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1.10 조진규 감독 <박수건달>, 재미와 성찰로 승부

조진규 감독(53)은 영남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김현명 감독의 <아가다>(1984) 연출부로 충무로에 입문했다. 1986~1991년 일본대학·일본영화학교·와세다 대학원에서 영화공부를 했다. 귀국 후 프로덕션을 설립, SBS의 <꾸러기 카메라> <스타, 이런 모습 처음이야> <악마의 속삭임> <결혼할까요> 등을 연출·제작했다. 영화 데뷔작 <조폭마누라>(2001)로 공전의 히트를 친 뒤 <어깨동무>(2004) <조폭마누라3>(2006) 등에 이어 9일 박신양·김정태·엄지원·정혜영 주연 <박수건달>을 내놨다. 

 

 

“지랄 같아도 지나고 나믄 다 이유가 있는 기다” “그라믄 사람 패고 해꼬지하고, 그건 니가 할 짓이가” “다 필요 없드라. 죽도록 용 써봤자 옷 한 벌이다. 나중에 니는 무슨 옷을 입고 갈 낀데….”

영화 <박수건달>의 주제를 대변하는 대사들이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주인공 ‘광호’(박신양)다. 그는 건달이다. 그 세계에서 잘 나가던 그는 어느 날 신내림을 받는다. 박수(남자 무당)와 건달, 이중생활을 한다. <박수건달>은 바람직한 삶과 삶의 구원에 대해 묻는다. 코미디에 액션, 판타지를 곁들여 웃음은 물론 눈물도 쏙 빼놓게 한다. 그간 심심찮게 영상화된 이른바 ‘조폭 코미디’와 차원을 달리 한다. 제목은 B급 영화의 전형이지만 보고 나면 생각을 바꾸게 된다.

-왜 <박수건달>인가.
“딜레마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코미디에 딱 맞는 소재이다. <박수건달>은 딜레마에 관한 영화다. 한 남자가 성공을 목전에 두고 신이 내리는 바람에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남자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를 치러내면서 삶의 가치관이 달라지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의 재미를 더 끌어올리고 다양한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복합 장르로 그려냈다. 요즘은 관객의 욕구가 실로 다양해 한 영화를 한 장르로만 그려내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다.”

 

-언제 기획했나.
“동료인 정연원 감독에게 이야기를 들은 건 4년쯤 전이다. ‘조폭에게 신이 내렸다’는 인터넷 뉴스를 봤다면서 이 소재를 코미디로 만들 때 가장 쉽고 재미있게 풀 수 있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정 감독 얘기를 듣고 안 하겠다고 했다. ‘또 조폭이냐’는 말을 듣기 싫어서, 자칫 ‘조폭 영화 전문 감독’으로 분류될 것 같아서, 이제는 다른 장르 영화를 하려고 한다고 사양했다.”

그리고 3개월이 넘게 지났다. 조 감독은 자신의 의지와 달리 무당인 조폭 이야기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자 결국 생각을 달리 먹었다. 도망치지 말고 정면 돌파하기로. 건달이 처한 딜레마를 소재로 삶의 깨달음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장르의 생산적·발전적 진화를 꾀해 보자고 달려들었다. 우선 <사랑과 영혼>을 수십 번 봤다.

-시나리오 작업을 얼마나 했나.
“3년간 했다. 50~60번쯤 새로 쓴 것 같다. 주인공을 건달이 아닌, 직업이 검사·교수 등인 남자로도 여러 차례 설정했다. 그런데 쓰기 힘들었고, 만족도가 떨어졌고, 주위 반응도 좋지 않았다. 광호가 신을 받는 게 죽는 것 만큼 싫은데 받아야 했듯, 나 역시 주인공이 건달인 게 누구보다 싫어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데 피할 수 없었다. 마초적이고 욕망과 허세가 강한 집단이고 그 소속이어야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구축하고 복합 장르로 구성하는 게 용이한 측면이 많았다. 깨달음의 극대화도 꾀할 수 있고. 재미있고 구성도 좋은데 시나리오가 맛있게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무속을 취재하고 영화에 반영하는 건 어떠했나.
“광호의 두 면 가운데 박수를 살아있는 캐릭터로 만들어내는 게 관건이었다. 신병에 시달릴 때와 내림굿 진행과정, 작두에서 춤출 때, 무속인으로 첫 손님을 받고 점을 볼 때의 심정·모습…. 많은 무속인들을 찾아가 손님 입장으로 관찰했고, 솔직히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집요하게 물어보고 조목조목 캐내 시나리오에 반영했다. 무속을 문화적 관점으로 연구하고 문화계 인사들과 폭넓은 인맥을 지닌 황해도 만신(무녀) 이해경 선생의 조언과 도움을 많이 받았다.”


-광호 캐릭터와 박신양의 연기가 매력적이다.
“광호는 박수와 건달을 오가는 캐릭터다. 마초적인 건달은 물론 박수무당이 지닌 여성성도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를 손꼽을 때 가장 먼저 박신양이 떠올랐다. 터프한 남자와 그 남자가 커밍아웃을 선언했을 때 느낌을 표현해 달라고 했다. 기대한 대로 상반적인 두 면을 잘 조합해 냈다.”

-캐스팅은 어떠했나.
“캐스팅이 쉬운 영화나 드라마는 없다고 본다. <박수건달> 역시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박신양·김정태·엄지원·정혜영·조진웅·김성균·윤송이, 적재적소에 좋은 배우들이 들어와 자신의 역할을 십분 발휘해 주었다. 아역 윤송이는 오디션 응모자 700~800명 가운데 뽑았다. 3개월간 부산 사투리 연습을 시켰는데 이 또한 소화 능력이 뛰어나 안심하고 맡겼다. 눈물연기 등이 정말 탁월했다.”

-광호는 유령을 보고 대화도 나눈다.
“무속 취재 당시 무당이 유령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특별해야 해 박수와 유령의 접목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령이 나오는 영화의 재미는 동종 혹은 이종 간의 접촉과 대화, 이에 따른 업보의 해소에 있다. 그걸 어떻게, 다른 영화와 다르면서 재미있게, 의미있게 승화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유령은 무서운 존재로 인식돼 있지만 사실은 불쌍한 존재다. 건달은 일견 폼나 보이지만 실제로는 범법자다. 무당은 숨기고 싶은 신분인데 실질적으로 좋은 일을 한다. 이 세 점을 염두에 두고 구성했다.”

광호가 못 다한 사랑에 아파하는 여인(천민희)과 검사(조진웅), 딸(윤송이)과 의사(정혜영)의 한을 풀어주는 과정과 장면이 영화의 재미와 의미를 더해준다. 광호와 검사 사이에 진지하고 웃기고 슬픈 상황이 번갈아 펼쳐지는 취조실 장면이 압권이다. 웃기다가 울리고 다시 웃기는 걸 반복, 희·비극의 공존을 보여준다. “코미디 영화의 명장면으로 오래도록 회자될 것”이라는, “코미디 영화의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는 네티즌의 감상평이 잇따르고 있다.

조진규 감독은 “코미디는 일단 재미있어야 하지만 관객은 기존의 조폭 코미디에 식상해 있다”면서 “새로운 코미디의 방향을 계속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박수건달>에 대해 “재미와 성찰의 미덕을 담는 데 최선을 다했다”며 “다음에는 인간과 영혼, 초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삶을 돌아보고 내다보는 시간을 관객과 나누고 싶다”고 기원했다.

Posted by 배장수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