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현 감독(44)의 영화 <26년>이 오는 29일부터 관객과 만난다. ‘액션복수극’을 표방한 이 영화는 1980년 5월 18일에 일어난 광주민주화운동 26년 뒤의 가상 사건을 극화했다. 조 감독은 2008년 첫 기획 당시 미술감독을 맡기로 했다. 올해 초 각색·연출을 맡아 감독으로 데뷔했다. 지난 여름 “배우·스태프들과 함께 이름모를 수많은 이들의 염원을 담아 모든 것을 걸었다”는 조근현 감독과 <26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전쟁(6·25)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2012년 현재 4122명)를 냈다. 영화 <26년>은 비감한 액션영화다. 지난 26년간 그날의 악몽을 잊을 수 없는 이들이 펼치는 학살의 주범 단죄 작전을 그렸다. 그날 이후 그들이 쓰고 싶은 오늘의 역사는 그날만큼 뜨겁고 그리고 비극적이다. 진구·한혜진·임슬옹·배수빈·이경영·장광 등이 주요 배역을 맡았다.

-미술감독인데 각색·연출을 맡았다.
“미술감독 출신 영화감독이 더러 있다. 앨프리드 히치콕·제임스 카메론·리들리 스콧·팀 버튼 등이 대표적이다. <걸스카우트>(2008) <심야의 FM>(2010) 등을 연출한 김상만 감독도 미술감독 출신이다.”

조근현 감독은 서울대 서양화과 출신으로 <장화, 홍련>(2003)으로 대한민국 영화대상, <형사Duelist>(2005)로 청룡영화상 미술상을 받았다. <음란서생>(2006)으로 대한민국 영화대상·청룡영화상·한국영화평론가상 미술상을 수상했다. 미술감독을 맡은 최근작으로는 <후궁: 제왕의 첩>(2012) <마이웨이>(2011) 등이 있다.

 

-연출을 맡은 경위는.
“널리 알려졌듯이 이 영화는 2008년에 크랭크인을 앞두고 (외압으로 추정되는) 투자자들의 변심으로 무산됐던 작품이다. 당시 이해영 감독이 연출이었고 나는 미술감독이었다. 영화 미술은 제작비하고 밀접한 관계에 있다. 지난 2월, 제작사(영화사 청어람)에서 예산을 줄여 다시 만드려고 할 때 미술적 아이디어를 냈다. 그 일환으로 시나리오를 수정하다가 아예 각색을 한 게 연출을 맡은 계기가 됐다.”

-연출 제안을 받은 건 언제인가.
“4월에 받았다. 각색한 걸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가 읽고 혹시 시나리오 쓴 게 있느냐고 해서 예전에 써놓은 세 편 가운데 한 편을 보여드렸다. 며칠 뒤 연출을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틀을 고민하다가 결심했다.”

 

-왜 망설였나.
“나는 연출 쪽에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이 아니다. 언제든 전력투구할 만한 기질과 풍부한 경험을 지녔지만 원체 유명한 작품이어서 부담이 됐다. 그런데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아니, 누군가는 해야 했다. <26년>은 감독의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 연출자는 원작에서 시작된 수많은 사람들의 숙원과 갈등 등을 슬기롭게 헤아려 배치하고 혼합하여 관객과 소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제한된 비용과 시간,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 점에 내가 장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제작두레를 포함하여 위에 열거한 입장들의 ‘관심’을 넘어선 ‘기대’가 최대의 부담이었다. ‘사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조차 없다면 이 사회가 건강하지 못한 게 아니겠느냐’는 최 대표의 말에 단안을 내렸다.”

 

-원작은 얼마나 봤나.
“나에겐 원작이 두 개 있다. 하나는 강풀의 동명 웹툰이고, 또 하나는 이해영 감독의 시나리오다. 웹툰은 딱 한 번 봤다. 미술감독 때에는 안 봤다. 미술감독을 했다면 끝까지 안 봤을 것이다. 나는 미술적인 창작을 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예전 시나리오는 지금 작품보다 훨씬 상업적이다. 예산을 줄이면서 불거리를 빼야 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웹툰에서 가져올 만한 것을 찾았다. 면면히 흐르는 비장미가 대단했고 각 캐릭터의 끝없는 애정을 보았다. 그 걸 가져왔다.”

-각색·연출 작업 때 어디에 주안점을 뒀는지.
“조폭 ‘곽진배’(진구), 사격선수 ‘심미진’(한혜진), 경찰 ‘권정혁’(임슬옹), 사설 경호업체 실장 ‘김주안’(배수빈)의 역할과 비중을 고루 살려 배치하려고 노력했다. 이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를 상징한다. 당시 계엄군이었던 대기업 총수 ‘김갑세’(이경영)도, 심지어 ‘그 사람’(장광)의 충복 ‘마상열’(조덕제)도 피해자다.”

-김갑세는 끝까지 그 사람에게 사과를 받으려고 한다.
“죽이면 사과를 받을 수 없다. 그 사람이 죽기 전에 국민 앞에 사과를 했으면 한다.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않는 한 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픔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영화니까 상상으로라도 ‘그 사람을 죽였으면 어떨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상상을 한 번은 했을 것이다. 그 사람이 큰 절을 받는 연회장에서 김갑세가 총을 쏘는 장면을 찍기는 했다. 시나리오에 없었지만 CG로 마무리도 했다. 그런데 편집하면서 전후 장면과 도무지 맞물리지 않아 제외했다. 곽진배가 죽일 수 있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그때 진배는 수갑을 차고 있고 총도 맞은 상태여서 불가능하다. 게다가 사람이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그게 쉬울까?”

-촬영 당시 현지 분위기는 어땠나.
“2009년 미술 작업을 위해 광주에 갔을 때에는 ‘죽여요? 못죽여요?’ 하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못 죽인다’고 하면 ‘쓸데 없는 짓 한다’고, ‘잘못하면 우리를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했다. 협조는 커녕 푸대접 받았다. 그런데 올해에는 완전히 달랐다. 통제에 한마디 불평 않고 자비로 생수며 부식을 사다 주고 간 분도 있다. 대전에서 사흘간 대로를 통으로 막고 찍을 때에도 시민들의 전폭적인 협조 아래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광주민주화운동 장면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각색 작업을 시작한 뒤에 결정했다. 사실 처음에 원작자의 웹툰을 쓰는 것도 고려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 등으로 유명한 (주)오돌또기의 오성윤 감독이 고맙게도 투자 형식으로 참여해 주었다. 사실 애니메이션은 실사를 찍는 것보다 시간과 돈이 더 드는 작업인데 심혈을 기울여 취지와 효과가 백분 살아있는 작품을 만들어주었다.”

-김주안이 ‘살아도 살 수 없다’고 하는 대사·장면 등이 인상적이다.
“영화의 주옥 같은 대사는 강풀의 원작과 이해영 감독의 시나리오에서 가져 온 것이 일부 있다. 나이트클럽 사장(안석환)이 교도소에서 곽진배에게 ‘그거슬 생각조차 못한 나는 여 들어와 있어도 싸다’면서 ‘여태꺼정 아무 생각 없이 금남로를 싸댕긴 거시 죄스럽고 인생 쪽팔린다’고 하고, 권정혁이 ‘어른이, 경찰이 돼서도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하고, 김갑세가 전직 대통령인 ‘그 사람’에게 ‘다치셨네요. 발가락. 거기다가 밴드를 감으셨네. 그거 아프다고’ 비웃는 장면이 인상적이라고 꼽는 이들이 많다.”

<26년>이 완성되는 데에는 ‘제작두레’ 방식을 도입한 게 큰 도움이 됐다. 제작두레에 가입한 회원은 1만5000여 명으로 모금된 금액은 7억여원에 이른다. 이는 세계적인 소셜 펀딩 사이트(kickstarter)에서 찰리 카우프만의 최신 프로젝트가 약정받은 금액(약 4억5천만원)보다 훨씬 많다. 조근현 감독은 “대기업 자본 없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모범 사례”라며 “관객과의 만남에서도 폭넓은 의미와 보람을 얻고 싶다”고 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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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의 정지우 감독이 김무열의 퍼스널 무비를 연출, 21일 공개한다. 정지우 감독이 <은교>에 담지 못한 ‘배우 김무열’의 매력을 다시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고 제안한 뒤 만든 영화다. 유명 극영화 감독이 배우 한 사람을 주제로 퍼스널 무비를 만들어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은교>의 정지우 감독(오른쪽)이 김무열에게 촬영할 장면을 연기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작업은 정지우 감독이 <은교>를 촬영하는 내내 극중 ‘서지우’가 아닌 ‘배우 김무열’을 카메라에 꼭 담고 싶은 욕심이 들어 김무열에게 창의적인 작업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정지우 감독으로 인해 다시 태어났다”며 정지우 감독에 대한 깊은 신뢰감과 존경을 표한 바 있는 김무열이 정 감독의 제안에 흔쾌히 임하면서 성사됐다. 김무열의 소속사(프레인)가 제작에 참여한 빈폴·스티키몬스터랩 티셔츠를 모티브로 배우 김무열에게 숨어있는 매력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일종의 퍼스널 무비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번 작업에는 <은교> 촬영 주요 스태프 전원이 동참했다. 안은미 PD와 촬영팀(김태경 촬영감독, 홍승철 조명감독, 정진욱 동시녹음감독)이 대표적이다. 고가의 ‘알렉사 카메라’ 등 <은교> 촬영 당시 사용되었던 모든 장비가 그대로 동원되었다.

 

 

촬영은 <은교> 마지막 촬영을 마친 지 3개월이 지난 5월 15일, 서울시내의 한 빌딩 옥상에서 진행됐다. 정지우 감독이 구상한 콘티에 따라 김무열은 반나절 동안 상반신을 노출한 채 카메라 앞에서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였다. 이 작업을 통해 김무열과 빈폴 티셔츠를 주제로 한 45초 필름과 정지우 감독이 발견한 김무열의 매력을 담은 10분 필름 등 상업과 비상업 사이를 넘나드는 작품을 완성했다.

 

이번 작업에는 김무열과 함께 프레인 소속인 배우 조은지도 참여했다. 조은지는 김무열과 마찬가지로 정지우 감독의 연출에 따라 인간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극적으로 표현해 냈다.

 

                 <은교> 원작가인 박범신 작가가 촬영장을 방문, 박해일ㆍ김무열, 정지우 감독과 기념촬영을 했다.

 

영화로 인연을 맺은 감독이 주연 배우를 위해 퍼스널 무비를 제작한 사례는 이전에 없었다. 외국의 경우 <터미네이터>와 <터미네이터2> <TRUE LIES>를 함께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캘리포니아의 에너지 안건에 반대하는 영상을 함께 제작한 바 있다. 제작진은 “하지만 목적성 없이 감독과 배우의 우정으로 진행된 순수한 케이스는 정지우ㆍ김무열 프로젝트가 처음”이라고 밝혔다.

 

정지우 감독 연출, 김무열 주연의 퍼스널 무비는 21일 이후 순차적으로 공식 홈페이지(www.prainXcjw.com) 와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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