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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02 나는 로맨스, 너는 불륜?

                                          <마누라 죽이기>에 영화사 상무(왼쪽)로 출연했다. 영화사의 실질적 사장인
                                          '소영'(최진실)은 남편 '봉수'(박중훈)가 제작중인 영화의 여주인공(엄정화)과 
                                          불륜 관계인 걸 모른 채 청부살인업자(최종원)의 살해 위험에 시달린다. 

"베드신 해봤어?"
 단역 출연이 알려지면서 주위 분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베드신 찍는 거 현장에서 본 적 있냐"도 심심찮게 듣는 물음이다. 심지어 "강간하는 단역 필요하다고 하면 나 소개시켜줘" 하는 이들도 있었다. "잘 할 자신 있다"고 하던 그들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본인의 진의가 어떻든 출연을 유희로 여기고, 한때의 추억으로 삼으려는 것 같아, 나아가 기자의 출연도 진정성을 의심받는 듯해 심기가 불편했다.

초기에는 "영화기자가 영화에 출연하면 돼?" 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출연한 영화에 대해 객관적으로 리뷰를 쓸 수 있겠느냐"는 게 출연불가론을 펴는 이들의 요지였다. 일리가 없지 않아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그런데 출연불가론을 주장하던 이들 가운데 한 기자는 훗날 자신의 말을 스스로 뒤집었다. 자기도 출연을 감행했다. 한 편에 그치지 않고 몇 편을 더 했다. 그런 데에다 어느 날 자기가 나보다 출연작 편수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지만 흥행성적은 앞선다고 자랑하기까지 했다.

그때 떠오른 말이 있다. "내가 하는 건 로맨스고 남이 하는 건 불륜"이란 말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말도 떠올랐다. 비난을 하지 말던지, 출연을 하지 말던지, 그런 데에다 흥행성적이 나보다 낫다고...?

어쨌든 기자의 첫 흥행 성공작은 강우석 감독의 <마누라 죽이기>(1994ㆍ서울관객 34만4900명-한국영화연감 기준)다. 400만명 이상이 관람할 정도로 크게 성공한 첫 작품은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2001ㆍ전국관객 488만2495명-배급사 집계 기준)다.

<마누라 죽이기>와 <엽기적인 그녀>는 출연장면을 소개할 때 가장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작품이다. 두 작품의 소재는 대조적이다. <마누라 죽이기>는 불륜, <엽기적인 그녀>는 지고지순한 사랑에 따른 갖가지 에피소드가 영화를 관통한다.

<마누라 죽이기>에는 '박봉수'(박중훈) '장소영'(최진실) 부부가 운영하는 영화사의 상무로 출연했다. 극 초반 박봉수 사장에게 달려가 장소영 실장이 쓰러졌다고 알리는 장면을 비롯해 영화사 사무실, 강원도 속초 로케, 시사실 등 여러 장면에 나왔다. 이 가운데 속초에서 가진 극중 영화 로케이션 때 출연ㆍ제작진에게 숙소의 방을 배정하고 열쇠를 나눠주는 장면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다. 


이 영화는 기자의 네 번째 출연작이다. 앞서 세 작품의 흥행성적이 기대 이하에 그친 뒤 흥행을 염두에 두고 물색한 끝에 출연을 청탁한 첫 작품이기도 하다.


청탁은 
박중훈의 집들이에 초청받아 그 곳에서 만난 강우석 감독에게 직접 했다. 박중훈이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는 등 촬영 중 우여곡절을 겪은 이 영화는 예상한 대로 큰 성공을 거뒀다. 1994년 12월 17에 개봉, 34만4900명(서울 개봉관 기준)이 관람했다. <다이하드3> <포레스트 검프> 등에 이어 1995년 흥행순위 10위를 기록했다. 한국영화로는 37만6443명이 관람한 <닥터 봉>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엽기적인 그녀>는 영화사 '신씨네'의 신철 사장의 소개로 출연했다. 신철 사장은 기자와 동갑으로 그가 김의석 감독의 <결혼이야기>(1992)를 기획할 때부터 친했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이정학(오른쪽)과 함께 원조교제를 하
                                                     기 위해 어린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엽기적인 그녀>에는 '그녀'(전지현)와 '견우'(차태현)가 실랑이를 벌일 때 옆 테이블에서 원조교제를 하려고 여린 여성들을 유혹하는 중년남자로 나왔다. '그녀'의 간섭에 황급히 자리를 뜨는 두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등장했다.

                                  전지현과 <타이타닉>의 유명 장면 흉내를 냈다. 전지현이 누군가의 말을 듣
                                          느라 엉성한 장면에 그치고 말았다. 훗날 '일본의 전지현'으로 손꼽히는 아오이 
                                          유우가 <하나와 앨리스>를 선보일 때 인터뷰를 했다. <엽기적인 그녀>에 원조
                                          교제에 실패하는 중년남자로 출연했다는 말을 하면서 이런 표정을 지은 듯하다.
                                         
함께한 카메오는 이정학이다. 훗날 <각설탕> <그랑프리> 등을 제작한 그는 감독의 꿈을 접고 제작부를 거쳐 정선경ㆍ이태란 등의 매니저와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60여 편에 출연했고 조연까지 한 베테랑이다.

원조교제 실패 장면은 동숭동의 한 카페에서 찍었다. 촬영 당시 난 시나리오에 적혀 있는 조사 하나까지 틀리지 않기 위해 대사 암기에 전념했다. 반면 이정학은 대사는 다 외웠다면서 빈둥거렸다. 그런 그는 촬영이 시작된 뒤 멋지게 한 방을 날렸다. '그녀'가 “아저씨는 저 같은 딸도 없어요”라고 문책하자 그는 촬영용 콘티에 적혀 있는 “없다, 왜?”에 그치지 않고 “니가 하나 낳아주라”는 애드리브를 날린 것이다. 


그의 애드리브에 촬영장은 폭소가 만발했다. 그로 인해 엔지가 났지만 그의 애드리브는 즉각 수용됐다. 그런데 그가 날린 '니가 하나 낳아주라'는 애드리가 아니었다. 며칠 동안, 촬영장에서 와서까지 고민한 데 따른 산물이었다. 후배지만 주어진 역할 이상의 활약상을 보여준 그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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