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성(47)은 1980~90년대 연극배우 출신 영화배우 1세대로 손꼽힌다. 서울대 경영학과 84학번인 그는 1987년 극단 천지연을 필두로 한강·한양레파토리·연우무대·학전 등에서 활동했다.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1995)로 영화와 인연을 맺은 뒤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바리케이트> <억수탕> 등의 주연배우로 각광받았다. 이후 약 10년간 베트남에서 영화 수입·배급, TV드라마·연극 제작을 했다. 2010년 여름에 귀국, <북촌방향> <건축학개론> <남영동1985> <26년>에 출연했다. 요즘 송강호·이정재·백윤식·김혜수·조정석 등과 함께 <관상>을 찍고 있다.

 

 

■연극으로 사회 참여
김의성은 서울대 경영학과 2학년 때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교내 연극을 보고 뒤풀이에 따라 간 게 계기가 됐다. 김의성은 “이념 서클에 들어가고, 데모에 참여해 돌도 던졌지만 그보다 연극을 통해 발언을 하는 게 체질에 맞았다”며 “그게 지금 배우로 살아가는 운명의 출발점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듯 실존 문제로 고민이 많았어요. 암울한 시대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했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연극만 하면서 살 수 있을지…. 결국 휴학을 했고, 친구가 있는 부산의 한 공장에 취직해 공원 생활을 했어요. 영장이 나와 입대했고.”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뒤에는 1987년 대학 연극·탈춤반 출신으로 결성된 극단 천지연 활동에 주력했다. 졸업만 하면 어디든 취직이 가능한데 연극을 한다고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자 집안의 반대가 거셌다. 김의성은 극단에 불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라는 아버지와 형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연극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정진영과 함께 2인극 <동팔이의 꿈>을 전국의 공장·학교를 순회하며 1년 동안 공연하는 등 문화 운동에 앞장서고 파업 현장을 찾아 다녔다.

극단 한강 시절에는 밥만 먹어도 좋았다. 연우무대에서는 밥을 꼬박꼬박 사줘 더욱 좋았다. 학전에서는 계약까지 해줘 고마웠다. 하지만 수입은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과외교사로 한 달에 20만~30만원을 벌어 생활했다.

“당시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 월급이 70만원인가 했으니 꽤 많이 번 거죠. 당시 작품으로 가장 큰 돈을 받은 건 TV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이에요. 최하등급으로 계약한 뒤 재계약을 했는데 7개월에 1000만원 정도를 받았어요.”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에서 김의성은 정선경·이경영·최진실 등과 호흡을 맞췄다.

 

김의성은 5년쯤 연극을 하던 시기에 이현승·여균동·김성수·이재용 감독들과 알고 지냈다. 그 인연으로 영화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감독 이현승)에서 비중있는 배역을 맡았다.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김동빈)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자>(〃 오병철)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홍상수) <바리케이트>(〃 윤인호) <억수탕>(〃 곽경택)의 주연배우로 각광받았다.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맡는 등 90년대 중후반 최고의 배우로 손꼽혔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김의성은 김진성·조은숙·이응경 등과 호흡을 맞췄다.

 

■영화로 시대 발언
‘강 과장’과 ‘최 계장’. 김의성이 영화 <남영동1985>(감독 정지영)와 <26년>(감독 조근현)에서 맡은 경관 역이다. 강 과장은 <남영동1985>에서 민주화운동가 ‘김종태’(박원상)를 취조하고 동료들과 함께 고문전문가 ‘이두한’(이경영)을 돕는다. 최 계장은 <26년>에서 전 대통령 ‘그 사람’(장광)을 응징하려는 ‘곽진배’(진구) 등의 계획에 맞선다.

김의성은 두 인물의 캐릭터를 명확하게 구분했다. 강 과장은 “평범한 사람, 피곤한 사람”이라고 했다. 최 계장에 대해서는 “노련한 사람, 안위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했다.

 

“강 과장에게 고문은 일의 하나에요. 그 일을 하면서도 프로야구에 관심이 많아요. 간혹 어깨·목을 주물러요. 고문·일과, 김종태 수사가 그저 빨리 끝났으면 하는 인물이에요. 최 계장에게 경호는 관할 서에서 하는 업무에요. 그 일에 능숙하죠. 일의 결과가 자신의 안위를 좌우하기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처리해요.”


 

김의성은 두 영화에서 각기 다른 경험을 했다. <남영동1985>에서는 두 차례 소름이 돋았다. 두꺼비 출현과 귀신(?)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양수리 세트에 두꺼비가 나타났어요. 인근 숲에서 세트장까지 먼 길을 걸어 온 거에요. 그런데 인재근 의원이 ‘민청련’의 상징이 두꺼비였다고 하더군요. 뱀에게 먹혀 자신이 지닌 독으로 뱀을 죽여 종족을 보호한다면서. 그분께서 잘하라고 와주신 게 아닌가 했어요.”

김종태를 심하게 고문하는 장면을 찍을 때에는 아무도 ‘커트’(cut)를 하지 않았는데 여자가 커트하는 소리가 들렸다. 녹음도 됐다. 현장에 여자가 없었는데. 김의성은 “두꺼비 출현보다 더 불가사의했다”며 “사고가 날 수 있었던 걸 미연에 방지해준 게 아닌가”라고 풀이했다.

 

<26년>은 어렵게 시작한 데 비해 현장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김의성은 “고소공포증이 있어 크레인에 올라가 ‘심미진’(한혜진)의 저격을 저지할 때 정말 무서웠다”고 했다. “혜진이가 오르내리기 귀찮다며 더 높은 곳에서 머물며 간식도 먹는 걸 봤기 때문에 꾹 참고 촬영했다”고 털어놨다. <26년>에 대해 “촬영 기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편집본이 두 가지”라며 “상영작은 줄거리 전개가 보다 매끄러운 것보다 각 장면마다 날 것의 감정을 살린 편집본”이라고 공개했다.

 

                     지난 11월 16일 열린 ‘서울광장 <26년> 콘서트 ’에서 <26년> 출연진이 사회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재미있게 살아라”
김의성은 <남영동1985>와 <26년>에서 문성근·이경영 등과 함께했다. 김의성은 “감회가 새로웠다”고 했다. “두 분 선배를 보면서 ‘나이 먹는 게 괜찮구나’ ‘배우로 늙는 것도 참 좋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남영동1985>의 문성근은 영화 데뷔작 <네온 속으로 노을 지다>에서 만났다. 김의성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원’ 역을 맡았고, 문성근은 CF감독 ‘김규환’으로 출연했다. 출판사가 경영난을 겪을 때 김원은 말도 없이 사라지고 광고회사에 카피라이터로 입사한 ‘이상민’(채시라)은 김원을 가슴에 묻어두고 김규환과 가까이 지낸다.


이경영은 <남영동1985>에 이어 <26년>에서도 함께했다. <네온 속으로 노을 지다>에 이어 주연을 맡은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에서 호흡을 맞춘 선배다. 두 번째 영화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에서 김의성은 유부녀 ‘은재’(최진실)와 조심스런 만남을 갖는 유부남 ‘진우’(이경영)의 친구 ‘창세’ 역을 맡았다. 창세는 의부증이 있는 아내를 둔 인물로 애정 없는 남편에게 실망한 은재의 친구 ‘윤수’(정선경)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이경영과는 인연이 남다르다. <네온~>에 앞서 출연한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에서도 함께했다. 이 드라마에서 김의성은 ‘황일천’ 병장(박중훈) ‘김기수 병장(이경영)’ 등이 소속한 1소대장 ‘이 중위’로 출연했다. 김의성은 원래는 병사였다. 첫 로케이션 때 촬영 준비가 덜 돼 한 장면도 못찍고 그냥 돌아왔고, 소대장 역을 맡은 배우가 아픈 바람에 대신 이 중위 역을 맡게 됐다.

 

 

요즘 출연작은 영화 <관상>이다. 이 영화에선 송강호 등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송강호는 김의성의 연우무대 후배이다.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김의성의 소개로 출연했다. 김의성은 “어느 날 술자리에서 강호가 대뜸 ‘이 형님이 나를 맨 처음 영화하게 해주신 분’이라고 했을 때 좀 쑥스러웠다”며 “예전과 다름없이 배우로 살아가는 선·후배들과 연기를 하는 나날이 즐겁다”고 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부딪쳤던 실존 문제에 대한 고민이 30년이 지난 뒤에 완전히 풀렸다”고 했다. “연극을 한다고 노발대발하셨던 아버지가 임종 하루 전에 ‘재미있게 살아라’고 하셨다”며 “살아온 날의 삶이 녹아든 연기로 오랫동안 관객을 만나고 싶다”고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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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60)가 7일 열린 제3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시상식에서 <부러진 화살>로 남우연기상을 받았다. 그의 영평상 남우연기상 수상은 <오염된 자식들>(3회·1983년) <안개마을>(4회) <투캅스>(14회) <영원한 제국>(15회) <축제>(16회) <라디오스타>(26회)에 이어 이번이 일곱 번째다. 영평상 전 부문에 걸쳐 역대 최다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그는 국내에서 남우주연상을 가장 많이 받은 배우이다. 백상예술대상(여덟 번)·영평상(일곱 번)·대종상(다섯 번)·청룡영화상(두 번)을 비롯해 아시아·태평양영화제에서 두 번, 이천춘사대상영화제에서 한 번 등 모두 스물다섯 번을 받았다.


 

 

■ “배우는 무슨…. 다시 배우하자”
안성기는 이름과 직업 앞에 ‘국민’이란 칭호를 받은 최초의 주인공이다. 1995년 영화전문지 씨네21에서 ‘국민배우’로 칭한 이후 만인의 공감을 얻고 있다.

 

안성기는 두 번의 데뷔를 했다. 1957년 다섯 살 때 <황혼열차>(감독 김기영)로 데뷔했고, 1965년 <얄개전>(감독 정승문)을 마지막으로 충무로를 떠난 뒤 1977년 <병사와 아가씨들>(감독 김기)로 다시 데뷔했다.

 

1976년 ROTC 출신 장교로 제대한 안성기의 꿈은 배우가 아니었다. 충무로 컴백은 안중에 없었다. 전공(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을 살려 대기업 문을 두드렸는데 번번이 분루를 삼켜야 했다. 종전(終戰) 이후 베트남과 국교가 단절돼있어 베트남어 전공자를 필요로 하지 않은 것이다.

 

안성기는 부득불 진로를 변경했다. 군대에서 적금을 부어 모은 돈으로 중앙대 대학원 연극영화과에 입학, 영화이론을 공부했다. 그런데 학부에서 영화를 전공한 동기들을 따라가는 게 벅찼다. 결국 한 학기만에 그만두고 진로를 수정했다. 놀았던 물에서 다시 놀자고, 다시 배우가 되자고 마음먹었다.

영화연구가 정종화씨에 따르면 아역 출연작은 70여 편이다. 1959년 제4회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서 <10대의 반항>(감독 김기영)으로 소년특별연기상을 받는 등 ‘아역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성인 안성기를 찾는 영화는 없었다. ‘아역배우는 성인배우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충무로의 통설에 시달렸다. 성공을 하려면 출연부터 해야 하는데 아역스타로서의 명성은 과거사에 불과했다.

 

백수로 지내던 그는 철칙을 세우고 이에 따라 생활했다. 아침에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새로 구입한 자전거를 탔다. 몸매를 만들기 위해 보디빌딩을 했고, 스파르타식 강의로 유명한 한 영어학원에도 다녔다. 1주일에 두세 번은 프랑스문화원을 찾아 영화의 세계를 만끽했다. 밤에는 두문불출한 채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했다. <누마>(누나와 엄마의 이미지를 혼합한 말), <흑점> 등 세 편을 완성했다.

 

■ “배우의 길도 내 몫이 아닌가….”
<병사와 아가씨들>은 경비초소 군인들과 고속버스 안내양을 주인공으로 한 멜로드라마다. 안성기는 성격이 밝은 병사 역을 맡아 이동진·이영옥·김경애·나기수 등과 호흡을 맞췄다.

그런데 이 영화는 빛을 보지 못했다. 한국영화연감에 서울 개봉관 상영기록이 없다.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 상영시간(러닝타임)은 100분, 관람등급은 ‘연소자가’, 관람 인원은 0명으로 기록돼 있다. 반면 문화공보부 선정 1977년 하반기 우수영화 16편 가운데 하나로 뽑혀(경향신문 1978년 5월 20일) 제작사는 외국영화 수입쿼터를 받았다.

 

12년 만의 복귀작이 극장에 간판도 내걸지 못하는 걸 지켜봐야 하는 참담함이란…. 그런 데에다 불운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1978년작 <제3공작>(감독 설태호), 1979년작 <야시>(감독 박남수)와 <우요일>(감독 박남수)에서도 그는 빛을 보지 못했다.

 

<제3공작>은 6·25를 다룬 전쟁영화다. 안성기는 특공대 막내로 출연, 황해·이대엽·장혁 등과 함께했다. <야시(夜市)>와 <우요일(雨曜日)>은 한 여성이 치르는 사랑의 행로를 그렸다. 안성기는 장미희·김추련·윤일봉이 주연을 맡은 <야시>에 비운의 아이스하키 선수로, 정윤희·윤일봉·전양자 주연 <우요일>에는 중년 남자와 사귀는 연인에게 결별을 선언하는 수영 선수로 출연했다. <야시>는 1979년 2월 23일 단성사에서 개봉, 10만1083명이 관람했다. 1979년 4월 19일부터 대전 신도극장에서 상영된 <제3공작>은 2100명이 관람하는데 그쳤다. <우요일>은 1980년 4월 17일 단성사에서 개봉돼 2만4497명이 관람했다.

안성기는 연기만큼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남들은 그렇게 봐주지 않는다는 데 절망했다.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배우의 길도 자신의 몫이 아닌가보다라는 생각이 들 때면 눈앞이 캄캄했다. 어린시절에 받은 뜨거웠던 박수갈채는 커녕 배우로 인정해주는 눈길과 손길이 그리웠다. 부글부글 끓다 못해 시커멓게 타버린 가슴을 다독이며 촬영장을 쫓아다녔다.

 

■ “그것도 하나 제대로 못 하냐?”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 안성기는 배우의 문을 다시 두드린 지 4년 만에 배창호 감독을 만나면서 재기의 기회를 잡았다. 이 과정 또한 순탄하지 않았다.

 

배창호 감독은 아역 안성기의 팬이었다. <바람불어 좋은 날>(감독 이장호)에서 조감독을 맡은 그는 중국집 배달부 ‘덕배’ 역에 안성기를 추천했다. 덕배는 약간 사팔뜨기인 한 배우가 맡았는데 이 감독은 그의 연기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감독은 새 인물을 찾았고, 유명 코미디언과 성우가 물망에 올라 있었다. 안성기는 제외됐다. 이 감독은 사시에 말더듬이인 덕배 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진 안성기는 이 감독을 쫓아다니며 간청했다. 이 과정에 백수 시절에 쓴 시나리오도 내밀었다. 이 가운데 윤흥인씨 소설 <기억속의 들꽃>과 천승세씨 단편 <눈꽃>을 혼합해 써놓은 작품이 이 감독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덕배 역에 발탁됐다.

그러나 세상을 거머쥔 듯한 기쁨도 잠시 안성기는 고행 길을 걸어야 했다. 여간 깐깐하지 않은 데에다 성격이 괄괄한 이 감독이 “그것도 하나 제대로 못 하냐”면서 퍼붓는 독설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철가방을 든 채로 스태프 몰래 눈물을 훔치고는 했다. “잘할 때까지 계속해”라는 말에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장면을 발이 부르트도록 거듭하고는 했다.


 

 

안성기는 자괴감에 잠을 못 이뤘다. ‘배우가 연기를 못한다, 더구나 아역스타로 이름을 날렸던 배우가…. 이렇게 창피할 수가….’ 절로 눈물이 나왔다. 밤마다 촬영한 장면을 복기하고, 촬영할 장면의 수읽기를 했다. 부단한 노력과 주변의 독려에 힘입어 덕배가 됐다.

 

<바람불어 좋은 날>은 고도성장에 따른 사회적 모순을 그렸다. 제19회 대종상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남자신인상 등을 받은 데 이어 흥행에도 성공했다. 1980년 11월 27일 명보극장에서 개봉, 10만228명이 관람했다. <느미> <미워도 다시 한번 ’80> <평양맨발> 등에 이어 흥행 4위를 차지했다. 남자신인상을 받아 일약 스타덤에 오른 안성기는 1981년 <만다라>(감독 임권택)에서 ‘법운’ 스님으로 열연, 제1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연기상을 차지했다. 이후 30여 년간 관객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국민배우’로 사회봉사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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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회 아르떼 월드 필름 페스티벌 (1ST ARTE WORLD FILM FESTIVAL)이 열린다. 오는 17일부터 20일까지 롯데시네마 예술영화전용관 아르떼에서 ‘READY ACTION’이란 부제 아래 총 8편을 특별상영한다.

상영작은 <엘리트 스쿼드2> <메란타우> <클래쉬> <남쪽의 제왕> <셀다211> <로프트> <무사 야마다> <타임 크라임> 등이다. 그 동안 극장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비영어권 및 제3세계 영화로 국내에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작품들이다.


<엘리트 스쿼드2>(ELITE SQAUD2)
베를린국제영화제 금곰상 수상에 빛나는 호세 파딜라 감독의 <엘리트 스쿼드> 속편이다. 브라질 최악의 갱들만 수감되어 있는 ‘반구원’에서 일어난 폭동과 사건 진압에 나선 ‘보피’ 부대의 이야기를 그렸다. 보피 부대 사령관의 명령을 어긴 대위가 주동자를 사살하고, 현장을 목격한 인권협회장이 언론에 사실을 폭로하면서 사령관은 곤궁에 처한다. 브라질 영화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했다.

<메란타우>(MERANTAU)
가렛 에반스 감독이 연출한 인도네시아 최초의 액션영화다.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소개된 바 있다. 수마트라의 작은 마을에서 ‘메란타우’라는 의식을 수행하기 위해 자카르타에 온 ‘유다’는 도심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 현장을 목격한다. 소녀들의 슬픈 현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다는 이들을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클래쉬>(CLASH)
<아바타>를 능가하는 흥행으로 베트남 영화계에서 자국영화 스크린쿼터를 불러일으킨 화제작이다. 인신매매로 딸을 잃은 사창가 출신 암살자의 활약상을 담았다. 보스의 마지막 명령을 수행, 딸과 재회하기 위해 벌이는 목숨을 건 추격극을 담았다.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짜임새 있는 리얼액션이 돋보인다. 베트남의 월드스타 자니 누엔이 출연 및 무술감독을 맡았다.

<남쪽의 제왕>(SULTANES DEL SUR)
멕시코 특유의 열기와 개성이 넘치는 토니 달튼 감독의 액션영화다. 멕시코 은행에서 거액의 현금다발을 훔치는 데 성공한 네 강도의 이야기를 엮었다. 네 강도는 훔친 돈을 옮기는 도중 도둑을 맞는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휘말리면서 이들의 여정은 점점 꼬여만 간다. 쿨한 캐릭터와 스피디한 전개의 조화가 영화의 재미를 더해준다.

<셀다211>(CELDA211)
다니엘 몬존 감독의 정통 하드보일드 액션영화다. 스페인의 고야어워드 최우수영화상, 제 28회 브뤼셀판타스틱영화제 스릴러 부문상 등을 수상했다. 흉악범 수감 교도소에 첫 출근한 간수가 죄수들의 폭동으로 감옥에 갇힌다. 자신을 간수가 아니라 죄수라고 속인 그는 죄수들과 두뇌게임을 벌인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긴장감이 백미다.

<로프트>(LOFT)
욕망이 부른 파국을 그린 앙트와넷 부머 감독의 네덜란드 영화다. ‘바트’ ‘톰’ 등 5명은 절친한 친구 사이다. 톰은 새신랑이고 나머지 4명은 모두 부인과 자녀를 두었다. 이들은 유능한 건축가가 마련해준 비밀스런 공간에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들을 데려와 즐길 수 있도록 키를 나눠 갖는다. 어느날 그 방에서 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무사 야마다>(YAMADA:Way of the Samurai)
노폰 왓틴 감독의 태국 액션영화다. 16세기 태국에 실존했던 외국 용병 야마다 나가마사의 삶을 다뤘다. 사무라이인 나가마사는 태국 아유타야에 흘러들어와 태국 전통무술을 배운 뒤 악의 도당과 맞서 싸운다. 리얼리티가 살아 숨쉬는 태국 액션영화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K-1 챔피언 브아카오 포 프라묵이 조연으로 출연해 화제를 낳은 바 있다.

<타임 크라임>(Time Crimes)
데뷔작을 선보인 뒤 천재 감독으로 등극한 스페인의 나초 비가론도의 화제작이다. 2012년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될 예정이다. 중년의 헥터는 사랑스런 아내와 함께 시골에 새 집을 짓는다. 망원경으로 숲을 관찰하던 그는 나체의 여인이 누군가에게 습격당하는 걸 목격한다. 여인을 구하러 간 그는 괴한에게 쫓기면서 숲속 연구실에 설치된 타임머신 속으로 뛰어든다.

이번 영화축제(AWFF)는 롯데시네마가 주최하고 팝엔터테인먼트가 주관하며 영화진흥위원회·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가 후원한다. 상영관은 서울의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와 부산의 센텀시티다. 주최측은 두 관에 홍보부스를 설치하고 관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이벤트와 프로모션을 진행할 예정이다. 연속성을 갖고 매회 차별화된 장르와 컨셉으로 탈바꿈한다는 계획이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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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의성(45)이 다시 뛴다. 오는 9월 8일 개봉되는 홍상수 감독의 12번째 장편 <북촌 방향>을 필두로. 김의성은 홍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의 주인공. <북촌 방향>에서는 ‘베트남에서 사업하다 돌아온 전직 배우’ 역을 맡았다. 그는 실제로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다가 돌아왔다. 약 10년 만에. 김의성이 다시 쓰는 출사표. ‘끝날 때까지는 끝이 아니다!’


김의성은 서울대 경영학과 84학번이다. 1980~90년대 연극배우 출신 영화배우 1세대로 손꼽힌다. 1987년 대학 연극·탈춤반 출신으로 구성된 극단 ‘천지연’을 필두로 ‘학전’ ‘한양레파토리’ ‘한강’ ‘연우무대’ 등에서 활동했고, 영화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사진 아래) <억수탕> <바리케이트> 등으로 각광받았다.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맡는 등 90년대 중후반 최고의 배우로 손꼽혔다.


-언제 오셨나요-작년 여름에 왔어요-떠난 건 언제고요-2001년이요-연기가 싫어졌나요-그런 게 아니라 배우로서의 저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어요. 더 나아가지 못하고, 답보하고, 오히려 못 한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다른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공부든 뭐든 다른 길을 모색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베트남을 찾았다. 한류 붐이 이는 걸 확인, 2002년부터 한국영화 배급업을 시작했다.


-몇 편이나 배급했나요-<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등 서너 편을 했어요-성과는요-처음에는 괜찮은 편이었는데 점점 판권이 비싸지고 영화시장이 예상만큼 활성화 되지 않아 어려워졌죠-TV드라마도 만드셨는데-드라마 한류 붐이 이는데 맞춰 TV쪽으로 방향을 틀었죠. 한국 거 사다가 트는 것보다 아예 그 나라 콘텐츠를 만드는 걸로.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 등 시장조사를 먼저 했다. 한국 작가에게 극본을 맡기는 등 한국의 드라마 제작 노하우와 현지 인력의 접목을 꾀했다. 시트콤 <사랑의 꽃바구니>와 60분물 100부작 드라마 <무이응오가이>(고수의 향기) 등을 선보였다.


-<무이응오가이>는 대단했더군요-베트남에서 60분물 100부작 드라마는 <무이응오가이>가 처음이에요. 동시녹음, 실내 스튜디오 촬영, 뮤직비디오 스타일의 예고편 등도. 최고의 지상파 전국 방송국 HTV에서 방송, 외형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어요.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광고 수주 실적도 꽤 높았죠-후속작은-<무이응오가이>의 경우 3년간 준비해 2년간 방송했는데 법적·제도적 문제에 시달리면서 후속작은 기획단계에 중단했어요.


대신 <튀어> 등 연극 두 편을 내놓았다. 연출·제작하고 출연도 하면서 전면적으로 부딪쳤다. 관객들과 직접 대면하면서 재미와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외국인이란 한계와 심의 등 제도적 문제에 심신이 피곤했다. “이 노력이면 어디서든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모든 걸 접고 귀국행 비행기를 탔다.



-홍상수 감독과 연락하며 지냈나요-아뇨, 한 번도 연락한 적 없어요. 영화는 DVD로 빼놓지 않고 봤지만-<북촌 방향> 출연은-제일 친한 친구가 권해효예요. 해효랑 통화하는데 홍 감독님이랑 술 마시고 있다더군요. 그때 감독님을 다시 만났고 겨울에 하나 들어간다면서 함께하자고 하셨는데 그 작품이 바로 <북촌 방향>이에요.

<북촌 방향>은 영화감독이었던 ‘성준’과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더욱 순화된, 한층 도드라진 홍 감독 영화만의 재미와 주제를 만끽할 수 있다. 김의성은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다가 돌아온 전직 배우 ‘중원’이다. 성준이 데뷔작 이후의 영화에 자신을 안 써준 데 대해 서운한 감정을 토로하는 인물이다. 김의성은 유준상·김상중·송선미·김보경 등과 호흡을 맞췄다.


-연기력이 전혀 녹슬지 않았던데요-감사합니다. 오랜만인데 며칠 전에 찍고 또 찍는 것 같았어요. 10년 만에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내 모습이 좋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면서 더 계속 하자는 생각이 들더군요-며칠간 찍었나요-<북촌 방향> 촬영은 모두 7회차에 끝냈어요. 저는 세 번 나갔고. 현장이 포근했어요. 어머니의 품처럼-준비를 많이 했나요-아뇨, 망가진 상태여야 해 지금보다 5~6㎏ 더 찐 모습 그대로 나갔어요. 감독님은 현장에서 즉발성을 중요하게 여겨 뭔가를 준비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대사도 현장에서 주고요.


김의성은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해 “챕터가 있는 인생”이라며 “좀더 나은 나, 내가 아닌 나를 찾았다”고 되짚었다. 실제로 그는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에 입학한 뒤 연극반을 거쳐 극단에 입단, 남다른 삶을 영위했다. 정진영과 함께 2인극 <동팔이의 꿈>을 전국의 공장·학교를 순회하며 1년 동안 공연하는 등 문화운동에 앞장서고, 파업현장을 다니고, 영화배우로 이름을 날린 뒤 외국에서 사업가로 변신했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향후 계획은-지난 4월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임종 하루 전에 저보고 “재밌게 살아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더욱 다졌어요. 연기를 계속하겠다고. 그래서 몸도 단련하고 혼자 연기연습을 하면서 그림도 그리고 있어요-그림이요-아마추어예요. 관념을 투영하면서 고정관념을 버리는 데 좋더군요-요즘 한국영화를 진단한다면-<추격자> 등 젊은 감독들 역량이 대단해요. 홍 감독 영화는 뭐든지 하면서 즐기고 싶고, 봉준호·장준환… 감독 영화에 꼭 참여하고 싶어요.


김의성은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아 혼신을 불사르고 싶다”고 역설했다. “나이를 먹은 만큼 시야가 넓어지고, 살아온 삶이 녹아든 연기를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든다”면서 “신인의 자세로 충실히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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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nia 2011.09.24 13: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의성씨 한동안 영화에서 보지 못해 궁금했는데 다시 홍상수 감독 영화로 돌아왔다니 반갑군요

  2. goafrica 2012.06.17 1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축학개론을 보다가~~ 아!! 김의성이란 배우가 있었지! 했답니다.
    깊이있고, 개성강한 연기 보여주더니 어느날 사라져버린~~
    그래서 더욱 반가웠고, 그래서 더욱 기대하고 있습니다.
    스크린에서, TV에서 자주 그의 연기 만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