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42)은 <장군의 아들>(1990) <쉬리>(1999) 등의 단역을 거쳐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와 <로드무비>(2002)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바람난 가족>(2003) <여자, 정혜>(2004) <너는 내 운명>(2005) <달콤한 인생>(2005) <사생결단>(2006) <검은집>(2007) <그림자살인>(2009) <부당거래>(2010) <모비딕>(2011) 등으로 각광받았다. <댄싱퀸>(2012)에 이어 최근 <신세계>를 내놨고 <전설의 주먹>을 선보일 예정이다.

 

 

■고교생 때 극단 창단

‘연기파’ 배우 황정민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농구 선수를 했다. 마산 동중학교 1학년 때 천하장사 출신 방송인 강호동과 한 반이었다. 이들이 먼 훗날 유명 영화배우와 방송인이 될 거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2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오면서 농구를 그만둔 황정민은 학교에서 단체관람한 윤복희의 <피터팬>을 계기로 배우를 동경했다. 당시에 동네마다 있던 재개봉관은 그에게는 ‘시네마 천국’이었다.

황정민은 계원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 배우의 꿈을 키웠다. 일반 과목 수업과 달리 전공 과목 수업 때에는 눈빛이 달라질 정도로 전공 공부에 열정을 불살랐다. 이론 공부를 하고 공연을 하는 게 본능적으로, 마냥 좋았던 황정민은 급기야 초 강수를 두었다. 1989년 졸업을 앞두고 동기들과 청소년 극단 ‘창조’를 창단, 뮤지컬 <가스펠>을 계몽아트센터에서 올렸다. 대학은 재수해서 갈 수 있지만 공연은 미룰 수 없다고 판단, 학력고사를 포기하고 교사와 부모 몰래 공연을 감행한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흥행에 완전 실패, 황정민 등은 많은 빚을 지고 말았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부모들은 스스로 벌인 일인 만큼 책임감을 느끼라고 일부를 갚아주면서 나머지는 본인들이 해결하도록 했다. 황정민은 “남은 빚을 차등 분배했는데 제비뽑기 과정을 거쳐 가장 많은 100만원을 갚게 됐다”면서 “임권택 감독님의 <장군의 아들>(1990) 오디션에 합격한 뒤 받은 출연료로 책임을 다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황정민은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1990)에서 오디션을 거쳐 우미관 지배인 역을 맡아 배우로 데뷔했다.

                    종로 일대를 장악한 ‘김두한’(박상민)은 우미관을 단골로 드나들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장군의 아들>에서는 우미관 지배인 역을 맡았다. 그런데 “마루오카 형사님 생신날이라…” 등 그리 길지 않은 대사를 계속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황정민은 “<테러리스트> 등의 김영빈 감독(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조감독이고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 <하녀> 등의 임상수 감독이 연출부 막내였는데 ‘뭐 하는 놈이냐’는 꾸중을 듣고 얼마나 창피했는지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기억했다. “<장군의 아들2> 제의를 받았지만 자신감이 없어 포기했다”고 덧붙였다.

황정민은 프로 무대의 벽을 절감, 공부를 더 하기 위해 1990년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 무대미술을 전공했다. 현역 배우 가운데 정재영·류승용·임원희 등이 동기이다. 황정민은 무대미술을 전공한 데 대해 “연기는 평생할 거니까 학교에서는 다른 걸 배우고 싶었고 그 경험이 연기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1991년에 입대, 1993년에 복학, 1994년에 졸업한 황정민은 극단 ‘학전’과 ‘현대극장’에서 활동했다. <지하철 1호선> <모스키토> <의형제> <개똥이> <다시 피는 꽃>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캐츠> 등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은 그는 영화 <쉬리>(감독 강제규)에서 배우 장현성의 소개로 단역(특별조사반)을 맡기도 했다. 황정민은 “강제규 감독의 작품인 데에다 당대 최고 배우인 한석규 형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갔다”고 떠올렸다.

                황정민은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순박한 드러머로 출연, 제1회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

                     했다. 1년 뒤 <로드무비>에 동성애자로 출연, 각 영화상 신인남우상을 독차지하면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배우는 내 운명
연극·뮤지컬 무대를 통해 자신감을 쌓은 황정민은 이후 영화 오디션에 계속 응모했다. <박하사탕>(감독 이창동)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감독 박흥식) <친구>(감독 곽경택) 등 1999년 전후에 개봉된 영화 오디션은 모두 봤다. <박하사탕> 외에는 모두 떨어졌다. <박하사탕>은 오디션에 합격한 뒤 단체사진까지 찍었는데 연극 공연과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출연하지 못 했다. 황정민은 배우가 되는 걸 포기하고 친구가 있는 괌으로 가 관광가이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명생활이 너무 힘들고, 비전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그런 중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본 오디션에 합격한 것이다. 당시 오디션은 <와이키키 브라더스> <와니와 준하> <수취인 불명> <선택> 등 6개 작품이 동시에 진행됐다. 충무로 사상 최대로 손꼽힌 이 오디션은 3지망까지 가능했다. 황정민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지망하지 않았지만 임순례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이 영화는 지방의 밤무대를 전전하는 삼류밴드의 척박한 삶을 그렸다. 2001년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화제를 낳았다. 황정민은 우직하고 순박한 드러머 ‘강수’로 출연 이얼·박원상·오지혜·류승범 등과 호흡을 맞췄다. 제1회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1년 뒤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과 삶을 다룬 <로드무비>(감독 김인식)에 동성애자로 출연, 정찬·서린 등과 함께했다. 제23회 청룡영화상·제2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제3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했다.

                 황정민은 <달콤한 인생>과 <너는 내 운명>으로 2005년 각 영화상의 남우조연상과 주연상을 휩쓸었다.

 

남우조연상을 먼저 수상한 뒤 신인상을 받은 황정민은 2005년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달콤한 인생>(감독 김지운)의 비열한 조직폭력배로 제42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 제4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너는 내 운명>(감독 박진표)의 순박한 농촌 총각으로 제26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과 대한민국 영화대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청룡영화상 수상 소감으로 밝힌 ‘밥상·숟가락론’으로 장안의 화제를 낳았다. <너는 내 운명>은 제29회 황금촬영상 최우수남우상도 받았다. 제4회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진기록을 낳은 그는 2007년에는 <사생결단>(감독 최호)으로 제7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2011년에는 <부당거래>(감독 류승완)로 제15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신세계>의 황정민. 밑바닥에서 출발, 거대 범죄조직의 2인자가 된 ‘정청’으로 등장, 최민식ㆍ이정재 등과

                      함께 영화의 재미는 물론 연기를 감상하는 재미도 안겨준다.

                      

최근작 <신세계>(감독 박훈정)는 살얼음판을 걷는 세 남자의 삶을 그린 범죄영화다. 황정민은 국내 최대 범죄조직의 2인자 ‘정청’으로 출연했다. 비상한 머리에 잔혹성을 갖춘, 의리를 잃지 않는 건달로 열연을 펼쳤다. 최민식이 범죄조직 와해 작전을 펼치는 경찰 간부 ‘강 과장’, 이정재가 강 과장의 작전에 따라 범죄조직에 잠입한 경찰이지만 정청이 친동생처럼 아끼는 ‘자성’ 역을 맡았다. 세 남자의 개성있는 캐릭터와 실감나는 연기 대결이 재미를 더해주는 이 영화는 개봉 사흘 만에 100만 명이 넘게 관람하는 등 호평받고 있다.

다음 영화는 오는 4월에 개봉되는 <전설의 주먹>(감독 강우석)이다. 고교 시절 주먹으로 일대를 주름잡았던 세 남자가 25년 뒤 리얼액션 TV쇼에서 만나 다시 펼치는 마지막 승부를 다뤘다. 황정민은 복싱 챔피언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국수집 사장으로 살던 중 딸을 위해 TV쇼에 출연한 ‘임덕규’ 역을 맡아 유준상·윤제문·이요원·정웅인·성지루 등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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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MY WAY). 강제규 감독(48)의 새 영화다.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7년 만에 선보이는. 오는 21일부터 상영된다. <은행나무 침대>(1996) <쉬리>(1998) <태극기 휘날리며>(2004) 등을 연출, 한국영화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강 감독의 <마이웨이>는 대미를 어떻게 장식할는지 기대된다. <은행나무 침대>는 서울에서 45만2580명(한국영화연감 기준), 전국에서 <쉬리>는 620만9893명, <태극기 휘날리며>는 1174만6135명이 감상했다. 웰메이드 상업영화 개척자 강제규 감독의 ‘마이 웨이’


<마이웨이>(MY WAY)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1940년대를 배경으로. 두 남자는 ‘김준식’(장동건)과 ‘다츠오’(오다기리 조). 마라토너 라이벌이던 이들은 군대에서 상관과 부하, 전우, 그리고 ‘하나’가 된다. 일본과 소련의 노몬한 전투, 독일과 소련의 독소전, 독일군과 연합군의 노르망디 해전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 드라마·주제·볼거리 등이 주목된다.

-또, 다시, 전쟁영화네요.

“<마이웨이>는 휴먼드라마예요.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전쟁영화로 여겼다면 안 했을 겁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이 한국인에게 끼친 영향, 전쟁의 비극성이 화두예요. 반면 <마이웨이>는 두 남자의 휴먼이에요. 적대적인 관계로 만났지만 전쟁을 치르면서 서로에게 희망이 된 두 남자의 인생여정을 그렸어요. ‘이제까지 연출한 영화 가운데 가장 만족도가 높습니다. 두 남자의 반목과 화해 과정이 잘 살아 있는 것 같아요.”

-전쟁 장면이 돋보입니다.

“여한이 없어요. 여느 전쟁영화는 물론 세 전쟁 역시 차별화를 꾀하면서 최상의 비주얼을 보여주기 위해 사력을 다했죠. 예산·시간·장소 등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열정이 넘치는 스태프 덕분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무엇이든지 표현하지 못할 게 없겠다는 자신감도 얻었고.”


-촬영은 어디에서 했나요.

“벌목장은 강원도, 포로수용소·노몬한 전투·독소전은 새만금에서 찍었어요. 컴퓨터그래픽 등 기술력이 뒷받침돼 가능했죠. 하지만 노르망디 전투는 장소의 특성상 해외 로케가 불가피했어요. 그런데 노르망디는 관광지에다 문화자산보호구역이어서 촬영이 불가능해요. <라이언일병 구하기>도 다른 곳에서 찍었죠. 저희는 노르망디와 유사한 라트비아의 한 해안을 극적으로 찾아 그곳에서 했어요. 그곳 역시 보호구역이어서 유해성 물질을 제거하는 등 환경청에 자료·계획을 제시, 하나하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는 완벽한 고증과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쳤다. 3년간 수집한 자료의 양이 무려 300GB. 강 감독은 “독일과의 전쟁에 투입된 소련의 ‘동방부대’ 병사가 100만 명이어서 준식이나 다츠오처럼 독일군의 포로가 된 동양인이 많았을 것 같다”고 했다. <마이웨이>의 시초가 된 사진 속의 주인공은 그 가운데 한 명. 강 감독은 “그의 생존 본능을 가족·연인 이상의 무엇에서 찾았다”며 “준식(장동건)을 마라토너로 설정한 것은 일제시대 한국인의 우상이 고 손기정 선수인 데에 있다”고 설명했다.

-준식이 어디에서든 달리기 연습을 하는데요.

“준식의 꿈은 제2의 손기정이 되는 거예요. 일본·소련·독일군이 되는 준식이 반드시 살아돌아가야 할 이유이자 목적이 거기에 있어요. 격랑에 휩쓸리지만 변치 않아요. 우직한 인물이죠. 반면 다츠오는 변해요. 준식을 보면서.”


강 감독은 미국에 있을 때 <마이웨이> 연출의뢰를 받았다. 당시 제목은 <D-Day>. 실화를 소재로 한 기구한 삶을 다룬 데 끌렸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서에 나온 한 장의 사진과 이 사진의 사연을 담은 SBS 다큐멘터리를 보고 피가 끓었다. 한국시간에 맞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전화한 뒤 미국에서 하려고 4년간 준비했던 작품을 미루고 2009년 11월 귀국했다. 이후 14개월 간 시나리오를 다시 쓰면서 준비작업을 했다. 지난해 10월부터 7개월 20일간 국내 및 해외촬영을 가졌다. 국내외 촬영에 약 340명의 스태프와 1만6천명에 달하는 보조출연자를 동원했다. 전투 장면에는 다섯 대의 카메라를 사용, 기존 방식과 독자적으로 개발한 유압 촬영 시스템 등 10여 가지를 모두 활용했다. 완성한 영화 커트 수가 5400여 커트로 여느 영화의 4~5배에 달한다.


-손예진씨가 출연하기로 했다가 백지화됐는데요.

“시나리오 버전이 너댓 개예요. 그 버전은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멜로라인 비중이 높아요. 마라토너 준식과 재즈가수가 된 여자가 베를린에서 조우하죠. 그런데 멜로라인으로 인해 두 남자 사이의 이야기가 약화돼 접어야 했어요. 많이 미안해요.”

-일본판은 재편집을 하는지요.

“아니에요. 기우예요. 시나리오를 쓸 때 일본 사람들에게 모니터를 했고 30명을 초청해 가편집본으로 시사회도 가졌어요. 정서적으로 반감이 전혀 없다는 걸 확인했고. 하지만 중국판은 고려하고 있어요. 중국은 한국·일본과 심의기준이 많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그쪽에서 우선 체크를 해서 보내주면 그 점을 감안해 편집할 계획이에요.”

-해외 개봉 일정은.

“일본은 내년 1월 14일에 개봉해요. 중국과 미국은 2~3월로 예정돼 있고. 이어 영국·프랑스·독일·호주에서 개봉할 예정이에요. 가야할 길이 멀어요. 국내 일정을 소화하면서 각 나라마다 다른 심의기준을 감안, 필요할 경우 편집을 새로 해야 하고 현지 프로모션도 가져야 해요. 예상컨데 5~6월이 돼야 <마이웨이>를 놔줄 수 있을 것 같아요.


-할리우드 진출 다시 시도하나요.

“미국에 있는 동안 제가 선호하는 작품을 하려고 했어요. 그쪽에서 원하는 작품을 연출, 영향력을 키운 다음에 제 걸 해야 했는데…. 그쪽 시나리오를 택했으면 아마 데뷔했을 거에요. 아무튼 4년간 학교 다녔다고 생각해요. 다시 기회가 오면 지혜롭게 대처해야죠.”

강제규 감독은 2009년 김용화 감독과 함께 영화사 ‘디렉터스’(DIRECTORS)를 설립, <마이웨이>에 이어 김 감독이 연출하는 3D영화 <미스터 고>를 준비하고 있다. 내년 2월 크랭크인 예정인 <미스터 고> 역시 세계시장을 겨냥한다. 강 감독은 “계속 진보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고 이점이 나를 변화하게 만든다”면서 “미국에서 하려고 했던 <SF>나 그 외 두세 편을 다음 연출작으로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 감독의 마이 웨이는 “품격있는 상업영화를 만드는 것”. 어떤 상황에서든 꿈을 포기하지 않는 <마이웨이>의 준식은 강 감독의 ‘아바타’로 읽힌다. <마이웨이>와 이후 작품으로 열어갈 그의 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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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reamwork 2012.10.23 01: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마이웨이를 보았습니다. 엄청난 스케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스토리가 너무 엉성해서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장준하 선생님 죽음의 의혹을 접하면서 예전에 읽은 고인의 자서전 "돌베게"를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일본군 병영을 탈출하여 광복군이 되는 과정은 너무나 극적이고도 후련한 역사적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분의 삶은 마이웨이 보다 훨씬 훌륭한 영화가 되고도 남음이 있는 소재임을 확신합니다.

    국민의 성금을 모아 장준하 선생님 일생과 관련된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요. 이 영화가 제작되면 고인을 잘 모르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큰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고 수익이 발생해서 장준하 기념사업회나 핍박받아온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정말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제규 감독(48)이 새 영화 <마이웨이>(My Way)를 오는 21일 내놓는다.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7년 만에. 14일 호텔신라에서 만난 강 감독은 표정이 밝았다. <마이웨이>에 대해 “전쟁영화가 아니라 휴먼드라마”라며 “이제까지 연출한 영화 가운데 가장 만족도가 높다”고 밝혔다.


“일본·소련·독일군을 거치는 ‘김준식’(장동건)과 ‘다쓰오’(오다기리 조)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들이 끝까지 잃지 않은 꿈과 희망을 그렸어요. 두 남자의 반목과 화해 과정이 잘 살아 있는 것 같아요.”


강 감독은 이어 전쟁·전투장면에 대해 “여한이 없다”고 털어놨다. “일본과 소련, 소련과 독일, 독일과 연합군 사이의 전쟁·전투는 두 남자의 삶에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라며 “여느 전쟁영화와 차별화를 꾀하면서 최상의 비주얼을 보여주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예산·시간·장소 등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열정이 넘치는 스태프 덕분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무엇이든지 표현하지 못할 게 없겠다는 자신감도 얻었고.”



강 감독은 미국에 있을 때 <마이웨이> 연출 의뢰를 받았다. 당시 제목은 <D-Day>. 실화를 소재로 한 기구한 삶을 다룬 데 끌렸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서에 나온 한 장의 사진과 이 사진의 사연을 담은 방송 다큐멘터리를 보고 피가 끓었다. 미국에서 하려고 4년간 준비했던 작품을 미루고 귀국했다. 이때가 2009년 11월. 강 감독은 이후 14개월간 시나리오를 다시 쓰면서 준비작업을 했다. 지난해 10월부터 7개월20일간 국내 및 해외 촬영을 가졌다. 국내외 촬영에 약 340명의 스태프와 1만6000명에 달하는 보조출연자를 동원했다. 전투장면에는 다섯 대의 카메라를 사용, 기존 방식과 독자적으로 개발한 유압 촬영 시스템 등을 모두 활용했다. 완성한 영화 커트 수가 5400여커트로 여느 영화의 4~5배에 달한다.


강 감독은 “언론·배급사 대상 시사회(13일)를 마치고 간밤에는 모처럼 푹 잤다”고 했다. “3년여 먼 길을 달려왔는데 이제부터 가야 할 길도 멀다”고 했다. “국내 일정을 소화하면서 내년 1월 일본, 2~3월 중국·미국 개봉 등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편집을 새로 하고 현지 프로모션도 가져야 한다”며 “예상컨대 5~6월이 돼야 <마이웨이>를 놔줄 수 있을 듯하다”고 했다.


“일본·중국·미국을 비롯해 영국·프랑스·독일·호주에서 개봉될 예정이에요. 각 나라마다 다른 심의기준을 감안, 필요할 경우 편집을 새로 해야 해요. 진행 중인 다른 나라도 확정되는 대로 재작업을 해야죠.”


강 감독은 일부에서 거론하는 일본판 재편집에 대해 “기우”라고 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 일본 사람들에게 모니터를 했고 30명을 초청해 가편집본으로 시사회도 가졌다”며 “정서적 반감이 전혀 없다는 걸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은 한국·일본과 많이 달라 그쪽에서 우선 체크를 해서 보내주면 그 점을 감안해 편집할 계획”이라고 털어놨다.


강 감독은 <은행나무 침대>(1996), <쉬리>(1998), <태극기 휘날리며>(2004) 등을 통해 한국영화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강 감독은 “계속 진보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고 이 점이 나를 변화하게 만든다”고 했다. <마이웨이> 이후 작품으로 미국에서 하려고 했던 <SF> 외 두세 편을 기획하고 있다. 강 감독의 마이 웨이는 “품격 있는 상업영화를 만드는 것”. <마이웨이>와 이후 작품으로 열어갈 그의 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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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강도 아이들>. 러시아 유학을 다녀온 북조선 출신 정성산 감독과 미국 유학을 마친 한국의 김성훈 감독이 함께 만든 영화다. 제작한 지 7년여 만에 개봉, 촬영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주인공 김환영은 대학교 2학년이 됐다. 정성산·김성훈·김환영의 ‘희망을 찾아서’. 


-7년 만에 개봉됩니다. 소감은.

“참으로 긴 터널을 지나왔어요. 북한을 떠난 지 16년 만에, 2004년 7월에 촬영을 시작한 지 7년여 만에 내놓는 데뷔작이에요. 어렵게 키운 자식이어서 관객분들께 많은 사랑받았으면 해요-기대되고 한편으로는 두려워요. 재미있고 의미있는 작품인데 사람들이 몰라서 이내 간판을 내릴까봐. 입소문에 기대 봐야죠-7년된 일기장을 내놓는 것 같아요. 옛날 생각에 웃음이 나고 눈물도 나요. 부디 색안경일랑 끼지 말았으면 해요. 북한 소재 한국영화예요. 우리랑 다른, 궁극적으로는 같은 동심의 세계를 그린….”

<량강도 아이들>은 올해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받았다. 부산 측은 ‘량강도 소년소녀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수준급 극적 호흡을 타고 펼쳐진다. 기대 이상의 극적 재미와 가슴 찡한 감동, 외면하기 힘든 교훈 등을 안겨준다. 주·조연, 단역 할 것 없이 아역 연기들이 압권이다. 이 영화, 결코 아이들만을 위한 건 아니다’고 초청 이유를 밝혔다.



-어떤 영화인지,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크리스마스 선물! 남한 로봇, 북한 평정!. 별 볼 일 없던 ‘종수’(김환영)가 로봇을 손에 쥐면서 아이들 세계의 중심에 서잖아요-엄마들의 과외숙제, <량강도 아이들>의 크리스마스를 찾아서.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볼만한 영화니까-‘소녀시대’가 북한 간다면?-야~ 그거 괜찮다. 로봇 대신 소녀시대라-‘부시맨에게 콜라병, 량강도 아이들에겐 로봇’ 어때요?-부시맨? 콜라병?-아~, 니 세대는 그 유명한 부시맨·콜라병 CF를 모르구나….”

-어떻게 시작된 영화인지요.

“2003년 12월에 전화를 받았어요. 한밤중에. 김동현 대표(영화사 샘)께서 다짜고짜 북한에 크리스마스가 있느냐고 묻더군요. 뜬금없는 물음에 얼버무렸죠. 그런데 끊고나서 생각해 보니까, 없더라고요. 12월 24일은 김정숙(김일성 부인)의 생일이거든요. 그래서 전화를 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시작된 거예요.”

-시나리오 작업은 얼마나 했는지.

“금방 썼어요. 김 대표의 아이템이 좋아 초고는 일주일 만에 썼고, 완고 탈고는 두세 달 걸린 것 같아요. 극중 내용은 넌픽션과 픽션의 중간이라고 보면 돼요. 촬영은 강원도 영월의 폐광촌을 북한 마을로 개조, 그곳에서 했어요.”

 

                          정성산 감독(왼쪽)은 평양연극영화대학과 모스크바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다.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쉬리> <공동경비구역JSA> <동해물과 백두산이> 등을 각색했고
                                뮤지컬 <요덕스토리> 등을 연출했다. 김성훈 감독(가운데)은 서울예대 방송연예과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롱비치교를 졸업했다. 단편 <Prisoner N62639> 등을 연출했고, <실재상
                                황> 등을 조감독했으며, <동해물과 백두산이> <복면달호> 등을 각색했다. 김환영(오른쪽)
                                은 중앙대 국제관계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다. <량강도 아이들>에 이어 <로드 넘버원> <경
                                성스캔들> 등에 출연했다.

-아역 배우 캐스팅은 어땠나요.

“왜소한 아이들 찾는 게 힘들었죠. 아역 에이전시 소속 애들은 다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1~4차에 걸쳐 3000명쯤 봤다고 들었어요. 종수 후보는 300명 정도?-2차에 합격한 뒤부터 트레이닝을 받았어요. 얼굴 태우고, 사투리 배우고…. 나중에 제가 종수라는 말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처음에는 아이들에게 배역 안 주고 영월 시냇가에서 멱 감고 가재 잡고, 옥수수·감자 구워 먹게 하면서 동심의 세계를 즐기게 했어요. 절대로 연기하지 마라, 감정에 솔직하라는 점을 강조했고-아이들 연기가 좋아요. 펄펄 날아요. 환영이는 대종상 신인상 후보에 올랐었죠-신인감독상에도 노미네이트됐잖아요.”


-촬영은 얼마나 했는지요.

“오래 끌면 안 되는 영화예요. 애들이라 쑥쑥 자라거든요. 그런데 투자사의 부도 등으로 인해 중단·재개를 반복해야 했죠-자세히 보면 초반부와 마지막 장면의 아이들이 좀 달라요. 약 2년간 자란 바람에-중1 7월에 시작, 2학기를 촬영장에서 다 보냈어요. 성적은 1학기의 60%를 인정받았고ㅋㅋ. 촬영이 있든 없든 저희들은 저희들끼리 노는 게 좋아 즐거웠어요ㅎㅎ. 마지막 촬영을 끝낸 건 중3 1월이에요.”

-후반작업이 오래 걸렸나요.

“아니에요. 초반 5분여 필름이 없어지는 바람에 늦어진 거에요-작년 8월에야 우여곡절 끝에, 돈을 주고 되찾았죠-저는 120분으로 1차 편집을 끝내고 뮤지컬 <요덕스토리> 등을 작업했어요-포스트 프로덕션을 맡았는데 솔직히 이렇게 데뷔하고 싶지 않았죠. 그런데 3년여 동안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 헤맨 김 대표를 돕지 않을 수 없었어요. 김 대표와 정 감독은 <동해물과 백두산이>(2003) 때부터 친했거든요-95분으로 줄이는 작업 등을 통해 영화가 밝아졌어요. 어린이 위주의 가뿐하고 감동적인 작품으로.”



정 감독은 “좌우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데 더욱 전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코미디·애니메이션 등 여러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김 감독은 코믹판타지 <알라딘의 잃어버린 주전자>를 준비하고 있다. 김환영은 “10년 안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같은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11월 17일, <량강도 아이들> 개봉일은 정 감독의 생일이다. “생일선물로 ‘희망’을 보고 싶다”는 정 감독의 말에 김 감독과 김환영은 “<량강도 아이들>이 외국에도 널리 소개돼 북녘 아이들에게 희망의 손길이 닿았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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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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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력과 티켓파워, 송강호(44)는 이 둘을 모두 겸비한 배우로 손꼽힌다. 연기력은 두말 할 나위 없고 티켓파워 또한 국내 최고를 자랑한다.

송강호의 영화 데뷔작은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주인공 3류 소설가 ‘효섭’(김의성)의 친구 ‘동석’으로 출연했다. 극단 ‘연우무대’에서 인연을 맺은 김의성의 추천으로.

이후 <초록물고기>(1997) <넘버3>(1997) <나쁜 영화>(1997) <조용한 가족>(1998) 등을 거쳐 주연배우로 활약했다. <쉬리>(1999)부터 <푸른소금>(2011)까지 15편에서 주연을 맡았다.


주연작 15편을 통해 송강호는 한국영화 흥행을 주도했다. 15편 가운데 9편(60%)이 각 연도별 한국영화 흥행 베스트 10에 올랐다. <쉬리> <공동경비구역JSA>(2000)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등 5편이 1위, <반칙왕>(2000)과 <의형제>(2010)가 2위, <YMCA야구단>(2002)과 <효자동 이발사>(2004)가 10위에 올랐다.

베스트 10에는 들지 못했지만 <박쥐>(2009) <밀양>(2007) <우아한 세계>(2007) <남극일기>(2005) <복수는 나의 것>(2002) 등의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박쥐>는 221만2246명(전국 관객 수·한국영화연감 기준), <밀양>은 171만364명, <우아한 세계>는 102만5781명, <남극일기>는 105만7311명, <복수는 나의 것>은 16만2517명(서울 관객 수·한국영화연감 기준)이 관람했다.

<쉬리> <공동경비구역JSA> <살인의 추억> <괴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 1위작 5편은 외국영화를 포함한 전체 1위이기도 하다. <반칙왕>과 <의형제>는 4위이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1301만9740명)은 한국영화 역대 1위(9월 9일 현재)를 5년째 고수하고 있다.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668만5988명)이 14위, 강제규 감독의 <쉬리>(620만9893명)가 16위,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JSA>(583만228명)가 20위, 장훈 감독의 <의형제>(541만9450명)가 22위,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525만5376명)이 25위에 올라 있다. 이밖에 박찬욱 감독의 <박쥐>(221만2246명)가 100위에 랭크돼 있다.

송강호는 유명 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영화의 위상을 널리 알리는 데에도 기여했다. 주연작 15편 중 이른바 3대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작품이 7편(약 47%)이다. <괴물> <밀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박쥐>(이상 칸국제영화제) <공동경비구역JSA> <반칙왕> <복수는 나의 것>(이상 베를린국제영화제) 등이다.

이 가운데 이창동 감독의 <밀양>과 박찬욱 감독의 <박쥐>는 칸국제영화제,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JSA>는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밀양>은 여우주연상(전도연), <박쥐>는 심사위원대상(박찬욱)을 수상했다. <괴물>은 ‘감독주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비경쟁’, <반칙왕>과 <복수는 나의 것>은 ‘포럼’ 부문에서 소개됐다.

송강호는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넘버3>(감독 송능한)로 대종상 신인남우상,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자연기상을 필두로 남우주연상을 11번 받았다.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대종상(공동경비구역JSA), 대종상·이천춘사대상영화제·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대한민국 영화대상(살인의 추억), 청룡상·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우아한 세계), 대한민국 영화대상(밀양), 이천춘사대상영화제(박쥐) 등이다.

그런데 송강호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티켓파워 부문에서. 지난달 31일부터 상영중인 <푸른소금>이 2주차 주말을 앞둔 9일 현재 47만8084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관람, 비상등이 깜박거리고 있다.

<푸른소금>(감독 이현승)에서 송강호는 조폭 두목이었던 중년의 ‘두헌’. 그는 새 삶을 찾기 위해 요리학원에 다닌다. 이곳에서 20대 초반의 ‘세빈’(신세경)을 만난다. 세빈은 누군가에게 고용돼 두헌을 감시한다. 두헌은 이를 알면서도 세빈에게 각별히 대한다. 딸처럼, 친구처럼, 연인처럼.

송강호는 이처럼 애매한, 같아 보이지만 다른 두헌의 외면과 내면을 설득력 있게 펼쳐보인다.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이미지를 털어내고, 본인이 “파격”이라고 할 정도로 유머러스한 면면을 걷어내고 따뜻한 인간미와 냉철한 카리스마를 넘나든다. 명배우 송강호답게. “아저씨…미안” “괘찮아, 너라면” ‘아름답고 슬픈 저격’ <푸른소금>이, 송강호의 변신과 도전이 앞으로 얼마나 주목받을는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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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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