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안석환(53)은 단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 대학 1학년 때부터 교내 극예술연구회에서 활동했고 1987년 극단 연우무대의 <달라진 저승>으로 데뷔했다. 영화는 1992년 <명자 아끼꼬 쏘냐>로 인연을 맺은 뒤 1994년 <태백산맥> <너에게 나를 보낸다> 등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7·1998년 동아연극상 연기상 등을 비롯해 2005년 KBS 연기대상 조연상을 받았다. 지난해와 올해 TV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와 <너라서 좋아> <패밀리>, 연극 <대머리 여가수>와 <웃음의 대학>, 영화 <후궁: 제왕의 첩>과 <26년>으로 기치를 높이고 있다.

 

 

“니가 헐라고 허는 일, 그거시 참말로 그 방법뿐인지…. 그거시 맞는 길인지, 솔직히 난 잘 모르겄다. 근디, 최소한 그런 거슬 생각조차 안 해보고 살았던 나는, 틀렸던 것 같아야.” “이태꺼정 암 생각 없이 금남로를 싸댕긴 거시… 인자와서 죄스럽네. 하… 아, 쪽팔리다 잉. 긍께… (웃음) 난 여그 들어와 있어도 싸다.”

영화 <26년>(감독 조근현)에서 화제를 낳고 있는 대사다. 영화 상영 중 이 대사가 나올 때 감탄하거나 고개를 숙이는 중년 관객들이 적지 않다. 최근 육상효 감독은 이 대사가 나오는 장면에서 “가장 울컥했다”고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이 대사는 ‘안수호’(안석환) 사장이 교도소로 면회를 온 ‘곽진배’(진구)에게 하는 말이다. 안수호는 광주 금남로를 주름잡는 조폭 두목으로 대형 나이트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곽진배는 안수호가 신뢰하는 수하이다. 곽진배는 사설 경호업체의 ‘김갑세’(이경영) 대표가 설계한 작전에 따라 저격수 ‘심미진’(한혜진), 정보원 ‘권정혁’(임슬옹), 브레인 ‘김주안’(배수빈) 등과 함께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군인들의 발포는 자위권 발동이었다고 주장하는 파렴치한 전 대통령 ‘그 사람’(장광)을 응징하는 데 앞장선다. 안수호의 대사는 이에 관한 것으로 그는 면회를 서둘러 마치면서 곽진배에게 “돌아보지 말고 앞만 봄서 냅다 뛰어”라고 한다.

“양아치인데 큰놈이에요. 대사가 좀 길었는데 조근현 감독, 진구와 함께 대본 연습을 하면서 짧게 정리했어요. 큰놈답게. 말이 많으면 잘아 보이잖아요. 구체적인 진배와의 관계, 지역 주민의 정서, 시대 상황은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게 좋고.”

 

 

안석환은 <26년>에 대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영화”라며 “역사의 아픔과 교훈은 기록으로 남겨야 영원 불멸성을 지닌다”고 했다. “출연 제안을 받고 영화배우로서 고마움을 느꼈고, 출연·제작진과 고사를 지내면서 기뻤고, 진구·한혜진·임슬옹·배수빈… 시대의 아픔을 안으려는 젊은 배우들이 있다는 게 반갑고 뿌듯했고, 함께 기분 좋게 작업했다”고 털어놨다.

■기관원, 핑크 캐릭터로
안석환이 조폭의 두목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7년 8월 개봉작 <넘버 3>(감독 송능한)가 우선 손꼽힌다. <넘버 3>에서 안석환이 맡은 인물은 깡패 두목 ‘강도식’이다. 넘버 2를 다투는 ‘태주’(한석규)와 ‘재철’(박상면)을 카리스마로 쥐락펴락한다.

 

안석환은 “보스가 말이 많으면 보스답지 않다”면서 “눈빛만으로 말이 되도록 대사를 다 없애거나 줄였다”고 했다. 일례로 강도식이 수하들과 자리를 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의 경우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강도식이 손을 내밀면 담배가 손가락에 끼워지고, 담배를 입에 물면 불이 붙여지고, 탁자에 재떨이가 자동적으로 준비되도록 설정했다.

안석환이 영화배우로 눈길을 끌기 시작한 작품은 1994년 개봉작 <태백산맥>(감독 임권택)과 <너에게 나를 보낸다>(감독 장선우)이다. 9월 17일에 개봉된 <태백산맥>에는 빨치산 토벌에 나선 방첩대장 ‘전원장’으로, 10월 1일에 개봉된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는 기관원 ‘색안경’으로 출연했다. 전원장은 극우 마초이고, 색안경은 여자 같은 기관원이다. 두 영화가 잇달아 개봉된 뒤 관객은 물론 영화인들조차 전원장과 색안경으로 나온 배우가 한 사람인 줄 몰랐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는 안석환이 예명(안진형)을 써 더더욱 다른 배우인 줄 알았다.

“기관원=검은색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장정일 원작인 점을 감안해 색안경의 캐릭터 색깔을 핑크로 설정했죠. 감독님은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했는데 자꾸 말씀드리니까 일단 해보라고 하더군요. 새롭고 재밌으니까 통과된 거에요.”

 

안석환은 “가운을 입고 애드립도 했다”며 “여성적인 말투가 유행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했다. “그전에는 연봉이 400만원 정도에 불과했는데 두 영화를 하면서 1000만원을 넘어섰다”고 덧붙였다.

■술자리 소재·분위기 좋아서
안석환은 단국대 경영학과에 입학하면서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동아리 활동을 해라, 넓게 살아라’는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고른 게 극예술연구회였다. 안석환은 “한두 명이 각자 행동하는 다른 동아리들과 달리 극예술연구회는 여러 명이 빙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데 끌렸다”고 했다.

“입회 이후 수업이 끝나는 오후 5시부터 통금(자정) 전까지 거의 매일 술을 마셨어요. 1학년 신입생부터 제대하고 복학한 고참까지 한데 어울려서. 대화의 주소재가 인생과 예술에 대한 것이었죠. 처음에는 연극보다 그런 술자리가 더 좋았어요.”

등사판 밀어서 만든 대본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연습하고, 망치질해서 무대 만들고, 조명기 닦아 달고, 여학생들은 무대 의상 만들고…. 안석환은 “굽은 못은 펴서 사용할 정도로 어려운 가운데 막은 올라갔고, 관객과 함께 희로애락을 나눴고,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연극에 매료됐다”고 했다.

매년 정기공연 두 번, 워크숍 무대를 두 번 올렸다. 1981년에 입대, 제대 후 복학 전 1년 동안 학비를 벌기 위해 특수운송회사에 다녔다. 1985년 복학한 뒤에도 직장생활을 병행했다. 학생과 직장인으로 바빴고, 수입도 짭짤했지만 견딜 수 없었다. 연극을 하고 싶어서. 결국 1986년 10월에 직장을 그만두고 극단 연우무대에 들어갔다. 이듬해 졸업한 뒤에는 극단에서 살았다. 그해 가을, 연우무대의 <달라진 저승>(김광림 작·연출)으로 데뷔했다.

“데뷔 후 5년 내에 성공하지 못하면 아버지 장사를 잇기로 했어요. 장사하는 게 싫어서 기를 쓰고 연극을 했는데 신통치 않아 5년쯤 했을 때 상심이 컸죠. 그런데 그 즈음부터 출연 섭외가 줄을 잇더군요. 10년 전후로 상도 받으면서 인정을 받았고.”

1997년 <이세상 끝>, 1998년 <남자충동>으로 2년 연속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았다. 한국연극협회 최우수남자연기상과 우수공연상 연기상,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 세계연극제 연극인이 뽑은 인기배우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받았다. 동물 닮기, 자연으로 돌아가기에 기초한 ‘안석환식 인물 창조’로 각광받았다. 2005년에는 <별남별녀>와 <쾌걸 춘향>으로 KBS 연기대상 조연상도 받았다. 방송·영화에 출연하면서 꾸준히 연극을 하는 안석환은 지난해 <대머리 여가수> 각색·연출을 맡았고 <웃음의 대학>을 장기 공연했다. 안석환은 “가슴으로가 아니라 세포가 느낄 정도로 변신해야 한다”면서 “부단히 연구하고 연습해서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게 배우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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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창민 감독(46)의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각광받고 있다. 개봉 26일 만인 지난 8일 800만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을 돌파했다. 현 추세라면 조만간 ‘1000만 고지’에 오를 듯하다. 대구대 축산학과를 졸업한 추 감독은 데뷔작 <마파도>(2005)와 <사랑을 놓치다>(2006),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로 주목받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네 번째 작품이다. 한 유명 감독이 돌연 하차한 뒤 각색·연출을 맡아 재미있고 의미있는 작품으로 풀어냈다. 추 감독과 <광해, 왕이 된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숨겨야 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 이르다’. 승정원 일기 광해군 8년 2월 28일에 적힌 글귀다. 이에 따라 조선왕조실록에서 광해군 15일간의 행적은 지워졌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이 15일간의 전말을 영화로 창작한 작품이다. 암살·역모 위협에 시달리던 ‘광해’(이병헌)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찾고, 도승지 ‘허균’(류승룡)이 물색한 저자의 만담꾼 ‘하선’(이병헌)이 광해가 몸져 누워있던 보름 동안 왕노릇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모 감독이 돌연 하차한 뒤 연출을 맡았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종영 3~4개월쯤 뒤인 작년 9월에 제안을 받았다. CJ E&M이 기획·개발한 시나리오를 읽고 각색을 하겠다고, 각색한 것에 이견이 없으면 하겠다고 한 과정을 거쳐 연출을 맡았다.”

-유사 소재의 <나는 왕이로소이다>(2012) <데이브>(1993) <카게무샤>(1980) 등을 염두에 뒀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만들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왕이 천민으로서 느끼는 이야기였다. <광해~ >는 반대로 천민이 왕이 되어 느끼는 이야기고. <데이브>는 몰랐고, <카게무샤>(1980)는 워낙 좋아하는 영화였다. 다른 영화들을 의식하지 않았다. 저는 저대로 요리사가 요리를 하듯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각색은 얼마나 했나.
“첫 각색에 한 달쯤 걸렸다. 좋다는 회신은 금방 받았다. 이후 3개월여 준비 작업을 했다. 겨울은 촬영하는 데 어려움이 많고 극중 공간에 푸름이 보였으면 해서 피했다. 마침 이병헌씨 스케줄도 2월 이후에 가능했다. 6월까지 찍었다.”

-각색은 어디에 주안점을 뒀는지.
“처음 읽은 시나리오는 완성도가 뛰어났다. 이미 검증받은 시나리오였다. 그 시나리오에 사람들 간의 관계 등 내가 좋아하는 점을 보완했다. ‘조내관’(장광)과 나인 ‘사월이’(심은경) 등 왕 주변 인물의 비중을 더 키웠다. 관계를 늘리고 줄이는 식으로. 눈에 보일 정도로 한 건 아니다.”

 

-하선은 조내관·사월이 등을 가까이 하면서 허수아비에서 벗어난다.
“사람은 주변 사람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는다. 두 사람은 하선과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조연이 살아야 영화가 산다는 점에서도 두 인물의 역할이 중요했다.”

-객석에서 시종 웃음이 잇따른다.
“<광해~ >는 돈이 많이 들어가고(제작비 63억원, 프린트·홍보 마케팅비 30억원) 톱스타가 나오는 상업영화다.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으로 코미디를 차용했다. 코믹한 장면은 현장성이 중요하고 배우들 몫이 크다. 배우들이 ‘촉’이 좋고, 호흡이 잘 맞았다. 배우들의 연기가 잘 살아나도록 찍었다. 인물(배우)이 살아야 영화가 산다고 생각한다.”

하선이 허균을 처음 만난 뒤 돌아갈 때 천장 아래 대들보에 부딪히는 건 이병헌의 아이디어다. 이병헌이 그런 장소에서 찍자고 해 물색을 했는데 운좋게 두 번이나 부딪치는 곳을 찾아냈다. 허균이 퇴청을 앞두고 실제로 엿을 먹으라고하는 장면도 류승룡이 제안했다. 호위무사 ‘도부장’(김인권)이 의심을 했던 하선에게 감복해 울먹이다가 울음을 토하는 장면은 여러 층위로 찍었고, 모니터 결과를 감안해 현재의 것을 썼다.

 

-매화틀(왕의 이동용 변기) 관련 장면이 압권이다.
“사극은 창작의 여지가 많다. 실제에 기반한 가상의 이야기에 관객들이 기분좋게 속아준다. 매화틀은 실제이고 관련 이야기는 만들어낸 것이다. 먹성 좋은 하선과 수라상, 상궁·나인들에 관한 장면 등도 모두 창작한 것들이다.”

-하선이 ‘대동법’을 시행하고 명과 청나라를 두고 실리적 외교정책을 펴려는 장면이 강렬하다. 현 정권의 정책과 대비된다.

“정치적메시지는 분명히 있지만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두고 이야기한 게 아니다. 결코 거대 담론에서 시작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왕에 관한 이야기다. 광해를 재조명한 영화가 아니다. 주인공은 하선이라는 가상의 인물이다. 천민인 그가 왕이 되었을 때 과연 어떤 행동을 할까, 우리가 원하는 왕은 어떤 사람일까….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이런 왕이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경쾌하고 재밌게 우화적으로 담았다. 실제 왕이 하선처럼 말한다면 닭살일 수도 있다. 천민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왕의 말투와 행동, 고뇌여야 관객들이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관객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여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궁의 내·외부 장면이 돋보인다.
“촬영 당시 가장 고민한 부분이 공간 활용이다. 조선시대에 가장 높은 사람의 이야기니까 왕의 거주 공간을 실제처럼 웅장하고 화려하게 담고 싶었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실제 궁궐 촬영은 어렵게 허가를 받아 경복궁과 창덕궁에서 하루씩 찍었다. 내부는 물론 외관 촬영도 제한적이서 안타까웠다. 고증을 철저히 했고 예산 내에서 내외의 공간과 의상·소품 등 미술에 비중을 더 뒀다.”

임금의 침실과 회의실, 대전(정전) 등의 세트는 실제처럼 최대한 크게 지었다. 나무도 베니아판이나 장판이 아니라 원목을 사용했다. 하지만 실제를 오롯이 구현하는 건 예산 등의 문제로 불가능했다. 추 감독은 “미국에서 시사를 했을 때 건축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면서 “더 잘 보여줬어야 했는데 아쉽다”고 털어놨다.

 

추창민 감독은 대구대 축산학과를 졸업했다. 막연하게 영화감독을 동경했던 그는 뒤늦게 충무로에 뛰어들었다. 여균동 감독의 <죽이는 이야기>(1997) 연출부를 거쳐 김성수 감독의 <태양은 없다>(1998)에서 스크립터로 일했고, 장문일 감독의 <행복한 장의사>(2000)에서 조감독을 맡았다. 추 감독은 “스크립터는 영화 내내 감독과 함께 한다”면서 “감독 지망생에게 꼭 스크립터를 해보라고 권한다”고 했다. 김성수 감독을 스승으로 꼽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진정한 정치 지도자와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우리 시대의 열망을 담아 관객들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귀를 열고 들으시라고 소리쳤나이다’ ‘임금이라고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음을 어찌 모르시오’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 ‘사대의 예보다 내 백성의 목숨이 더 소중하오’…. 추 감독에게 이상적인 지도자를 물었다. 추 감독은 조내관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임금이 될 수 없다’고 하는 대사를 든 뒤 “광해와 하선이 다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고 밝혔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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