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가 더 중요해.” 배우 이경영(51)이 인터뷰 때 남긴 글이다. 이 말은 영화 <남영동1985>에서 이경영이 맡은 고문 기술자 ‘이두한’의 대사 가운데 하나다. 이경영이 다시 영화 전면에 나서면서 한 다짐이기도 하다. 이경영에게 <남영동1985> 출연기와 후일담을 들었다.

 


1985년 9월,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15호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다. ‘인간도살장’으로 통했던 그곳에서 22일간 모진 고문을 받았고, 훗날 자전적 수기 <남영동>을 남겼다. 영화 <남영동1985>(감독 정지영)는 잔혹한 휴먼드라마다. 혹독한 고문 장면으로 관객을 고문하는, 야만성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 절감하게 하는 영화다. 이경영은 일명 ‘장의사’로 불리는 고문 기술자 ‘이두한’으로 출연했다. 이두한과 그 일행의 갖은 고문에 견디다 못해 거짓 자백을 하는 민주화 운동가 ‘김종태’는 박원상이 맡았다. 명계남·김의성·서동수·이천희·김중기·문성근·우희진 등이 함께했다.

 

-<남영동1985> 이야기를 들은 게 언제인가.
“감독님의 전작 <부러진 화살>(개봉 1월 18일)이 한창 상영 중일 때다. 감독님이 다음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하러 지방에 갔다고 하더라. 고문에 관한 영화고, 김근태님의 <남영동>이 원작이고, 가제가 <야만의 시대>라고 들었다.”

이경영은 그때 ‘감독님이 왜 그렇게 서두르지? <부러진 화살>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잘 마무리를 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에너지가 용솟음칠 때 하려고 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하얀 전쟁>(1992)부터 <부러진 화살>(2012)까지 정 감독의 영화 네 편에 출연한, 정 감독과 인연이 남다른 이경영은 ‘고문관 역은 아니었으면…’ 했지만 어긋나지 않았다.

-출연 제안은 언제 받았나.
“2월 말에 감독님이 소주 한잔 하자고 하더라. 그때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반갑지 않았다는 뜻인가.
“아니다, 배우라면 도전해 보고 싶은 역이지만 두려웠다. 잘 해낼 수 있을지. 언젠가 술자리에서 (박)원상이가 형이 김종태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하더라. 자신은 김근태님과 외모가 너무 다르다면서. 펄쩍 뛰었다. 네가 <부러진 화살>에서 정의로운 변호사를 했으니까 더 어울리고, 언제 ‘민주화의 대부’ 역을 해보겠느냐고. 나는 술을 좋아하고 다이어트를 할 자신이 도무지 없다는 말도 했다.”

또 하나, 촬영 일정이 문제였다. 이경영은 <베를린>(감독 류승완) 촬영을 위해 5월 초에, <남영동1985>를 한창 찍을 시기에 출국해야 했다. 이 때문에 이경영이 고민이 많다고, 출연을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 정 감독에게 전해졌다.

-실제로 못할 수도 있었는지.
“크게 다친다거나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모를까, 못한다거나 안한다고 한 적이 없다. 와전된 말을 듣고 감독님이 ‘메일 보냈으니까 빨리 열어보라’는 문자를 보내셨다. ‘못한다는 말 듣고 마음이 무거웠다’며 내가 해야 할 세 가지 이유가 적혀 있었다. ‘이 영화로 온전한 복귀를 했으면 좋겠다’ ‘가치 있는 영화다’ 등. ‘오해하셨어요, 안한다고 한 적 없습니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그래, 고맙다’는 문자와 하트(♡)가 왔다. 가슴이 짠했다.”

-성매매 스캔들은 어떻게 종결됐나.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고, 그 친구한테 사과도 받았다. 어쨌든 가족과 선후배 동료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어 10년 가까운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 인터뷰와 <남영동1985>를 통해 미디어·관객과 다시 친숙해졌으면 한다.”

-촬영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했나.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했다. 감독님은 내가 출국하기 전에 다 찍자면서 불가능하면 내 장면을 우선 찍겠다고 하셨다. 그럴 수 없었다. 나 때문에 다른 배우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되니까,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어야 집중력과 사실성을 높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베를린에 가지 않겠다고 하자 감독님이 반대하셨다. 먼저 선택한 작품을 안하는 건, 후배의 작품에 피해를 주는 건 도의가 아니라면서.”

-출국 전에 다 찍었는지.
“다 못찍었다. 김종태에게 자백받은 게 물거품이 돼 자존심이 몹시 상한 이두한의 심경이 크게 바뀌는 장면은 귀국한 뒤에 찍었다. 처음에는 목소리 톤이 좀 높았는데 무게감이 떨어져 보여 감독님 지시대로 표정은 예전과 그리 변함없이, 감정은 격렬하게 드러냈다. 그것이 더 무서워 보였다.”

-고문하고 고문받는 장면이 끔찍하다.
“실제나 다름없는 상황이어서 고문 강도가 세질수록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매일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고, 씻지 않고 곯아떨어지는 날이 많았다. 감독님은 더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두 고통을 동시에 받고 있으니까 우리보다 몇 배나 더 힘들었던 거다. 감독님은 시사회 후 관객들께 꼭 말하신다. ‘여러분은 1시간50분 동안 힘들었지만 배우들은 두 달 동안 힘들었고, 실제 고문 피해자들은 평생 힘들다’고. 이 영화의 의미가 바로 거기에 있다. 끔찍한 현장을 고발, 다시는 힘든 시대를 맞지 말자는 데 있다.”

-사고 방지가 관건이었겠다.
“집단최면에 걸린 듯 결속력이 응집돼 사고 없이 마칠 수 있었다. 촬영을 오래 하다보면 긴장감이 떨어지고는 하는데 다행히 잘 유지했다.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에는 (명)계남이 형이 농담으로 긴장감을 덜게 해 줬다. 그나마 우리는 먹을 거 다 먹으면서 찍었는데 원상이는 안먹거나 주먹 만큼만 먹었다. 안쓰럽고 미안했지만 외면했다. 극중 인물처럼 약을 올리기도 했다. 원상이가 우리를 정말 미워하는 것 같았다.”

고춧가루물로 하는 고문, 물 고문 등은 실제로 했다. 박원상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표시를 할 때까지 했다. 전기고문은 약한 전류로 맛보기를 시도한 다음에 했다.

-시사회 때 “죄송하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눈물만 계속 났다. 객석의 울음소리, 엔딩 크레디트에 나오는 분들의 고문 체험담이 뒤엉켜 귓가에 웅웅거리고 가슴에 먹먹한 게 밀려왔다. 김근태님과 엔딩 크레디트에 나온 분들에게 죄송했다. 우리는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분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남영동1985> 같은 영화가 또 제작되는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실제 인물이 진정 사죄했다고 보나.
“그 장면 촬영을 앞두고 좀 헷갈렸다. 진심인지 아닌지. 감독님이 이 순간만큼은 진심이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연기하면서 진심과 함께 모호성도 담았다. 실제 인물이 어디에서든 꼭 보고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빌었으면 한다. 그리고 젊은 관객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고마움을 느꼈으면 한다. 1985년생, 85학번 등 1985컨셉트 시사회 때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1985년 당시 뭐했나.
“한대 연영과 1학년이었다. 제대하고 입학했는데 데모할 때 뒤에서 돌 던지고 운동권 친구들과 막걸리 마시면서 토론을 하고는 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회색분자였다. 시대상황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런 시대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투쟁에 앞장서지 않았으니까.”

<남영동1985>에 ‘전두환 정권의 개’로 등장한 이경영은 29일 개봉되는 영화 <26년>(감독 조근현)에는 전두환 응징 작전을 주도하는 인물로 나온다. <베를린>을 비롯해 <소수의견>(감독 김성제) <화이>(감독 장준환) <군도>(감독 윤종빈) 등을 통해 이제부터가 중요한, 제2의 배우 인생 초반기를 펼쳐가려 한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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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창진 2012.11.26 09: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금요이 영통 CGV에 가족들 모두 데리고 강요하다시피 해서 데려 갔습니다.
    보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봐야하는 영화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우리의 이웃이 이렇게 처참히 인권이 유린되는데..
    성장이라는 미명하에.. 빨갱이라는 누명을 씌워 이리도 잔인하게 했을까요..
    군부의 독재야욕에 희생된 많은 시민들의 고통을 많이 알릴 수 있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정지영 감독님과 고생하신 박원상님 그리고 그 외의
    많은 연기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런 감독님들과 연기자분들이 살아 있는 한국영화.. 정말이지 사랑합니다.

  2. 이현민 2012.11.26 1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출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그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보는 내내 힘들었지만
    이런 영화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3. 천사 2012.11.26 17: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작 그당시의 정권에 상황을 고려하여 생각들 해보고
    이런영화 만들시간에 그러면 민주투사는 정작 김재규다 박정희 대통령님을 죽였으니 그런영화나 만들어라
    쓸때없는것으로 사람들 혼돈하게 만들지 말고 그떄의 역사와 사회 현실을 생각 하면 만들어야지 그럼그때있던 판사나 군인들은 모두 역적인감 도대채 진실을 너무 매도해 나쁜넘들

  4. 엿머거 2012.11.27 16: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청소년매매 더러운 시키 제2 영화인은 무신 발찌나차라

  5. 최장윤 2012.11.28 1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 이두한의 휘바람소리 환청때문에
    잠을 못듭니다.
    죽이고 싶도록 미웠습니다.
    그래서 참 고맙습니다.
    만년 조연으로만 생각했던 박원상님의 연기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감독님 이경영 박원상 명계남 문성근...
    모두 고맙습니다.
    참 좋은 영화였습니다.

  6. 아나키스트 2013.01.03 05: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영동 영화는 이경영 때문에 안봤습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 2000년대의 표현의 자유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분들이 희생을 했고 또 아직도 휴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는지 잘알고 있지요..
    하필...언제 해명했는지는 모르지만 미성년 성매매 혐의로 활동중단 했다 복귀한 이경영씨가 출연했군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면..과연 도덕적으로 잘못된 짓을 하고도 버젓이 영화에 출현해도 되는지 그게 더 어불상설 같습니다. 전 앞으로도 그가 출연하는 작품은 다 안볼 생각입니다.

극장 관객 수 4069만2834명, 매출액 3138억3190만9872원. 한국영화 시장점유율 60.8%(관객 수 기준). 2012년 1분기(1~3월) 관객 수와 매출액,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다. 이는 매출액 통계를 낸 2008년 이후 1분기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이다. 한국영화가 주도, 판이 커졌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이같은 내용이 담긴 올해 1분기 한국영화산업 결산보고서를 9일 발표했다.

 

 

관객 수 4069만2834명은 지난해 동기(3433만8850명)에 비해 18.5%가 증가한 수치이다. 이 가운데 한국영화 관객 수는 2474만3661명으로 전년 동기(1930만3007명)보다 28.2% 증가했다. 외국영화는 1594만9173명으로 전년 동기(1503만5843명)에 비해 6% 증가에 그쳤다. 한국영화 시장점유율 60.8%. 전년 동기(56.2%) 대비 4.6%P 증가했다.

 

매출액 3138억3190만9872원은 전년 동기(2675억3591만5900원)에 비해 17.3% 증가한 금액이다. 한국영화는 매출액은 1875억7518만5650원으로 전년 동기(1426억6248만800원)보다 31.5% 증가했다. 외국영화는 1262억5672만4222원으로 전년 동기(1248억7343만5100원)으로 1.1%가 증가하는 데 그쳤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08년부터 매출액 통계를 발표해 왔다. 올해 1분기 관객 수와 매출액은 역대 1분기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2008~2012년 1분기 매출액과 관객 수는 다음과 같다. 2310억5320만9366원·3554만8844명(2008) 2347억8714만4500원·3551만1123명(2009) 3040억6507만1416원·3792만410명(2010) 2673억1623만400원·3430만7129명(2011) 3138억3190만9872원·4069만2834명(2012)이다. 매출액 기준 연도별 순위는 2012-2010-2009-2008-2011년이다. 관객 수 순위는 2012-2010-2008-2009-2011년이다.

 

올해 1분기 한국영화 관객 수와 매출액 증가는 1월 설을 앞두고 개봉한 <댄싱퀸>과 <부러진 화살>이 2월에도 계속 흥행했고, 2월 2일 개봉작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와 29일 개봉작인 <러브픽션>, 3월 8일 개봉작 <화차>와 22일 개봉작 <건축학개론>이 좋은 반응을 얻은 데 따른다. 영진위 영화정책센터 황동미 연구원은 “전통적으로 한국영화가 강세를 보이는 음력 설 성수기와 봄 비수기 시장을 현명한 배급전략으로 돌파해가면서 시장을 주도했다”며 “그에 따라 전체적인 시장규모 확장 효과를 얻어서 관객 수와 매출액의 상승과 역대 최대 규모로의 시장 성장이라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2012년 1분기 한국 영화산업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영화 개봉작은 34편(상영작 234편)이다. 외국영화 개봉작은 76편(상영작 599편)이다. 총 110편이 개봉됐고 833편이 상영됐다.

 

2011년에는 <청원> <세 얼간이> <내 이름은 칸> 등 인도영화들이 화제를 낳으면서 시장에서도 좋은 성적을 보였다. 올해에는 <언터처블: 1%의 우정> <토르: 마법 망치의 전설> 등 유럽 영화들이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 영진위 측은 “미국영화 쏠림이 완화되고 다양한 영화보기가 이루어지는 것인지 주목된다”고 밝혔다.

 

다양성 영화 분야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인도영화 흥행과 유럽 예술영화의 꾸준한 저력, 그리고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활발한 활동이 돋보인다. 지난해에는 <혜화, 동> <파수꾼> <무산일기> 등이 관객 1만 명(독립영화의 관객 1만 명은 흔히 상업영화 관객 1백만 명으로 비유되곤 한다)을 넘긴 히트작이 나와서 독립영화인들과 관객들을 설레게 했다. 올해에는 <말하는 건축가>가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범주로는 드물게 최근 관객 2만을 넘었다. 이와 함께 <달팽이의 별>과 <두 개의 선>을 비롯해 <줄탁동시> <로맨스 조> <해로> <밍크 코트> 등이 다양성 영화 흥행 순위 20위 안에 들어있다.

 

올해 1분기 기준 국내외 영화 흥행작 상위 10위 작품은 다음과 같다. ①범죄와의 전쟁(누적 관객수468만585명·362억4833만3500원) ②댄싱퀸(400만9966명·297억9052만4000원) ③부러진 화살(342만4589명·256억7887만6500원) ④미션임파서블:고스트 프로토콜(251만160명·193억6686만원) ⑤화차(230만1407명·174억6326만6500원 ⑥장화신은 고양이(205만8204명·174억4857만2500원) ⑦러브픽션(171만67명·130억8462만3000원 ⑧하울링(159만1244명·116억1389만4500원) ⑨건축학개론(140만1741명·104억4930만4500원 ⑩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2:신비의 섬(113만5300명·96억8501만4000원)

 

국내외 다양성 영화 흥행작 상위 10위 작품은 다음과 같다. ①아티스트(11만8215명·9억4341만1300원) ②스탠리의 도시락(4만5085명·3억302만8500원) ③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4만993명·3억1814만400원) ④자전거 탄 소년(2만4246명·1억9124만4800원) ⑤말하는 건축가(1만9166명·1억5250만1000원) ⑥신과 인간(1만5015명·1억1006만7000원) ⑦치코와 리타(1만4995명·1억1950만9100원) ⑧원스 어게인(1만2632명·9772만9300원) ⑨세 번째 사랑(1만456명·8255만9000원) ⑩내가 사는 피부(1만3029명·1억361만7500원)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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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감독(45)이 질주하고 있다. 새 영화 <화차>(火車)로. 개봉 7일 만에 100만 명을 돌파, 벌써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발레교습소> 이후 7년 만에. 비장의 카드로 <화차>에 올라탄 변영주 감독의 개선행진곡을 들었다.
 


'선영'(김민희)이 결혼을 앞두고 사라진다.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수의사 '문호'(이선균)는 사촌형인 전직 형사 '종근"(조성하)과 함께 연인 선영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선영은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선영이 아니다. 지옥행 불수레 '화차' 같은 존재이다.

이 영화는 '미미 여사'로 불리는 일본의 인기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가 원작이다. 변영주 감독이 각색,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도 했다. 영화적 재미와 함께 신용불량, 파산, 사채, 개인 정보 누출, 1인 가구, 무관심 등 우리 사회의 첨예한 문제를 심도 있게 짚어냈다. <도가니> <완득이> <부러진 화살> 등의 뒤를 잇고 있다.


-원작을 읽은 게 언제인지요.

"2005년 이맘 때예요. 친구인 <발레교습소>의 신혜은 PD와 함께 경주에 갔을 때 읽었어요. 경주는 제 삶의 화두 같은 걸 묻고 풀어보는 소중한 공간이에요. 대학 3학년 때 <안녕하세요 하나님>(감독 배창호)을 본 이후로. 아무튼 서울을 떠나기 전 서점에서 서둘러 두 권의 소설을 샀는데 하나가 가네시로 카즈키의 <레벌루션 NO.3>이고 다른 하나가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예요."

<레벌루션 NO.3>는 <발레교습소>와 관련해 많은 반성을 하게 했다. <이유>는 미유키에 대한 궁금증과 그의 다른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변 감독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무작정 서점으로 달려갔다. 이때 구입한 소설이 <모방범>과 <화차>. 변 감독은 이후 미미 여사의 열혈 팬이 됐다.


-여러 작품 중 <화차>가 가장 욕심이 났나요.

"<화차>는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에요. 피해자가 자신과 유사한 인물을 골라 피해자로 만드는 걸 통해 당대의 사회적 문제를 극대화했죠. 그런데 원작이 영화화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았어요. 주변에서 부정적 의견이 강했죠. 한 유명 제작자께서 저보고 '미쳤냐'는 소리까지 할 정도로."


-그럼에도 왜 <화차>를 택했는지요.

"오기민·신혜은 PD가 미미 여사의 작품 중 영화 판권을 구입한 게 <화차>였어요. 판권은 대개 자국부터 해결하고 외국에 파는데 <화차>가 먼저 풀린 거에요. 판권 샀다는 얘기를 듣고 내게 맡겨 달라고 졸랐죠. 그런 중 시나리오와 연출 제의를 받고 정말 기뻤어요. 동시에 걱정도 적잖았죠. 공간과 시간 문제로. 원작은 1990년대 초를 배경으로 버블경제 붕괴로 인한 일본의 범사회적 이상 징후를 그렸는데 제가 만들어야 할 영화의 시공간은 현재의 서울, 한국이거든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왜 다들 반대했는지 알았어요."

-시나리오 작업은 얼마나 했나요.

"3년 넘게 썼어요. 원작의 힘과 정서를 어떻게 바로 지금의 이곳으로 가져오느냐가 관건이었죠. 사건을 의뢰하고 빠지는, 원작에 없는 문호라는 여자의 약혼자 캐릭터를 만들면서 돌파구를 찾았어요. 원작의 주인공은 경시청의 지혜롭고 유능한 형사에요. 그는 사건을 사건으로 추적, 세상의 비정함을 펼쳐내요. 영화는 여자를 사랑하고, 믿고, 그녀가 절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행복한 삶을 공유했던 남자예요. 제3자가 아니라 피해 당사자인 남자를 이야기의 축으로 놓으면서 바라보는 영화가 아니라 직접 체험하는 영화가 가능했죠. 그리고 형사는 문호의 조력자로 삼았어요. 엘리트가 아니라 남자의 사촌으로, 찌질이 전직 형사, 백수로 설정해 체험의 여지를 더욱 넓힐 수 있게 했어요."


-김민희에 대한 칭찬이 자자합니다.

"민희씨의 경우 즉흥적인 캐스팅이었어요. 선영이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분량이 적어 고민하던 중 우연히 민희씨 소속사에서 보내온 달력을 보고 연락을 했죠. 주변에선 '할까?' 했지만 전 확신했고, 실제로 곧바로 확답을 받았어요. 선영이 지문을 지우는 장면은 시나리오에 없었는데 민희씨의 연기력을 믿고 콘티를 짜면서 만들었어요. 상상에 맡기지 않고 직접 보여줘도 관객분들이 그 이상을 읽을 수 있을 거라고 봤거든요."


-투자받는 건 용이했나요.

"아니에요. 시나리오는 좋다고 하면서 들어오지 않아 애를 먹었어요. 이선균·김민희 등이 하겠다고 하는 데에도. 가장 큰 문제가 감독이 저 변영주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 중 20억원 미만의 영화를 만드는 필라멘토픽쳐스가 나서줘 기사회생했어요."

-순 제작비가 20억원 미만인가요.

"18억원이에요. 배우들이 출연료를 깎아줬죠. 흥행이 되면 보전받는 방식으로. 저도 연출료를 낮췄고, 믹싱·편집팀 등도 저렴한 비용으로 해줬어요. 원래 비 오는 장면이 엄청 많았는데 선영이 사라지는 고속도로 휴게소 외에는 다 날렸어요. 그 밖에 운영의 묘를 많이 살렸는데 실패한 적이 많은 감독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준 배우·스태프 덕분에 해낼 수 있었죠."

-촬영은 얼마나 했나요.

"70일 동안 54회 나갔어요. 용산역 외 대부분의 장면을 한 대의 카메라로 찍었어요. 돈이 없어서. 문호가 자동차의 사이드 미러를 발로 차 깨는 장면의 경우 감정 리허설만 열 번 하고 부수기 전에 '컷'을 외쳤죠. 돈도 돈이지만 시간과의 싸움도 힘겨웠어요. 배우·스태프의 스케줄 때문에 70일 이내에 끝내야 했거든요. 그래서 배우들이 감독의 말만 믿고 모니터를 보지 않기도 했어요. 저와 촬영감독과 PD는 매일 시뮬레이션을 통해 여러 대안을 준비해야 했고 ."

막바지 용산역 장면 촬영 때에는 그간 아꼈던 비용을 쏟아 부어 대형 장비 등을 총동원했다. 하지만 전면 통제가 불가능한 현장 상황 때문에 순서대로 찍을 수 없었다. 감정의 흐름을 타야 하는 배우들은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지만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해줬다. 덕분에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엔딩 장면 고민이 많았겠어요.

"여러 버전이 있었는데 현재 장면을 택했어요. 논리적으로는 아쉽지 않은데 감정적으로는 아쉬움이 남아요."


-원작의 제목을 그대로 썼습니다.

"제목이 60년대 영화 같은 느낌이 들고 뜻도 확 와닿지 않기는 해요. 영어 제목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헬프리스>(Helpless)인데 우리말 제목은 <화차>보다 나은 게 없었어요. 원작이 갖고 있는 미덕을 살리고, 열심히 홍보를 하면 관객분들이 알아주실 거라고 생각해서 <화차>로 정했어요."

-원작자는 영화를 봤는지요.

"일본어 자막을 단 DVD를 보여드렸는데 굉장히 마음에 드셔 하셨어요. 한국에 돌아온 뒤 미미여사의 메일을 받았는데 세 번째 보고 있다면서 소설을 쓸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으로 인간관계를 새롭게 조명한 점을 높이 사주셨어요. 초반부터 서스펜스가 넘치고 종국에 가서는 가슴 아픈 사랑을 다룬 영화라고 하시면서. 배우들도 칭찬하시면서…."


변 감독은 <화차>의 선영에 대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주변의 이웃"이라고 했다. "<화차>를 어떻게 보셨든 보신 게 맞다"면서 "다만 평소에 무심하게 지나쳤던 주변과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되면 더할 나위가 없다"고 피력했다.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기원한다"면서. 변 감독은 또 "데뷔 이래 처음으로 연출을 의뢰하는 시나리오가 들어오고 있다"며 "다음 영화는 내년에 준비해 내후년에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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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해를 품은 달>. 배우 김응수(51)의 요즘 출연작이다. 제목만 보면 알 수 있듯 세 작품 모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김응수가 나오면 히트한다’는 세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는 1981년부터 극단 동랑레파토리와 목화에서 활동했고, 서울예술대학과 세계적인 거장으로 손꼽히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1926~2006)의 일본영화학교를 졸업했다. 영화배우로 활동한 지 올해로 16년째를 맞은 김응수의 남다름과 특별함을 들었다.

<부러진 화살>에서 교수(안성기)에게 석궁 화살을 맞았다는 판사,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로비스트(최민식)에게 뇌물받고 그의 뒤를 봐주는 고위 검사, <해가 품은 달>에서 왕(김수현)에게 맞서는 영의정. 공교롭게 세 배역 모두 악역이다.

-찬사와 더불어 욕도 많이 먹죠.

“친구들까지 악역 운운하는데…. 세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소개된 데에다 히트하는 바람에 악역 전문으로 비치는데 실제로는 선한 역할이 훨씬 많아요. <싸인> <나쁜 남자> <추노> <타짜> <그때 그 사람들> <선생 김봉두> <바람난 가족> 등 히트작도 많고. 최근 동네에서 맥주를 사는데 손등이 다 트신 계산대 아주머니가 ‘부러진 화살 잘 봤다’고 하시더군요. 순간 그 동안 들은 욕이 싹 달아나는 것 같았어요. 영화·드라마 등을 통해 그려지는 ‘분노의 미학’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체화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봐요. 어쨌든 요즘 정도전의 <답전부>(答田父)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부귀영화에 연연 않고 열심히 사는 그런 촌부 역할을 빨리 만나고 싶네요.”

<답전부>는 고려말 정도전(1342~1398)이 지은 문답 형식의 글이다. 정도전이 귀양살이를 할 때에 그곳에서 만난 농부와 나눈 대화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펼쳐 냈다. 김응수는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아버님 뜻에 따라 한학을 공부했다”면서 “인성 교육을 위해 한문 교육을 다시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욕을 먹는 건 그만큼 연기를 잘 했다는 거지요.

“배우로서 기쁘고 긍지를 느껴요. 악이 돋보여야 선이 빛을 발하거든요. 그런데 선악의 기준은 주체의 관점에 따라 달라져요. 박봉주 판사, 최주동 검사, 영의정 윤대형은 남들에게는 악인이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선이에요. 연기할 때에 그 점을 중시해요. 표현의 무기는 눈이에요. 눈에 그 사람을 담아요. 저로서는 모두 선을 그리지만 그것이 타인의 눈에는 선과 악으로 나뉘죠.”

-출연작마다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출연·제작진이 최선을 다한 결과지요. 간혹 ‘운이 좋다’고들 하시는데 전적으로 공감하지 않아요. 작품을 잘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한 작품이 히트를 친 거니까요.”

-작품 선택 기준은 뭔가요.

“한 마디로 ‘재미’에요. 그 재미는 삶의 희노애락이 진정성 있게 담겼느냐에 달려 있죠. 우선 그 점부터 살피고 내가 맡을 인물을, 상대방과의 밸런스를 봐요. 저보다 주인공이 더 돋보여야 해요. 나는 작품의 밀알이 되고 빠지는 게 맞아요. ‘뜨고 싶다’는 욕망이 앞서면 망한다고 봐요. 작품은 아닌데 캐릭터는 돋보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인물이 탐나도 재미가 떨어지면 스케줄 등을 핑계로 사양해요. 거절하는 작품이 많은데 그때마다 안타까워요.”

-연기력의 힘이 어디에서 나온다고 보나요.
“콤플렉스예요. 명문고 졸업해서 부모님 기대대로 판검사 못된 콤플렉스가 저의 창조력의 원동력이에요.”

군산 제일고 시절 김응수는 부모의 기대와 달리 소설가가 되기 위해 문예창작학과에 가고 싶었다. 서울서 재수를 하면서 종합예술에 매력을 느껴 연극영화과를 지망했다. 아버님은 ‘부자의 인연을 끊자’고 하셨다. 7년 전 돌아가실 때까지 아들의 출연작을 한 편도 보지 않으셨다. 아들을 볼 때마다 ‘니는 테레비에 언제 나오냐’고 하시던 어머님은 아들이 나온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른다. 김응수는 “이게 효도구나 했다”면서 “솔직히 드라마 계속 하는 건 그런 점도 있다”고 털어놨다. “진즉 했으면 아버님도 쉽게 보시고 좋아하셨을 것 같다”며 “하늘에서 보고 계신다고 생각한다”고 읊조렸다.


김응수는 또 독서와 관찰을 연기의 힘으로 꼽았다. “고전과 인문학 서적을 두루 읽고 아침에 일어나면 시를 읽으면서 발성연습을 한다”고 했다. “특히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좋아한다”며 “사기에는 인간군상이, 영화상의 캐릭터가 다 있다”고 소개했다. “인간을 많이 알면 알수록 연기하는 데 도움이 돼 관찰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서 “연기철학이 정직하자, 거듭 연습하자, 인격를 갖추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뒤늦게 일본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대학 1학년 때 오디션을 거쳐 동랑레파토리에 들어갔고 졸업한 뒤 창작극만 올리는 목화에서 활동했죠. 목화 시절 꽤 이름을 날렸지만 연극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어 서른 살에 모든 걸 뒤로 하고 일본으로 영화 공부를 하러 갔어요. 당시 일본은 유명 국제영화제 상을 휩쓸고 자국 영화 편수도 할리우드보다 많았거든요. 7년 간 연출 공부를 하면서 인간에 대해 진실하게 탐구하는 자세와 열정을 배운 게 저의 소중한 자양분이 됐어요.”


-연출은 않고 배우만 하고 있는데요.
“영화 데뷔작이 3학년 재학 때 일본에서 찍은 <깡패수업>(1996)이에요. 연출부를 하면서 한국인 술집의 웨이터로 출연했는데 이때 맺은 인연으로 귀국한 뒤에 계속 배우를 하게 됐어요. 재미있고, 경험과 인맥도 두터워지고, 모두 저의 자신이죠.”

-집에 ‘술방’이 따로 있다고 하던데요.

“서제와 통하는 조그만 방이에요. 술을 좋아해요. 직접 만들어서 마시기도 해요. 한약재 하수오, 약초 야관문 등을 넣어 저도 마시고 주변에도 줘요. 술은 제게 일종의 ‘씻김굿’이에요. 술자리에서 캐스팅된 경우도 많아요.”


다음 작품은 영화 <미스터 고>(감독 김용화)와 <나는 왕이로소이다>(감독 장규성), TV드라마 <각시탈>(연출 윤성식) 등이다. 김응수는 “신이 창조한 최고의 예술품이 여자”라면서 “하반기부터 20대 여자들을 주인공으로 노자(老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을 담은 영화 연출 준비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5공화국에서 용공으로 몰아붙인 군산 제일고의 ‘오송회 사건’도 영화로 만들고 싶다”기원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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