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권현상(31)과 남보라(22)가 영화 <돈 크라이 마미>(감독 김용한)에서 함께했다. <돈 크라이 마미>는 청소년 성폭력 사건을 다룬, 실화를 근간으로 한 픽션이다. 권현상은 가해자 ‘박준’, 남보라는 피해자 ‘유은아’ 역을 맡아 유선·유오성·동호·이상민 등과 호흡을 맞췄다. 권현상·남보라와 함께 <돈 크라이 마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검찰청 2009년 집계에 따르면 성폭행 사건이 하루 44.3건, 시간당 1.8건 발생했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대부분 무죄, 또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돈 크라이 마미>에서 세 청소년 폭행범 가운데 두 명은 증거불충분 등으로 무죄를 선고받는다. ‘박준’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1년 6개월을 받는다. 이에 앞서 잇단 성폭행에 시달리던 ‘유은아’는 생일에 목숨을 끊는다. 엄마(유선)에게 ‘Don’t Cry Mommy’가 새겨진 케이크를 남기고. 엄마는 개전의 의지가 없는 박준 등을 직접 응징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다.

-시나리오를 읽고 어땠나.
권현상= 어찌나 가슴이 울렁거리고 심장박동이 가빠지는지 단숨에 읽을 수 없었어요. 픽션이지만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어서 눈을 감고 가슴을 진정시켜 가면서 읽었어요. 가해자 역할이어서 특히 그랬던 것 같아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치를 떤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남보라=전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은아 입장과, 딸보다 더 고통스러운 엄마 생각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두 모녀가 너무나 안타깝고, 이런 모녀가 단지 영화속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사회에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어요.

 

-배역을 맡는 게 꺼려지지 않았는지.
권현상=주변 반대가 좀 셌어요. 박준이 은아를 잇달아 강간하면서도 죄책감을 못 느끼는 ‘인간 쓰레기’거든요.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 <혼> 등 그간의 작품에서 악역을 많이 했는데 이번 역할이 가장 세요. 악역 이미지가 고착될까봐 우려하는 주변 반대 때문에 고민하던 중 결심했죠. ‘나는 배우다, 이제 4년밖에 안된 배우다. 변신기회는 앞으로 있을 것이다. 지금은 구제불능인 박준이 되자. 그게 배우다….’ 그렇게 마음먹고 달려들었어요.

남보라=초고를 오래 전에 받았어요. 영화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 TV드라마 <로드 넘버원>을 할 때에요. 그때부터 하고 싶었어요. 잘할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들었고. 완고(完稿)는 초고와 많이 달라요. 더욱 극적이고 구성도 세련됐어요. ‘하자, 잘 하자, 극한에 처하는 인물의 격한 감정을 실감나게 연기해서 은아 같은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된다는 영화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각인시키는 데 기여하자’고 다짐했죠.

김용한 감독은 <돈 크라이 마미> 초고를 2008년 후반기에 썼다. 2009년 상반기에 완고를 내고, 하반기에 캐스팅 작업에 들어갔다. 투자를 받는 게 차질을 빚으면서 2011년 3월에야 현재의 배우들로 출연진을 확정,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촬영을 했다.

 

-촬영은 순조로웠나.
권현상=그땐 정말 바빴어요. 드라마 <공주의 남자>, 영화 <도시의 풍년>과 촬영 일정이 우연찮게 겹치는 바람에. <공주의 남자>에서는 병약한 왕세자, <도시의 풍년>에서는 부지런한 공무원을 맡았어요. 세 작품 모두 캐릭터가 달라요. 하루에 세 작품을 모두 찍은 적도 있어요. 정말 신나고 재밌었죠. 부담도 됐지만 상호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느낌을 받았고 ‘연기가 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남보라=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무척 힘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힘들 줄이야, 요즘 말로 ‘멘붕’(멘탈 붕괴)이었어요. 두 달 정도 은아의 감정을 유지하면서 일상 생활에도 지장을 받고는 했어요.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예요.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벗어나려고, 잊어버리기 위해 온 종일 잔 적도 있어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고 우울증세가 나타나 심리 상담도 받았어요.

인터넷 등에 공개된 <돈 크라이 마미> 티저·메인 예고편, 열연 영상, 사건파일 영상 등을 보면 남보라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느낄 수 있다. 성폭행이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에게도 얼마나 깊은 상처와 아픔을 주는지 전해준다. <돈 크라이 마미>가 시사하는 의미를 실로 절감하게 한다.

-남보라(은아)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겠다.
권현상=촬영할 때 보라가 많이 울었는데 그때마다 측은하고 미안했어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고. 그래서 일부러 보라 옆에 잘 가지 않았고, 말도 잘 안걸었어요. 그게 보라가 감정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니까.

-권현상(박준)을 대할 때마다 오싹했겠다.
남보라=오빠들 덕분에 제가 더 극중에 몰입할 수 있었어요. 극중 상황은, 액션에 리액션이 착착 맞아 떨어질 때 잘 살아나잖아요. 오빠들은 카메라 앞에 있을 때와 바깥에 있을 때가 달랐어요. 그런 게 눈에 보일 때 자극을 받았어요.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처음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을 때 어땠나.
권현상=박준과 ‘윤조한’(동호) ‘한민구’(이상민) 등은 정상적인 10대가 아니에요. 교복을 입은 파렴치한이에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딘가에 있을 인물이죠. 그들이 영화를 보면 엄청 찔릴 거에요. 거울을 보는 것 같을수록 그들은 반성하게 될 겁니다. 그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봐 못보게 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봐요.

남보라=종종 뉴스로 접하듯 <돈 크라이 마미> 이야기는 단순한 픽션이 아니에요. 극중의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실제로도 적지 않다고 봐요. 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들이 영화를 보면 느끼는 게 많을 거에요. 반성하고 경각심을 가질 겁니다. <돈 크라이 마미>를 만든 이유가 그런 데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권현상은 임권택 감독의 둘째 아들이다. 임 감독이 배우가 되는 걸 반대, 단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에도 쇼핑몰 사업 등을 했다. 그런 중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의 후광을 입지 않고 홀로 서기 위해 예명을 짓고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스물여덟 살에 영화 <고사: 피의 중간고사>(2008)로 데뷔했다. 올해 <돈 크라이 마미>에 앞서 MBC 드라마 <더 킹 투 하츠>, OCN 드라마 <뱀파이어 검사2>, 영화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등에 나왔다. <강철대오>에서는 미문화원을 점거한 운동권 대학생 리더 ‘남정’으로 출연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남보라는 동덕여대 방송연예학과를 졸업했다. 배우로 데뷔하기 전 MBC <우리들의 일밤-천사들의 합창>과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서 13남매의 맏딸로 주목받았다. KBS 시트콤 <웃는 얼굴로 돌아보라>로 데뷔, 영화 <악마를 보았다>와 tvN 시트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생초리> 등을 거쳐 영화 <써니> <하울링> <무서운 이야기>,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성폭행은 육체적 상흔을 넘어 영혼을 살해한다. 권현상은 “악역은 좀 그만하고 싶다”고, 남보라는 “이제는 웃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둘 다 “작품이 좋으면 또 할 것”이라며 배우로서의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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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현 감독이 새 영화 <가비>를 내놓는다. <황진이> 이후 5년 만이다. <황진이>에 이어 <가비>도 사극이다. 영화의 오락적·사회적 기능을 지녔다. 한양대 전기공학과 재학 중 독립영화 <오! 꿈의 나라>(1989)와 <파업전야>(1990) 공동연출로 영화와 깊은 인연을 맺은 그는 "격동기의 우리 역사를 다뤄보고 싶었다"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와 보여주고 싶은 영상이 잘 살았다"고 자평했다. "후회하지 않는 선택인데 그 길은 험난했다"면서. 장윤현 감독의 <가비> 만들기를 들었다.

 

가비(加比)는 커피의 영어발음을 딴 고어다. <가비>는 커피와 고종 독살 작전에 얽힌 비화를 극화했다. 실화에 상상력을 더했다. '고종'(박희순)과 일본의 고종 독살 작전에 끌려들어간 연인 '일리치'(주진모)와 '따냐'(김소연)의 이야기를 그렸다. 군왕으로서 나라를 다시 세우려고 모색하는 고종, 고종을 죽이고 연인을 지키려는 일리치, 두 남자의 꿈을 공유하는 따냐의 이야기가 흥미롭고 영화적 의미 또한 남다르다.

-다시 사극이네요.

"격동기의 우리 역사를 다뤄보고 싶었어요. <황진이>를 끝내고 여러 영화를 구상했는데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솔직하고 진중하게 한 시대를 돌아보는 의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 <가비>를 선택했죠. 역사적 이야기는 제작비가 많이 드는데 <황진이>의 경험을 살려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데에도 자신감이 있었어요."


-왜 <가비>였나요.

"커피를 워낙 좋아해요. 헝가리 유학시절부터 엄청 마셨죠. 편집 등 후반작업 때에는 하루에 열 잔 넘게 마셨어요. 아무튼 고종은 한국인 가운데 최초로 커피를 마시고 즐긴 분이에요. 왕으로서 지극히 보수적이었을 것 같은데 신문물을 먼저 즐겼다는 게 흥미로웠죠. 그와 관련해 벌어졌을 것 같은 사건들이 궁금했고. 김탁환 씨의 <노서아 가비>를 읽고 고종에 대해 공부하면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렬해졌어요. 고종에 대해 나도, 주변도 모르고 있는 흥미로운 사실이 정말 많았거든요."

-하지만 두 남녀의 러브스토리가 더 비중 있어 보입니다.

"고종과 커피 이야기에 부정적인 투자사 측의 의견을 감안, 다양한 인물을 배치시키고 아주 진한 사랑 이야기를 담았어요. 고종과 백척간두의 한반도와 커피, 고종 독살작전, 두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조율하느라 무진 애를 먹었죠. 덕분에 고종과 커피를 둘러싼 삶과 죽음, 애절하고 감동적인 사랑, 가슴 아픈 역사, 액션과 판타지가 고루 섞인 작품이 나왔어요."


원작 <노서아 가비>는 따냐라는 바리스타 개인의 이야기 비중이 높다. 장 감독은 고종과 커피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자본은 커피와 음모,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를 원했다. 이에 따라 장 감독은 2007년 말부터 2010년 말까지 무려 900여 일 동안 시나리오 수정을 자그만치 200회나 했다.


-어디까지가 실화인가요.

"1896년 아관파천부터 1897년 다시 경운궁으로 돌아오기까지 고종의 타임 스케줄에 따라 타냐와 일루치, '사다코'(유선) 등 가상의 인물 이야기를 폭넓게 가감했어요. '별입시'는 실제로 있었어요. 고종은 사조직 별입시를 활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무기구입도 시도하면서 중립국 선포 등을 모색했죠. 경운궁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 지금의 국정원에 해당하는 '익문사'를 만들었는데 근간이 별립시에요. 독립문을 세우고, 우주만물의 원리를 형상화한 태극기 문양도 직접 고안하는 등 고종은 나약한 군주가 아니었어요."

 


-독살 음모는 픽션인지요.

"아니에요. 가비는 검고 쓴 맛이 강해 독을 타는 데 이용되기도 했대요. 실제로 러시아 공사관에서 통역관으로 근무한 '김홍륙'(박혁수)이 커피에 마약을 탔고, 고종은 냄새가 이상하다고 마시지 않았지만 세자는 마신 걸로 알려져 있어요. 러시아측 인물인 김홍륙이 왜 마약을 탔는지, 일본의 사주를 받지 않았나 싶어요."

-촬영은 얼마나 했나요.

"5개월 좀 넘게 찍었어요. 전국 16개 지역을 비롯해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찍었죠. 총 촬영회차는 61회예요. 아관파천 시기인 만큼 미술·세트·의상을 통해 다양한 영상을 담아내느라 배우·스태프들이 고생 많이 했어요. 러시아 공사관, 증기기관차 등 10여 개의 세트를 제작했고, 조선·러시아·일본의 문화적 특색을 담아낸 80여 종의 복식과 분장, 헤어스타일을 살려냈죠. 조선 최초의 커피문화도 표현해 냈고. 별도로 공개한 미니 다큐는 러시아 공사관 내의 커피실, 복도, 고종의 집무실과 거처 등의 3D 미술콘티를 완성된 영화의 세트와 비교해서 한 눈에 보여줘요."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요.

"순제작비가 51억원이에요. 70~80억원쯤 든 걸로 보인다는 말을 들어요. 예산의 한계를 딛고 하고 싶은 이야기와 보여주고 싶은 영상을 잘 살려냈다고 봐요."

-영화가 묵직해요. 고전영화처럼.

"시대배경, 인물, 목숨을 바치는 사랑 등으로 인한 것 같아요. 복합장르적 유연성이 좀 떨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요즘 사극이 인기인데요.

"고마운 현상이라고 봐요. 한국이 많이 발전했는데 돌아봐야 앞으로 더 멀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비>는 커피에서 시작한 영화인데 만드는 동안에 구한말 역사에 대해, 고난의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 느낀 점이 많아요. 역사가, 나라가 아프면 사람도, 사랑도 아프죠. 역사가 힘들면 나도 힘들고. 국호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에서 시작됐어요. 고종의 구한말은 지우고 싶은 역사가 아녜요. 우리 역사인데 우리 기록은 빈약해 영화를 만들면서 일본 자료를 많이 참고해야 했어요. 더욱 돌아보고 연구하고 잊지 말고 가야 할 역사라고 생각해요."

<가비>는 영화 말미에 한국 최초의 커피숍에 해당하는 덕수궁의 정관헌(靜觀軒)에 대해 말한다. 정관헌이 만들어진 게 일루치와 따냐 등 어떤 인물과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고 암시한다. 커피 마니아로 고종의 커피 이야기 등을 쓴 에세이집 <외로워서 완벽한>도 출간하는 정 감독은  "사랑이 행복해질 수 있는 이유가 두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역사와 함께 둘러보면 좋을 것"이라며 "<가비>(개봉 3월 15일)를 통해 영화적 재미를 맛보고 정관헌도 찾아가 보는 등 역사를 다시 읽는 시간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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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21 11: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제작비가 51원이에요. <<수정하셔야 할듯요.

정지영 감독(65)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법정 실화극 <부러진 화살>로. 처음에는 ‘13년 만의 컴백’이었다. 이제는 ‘2012년을 여는 문제작의 감독’이다.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10분 넘게 기립박수를 받으면서, 잇단 시사회를 통해 영화적 재미와 사회적 의미를 폭넓게 인정받으면서.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을 찾아서’.


<부러진 화살>. 이른바 ‘석궁 테러 사건’을 다뤘다. 2007년 1월에 발생한,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한 대학 교수가 판사에게 석궁을 쏴 다치게 했다는 사건이다. 그 교수는 4년 만기를 채우고 출감했다. <부러진 화살>은 그의 이유 있는 법정투쟁을 영화적으로 재창조했다. 실제 사건을 통렬하게 웃음을 실어가며 재조명, 법정영화의 틀을 새로 짰다. 모든 배우·스태프가 러닝캐런티로 참여, 한국영화의 지형도 드넓혔다. 내년 1월 19일 개봉된다.


-언제, 어떻게 시작했나요.
“재작년 가을에 배우 문성근씨 소개로 르포 <부러진 화살>을 읽었다. 단숨에. 곧장 작가를 만나고 복역중이던 김명호 교수 면회도 가고 수차례 편지를 주고받았다. 박훈 변호사도 당연히 만났고. 박 변호사에게 받은 자료가 네 박스나 된다.”

-동의받는 데 어렵지 않았는지.
“전혀. 김명호 교수는 실화인데, 널리 알려진 사건인데 당사자 동의가 필요하냐고 하더군요. 그럼에도 동의를 받았다.”


-두 주인공 설정이 돋보입니다.

“김 교수(안성기) 못지 않게 박 변호사(박원상) 또한 만만찮은 인물이더라. ‘김 교수 혼자 극을 어떻게 끌고가게 하나’ 하는 고민이 그를 만나면서 해소됐다. 두 인물은 대조적이다. 수학을 전공한 김 교수는 ‘법은 아름답다’고, ‘법대로 하면 된다’고 한다. ‘안 지키는 게 문제’라며. 원칙을 중시한다. 고지식하다. 반면 법을 전공한 박 변호사는 ‘법은 쓰레기’라고 한다. ‘뒷북이나 치는’. 그는 원칙이 안 통하면 불법을 행사해서라도 잘못을 바로 잡고 싶어 한다. 자칭 ‘양아치 변호사’다. 이들은 보수와 진보로 대별되지만 함께 부당한 권력에 맞선다.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을 통해 보수와 진보가 공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문제는 불통이고 해법은 소통이다.”

-시나리오 작업은 얼마나 했나요.
“1년 넘게 걸렸다. 소재가 소재인만큼 여느 작품과 달리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결론이 날 때까지 외부에 일체 노출시키지 않고 수정·보완을 거듭했다. 촬영도 언론 등에 일체 알리지 않았다. 사법부에서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에.”


-실제와 픽션의 비중은.

“드라마 부분에 픽션을 조금 가미했을 뿐 거의 사실이다. 법정장면은 90% 이상이다. 더러 ‘영화잖아’라고 하시는데 기가 막히는 건 그게 불과 5년 전에 발생한 사실이라는 거다. 극중에 교수는 ‘이게 재판이냐 개판이지’라고 말한다. 기득권 논리와 집단 논리가 개판을 치고 있는 세상에 대한 항변을 상징한다.”

-호화 캐스팅인데요..

“처음에는 유명세는 떨어지지만 실력은 뛰어난 배우 중심으로 가려고 했다. 돈이 없으니까. 시나리오를 쓸 때 주인공은 문성근씨였는데 정치 일정 때문에 불가능했다. 그런데 캐스팅 디렉터가 안성기씨를 추천했다. <페어러브>라는 저예산 영화를 했다면서. 그래서 만나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소재가 껄끄러웠지만 성공한 <남부군> (1990)과 <하얀 전쟁>(1992) 사례를 들면서. 시나리오 읽고 답을 달라고 했는데 다음 날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이후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유명 배우 위주로. 독립영화에서 저예산 상업영화가 됐다.”

-박원상씨는.

“시간이 좀 걸린 편이다. 내가 더 욕심을 내는 바람에. 훗날 원상씨에게 에둘러 사과했다. ‘연기로 복수해 달라’고. 실제로 복수해 줬다. 보란듯이. 호연을 펼친 안성기씨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고.”

-‘꼴통판사’ 문성근씨도 눈길을 끕니다.

“정말 잘해줬다. ‘유쾌한 100만 민란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으로 야당 통합을 주도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 짬을 내줬다. 정치인으로 뜻을 잘 펼치고 다시 배우로 돌아왔으면 한다.”


-저예산 상업영화라고 하셨는데요.

“안성기씨는 물론 박원상·나영희·김지호·이경영·문성근씨 등 배우와 김형구 촬영감독 등 스태프도 모두 러닝 개런티로 참여했다. 이분들 덕분에 만족할만한 완성도를 꾀할 수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시사회 때마다 호평을 받은 데 힘입어 설 개봉작으로 확정됐다.”

-연출력이 여전합니다.

“기분이 좋기는 하다. 하지만 나이 먹은 사람들은 감각이 낡고 녹슬었다는 건 편견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나를 포함해 내 세대 감독들은 영화밖에 모른다. 쉬고 있지 않다. 내놓은 영화가 없을 뿐 항상 영화에 매달려 실력을 갈고 닦고 있다. 검증받은 이들이고. 차제에 우리 세대 감독들에게 눈을 돌려주었으면 한다.”

<부러진 화살> 순제작비는 5억원.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한 달여 동안 24회 촬영을 가졌다. 찍어놓고 버린 에피소드가 하나도 없다. 정 감독은 막바지에 <부러진 화살>에 대해 “철학적 성찰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지적인 영화가 아니다”고 했다. “어처구니 없는 일, 시비가 너무나 명약관화한 문제를 던지는 영화여서 서구의 유명 국제영화제에서 쳐다보지 않을 것”이라며. “프랑스에서 100여년 전에 발생한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사법부에서 일어났다는 게 황당하고 슬프다”면서 “우리 사회에서 상식이 통하려면 국민 개개인이 부당한 권력과 조직논리에 맞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지영 감독은 ‘충무로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손꼽힌다. 영화산업의 구조적 모순을 깨뜨리는 데 누구보다 앞장섰고 충무로가 금기해온 소재도 과감하게 다뤘다. <부러진 화살>은 <남부군> <하얀전쟁> 등에 이어 또 하나의 정점을 보여준다. 21세기 한국에서 누구든 법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보안을 철저히 하고 있는 다음 영화 또한 주목된다. 정 감독은 <부러진 화살>처럼 다 익힌 다음에 알릴 계획이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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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영화제가 열린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100일 영화제’다. 오는 28일부터 내년 2월 9일까지 서울 종로3가 낙원상가 4층 실버영화관(허리우드극장)에서 마련된다. <사운드 오브 뮤직> <닥터 지바고> <빠삐용> <남과 여> 등 외국의 고전 명작과 <고교얄개> <길소뜸> <오싱> 등 국내 명작 15편을 상영한다. 이 가운데 <남과 여> <사운드 오브 뮤직> <닥터 지바고> <미션> 등은 무삭제 필름으로 선보인다.

개막작은 <남과 여>(1966)다. 가을의 로맨틱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프랑스 멜로영화다. 아들을 둔 홀아비 자동차 경주 선수와 딸을 둔 과부 영화 스크립터의 사랑을 그렸다. 장 루이 트랭티낭과 아누크 에메가 남녀 주연, 클로드 를르슈 감독이 각본·연출을 맡았다. 1967년 제24회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과 주제가상, 제39회 아카데미상 최우수외국어영화상과 각본상 등을 수상했다. 10월 28일부터 11월 3일까지 상영된다.

<남과 여>에 이어 상영되는 작품은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고교얄개>(1976) <모감보>(1953) <오싱>(1985) <미션>(1986) <길소뜸>(1985) <러뷰 액츄얼리>(2003) 등이다. 이어 <사운드 오브 뮤직><1965) <오즈의 마법사>(1939) <9월이 오면>(1961) <초원의 빛>(1961) <닥터 지바고>(1965) <빠삐용>(1973) <사랑의 스잔나>(1976) 등이 상영된다.

<타파니에서 아침을>(상영 11월 4~10일)은 오드리 헵번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다. 뉴욕 맨하튼을 배경으로 말괄량이 아가씨와 가난한 작가의 사랑을 그렸다. 제34회 아카데미상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받았다.

<고교얄개>(11월 11~17일)는 1970년대에 유행한 하이틴 영화다. 여학생 위주의 전작들과 달리 남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서울에서 26만여 명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두면서 하이틴 영화의 정점을 이뤘다. 이승현·진유영·김정훈·강주희 등과 정윤희·하명중 등이 함께했고 석래명 감독이 연출했다.

<모감보>(11월 18~24일)는 아프리카 정글을 배경으로 사랑과 모험을 그렸다. 클락 케이블·에바 가드너·그레이스 켈리가 주연, 존 포드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제11회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그레이스 켈리) 수상작이다.

<오싱>(11월 25일~12월 1일)은 실화 소재 일본 소설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일곱 살에 더부살이로 팔려간 여자 아이의 눈물겨운 성공기를 담았다. 김민희·안해숙·임혁·한은진 등이 이상언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제24회 대종상에서 여우조연상(한은진)을 받았다.

<미션>(12월 2~8일)은 1700년대 남미의 오지에서 벌어진 실화를 영상화했다. 포르투갈의 압제에 저항하는 원주민들을 돕는 두 가톨릭 신부의 이야기를 그렸다. 냉혈한 노예상인이었다가 신부가 된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무력으로, 그를 종교에 귀의하게 한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은 비폭력 선교로 원주민들을 돕는다. 롤랑 조페 감독이 연출했다. 제44회 골든글로브 각본상과 음악상(엔니오 모리코네), 제59회 아카데미상 촬영상을 수상했다. 모리코네의 음악은 <남자의 자격> 합창곡으로 널리 소개되기도 했다.

<길소뜸>(12월 9~15일)은 좌우익의 대립으로 비롯된 한국사의 상처를 이산가족 상봉을 소재로 다뤘다. 임권택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제3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김지미·신성일·전무송·이상아 등이 주요 배역을 맡았다. 제24회 대종상 여우주연·음악·미술상, 제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각본·음악상 등을 받았다.

<러브 액추얼리>(12월 16~22일)는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다. 많은 아류 영화를 양산시킨, 숱한 프로포즈 패러디를 낳은 세계적인 히트작이다. 휴 그랜트·리암 니슨·콜린 퍼스·엠마 톰슨 등 쟁쟁한 영국 배우들이 작은 역에 아랑곳 않고 대거 출연, 영화의 완성도를 드높였다.

<사운드 오브 뮤직>(12월 23~29일)과 <오즈의 마법사>(12월 30일~1월 5일)는 뮤지컬 영화 걸작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나치 지배를 피해 조국을 떠나 오스트리아로 망명한 군인 가족과 이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온 견습 수녀의 이야기를 그렸다. ‘도레미’ ‘에델바이스’ 등 주옥같은 음악이 영화의 감동을 더해준다. 제23회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줄리 앤드류스)을 비롯해 제38회 아카데미상 작품·감독·편집·음악편집·음향상 등을 수상했다. <오즈의 마법사>는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 오즈의 나라로 내던져진 ‘도로시’의 모험을 그렸다. 여주인공 주디 갈란드가 무지개 저편 마술의 나라를 동경하며 부른 주제가(Over the Rainbow)로도 유명하다. 제12회 아카데미상 작곡·주제가상을 받았다.

<9월이 오면>(1월 6~12일)은 록 허드슨·지나 롤로브리지다 주연 로맨틱 코미디 영화, <초원의 빛>(1월 13~19일)은 워렌 비티·나탈리 우드 주연 청춘영화 수작이다. <9월이 오면>은 <앵무새 죽이기> 등으로 유명한 로버트 멀리건, <초원은 빛>은 <워터프론트> <에덴의 동쪽> 등으로 유명한 엘리아 카잔 감독이 연출했다. <초원의 빛>은 제34회 아카데미상 각본상을 받았다.

<닥터 지바고>(1월 20~26일)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을 영상화한 대작이다. 러시아 혁명을 배경으로 의사 유리 지바고의 삶과 사랑을 그렸다. 주연 오마 샤리프·줄리 크리스티·제랄딘 채플린, 감독 데이비드 린. 주제곡 ‘라라의 테마’로도 유명하다. 제23회 골든 글로브 감독·남우주연·각본·음악상, 제38회 아카데미상 촬영·미술·의상·음악·각색상 등을 수상했다.

<빠삐용>(1월 27일~2월 2일)은 실화를 소재로 한 세기의 명작이다. 악명높은 형무소에서 마침내 탈옥에 성공한 한 종신수의 이야기를 담았다.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지 않는 ‘빠삐용’(스티브 맥귄)과 대조적인 선택을 하는 위조지폐범 ‘드가’(더스틴 호프만) 등의 삶을 대비,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물었다.

<사랑의 스잔나>(2월 3~9일)는 한 남자를 두고 벌어지는 이복자매의 갈등과 사랑을 담았다. 숱한 아류작을 낳은 화제작이다. 홍콩의 가수 겸 배우 진추하는 청순한 외모와 함께 주제가 <원 섬머 나이트>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실버영화관 측은 이 영화제에 대해 ‘국내 최초로 관객을 배려한 장기 영화제’라고 말한다. 여느 영화제가 극장 대관 등의 문제로 좋은 영화 상영을 1~2회로 한정한 것과 달리 고전 명작을 일주일씩 상영하는 것이다. 또한 레드카펫도 관객을 위해 마련한다.

 한편 실버영화관은 2009년 개관 이래 최근 3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300석 단관 극장으로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김은주(38) 실버영화관 대표는 “어르신들의 성원과 3년간 변함없이 3억6천만원을 후원해준 SK케미컬 덕분”이라며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으로도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상영작 중 <남과 여> <사운드 오브 뮤직> <닥터 지바고> <미션> 등을 무삭제 필름판으로 상영하고 영화제 종료 후 전국 순회 상영도 기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영화제 1일 상영횟수는 3~5회이다. 입장료는 55세 이상은 2천원, 55세 이하는 5천원이다. 영화제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실버영화관 홈페이지(www.bravosilver.org)에 수록돼 있다. 문의 (02) 3672- 4232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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