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정 감독(39)의 <신세계>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난달 21일 개봉,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5일 현재 270만2607명(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관람했다. 흥행이 어려운 장르(누아르), 관람등급(청소년관람불가) 등을 감안할 때 대단한 성적이다. 박 감독은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2010),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2010) 등의 시나리오를 쓰고 <혈투>(2011)로 데뷔했다. <신세계>는 두 번째 각본·연출작이다. 박 감독과 <신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국내 최대 범죄조직에 위장 잠입한 지 8년째인 경찰 ‘자성’(이정재), 자성을 지휘하는 고위 경찰 ‘강 과장’(최민식), 자성을 친동생처럼 여기는 범죄조직의 2인자 ‘정청’(황정민). <신세계>는 세 사람이 꿈꾸는 서로 다른 신세계를 그렸다. 백척간두에 선 이들의 동상이몽이 흥미롭다. 각본·연기·연출, 3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한국형 범죄영화의 수작으로 손꼽힌다.

-이야기가 흥미롭다. 어떤 계기로 썼나.
“갱스터 무비(gangster movie), 필름 누아르(film noir)를 좋아한다. 해보고 싶은 영화여서 3년 전부터 작업했다. 1990년에 시작해서 2013년 이후까지 이어지는, 30년에 걸친 에픽 누아르(epic noir)를 구상했다. 이 가운데 중간 이야기를 우선 만들었다. 개인보다 조직·세력 간의 이야기를, 깡패들이 넥타이 매고 정치하는 이야기를 장르 문법에 충실하게 담고 싶었다.”

-세 배우 캐스팅이 적절했다.
“이들이 함께한 건 <신세계>가 처음이다. 최민식 선배를 만나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최 선배는 <악마를 보았다> 때 만났다. <신세계>를 읽고 강 과장과 정청 가운데 강 과장을 선택했다. 최 선배가 하는 정청도 대단할 거라고 본다. 어쨌든 대척점에 있는 정청은 황정민 선배가 맡아줘 날개를 달았다. 둘 가운데에 있는 자성은 누구를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최 선배가 이정재씨에게 전화를 하면서 이뤄졌다. 세 배우의 출연이 확정된 뒤 뿌듯했고 한편으로는 겁이 났다. 누아르 장르에서 꺼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여서 상업적 성과를 반드시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렸다.”

 

-투자 받는 게 용이했는지.
“쉽지 않았다. 데뷔작 <혈투>의 흥행 성적이 좋지 않은 데에다 누아르 장르여서 곡절을 치렀다. 감독을 바꿔라, 예산을 깎아라…. 한국에서 누아르가 원체 잘 안 되기 때문에 이해했다. 연출도 맡으면서 준비 작업을 철저히 했고 제작에 들어간 뒤에는 일정을 준수했다. 날씨가 바뀌면 그에 따라 시나리오를 바꿔 찍었다. 6월 16일부터 9월 14일까지 53회 만에 촬영을 마쳤다.”

-각본·연출 작업 때 어디에 역점을 뒀나.
“재미를 우선으로 했다. 관객들이 바로바로 읽을 수 있도록 쉬워야 한다는 점도 염두에 뒀다. 각 인물들의 밸런스 유지가 가장 중요했다. 이 점에 대해 처음에는 걱정을 했지만 기우였다. 배우들이 더 고민하고 연구를 해와서 서로를 배려하면서 연기를 해줬다. 주연은 물론 조연들도, 그리고 스태프들도 목적이 일치해 빛나는 최상의 조합을 이룰 수 있었다. 영화는 처절하지만 촬영 현장은 굉장히 즐거웠다. 작품이 끝나는 게 아쉬워 더 작업했으면 할 정도로.”

최민식은 후배들이 연기로 놀다 가도록 터전을 펼쳐줬다. 촬영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도 마다하지 않았다. 황정민과 이정재는 디테일이 살도록 만전을 기했다. 일례로 정청이 입국할 때 슬리퍼를 신고 나타나는 건 황정민의 아이디어였다.

 

-<무간도> <도니 브래스코> 등이 떠오른다.
“그 영화뿐만이 아니다. <대부> <흑사회> <헬스 키친> <히트> 등 여러 영화의 느낌과 색감이 담겨 있다. 같거나 유사 장르의 영화인 데에다 좋아하는 작품이고 영향도 많이 받아 그 작품들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역으로 더 적극적으로 담아내려고 하기도 했다.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가져가면서 각 영화들의 정수는 빼먹으려고 했다.”

-영화감독은 언제부터 하고 싶었나.
“고등학교 2학년 때(1991년)부터 영화를 많이 봤다. 집 근처 동시상영관에서 본 SF영화가 계기가 됐다. 한 과학자가 신무기 설계도를 빼앗긴 뒤 스스로를 이식 개조, 반인반기(하반신이 궤도인 사람)가 돼 복수하는 이야기를 그린,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 영화다. 이후 동네 비디오 가게의 작품을 다 봤다. 자연스레 갱스터·누아르·스릴러에 심취했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선생님은 대학에 갈 필요가 없고, 가더라도 1학년만 다녀도 된다고 하고는 했다. 성적에 맞춰 영화랑 상관없는 자연계 학과에 진학했고, 1학년을 두 번 다니고 그만뒀다.”

군대는 부사관을 지원, 5년간 복무한 뒤 중사로 제대했다. 제대할 즈음 벤처협회의 게임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돼 게임회사에 특채로 들어갔다. 그 회사가 사업 아이템을 바꾸는 바람에 동료들과 함께 게임회사를 차렸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당시 유명 제작사 싸이더스HQ가 주최한 시놉시스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시나리오 공부는 어떻게 했나.
“당시에는 번듯한 시나리오 작법서가 없었다. 영화를 보고 시나리오로 옮겨 쓰는 걸로 시작했다.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지하에 있던 ‘키노’가 유일한 영화도서관이었다. 그곳에서 <한국 시나리오 전집>을 읽고 참고를 많이 했다.”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
“10년 정도 된다.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 전에 여러 편의 시나리오 각색을 했지만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생활이 어려워 만화 스토리 작가도 했다. 만화 쪽이 돈은 많이 주지 않지만 영화 쪽처럼 지급을 어기거나 약속한 금액을 후려치지 않아 좋았다. 어쨌든 영화를 계속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분들과 인연을 맺게 돼 오늘까지 왔다.”

-범죄영화 등을 고수할 계획인가.
“그렇지 않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다른 장르도 하고 싶다. 다만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 등은 못할 것 같다. 감독을 계속 하면서 시나리오도 여러 편을 써 선배·동료·후배 감독들에게 주는 게 꿈이다.”

<신세계>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속편 이야기가 이미 거론되고 있다. 박 감독은 “더욱 성과를 내는 게 우선”이라며 “흥행 추이를 좀더 지켜보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거론된 뒤에는 <신세계>의 이전과 이후 이야기 가운데 어느쪽을 먼저 할는지는 관계자들과 논의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신세계>에 앞서 흥행에 성공한, 청소년관람불가 범죄영화로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471만9872명) <추격자>(507만1619명) 등이 있다. <신세계>가 <범죄와의 전쟁> <추격자> 등을 뛰어넘고, <무간도>나 <대부>처럼 속편을 제작, 시리즈 영화로 한국영화사를 장식할는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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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팹시’(김혜수) ‘뽀빠이’(이정재) ‘앤드류’(오달수) 등은 희대의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던 중 홍콩 경찰에 붙잡힌다. 경찰차로 호송되던 중 바다에 떨어진다. 뽀빠이와 앤드류는 탈출한다. 하지만 팹시는 한 손에 찬 수갑의 다른 고리가 자동차에 걸려 있는 바람에 내부에 물이 거의 다 찰 때까지 바둥댄다. 수갑에서 손을 빼내 고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배우 김혜수(41)는 이 장면을 찍을 때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독보적 관능미와 카리스마,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로 손꼽히는, 오랜 경험과 관록을 지닌 김혜수가 촬영 중 이런 두려움에 휩싸인 건 처음입니다. 이처럼 영화 촬영 중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건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훈련·촬영 전후 심경에 대해 김혜수가 털어놓은 말을 재구성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 콘티(만화처럼 글과 그림으로 구성된 대본)을 볼 때에도 이 장면 촬영에 대해 아무 걱정 하지 않았다. 부산 출신으로 컴컴한 바다에도 뛰어들 만큼 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수영도 웬만큼 해 아무 어려움 없이 뚝딱 촬영을 마칠 것으로 예상했다. 때문에 대역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연습 및 촬영 때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연습과 촬영은 4m 깊이의 수조 등을 갖춘 부산의 고양 아쿠아스튜디오에서 했다. 잠수전문가 등이 참여, 촬영 스태프와 함께했다. 극중 장소가 홍콩인 만큼 자동차는 현지에서 가져 왔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훈련장에 도착했다. 최동훈 감독 등 제작진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스윔슈트와 극중 의상을 갖춰 입었다. 그리고 물 속으로 들어가 한 손에 수갑을 차고 자동차에 묶였다. 수갑 고리에서 손을 빼내기 위해 안간 힘을 썼다.

그런데 훈련 중 머리가 어지럽고, 호흡이 가쁘고, 근육이 경직되는 걸 느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게 진정되지 않았다. 느낌이 이상했다. 불길한 생각까지 들었다.

 

훈련을 중단, 물 속에서 나온 뒤 잠수전문가에게 다른 방법이 없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없다는 거였다. 그 말이 너무 싫었다. 손발이 저리고, 숨을 쉬는 게 힘들고, 머리가 어지러운데 다른 방법이 없다니….

 

잠수전문가는 잠시 누워 있다가 다시 해보자면서 그때에는 같이 내려가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고쳐먹으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서울 무섭다니까 과천서 긴다’고, 두 번째 연습은 더욱 힘들었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가 보다, 촬영할 때에는 괜찮겠지’ 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10월 5일 아침, 촬영장에 가는 것 자체가 싫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도 촬영을 해야 한다는 게 막막했다. 다른 방법이 없고, 끔찍한 경험을 다시 되풀이 해야 하는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다. 잠수전문가는 2시간 동안 호흡이 가능한 공기박스를 준비했다면서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귀에 쏙 들어오지 않았다. 내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물 속에 빠진 자동차가 휘청거리고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장면 등은 CG가 아니다. 실제 장면이다. 자동차가 휘청거릴 때 진짜 놀랐다. 혼비백산했다. 요즘말로 ‘멘붕(멘탈붕괴)’ 상태였다. 시야를 확보하고, 호흡기를 물고 입으로 숨을 쉬는 간단한 조처도 헤맬 정도였다. 정말 무서웠다. 어떻게 마쳤는지 모를 정도로 가까스로 촬영을 마쳤다.

촬영을 마친 뒤 아팠다. 그런 중 최동훈 감독의 문자를 받았다. ‘내일 한 커트만 찍자’는 거였다. 즉각 ‘못 가요’라고 답했다. 진심이었다. 이대로 은퇴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부산에 있는 게 싫어 짐을 싸고 싶었다.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은 것처럼 우울했다. ‘이 촬영을 해야 하나? 이게 연기를 잘 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기는 한가…?’

 

뜬 눈으로 밤을 샜다. 촬영시간이 다가오고, 매니저가 숙소로 오고 있을 때 입술이 바싹 탔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심정’이란 표현이 떠올랐다. 모두들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숙소를 나섰다. 촬영을 하자고 나선 게 아니다. 못 하겠다는 의사를 현장에서 가서 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어쩌면 다시 못 볼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휴대폰으로 조카들의 동영상을 받고 통화를 했다. 배우로서 촬영을 앞두고 이런 일도 경험하는구나, 이런 시간도 맞는구나, 만감이 교차했다.

 

■촬영하다가 이대로 죽더라도 어쩔 수 없다
현장에 도착하자 최 감독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못 하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묵묵히 스윔슈트와 의상을 갖춰 입고 심호흡을 했다. 그런데 물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과호흡증에 걸린 것처럼 숨이 가빠졌다. 그런 증세를 이 상황에서 드러낼 수 없어 꾹 참았다. ‘일단 발만 담가보자’는, ‘들어간 뒤 차까지만 갔다가 나오자’는 잠수전문가의 말에 따랐다. 이를 통해 다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어차피 해야 할 거 빨리 끝내 버리자’는 심정으로 촬영에 응했다.

 

그런데 촬영한 장면을 모니터를 보니까 아니었다.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제로 놀랐고,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데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평소 연기를 하면서 실제로 이런 상황이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는데, 가상의 연기가 실제상황을 능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길게 가자는 최 감독의 말에 ‘충분히 길게 한다고 했는데….’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맴돌았다.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며 절박한 심경을 억누르고 한 건데….’ 눈앞이 캄캄했다. 좌절감에 온몸이 푹 꺼지는 걸 느꼈다.


 

 

수조의 물 온도는 섭씨 3도. 사람이 차가움,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는 온도이다. 촬영 중 심신의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마련된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들어가는 것조차 싫었다. ‘앞으로 목욕도 못 하겠구나, 왜 이러지? 내가 모르는 정신 질환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중 최 감독은 이번에 찍은 건 쓸 수 없으니까 한 번 더 찍자고 했다. 물 속이어서 눈물이 범벅인 게 모니터로 안 보이는 게 야속했다. 짧은 시간에 불과했지만 그새 손과 팔의 피부에 상처가 나 얼굴에 이런 현상이 생기면 배우 생활을 계속 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촬영 중 수중 스피커로 들리는 ‘잘 했는데 딱 한 번만 더 찍자’는 최 감독의 주문에 ‘못 하겠다’고 손으로 ‘X’ 표시를 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왜 우리는 이 일에, 이 찰나에 이렇게 매달리는가, 너무 맹목적이고 무모할 정도로. 무엇을 위한 건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관객을 위해서인가, 나 자신을 위해서인가. 무엇 때문인가, 영화를 위한 것인가, 영화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이 순간에 모든 걸 걸게 할까….’


영화와 연기에 회의감까지 들었다. 이런 가운데 ‘촬영하다가 이대로 죽더라도 어쩔 수 없다, 하자’는 심정으로 다시 달려들었다. 최 감독의 “오케이!”라는 말에 감정이 복받치는 걸 느꼈다.

 

배우가 물 속에 빠지고 가까스로 탈출하는 장면은 이전 다른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수갑을 찬 채 자동차에 갇혀 있는 게 이전 영화 상황과 다르지만. 어쨌든 돌이켜 보면 왜 그토록 위협을 느꼈는지 쉬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촬영한 지 수 개월이 지났지만 눈뜨고 볼 수 없고, 아예 보고 싶지 않아 지금도 눈을 질끈 감을 정도로 끔찍한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이 장면은 영화상에 매우 중요하지만 짧게 편집돼 있다. 이틀 동안 찍었지만 실제 촬영은 몇 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27년 동안 숱한 영화와 TV드라마를 찍으면서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는, 배우가 아니면 결코 겪을 일이 아닌 경험을 했다. 태어나서, 배우로서 처음 겪은 감정에 휩싸여 몸서리를 쳤다. 다시는 맞딱뜨리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배우로서 소중한 경험을 했다. 실제로 극도의 불안을 느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는 그것이 스크린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기는 연기로 보여줘야 한다는 걸 수중촬영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과장하면 안 한 것보다 못한 역효과를 내지만 연기는 해야 한다는 걸 절감했다. 내가 치른 고통을 보는 관객들도 느끼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려면 반드시 적절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점을 절절히 체험했다. <도둑들>의 수중장면 촬영은 원점으로 돌아가 연기생활의 전기로 삼을 수 있는 경험이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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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이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사이트(www.kobis.or.kr)에서 한국영화사상 최다 예매량을 기록했다. 25일 오전 8시 현재 12만4902명이 사전(개봉 전) 예매, 신기록을 수립했다. 이와 함께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인터파크·예스24 등에서도 예매율 1위를 기록했다.

 

 

25일 오전 10시 현재 통전망에서 예매 1위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차지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14만6212명(예매점유율 47.0%)이 예매했다. <도둑들>(12만4902명) 점유율은 40.1%였다. 두 영화 예매 점유율이 87.1%로 관객의 관심이 두 영화에 집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3위는 <아이스에이지4:대륙 이동설>로 2만6108명(점유율 8.4%), 4위는 <명탐정 코난:11번째 스트라이커>로 3554명(1.1%), 5위는 <연가시>로 3162명(1.0%)이다.


반면 각종 예매 사이트에서는 <도둑들>이 석권했다. 맥스무비는 <도둑들>(39.99%) <다크 나이트 라이즈>(33.04%) <아이스에이지4:대륙 이동설>(14.81%) <연가시>(4.58%) <무서운 이야기>(3.04%) 순이었다. 예스24에서는 <도둑들>(48.3%) <다크 나이트 라이즈>(23.21%), 인터파크에서는 <도둑들>(42.12%) <다크 나이트 라이즈>(31.73%) 순이었다.

영진위 통합전산망(KOBIS)은 2007년 10월 23일부터 실시간 예매율을 발표해 왔다. 개봉 주 수요일 오전 10시를 기준으로 사전 예매량을 발표, 개봉을 앞둔 영화에 대한 관객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었다. 영화 제작·배급사와 관객에게 유용한 정보로 활용돼 왔다. 통전망 영화관 가입률이 2007년 3월 30일 현재 93%, 2007년 12월 31일 현재에는 97%였다. 25일 현재 전국 371개 극장, 2332개 스크린이 가입돼 있다. 실제 전국 극장의 매표창구 상황과 다름없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개봉 주 수요일 오전 10시 영진위 통합전상망 기준 한국영화 가운데 최고의 사전 예매량은 <7광구>의 4만8580명(40.8%)이다. 이와 함께 맥스무비 62.20%, 예스24 17.43%, 인터파크 38.70%, 티켓링크 39.59%, 네이트 25.80% 등 전 예매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개봉 이후 예매율 등이 급락, 224만2510명·이하 한국영화연감 기준)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이렇듯 사전 예매량(점유율)은 최종 흥행성적과 무관하다. 관객의 관심, 흥행성을 가름하는 척도일 뿐 실제 흥행은 영화의 재미(완성도)에 좌우된다.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2009)와 김한민 감독의 <최종병기 활>(2011)의 사전예매량과 최종 흥행성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전 예매량이 <해운대>는 2만6033명, <최종병기 활>은 3만234명이었다. 최종 성적이 <해운대>는 1132만4433명, <최종병기 활>은 747만633명이다. <해운대>는 <괴물>(1301만9740명) <왕의 남자>(1230만2831명) <태극기 휘날리며>(1174만6135명) 등에 이어 역대 한국영화 흥행 4위에 올라 있다.

 

올해 한국영화 흥행 1위에 올라 있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468만4327명)는 개봉(2월 2일) 예매율은 하루 전 날 38.96%(인터파크) 32.52%(맥스무비) 24.79%(티켓링크) 24%(영진위) 15.64%(예스24)였다. 5월 17일 개봉된 <내 아내의 모든 것>(435만310명·7월 3일 기준)은 이 날 25.8%(영진위)를 점유, <어벤져스>(21.4%)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연가시>는 개봉(7월 5일) 전 날 예매 관객 수가 3만3851명(배급사 기준), 5일에는 5만7975명을 기록했다. 24일 현재 429만6144명(통전망 기준)이 관람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19일 개봉, 24일 현재 300만3048명(통전망 기준)이 관람했다. 배급사에 따르면 예매 관객 수가 18일 오후 9시 30분 현재 31만8519명, 19일 오후 4시 현재 36만9416명이었다.

<도둑들>은 10인의 한국·홍콩 도둑이 2천만 달러에 달하는 희대의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는 과정을 그렸다. 서울·부산·홍콩·마카오를 오가는 6개월 간의 대규모 로케이션을 통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야기와 도심 액션을, 이국의 풍광을 담았다. 김윤석·김혜수·이정재·전지현·김해숙·오달수·김수현, 홍콩의 임달화·증국상 등이 호흡을 맞췄다. 싱가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대만·브루나이·중국·홍콩·태국 등 8개 국에 선판매되는 쾌거를 이뤘다.

최동훈 감독은 이 영화에 앞서 <범죄의 재구성>(2004) <타짜>(2006) <전우치>(2009) 등을 연출했다. <범죄의 재구성>은 212만9358명, <타짜>는 684만7777명, <전우치>는 613만6928명이 관람했다. <도둑들>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 등을 누르고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세워줄는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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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43)은 ‘타짜’다. 연기 및 흥행에서. <완득이> <황해> <전우치> <거북이 달린다> <즐거운 인생> <추격자> <천하장사 마돈나> <타짜> 등에서 영화적 캐릭터를 현실적 인물로 체화, 관객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김윤석이 달린다’.

<완득이>가 달리고 있다. 26일 현재 464만2289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감상, 한국영화 역대 흥행 톱100에서 33위에 올라 있다. 톱100 작품은 <타짜>(684만7777명·14위) <전우치>(605만913명·20위) <추격자>(507만1619명·28위) <거북이 달린다>(301만1993명·67위) 등과 함께 다섯 편. 이 가운데 <완득이>와 <거북이 달린다>는 김윤석의, 김윤석에 의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완득이>는 역대 10월 개봉작 중 1위, <거북이 달린다>는 역대 6월 개봉작 가운데 <신라의 달밤> <강철중:공공의 적 1-1> <포화속으로> <장화, 홍련> 등에 이어 5위에 올라 있다.

-출연작 정할 때 흥행성도 염두에 두는지요.

“영화는 우리 삶을 다뤄요. ‘생존’과 ‘생활’을 그린 두 부류로 나뉘죠. 생존이든 생활이든, 이야기의 타당성,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지가 중요해요. 등장인물의 몸에 피가 흐르는지, 그게 관객의 보편적 감성·정서를 건드리면 흥행이 된다고 봐요.”

-<완득이>에서 그것은 뭔가요.
“가장 온전한 사람관계는 부모와 자식 사이죠. ‘완득’(유아인)이는 17년 만에 엄마가 있고, 필리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요. 이 대목에 전율이 일었어요. 피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 완득이는 과연 어떻게 맞딱뜨려 나갈까? 이때 완득이 담임 ‘동주’(김윤석)는 완득이와 ‘엄마’(이자스민)를 보조하는 존재, 안내자예요. 이 점을 잘 소화하면 된다고 봤어요.”

-<거북이 달린다>에서는.
“수면 위로 드러난 건 형사(김윤석)가 탈주범(정경호)을 잡는 거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딸(김지나)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 실추된 아버지·가장의 위상을 되찾는 거예요. 저간에 깔려 있지만 놀아볼 수 있는 판이었죠. 레드카펫이냐 거적대기길이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절실하게 지켜내야 하는 걸 공감가게 풀어내는 거예요. 드라마와 코미디의 접점, 바람도 막아주고 습도도 조절해주는 창호지(문풍지) 같은 코미디 드라마를 추구했어요.”

-얼마나 예상했는지요.

“이제까지 예상 관객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어요. 편집본을 보고 70점 정도면 어필하겠다는 느낌을 받죠. <완득이>는 그 이상이었어요. 모니터 시사 점수는 굉장히 좋았고. 흥행에서 중요한 점은 감동과 그것을 끌어내는 구체적인 드라마예요. <완득이>는 살아있는 코미디, 웃기면서 공감을 끌어내는 실질적·구체적 드라마가 영화를 끌고 가요.”

-대본 리딩을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신(scene)에 맞춰 그룹별 리딩을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죠. 이 과정을 통해 리얼하게, 담백하게, 다큐에 가깝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톤을 찾아내고 통일시키자고 했어요. 대사를 바꾸기도 하고, 언제 어떻게 치고 나오고 어떻게 받아주고, 의논하면서 연습을 거듭했어요. 애드리브가 아닌가 하는 대사들도 사실은 다 사전에 연습한 거에요.”

김윤석은 부산의 동의대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송강호·오달수 등과 함께 부산 연극배우 출신 영화배우를 대표한다. 뮤지컬 <의형제>에서 함께한 배우 방주란과 2002년에 결혼, 두 아이(10·7살)를 두었다.


-강호씨와 부산에서도 함께 했나요.

“서울에서 만났어요. ‘연우무대’의 <국물 있사옵니다>(1993)에서. <여성반란> <지젤> <자전거>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도 함께 했죠. ‘학전’의 김민기 선생님이 멘토예요. 연기하면서 연출부였어요. 연극은 종합예술이죠. 노동이고. 전방위로 달리고 또 달리면서 완성을 추구하다 보면 정신적·육체적 거품이 빠지지요. 진정성을 갖게 돼요. 그것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근원이라고 생각해요. 연극밖에 모르는 저를 인정해준 부모님, 가족의 사랑 덕분에 외롭지 않았고 의지를 잃지 않을 수 있었죠.”

-영화계에서 동료들이 먼저 뛸 때 조바심이 나지 않았는지.

“바로 그 조바심이 사람을 망치죠. 관건은 내가 카메라 앞에서 온전히 잘 할 수 있느냐 없느냐예요. 조바심을 낸다고 될 일이 아니죠. 평생을 할 일인데 조금 빠르거나 늦게 시작하는 것이 뭔 대수겠습니까.”

휴대폰, 담배…. 김윤석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떠오른 두 가지다. 그의 휴대폰 앞자리 번호는 016이다. 그는 “처음부터 016이었다”고 했다. 2G 서비스가 조만간 종료된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바꿔야 한다는 말에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딸과 약속한 것 중에 지키지 않은 게 있는냐는 물음에 “담배요, 끊어야 하는데….”라며 멋쩍어 했다.

“우리 감독들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전체를 보는 시야도 갖춰야 하고.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 무엇보다 감독은 하고 싶은,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해요. 연기든 연출이든, 중요한 건 기본에 충실하고 정면 돌파하는 거에요. 기본에서 삐끗하면 전체적으로 무너지는 건 순간이죠.”

-닮고 싶었던 배우는 누구였나요.

“예전과 달리 요즘은 우리 배우들이 더 흥미로워요. 특히 젊은 배우들에게 더 눈길이 가요. 나를 움직이게 해요. 정유미·심은경·유아인, 갱년기인가? 하하하….”

김윤석은 요즘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을 찍고 있다. 김혜수·이정재·전지현·김해숙·오달수 등과 함께. 김윤석은 “영화상의 생존과 생활은 곧 배우들의 삶”이라고 했다. “물든 물리든, 닭 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걸로 끝나선 안 된다”며 “한계점 이상의 끈기를 갖고 연기 아닌 연기로 생존과 생활을 보여줘야 하는 살얼음판”이라고 했다. “배우의 길은 그래서 힘들지만 그게 또한 달리고 싶은 매력”이라며 기지개를 켰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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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맥>에서 ‘하대치’가 ‘장터댁’의 육욕을 채워주고 있다. 빨치산 활동에
                                           필요한 군인과 경찰 등의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태백산맥> 화면 캡처.                               

                           
# 꿩 대신 닭?
 베드신도 하고…. 데뷔한 지 햇수로 1년쯤 지났을 때이다. 극중 비중도 높고 매우 중요한 조연급으로 베드신'도' 하는 인물을 만났다. <태백산맥>(감독 임권택ㆍ1994)의 ‘하대치’다. 

감독님이 <태백산맥>을 연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눈이 번쩍 뜨였다. 엄청난 작품인 데에다 ‘하대치’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당시 나는 배우 오정해에게 <태백산맥> 한 질을 선물했다. <서편제>의 오정해가 정말 좋아서, 광팬으로서 그녀의 대학 졸업 기념선물 겸 <태백산맥>의 ‘소화’를 소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경향신문 인근의 한 신문사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잠시 들른 그녀와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선물받고 싶었는데….”라며 기뻐하던 오정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만 해도 ‘하대치’ 역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오정해가 감독님에게 나한테 책을 선물 받았다고 하자 감독님이 고마워하면서 칭찬하셨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기회에 감독님을 뵙고 진지하게 청탁을 해봐….'

이후 며칠을 고민했다. ‘과연 엄청난 배역을 해낼 수 있을까, 할 수 있고 없고는 다음 문제이고 하려면 기자를 그만둬야 한다. 그래, 하게 해주면 그만 두자. 아니, 그 전에 살부터 빼자. 뚱뚱한 빨치산은 말이 안 되니까. 굶주려서 부황이 들었다고 해도 전시에, 빨치산이 이렇게 살이 쪄선 곤란하지. 일단 신체적 조건을 갖추고 감독님께 말씀드리자….'

그리고는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감독님을 뵙게 됐다. 책을 선물해줘 고맙다는 감독님께 하대치 역을 시켜달라고 말씀드렸다. 다이어트를 하고 있으며 10㎏ 이상을 빼고, 회사(당시 레이디경향 영화 담당이었음)를 그만두겠다면서. 계속 배우를 하고 정히 힘들면 다시 취직하겠다면서. 이 말이 부담이 됐는지 감독님은 부정적 운을 뗐다. 

                                  ‘하대치’는 과부가 된 지 10년이 된 ‘장터댁’과 코피가 날 정도로 다섯 번이나
                                           관계를 갖는다. 계란을 먹어가며. 이렇게 ‘장터댁’을 사로잡은 뒤 ‘하대치’는
                                           그녀로부터 갖가지 정보를 얻어낸다. <태백산맥> 화면 캡처.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저녁을 굶고 3개월 동안 밤에 1시간씩 운동을 했다. 30분을 뛰고 30분은 맨손체조 등을 했다. 100% 실행에 옮기지 못한 탓에 7㎏을 빼는 데 그쳤다. 그 즈음 후속 캐스팅이 발표됐고 하대치 역은 한 연극배우에게 돌아갔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었고, 감량과 관계없이 미역국을 먹어 그 동안 고생한 게 억울하기도 했다. 훗날 인공시절 보성군당 부위원장으로 출연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하대치’역에 물은 먹은 뒤 북한에서 내려온 보성군당 부위원장(오른쪽)으로
                                          출연했다. <태백산맥> 화면 캡처.

# 내 복을 마다하다니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감독 박광수ㆍ1995)은 <태백산맥>과 상반된다. 박 감독은 당시 청계피복상가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국내에서 최초로 보도한 경향신문 기자 역을 나보고 하라고 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전태일 평전’에도 나와 있는 자랑스러운 선배를 연기하는 건 더없는 영광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역은 하지 못했다. 다이어트가 너무 힘들어 일찌감치 백기를 들고 말았다.  

                                 
출연키로 한 뒤 수소문한 결과 선배는 호리호리한 분이셨다. 실제 주인공이 호리호리하지 않았다 해도 뚱뚱한 몸매로 선배 역을 하는 게 용납되지 않았다. 전태일 등 근로자들은 못 먹어 말랐고, 영양실조 등에 걸려 있는데 문제의식을 갖고 사태의 심각성을 보도한 기자는 비만이라는 게 어불성설로 여겨졌다. 선배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촬영에 앞서 박 감독에게 1개월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위에서 밝힌 이유를 들어. 박 감독은 흔쾌히 동의해줬고, 곧바로 굶으면서 강도 높은 운동을 시작했지만 1주일을 채 넘기지 못하고 박 감독에게 항복 선언을 했다. 박 감독은 그리 문제될 게 없다고 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실존 인물의 이미지와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결국 그 역은 MBC TV의 김승수 PD가 했다. 

# 더 뚱뚱했으면….
인권영화 <그녀의 무게>(감독 임순례ㆍ2003))에서는 살을 찌워야 했다. <여섯개의 시선>에서 서막을 장식한 <그녀의 무게>에서 맡은 배역은 영어교사. 수업시간에 여학생들의 외모, 목소리, 걸음걸이 등을 문제 삼는 반 인권적 교사인데 그 역시 뚱뚱한 인물이었다. 

                                  <그녀의 무게>에서 똥배가 나온 영어교사가 뚱뚱한 여학생에게 “취업을 하
                                          려면 살 좀 빼라“고 핀
잔을 주고 있다. 자신은 남자라서 괜찮다며.

촬영 1주일을 앞두고 임 감독은 내게 살을 더 찌울 것을 주문했다. 특히 배가 현재보다 더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순간 찌우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나중에 뺄 것을 생각하니 암담했다. 외모가 따라주지 않아도 성격이나마 매력적인 인물로 나오고 싶은데 그 반대인 점도 찝찔했다. 학생들의 인권옹호를 위해 투쟁하는 교사면 좋을 텐데…. 쩝쩝.

그렇다고 배역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차별을 소재로 만드는 첫 인권영화인 데에다 당시 인권위 출입 기자로서 영화 기획에 관여했고, 박광수·박진표·박찬욱·여균동·임순례·정재은 감독의 단편을 엮는 옴니버스 영화라는 점 등이 포기할 수 없는 이유였다.


하루에 대여섯 끼를 먹어 2~3㎏을 찌웠다. 촬영 당일 아침은 밥을 두 그릇을 먹고 물도 세 컵이나 마셨다. 의상도 조금 작아 보이는 양복을 입었다. 살이 찌기 전에 입었던. 그리고 양복 안에는 배가 잘 드러나도록 와이셔츠가 아닌 티셔츠를 입었다. 힘이 좀 들었지만 허리띠를 평소보다 한 구멍 더 졸라맸다.


그럼에도 촬영에 앞서 임 감독은 배가 더 나와 보여야 한다고 티셔츠 속에 뭔가를 집어넣을 것을 주문했다. 촬영장소가 선정여자실업고등학교여서 다행히 이용할 만한 소품이 많았다. 의상팀이 전해준 조그마한 쿠션을 넣자 배가 출산이 임박한 산모보다 더 불룩했다. 배가 너무 많이 나온 데에다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이것저것을 집어넣어 검사를 받았다. 결국 머플러를 넣은 배로 합격을 받아 촬영을 마쳤다. 

참고로 임산모의 배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만든다. 옷을 걷어낸 불룩한 배는 대역을 쓰거나 제작을 해서 붙인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제작을 할 경우 특수분장팀이 여배우의 체형을 뜨고, 체형에 맞게 살 재질의 불룩한 배를 만든다. 3주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작업이 마무리. 여배우의 실제 살과 만든 뱃살이 표시가 나지 않도록 붙이는 작업으로 대략 5~6 시간이 걸린다.

# ‘
설경구식 연기’

몸으로 하는, 신체를 많이 사용하는 연기로는 에로·액션연기가 우선 손꼽힌다. 여기에 한 가지를 추가한다면 ‘설경구식 연기’를 들 수 있다. 어떤 장르·인물이든, 먼저 몸을 만든 다음 그 몸에 마음을 덧입히는 연기이다. 

설경구는
‘고무줄 체중’으로도 유명하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감독 박흥식·2000)를 마친 뒤 <공공의 적>(감독 강우석·2001)에서 권투선수 출신 형사 역을 해내기 위해 14㎏을 찌워 88㎏으로 만들었다. <오아시스>(감독 이창동·2002)에선 시나리오 지문에 ‘갈비뼈가 드러나 보인다’고 적혀 있는 점을 감안해 한 달 보름 동안에 18㎏을 빼 정신장애가 있는 전과자로 변신했다. <광복절특사>(감독 김상진·2002)에서 탈옥한 죄수 역을 소화하기 위해 8㎏을 찌웠고, <실미도>(감독 강우석·2002)에서는 6㎏을 뺐다. <역도산>(·감독 송해성·2002)2004)에선 <실미도> 때 70㎏이던 몸무게를 96㎏으로 만들어 100~140㎏의 전·현직 레슬러들과 경기를 펼쳤고 <공공의 적2>(·감독 강우석·2005)에서는 냉철한 검사가 되기 위해 한 달 동안 16㎏ 정도를 감량했다. 바지 사이즈가 <역도산> 때 39였고, <공공의 적2> 때에는 33에 지나지 않았다.


참고로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을 위해 설경구의 살 빼기 비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8㎏을 뺄 당
시 식사는 하루에 두 끼만 먹었다. 아침은 오전 10시, 저녁은 오후 4시 즈음에 먹었다. 식사량은 평소의 3분의 1로 줄였다. 그리고 하루에 5~6시간씩 운동을 했다. 잠도 5시간 정도로 줄였다. 조금 먹고, 운동하고, 덜 자고. 비법이라고 했을 때 눈이 번쩍 뜨였던 독자들은 배신감을 느낄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적인 다이어트는 덜 먹고 꾸준히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다.


이정재의 경우를 들자면 그는 <순애보>(감독 이재용·2000) 촬영을 앞두고 1주일에 4~5㎏을 빼야 했다. 그는 하루 세 끼를 오렌지 주스, 야쿠르트, 우유 한 잔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팔굽혀펴기 등을 100회씩 했다. 실로 초인적이다. 배우는 몸이 재산이니까 당연하다고 할는지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나 몸은 가장 소중한 재산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니까.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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