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리(38)는 <박하사탕>(2000)으로 데뷔했다. <오아시스>(2002)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신인배우상)을 수상, 월드스타로 등극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연기상,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받은 뒤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는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옥관문화훈장도 받았다. <바람난 가족>(2003)으로 대종상영화제·시애틀국제영화제·대한민국 영화대상 등의 여우주연상, <하하하>(2009)로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분노의 윤리학>에 이어 <협상종결자> 개봉을 앞두고 있다.

 

■대학이냐, 오디션이냐
한 편의 영화(연극)가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 평범한 여고생이던 문소리가 배우가 된 것도 이에 해당한다.

<에쿠우스>. 문소리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연극이다. 신구·최민식이 주연을 맡았다. 1990년 여고 1학년 때 문소리는 이 연극을 본 뒤부터 배우를 동경했다. 1993년 성균관대 교육학과에 입학한 뒤 연극·국악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3학년 1학기 때에는 기성 극단 한강에 입단했다. 우편물 작업 등 사무보조를 하면서 청소도 했다.

그런 중 창작극 <교실 이데아>로 데뷔했다. 다른 배우들과 달리 연습이 한창 진행되던 중간에 들어갔다. 극중에서 배우들이 다루는 악기가 하모니카 등에 지나지 않아 보완이 필요했다. 문소리는 중학생 때부터 바이올린을 켤 줄 알았다. 덕분에 부잣집 여학생 역을 맡아 예상보다 빨리 무대에 섰다.

연극 공연 외 판소리·발레 등을 배우고 익히느라 문소리는 동기들보다 대학을 1년 반 늦게 졸업했다. 문소리는 지식과 실력을 쌓고 인맥을 넓히기 위해 서울예대 연극학과를 지망, 합격했다.

 

그 무렵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2000) 오디션에 경험 삼아 응모했다. 될 거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잇달아 예심을 통과, 고민에 빠졌다. 최종 합격이 불투명한 가운데 오디션을 포기해야 할지, 대학을 포기해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문소리는 고민 끝에 대학을 포기했다. 2~3개월이 걸린 오디션에 최종 합격, ‘영호’(설경구)의 첫사랑 ‘순임’ 역을 맡았다.

이창동 감독은 당시 남자주인공은 신인으로 하더라도 여자주인공은 유명 배우로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하지만 오디션 때 얼굴부터 목까지 붉어지며 연기하는 문소리가 적임자임을 굽히지 않았다. 만약 문소리가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면, 이 감독이 자신의 주장을 굽혔다면, 오늘의 문소리는 존재하지 않을지 모를 일이다.

■‘한공주’로 공주 등극
문소리는 <박하사탕>으로 데뷔한 뒤에도 충무로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블랙컷> <외계의 제19호 계획> <봄산에> <상암동 월드컵> <승부> 등 단편영화에 출연하거나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교사자격증이 있는 문소리는 이와 함께 한 복지관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장애인들을 가르쳤다. 초등학생 대상 한자교실 수업도 맡았다. <오아시스>의 여주인공 ‘한공주’ 역을 맡게 된 것은 이와 관련이 깊다.

한공주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한국은 물론 외국의 경우도 유명 여배우가 이런 배역을 해낸 전례가 없다. 이창동 감독은 유명 여배우의 출연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점을 감안, 문소리에게 6mm 비디오 카메라를 주고 2주 동안 연습하면서 그 과정을 찍어오라고 했다.

문소리는 <나의 왼발> 등 장애인이 나오는 비디오는 빼놓지 않고 관람하고, 방문을 잠그고 연습을 거듭했다. 눈을 돌리면 팔과 입이 풀리고, 몸이 되면 감정이입이 안 돼 애를 먹었다. 2주 뒤 오디션장에서는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카메라의 플레이 버튼을 못 누르고 그만 눈물을 쏟았다. 그러고는 못 하겠다면서 카메라를 들고 도망치듯 영화사를 나와 버렸다.

이 감독은 이때 <오아시스>를 덮어야 하나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여자로서, 여배우로서 문소리와 얘기를 나눠봐 달라고 오지혜에게 도움을 청했다. 오지혜는 신인에게 오디션 기회가 주어진 게 어딘데 거부하느냐고, 그런다고 자존심이 사느냐고 문소리를 나무랐다. 어설픈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던 문소리는 선배의 말에 자신이 부끄러웠고,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내놓았다. “해볼만 하다”는 오지혜의 말에 용기를 냈다.

문소리는 이후 2개월여 동안 연습에 몰두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또 읽었고 휠체어를 타고 거리로 나가 장애체험도 했다. 이어 6개월의 촬영기간에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살았다. 한공주가 일종의 사회부적응자 ‘홍종두’(설경구)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과일 깎는 칼로 손목을 그어 자살하는 장면 등을 놓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남성 중심적인 시각이 녹아들지 않도록 제작진과 논의를 많이 했다. 이 감독의 주문에 응하느라 실신 지경에 이를 만큼, 촬영을 모두 마쳤을 때에는 골반이 약간 뒤틀려 교정이 필요할 정도로 혼신을 다했다.

■“우리가 좋은 영화 만들어보자”
<분노의 윤리학>(감독 박명랑). 21일 개봉되는 문소리의 최근 영화다. 미모의 여대생 살인사건의 전말을 그린 블랙코미디이다. 나쁜 놈, 잔인한 놈, 찌질한 놈, 비겁한 놈, 그리고 단호한 여자가 얽히면서 드러나는 살인사건의 전모와 인간의 각기 다른 본색을 다뤘다.

이 영화는 문소리를 비롯해 유명 배우·스태프가 제작을 이끈 국내 최초의 작품이다. <부러진 화살>(감독 정지영)이 모든 배우·스태프의 러닝개런티 수용에 힘입어 저예산으로 제작된 데 반해 <분노의 윤리학>은 문소리·이제훈·조진웅·김태훈·곽도원과 김우형(촬영)·조화성(미술)·김선민(편집) 등 배우와 스태프가 의기투합, 지분 참여 형식으로 함께 제작을 주도했다. 참여한 배우들은 자신의 배역도 시나리오를 읽은 뒤에 스스로 정했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있는데 제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영화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재미있게 만들어 볼 방법이 없을는지….’

문소리가 지난해 초에 들은 말이다. 문소리는 호기심이 발동, 시나리오를 읽고 출연 의사를 밝혔다. 동료 배우·스태프들이 뜻을 함께하면서 국내 최초로 유명 배우·스태프가 제작을 주도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문소리는 “배역의 비중을 떠나 한 명의 관객으로서 보고 싶은 영화였다”며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들도 같은 생각이 들어서 함께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에도 이렇게 독특하고 재미있는 영화가 한 편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보고 역할을 골랐는데 신기하게도 주요 배우분들이 선택한 역할이 겹치지 않았고, 감독님 의견과 다르지 않았다”고 전했다.

문소리의 다음 영화는 <협상종결자>(감독 이승준)다. 남편의 정체를 모르는 비밀요원의 아내가 일급 첩보작전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박하사탕>과 <오아시스>에서 함께한 설경구 등과 호흡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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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60). 영화 <26년>의 ‘그 사람’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조 내관’이고 <도가니>의 ‘교장 형제’이다.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중퇴한 뒤 1976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뒤 주로 성우로 활동해 왔다. 지난해 8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출연한 영화 데뷔작 <도가니>부터 개성파 배우로 각광받고 있다. 예순 살에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그에게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를 들었다.

 

 

장광의 영화배우로서의 이력은 특별하다. 데뷔작 <도가니>(2011)와 올해 출연작 <광해, 왕이 된 남자> <내가 살인범이다> <26년> <음치클리닉> 등 다섯 편으로 2200만 명이 넘는 관객과 함께했다. <도가니>(감독 황동혁)는 466만2829명(이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광해, 왕이 된 남자>(〃 추창민)는 1229만4509명(이하 22일 현재), <내가 살인범이다>(〃 정병길)는 272만9551명, <26년>(〃 조근현)은 283만5450명, <음치클리닉>(〃 김진영)은 33만8131명이 관람했다. 다섯 편 가운데 네 편이 200만 명 이상이고, 한 편은 1000만 명이 넘는다.

-흥행 성적이 대단하다. 작품 선정 때 무엇을 중시하나.
“의미 있고 재미있는 작품을 좋아한다. ‘신인’이어서 거절할 입장이 아니지만 출연작을 정할 때 이 점을 중시한다. 운이 좋았고, 하나님이 인도해줬고, 함께한 배우·스태프 덕분에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현재 H스타 컴퍼니 소속이다. <26년> 촬영이 끝나갈 즈음 경합이 붙은 서너 군데 매니지먼트사 가운데 <광해, 왕이 된 남자> PD가 추천해 준 곳과 2개월 쯤 전에 계약을 했다.

-‘전두환’ 배역과 인연이 깊다.
“MBC드라마 <삼김시대>(1998)에서 전두환 역을 맡았다. 원래 56부작인데 김기팔 작가가 작고, 작가가 교체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26부작으로 종영되고 말았다. 큰 역을 맡은 것은 그때가 처음인데 연기가 자리를 잡을 즈음 끝나 못내 아쉬웠다. <제5공화국>(2005)에서 동국대 연극영화과 동기인 이덕화가 전두환 역을 맡아 이제는 끝났구나 했는데 <26년>이 들어와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제4공화국>(1995~96)에서는 정종준이 전두환 역을 맡았다. 그는 대머리 가발을 썼다. 장광은 이 드라마에 별을 두 개 단 소장으로 출연했다. 전두환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었다. 당시 연출을 맡은 고석만 PD(현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는 양쪽 다 전두환 같아 안 되겠다며 장광에게는 실내지만 모자를 쓰라고 했다. <삼김시대>를 연출하면서 장광을 전두환 역에 캐스팅했다.

 

-<광해~>로 다소 해소됐는데 다시 악역을 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는지.
“부담이라면 <도가니> 때가 컸다. 크리스천이어서 천하에 둘도 없는 악역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반면 이번에는 <삼김시대> 때 아쉬움을 해소하고 싶었다. 5·18 당시가 아니라 26년이 지난 뒤의 이야기여서 못 했던 부분도 새롭게 하고 싶었다. 2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니고 있는 남다른 담력과 기질이 보이도록 했다. 그것이 역으로 관객들에게는 더 밉살스럽게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좀 더 악독하고 잔인하게 표현하고 싶었는데 개인적으로 조금은 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촬영 앞두고 어떤 준비를 했나.
“많은 자료를 보면서 표정·눈빛·말투 등을 관찰하고 연습했다. 재판을 받을 당시 당당함 등을 캐릭터를 설정하는 데 참고했다. <삼김시대> 때와 달리 몇 편의 영화로 경험을 쌓은 뒤여서 조금은 더 자유롭게 연기했다.”

-기억에 남는 일화는.
“영화 막바지 맞는 장면에서 고생 좀 했다. 처음에는 보호대를 했는데 몸이 부어 보여 좀 빼자고 했다. 무술감독이 촬영할 때 보호대를 대지 않는 곳에 많이 맞는다고 말렸지만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는 후회했다. 얼마나 아픈지 저절로 비명을 질렀다. 감독이 ‘그 사람’은 비명을 안 지를 것 같다고 해서 꾹 참고 다시 찍었다. 한 번 맞을 걸 두 번 이상 맞았다. 개인적으로 죽어가는 경호실장(조덕제)을 발로 차버리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조덕제는 총탄 파편이 이마로 튀어 다쳤는데 엔지(N.G.)를 내지 않으려고 계속 연기를 했다. 링거를 맞아가며 촬영을 강행한 진구 등 최선을 다하는 배우·스태프들과 함께하면서 영화배우로서의 긍지와 보람을 다시 느꼈다.”

 

장광은 동국대 연극영화과 70학번이다.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 제대 후 1976년부터 극단 멕토에서 활동했다. 멕토의 <열 개의 인디안 인형>에 참여한 성우들의 대사 소화 능력을 보고 연기력을 배양하기 위한 일환으로 78년 동아방송에 성우로 입사했다. 80년 12월 언론통폐합으로 KBS에서 활동했다. 방송사와 극장 애니메이션 <슈렉> 시리즈의 ‘슈렉’ 등 그간 성우로 활동한 작품수가 A4용지로 10장이 넘는다. 극단 제작극회·현대극장 등의 무대에 서면서 영화 <휘파람 공주>(2002)에 한 장면만 나오는 ‘북한 간부, 단장’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도가니>의 ‘교장 형제’ 역할은 경쟁률이 엄청났다.
“800 대 1이라고 들었다. 당시 연기에 대한 갈증,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영화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시>(감독 이창동) <댄싱퀸>(〃 이석훈) 등 5~6편에서는 떨어졌다. <도가니> 오디션을 볼 때에만 해도 교장 형제 역에 캐스팅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미지와 나이가 맞고 성우·연극 경력이 보탬이 됐다고 본다. 그런데 정작 캐스팅된 뒤에는 갈등했다. 원작을 읽은 뒤에는 더했다. 하지만 배우가 되려면 해야 했다. 내가 안 하면 누군가가 할 것이고, 내가 더 돋보이게 하고 싶었다. 하기로 한 만큼 최선을 다했고, 배우로 이름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시나리오가 원작보다 다소 강렬함이 떨어졌고, 수위를 낮추느라 촬영한 섬뜩한 장면이 꽤 편집됐는데, 그럼에도 개봉 이후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 영상(영화)의 힘이 대단한 걸 새삼 실감했다. 나는 지탄의 대상이 됐지만 ‘도가니법’이 제정되는 데 일조하지 않았나 하는 데에서 보람을 느꼈다.”

-<광해~ >에서는 ‘하선’(이병헌)의 멘토 역할을 하는 ‘조 내관’으로 주목받았다.
“원래는 대감 가운데 한 명을 지망했다. ‘조 내관’을 제안받고 ‘하선’에게 도망가라고 하는 장면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감독의 의중과 달라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이불 속에서 조 내관의 대사를 되새기는데 감독이 원하는 게 와닿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 다시 오디션을 봤고, 감독이 90% 만족한다면서 10%는 현장에서 찾아내자고 하더라. 사실 이미 내정했는데 다시 오디션을 보겠다는 전화를 받고 이런 열정이라면 소화할 수 있겠다고 여겼다면서.”

촬영을 마친 <신세계>(감독 박훈정)에서 그는 이정재·최민식·황정민·송지효 등과 함께했다. 요즘 <은밀하게, 위대하게>(〃 장철수)를 찍고 있다. 김수현·박기웅·이현우·손현주·이채영 등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는 “아침마다 5㎞를 뛰고 영화를 예전과 달리 공부하는 자세로 많이 본다”면서 “대학에 입학하면서 꿈꾼 삶을 40여 년이 지난 뒤에 이룬 게 꿈만 같다”고 했다. “밤샘 작업을 해도 끄떡없다”며 “어떤 배역이든, 배역이 크든 적든 다양한 인물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그려내 오랫동안 관객과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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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영(42)은 연극배우로 데뷔, 영화배우로 각광받고 있다. <박봉곤 가출사건>(1996)의 단역으로 영화에 입문, <킬러들의 수다>(2001) 등을 거쳐 <아는 여자>(2004)부터 주연배우로 자리잡았다. <실미도>(2003)로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웰컴 투 동막골>(2005)과 <나의 결혼원정기>(2005)로 디렉터스 컷 올해의 남자연기상, <바르게 살자>(2007)로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남자배우상, <김씨 표류기>(2009)로 황금촬영상 남우주연상, <이끼>(2010)로 청룡영화상·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요즘 <내가 살인범이다>로 주목받고 있으며 최근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제목 미정) 촬영을 마쳤다. 다음 작품은 <AM 11:00> <방황하는 칼날> 등이다.


 

 
■‘지현’에서 ‘재영’으로
<내가 살인범이다>의 주인공 ‘최형구’는 한국영화에서 전례가 없는 형사다. 깡패 같은 형사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략적인 형사다. 그 지략이 상상을 초월한다. 공소시효가 끝나가는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을 구사한다.

 

지난달 <내가 살인범이다> 제작보고회와 기자시사회를 마친 뒤에 각본·연출을 맡은 정병길 감독은 최형구 역에 정재영을 놓고 썼다고, 캐스팅에 성공한 뒤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실제로 <내가 살인범이다>에서 정재영은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송강호), <공공의 적>의 ‘강철중’(설경구), <거북이 달린다>의 ‘조필성’(김윤석) 등을 아우르는 형사 캐릭터로 스크린을 감칠맛 나게 수놓았다.

 

<내가 살인범이다>는 정재영의 30번째 장편 영화다. 최형구는 그의 배우 인생에서 특별한 인물이다. 데뷔 이래 처음으로 맡은 본격 형사다. <이끼>에서 젊었을 때 잠시 형사였던 인물로, <바르게 살자>에서 은행강도를 가장한 순경이었던 그는 선량한 역보다 불량한 역을 많이 했다.

 

데뷔도 나쁜 남자로 했다. 1996년 <박봉곤 가출사건>(감독 김태균)에 ‘불량배’로 출연했다. ‘박봉곤’(심혜진)에게 기웃거리는 동네 건달이다. 1996년 <산부인과>(감독 박철수)에 의사 ‘정연’(황신혜)의 환자 남편, 1997년 <초록물고기>(감독 이창동)에 가수 ‘미애’(심혜진)가 출연하는 카바레에 술에 취한 ‘손님’으로 등장했다.

<박봉곤 가출사건>에는 황규덕 감독의 소개로 출연했다. 황 감독은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1990)에서 만났다. 이 영화에는 고교시절 연극반 지도교사의 소개로 출연했다. 엔드 크레디트에 ‘청소년 연기자’로 나온다. 본명(정지현)으로. <초록물고기>는 촬영 하루 전 날 연락을 받았다. 현장에서 본인이 나오는 장면만 기록된 이른바 ‘쪽대본’을 받았다. 정재영은 “옆모습만 조금 나온다”면서 “<박봉곤 가출사건> <산부인과> 때와 마찬가지로 카메라에 주인공이랑 함께 잡혀 잘리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박봉곤 가출사건>의 정재영(가운데). 박봉곤(심혜진)에게 추근대는 동네 불량배로 나왔다.

 

<초록물고기> 이후 1998년 <기막힌 사내들>(감독 장진)과 <조용한 가족>(감독 김지운), 1999년 <간첩 리철진>(감독 장진),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감독 류승완), <극단적 하루>(감독 장진), <공포택시>(감독 허승준) 등에 출연했다. <기막힌 사내들>에 ‘낯익은 기사’, <조용한 가족>에 ‘제비’, <간첩 리철진>에 ‘잔머리 택시강도’, 우정 출연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는 ‘성빈’(박성빈)의 형으로 등장했다.

 


정재영은 “당시에 오디션을 본 작품이 20편쯤 되는 것 같다”며 “한 편도 붙은 게 없다”고 털어놨다. “<삼인조>(감독 박찬욱)의 경우 ‘연기는 좋은데 이미지가 평범하다. 단역은 개성있게 생겨야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하도 떨어져 오디션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다”고 덧붙였다.


 

예명(정재영)은 <극단적 하루>부터 사용했다. <극단적 하루>에서는 청부 살인자의 매니저를 맡았다. 의뢰인들에게 ‘사다리 타기’로 살해 방법을 고르게 하는 인물이다. <공포택시>에는 여러 택시 기사 가운데 ‘논스탑’으로 출연했다. 정재영은 예명에 대해 “장모님이 사위 하는 일이 잘 되라는 바람을 담아 스님에게서 받아온 이름”이라고 했다. 2001년 신현준·신하균·원빈과 함께 공동주연을 맡은 <킬러들의 수다>(감독 장진)에 정재영은 사격의 불사신 ‘재영’으로 출연했다.

 

■“왜 이렇게 운이 없지?”
정재영은 고교시절 운동을 좋아했다. 3년 내내 복싱을 했고 야구·농구·축구 등 모든 운동을 좋아했다. 기자나 방송 프로듀서를 꿈꿨다. “선생님의 꼬임에 넘어가 연극반에서 활동했다”는 정재영은 처음으로 출연한 <봄날>로 동랑청소년연극제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받는 등 연기력을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1992년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 황정민·류승룡·임원희·신동엽·안재욱·최성국·최덕문 등과 함께 수학했다. 한 해 선배가 장진 감독. 졸업 후 장진 감독의 ‘문화창작집단 수다’에서 활동, 연극 <허탕> <박수칠 때 떠나라> <매직타임> 등에 출연했다. 안내상·이문식 등과 함께 <라이어> 초연 무대를 장식하기도 했다.

 

정재영은 연극을 하면서 충무로를 잇따라 두드렸지만 외면받기 일쑤였다. 정재영은 당시 조급했고 ‘왜 이렇게 운이 없지?’라고 불평도 많이 했다. 정재영은 “어느날 어머니가 ‘운이라는 것은 길을 열심히 가다보면 저절로 와서 탁 붙는 거다’라고 한 말이 가슴에 확 와닿았다”며 “그때부터 조급해 하지 않았다”고 했다.

영화 오디션마다 떨어져 빈둥거리던 20대 중반, 그는 자작 모노드라마를 즐겨 찍었다. 비디오카메라를 구입해 방 안 맞은 편에 켜놓곤 혼자서 연기수업을 했다. 한 캐릭터로 연기를 하다가 카메라 밖으로 숨고, 다른 캐릭터로 들어와 마구 주절거리고는 했다. 그 테이프 분량이 엄청났다. 정재영은 “결혼하기 전에 완전 폐기했다”며 “애드립은 그때 꽤 연구한 것 같다”고 기억했다. “내가 아는 한 정재영은 리액션이 최고로 좋은 배우”(감독 장진)라고 했듯 그의 장기로 손꼽히는 리액션도 그때 연마했다.


 

 

정재영의 출세작은 <아는 여자>(2004)다. 오진으로 암 선고를 받은 야구선수 ‘동치성’으로 출연해 이나영 등과 호흡을 맞췄다. <거룩한 계보>(2006)에도 호남 지방을 주름 잡는 조폭 ‘동치성’으로 등장, 정준호·류승룡 등과 함께했다. 정재영은 “<웰컴 투 동막골>에서도 이름이 처음에는 ‘동치성’이었다”며 “장 감독에게 바꿔달라고 해 ‘리수화’가 됐다”고 밝혔다.

정재영은 5년여 단역 생활을 거쳐 스타덤에 올랐다. 정재영은 “아내에게 서른다섯 살까지 해보고 안되면 포기하겠다 했다”면서 “하지만 실제로 그만 둘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주변에서 조금씩 배우로 보기 시작하는, 배우로 인정하는 것 같은 시선을 느낄 때 희망을 봤다”고 했다. “예전에는 ‘한 작품이라도 더 해야 되는데’ 였다면 지금은 ‘더 후퇴하면 안 되는데’로 고민이 바뀌었다”고 했다. “어떤 일이든 하다 보면 질리게 마련인데 ‘내가 처음에 이 일을 왜 했는지’를 떠올리고 ‘이게 나의 운명’이라는 마음으로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실미도>(1108만1000명) <웰컴 투 동막골>(800만8622명) <강철중 : 공공의 적 1-1>(430만670명) <신기전>(372만6134명) <이끼>(335만3897명) <킬러들의 수다>(225만4206명) <바르게 살자>(219만250명)…. 정재영의 흥행작이다. <내가 살인범이다>는 지난 8일 개봉, 26일 현재 215만8431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관람,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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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서 나름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국제영화제는 500여 개로 추산되고 있다. 이 가운데 음악영화제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전진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프로그래머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10여 개의 음악영화제가 개최되고 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유일하다.

 

‘시네 심포니’ ‘뮤직 인 사이트’ ‘주제와 변주’….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해외의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감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시네 심포니(Cine Symphony)는 음악을 소재로한 작품 또는 극 전개에 음악이 중요하게 사용된 외국영화로 엮는다. 영화의 재미와 음악의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장·단편 28편을 상영한다.

                 <코르넬리스>

장편 상영작은 12편이다. 이 가운데 <코르넬리스>(Cornels)는 덴마크의 국민가수 코르넬리스의 삶과 음악을 그렸다. <헝키 도리>(Hunky Dory)는 1970년대 영국의 한 학교를 무대로 뮤지컬 수업 이야기를 유쾌하게 다뤘다. <킬링 보노>(Killing Bono)는 세계적인 그룹 U2의 리더 보노의 고등학교 동창이 보노와 밴드로 경쟁하던 자신의 추억을 극화했다. <펑키타운>(Funkytown)은 쇼비지니스 업계의 이면을 파헤쳤고, <우드스탁 가는 길>(Frisson des Collines)은 지미 핸드릭스를 숭배한 나머지 무작정 우드스탁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마지막 오디션>

단편 상영작은 16편이다. 세 묶음으로 선보인다. 시네 심포니 단편1은 <마지막 오디션> <내 남자친구는 대머리> <피아노 조율사> 등 ‘18세관람가’ 작품 6편으로 엮는다. 단편2는 <듀엣> <축음기의 피아노 연주> 등 4편, 단편3은 <칼리지안즈-트럼펫의 전설, 어스킨 호킨스> <사랑의 밴드 결성기> <맨해튼 멜로디> <뮤지컬 근친상간> 등 6편으로 꾸민다. 단편 2와 3 등급은 ‘12세관람가’다.

뮤직 인 사이트(Music in Sight)에서는 각종 음악 다큐멘터리를 소개한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뛰어난 음악세계를 보여준 음악인 등에 대한 장·단편 다큐멘터리 20편을 상영한다.

                 <트루바두르>

장편 상영작은 12편이다. 이 가운데 <트루바두르>(Troubadours)는 LA에 위치한 전설적인 클럽 틀바두르를 무대로 제임스 테일러와 캐롤 킹이 화려한 시절을 함께 장식한 동료들에 대한 추억을 담았다. <LP마디아>(Vinylmania)는 LP음반을 수집하기 위해 세계 곳곳을 누비는 이들의 다양한 모습과 LP의 향수를 간직하고 사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모렌테>(Morente)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플라멩고 가수이자 음악가 가족의 가장인 엔리케 모렌테의 삶과 음악을 다뤘다. <레이 찰스, 아메리카>(Ray Charles America)는 미국을 대표하는 흑인가수 레이 찰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구차-트럼펫 페스티벌>

 

단편 상영작은 8편이다. 두 묶음으로 선보인다. 뮤직 인 사이트 단편1은 <구차-트럼펫 페스티벌> <기타리스트 넬스 클라인> 등 4편, 단편2는 <기타의 장인, 랜디 파슨스> <뉴욕 지하철의 예술가들> 등 4편이다. 모두 ‘전체관람가’ 등급이다.

‘주제와 변주’(Theme & Variations)는 매년 음악과 관련있는 하나의 주제를 선정, 음악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도모하는 영화로 구성한다. 올해에는 ‘비르투오소! 비르투오소!’라는 주제를 조명한다. 머레이 페라이어, 랑랑, 야샤 하이페츠, 캐슬린 페리어 등 세계 최고의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소개한다.

                  <머레이 페라이어-피안의 음악>

상영작은 <머레이 페라이어-피안의 음악> <랑랑의 예술> <야샤 하이페츠-신의 바이올린> <캐슬린 페리어의 삶과 예술> 등이다. 페라이어는 나이가 들수록 명상적인 연주로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중국의 랑랑의 현재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각광받고 있다. 하이페츠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페리어는 전화 교환원에서 최고의 알토로 변신했다.

 

제8회 제천국제영화제 상영작은 메가박스 제천, 청풍호반무대, 청풍호반 수상아트홀 등에서 볼 수 있다. 입장권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식 홈페이지(www.jimff.org)와 메가박스 제천 외부 주차장에 마련돼 있는 현장 매표소에서 구입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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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사회>(가제).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이지승 감독(42)이 연출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미국의 뉴욕대에서 영화이론을 전공한 이 감독은 <색즉시공> <청춘만화> <해운대> <통증> 등의 프로듀서로 활동했고, 영화진흥위원회 부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장편 총괄 책임 교수로 4년째 재직하고 있다. <공정사회>는 감독 데뷔작이다.

 

 

<공정사회>는 딸을 성폭행한 자를 응징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감독은 “3년쯤 전에 인터넷에 난 ‘딸 성폭행한 범인 직접 찾아낸 엄마의 40일 추적기-세상의 모든 엄마가 울었다’는 기사를 보고 만든 영화”라고 했다.

 

“그 엄마를 찾아가려고 했다가 그만뒀어요. 그 엄마에게 사건을 다시 상기시키는 게 마음에 걸리고, 영화적으로 구성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를 것 같아서. 그래서 국내외의 유사사건을 참조해 실제와 허구의 조화를 꾀했어요.”

시나리오는 지난해 연말부터 썼다.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으로 드라마를 구성했다. 올해 3월 말에 완성한 뒤 장영남·마동석·배성우·황태광 등을 캐스팅했다. 아역 이재희는 오디션을 통해 뽑았다. 장영남은 엄마, 마동석은 비리형사, 배성우는 장영남의 남편,  황태광은 범인, 이재희는 딸 역을 맡았다.

 

                  <공정사회>에서 장영남(왼쪽)은 딸 성폭행범을 직접 찾아내 응징하는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마동석(오른쪽)

                   은 장영남의 신고에 부실 수사를 하는 비리 형사로 출연, 장영남과 호흡을 맞췄다.

 
“예산을 짜보니까 10억원 이상이 필요하더군요. 오랜 경험상 대기업 투자를 받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출연·제작진에게 러닝캐런티로 하자고 했어요. 촬영·연출 계획서를 보여주면서. 모두들 기꺼이 동참해 줬고, 덕분에 5000만 원으로 가능했죠. 배우·스태프에게 큰 빚을 졌어요. 앞으로 갚을 수 있게 되었으면 해요.”

촬영은 지난 5월 17일부터 6월 4일까지 했다. 이 기간 중 촬영을 한 날은 9일이다. 뉴욕대 동문인 황기석 촬영감독과 논의, 두 대의 중소형 HD 카메라로 여느 영화 3~4일 간 촬영분을 하루에 마쳤다. 낮은 물론 밤 장면도 자연광을 이용했다. 이 감독은 “영상이 다소 투박하고 거칠 수밖에 없는 점이 스릴러 장르에 더 어울린다”며 “사실주의와 더불어 표현주의를 추구했다”고 밝혔다.

 

“하이라이트는 엄마가 범인에게 응징하는 거에요. 경찰의 부실수사 등으로 인해 더욱 상처를 받는 피해자들을 비롯해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풀었어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영화로는 가능하잖아요.”

이 감독은 태흥영화사 이태원 대표(74)의 셋째 아들이다. 태흥영화사는 <무릎과 무릎사이> <기쁜 우리 젊은 날> <아제아제 바라아제> <젊은날의 초상> <장군의 아들> <경마장 가는 길> <서편제> <화엄경> <태백산맥> <춘향뎐> <취화선> 등 38편(한국영상자료원 기준)을 제작해 1980~2000년대 한국영화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한국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인 대표적인 영화사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극력 반대하셨어요. 아버지는 무척 힘들 거라고 하셨고. 아버지가 하신 말씀의 의미를 대학에 들어가서야 알았어요. 누구의 아들이란 점 때문에 정말 힘들었거든요. 뉴욕대에서 영화이론을 전공해 교수를 지망하고, 귀국 후 프리랜서로 활동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현장 데뷔는 미국에서 했다. 박사과정을 앞두고 뉴욕에서 찍은 김혜수·금성무·미라 소르비노 주연 <투 타이어드 투 다이>(감독 진원석), 데이비드 맥기니스 주연 <컷 런스 딥>(감독 이재한)에서 프로듀서를 맡았다. 진·이 감독의 요청을 받아들여. 귀국한 뒤 태흥영화사의 <세븐틴> <세기말> <춘향뎐> 등을 거쳐 프리랜서 프로듀서로 활동해 왔다.

 

“아버지를 존경해요. 감독·배우를 발굴하고, 국제영화제를 개척하고, 웰메이드 필름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일궈내는 과정을 통해 아버지에게 배운 게 도전정신이에요. 프리랜서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5000만원을 지원하는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영화 제작연구과정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도전정신은 저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됐어요.”

장편 스릴러를 9회 촬영으로 마치는 등 <공정사회>도 도전정신으로 만들었다. <공정사회>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잇 프로젝트’에 출품, 21개국 93개 프로젝트 가운데 20편에 선정돼 최종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영화제 기간 중 심사를 거쳐 지원작에 선정되면 후반작업 등에 도움을 받게 된다.

 

“후반작업 일정상 7월말에 마감하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은 어려울 것 같아요. 내년 초에 열리는 선댄스영화제를 염두에 두고 있어요. 개봉은 그 이후에 했으면 해요.”

이 감독은 “제작비가 적게 든 영화 개봉·흥행은 국제영화제에서 인정을 받아야 유리하다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한국영화가 더욱 발전하려면 다양성이 구현되어야 한다”고 했다. “영화 다양성은 창작인의 열정과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가능하다”면서 “다양한 영화로 국내외 시장과 영화제를 개척하는 데 혼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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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현상·김슬기·조아름(사진 왼쪽부터). 최초의 국악 합창영화 <두레소리>(감독 조정래) 주인공이다. ‘꿈꾸는 아리랑’ ‘두레소리 이야기’ ‘이사가는 날’ 등 완전 신명나고 흥겨운 국악 합창을 선사한다. 국악이라면 고개를 돌리던 이들도 우리 소리·장단의 매력과 합창의 마력을 맛보게 해준다. 얽히고설킨 관계와 소통을 다룬 드라마도 흥미롭다. 개봉 10일.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의 함현상 교사(36)와 조아름(20)·김슬기(19)의 영화 <두레소리> 출연기를 들었다.

 

영화 <두레소리>는 함현상 교사와 재학생들의 ‘두레소리’ 창단 과정을 그렸다. ‘두레소리’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의 국악합창 동아리다. 2008년 11월에 결성, 2009년 3월에 창단 공연을 가졌다. <두레소리>에서 함현상 교사는 주연 외 음악감독도 맡았다. 조아름(두레소리 3기)과 김슬기(〃 4기)는 창단 당시 선배들을 모델로 한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동아리 단원들이 처음에 악보를 못 읽는다. 실제로 그런가.
“판소리와 민요 전공 같은 경우는 악보보다는 선생님들께 한 대목, 한 대목씩 듣고 배우는 구전심수(口傳心授)의 방식에 익숙해요. 악보에 익숙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 하지만 요즘엔 창작 음악도 부르고 연주해야 해 많이 달라졌어요.”(함현상)

-각 파트별로 한 대목씩 가르쳤나.
“학생들은 악보에 익숙하지 않을 뿐 기본적으로 뛰어난 음감을 지녔어요. 그리고 전공 수업 때 구전심수의 방법과 악보를 병행해 더 쉽고 정확하게 가르칠 수 있었죠. 연습 당시 각 파트의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소리가 되도록 하는 데 경주했어요.”(함현상)
 함 교사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출신으로 중앙대 한국음악과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학군장교로 입대, 대위로 전역할 때까지 군악대장 등을 역임했다. <두레소리>에서 선보이는 ‘꿈꾸는 아리랑’ ‘두레소리 이야기’ ‘이사가는 날’ 등은 그가 만들었다. <두레소리>의 감흥을 고조시켜 준다.


-창단 동기는.
“전통음악 전공자들은 연습도 공연도 혼자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죠. 합창을 통해 함께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느끼게 해주고, 스스로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동아리활동을 체험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함께하는 합창에 매력을 느끼면서 긍정적 효과를 낳았어요. 생활이 바뀌고 학교생활에 흥미를 갖고…. 이후 이런 자체 동아리가 여러 개 생겼죠. ‘두레소리’는 올해 6기를 뽑았는데 무용 전공도 들어오는 등 구성원이 다향해졌어요. 일정 기간 연습한 뒤 소프라노·메조 소프라노 등 각 멜로디가 하나로 어우러졌을 때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함현상)

 

-영화는 어떻게 찍게 됐나.
“조정래 감독과 평소 알고 지내는 사이여서 창단 공연 때 촬영을 부탁했어요. 이후 창단과정을 말씀드리자 감독님이 극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해 의기투합했죠. 교장 선생님과 학교측의 전폭적 지지 덕분에 잘 끝낼 수 있었습니다. 감독님은 중앙대 연극영화과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는데 따로 북을 연마해 전국 대회에서 고수(鼓手)로 상을 받기도 했어요. 국악에 관심이 많고 국악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는데 마침 ‘두레소리’를 만난 거예요.”(함현상)
김슬기는 초등학교 3학년 때 TV드라마 <대장금> OST(오나라)에 참여한 바 있다. 국립창극단에서 어린이 창극 공연도 가졌다.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다. 국악 신동에서 차세대 기대주로 손꼽힌다. <두레소리>에서 판소리 명가의 피를 물려받은 천재 소리꾼 ‘김슬기’로 출연했다.

-오디션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나.
“어느날 연습하려고 모여있는데 영화를 찍기 위해 연기 오디션을 볼 거라고 하더군요. 노래하러 왔는데 연기를 하라고? 의아했지만 언니들이 보니까 따라서 했죠. 오디션을 볼 때 정말 어색했는데 다음날 함샘이 ‘감독님이 널 좋게 봤다. 주인공을 맡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1학년인데요? 제가요? 정말로?’ 거듭 묻고 확인하면서 기분이 좋았어요.”(김슬기)
“언니들이 주연을 맡고 우리는 조연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주연인 거예요. 믿기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으쓱했어요.”(조아름)

조아름은 올해 중앙대 전통예술학부에 입학, 국악극과에서 경기민요를 전공하고 있다.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재학 당시 전국국악경연대회 고등부 민요 최우수상, 한밭국악전국대회 학생부 대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두레소리>에서 일찍 부모를 여의고 이모 손에서 자란, 노력형 수재 ‘조아름’ 역을 맡았다.

 

-촬영 당시 즐거웠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실제 제 역을 맡았는데도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게 어색하고 어렵더군요. 극중에서는 잘리지만 실제로는 해직되지 않았어요. 정식 교사는 아니고 1년씩 재계약을 하는 강사에요. 다행히 올해에도 재계약이 돼 강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무척 좋은 경험을 했어요. 처음에 영화를 볼 때는 눈을 가릴 정도로 민망하더군요. 앞으로 음악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함현상)

“영화를 찍을 때 1학년인데 3학년 수험생 역할이어서 좀 어려웠어요. 대입에 대한 부담감을 실제로 느끼는 시기가 아니어서…. ”(김슬기)
“신기했어요. 카메라 앞에서 내가 아닌 다른 인물이 되는 게. 그 전에 해본 경험은 한 번도 없어요. 학교수업과 촬영을 병행하느라 피곤하기는 했지만 언제 또 해보겠어요? 좋았어요. 이모로 출연한 분은 진짜 배우세요. 그분과 언쟁하는 장면은 네 시간 가까이 찍은 것 같아요. 감정과 대사가 조화를 이루는 게 잘 되지 않아서. 그분께 미안했어요.”(조아름)

-둘이 다투는 장면도 실감난다.
“처음에는 약하게 시작했는데 감독님 요구사항이 점점 늘어났어요. 욕을 하고 뺨을 때리라고 하고…. 무척 당황스러웠죠. 극중에서는 동기지만 실제로는 슬기가 저보다 한 살 어리고 한 학년 아래거든요. 결국 나중에 재촬영을 했어요.”(조아름)
“저는 연예인이 된 기분도 느꼈어요. 수업받다가 촬영 있다고 열외받을 때, 서울랜드 촬영 당시 구경꾼들이 몰려들었을 때….”(김슬기)

-방과후 슬기와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진짜로 마셨나.
“아니에요. 아침햇살이라는 음료수예요.”(조아름)

-대사를 학생들이 많이 바꿨다고 했다.
“감독님이 우리 세대가 아니어서 실제와 동떨어진, 오글거리게 만드는 대사가 없지 않았어요. 감독님께 말씀드려 그런 대사는 우리 식으로 바꿨죠. 대학생이 된 ‘두레소리’ 1기 하늘벗 언니가 큰 도움을 주셨어요. 감독님은 많은 부분을 열어두시고 대사·연기를 마음 내키는 대로 하도록 하신 적이 많아요. ‘콘티’도 원래 걸 무시하고 현장 상황에 맞게 고쳐주셨고. 저희들이 자연스레 극중에 적응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거죠.”(조아름)
“일부 장면은 쉬고 있는, 자연스러운 저희들 모습을 찍은 거에요. 연기가 아닌 실제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김슬기)

이들은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내 “또 해도 아쉽고 미련이 남을 것 같다”면서 “전공 실력을 배양하는 데 더욱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많은 분들이 <두레소리>를 찾아주고 우리 소리를 더욱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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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진웅(36)의 본명은 조원준이다. 예명 조진웅은 아버지(67)의 이름이다.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연기하는 것이다. 배역에 따라 몸무게를 40㎏ 정도 찌우고 빼는 것도 그 치열함에 기인한다. <뿌리깊은 나무>와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에 이어 영화 <완전한 사랑>(가제)에서 변신을 꾀하는 조진웅을 만났다.

 
-<완전한 사랑>은 어떤 영화인지.
“시나리오를 읽고 처음으로 받은 느낌은 ‘이럴 순 없다’였어요. 이웃사촌인 이들의 사랑이 과연 가능한가? 마지막 촬영을 앞둔 지금은 ‘있을 수 있다’예요. 영화는 그 과정을 보여줘요. 방은진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천재적 두뇌의 소유자인 수학교사는 류승범씨, 옆집 여자는 이요원씨에요.”

-진웅씨 배역은.
“저는 형사예요. 수학교사와 고교 동창인데 친구가 연루된 살인사건을 수사해요. 화끈한 액션을 보여주는 그런 형사가 아녜요. 사랑의 관찰자이자 안내자예요. 응시하는 시점·시선이 중요해요. 연기를 하면서 두 남녀의 심리를 쫓아 여행하는, 한 발 두 발 사랑의 실체에 다가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관객분들도 형사를 통해 그런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배역을 맡고 가장 우선하는 게 뭔지.
“전작의 캐릭터를 깔끔하게 비워요. 공허할 정도로 완전히 지워버려요. 화장을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저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새로 하는 화장이 먹히거든요.”

-어떻게 맡은 인물이 되는지.
“배역의 캐릭터와 제 캐릭터를 충돌시키고, 그 음을 제 세포 안에 집어넣는 작업을 우선해요. 완성한 뒤에야 출발선에 서요. 그리고 현장에는 모든 걸 열어놓고 가요. 상상과 현장은 다르기 때문에 미리 계산하고 설정하고 가면 어려움이 많거든요. 감독의 조율 아래 동료 배우들, 카메라·조명·미술 등 스태프와 앙상블을 이루면서 서브 텍스트로 녹아들어요. 한 피사체로서 어울리게 자리하는 거죠. 연기는 멘털 게임이에요. 심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게 중요해요.”   

-겹치기 출연 때에는 어떡하나.
“각기 다른 걸 꺼내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해요. <뿌리 깊은 나무> <퍼펙트 게임> <범죄와의 전쟁>, 세 편을 겹치기 했는데 각 촬영 때마다 10분 전 상황에 스타트 준비를 마쳤어요. 그런데 <완전한 사랑> 때에는 다른 작품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영화에만 전념했어요.”

-배우는 언제부터 꿈꿨는지.
“어릴 때 뮤지컬 <피터팬>을 ‘개구멍’으로 들어가 셀 수 없이 봤어요. 친구들과 후크 선장을 죽이려고 안달이 났었죠. 그게 현실인 줄 알고. 조금 더 나이를 먹고 그게 연극이란 걸 알고 실제로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경험들이 알게 모르게 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고등학교 때 연극반 활동을 할 때에도 꼭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놀부를 긍정적, 흥부를 부정적 인물로 그린 연극 연출을 하면서 내 길이 이 쪽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산의 경성대 연극영화과를 지망했죠. 합격한 뒤에 ‘부산연극제작소 동녘’에도 입단, 학교 수업과 극단활동을 병행했고 “연극이 종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심취했어요.”

-부산 무대를 고수했는데.
“어디서든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굳이 동숭동 대학로에서 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죠. 제가 덩치가 좀 커 대학로에 일찍 갔더라도 신체조건 때문에 역할 맡는 데 어려움이 따랐을 거에요. 부산은 층이 엷어 배우로서 안 해본 역할이 없을 정도였고, 기획·연출·분장·조명 등도 두루 해야 했어요. 그 경험이 모두 저의 자산이 됐죠.”

-<말죽거리 잔혹사>(2004)로 영화에 데뷔한 동기는.
“이따금 대학로를 찾고는 했어요. 견학 겸 나들이 삼아. 1964년에 창단한 프랑스의 세계적인 극단이 서울서 공연할 때에는 단원들과 승합차를 빌려 타고와 단체관람을 하기도 했고. <말죽거리 잔혹사>는 서울에서 우연히 군대 고참을 만났는데 공교롭게 그 분이 유하 감독의 연출부셨어요. 그 분 권유로 ‘야생마’ 패거리 일원으로 출연했죠. 연극만이 예술이라고 고집했는데 영화 연기도 흥미로웠어요. 더 해보고 싶을 정도로.”

-<말죽거리 잔혹사> 엔드 크레디트에 이름이 조진웅이던데.
“연극이 아니라 영화여서 다른 이름을 쓰고 싶었어요. 새 출발의 의미를 새기고 싶기도 했고. 그런 중 앞으로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함자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자는 생각이 들어 예명으로 쓰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죠. ‘하다하다 이제는 내 이름까지 가져가냐’면서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어요. 할머니는 계속 반대하셨고.”

-<우리 형> 때 몸무게를 128㎏까지 찌웠다던데.
“바보 ‘두식’ 역인데 오디션이 3차까지 갈 만큼 경쟁이 치열했어요. 캐스팅된 뒤 안권태 감독이 기형적일 정도로 몸을 불리라고 하셔서 살 찌우고, 비슷한 체형의 자폐아를 찾아내 관찰하고, 정신과 자료도 탐독하고, 혼신을 다했죠. 덕분에 오라는 데가 많아졌지요.”

이후 영화 <비열한 거리> <폭력서클> <GP506> <마이 뉴 파트너> <쌍화점> <날아라 펭귄> <국가대표> <베스트셀러> 등과 드라마 <과거를 묻지 마세요> <솔약국집 아들들> <열혈 장사꾼> <추노>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등에서 단역·조연을 맡았다. 연기에 늘 갈증을 느끼면서도 출연작을 골랐고, 몸무게를 <마이 뉴 파트너>(2008) 때 78㎏,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2010) 때 120㎏, <퍼펙트 게임>(2011) 때 85㎏을 만드는 등 맡은 인물을 체화해 주목을 끌었다.

-뒤돌아 봤을 때 우선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면.
“20대 때 이미 스타가 된 권상우와 장혁을 보며 마니아층 배우에 불과한 데 자괴감을 느낀 적이 있어요. 조급함의 끝을 보인 거죠. 서른이 되는 게 버겁다는 푸념을 하면서 12월 31일 술을 잔뜩 마시고 잤는데 1월 1일에 깨어났을 때 그럴 수 없이 평온했어요. 거울을 보면서 ‘이대로도 멋있다’고 자평하면서 큰 선배님들의 주름과 세월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랬던 그는 <완전한 사랑> 촬영 때 디시인사이드 조진웅 갤러리로부터 ‘밥차’ 선물을 받았다. 자신의 출연작 관람권이 들어있는 티켓북 등과 함께. <뿌리 깊은 나무>는 장안의 화제를 낳았고 <범죄와의 전쟁>은 3월 31일 현재 468만587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관람했다. 조진웅은 “부산에서 연극할 때 배우들이 각자 자신의 대사를 쓰는 즉흥극 메소드를 3년간 했는데 어느 날 그 자료를 다 불태우고 새로 시작한 적이 있다”며 “저항적으로 연극에 심취했던 시절의 열정이 배우로 살아가는 데 뿌리”라고 했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게 계획”이라며 “언젠가는 내 이름을 찾고 8년 넘게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 “영화든 연극이든 대중의 공감을 얻는 게 중요하지만 배우로서 진정성을 잃지 않는 게 우선한다”며 “언제까지든 흔들림 없이 배우의 길을 가겠다”고 약속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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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천사의 숨소리>를 내놓은 한지원 감독(29)은 전직이스트리트 댄서'다. 중학생 때부터 춤을 추기 시작,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전국대회 팝핀·락킹 등의 부문에서 우승만 일곱 번을 차지·한 유명 댄서였다. 영화 현장 경험은 미개봉작 <오디션>(2009)에서 조연 및 안무를 맡은 게 고작이다.


<천사의 숨소리>는 그런 그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이다. 그는 각본·연출·주연·제작과 배급도 맡았다. 이 영화는 1일 현재 9.30(네이버) 9.4(다음) 등 상영작 가운데 최고 평점을 얻고 있다. <아티스트> <신과 인간> <자전거 탄 소년> <움> <아멜리에> 등에 이어 다양성영화 박스오피스 6위(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를 달리고 있다.

"스크린이 다섯 개밖에 안 돼요. 입소문이 나면서 관객이 늘고 있어요. 스크린도 추가될 것 같아요. 더 지켜봐야죠."

<천사의 숨소리>는 배우 지망생들의 산전수전을 그렸다. 무명의 아들(한지원)과 이 아들의 유일한 열성팬인 엄마(김영선)의 이야기가 드라마의 중심을 이룬다. 이를 통해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잊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에 대해 물었다. 상영 내내 웃음과 안타까움을 자아내던 영화는 막바지에 이르러 제목의 의미를 깨닫게 하면서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춤은 12년쯤 췄어요. 육체적·경제적 문제로 그만두고 2005년부터 쇼핑몰 등에 기획서를 내고 지원을 받아 크고 작은 공연을 연출·제작했어요. 이를 계기로 목포 MBC에서 주최한 해양문화축제(2007)에서 '비보이 올스타즈' 무대연출 등을 맡았고, 더 많은 분들과 소통하고 싶어 영화와 무대를 엮은 키노드라마 <잔향>(2008)을 연출·제작했습니다. 연기 욕심이 나 여느 영화·뮤지컬 오디션을 열 번쯤 봤고 <오디션>에서 조연과 안무를 맡은 뒤 <천사의 숨소리>를 기획했어요."


이때가 2009년 5월이다. 첫 시나리오는 두 달 만에 썼다. 자신과 주위 배우 지망생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픽션을 가미했다. 이후 10개월 동안 시나리오를 보완했다. 6개월 간 투자를 받으러 다녔고, 6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8개월 동안 촬영 및 후반작업을 했다.

"순제작비가 4000만원이에요.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안 가본 데가 없어요. 경력이 일천하다보니 신뢰성이 떨어져 투자받는 게 정말 힘들었죠. 어느 단계까지 갈 수 있을지 예상할 수 없었지만 모든 걸 엄연한 현실로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최선을 다했어요."


제작 과정 또한 순탄하지 않았다. 예산이 적어 출연·제작진을 구성하는 것부터 힘겨웠다. 2개월여 동안 36회에 걸쳐 이뤄진 촬영도 시간과 경비 문제로 속전속결을 감행해야 했다. 주연 경험이 없고 조감독 수업 한 번 받은 적이 없어 현장에서 주연과 연출, 두 몫을 해내야 하는 게 녹록치 않았다.

"뒤돌아 보면 매일 천국과 지옥을 오간 것 같아요. 믿음과 열정으로 '현장의 기적'을 낳아준 배우·스태프들 덕분에 완성할 수 있었어요. 연기와 연출을 병행하면서 생기는 공백을 메워주신 김홍기 촬영감독님 등 모든 분께 감사드려요."

준비하고 있는 다음 작품은 <팝콘>이다. 1998년 IMF로 더욱 어려움을 겪는 지방의 한 3류 스트리트 댄서팀의 우승 도전기를 그린다.

한지원 감독은 "이 영화에서는 연출만 할 계획"이라면서 "우선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훗날에는 대니 보일 같은 감독이 되고 싶고 <소셜 네트워크> <머니볼> 등을 쓴 아론 소킨 같은 작가도 꿈꾼다"고 밝혔다. "다른 작품에서 불러주면 배우도 할 것"이라며 "각본과 연출, 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을 갖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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