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성(47)은 1980~90년대 연극배우 출신 영화배우 1세대로 손꼽힌다. 서울대 경영학과 84학번인 그는 1987년 극단 천지연을 필두로 한강·한양레파토리·연우무대·학전 등에서 활동했다.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1995)로 영화와 인연을 맺은 뒤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바리케이트> <억수탕> 등의 주연배우로 각광받았다. 이후 약 10년간 베트남에서 영화 수입·배급, TV드라마·연극 제작을 했다. 2010년 여름에 귀국, <북촌방향> <건축학개론> <남영동1985> <26년>에 출연했다. 요즘 송강호·이정재·백윤식·김혜수·조정석 등과 함께 <관상>을 찍고 있다.

 

 

■연극으로 사회 참여
김의성은 서울대 경영학과 2학년 때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교내 연극을 보고 뒤풀이에 따라 간 게 계기가 됐다. 김의성은 “이념 서클에 들어가고, 데모에 참여해 돌도 던졌지만 그보다 연극을 통해 발언을 하는 게 체질에 맞았다”며 “그게 지금 배우로 살아가는 운명의 출발점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듯 실존 문제로 고민이 많았어요. 암울한 시대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했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연극만 하면서 살 수 있을지…. 결국 휴학을 했고, 친구가 있는 부산의 한 공장에 취직해 공원 생활을 했어요. 영장이 나와 입대했고.”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뒤에는 1987년 대학 연극·탈춤반 출신으로 결성된 극단 천지연 활동에 주력했다. 졸업만 하면 어디든 취직이 가능한데 연극을 한다고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자 집안의 반대가 거셌다. 김의성은 극단에 불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라는 아버지와 형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연극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정진영과 함께 2인극 <동팔이의 꿈>을 전국의 공장·학교를 순회하며 1년 동안 공연하는 등 문화 운동에 앞장서고 파업 현장을 찾아 다녔다.

극단 한강 시절에는 밥만 먹어도 좋았다. 연우무대에서는 밥을 꼬박꼬박 사줘 더욱 좋았다. 학전에서는 계약까지 해줘 고마웠다. 하지만 수입은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과외교사로 한 달에 20만~30만원을 벌어 생활했다.

“당시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 월급이 70만원인가 했으니 꽤 많이 번 거죠. 당시 작품으로 가장 큰 돈을 받은 건 TV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이에요. 최하등급으로 계약한 뒤 재계약을 했는데 7개월에 1000만원 정도를 받았어요.”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에서 김의성은 정선경·이경영·최진실 등과 호흡을 맞췄다.

 

김의성은 5년쯤 연극을 하던 시기에 이현승·여균동·김성수·이재용 감독들과 알고 지냈다. 그 인연으로 영화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감독 이현승)에서 비중있는 배역을 맡았다.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김동빈)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자>(〃 오병철)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홍상수) <바리케이트>(〃 윤인호) <억수탕>(〃 곽경택)의 주연배우로 각광받았다.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맡는 등 90년대 중후반 최고의 배우로 손꼽혔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김의성은 김진성·조은숙·이응경 등과 호흡을 맞췄다.

 

■영화로 시대 발언
‘강 과장’과 ‘최 계장’. 김의성이 영화 <남영동1985>(감독 정지영)와 <26년>(감독 조근현)에서 맡은 경관 역이다. 강 과장은 <남영동1985>에서 민주화운동가 ‘김종태’(박원상)를 취조하고 동료들과 함께 고문전문가 ‘이두한’(이경영)을 돕는다. 최 계장은 <26년>에서 전 대통령 ‘그 사람’(장광)을 응징하려는 ‘곽진배’(진구) 등의 계획에 맞선다.

김의성은 두 인물의 캐릭터를 명확하게 구분했다. 강 과장은 “평범한 사람, 피곤한 사람”이라고 했다. 최 계장에 대해서는 “노련한 사람, 안위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했다.

 

“강 과장에게 고문은 일의 하나에요. 그 일을 하면서도 프로야구에 관심이 많아요. 간혹 어깨·목을 주물러요. 고문·일과, 김종태 수사가 그저 빨리 끝났으면 하는 인물이에요. 최 계장에게 경호는 관할 서에서 하는 업무에요. 그 일에 능숙하죠. 일의 결과가 자신의 안위를 좌우하기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처리해요.”


 

김의성은 두 영화에서 각기 다른 경험을 했다. <남영동1985>에서는 두 차례 소름이 돋았다. 두꺼비 출현과 귀신(?)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양수리 세트에 두꺼비가 나타났어요. 인근 숲에서 세트장까지 먼 길을 걸어 온 거에요. 그런데 인재근 의원이 ‘민청련’의 상징이 두꺼비였다고 하더군요. 뱀에게 먹혀 자신이 지닌 독으로 뱀을 죽여 종족을 보호한다면서. 그분께서 잘하라고 와주신 게 아닌가 했어요.”

김종태를 심하게 고문하는 장면을 찍을 때에는 아무도 ‘커트’(cut)를 하지 않았는데 여자가 커트하는 소리가 들렸다. 녹음도 됐다. 현장에 여자가 없었는데. 김의성은 “두꺼비 출현보다 더 불가사의했다”며 “사고가 날 수 있었던 걸 미연에 방지해준 게 아닌가”라고 풀이했다.

 

<26년>은 어렵게 시작한 데 비해 현장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김의성은 “고소공포증이 있어 크레인에 올라가 ‘심미진’(한혜진)의 저격을 저지할 때 정말 무서웠다”고 했다. “혜진이가 오르내리기 귀찮다며 더 높은 곳에서 머물며 간식도 먹는 걸 봤기 때문에 꾹 참고 촬영했다”고 털어놨다. <26년>에 대해 “촬영 기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편집본이 두 가지”라며 “상영작은 줄거리 전개가 보다 매끄러운 것보다 각 장면마다 날 것의 감정을 살린 편집본”이라고 공개했다.

 

                     지난 11월 16일 열린 ‘서울광장 <26년> 콘서트 ’에서 <26년> 출연진이 사회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재미있게 살아라”
김의성은 <남영동1985>와 <26년>에서 문성근·이경영 등과 함께했다. 김의성은 “감회가 새로웠다”고 했다. “두 분 선배를 보면서 ‘나이 먹는 게 괜찮구나’ ‘배우로 늙는 것도 참 좋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남영동1985>의 문성근은 영화 데뷔작 <네온 속으로 노을 지다>에서 만났다. 김의성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원’ 역을 맡았고, 문성근은 CF감독 ‘김규환’으로 출연했다. 출판사가 경영난을 겪을 때 김원은 말도 없이 사라지고 광고회사에 카피라이터로 입사한 ‘이상민’(채시라)은 김원을 가슴에 묻어두고 김규환과 가까이 지낸다.


이경영은 <남영동1985>에 이어 <26년>에서도 함께했다. <네온 속으로 노을 지다>에 이어 주연을 맡은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에서 호흡을 맞춘 선배다. 두 번째 영화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에서 김의성은 유부녀 ‘은재’(최진실)와 조심스런 만남을 갖는 유부남 ‘진우’(이경영)의 친구 ‘창세’ 역을 맡았다. 창세는 의부증이 있는 아내를 둔 인물로 애정 없는 남편에게 실망한 은재의 친구 ‘윤수’(정선경)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이경영과는 인연이 남다르다. <네온~>에 앞서 출연한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에서도 함께했다. 이 드라마에서 김의성은 ‘황일천’ 병장(박중훈) ‘김기수 병장(이경영)’ 등이 소속한 1소대장 ‘이 중위’로 출연했다. 김의성은 원래는 병사였다. 첫 로케이션 때 촬영 준비가 덜 돼 한 장면도 못찍고 그냥 돌아왔고, 소대장 역을 맡은 배우가 아픈 바람에 대신 이 중위 역을 맡게 됐다.

 

 

요즘 출연작은 영화 <관상>이다. 이 영화에선 송강호 등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송강호는 김의성의 연우무대 후배이다.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김의성의 소개로 출연했다. 김의성은 “어느 날 술자리에서 강호가 대뜸 ‘이 형님이 나를 맨 처음 영화하게 해주신 분’이라고 했을 때 좀 쑥스러웠다”며 “예전과 다름없이 배우로 살아가는 선·후배들과 연기를 하는 나날이 즐겁다”고 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부딪쳤던 실존 문제에 대한 고민이 30년이 지난 뒤에 완전히 풀렸다”고 했다. “연극을 한다고 노발대발하셨던 아버지가 임종 하루 전에 ‘재미있게 살아라’고 하셨다”며 “살아온 날의 삶이 녹아든 연기로 오랫동안 관객을 만나고 싶다”고 기원했다.

Posted by 배장수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배우 안석환(53)은 단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 대학 1학년 때부터 교내 극예술연구회에서 활동했고 1987년 극단 연우무대의 <달라진 저승>으로 데뷔했다. 영화는 1992년 <명자 아끼꼬 쏘냐>로 인연을 맺은 뒤 1994년 <태백산맥> <너에게 나를 보낸다> 등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7·1998년 동아연극상 연기상 등을 비롯해 2005년 KBS 연기대상 조연상을 받았다. 지난해와 올해 TV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와 <너라서 좋아> <패밀리>, 연극 <대머리 여가수>와 <웃음의 대학>, 영화 <후궁: 제왕의 첩>과 <26년>으로 기치를 높이고 있다.

 

 

“니가 헐라고 허는 일, 그거시 참말로 그 방법뿐인지…. 그거시 맞는 길인지, 솔직히 난 잘 모르겄다. 근디, 최소한 그런 거슬 생각조차 안 해보고 살았던 나는, 틀렸던 것 같아야.” “이태꺼정 암 생각 없이 금남로를 싸댕긴 거시… 인자와서 죄스럽네. 하… 아, 쪽팔리다 잉. 긍께… (웃음) 난 여그 들어와 있어도 싸다.”

영화 <26년>(감독 조근현)에서 화제를 낳고 있는 대사다. 영화 상영 중 이 대사가 나올 때 감탄하거나 고개를 숙이는 중년 관객들이 적지 않다. 최근 육상효 감독은 이 대사가 나오는 장면에서 “가장 울컥했다”고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이 대사는 ‘안수호’(안석환) 사장이 교도소로 면회를 온 ‘곽진배’(진구)에게 하는 말이다. 안수호는 광주 금남로를 주름잡는 조폭 두목으로 대형 나이트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곽진배는 안수호가 신뢰하는 수하이다. 곽진배는 사설 경호업체의 ‘김갑세’(이경영) 대표가 설계한 작전에 따라 저격수 ‘심미진’(한혜진), 정보원 ‘권정혁’(임슬옹), 브레인 ‘김주안’(배수빈) 등과 함께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군인들의 발포는 자위권 발동이었다고 주장하는 파렴치한 전 대통령 ‘그 사람’(장광)을 응징하는 데 앞장선다. 안수호의 대사는 이에 관한 것으로 그는 면회를 서둘러 마치면서 곽진배에게 “돌아보지 말고 앞만 봄서 냅다 뛰어”라고 한다.

“양아치인데 큰놈이에요. 대사가 좀 길었는데 조근현 감독, 진구와 함께 대본 연습을 하면서 짧게 정리했어요. 큰놈답게. 말이 많으면 잘아 보이잖아요. 구체적인 진배와의 관계, 지역 주민의 정서, 시대 상황은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게 좋고.”

 

 

안석환은 <26년>에 대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영화”라며 “역사의 아픔과 교훈은 기록으로 남겨야 영원 불멸성을 지닌다”고 했다. “출연 제안을 받고 영화배우로서 고마움을 느꼈고, 출연·제작진과 고사를 지내면서 기뻤고, 진구·한혜진·임슬옹·배수빈… 시대의 아픔을 안으려는 젊은 배우들이 있다는 게 반갑고 뿌듯했고, 함께 기분 좋게 작업했다”고 털어놨다.

■기관원, 핑크 캐릭터로
안석환이 조폭의 두목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7년 8월 개봉작 <넘버 3>(감독 송능한)가 우선 손꼽힌다. <넘버 3>에서 안석환이 맡은 인물은 깡패 두목 ‘강도식’이다. 넘버 2를 다투는 ‘태주’(한석규)와 ‘재철’(박상면)을 카리스마로 쥐락펴락한다.

 

안석환은 “보스가 말이 많으면 보스답지 않다”면서 “눈빛만으로 말이 되도록 대사를 다 없애거나 줄였다”고 했다. 일례로 강도식이 수하들과 자리를 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의 경우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강도식이 손을 내밀면 담배가 손가락에 끼워지고, 담배를 입에 물면 불이 붙여지고, 탁자에 재떨이가 자동적으로 준비되도록 설정했다.

안석환이 영화배우로 눈길을 끌기 시작한 작품은 1994년 개봉작 <태백산맥>(감독 임권택)과 <너에게 나를 보낸다>(감독 장선우)이다. 9월 17일에 개봉된 <태백산맥>에는 빨치산 토벌에 나선 방첩대장 ‘전원장’으로, 10월 1일에 개봉된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는 기관원 ‘색안경’으로 출연했다. 전원장은 극우 마초이고, 색안경은 여자 같은 기관원이다. 두 영화가 잇달아 개봉된 뒤 관객은 물론 영화인들조차 전원장과 색안경으로 나온 배우가 한 사람인 줄 몰랐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는 안석환이 예명(안진형)을 써 더더욱 다른 배우인 줄 알았다.

“기관원=검은색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장정일 원작인 점을 감안해 색안경의 캐릭터 색깔을 핑크로 설정했죠. 감독님은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했는데 자꾸 말씀드리니까 일단 해보라고 하더군요. 새롭고 재밌으니까 통과된 거에요.”

 

안석환은 “가운을 입고 애드립도 했다”며 “여성적인 말투가 유행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했다. “그전에는 연봉이 400만원 정도에 불과했는데 두 영화를 하면서 1000만원을 넘어섰다”고 덧붙였다.

■술자리 소재·분위기 좋아서
안석환은 단국대 경영학과에 입학하면서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동아리 활동을 해라, 넓게 살아라’는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고른 게 극예술연구회였다. 안석환은 “한두 명이 각자 행동하는 다른 동아리들과 달리 극예술연구회는 여러 명이 빙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데 끌렸다”고 했다.

“입회 이후 수업이 끝나는 오후 5시부터 통금(자정) 전까지 거의 매일 술을 마셨어요. 1학년 신입생부터 제대하고 복학한 고참까지 한데 어울려서. 대화의 주소재가 인생과 예술에 대한 것이었죠. 처음에는 연극보다 그런 술자리가 더 좋았어요.”

등사판 밀어서 만든 대본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연습하고, 망치질해서 무대 만들고, 조명기 닦아 달고, 여학생들은 무대 의상 만들고…. 안석환은 “굽은 못은 펴서 사용할 정도로 어려운 가운데 막은 올라갔고, 관객과 함께 희로애락을 나눴고,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연극에 매료됐다”고 했다.

매년 정기공연 두 번, 워크숍 무대를 두 번 올렸다. 1981년에 입대, 제대 후 복학 전 1년 동안 학비를 벌기 위해 특수운송회사에 다녔다. 1985년 복학한 뒤에도 직장생활을 병행했다. 학생과 직장인으로 바빴고, 수입도 짭짤했지만 견딜 수 없었다. 연극을 하고 싶어서. 결국 1986년 10월에 직장을 그만두고 극단 연우무대에 들어갔다. 이듬해 졸업한 뒤에는 극단에서 살았다. 그해 가을, 연우무대의 <달라진 저승>(김광림 작·연출)으로 데뷔했다.

“데뷔 후 5년 내에 성공하지 못하면 아버지 장사를 잇기로 했어요. 장사하는 게 싫어서 기를 쓰고 연극을 했는데 신통치 않아 5년쯤 했을 때 상심이 컸죠. 그런데 그 즈음부터 출연 섭외가 줄을 잇더군요. 10년 전후로 상도 받으면서 인정을 받았고.”

1997년 <이세상 끝>, 1998년 <남자충동>으로 2년 연속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았다. 한국연극협회 최우수남자연기상과 우수공연상 연기상,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 세계연극제 연극인이 뽑은 인기배우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받았다. 동물 닮기, 자연으로 돌아가기에 기초한 ‘안석환식 인물 창조’로 각광받았다. 2005년에는 <별남별녀>와 <쾌걸 춘향>으로 KBS 연기대상 조연상도 받았다. 방송·영화에 출연하면서 꾸준히 연극을 하는 안석환은 지난해 <대머리 여가수> 각색·연출을 맡았고 <웃음의 대학>을 장기 공연했다. 안석환은 “가슴으로가 아니라 세포가 느낄 정도로 변신해야 한다”면서 “부단히 연구하고 연습해서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게 배우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Posted by 배장수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남영동1985>(감독 정지영)는 ‘잔혹 휴먼드라마’다. 혹독한 고문장면으로 관객을 고신하는, 그리고 울먹이게 만드는, 휴머니즘을 역설한 작품이다. 정지영 감독은 이와 관련 “관객 여러분은 1시간50분 동안 힘들었지만 배우들은 두 달 동안 힘들었고, 실제 고문 피해자들께서는 평생 힘들다”고 밝혔다. 정 감독이 <남영동1985> 기획·연출·제작한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끔찍한 현장을 고발, 다시는 힘든 시대를 맞지 말자는 것이다.


 

남영동1985>는 또한 ‘다큐멘터리적 극영화’다. 극중 고문장면은 실제이자 픽션이다. 물 고문, 고춧가루 고문 등은 박원상이 더이상 못참겠다고 표시할 때까지, 전기고문은 약한 전류로 맛보기를 한 뒤에 찍었다. 영화의 원작인 고 김근태 의원의 자전적 수기 <남영동>과 엔드 크레디트의 증언에서 알 수 있듯 1985년 당시의 남영동 대공분실에 카메라를 들이댄듯 화면은 현장감이 넘치고 가공의 극영화처럼 관객의 가슴을 쥐락펴락한다.


<남영동1985>가 많은 유명 인사들에게 호평을 얻고 있다. 지난 29일 이효리는 자신의 트위터에 “생각보다 보기 힘들지 않았어요. 너무 잔인할까 봐 못보시는 분들 걱정 안 하고 보셔도 될 듯해요”라고 올렸다. 이에 앞서 27일에는 김정근 아나운서가 자신의 트위터에 “<남영동1985>를 봤다. 보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영화에서 고문을 견디다 못해 던진 비명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은 같지 않을까…여의도 2012…”라고 밝혔다.



지난 11월 19일 광주에서 열린 시사회에는 여느 도시와 달리 정치인과 시민단체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시사회 후 곽정숙 전 국회의원은 “잔인함, 고통, 분노를 넘어 절망이었다. 사람이 없는 짐승의 시대, 난 사람이다, 사람들과 사람의 시대에 살고 싶다”고 고백했다. 장휘국 광주광역시교육청 교육감은 “영화를 보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분노와 긴장, 허탈과 무력감에 많이 피곤하고 지쳤습니다. 이 영화 꼭 봐야 합니다”고 피력했다. 

그리고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주신 선배님들! 잘 살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김희용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 “허물기는 쉬워도 다시 세우기는 참 힘이 드는 것이 민주주의임을 배웁니다”(명등룡 광주비정규직센터 소장)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짐승처럼 대접 받으며 느끼는 모멸감. 故 김근태 의장께서 겪은, 아니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살았던 국민들이 느낀 아픔을 그린 영화입니다”(조오섭 광주광역시의회 시의원) 등 <남영동1985>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가 이어졌다.



지난 11월 14일 진행된 국회시사회 등에 참석한 정치인들은 소명감을 털어놨다. 이해찬 의원은 “반인륜적인, 반생명적인 그런 행위들을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우리 스스로 다짐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정세균 의원은 “우리 대한민국에 이런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는 것이 참담하다”면서 “정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얼마나 소중한지, 또 지구촌에 아직도 남아있을지 모를 고문이나 반민주적인 잔재들을 청산하는데 대한민국이 앞장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판사 출신인 서기호 의원은 “많은 사건들이 재심에 의해서 무죄판결이 선고돼 많은 분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있다”면서 “문제는 이런 사건들이 그냥 하나의 뉴스거리로만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영화는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 재심에 의해서 당연히 무죄판결을 최근에서야 받는 사건들이 뉴스가 아니라 내 자신의 문제로 다가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 것 같다”고 토로했다. 박병석 국회부의장은 “김근태 의원님은 가셨지만, 그 분이 가지고 있던 의지, 열망은 지금까지 남아있다”고 <남영동1985>의 기획의도에 공감을 표했다.

11월 12일 VIP시사회 후 영화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남영동1985>를 강력 추천했다. “꼭 필요한 영화가 나온 것 같다. 영화 보는 내내 뜨거운 가슴으로 봤다”(감독 강제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아프게 영화를 봤다”(감독 이명세) “엄청난 영화를 봤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졌으면 좋겠다”(배우 박중훈) “끝까지 가슴 졸이게 만들고 그때의 아픈 기억들이 다시 떠오른다. 상처받은 이들이 치유받았으면 한다”(배우 장광) “세상을 떠나신 故김근태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난다. 꼭 나와야 될 영화가 나온 것 같다”(배우 박철민) “대선 시기이고, 앞으로 우리 미래를 잘 만들어 갈수 있을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영화인 것 같다”(배우 김지훈).


이날 시사회에는 대선 후보들도 대거 참석했다. 문재인 후보는 “우리에게 민주주의나 인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우리가 얼마나 잘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인지 그런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정지영 감독이 힘들게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심상정 후보는 “故김근태 선배가 참 그립다”며 “우리 시대는 김근태 선배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압제의 고통과 맞서 싸우고 고통의 기억과 맞서 싸우고 그 분들이 온몸으로 헤쳐간 길을 따라서 민주주의가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안철수 후보는 “보는 내내 고통스러웠다”며 “우리 삶에 역사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는 느낌이었고, 그 분들께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다시는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게 우리 모두 노력해야겠다”면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고 미래를 향하는, 상식이 통하는, 국민이 이기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정희 후보는 “영화는 1985년을 그리지만 국가보안법의 사회적 고문은 그대로 남아있다”면서 “2012년에 사회적 고문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85년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많은 오피니언 리더들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민주주의의 아이콘’으로 손꼽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2일(일) 오후 2시30분,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남영동1985>를 관람할 예정이다. 이날 상영에는 정지영 감독과 박원상·이경영·김의성 등이 무대인사를 갖고 박 시장과 자리를 함께한다. 충격과 분노, 그리고 감동을 넘어 대한민국을 움직일 영화로 주목받고 있는 <남영동1985>에 유명 인사들의 추천 릴레이가 얼마나 이어질지 주목된다. 

Posted by 배장수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시민 2012.12.05 11: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방 극장에서 상영되는 '남영동1985'가 무슨 연유인지 상영 시작 이후 일주일만에 내린다는 상당히 진실에 가까운 소문-- 상영시간대도 감상하기 어려운 시간대로 -- 이 있습니다. 외부의 정치적 압력에 극장주들이 굴복한다는 소문입니다. 알아보시고 그게 사실이라면( 사실에 상당히 가까움!!! ) 언론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해하는 무리들에게 자유정신으로 돌파하기만을 기원합니다.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이 텔레비전을 통해 최초로 공개된다. 티캐스트 계열 케이블 영화 채널 SCREEN(스크린)에서 오는 20일 밤 11시에 방영돤다.

 

케이블 영화채널 SCREEN 편성 관계자는 18일 “<부러진 화살>의 주연배우 안성기 씨가 제32회 영평상(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연기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것을 기념해 ‘TV최초 영화 블록‘에 <부러진 화살>을 특별 편성했다”고 밝혔다. “요즘처럼 정치·사회적 이슈가 많은 시기에 수상의 영예까지 누리게 된 작품이 SCREEN에서 TV 최초로 방영돼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고 설명했다. 케이블 영화채널 SCREEN은 매일 밤 11시 TV최초 영화 블록을 신설, 작품성이 뛰어난 최신 인기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부러진 화살>은 5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일명 ‘석궁 테러 사건’을 바탕으로 재창조한 작품이다. 정지영 감독의 세심한 연출과 탄탄한 시나리오, 배우들의 명연기 등이 어울어진 수작으로 안성기·박원상을 비롯해 김지호·나영희·김응수·이경영·문성근·김준배 등이 열연을 펼쳤다. 지난 1월 18일 개봉, 344만3533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관람하는 등 사법부에 대한 질타와 시대 비판으로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작품상과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았고, 제26회 후쿠오카아시안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제21회 금계백화영화제 금계국제영화전에서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감독상’을 수상했다. 대종상 최우수작품·감독·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다. 대종상 시상식은 오는 29일 마련된다.

 

올해 영평상 심사에서 <부러진 화살>은 ‘올해의 영화 베스트10’에 이어 남우연기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베스트10에 선정된 작품은 다음과 같다. <피에타> <부러진 화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건축학개론> <광해, 왕이 된 남자> <도둑들> <은교> <화차> <다른 나라에서> <내 아내의 모든 것>이다. 제32회 영평상 시상식은 오는 11월 7일에 열린다.

안성기는 영평상과 인연이 깊다. <오염된 자식들>(3회) <안개마을>(4회) <투캅스>(14회) <영원한 제국>(15회) <축제>(16회) <라디오스타>(26회)로 남우연기상을 받았다. <부러진 화살>로 다시 수상, 남우연기상은 물론 전 부문에서 최다 수상자이다. 안성기에 이어 정일성 촬영감독과 이창동 감독이 각각 여섯 번 수상했다. 

Posted by 배장수

댓글을 달아 주세요

16년 만이다. 배우로 데뷔한 뒤 장편 극영화 주연을 맡은 게, 이 작품으로 폭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게. 배우 박원상(41)이 ‘법정 실화극’ <부러진 화살>(감독 정지영)의 열혈 변호사 ‘박준’으로 각광받고 있다. 마음을 비우고 기다린 덕분에, 박원상을 버리고 박준으로 달려든 데 힘입어. 박원상의 ‘부러지지 않은 화살’.


박원상은 최근 동숭동의 한 술집에서 자신을 알아보고 다가온 낯선 50대 아주머니의 충정에 가슴이 찡했다고 했다.
“<부러진 화살> 잘 봤어요…. 술 많이 드시지 마세요. 건강 헤치면 좋은 연기 못 보게 되잖아요….”

<부러진 화살>에서 박 변호사는 자책감을 술로 잊는다. ‘장은서’ 기자(김지호)의 중재로 ‘김경호’ 교수(안성기) 사건을 맡은 뒤 술을 끊고 변론에 최선을 다한다. 기대했던 특집 방송이 불방되자 화가 나 다시 술을 찾는다. 최종 변론을 통해 사법부에 일침을 놔 극중 방청객은 물론 극장 객석에서도 박수를 받는다.


-술 마시면서 찍었나요.

“물 마셨어요. 동료들 중에서도 몇몇은 정말 술 마시고 했느냐고 묻던데 홍조 띤 낯색은 전적으로 메이크업이에요.”

-캐스팅이 확정될 때까지 마음 졸였지요.

“아뇨. 후보라는 이야기는 이은 대표(명필름)에게 들었어요. 중간중간 누구누구를 섭외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고. 확답을 못 듣는 건 정지영 감독님께 신뢰감을 주지 못한 결과라고, 당연하다고 여겼어요. 그런 중 이은 대표가 감독님과 만나자고 했을 때 ‘제가 하는 거에요? 정말?’ 하고 반문했어요. 뜻밖이었거든요.”


시나리오는 2010년 가을에 일찌감치 받았다. 그런데 캐스팅을 위한 게 아니었다. 이 대표는 박원상에게 백기완 선생의 노래에 얽힌 인생 이야기를 그린 소극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 서는 법이다> 구성·출연·연출을 제안하면서 <부러진 화살>이 영화로 어떨는지 의견을 달라고 했다.


-어땠는지요.

“초고였어요. 120 신(scene)이 넘는. 출연한 작품은 80여 신이에요. 법정드라마여서 선입견이 있었는데 여느 작품과 달랐어요. 술술 한 번도 쉬지 않고 읽었거든요. 법정 장면이 더 좋았어요. 더 속도가 붙고 재밌고. 다음 날 전화 드렸죠. 요대로 찍어도 좋겠다고.”

-출연 확정은 언제 됐나요.

“크랭크 인 보름 쯤 전(정 감독은 상대 배우 안성기에 맞춰 톱스타를 원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에요. 그리고 3~4월 두 달 동안 일사천리로 찍었죠. 촬영 회차가 23회밖에 안 돼요.”

-○○○은 하려고 했는데 소속사 반대하는 바람에 다른 작품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가 VIP 시사회 때 악수하면서 손에 힘을 꽉 준 건가?”

-정 감독께서 원상씨에게 ‘연기로 복수해 달라’고 하셨다는데.

“감독님이 열심히 잘 하라는 말씀을 에둘러 하신 거죠. 그 말씀에 가슴이 뭉클했어요. 감독님 처음 뵈었을 때 진심으로 감사드렸고 기대에 부응하자고 다짐했죠.”


-생존 실존 인물인데 부담스럽지 않았나요.

“시나리오상의 인물을 연기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감독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창원 가서 굳이 만나볼 필요가 없다고 하시면서.”

-만났지요.

“한 번 뵈었어요. 어느날 불쑥 뵙고 싶어서 감독님께 말씀 드리지 않고 내려갔죠. 공판 기록도 받아오고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인연이 묘했어요. <부러진 화살>에서 박준 변호사가 앞장섰던 자동차 노조 사건을 다룬 단편 <빗방울 전주곡>(2003)에 해직 노동자로 출연했었거든요.”

-박훈 변호사에게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성격이 시원시원해 금방 친해졌어요. 이후 촬영장에 오시겠다고 전화를 몇 번 주셨는데 그때마다 당부드렸죠. 오시지 말라고. 최종 변론 장면 촬영 때에는 간곡히 말씀드렸어요. 오시면 촬영하지 않고 그냥 가버릴 거라면서.”


-법정 장면 촬영은 어땠나요.

“쉽게 갔어요. 법정 장면은 촬영 막바지에 일주일 간 몰아서 찍었는데 체력이 바닥나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게 오히려 도움이 됐죠. 여유가 있었으면 군더더기가 붙거나 자칫 오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감독님이 정리해 주셨겠지만. 감독님과 작업한 게 처음인데 군더더기 없고, 템포감 빠르고…. 많이 배웠어요.”

-첫 주연 영화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부러진 화살> 관계자, 관객 모두에게 감사드려요. 안성기 선배님, 문성근 극단 ‘차이무’의 직속 선배님, <하얀전쟁>(1992) 등을 보고 존경했던 이경영 선배 등과 대사를 주고 받은 게 믿기지 않아요. 행복한 인생입니다.”

박원상은 <부러진 화살>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영화 출연 후 이렇게 많은 글을 대하는 게 처음”이라며 “설왕설래 난상토론이 벌어지는 걸 고맙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몇 프로(%)가 사실이다 아니다 등 핵심에서 벗어난 소모적인 논쟁도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는 과정의 하나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어 “진실은 덮으려고 한다고 덮어지는 게 아니다”며 “권위는 주변의 인정이 뒤따라야 진정성을 지닌다”고 역설했다.


박원상은 숭실대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고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졸업 후 연극 <운명에 관하여>의 1인 7역으로 주목받은 뒤 ‘차이무’의 <비언소> 등에 출연했고 <행복한 가족> <양덕원 이야기> 등을 연출했다. 요즘 배우와 연극 연출가로 활동한, 2008년 세상을 떠난 박광정 추모 연극 <서울노트>(2~12일, 대학로 정보소극장)에 변호사로 출연하고 있다. 그림을 상속받은 여인의 기증을 도와주는 변호사다. 이와 함께 케이블 OCN에서 오는 3월부터 방영 예정인 <히어로>에서 양동근 등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Posted by 배장수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