않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다른 장르도 하고 싶다. 다만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 등은 못할 것 같다. 감독을 계속 하면서 시나리오도 여러 편을 써 선배·동료·후배 감독들에게 주는 게 꿈이다.”

<신세계>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속편 이야기가 이미 거론되고 있다. 박 감독은 “더욱 성과를 내는 게 우선”이라며 “흥행 추이를 좀더 지켜보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거론된 뒤에는 <신세계>의 이전과 이후 이야기 가운데 어느쪽을 먼저 할는지는 관계자들과 논의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신세계>에 앞서 흥행에 성공한, 청소년관람불가 범죄영화로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471만9872명) <추격자>(507만1619명) 등이 있다. <신세계>가 <범죄와의 전쟁> <추격자> 등을 뛰어넘고, <무간도>나 <대부>처럼 속편을 제작, 시리즈 영화로 한국영화사를 장식할는지 주목된다.

Posted by 배장수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정창화 감독 회고전’이 오는 22일까지 열린다. 상암동 DMC단지 내 시네마테크 KOFA 1관(한국영상자료원 지하 1층)에서 ‘한국 액션영화 대부’로 손꼽히는 정창화 감독(82)의 대표작 12편을 상영한다.

상영작 12편은 <노다지>(1961) <장희빈>(1961) <사르빈 강에 노을이 진다>(1965) <예라이샹>(1966) <위험한 청춘>(1966) <황혼의 검객>(1967) <나그네 검객 황금>(1968) <천면마녀>(1969) <아랑곡의 혈투>(1970) <7인의 협객>(1971) <래여풍>(1971) <죽음의 다섯 손가락>(1972) 등이다. 12편 모두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참조 시네마테크KOFA 홈페이지(www.koreafilm.or.kr/cinema). 문의 (02)3153-2076~77.

12편 중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에 따르면 한국의 안양필름과 홍콩의 쇼브라더스가 합작했다. 1972년 5월 26일 홍콩에서 <천하제일권>(영문명 KING BOXER)으로 먼저 개봉됐다. 한국에서는 같은 해 12월 2일에 <鐵人>(철인)으로 개봉, 스카라 극장에서 6만263명이 감상했다. 73년 3월 21일 미국에서 <FIVE FINGERS OF DEATH)로 개봉,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5주 동안 박스오피스 5위권에 머물렀다. 미국에서 이 시기의 개봉영화는 <대부>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이었다.


자료출처/네이버

정창화 감독은 훗날 한국영상자료원 측에 “<철인>은 내 영화가 아니다”면서 “(감독명에서) 내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KMDb에 <철인>은 감독 이름이 없다. 한국영화고 극영화며, 러닝타임 85분에 중학생 관람가 작품으로 기록돼 있다. 반면 미국의 IMDb에는 홍콩영화고, 액션·드라마·로맨스며, 러닝타임이 104분이고, 관람등급은 R(17세 미만 부모나 성인 보호자 동반 요망)이다.

KMDb에 따르면 정창화 감독은 해방 이듬해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최인규 감독 밑에서 영화연출 수업을 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운이 따랐는지 부친과 최 감독의 형이 친분이 있어 그분의 소개로 최인규 감독을 만나 연출수업을 받았다.

정창화 감독은 1950년대와 60년대 초까지 한국 장르영화를 주도했다. 데뷔작은 <최후의 유혹>(1953)이고 마지막 작품은 <파계>(1977)다. 총 51편을 연출했다. 51편 중 <유혹의 거리>(1954)는 제작, <대지여 말해다오>(1962) <래여풍>(1972) <흑야괴객>(1973) 등은 각본도 썼다. 임권택·강대진·정진우 감독 등이 정 감독에게 연출 수업을 받았다. 감독 일선에서 물러난 뒤 <어느 여대생의 고백>(1979)을 비롯해 <수렁에서 건진 내딸2>(1986)까지 29편을 제작했다.

정창화 감독은 액션영화뿐만 아니라 멜로·사극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고 노력했다. 액션영화에도 잔인한 장면을 피하고 철학이 담긴 따뜻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50년대 한국영화의 많은 대사와 느린 템포를 탈피하고자 액션영화에 전념했다. 이 장르를 통해 현실에서는 이룰 수없는 어른들의 꿈을 그리고자 했다.

정창화 감독은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햇빛 쏟아지는 벌판>(1960)을 꼽았다. 미국의 대형영화들이 영화계를 석권할 때 우리 관객들을 모으기 위해 정 감독은 중국벌판을 무대로 한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지평선>(1961)과 같은 대륙영화를 만들었다. 홍콩에서 <아랑곡>(한국제목-아랑곡의 혈투>이란 무협영화를 만들었는데 당시 홍콩은 장철·호금전 등의 무협영화가 각광받았다. <아랑곡>은 이방인인 한국 사람도 무협영화를 잘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다.

정창화 감독은 이 때부터 무협과 현대 액션영화 장르에 정진했다. 그는 <죽음의 다섯 손가락>에 대해 “그간 정립한 연출력의 정점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면서 “나름대로 색다른 영화를 만들어보고자 중국역사서를 뒤져 신비한 이야기를 찾아 자료를 구해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정창화 감독은 영화 속 명소로 <사르빈강에 노을이 지다>의 밀림지대를 꼽았다. 이 장면 촬영은 버마 로케이션을 필요로 했지만 당시 제작여건은 이것을 허용하지 않아 광릉에 열대수를 심어 밀림지대를 재현했다. 또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자비를 들여 인천 월미도 옆 무인도에서 촬영했다. <장희빈>에서 귀향가는 행렬은 잠실에서 촬영했다. 당시 잠실은 아무 것도 없는 벌판이었다. <햇빛 쏟아지는 벌판>(1960)의 중국거리를 재현한 오픈세트는 돈암동에 지어서 촬영했다.

1960년대 후반 홍콩으로 건너가 70년대 후반에 은퇴했고, 미국에서 거주하는 등 오랜 공백기를 가진 정 감독은 소수의 팬들에게 한국 액션영화의 거장 혹은 전설로 회자됐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2002년 영국의 영화비평지 ‘사이트 앤 사운드’를 통해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세계영화사 걸작 베스트 10’ 가운데 한 편으로 손꼽으면서 다시 주목을 끌었다. 2003년 10월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회고전을 갖고 핸드프린팅에 초대했으며, 2003년 11월 홍콩영상자료원과 2004년 6~7월 필름페스티발 ‘파리시네마’가 회고전을 갖고, 2005년 칸국제영화제가 클래식 부문에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초청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정창화 감독은 이와 관련해 “난 한국영화 초창기의 척박한 터전에서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모색한 한국 영화감독이었지만 늘 이방인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준 또 다른 이방인기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51편의 연출작 중 한국영상자료원에 필름이 보존돼 있는 작품은 19편에 불과하다. 자긍심 부재, 자료 결핍…. 한국영화계의 일면이다.

Posted by 배장수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