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44)는 <꽃잎> <처녀들의 저녁식사> 등을 거쳐 <박하사탕>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연기력은 물론 흥행성적도 돋보인다. 12월 현재 300만 명 이상이 관람한 한국영화 78편 중 그가 주연을 맡은 작품이 7편이다. 배우 가운데 가장 많다. 천만 영화 <해운대>와 <실미도>를 비롯해 <강철중: 공공의 적 1-1> <그놈 목소리> <공공의 적2> <광복절특사> <공공의 적> 등이다. <타워>에 이어 문소리 등과 <협상종결자> 촬영을 마쳤고 요즘 정우성·한효주 등과 <감시>를 찍고 있다. 

 

 

설경구는 <실미도>(감독 강우석·2003)에서 비운의 북파공작원으로, <해운대>(〃 윤제균·2009)에서 초대형 쓰나미에 휩쓸린 시민으로 출연해 온몸을 던졌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타워>(〃 김지훈)에서도 다르지 않다. 후배들에게 ‘전설’로 불리는 소방대장 역을 맡아 혼신을 다했다. 최악의 화재 현장에서 인명을 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리 판단에 능하고 과감한, 손에 땀을 쥐게 하고 마침내 울먹이게 만드는 영웅상을 펼쳐냈다.


설경구는 이처럼 극중에서 온몸으로 고초를 겪는 인물과 인연이 깊다. 첫 영화 <꽃잎>(〃 장선우·1996), 첫 주연 영화 <송어>(〃 박종원·1999), 출세작 <박하사탕>(〃 이창동·1999), 그리고 <광복절특사>(〃 김상진·2002), <그놈 목소리>(〃 박진표·2007) 등에서, 그의 아바타라고 할 수 있는 ‘강철중’을 낳은 <공공의 적>(〃 강우석·2002) 시리즈 3편에서도 쓴맛 끝에 단맛을 보거나 끝내 보지 못하는 인물로 각광받았다.

 

■“연기도 해봐야”
설경구는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다. “감독 잘하려면 연기도 해봐야 한다”는 선배의 말에 따라 연극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배우가 됐다. 1학년 때 출연한 <만선>에서 전수경·유오성·박미선 등과 함께한 설경구는 공연이 끝난 뒤 한참을 울었다. 심혈을 기울인 뒤 밀려온 허탈감을 주체하지 못해…. 그런 그는 며칠 뒤 연출을 맡았던 4학년 여자 선배의 편지를 받았다. 연습·공연 과정, 그리고 울음 등에 대해 언급하면서 영화보다 연극을 전공하라는 권유가 담긴 편지였다.

설경구는 이후 연극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자연스레 영화감독의 꿈을 접고 연극을 전공했다. 4학년 때에는 제1회 젊은 연극제 공연작 <달아 달아 밝은 달아>를 연출했고, 덕성여대 약대 연극반 공연작 <들소> 객원 연출을 맡기도 했고, 4학년 2학기 때부터 동숭동에서 활동했다. 극단 ‘한양 레파토리’에 입단, <심바새매>(‘심야에는 바바라, 새벽에는 매리와’. 원제 <라이어>)에 동성애자로 출연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한 설경구는 신문보급소에서 삽지 작업을 하고, 시내 곳곳에 연극 포스터를 붙였다. 포스터 부착 작업을 한 작품 가운데 하나가 극단 ‘학전’의 <지하철 1호선>. 대학 선배인 학전 기획실장의 배려로 포스터 부착 작업을 하던 어느 날 설경구는 김민기 대표의 눈에 띄었다. 김 대표는 기획실장에게 설경구에 대해 묻고 그 자리에서 설경구를 <지하철 1호선>에 캐스팅했다.

설경구는 이 작품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1994년 초연 때부터 96년까지 참여했다. 80여 가지 배역 가운데 두 역을 빼고 다해보면서 다양한 경험과 연기력을 쌓았다. 김 대표는 이와 관련해 “어차피 길게 할 연기생활인데 ‘왕자병’에 걸리지 말라고 연기력이 필요한 삼류 역할을 많이 맡겼다”면서 “그런데 불평 안 하고 항상 성실하게 준비하고 연기를 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꽃잎>에서 설경구가 추상미·나창진·박철민(왼쪽부터)과 ‘소녀’(이정현)를 찾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10㎏ 정도 빼라”
첫 영화 <꽃잎>에는 장선우 감독에게 연출 수업을 받던 대학 동기, 훗날 <이대근 이댁은>(2006) <불후의 명작>(2000) 등을 연출한 심광진 감독의 추천에 힘입어 출연했다. 여주인공 ‘소녀’(이정현)의 행방을 쫓는 대학생 ‘우리들’ 역을 맡아 박철민·추상미·나창진 등과 함께했다.

이 영화 ‘쫑파티’ 때 설경구는 구원의 천사를 만났다. ‘호랑이 선생님’이던 고 유영길 촬영감독이다. 유 감독이 “경구야! 너 같은 얼굴이 배우를 하는 데 좋아. 평범하기 때문에 네가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얼굴이 나올 수 있어”라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은 것이다. 한국 최고의 촬영감독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데에다 배우로서 장점을 지녔다면서 성장 가능성을 인정해 주자 설경구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설경구가 배우로 성장하는 데에는 <처녀들의 저녁식사>(감독 임상수·1998)가 밑거름이 됐다. 그는 호텔 직원 ‘연’(진희경)과 하룻밤을 보내는 만화가로 6분쯤 나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깊은 인상을 남기면서 <유령>(〃 민병천·1999) <송어>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전수일·1999) <박하사탕> 등에 잇따라 캐스팅되면서 ‘연기파’ 배우로 손꼽혔다.

임상수 감독은 <지하철 1호선>을 보고 설경구를 캐스팅했다. 설경구가 출연한 장면은 편집 작업 때 절반 정도가 잘릴 뻔했다. 여자 스크립터가 임상수 감독에게 자르면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해 6분쯤 나왔다. 스크립터가 자신의 주장을 굽혔다면 그의 출연 장면은 3분 정도에 그쳤고, 그랬다면 설경구는 주목받지 못했고, <송어>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박하사탕> 등과 인연을 맺지 못했을는지 모를 일이다.

임상수 감독의 조언도 큰 몫을 했다. 임 감독은 설경구에게 살을 뺄 것을 권했다. “10Kg 정도 빼면 아마 감독들이 엄청 찾을 것”이라면서. 설경구는 임 감독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새벽과 밤, 매일 두 차례씩 뛰면서 식사를 조절해 10Kg을 뺐다.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보고 설경구를 찾은 박종원·전수일·이창동 감독이 그를 몰라볼 정도로. 특히 박종원 감독은 오디션을 보러 온 설경구를 옆에 두고 “설경구는 안 왔었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연기 하지 마라”
<박하사탕>의 주인공 ‘김영호’는 원래 한석규였다. 이창동 감독이 <초록물고기> 때 일찌감치 거론, 한석규가 맡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시나리오가 나온 뒤 한석규가 고사해 설경구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설경구는 첫 오디션에서는 떨어졌다. 이후 TV드라마 <고백> 등의 작가인 이창동 감독 부인의 제안으로 다시 기회를 잡았다. 거실에서 우연히 본 오디션 필름에서 설경구를 보고 “김영호 여기 있네”라며 설경구를 추천한 것이다.

삼척에서 <송어>를 찍고 있던 설경구는 이 감독의 “함께 하자”는 말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한 뒤 바깥에서 담배를 엄청 피웠다. “내일 책 읽어보자”는 이 감독의 말에 설경구는 “하고는 싶지만 능력이… 자신이 없다”고 했다. 큰절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후 10일이 지나도록 답을 안 했다. 자신 때문에 영화가 망가지는 악몽에 시달리다가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 달려들기로 마음먹었다. 이 감독은 “다른 배우들과 달리 자신이 없다고 한 게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면서 “평범한 마스크에 카리스마가 약해 보였지만 볼 때마다 얼굴이 달랐고, 그 점이 선악은 물론 다양한 색깔의 표현이 가능해 보여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박하사탕>은 1999년 4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 찍었다. 설경구는 IMF로 망한 사업가, 악질 형사,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계엄군, 순진한 공장 노동자 등 복잡다단한 40대에서 20대를 살아내느라 고역을 치렀다. 이 감독의 한결 같은 주문은 “연기를 하지 마라”였다. 설경구는 연기를 하면서 연기를 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스태프들이 무서워서 가까이 가는 걸 꺼려 할 정도로 배역에 몰입, 진짜 배우로 거듭났다.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 작품으로 대종상·백상예술대상·이천춘사대상영화제·청룡영화상·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등에서 7개의 신인남우·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설경구 시대’를 열었다.

 

                   <타워>에서 설경구는  후배들에게 ‘전설’로 불리는 소방대장 역을 맡아 혼신을 다했다. 최악의 화재 현장

                        에서 인명을 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리 판단에 능하고 과감한, 손에 땀을 쥐게 하고 마침내

                        울먹이게 만드는 영웅상을 펼쳐냈다. 김상경·손예진·조민아·김성오(왼쪽부터)를 비롯해 김인권·도지환·안

                        성기·차인표·박철민·이한위·정인기·송재호·이주실·이창주·이창용·권현상 등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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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재현(47)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DMZ Docs) 집행위원장이다. 2009년 제1회 때부터 집행위원장을 맡아 4년째 꾸려오고 있다. 안성기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에 이어 배우 활동과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업무를 동시에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올해 영화제에선 그간의 경험과 성과를 바탕으로 대중과의 소통에 역점을 두고 있다. 조재현 집행위원장과 올해 영화제와 연기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제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다가왔다.
“오는 21일부터 27일까지 열린다. 전세계 36개 나라에서 만든 115편을 상영한다. 작년에는 31개국 101편이었다. 21일 오후 6시에 도라산역,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개막식을 갖고 롯데시네마 파주아울렛 4개관과 메가박스 출판도시점 4개관에서 초청작을 상영한다.”

-개막작 <핑퐁>은 어떤 작품인가.
“스포츠 다큐멘터리다. 80~100세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세계 탁구 챔피언 대회를 다룬 영국 작품이다. 전세계에서 심화되고 있는 노령화·고령화 문제를 경쾌하게 조명했다. 참가 선수들을 통해 불굴의 의지와 죽음에 대한 반추 등을 감동적으로 담았다.”

폐막작은 ‘경쟁’ 부문 수상작 가운데 한 편이다. 경쟁 부문은 국제·한국·청소년으로 나뉜다. 국제경쟁 흰기러기상(대상)에 1500만원 등 수상작에 총 3650만원의 상금을 준다.

-경쟁 부문 응모작은 많았나.
“총 665편이 응모했다. 지난해보다 142편이 많다. 응모작 중 25편을 선정했다. 국제 부문에 11편, 한국에 8편, 청소년에 6편을 뽑았다. 경합이 치열했다. 애석하게 떨어진 작품 중 일부는 ‘비경쟁’ 부문에서 소화했다.”

 

비경쟁은 아홉 부문으로 엮는다. 글로벌 비전·닥 얼라이언스 걸작선·아시아의 시선·아트 링크·현장 속의 카메라·자연 다큐멘터리·다 함께 다큐를!·폴란드 다큐멘터리 특별전·특별상영 부문에서 90편을 상영한다. 이 가운데 정우정 프로그래머 추천작은 <핑퐁>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 <인터럽터스> <팔레스타인 점령의 적법성에 대한 보고서> <헤드라인-뉴욕 타임즈의 모든 것> <아이 웨이웨이-난 멈추지 않는다> <우디 앨런-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등이다.

-어떤 점에 역점을 뒀나.
“대중과의 소통이다. 지난 3년간 일궈온 괄목할 만한 성과를 근간으로 영화제의 진정성을 견지하면서 더 많은 관객, 더 폭넓은 관객층이 평화·생명·소통에 관한 다양한 소재·주제의 다큐멘터리를 즐길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입시경쟁 과열, 환경·노인 문제, 부패한 사법계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사안을 조명한 작품이 많다. 2AM이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배수빈·류현경·박철민·이한위 등 선후배 배우들이 ‘다큐 패밀리’로 함께한다.”

 

-프로젝트 마켓을 연다.
“최근 몇 년간 한국 다큐멘터리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 마켓 크로싱 보더스(Crossing Borders) 2012’를 유치했다. 이를 통해 한국 다큐멘터리의 해외 진출 및 국내외 투자유치를 꾀할 것이다. 독자적인 국제 다큐멘터리 네트워크를 점차 구축, 향후에는 자체적인 ‘DMZ Docs 프로젝트 마켓’을 출범할 계획이다.”

-어떤 부대행사를 갖나.
“마스터클래스, DMZ Docs 강연 및 세미나, DMZ Docs 토크, 교실로 간 다큐:Docs for Edu 등이다. 야체크 페트리츠키를 비롯해 안제이 바이다 영화학교 출신인 폴란드의 감독과 촬영감독, 일본의 감독과 영화평론가, 미국의 프로듀서 등이 참여한다. 대구대 외국인 초빙교수(찰리 한)는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세계를 통해 미술과 다큐의 만남에 대해 강연한다.”

-관객을 위한 일반 행사는?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가 많다. ‘DMZ 와인시네마열차’를 운행하고 ‘DMZ 평화자전거행진’을 갖는다. ‘김중만 DMZ people 사진전’ ‘Book·Film페스티벌-필리핀의 날’ 등도 열린다. 사진전 수익금은 대성동 마을에 기부한다. 필리핀의 날에서는 필리핀 다큐와 전통 공연 등을 감상하고 전통 문화도 체험할 수 있다. ‘DMZ 문화의 Zone’도 마련하고 거리의 악사 공연도 갖는다.”

-3년만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고 했다.
“첫 회에 자원봉사자 60명을 뽑는데 미달됐다. 1차에 30명, 추가 모집에 28명이 응모했다. 나와 집행위원이 한 명씩 보태 60명을 채웠다. 반면 올해에는 580명이 응모했다. 제주와 일본에서도 왔다. 130명을 선발했다. 출품작이 해마다 늘고 있고 우수 작품 초청에 따른 어려움이 없다. 처음에 집행위원장을 맡았을 때 ‘배우가 무슨…?’ 하며 부정적으로 보거나 아예 관심이 없었다. 지자체의 이벤트로 보는 이들도 많았다. 이런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맞서 좋은 작품을 초청·상영하고 지원한 결과 국내외에서 진정성을 인정받고 있다.”

-제작지원 프로그램 성과는 어떤가.
“기대 이상이다. <두 개의 문> <어머니> 등이 대표적인 지원작이다. <두 개의 문>은 올해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극장에서도 7만여 명이 관람할 정도로 이례적인 흥행기록을 세웠다. 올해에는 신설한 ‘BCPF다큐펀드’를 포함해 총 1억원을 지원한다. ‘신진 다큐멘터리 작가 제작지원’, 부산국제영화제 AND와 함께 아시아 다큐멘터리를 지원하는 ‘DMZ펀드’ 등을 통해 국내외 우수 다큐 발굴과 제작 활성화에 앞장선다.”

 

-트레일러에 출연했다.
“대중과의 소통을 궁리하다가 아이디어를 내고 출연도 했다. 수많은 사연이 오가는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소통에 대해 넋두리를 하는 남자로 나온다. 다큐영화제 성격에 맞춰 실제로 소주를 마시면서 찍었다. 올해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베니스 데이즈’ 부문에 초청받아 ‘퀴어 라이온’상을 받은 <무게>(가제)의 전규환 감독이 연출했다.  전 감독은 나와 설경구가 신인일 때 우리들 매니저였다. 뒤늦게 <모차르트 타운>(2008)으로 데뷔, <애니멀 타운>(2009) <댄스타운>(2010) <바라나시>(2011) <무게> 등을 연출했다. 전세계 영화계가 주목하는 대단한 감독이다.”

-<무게>는 어떤 작품인가.
“인간이 짊어지는 삶의 무게를 절묘한 캐릭터와 독보적 영상을 통해 담아낸 재미있는 예술영화다. 내가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경기영상위원회에서 출자·투자했다.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신체장애인 역을 맡았다.”


 

-전수일 감독의 <콘돌은 날아가고>에도 출연했다.
“한 사제의 육체적·정신적 시련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성찰에 대해 조명한 휴먼 드라마다. <콘돌은… > <무게>, 둘 다 초저예산 독립영화다. 작품·오락성을 갖춘 상업영화도 좋지만 독립영화는 배우로서 원래 내 모습을 찾게 해준다. 오는 11월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연극을 올릴 예정이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 경기영상위원회 조직위원장, 경기도 문화의 전당 이사장, 성신여대 부교수…. 하는 일이 많다는 데 대해 조 위원장은 “연기처럼 일로 여기지 않고 열심히 즐긴다”고 했다. “운동선수들이 경기하면서 일한다고 하느냐”며 “열심히 즐기다보면 의미와 보람도 커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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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은 연극배우 출신 영화배우를 대표한다. 최근 <도둑들>로 ‘1000만 영화’ 주인공 대열에 합류했다. <타짜>의 조연으로 주목받기 시작, 첫 주연작 <즐거운 인생>을 필두로 <추격자> <거북이 달린다> <전우치> <황해> <완득이> 등을 통해 남다른 연기력과 흥행력을 인정받아 왔다. 요즘 임순례 감독의 <남쪽으로 튀어>를 찍고 있다.

 

배우의 길은 연기력과 흥행성적에 좌우된다. 김윤석(44)은 연기력은 물론 남다른 흥행성적을 낸 최고의 배우로 손꼽힌다. <즐거운 인생>(2007)으로 126만3835명, <추격자>(2008)로 507만1619명, <거북이 달린다>(2009)로 305만9812명, <전우치>(2009)로 613만6928명, <황해>(2010)로 216만7426명, <완득이>(2011)로 531만502명, <도둑들>로 1112만7671명(8월 19일 현재) 등 이제까지 3413만7793명을 동원했다. 최근 5년 동안 이같은 성적을 거둔 배우는 김윤석이 유일하다.

 

■부산으로 돌아가 라이브 카페 등 운영
살다보면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던 것에 회의를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이 개인이 아니라 구조적인 데 있다고, 시간을 유예시킨다고 달라질 것 같지 않다고 여겨질 때 용기있는 사람들은 모험을 감행한다. 김윤석이 그랬다. 30대 초반에 배우생활을 접고 부산으로 돌아가 이때부터 5년간 연극·영화와 인연을 맺지 않았다.


김윤석은 “연극이라는 것 자체가 가지는 속성에 대해 회의가 생겼다”고 했다. “공연은 필름으로 남지 않고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회의가 짙게 밀려왔고, 내가 추구하는 것 때문에 부모·형제와 주변 사람들이 받는 고통도 무시하기 힘들더라”고 했다. “한번 생각을 바꾸니까 연기를 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어 배우 생활을 접었다”고 털어놨다.

경제적인 문제도 적지 않았다. 연극 한 편 올리는 데 걸리는 기간은 3개월 정도인데 수입은 50만 원에 불과했다. 한 달에 50만 원이 아니라 세 달에 50만 원이어서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무대에서 느끼는 희열로 심신의 고단함을 달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다시 부산에 둥지를 튼 김윤석은 지인의 부탁으로 라이브 재즈카페를 봐주기도 했다. 음악과 술에 취해 살면서 처음에는 좋았다. 사람들에 치이는 것도 참을만 했다. 그런데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었다. 장사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문제를 떠나 매일 밤 술을 마셔 얼굴은 늘 붉었고 살이 퉁퉁하게 쪘다. 몸도 풍선처럼 부풀었다. 옷 사이즈가 어마어마하게 늘 정도로. 김윤석은 “30대 초반인데 거의 반평생 산 사람의 모습이었고, 청바지 뒷주머니에 현금이 가득 든 지갑을 넣었을 때 뒤태가 가관이었다”며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가차 없이 접었다”고 털어놨다.

 

 

■“배우가 뭐해, 배우는 연기해야 돼”
자신의 꿈을 격려해 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 건 복이다. 부산에 있는 동안 김윤석은 종종 김해가 고향인 송강호의 전화를 받았다. “배우가 연기 안 하고 뭐 하고 있느냐?” “서울로 와서 다시 연기를 하라….”

김윤석은 송강호의 말처럼 다시 연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배우로 생존하면서 생활도 해야 하는, 그 고난한 삶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게 망설여졌다. 낙향할 때보다 더 뜨거운 용기를 필요로 했다. 한 가닥 남아있는 자존심도 걸림돌이었다.


 

자신과의 싸움이 계속 됐다. 현재의 삶에 드리운 빨간불을 목격하는 나날이 계속되면서 달라져야 한다는 절박감에 휩싸였다. ‘네 젊음을 어디에 던지고 싶은가?’

 

대답은 연기였다. 묻고 또 물어도 정녕 하고 싶은 건 연기였다. 다시 한 번 가보자, 미련 없이 달려들어 보자고 마음먹고 새 세기가 시작될 즈음 짐을 쌌다. 친분이 있는 극단 ‘학전’을 찾아가 뮤지컬 <의형제> 등에 출연했다.

                     <범죄의 재구성>(왼쪽)과 <타짜>(오른쪽)의 김윤석.

 

<의형제>는 한국전쟁부터 1970년대 말을 배경으로 쌍둥이 형제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렸다. ‘꼴통’ 역을 맡은 김윤석은 이 작품으로 전윤수·최동훈 감독, 배우 조승우·방주란 등과 남다른 인연을 얻었다. <의형제>를 관람한 전윤수 감독의 <베사메무초>(2001)에 ‘집달관1’로 출연해 영화와 인연을 맺었고 최동훈 감독의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2004)과 빅히트작 <타짜>(2006)에 각각 ‘이 형사’와 ‘아귀’로 등장해 주목을 끌었다. <의형제>에서 해설자이자 걸인으로 출연한 조승우와 <타짜>에서 호흡을 맞췄고, ‘어머니’ 역을 맡아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방주란과 2002년 결혼해 두 아이를 두고 있다.

 

■평생 갈 길, 거북이 걸음으로 정진

필연은 우연에서 출발한다. 충북 단양이 고향인 김윤석은 1986년 부산 동의대학교 독어독문학과 1학년 2학기 때 연극과 우연히 인연을 맺었다. 민주화 투쟁으로 휴교·휴강이 잇따라 입대를 염두에 뒀던 그는 어느 날 야외에서 극예술동호회 소속 교우 몇 명이 모여 연극 연습을 하는 걸 보고, 그 모습과 열정에 매료됐다. 곧바로 입회,  <색시공> 등에 출연했다.  2학년 때에는 기성 극단 무대에도 뛰어들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에도 출연했다. 전공 수업은 아랑곳 않고 연극에 몰두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혈혈단신으로 상경, 소극장 연극의 메카로 손꼽히는 ‘연우무대’를 찾아갔다. 여느 극단과 달리 연우무대는 단원제가 아니고, 워크숍 공연도 갖지 않아 입단이 불가능했다. 김윤석은 그럼에도 무작장 청소부터 시작했다. 언젠가는 받아주겠거니 하고.

 

이때 같은 처지의 송강호를 만났다. 부산에서 연우무대의 <최선생> 공연을 보고 무작정 상경한 송강호를 만나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면서 배우의 꿈을 키웠다. 연우무대의 <국물 있사옵니다>(1993)를 필두로 <여성반란> <지젤> <자전거>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 등에 함께 출연했다. 장현성·설경구·황정민·조승우와 함께  극단 학전의 ‘독수리 5형제’로 불리면서 배우와 스태프로 땀을 흘렸다. 대개 그러하듯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고 입장권도 팔았다.

김윤석은 “학전의 김민기 선생님이 멘토”라며 “학전에서 3년간 연기를 하면서 연출부로도 뛰었다”고 했다. “연극은 종합예술이자 노동”이라며 “전방위로 달리고 또 달리면서 완성을 추구하다 보면 정신적·육체적 거품이 빠지면서 진정성을 갖게 되고 그것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근원으로 본다”고 했다.

 

송강호·설경구·황정민·조승우 등이 영화계에서 먼저 인정을 받을 때 ‘조바심이 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바로 그 조바심이 사람을 망치게 한다”고 답했다. “평생을 할 일인데 조금 빠르거나 늦는 게 무슨 대수겠느냐”며 “관건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온전히 잘 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고 했다.

연기력이 힘이다. 인내로 정진. 김윤석이 그랬다. 김윤석이 달린다. 거북이 걸음으로.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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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56). 연극배우이자 연출가, 최근 창간 28주년을 맞은 공연예술 전문지 <월간객석> 발행인이다. 2년 전부터 영국에서 뮤지컬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오는 26일에는 주인공을 맡은 영화 <봄, 눈>(감독 김태균)을 내놓는다. 자청해서 완전 삭발을 하는 등 열연을 펼친 그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뮤지컬 <톱 햇>(Top Hat)과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를 올릴 예정이다. 이후에 귀국, 국내 활동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윤석화의 열정 넘치는 삶을 소개한다.

 

 
-<봄, 눈>은 어떤 영화인지요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네 일상의 소중한 기적을 그린 영화예요. 원래 제목은 <눈물이 아름다워>인데 제가 바꾸자고 했어요. 눈물이 아름답다는 걸 믿지만 ‘우는 영화’라는 식상한 느낌을 지레 줄 것 같아서. 극중에 나오는 노래 <봄날은 간다>가 떠올라 <봄날이 온다, 눈물이 아름다워>로 하자고 했고 이를 줄여 <봄, 눈>이 됐어요. 실제로 고난과 슬픔이 짙은 날에도 봄은 오지요. 눈물은 정화·치유·회복의 힘을 지녔고. <봄, 눈>에서 봄은 엄마의 마지막 봄과 남은 가족의 새 봄이고, 눈은 눈물(Tear)이고 눈(Snow)이기도 해요. <봄, 눈>은 한 가족을 중심으로 그런 이야기를 담았어요.”

-영국에서 출연제의를 받았는데요.
“제의를 받고 저도 정말 의아했어요. 왜 나지? 영국에 있는데? 한국에 ‘순옥’ 역할을 잘해낼 배우들이 많은데? 그리고 나름 헤아려 본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 강행을 했지만.”

-언제 받았나요.
“작년 가을이에요. 제가 연출한 연극 <나는 너다>(2011)에 출연한 후배에게 먼저 연락을 받았고 설마 했는데 실제로 시나리오를 보내 왔더군요. 이메일로. ‘1년 365일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어스름 속 새벽 첫 차를 타고 일을 나가는 어머니들께 바친다’는 시나리오를 읽고 진심을 느꼈어요. 어떤 감독인지 궁금해 영국으로 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죠. 못 올 거라고 예상하고. 그런데 일주일 뒤에 오셨어요. 4박5일 일정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와 지향점이 같아 영화의 진실성을 잘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김태균 감독은 윤석화 캐스팅에 대해 “예술적 직감”이라고 했다. “소재가 통속적인데 흔히 예상되는 여배우가 출연하면 더욱 차별화가 안 될 것 같아 고민하던 중 아내가 윤석화 씨를 추천했다”며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확신이 섰다”고 했다. “윤석화 씨가 하지 않으면 연출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뜻이 통했다”고 덧붙였다.

 

-유사 소재 영화가 적지 않은데요.
“결정 당시 제가 봤거나 들은 다른 영화와 비교하지 않았어요. 이 영화 자체로 의미가 있으니까. 배우로서 검토하는 방법이 다르고, 감성이 다르고, 그에 따라 관객들 느낌도 다를 거니까. 결정하고 나서 감독, 제작진과 유사 영화를 놓고 이야기를 폭넓게 나눴는데 그때에도 우리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봤어요.”


-실제로 완전 삭발을 했습니다.
“감독은 가발을 쓰자고 했는데 제가 삭발하겠다고 했죠. 배역을 제대로 소화하고 싶고, 고통을 온전히 표현하고 싶어서.”
항암제 치료를 받는 순옥은 머리를 감다가 머리카락이 힘없이 뭉텅이 채 빠지는 걸 보고 머리를 자른다. 공기조차 숨죽이고 있는 듯한 침묵 속에서 들리는 건 서늘한 가위 소리 뿐. 이어 가위질 사이사이에 순옥의 신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이 신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서로운 울음으로 변한다.

 

-현장 상황이 어땠나요.
“엔지가 나면 안 되니까 현장에 긴장감이 팽배했는데 새삼 배우가 거룩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김태균 감독과 스태프, 후배 배우들이 모두 울었어요. 저도 덩달아 울었고…. 저희 엄마가 암으로 4개월을 선고받았는데 15년을 살다가 돌아가셨어요. <봄, 눈> 하면서 세상에 안 계신,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놓고 가신 엄마 생각 많이 했죠. 미안하고 고마웠어요. ‘순옥’도 그래요. 사랑스러운 여자예요. 우리들의 엄마죠. 지금 저는 두 아이의 엄마인데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이어서 더욱더 순옥이처럼 잘, 열심히 살다가 새로운 봄의 소망과 기적을 남겨주고 세상을 떠났으면 해요.”

-세 번째 삭발인데요.
“연극 <덕혜옹주>(1995)와 <위트>(2005)에서 삭발했죠. <덕혜옹주>에선 옹주가 정신병원에서 겪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위트>에서는 난소암으로 죽어가는 영문학과 교수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려고 깎았어요. <덕혜옹주> 때 신혼이어서 남편에게 미안했죠. <위트> 때에는 자긍심과 연민을 느꼈고. 이번에는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는지 걱정스러웠지만 배우로서 쓰일 수 있다는 데 감사했어요.”

-<레테의 연가>(1986) 때 아쉬움이 이번에 열정을 불사른 동기가 됐는지요.
“저는 <레테의 연가>를 제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계약 사항과 달리 후시녹음 때 성우가 제 역을 했어요. 관객들이 어떻게 봤든 제가 한 역은 제가 아니에요. <봄, 눈>은 그 자체로 열정을 불사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에요. 제 마음에 들어서 제 의지로 선택했고 출연·제작진과 충분한 교류 아래 신뢰감을 바탕으로 완성한 저의 영화 데뷔작이에요.”

 

-<봄, 눈>에 앞서 출연제의를 받은 영화는.
“여러 편을 받았죠. 그 가운데 두 편은 하려고 했는데 일정 등이 맞지 않아 못했어요. 한국영화는 거의 다 봐요. 많이 다양해지기는 했지만 중장년층 배우들이 연기하고 동년배들이 볼만한 영화가 드물어 많이 아쉬워요. 앞으로 제가 확신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지나가는 할머니도, 조그만 가게 주인 역할이어도 할 거예요. 좋은 시나리오가 있으면 감독에게 연출도 의뢰하고. 좋은 영화를 함께 만든다는 기쁨을 나누고 싶거든요.”

-영국 활동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요.
“재작년 10월 팀 라이스를 만난 게 계기예요. 뮤지컬 <에비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아이다> 등 굵직한 작품의 작사가예요. 그와 작품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늙기 전에 영국 런던의 웨스트엔드에서 경험과 실력을 쌓자고 결심, 2년 예정으로 들어갔죠.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는데 그럴수록 물러서지 않았어요. 제 바이오그래피를 인정하든 않든, 동양인 여자라고 무시하든 말든,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달려들었고 거물급 제작자 리맨지스에게 인정받으면서 프로듀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요.”

지난해 7월 연극 <여정의 끝>으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고, 오는 27일부터 뮤지컬 <톱햇>을 올린다. 관객 반응에 따라 폐막하는 오픈런(Open Run) 방식으로. 그리고 오는 11월에는 뮤지컬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공연할 예정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 여름에는 귀국, 연극을 공연을 필두로 국내 활동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배우, 연출가, 프로듀서, 공연예술 전문지 발행인…. 윤석화는 “언제까지나 뜨거운, 영원한 현역으로 남고 싶다”고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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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성하(45)가 <화차>(감독 변영주)로 질주하고 있다. <화차>는 그가 영화와 인연을 맺은 지 15년여 만에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 지난 3월 8일 개봉, 24일 현재 200만9185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관람하는 등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택시 운전수, 배추 장사 등을 하면서 연기를 포기하지 않은 그는 ‘한 우물을 10년 이상 파면 반드시 생수가 나온다’는 경구를 되새기게 해준다.

<화차>(火車)는 결혼을 앞두고 사라진 여인(김민희)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조성하는 약혼녀를 찾아나선 남자(이선균)의 사촌형으로 출연했다. 비리 혐의로 옷을 벗은 전직 형사, 백수로 지내며 울분을 삼키는 인물이다. 마지못해 동생을 돕던 그는 전직 형사의 직감과 실력을 발휘해 ‘화차’(지옥행 불수레) 같은 여인의 충격적 삶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밝혀낸다. 

-<화차>의 어떤 점을 높이 샀는지요.
“출연작을 정할 때 가장 우선하는 게 작품이 지닌 힘이에요. 관객분들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의미있게 그렸는지를 중요하게 여겨요. <화차>는 소재는 무겁지만 그것을 영화적으로 흥미롭게 풀어냈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점이 좋았어요.”

-맡을 역할은 어땠나요.
“재미있는, 이 시점에서 해볼 만한,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대왕세종> <성균관스캔들> <욕망의 불꽃> 등 방송을 통해 인지도가 올라갔어요. 주로 신분이 높은, 많은 걸 갖춘, 번듯한 인물을 맡았죠. <화차>의 ‘종근’은 그 인물들과 상반돼요. 아무 것도 갖지 못한, 보잘 것 없는, 백수예요. 이렇게 풀어지고 망가진 가운데 바뀌어가는 인물이어서 도전하고, 해내고 싶었어요.”

-실제 백수시절 경험을 끌어왔는지요.
“연기할 때 저는 제가 맡은 캐릭터에 다가가요. 제게로 끌어오지 않아요. 3년쯤 ‘방콕’을 했으니까, 제 안에 있는 거니까, 그 시절 경험이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됐겠지만 그것 보다는 시나리오 속으로 들어가 ‘종근’이가, 바로 그 인물이 되려고 노력했죠.”

-배우로서 <화차>가 갖는 의미는 뭔가요.

“영화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이 <화차>예요. 캐릭터 영역을 넓힌 영화이기도 하고. 주연 배우로 팬·감독·작가 분들에게 조성하는 이런 면모의 역할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봐요.”

조성하는 배우로서 외모와 눈빛이 양가적인 매력을 지녔다. 밝은가 하면 어둡다. 냉정하고 날카로워 보이는가 하면 따뜻하고 우수 어려 보인다. 어떤 표정을 짓지 않아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떻게 건드리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사연을 봇물처럼 쏟아낼 듯하다. ‘꿀성대’라는 애칭이 말해주듯 목소리 또한 미성이라는 장점을 갖췄다.

-어떤 작품을 우선 하고 싶은지요.
“멜로에요. 40대 중년의 그들다운 사랑 이야기로 관객분들과 공감을 나누고 싶어요. 양조위 같은 느낌의 배우로. 중년 관객분들이 많아져 기획·제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봐요. 기회가 주어질는지 기다려 봐야죠.”

-<색,계>의 양조위인가요.

“<색,계> <화양연화>, <무간도>에도 멜코 코드가 있죠. <황해>와 <거미숲>에서 센 노출을 한 적이 있어요. 노출에서 중요한 건 그 장면의 절대성 여부예요. 이야기의 흐름상 절대성이 있으면 당연히 해야죠. 배우로서 해야 할 연기의 하나니까.”

많은 배우들이 그렇듯 조성하 역시 시작은 미미했다. 서울예대 연극과 85학번인 그는 졸업 후 롯데월드와 극단(전설)에서 뮤지컬·연극 배우로 활동했고, 영화는 이민용 감독의 <인샬라>(1996)로 인연을 맺었다. 북한 외교부 무관 ‘한승엽’(최민수)이 구출해 내는, 대사가 몇 마디밖에 없는 병사로 출연했다.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까지 가 배역 소화 외 스태프 일도 거들었다. 그리고 김태균 감독의 <화산고>(2001)에 ‘국어교사’로 출연했고 박경희 감독의 <미소>(2003)에서 주연급 조연을 맡으면서 본격 활동에 나섰다.

-배우는 언제부터 하려고 했나요.

“고등학교 때 연극반 활동을 했어요. 선배들이 미팅을 많이 시켜준다는 말에 끌려. 그러다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으면서 ‘이게 내게 맞구나’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까지 개근상도 한 번 받은 적이 없는데 연기로 상을 연거푸 받았거든요.”

-한때 포기하려고 했다면서요.
“서른셋, 넷? 그때 그만두려고 했죠. 15년 이상 한 일을 포기하려니까 힘들었지만 가장의 소임을 해야 하는 당면 과제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저의 팬이었던 아내에게 프로포즈할 때 돈을 벌 재주는 없다고 고백했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그런데 집사람이 ‘배우 조성하를 보고 살아왔는데 포기하면 기댈 구석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영화·드라마쪽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했죠.”

더불어 택시 운전수도 했다. 로버트 드니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택시 드라이버>(1976)가 떠올라서였다. 주위의 권유로 배추 장사, 경보기 장사, 화분 장사 등도 했다.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장사를 하면서 ‘동업을 하자’거나 ‘독립할 수 있는 자금을 대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매번 사양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고 아내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여의도와 충무로를 꾸준히 찾았다. 영화 <집행자>(2009)의 연쇄살인마와 드라마 <성균관스캔들>(2010)의 정조대왕이 한 배우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넓은 연기력을 보여주면서 ‘연기파 배우’로 자리를 잡았다. <파수꾼>(2010) 등으로 각광받고 <황해>(2010)로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배역의 비중을 고려하는지요.
“주인공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연극계에서 영화계로 건너오면서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갖가지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소화하자는 게 배우로서의 목표예요. 예전보다 중년 배우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는 데 감사해요. 앞으로 더욱 그럴 수 있도록 일조를 하고 싶어요. 중요한 건 주연이냐 조연이냐가 아니에요. 배우로서 연기를 얼마나 즐기면서 하느냐, 작품 속에 깊이 녹아들어 관객분들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공감을 나누느냐가 소중해요.”

<화차> 이후에 소개될 영화는 <온전한 도시>(감독 김문흠) <오백만불의 사나이>(감독 김익로) <비상(飛上):태양 가까이>(감독 김동원) 등이다. 조성하는 10개의 에피소드가 하나의 축을 관통하는 이색 스릴러 <온전한 도시>에서는 택시 기사, 샐러리맨들의 돈에 얽힌 에피소드를 그린 코미디 <오백만불의 사나이>에서는 한 회사의 상무, 전투 조종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액션·드라마 <비상(飛上):태양 가까이>에서는 비행단장 역을 맡았다.

 조성하는 “뭐도 한 철이라는 말이 싫다”며 “앞으로 출연작을 더욱 신중하게 정하겠다”고 했다. “식상하다는 말이 들리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거북이처럼 성실하게 배우의 길을 가겠다”면서. 조성하, 그는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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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갑수(54)가 연극 <서울테러>를 연출했다. 연극을 한 지 35년 만에, 극단을 만든 지 13년 만에 처음으로. 일일연속극 <오늘만 깥아라>를 찍고 있고, 자동차 버라이어티 쇼 <탑 기어 코리아> 공동 MC도 맡고 있는 김갑수의 ‘배우세상’.



정범철 작 <서울테러>는 블랙 코미디다. 4년째 백수인 대학원 졸업생 등의 아픈 삶을 희비극으로 빚어냈다. 등장인물은 백수, 백수의 여자친구, 공장에 다니는 백수의 고교 동창, 중국집 배달원. 네 인물을 홍성인·최석준·우수정·이교엽 등 열두 명의 배우가 맡았다. 한 팀 구성원이 네 명, 세 팀이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김갑수가 창단한 극단 ‘배우세상’의 스물세 번째 정기공연작이자 2030 배우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다. 지난 2일 시작, 배우세상소극장(02-743-2274)에서 오픈 런(Open Run)으로 공연된다.


-연극 연출은 처음인데요.

“집사람 권유로 맡았어요. 연출도 연출이지만 젊은 단원들에게 연기를 제대로 가르쳐 주라고 하더군요. 선배로서, 연출로서, 극단 대표로서. 사실 가르칠 때 제일 좋은 방법은 작품을 실제로 함께하는 거예요. 그래서 달려들었어요.”

-연출 제의를 받은 건 처음이 아니죠.

“아뇨, 처음이에요. 간혹 연출 의향은 없느냐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그 때마다 배우로서 연기를 잘 하는 데에만 전념할 거라면서 손사래를 쳤어요. 이번에는 경험담 등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싶고,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도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수용했습니다.”



-연습은 얼마나 했나요.

“한 달 보름 정도. 본격적인 연습은 매일 오후 1시부터 10시까지 한 달이 좀 넘게 했어요.”

-출연진을 세 팀으로 구성했습니다.

“이번 공연의 특징 중 하나예요. 팀 별로 장기가 있어요. 개성도 다르고. 한 연극이지만 세 연극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세 팀을 꾸린 이유는.

“연극배우는 무대에서 극중인물의 삶을 살아요. 그 인물을 만드는 과정이 중요해요. 어떤 과정을 가졌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거든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세 팀을 꾸렸어요. 젊은 배우들이니까 다른 배우는 작품·인물·장면 분석을 어떻게 하는지, 연기는 같은지 다른지, 그런 점을 비교하고 참고하는 경험을 주자는 거죠. 그런 시간이 앞으로 배우로 살아가는 데 소중한 경험이 될 거니까. 그래서 다른 극단 소속 배우도 캐스팅했어요. 서로 자극받고 선의의 경쟁을 하도록.”

-장기 공연에도 좋겠네요.

“그럼요. 컨디션·매너리즘 등의 방해를 받지 않고 매회 최상의 공연을 보여줄 수 있어요. 사실 공연을 하다보면 무대에 오르고 싶지 않는 날이 있죠. 인간이다 보니. 그런 날은 안 하는 게 좋아요. 여건만 되면. 하고 싶지 않은 날과 기가 충만한 날의 공연은 차이가 나요. 완벽한 세 팀을 구성했으니까 다양한 방법으로 운영해볼 생각입니다.”



-연출 역점은 어디에 뒀는지요.

“왜 이렇게 저렇게 연기하는지 정확하게 해석하고 그에 따라 구체적인 연기를 하도록 했어요. 그래야 관객이 공감하니까.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걸 지양하고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했죠. 연기를 하는 배우 당사자의 해석이 중요하거든요.”

-연기할 때와 다른 매력은.

“처음이어서 잘 모르겠어요. 다만 연출의도가 배우를 통해 잘 살아 객석에서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날 때에는 기분이 좋아요. 이번 한 편으로 그치려고 했는데 2030 배우시리즈 중 어느 한 편을 또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갑수는 1977년 극단 ‘현대극장’ 연구생 1기로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극단 배우세상은 1997년 창단했다. <좋은 녀석들>(98) <물고기 남자>(99) <선우씨, 어디가세요?>(2008) <아름다운 인연>(08) <칼맨>(09) 등 창작극만 올려 왔다. 2006년 100석 규모의 소극장을 마련, 매년 2~4회의 정기공연을 갖고 있다.


“다른 일을 하다가 극장에 오면 마음이 차분해져요. 설레기도 하고. 극장을 다녀간 수많은 배우와 관객의 얼굴이 떠오르고 마음을 다지게 돼요.”



-극단 살림이 어렵지 않나요.

“어려워요. 흑자를 낸 적이 없으니까. 바깥에서 번 돈으로 꾸려오고 있는데 근래에 회의감이 좀 들었어요. 경제적인 면을 떠나 배우세상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작품이 뭔지, 몇 편인지, 배출한 걸출한 배우가 있는지, 열심히 최선을 다해왔는데…. 이번에 연출을 맡은 건 그 영향도 있어요. 직접 연출하고 가르쳐보자, 잘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방향을 제시해 보자, 다시 출발하자….”

김갑수는 오는 21일부터 방송되는 일일연속극 <오늘만 같아라>(MBC)와 자동차 버라이어티 쇼 <탑 기어 코리아>(XTM) 녹화 외 시간은 <서울테러>에 쏟고 있다. 김갑수는 “작지만 극장을 갖고 있어 오픈 런 공연 등을 할 수 있는 건 복”이라면서 “막을 올린 이후에 연습을 지도하고 공연을 모니터해 완성도를 계속 끌어올려가는 작업이 즐겁다”고 했다. “연극 외 활동이 재미있고 그런 경험이 연극과 배우세상을 통해 재창출된다”며 “배우세상에서 나와 단원들의 꿈을 영글고 싶다”고 기원했다. 

                                 김갑수는 동갑인 동료배우 현금숙씨와 1986년 결혼했다. 서울 정동의 마당 쎄실극장에서.
                                 연극 연출 데뷔는 아내가 먼저 했다. 고연옥 작 <일 주 일>(2010)을 연출, 거창국제연극제
                                 에 초청받았다. 부부는 딸 아리(22)를 두었다. 아리 양(사진 오른쪽, 지난 2일 개막 공연에
                                 참석한 '브아걸'의 가인·제아과 기념촬영을 했다)은 힙합 연습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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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안지혜·오인혜.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신인 여배우다. 레드카펫으로 화제,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만 부각됐지만 안지혜는 <검은 갈매기>, 오인혜는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 중 <미몽>에도 출연했다. 세 영화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소개됐다. 안양예고·경상대(이진주) 안양예고·국민대(안지혜) 동덕여대(오인혜)에서 각각 방송연예·연극·방송연예를 전공한 이들은 자부한다. “나는 배우다”.


이진주(34)·안지혜(32)·오인혜(27). 김태식·박철수 감독의 ‘릴레이 영화’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에서 함께한 이들은 “축제는 끝났다”면서 “레드카펫의 추억은 영원히 안녕하고 이제는 영화로 말하고 싶다”고 했다.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은 불륜으로 붉게 물드는 바캉스의 악몽과 검게 얼룩지는 결혼의 파국을 통해 인간의 욕망에 대해 조명했다. 이진주·안지혜는 ‘붉은 바캉스’(감독 김태식)에, 오인혜는 ‘검은 웨딩’(감독 박철수)에 출연했다.

-자신의 배역을 소개해 주시죠.
“바람피는 남편(조선묵)에게 앙갚음 하는 무서운 여자 ‘염복순’이에요(이진주)-6년을 사귄 유부남(조선묵)과 떠나기로 한 바캉스 못가고 복순씨에게도 당하는 여자 ‘희래’예요. 기쁠 희(喜) 올 래(來), 이름과 달리 곤욕을 치러요(안지혜)-대학교 스승인 ‘나’(조선묵)를 사랑하는 ‘그녀’예요. 나는 이혼남이에요. 엄밀히 불륜이 아니었는데 그녀가 결혼하면서 불륜관계가 돼요(오인혜)”
 



-어떻게 배역을 맡았나요.
“연예계에 발이 넓어요. 에이전시도 하고 있고. 디자이너 하용수 선생님 소개로 염복순 캐스팅을 도와주다가 제가 했어요. 모두들 사양하는 바람에, 우여곡절 끝에-캐스팅 디렉터 소개로 감독님을 뵙고 ‘빌어먹을 바캉스’(원제)의 희래를 원했어요. 감독님도 문 열고 들어오는데 딱 희래더래요-드라마 작가 언니 소개로 시나리오 읽었어요. 다음날 감독님 뵙고 결심했죠. 감독님이 추천해준 <엘레지> <안티 크라이스트>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등을 보고 1주일 만에 촬영에 들어갔고.”

-촬영은 얼마나 했는지요.
“20일? 보충촬영에 후시녹음 기간까지 더하면 한 달?-열흘이요-저는 5일간 찍었어요-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했잖아요. 카메라 울렁증이 있어 저는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감독님이 ‘보면 볼수록 니가 딱 염복순이래요’. 그런 차에 감독님이 대본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해보래요. 사진으로 찍어보겠다며. 부랴부랴 현장으로 가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 카메라도 돌린 거였어요. 저하고 동시녹음 감독님만 모른 채. 일종의 ‘몰카’였죠. 그렇게 5일간 찍은 걸 계기로 제가 한 거에요-영화상의 시(詩)도 언니가 직접 썼어요-‘다음 생애에는 꽃으로 태어날래요. 왜 안 예쁘게 태어나 힘들게 사는지. 다음 생애에는 잠깐 피고 지더라도 예쁘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라는 시에요. 실제 제 심경이에요. 욕도 저고요.”

-노출이 부담스럽지 않았나요.
“하기 전은 물론 할 때에도 실감하지 못했어요. 노출 자체보다 연기를 잘 해야한다는 데 몰두했으니까-그간 연극·뮤지컬·영화를 통해 꾸준히 활동해 왔고 나름 영역을 넓혀 왔어요. 통과의례라고 생각해요. 노출의 필연성, 시나리오 완성도, 감독님 필모그래피 등을 보고 결정하죠-노출 자체보다 노출 연기만 부각되는 게 더욱 힘들어요. 영화 전체를 봐줬으면 해요.”

안지혜는 “여배우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노출 연기로 트라우마랄까, 그런 데 시달릴 수 있다”면서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는 게 극복하는 한 방법일 것”이라고 했다. 이진주·오인혜는 “그럴 수 있도록 감독님들과 관객분들이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참석 소감은.
“박진희가 언니가 출연한 게 맞냐고 여덟 번이나 묻더군요. 하정우는 누구 따라왔느냐고 몇 번이나 묻고, (이)범수 오빠는 너의 이런 모습을 몰랐다고 하고. 배우가 된 걸 실감했어요-데뷔한 지 6년 됐어요. 초청받고 ‘이제 배우가 됐구나!’는 느낌이 들었죠.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과 <검은 갈매기> 시사회·GV에 참석하면서 내년에도 후내년에도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고-저도 처음이에요. 개막식 이후 3일 동안 하루에 한 끼밖에 못 먹었어요.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영원히 잊지 않고 배우로 살아가는 데 소중한 경험으로 삼자고 다짐했어요.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과 감독파티 등 여러 자리에서 뵌 분들처럼 오래도록 좋은 영화를 하자고 기원했죠. 영화가 좋아요.”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에서 이진주는 컬트적인 새디스트를 보란듯이 해냈다. 김태식 감독의 <웰컴 택시>를 비롯해 김태균 감독 등의 차기작 후보에 올라 있다. 일본 영화인들이 <혐오스런 마츠코 일생> 같은 작품을 기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지혜는 ‘캔디’적이면서 백치미도 지닌 기묘한 인물의 매력을 한껏 펼쳐냈다. 조만간 한 영화 출연이 확정될 전망이다. 오인혜는 사랑의 포로가 된 여인의 이성과 감성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미몽>에 주연인 성형외과 의사로 출연했고, 촬영을 앞둔 박철수 감독의 <생생활활>(Eating Talking Faucking)에 여주인공 기자로 출연한다. 드라마 <어미>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이진주는 캐스팅 에이전시를 하면서 압구정동에서 24시간 포장마차 ‘진주네 밥도둑’을 운영하고 있다. 5평에서 시작한 포차를 100평 규모로 키웠다. 안지혜는 쇼핑몰을 3년간 운영했다. 대학원 석사과정 휴학 중이다. 오인혜는 고교 졸업 후 2년 6개월여 직장생활을 했다. 이진주와 안지혜는 초등학생 때부터, 오인혜는 중학생 때부터 배우를 꿈꿨다. 꿈을 이룬 이들은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어떤 배우를 꿈꾸나요.
“캐릭터 배우로서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싶어요-많이 생각한 데에서 우러나는 깊은 연기로 작품을 빛내는 게 꿈이에요-배우인 게 자랑스러운 배우로 살아가는 게 목표예요.”

이들은 “부산에서 상처도 받았지만 나았다”고 했다. “또 아프겠지만 다시 나을 것이고 그렇게 배우의 길을 갈 것”이라면서. 이들의 말에 ‘아프니까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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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의성(45)이 다시 뛴다. 오는 9월 8일 개봉되는 홍상수 감독의 12번째 장편 <북촌 방향>을 필두로. 김의성은 홍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의 주인공. <북촌 방향>에서는 ‘베트남에서 사업하다 돌아온 전직 배우’ 역을 맡았다. 그는 실제로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다가 돌아왔다. 약 10년 만에. 김의성이 다시 쓰는 출사표. ‘끝날 때까지는 끝이 아니다!’


김의성은 서울대 경영학과 84학번이다. 1980~90년대 연극배우 출신 영화배우 1세대로 손꼽힌다. 1987년 대학 연극·탈춤반 출신으로 구성된 극단 ‘천지연’을 필두로 ‘학전’ ‘한양레파토리’ ‘한강’ ‘연우무대’ 등에서 활동했고, 영화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사진 아래) <억수탕> <바리케이트> 등으로 각광받았다.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맡는 등 90년대 중후반 최고의 배우로 손꼽혔다.


-언제 오셨나요-작년 여름에 왔어요-떠난 건 언제고요-2001년이요-연기가 싫어졌나요-그런 게 아니라 배우로서의 저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어요. 더 나아가지 못하고, 답보하고, 오히려 못 한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다른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공부든 뭐든 다른 길을 모색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베트남을 찾았다. 한류 붐이 이는 걸 확인, 2002년부터 한국영화 배급업을 시작했다.


-몇 편이나 배급했나요-<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등 서너 편을 했어요-성과는요-처음에는 괜찮은 편이었는데 점점 판권이 비싸지고 영화시장이 예상만큼 활성화 되지 않아 어려워졌죠-TV드라마도 만드셨는데-드라마 한류 붐이 이는데 맞춰 TV쪽으로 방향을 틀었죠. 한국 거 사다가 트는 것보다 아예 그 나라 콘텐츠를 만드는 걸로.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 등 시장조사를 먼저 했다. 한국 작가에게 극본을 맡기는 등 한국의 드라마 제작 노하우와 현지 인력의 접목을 꾀했다. 시트콤 <사랑의 꽃바구니>와 60분물 100부작 드라마 <무이응오가이>(고수의 향기) 등을 선보였다.


-<무이응오가이>는 대단했더군요-베트남에서 60분물 100부작 드라마는 <무이응오가이>가 처음이에요. 동시녹음, 실내 스튜디오 촬영, 뮤직비디오 스타일의 예고편 등도. 최고의 지상파 전국 방송국 HTV에서 방송, 외형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어요.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광고 수주 실적도 꽤 높았죠-후속작은-<무이응오가이>의 경우 3년간 준비해 2년간 방송했는데 법적·제도적 문제에 시달리면서 후속작은 기획단계에 중단했어요.


대신 <튀어> 등 연극 두 편을 내놓았다. 연출·제작하고 출연도 하면서 전면적으로 부딪쳤다. 관객들과 직접 대면하면서 재미와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외국인이란 한계와 심의 등 제도적 문제에 심신이 피곤했다. “이 노력이면 어디서든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모든 걸 접고 귀국행 비행기를 탔다.



-홍상수 감독과 연락하며 지냈나요-아뇨, 한 번도 연락한 적 없어요. 영화는 DVD로 빼놓지 않고 봤지만-<북촌 방향> 출연은-제일 친한 친구가 권해효예요. 해효랑 통화하는데 홍 감독님이랑 술 마시고 있다더군요. 그때 감독님을 다시 만났고 겨울에 하나 들어간다면서 함께하자고 하셨는데 그 작품이 바로 <북촌 방향>이에요.

<북촌 방향>은 영화감독이었던 ‘성준’과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더욱 순화된, 한층 도드라진 홍 감독 영화만의 재미와 주제를 만끽할 수 있다. 김의성은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다가 돌아온 전직 배우 ‘중원’이다. 성준이 데뷔작 이후의 영화에 자신을 안 써준 데 대해 서운한 감정을 토로하는 인물이다. 김의성은 유준상·김상중·송선미·김보경 등과 호흡을 맞췄다.


-연기력이 전혀 녹슬지 않았던데요-감사합니다. 오랜만인데 며칠 전에 찍고 또 찍는 것 같았어요. 10년 만에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내 모습이 좋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면서 더 계속 하자는 생각이 들더군요-며칠간 찍었나요-<북촌 방향> 촬영은 모두 7회차에 끝냈어요. 저는 세 번 나갔고. 현장이 포근했어요. 어머니의 품처럼-준비를 많이 했나요-아뇨, 망가진 상태여야 해 지금보다 5~6㎏ 더 찐 모습 그대로 나갔어요. 감독님은 현장에서 즉발성을 중요하게 여겨 뭔가를 준비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대사도 현장에서 주고요.


김의성은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해 “챕터가 있는 인생”이라며 “좀더 나은 나, 내가 아닌 나를 찾았다”고 되짚었다. 실제로 그는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에 입학한 뒤 연극반을 거쳐 극단에 입단, 남다른 삶을 영위했다. 정진영과 함께 2인극 <동팔이의 꿈>을 전국의 공장·학교를 순회하며 1년 동안 공연하는 등 문화운동에 앞장서고, 파업현장을 다니고, 영화배우로 이름을 날린 뒤 외국에서 사업가로 변신했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향후 계획은-지난 4월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임종 하루 전에 저보고 “재밌게 살아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더욱 다졌어요. 연기를 계속하겠다고. 그래서 몸도 단련하고 혼자 연기연습을 하면서 그림도 그리고 있어요-그림이요-아마추어예요. 관념을 투영하면서 고정관념을 버리는 데 좋더군요-요즘 한국영화를 진단한다면-<추격자> 등 젊은 감독들 역량이 대단해요. 홍 감독 영화는 뭐든지 하면서 즐기고 싶고, 봉준호·장준환… 감독 영화에 꼭 참여하고 싶어요.


김의성은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아 혼신을 불사르고 싶다”고 역설했다. “나이를 먹은 만큼 시야가 넓어지고, 살아온 삶이 녹아든 연기를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든다”면서 “신인의 자세로 충실히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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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nia 2011.09.24 13: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의성씨 한동안 영화에서 보지 못해 궁금했는데 다시 홍상수 감독 영화로 돌아왔다니 반갑군요

  2. goafrica 2012.06.17 1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축학개론을 보다가~~ 아!! 김의성이란 배우가 있었지! 했답니다.
    깊이있고, 개성강한 연기 보여주더니 어느날 사라져버린~~
    그래서 더욱 반가웠고, 그래서 더욱 기대하고 있습니다.
    스크린에서, TV에서 자주 그의 연기 만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