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계남(60)은 배우다. ‘한국영화는 명계남이 나오는 영화와 안 나오는 영화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활약했던 개성파 배우다. 그가 6년 만에 영화배우로 돌아왔다. <남영동1985>(감독 정지영)에 민주화운동가 ‘김종태’(박원상)를 고문하는 ‘박전무’로 등장해 비열한 고문전문가 ‘이두한’(이경영)과 함께 관객들을 경악하게 한다.

 

 

명계남은 <남영동1985>에서 자신의 실제와 상반되는 ‘수구 꼴통’ 역할을 맡은 데 대해 “배우가 자신의 신념과 딱 맞아 떨어지는 인물만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영화를 보면서 ‘좀 더 악랄하게 하면서 즐겼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면서 “악역 연기를 할 때에는 우리나라의 어떤 신문을 떠올린다”고 털어놨다.


“고춧가루 고문, 물 고문 등을 실제로 했어요. (박)원상이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낼 때까지. 고문을 받는 원상이도, 하는 우리들도 힘들었죠. 연기에 몰입하다가 자칫 사고가 날까봐 걱정도 됐고.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 틈틈이 가벼운 농담을 던진 건 그 때문이에요. 쉴 때 긴장감을 덜어내고 풀어내면 다시 찍을 때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거든요.”

<남영동1985>는 명계남이 <손님은 왕이다> 이후 6년 만에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은 영화다. 명계남은 <남영동1985>에 대해 “우리 영화계나 세계 영화사를 둘러보아도 만들 엄두를 못낸, 만들기 힘들고 연기하기도 힘든 영화”라며 “보기가 힘들지만 꼭 보아야만 하는 놀라운 영화”라고 했다.

 

“영화를 다시 하면서 기뻤어요. 오랜만에 출연해서가 아니에요. 우리 현대사의 한 쪽에 가려진 진실을 드러내 우리의 가슴을 열게 해주는 영화에서 일정 역할을 하게 된 게 좋았어요. 그런데 출연했다고 자랑하기가 쑥스럽고 부끄러워요.”

명계남은 그 이유로 “창작극을 하다가 망해 뒤늦게 직장생활을 하느라 1985년 당시의 정치·사회 문제에 무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야만의 시대에 맞서느라 지독한 고문을 받아야 했던 김근태 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고 했다. “내가 배우랍시고 이나마 살고 있고 눈을 부릅뜰 수 있고, 분노할 수 있고, 즐거워하고 웃을 수 있는 것이 다 그분들의 희생 덕분”이라며 “배우로서는 물론 이 엄중한 시대를 사는 한 시민으로서 바라건데 <남영동1985>를 많은 분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배우는 감독의 부름을 받아야 한다. 명계남은 “그 동안 강원도 시골 집에서 기획·시나리오 작업을 했다”며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길어 영화잡지에 ‘나 배우해요’라는 광고를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토로했다.

“어느날 <베를린>을 준비하는 류승완 감독에게 전화를 했더니 ‘형, 배우해요? 다른 중요한 일을 하는 줄 알았어요’라고 하더군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렇지 않은 분들은 직·간접적 외압을 받았고.”


 

명계남은 “이번 대선에선 어떤 직함도 없는 한 사람의 유권자일 뿐”이라고 했다. <초록물고기>(1997) <박하사탕>(2000) <오아시스>(2002) 등의 제작자인 그는 “다시 열심히 연기를 하고 영화를 만들면서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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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앤프리(OFF AND FREE) 국제영화제는 ‘확장예술제’를 지향한다. 올해 제 3회(11월 17~23일)를 맞았다. 정재형 동국대 교수가 창립,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동양화가였던 황선숙 감독이 폐막작 <허공의 그늘>을 연출했다(개막작은 독일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의 <라 수프리에르>). 김남국 현대음악 작곡가 겸 아쟁 연주자가 <허공의 그늘> 음악을 맡았다. 정재형·황선숙·김남국의 ‘확장예술’에 관하여.

-오프앤프리는 어떤 영화제인가요.
“좋은 영화, 새로운 영화지만 일반 극장 상영이 어려운 비상업영화를 보여주는 영화제에요. 비상업영화 작가를 발굴하고 후원해요.”

-다른 영화제도 그렇지요.

“오프앤프리는 ‘확장예술’을 지향해요. 매체간 경계를 넘나들고 허문 작품으로 프로그램을 짜요. 장르적 드라마보다 실험성·예술성을 추구한 작품을 선호하죠. 영화를 오락으로 즐기는 것보다 생각하고 사유하고 싶어하는 관객을 위한 영화제에요. 모든 작품을 무료로 보여줘요.”

-관객 반응은 어떤지요.

“다양해요. 좋은 작품을 많이 무료로 볼 수 있는 기쁨을 줘 고맙다는 분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분들…. 회를 거듭하면 이해와 참여의 폭이 넓혀질 거라고 봐요.”

-두 분은 이 영화제를 언제 알았나요.
“1회 때부터 알았고 참여도 했어요-저는 이번에 알았습니다. 제가 하는 음악작업과 공감대가 맞아 좋네요-유투브에 남국(namkuk)을 치면 작품 열 편 정도를 볼 수 있어요-<죽음에서 탄생까지>(2000) <화두>(2002) <마중>(2004) <부벽준>(2010)…. <화두>는 독일 다름슈타트 국제현대음악제 수상작이고 <부벽준>에선 국악기 다섯 개로만 연주했어요. 요즘 서양 작곡가들은 자기네 악기로는 한계를 느끼고 동양 악기를 많이 활용해요. 소음도 음악적 요소로 받아들이고.”

황 감독은 제 1회 때 <울음>과 <아버지의 아버지의>, 두 편을 초청받았다. 올해도 두 편이다. <망각 울림>과 <허공의 그늘>. <망각 울림>은 ‘오프인 포커스’ 부문에 선정됐다. <허공의 그늘>은 오프앤프리 측의 사전제작 지원을 받아 완성, 폐막작으로 상영된다.


-다른 영화제에도 초청받았지요.

“국내외 영화제 ‘경쟁’ 부문이 많아요. 기획전시를 포함해 <숨 꿈> <수묵산조> <아버지의 아버지의> <울음> <오하루의 일생을 보다> <시간의 침묵> 등이 40여 소개됐어요.”

이 가운데 <시간의 침묵>은 ‘갤러리 필름’(설치미술 작품)이다. 영상, 스크린 크기, 설치 위치 등을 달리한 세 채널로 선보였다. 올해 오프앤프리에서는 샹탈 애커먼의 <11월 앤트워프에서 온 여인들> 등 여섯 편의 갤러리 필름이 소개된다.

                                                   황선숙 감독은 홍익대에서 동양화, 서강대 영상대학원에서 영
                                                   상미디어를 전공했다. 5회의 개인전을 가진 그는 그만의 창작
                                                   성이 돋보이는 10여 편의 예술·실험영화를 내놓았다.

-두 분은 어떻게 알았나요.
“2009년 이지영 교수님(서울대)의 가야금 연주회 때 제가 음악극 <거울>을 발표했어요. 그때 황 감독께서 영상작업을 맡아줬죠-솔직히 2년 전에는 ‘이런 음악을 하시는구나’ 였어요. 그런데 이번 <허공의 그늘> 작업 때 다시 듣고 탄성을 질렀어요. 영상작업을 하면서 동양화를 간직하고 있는 마음이 소리로 팽팽하게 살아움직였던 거예요-2년 만에 다시 만났죠. 영상에 어울리는 곡을 추천해 달라고 작업실로 오셔서. 아이디어 확산 차원에서 악기들을 보여드리고 소리도 들려드렸죠-그때 아쟁이 마음에 들었어요-이야기 나누면서 술을 꽤 많이 마셨지요-전 거의 안 마셨어요-영화에 음악을 입히지 않고 상영할 때 즉흥 연주를 하기로 했죠-단순히 라이브 연주를 듣는 것 이상의 경험을 할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허공의 그늘>은 단편(러닝타임 9분) 실사 실험영화다. 경주 남산의 목이 잘린 불상과 스마트폰으로 찍은 도시인의 뒷 모습 등을 담았다. 얼굴 없는, 그 허공의 그늘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어려있다.

                                                   김남국 작곡가는 경희대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립음악대학을
                                                   졸업했다. 동양인 최초로 ‘크라니히슈타이너’ 상을 수상했다. 베
                                                   를린시립오레라극장 아쟁 독주가로 국제적 명성을 자랑한다.

-기획·연출 의도는 뭔가요.
“오래 전 답사 때 보았던 풍경을 찾아 경주 남산을 찾았어요. 목이 잘린, 얼굴 없는 불상을 보면서 내가 보고 싶었던 게 저 허공이었나…. 그렇게 해서 붙여진 제목이에요. 허공의 그늘, 그 사라진 허공을 찾듯이 표면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짙은 그림자를 들춰내고자 했어요-아쟁을 연주하고 심범즈도 치려고 해요-심벌즈요?-세게 치진 않을 거에요-한 마디로 내용도 형식도 새로운 영화예요. 답을 안 주고 화두를 줘요. 문제(사건)를 내고 답을 풀어주는 여느 영화와 달라요. 영화는 두 타이프로 나뉘죠. 위로(오락)를 주는 영화와 성찰을 하게 하는 영화. 오프앤프리는 후자의 영화를 보여줘요. 혹자는 관객이 영화를 편식하는 바람에 집단최면에 걸려 있대요. 오프앤프리 개최 의도가 여기에 있어요. 작가가 던진 화두를 관객이 제각각 자기 입장에서 체험하는 기회와 경험을 주자는 거에요.”

                                                    정재형 교수는 동국대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과 뉴욕시립대대
                                                    학원에서 석사, 중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뉴시
                                                    네마 감독론> <영화이해의 길잡이> <MT영화학> 등이 있다.

황선숙 감독은 그림을 그리다가 애니메이션을 했고, 실사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하고 싶었던 작곡을 취미활동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김남국 작곡가 겸 아쟁 연주가는 “작곡·연주를 연극으로 넓히고 영상작업도 하고 싶다”고 했다. “현재의 작업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장르 혼합, 멀티 작업으로 풀려고 한다”며. 정재형 교수는 “관객에게 신선한 체험을 안겨주고 고정관념을 깨게 내년 영화제에서는 확장예술 부문을 더욱 확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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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수. 사람들은 그에 대해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고 말한다. 오달수의 매력이다. 그가 빚어낸 캐릭터의 힘이다. 영화 <조선명탐정:각기투구꽃의 비밀>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이 영화에 이어 연극 <해님지고 달님안고>도 공연한다. ‘꼬라지 연기론’으로 열어온 ‘달수의 전성시대’.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조선판 셜록 홈즈’의 활약상을 그렸다. 탐정극에 코미디를 가미했다. 오달수는 이른바 허당천재 명탐정(김명민)을 돕는 눈치백단 개장수로 출연, 자신의 장기를 십분 녹여놓았다.

-<음란서생>과 <방자전>이 마음에 걸리지 않았나.

“사극에다 캐릭터도 닮았죠. 닮았지만 달라요. 특히 캐릭터는 주인공과의 관계, 각각의 상황에 따라 변해요. 이에 따른 변신을 꾀하는 게 개인적으로 도전과제였어요.”

-저번에도, 이번에도 웃겨요.

“제 임무니까요. 감독님께 내게서 얼마든지 빼먹으라고 했어요. 빼먹는 데에는 한계가 없다고 봐요. 상대 배우, 상황이 각각 달라 다 못 빼먹을 것 같아요.”



-관객 반응은 어떤가.

“좋아요. 특히 김명민씨 팬들은 열광 그 자체에요. 촬영할 때에도 느꼈지만 정말 대단한 배우에요. ‘쌈마이 연기’도 어울리잖아요. 단역시절 많은 역할을 한 게 도움이 된다더군요.”

-달수씨는 말맛이 돋보여요.

“저만큼 말 못 하는 배우도 없을 거에요. 말 더듬는 건 고쳤지만 표준어 안 되지, 발음 안 좋지…. 이걸 감추려고 하면 들키게 마련인데 오히려 드러내니까 관객도 속 편하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장점이 될 순 없겠지만 최대한 그걸 살려보려고 노력했어요.”

오달수의 이른바 ‘꼬라지 연기론’이다. 꼬라지, 즉 생긴 대로 연기하면서 발성·말투 등보다 대사에 감정을 실어내는 게,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지론이다.


<해님지고 달님안고>. 한 아이의 성장기를 그렸다. 집착이 강한 아버지와 아비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상으로 나가는 도깨비재를 넘는 아들의 이야기를 엮었다. 오달수는 아버지로 등장한다.

“2월 10일부터 공연해요. 3주밖에 안 남았는데 아직 대사도 못 외웠어요. 지금 솔직히 좌불안석이에요.”

-연극도 꾸준히 하는 게 남달라요.

“영화는 편집기술 덕분에 연기가 커버돼요. 연극은 아니에요. 발가벗겨저요. 그게 묘미고요. 어떻게 보여질지, 신뢰를 무너뜨리는 건 아닌지, 불안해요. 연극은 집, 영화·방송은 직장이란 느낌이 없지 않아요. 연기를 하는 거는 다 같지만….”

동의대 공업디자인과 출신인 오달수는 부산에서 대입 재수 때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인쇄소에서 아르바이트, 포스터·프로그램 등을 배달하러 연희단거리패 연습실을 자주 들락거린 게 계기가 됐다. 데뷔작은 이윤택 연출 <오구>(1990). 공연 내내 대사 한 마디 없는 문상객으로 출연했다. 이후 단계를 밟아 맏상주 역까지 맡았다. 1997년부터 서울서 활동했다. 2000년 의형제 사이인 작가·연출가 이해제와 함께 극단 ‘신기루만화경’을 창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달수는 “편수는 안 세어봐서”라며 “스무 편은 넘는다”고 했다.

“배우는 꿈도 안 꿨어요. 연극 보러 다니는 친구들도 이해가 안 됐고. 그런데 ‘우연히’ ‘ ‘그냥’ 하게 됐어요. 배달 갔을 때 식사시간이면 단원들과 함께 밥 먹고, 설겆이 도와주고, 내친김에 화장실 청소도 해주고, 그런 게 인연이 되려니까 ‘운명적인 만남’이 된 거에요.”

# “10년 파면 길이 열려요”


‘명품조연’ ‘조연스타’ ‘충무로 공인 감초배우’…. 오달수는 이를 뛰어넘어 주연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구타유발자들> <그림자살인> <해결사> 등에 이어 <조선명탐정…>에서 주연을 맡았다.

출연작 가운데 흥행작이 많다. <괴물>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친절한 금자씨> <올드보이> <마파도> <방자전> <음란서생> <박쥐> 등 한국영화 역대 흥행 톱100에 8편이 올라 있다.

유명 국제영화제 초청작도 즐비하다. 국내 배우 가운데 가장 많다. <박쥐> <남매의 집> <괴물> <놈놈놈> <올드보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달콤한 인생> <주먹이 운다> 등으로 칸,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로 베를린, <친절한 금자씨>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등을 장식했다.



-영화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데뷔작이 <해적, 디스코왕 되다>(2002)에요. 캐스팅디렉터인 후배의 권유로 오디션을 봤죠. 디스코장의 ‘뻘쭉남’으로 출연했어요.”

-당시 출연료는….

“많이 받았어요. 파격적으로. 3일간 찍었는데 제시된 금액의 약 10배를 받았으니까. 10년 넘게 한 연극배우의 자긍심을 살렸죠. 제가 많이 받아야 후배들도 대우를 받을 수 있잖아요.”

출세작은 <올드보이>(2003). 데뷔작이 다리가 됐다. <해적…>을 본 조감독의 연락을 받고 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를 찍고 곧바로 <올드보이>에 출연했다. <올드보이>의 경우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달수씨 놓고 배역을 쓰고 있으니까 기다리라”는 언질을 받았다. <올드보이> 이후 존재 만으로 웃음을 낳는,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배우로 각광받았다. 악역으로 전율이 일게도 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 <구타유발자들>은 잠시 망설인 작품이에요. 시나리오는 수술 통증을 잊을 정도로 단숨에 읽혔는데 쥐를 만지고 먹기까지 해야 하는 게 걸렸어요. 하등 이유가 될 수 없는데 그때는….”

<달콤한 인생>의 ‘명구’도 애착이 간다. 두 신(scene)에 나오는 인물이다. 극중 딱 중간에 등장, 힘을 빼고 보게 해준다.

“처음에는 대사가 많은 배역이었는데 제가 ‘명구’를 원했어요. 나중에 감독님이 그러더군요. 니 판단이 맞았다고.”

-배역에 다가가나요, 끌어오나요.

“끌어와요. 캐릭터를 제 안으로 들여와 오달수식으로 풀어내요. 평소의 저와 극중의 저는 전혀 달라요.”

-하고 싶은 배역은.

“못 해본 인물이요. 감성을 실어내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인물을 하고 싶어요.”

오달수 주연 멜로영화라…. 누군가가 만들 듯한 그 영화에서 보여줄 오달수의 감성연기가 기대됐다.



오달수는 자신의 연기인생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운도 준비된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운은 한두 번이고 그 운도 실력에 좌우된다고 하지 않나. 충무로에서 대체 불가능한 영역을 구축한 오달수는 “그냥, 전후좌우 살피지 않고 10년을 파면 길이 열리고 치열함과 사명감도 생긴다”면서 “단원들에게도 그렇게 주문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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