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에타>의 남녀 주인공 이정진과 조민수는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로 베니스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피에타>가 최우수작품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는 기쁨을 만끽했다. 조민수는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내정됐지만 ‘황금사자상 수상작은 다른 주요 부문 상을 함께 받을 수 없다’는 영화제 규정에 따라 제외되는 안타까움을 삭여야 했다.

 

                 김기덕 감독과 조민수, 이정진 등 <피에타> 관계자들이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중 전세계

                     사진기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사진 제공 <피에타> 투자ㆍ배급사 NEW.

#이지은·조민수 등 10여 명, 3대 국제영화제 직행
이정진과 조민수가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것은 <피에타>가 처음이다. 두 배우와 달리 조재현은 김 감독과 네 번째로 함께한 영화 <섬>으로 베니스 레드카펫을 밟았다.

                    김기덕 감독과 조민수ㆍ이정진이 알레르토 바르베라 베니스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기념촬영을 갖고 있다. /사진 제공 <피에타> 투자ㆍ배급사 NEW.

 

이정진·조민수처럼 김 감독의 영화에 처음으로 출연, 베니스·베를린·칸 등 이른바 3대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배우들은 10여 명이다. 곽지민·김유석·서원·서정·양동근·이승연·이지은·이혜은·장첸·재희·전성환·한여름(가나다 순)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가운데 처음으로 베니스·베를린·칸 등 이른바 3대 국제영화제와 인연을 맺은 배우는 이지은과 이혜은이다. <파란대문>(1998)으로 제49회(1999)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진출했다. 파노라마는 최근 1년간 만든 영화 가운데 주목할 만한 작품을 소개하는 부문이다. 판이한 두 동갑 여성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파란대문>에서 이지은은 창녀 ‘진아’, 이혜은은 진아를 저주하다가 동질감을 느끼는 여대생 ‘혜미’로 출연했다.

                                           <섬>의 ‘희진’(서정)과 ‘현식’(김유석). 더이상의 탈출구가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힌 이들은 미묘한 교감을 나누면서 파국을 맞는다.

 

서정·김유석·조재현은 처음으로 장편 ‘경쟁’ 부문에 입성했다. <섬>(2000)으로 제57회(2000)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서정은 낮에는 음식을, 밤에는 몸을 파는 낚시터 주인 ‘희진’ 역을 맡았다. 김유석은 살인을 한 뒤 낚시터에 숨은 경찰 ‘현식’, 조재현은 낚시꾼들에게 성 매매를 알선하는 ‘망치’로 출연했다.

조재현은 이후 2년 연속 국제적 주목을 끌었다. <수취인불명>(2000)으로 제58회(2001) 베니스국제영화제, <나쁜 남자>(2001)로 제52회(2002)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이처럼 3년 연속 3대 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은 한국 배우는 조재현이 유일하다. <수취인불명>에서는 혼혈이어서 따돌림을 받는 ‘창국’(양동근)을 받아준 개장수 ‘개눈’으로, <나쁜 남자>에서는 여대생 ‘선화’(서원)를 창녀로 만든 사창가 깡패 두목 ‘한기’로 열연을 펼쳤다.

                   <사마리아>의 ‘재영’(한여름ㆍ오른쪽)과 ‘여진’(곽지민). 원조교제를 하던 재영이 사고를 당한 뒤 여진은

                        재영의 수첩에 적혀있는 남자들을 차례로 찾아가던 중 형사인 아버지(이얼)의 눈에 띄게 된다.

 

곽지민·한여름·이얼은 김기덕 감독의 3대 국제영화제 첫 수상작 <사마리아>에서 호흡을 맞췄다. <사마리아>(2004)는 제54회(2004)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아 ‘은곰상’(감독상)을 받았다. 세 배우 가운데 곽지민은 엄마와 함께 베를린국제영화제에 동행, 레드카펫을 밟았다. 시상식 전에 귀국, 현장에서 김 감독의 수상을 축하하지 못했다.

 

이승연·재희는 김기덕 감독의 3대 국제영화제 두 번째 수상작 <빈집>에서 함께했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여자 ‘선화’(이승연)와 빈집만 골라 전전하는 남자 ‘태석’(재희)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제61회 베니스국제영화제(2004)에서 ‘은사자상’(감독상)을 받았다. 김 감독은 한 해에 베를린과 베니스에서 연거푸 감독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전성환·한여름은 <활>(2005), 장첸·지아는 <숨>(2007)으로 칸국제영화제와 인연을 맺었다. <활>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숨>은 장편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이들과 달리 김예나·이나영·오다기리 조·주진모·장동건(가나다 순) 등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로 3대 국제영화제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주진모는 <실제상황>(2000), 장동건은 <해안선>(2002), 이나영과 오다기리 조는 <비몽>(2008), 김예나는 <아멘>(2011)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실제상황>은 제25회(2001) 모스크바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고, <해안선>은 제7회(2002)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비몽>은 제57회(2009) 산세바스찬국제영화제 ‘공식’ 부문, <아멘>은 제59회 산세바스찬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조재현, 김 감독과 다섯 번 찰떡 궁합
김영민·지아·조재현·하정우·한여름 등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두 편 이상 출연했다. 김영민은 <수취인불명>과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2003), 지아는 <해안선>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숨> <비몽> 등 네 편, 조재현은 <악어>(1996) <야생동물보호구역>(1997) <섬> <수취인불명> <나쁜 남자> 등 다섯 편, 하정우는 <시간>(2006)과 <숨>, 한여름은 <사마리아>와 <활>에 출연했다.

 

이들 가운데 조재현은 오늘의 김기덕 감독이 존재하게 된 데 일등공신이다. <악어> <야생동물보호구역> <나쁜 남자>에서 주연, <섬>과 <수취인불명>에서 조연을 맡았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조재현이 다섯 편의 영화에서 펼쳐낸 각각의 인물은 김기덕 감독 영화의 뿌리에 다름 아니다. 이 뿌리는 김 감독의 초창기 영화는 물론 최근작 <피에타>까지 뻗어 있다. <피에타>의 ‘강도’(이정진)는 ‘용패’ ‘청해’ ‘망치’ ‘개눈’ ‘한기’ 등과 궤를 같이 한다. 한 뿌리에서 자란 줄기이자 가지이다. 사는 곳이 달라지면서 매번 그곳에서 달리 또아리를 튼 인물로도 읽힌다.

<악어>의 용패는 한강다리 밑에서 자살한 사람의 시체를 숨겨두었다가 유족에게 뜯어낸 돈으로 살아간다. 애인에게 버림받고 자살한 여자를 구해준 뒤 그녀를 강간하고 학대하면서 곁에 둔다. 동료의 그림을 훔쳐 판 돈으로 살아온 <야생동물보호구역>의 청해는 밀입국한 북한 특수부대 출신 ‘홍산’을 돈벌이에 이용하고 범죄에 끌어들인다. <섬>의 망치는 낚시꾼들에게 여자를 데려다주고 받은 돈으로 티켓다방 주인이다. “개를 잡으려면 개와의 눈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강변하는 <수취인불명>의 개장수 개눈은 혼혈아 ‘창국’을 개처럼 다룬다. 우리에 집어넣은 뒤 오토바이에 싣고 달리기도 한다. <나쁜 남자>의 한기는 여대생 ‘선화’를 납치, 모든 것을 빼앗은 뒤 사창가의 창녀로 만든다.

 

조재현은 실로 악락한 이들의 안팎을 심도있게 그려냈다. 저주를 퍼부으면서 한편으로 동정심을 자아내게 하는 캐릭터로 형상화했다. 김 감독은 전작과 달리 <피에타>에서는 ‘강도’의 양면을 보여준다. 나아가 ‘미선’(조민수)으로 하여금 “왜 이렇게 슬프냐… 놈도 불쌍하다”고 말하게 한다.

조재현은 한때 ‘김기덕의 페르소나(분신)’로 손꼽혔다. 조재현은 이를 통해 ‘연기파 배우’로 각광받았다. 김 감독은 조재현을 등에 업고 국내외 영화계의 물꼬를 텄다. 험난한 파고를 넘나들면서 ‘실력있는 감독’으로 자리를 잡아나갔다.

 

#김기덕, <봄여름가을겨울~ >서 주인공
조재현과 김 감독은 <악어>에서 ‘운명적으로’ 만났다. <악의>의 ‘용패’ 후보자는 원래 최재성·박상민·한석규 등이었다. 김 감독은 이들이 내건 출연 조건을 수용할 수 없었다. 이들을 캐스팅하는 데 실패한 뒤 어느날 김 감독은 우연히 MBC 특집극 <신화>를 보고 조재현을 찾았다. 이렇듯 조재현의 이들의 대안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최고의 배우였다.

조재현은 김 감독을 만난 뒤에 시나리오를 읽었다. 어린 시절과 파리에서의 유랑생활, 시나리오작가 등단 과정 등은 이제껏 만나온 여느 감독과 달랐다. <악어>는 더더욱 달랐다. 조재현은 이런 저런 조건을 따지지 않고 출연키로 했다. 방송국 카메라맨이었던 형이 사고로 세상을 뜬 뒤 배회하던, 배우로서 달려들만한 새로운 무엇인가를 기다리던 그는 거침없이 용패로 변신했다.

<악어>를 통해 연기에 쾌감을 느낀 조재현은 김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야생동물보호구역>에 흔쾌히 동참했다. ‘청해’든 ‘홍산’이든, 어떤 역이 주어지든 개의치 않았다. 조재현의 상대역 후보는 최민수·유오성·박철 등이었다. 조재현은 최민수가 어떤 역을 택하느냐에 따라 다른 역을 하기로 했다. 유오성과 박철에게는 청해 역을 제안했다. 세 배우 모두 불가. 장동직이 홍산을 맡으면서 조재현은 청해로 출연했다. 5억원의 예산으로 파리 올로케이션을 하느라 조재현은 주연 배우 외 제작부장 일까지 도맡았다. 이런저런 막일에 엑스트라 통제도 했다.

<파란대문>에는 맡기로 한 역이 없어지면서 출연하지 않았다. <섬>에서는 티켓다방 주인 역을 맡았다. <실제상황>은 연습까지 했다. 크랭크인 3일을 앞두고 조재현은 김감독의 휴대폰에 ‘느낌이 안와 못하겠다,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김 감독은 ‘내가 미안하다’고 응답했다. ‘어떻게 할 거냐’는 조재현의 물음에 김 감독은 ‘물색하겠다’고 했다. 크랭크인을 불과 3일 앞둔 상황에서. 조재현은 김 감독의 인간성에 매료됐고 깊은 신뢰감을 갖게 됐다.

                                  조재현은 <수취인불명>에 TV드라마를 찍으면서 ‘개눈’ 역을 해냈다. 극악한

                                           인물의 면면을 가감없이 펼쳐냈지만 아쉬움이 많았다. 김 감독과 함께 하는

                                           걸 자제하자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수취인불명>은 이 일환으로 출연했다. 김 감독은 촬영 사흘 전 조재현에게 “머리 깎고 내가 해야 할 상황인데 그조차 주위에서 반대한다”며 도움을 청했다. SBS 미니시리즈 <루키>로 바빴던 조재현은 김 감독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를 찍으면서 개눈에 몰입하는 게 쉽지 않았다. 배역에 대해 준비할 시간도 없이 짬을 내서 찍다보니 아쉬움이 많았다. 조재현은 이에 대해 “애무도 않고 일방적으로 섹스를 한 듯한 느낌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수취인불명> 이후 두 사람은 서로의 발전을 위해 “함께하는 걸 자제하자”고 했다. “한다면 미리 충분한 시간을 갖자”고 했다. 실제로 조재현은 <나쁜 남자>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김 감독 역시 다른 배우를 염두에 뒀다. 조재현은 김 감독에게 한 배우를 추천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조재현은 김 감독으로부터 함께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촬영까지 남은 시간은 1개월 정도였다. 조재현은 보름을 더 요구하고 김 감독의 제안에 응했다.

조재현은 <나쁜 남자>의 한기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남우주연상 후보로 지목됐다. 조재현은 “당시 데일리지에 남우주연상 후보로 게재됐는데 평점이 좋지 않아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반면 이번에 조민수는 작품이 너무 좋아 못받은 케이스”라고 덧붙였다.

                김기덕 감독은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에 ‘장년 승’으로 출연했다. 안성기, 도올 김용옥 교수, 조재현과

                    김갑수 등을 섭외하는 데 실패, 장년 승으로 출연해 남다른 연기력을 선보였다.

 

조재현은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2003)의 ‘장년 승’ 제안도 받았다. 김 감독이 이 배역에 우선 손꼽은 후보는 안성기, 도올 김용욕 교수 등이었다. 김 감독은 조재현 외 김갑수를 캐스팅하려고 했다. 다른 작품과의 스케줄·삭발 등의 문제로 모두 백지화된 뒤에 이 배역은 김 감독이 직접 해냈다. <나쁜 남자>에 한기 수하들의 몰래카메라에 찍힌, 엉덩이만 보이는 손님으로 출연한 적이 있는 김 감독은 연기력도 인정받았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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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51)은 1996년 <악어>로 데뷔, 올해 <피에타>까지 열여덟 편을 만들었다. 세 번째 작품 <파란대문>(1998)부터 <피에타>까지, 이른바 3대 국제영화제에만 열 편(칸-세 편, 베를린-세 편, 베니스-네 편)이 초청받았다. 2004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열 번째 작품 <사마리아>로 ‘은곰상’(감독상), 같은 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열한 번째 작품 <빈집>으로 각각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열여섯 번째 작품 <아리랑>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그랑프리를 받았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은 한국의 저예산 독립영화를 대표한다. 6일 개봉되는 <피에타> 역시 한 달 동안 12회 차 촬영을 거쳐 완성했다. 악마 같은 강도(이정진) 앞에 어느 날 엄마라는 여자(조민수)가 찾아오면서 두 남녀가 겪는 혼란과 잔인한 비밀을 그렸다. 극단적 자본주의 세계에서 빚어지는 사람들 간의 충돌을 조명했다. 피에타는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을 지녔다.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어떤 성적을 거둘는지, 국내 관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는지 주목된다. 

 

■ 맞춤법 모른 채 시나리오 작업

김기덕 감독은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다. 졸업 후 청계천의 공장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세차장 등에도 다녔다. 그림과 사진을 독학으로 깨쳤다. 감독이 되는 과정에 대부분 거치는 연출부 생활도 하지 않았다. <양들의 침묵> <퐁네프의 연인들> 등, 영화를 처음으로 본 것도 서른두 살 때였다.

해병대 복무를 마친 뒤 출국, 3년 동안 프랑스에서 지냈다. 그림을 그려 거리 전시회를 갖고 판매한 돈으로 생활했다. 1993년 봄, 일시 귀국했다가 우연히 한 신문에 난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 전신)의 시나리오 공모 광고를 본 걸 계기로 진로를 바꿨다.

김 감독은 자신의 프랑스 생활 경험담 등을 소재로 방송사 6부작 드라마와 장편 영화 시나리오를 써서 출품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원래 계획대로 다시 프랑스로 가자는 마음 한 켠에 오기가 발동,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부설 영상작가전문교육원 기초반에 등록했다. 주간반인데 야간반까지 도강을 하면서 6개월간 수업을 받았다.

수강생은 대학 국문과·문예창작학과 출신과 이미 영화 현장에서 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김 감독은 영화 기초는 물론 맞춤법조차 엉망이었지만 주눅들지 않았다. 과제물인 단편 시나리오를 쓰는 동료들과 달리 오기와 뚝심으로 장편 창작에 몰두했다. 세 편을 완성, 교육원 내 창작상에 출품했다. 응모작은 다섯 편에 불과했지만 김 감독의 작품은 세 편 모두 수상하지 못했다.

김 감독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전문반에 등록했다. 6개월간 수업을 받으면서 또 세 편을 완성, 창작상에 내놓았다. 수료식 때 <화가와 사형수>로 대상을 수상, 10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그러나 달라지는 게 없었다. 작가라고 불러주는 이도 없었고 영화사에서 찾아주지도 않았다. 다시 연구반에 등록, 장학생으로 공부하면서 두 달에 한 편씩 시나리오를 썼다.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에 계속 출품했다. 예심에서 두 번 떨어지고 1993년 말 세 번째 응모 때부터 본심에 올랐다. <검은 해병>이 34강, <배>가 24강, <이중노출>이 8강에 올랐다. 그리고 1995년 7월 <무단횡단>으로 대상을 수상, 충무로에 입성했다.

<무단횡단>은 처음에는 예심에서 떨어졌다. 심사를 맡았던 박철수 감독이 옆방의 심사위원들에게 갔다가 예선 탈락작 가운데 하나인 <무단횡단>을 우연히 읽고 본인 심사 시나리오에 첨부해 본선에 올렸고, 전체 심사 결과 대상을 받았다.

 

■<악어> 제작사 세 번 바뀐 끝에 완성
김 감독은 대상 수상 후 한맥영화사와 하명중영화제작소 전속 작가로 활동했다. 영화사에 본 충무로 상황은 열악했다. 영화사와 자신이 지향하는 영화도 달랐다. 김 감독은 사표를 내고 데뷔작 준비에 들어갔다. 성동구 자양동에 살면서 성수대교·한강대교 등을 오가면서 곧잘 목격했던 자살사건과 시체를 건져주면서 살아가는 일명 ‘머구리’를 소재로 <악어>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투신자살한 이들의 시체를 숨겨두었다가 유족에게 넘겨주고 받은 돈으로 살아가는 부랑자(조재현)의 삶과 죽음을 그렸다. 현장 취재, 자료 수집을 거쳐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전국의 계곡·수영장을 뒤져 수중촬영 대안까지 마련했다.

제작~개봉 과정은 지난했다. 제작자들은 김 감독의 연출부 경험이 전무한 점 등을 놓고 시나리오만 팔 것을 요구했다. 김 감독은 돈보다 연출을 고집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 제작사의 요청으로 제작자가 선정한 촬영감독에게 테스트까지 받고 시나리오·미술감독료까지 포함해 500만원을 받고 연출도 맡았다.

주인공 ‘용패’ 캐스팅도 난항을 거듭했다. 출연료·일정 등의 문제로 최재성·박상민·한석규 등의 캐스팅이 물거품이 된 뒤 조재현이 남다른 조건 없이 출연을 결정,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 촬영한 장면들은 연출 미숙으로 모두 버려야 했다. 2억여원의 제작비가 추가될 상황을 맞으면서 중단 직전까지 간 끝에 가까스로 완성할 수 있었다. 4개월여 촬영 도중 제작사가 세 번이나 바뀌었다. 김 감독은 이 과정에 촬영감독에게 핀잔을 많이 들었다. 한 제작자에게는 맞기까지 했다. 수중촬영장을 재점검하느라 촬영장에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도착한 게 화근이었다. 김 감독은 울면서 김밥을 먹은 뒤 스태프를 다시 규합, 촬영을 재개했다. 어떤 모욕을 당하더라도 촬영·제작 중단은 피해야 했기에. 이 제작자는 조재현의 중재로 김 감독에게 사과했다.

촬영 중에는 현장 인근 다리에서 세 명이 투신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한 명은 사망했고 두 명은 구조됐다. 출동한 구조대와 경찰, 머구리들의 실제상황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이 충격으로 며칠간 촬영이 중단됐고, 장마로 모든 자재가 물에 잠기기도 했다.

마지막 촬영은 수중장면이었다. 세트 회사에서 2000만원을 요구하자 김 감독은 재료를 구입하고 인부를 고용해 700만원을 들여 수중 세트를 만들었다. 한강대교 교각 세트를 올림픽수영장 5m 풀에 집어넣고 바닥에 모래를 깔아 촬영을 했다. 조재현은 72시간 동안 물 속을 드나들며 사투를 벌였다.

 

영화를 완성한 뒤에 김 감독은 극장주를 찾아다녔다. 영화를 보고 개봉해 달라고. 그런 끝에 서울 명보극장에서 1996년 11월 16일에 개봉, 3284명(한국영화연감 기준)이 관람했다. ‘얼치기 아마추어 영화’ 등 혹평과 더불어 ‘어설프지만 모든 걸 뛰어넘으려는 주목할 영화’ 등 잠재력도 인정받았다. 천리안·나우누리·유니텔 영화동호회 회원들은 합동 유료 시사회를 마련, 동전까지 모아 김 감독에게 전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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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 2012.09.26 0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어요.

■김기덕 감독, 역대 최다
김기덕 감독 열여덟 번째 영화 <피에타>가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베니스국제영화제 측은 26일 오전 11시 30분(현지시각)에 기자회견을 갖고 <피에타>를 경쟁 부문 초청작으로 발표했다.

 

                 김기덕 감독은 지난 19일 조민수ㆍ이정진과 함께 121년 역사를 지닌 서울주교좌성당 본당에서 <피에타> 제작

                     보고회를 가졌다.

 

한국영화가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것은 <친절한 금자씨>(2005) 이후 7년 만이다. 김 감독은 <빈집>(2004) 이후 8년 만에 초청받았다.

 

김 감독은 <빈집>으로 ‘은사자상’(감독상)을 비롯해 국제비평가협회상·미래비평가상·세계가톨릭협회상 등 세 개의 비공식상을 받았다. 시상식에서 감독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김 감독은 <하류인생>으로 경쟁부문에 함께 초청받은 임권택 감독에게 정중하게 악수를 청하고 무대에 오른 뒤 “지금 제가 인사를 드린 분이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존경받고 가장 오랫동안 영화를 만드신 분”이라고 소개했고,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두 감독에게 긴 박수를 보냈다.

 

 

실제로 이 영화제 경쟁 부문에 처음으로 초청받은 한국 감독은 임권택 감독이다. 임 감독은 <씨받이>로 1987년 제44회 때 초청받아 여우주연상(강수연)을 받았다. 임 감독은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 전신) 직원과 함께 영화제에 참석했다. 강수연은 공사로부터 권유조차 받지 못했고 임 감독이 떠난 줄도 모르고 있었다. 임 감독은 한 심사위원의 언질에 조그만 상이라도 받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지만 일본에서 마련한 ‘임권택 영화제’에 참석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상식 이틀 전에 베니스를 떠났다. 여우주연상은 공사 직원이 대신 수상했다.

 

당시 강수연의 수상은 국가적인 경사였다. 1961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마부>(감독 강대진)가 ‘은곰상’을 수상한 이후 26년 만에 3대 국제영화제에서 본상을 수상한 것이다. 관련 영화인들은 어깨가 으쓱해졌다. 강수연은 여우주연상 상장에 각 스태프에게 그들의 이름을 새겨넣은 이미테이션 상장을 만들어 증정하기도 했다.

 

<씨받이>에 이어 장편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작품은 아홉 편이다. <거짓말>(감독 장선우) <섬>(김기덕) <수취인불명>(김기덕) <오아시스>(이창동) <바람난 가족>(임상수) <빈집>(김기덕) <하류인생>(임권택) <친절한 금자씨>(박찬욱) <피에타>(김기덕) 등이다. <거짓말>은 1999년(56회), <섬>은 2000년(57회), <수취인불명>은 2001년(58회) <오아시스>는 2002년(59회), <바람난 가족>은 2003년(60회), <빈집>과 <하류인생>은 2004년(61회), <친절한 금자씨>는 2005년(62회), <피에타>는 2012년(69회)에 초청받았다.

 

 

김기덕 감독은 4회, 임권택 감독은 2회 초청받았다. 한국영화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년 연속 초청받았다. 2004년에는 두 편이 초청됐다.

 

<오아시스>는 <씨받이> 이후 한국영화의 위상을 전세계에 알렸다. 이창동 감독이 감독상(Premio Speciale Per La Regia), 문소리가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신인배우상(Marcello Mastroianni Award for Best Young Actor or Actress)을 수상했고,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FIPRESCI Award), 미래의 영화상(Cinema Verine Prize), 에큐메니칼상(Ecumenical Prize) 등 세 개의 비공식상을 수상했다. <친절한 금자씨>는 ‘미래의 영화상’과 ‘베스트이노베이션상’ 등 두 개의 비공식을 받았다. 미래의 영화상은 18∼21세의 젊은 영화학도들이 심사해 수여하는 상이고, 베스트 이노베이션상은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유럽의 타국 영화인들의 모임인 ‘아카시네마 지오바니’(arcacinema giovaney)가 선정하는 상이다.

 

 

<피에타>는 악마 같은 남자 ‘강도’(이정진) 앞에 어느 날 엄마라는 ‘여자’(조민수)가 찾아 오면서 두 남녀가 겪게 되는 혼란, 그리고 점차 드러나는 잔인한 비밀을 그렸다. 이정진·조민수 외 우기홍·강은진·조재룡 등이 함께했다.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 제작보고회 때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고해성사’를 주제로 관객과 OX퀴즈를 갖고 있다.

 

김기덕 감독은 “7년 만에 한국영화를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해주셔서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피에타>에 대해 “돈 중심의 극단적 자본주의 사회 속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사라지고, 불신과 증오로 파멸을 향해 추락하는 우리의 잔인한 자화상에 대한 경고의 영화”라고 소개했다. “<피에타>의 충격적인 라스트 장면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피에타>를 통해 우리의 문제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조민수는 “베니스, 아름다운 곳으로 초대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배우로서 많은 열정을 얻었던 영화 <피에타>가 또 한번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되어 너무 기쁘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정진은 “10년 넘게 연기생활을 하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군요. 김기덕 감독님을 비롯한 <피에타>의 모든 관계자 분들과 대한민국 영화 관객 분들께 감사 드린다”며 “앞으로 더 많은 작품으로 관객 여러분을 찾아 뵙고, 이 꿈만 같은 초청이 더 많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오는 8월 29일 막이 오른다. 베니스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 초청작의 월드프리미어 규정에 따라 국내 개봉은 원래 예정에서 1주일 연기, 9월 6일로 확정되었다.

 

■이두용 감독, 최초 진입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칸·베를린과 더불어 3대 국제영화제로 손꼽힌다. 지구촌의 숱한 국제영화제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다. 1932년에 시작, 34년까지 베니스 비엔날레의 부속 행사로 열렸다. 이듬해 독립, 매년 8월 말이나 9월 초부터 2주 동안 열린다.

 

이 영화제는 국제적로 알려지지 않은 일본영화 <라쇼몽> <우게츠 이야기> 등을 발굴, 시상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운영상 분쟁이 일면서 1969년부터 시상 제도를 없애고 비경쟁으로 열렸다. 이에 따라 영화제 열기가 수그러들자 1974년에 경쟁 제도를 재도입했다. 최우수작품에 수여하는 ‘황금사자상’을 비롯해 은사자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감독상·남녀주연상과 최고의 신인 남녀 배우에게 주어지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 등을 시상하고 있다.

 

예전 영화진흥공사에서 발간한 ‘한국영화자료편람-초창기부터 1976년까지’에 따르면 한국영화는 제22회 때 <성춘향>(감독 신상옥)으로 인연을 맺었다. 이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손님과 어머니>와 <꿈>, 이만희 감독의 <열두냥짜리 인생>과 <물레방아>, 김수용 감독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와 <맨발의 영광>, 유현목 감독의 <순교자>와 <속 한>, 김기덕 감독의 <남과 북>, 정진우 감독의 <하숙생>과 <자녀목>, 이성구 감독의 <메밀꽃 필 무렵>과 <지하실의 7인>, 조문진 감독의 <새색시>, 이두용 감독의 <피막> 등 17편이 초청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청(상영) 부문은 확인되지 않고 않다.

 

 

처음으로 수상한 작품은 <피막>이다. 1981년 38회 때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이 영화는 경제·법조인 등으로 구성된 단체에서 주는 특별상(ISDAP)을 받았다. 이감독은 이와 관련해 “외무부의 연락을 받고 참석했다”며 “행사장에 태극기가 걸렸다는 훈령을 받고 밀라노에 있는 총영사가 베니스로 급파돼 왔다”고 회상했다.

 

<씨받이> 이후 초청받은 장·단편 한국영화는 서른다섯 편이다. 초청받은 부문 등이 확인되지 않은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고>(감독 김정옥)를 제외하면 서른네 편이다. 장편 경쟁 외 작품은 다음과 같다.

 

1995년(52회)-<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감독 배용균·초청 부문 ‘추월선’). 1999년(56회)-<냉장고>(안영석·단편 경쟁)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전수일·새로운 영역) <베이비>(임필성·새로운 영역). 2000년(57회)-<자화상2000>(이상열·단편 경쟁) <내 사랑 십자 드라이버>(하기호·단편 경쟁)

 

2001년(58회)-<꽃섬>(송일곤·현재의 영화) <노을소리>(홍두현·단편 경쟁) <숨바꼭질>(권일순·단편 경쟁). 2002년(59회)-<반변증법>(김곡&김선·새로운 영역) <Subway Kids>(손정일·새로운 영역). 2003년(60회)-<나비>(김현성·비평가주간). 20004년(61회)-<쓰리 몬스터>(박찬욱&미이케 다카시&푸르츠 챈·Midnight Express)

 

2006년(63회)-<사생결단>(최호·Midnight Screening) <짝패>(류승완·Midnight Screening). 2007년(64회)-<검은 땅의 소녀와>(전수일·지평선) <천년학>(임권택·베네치아64) <물고기>(전재홍·단편 경쟁). 2009년(66회)-<엄마의 휴가>(김광복·단편 경쟁) <카페 느와르>(정성일·비평가주간) <서울의 얼굴>(김진아·오리종티). 2010년(67회)-<방독피>(김곡&김선·오리종티) <옥희의 영화>(홍상수·오리종티). 2011년(68회)-<줄탁동시>(깅경묵·오리종티). 2012년(69회)-<무게>(전규환·베니스 데이즈). 2008년(65회)에는 전 부문에 걸쳐 한 편도 초청받지 못했다.

 

                     전규환 감독의 <무게>(가제)의 한 장면. 조재현은 김기덕 감독의 <섬>과 <수취인불명)에 이어 베니스국제

                      영화제를 다시 찾는다.

 

베니스 데이즈는 칸의 ‘감독 주간’에 해당한다. <무게>(가제)는 인간이 짊어져야 할 삶의 아픔과 애환을 독보적인 영상미와 춤, 절묘한 캐릭터로 담아냈다. 조재현·박지아 등이 호흡을 맞췄다. 윤동환·김성민·달시 파켓 등이 특별출연했다. 전규환 감독은 <모차르트 타운> <애니멀 타운> <댄스 타운> 등과 <바라나시>로 평단으로부터 ‘현대 사회에 대한 묘사가 돋보이며 대가적 기량을 지닌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 세계 30여 개 영화제에 초청받았고, 스페인 그라나다영화제 대상, 미국 달라스영화제 대상 등을 수상했다.

 

‘오리종티’(orizzonti·수평선)는 새로운 경향의 영화를 선보이는 경쟁 부문이다. 단편 경쟁(코르토 코르티시모·corto cortissimo) 부문에 초청받은 한국영화 가운데 수상한 작품은 없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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