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리(38)는 <박하사탕>(2000)으로 데뷔했다. <오아시스>(2002)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신인배우상)을 수상, 월드스타로 등극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연기상,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받은 뒤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는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옥관문화훈장도 받았다. <바람난 가족>(2003)으로 대종상영화제·시애틀국제영화제·대한민국 영화대상 등의 여우주연상, <하하하>(2009)로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분노의 윤리학>에 이어 <협상종결자> 개봉을 앞두고 있다.

 

■대학이냐, 오디션이냐
한 편의 영화(연극)가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 평범한 여고생이던 문소리가 배우가 된 것도 이에 해당한다.

<에쿠우스>. 문소리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연극이다. 신구·최민식이 주연을 맡았다. 1990년 여고 1학년 때 문소리는 이 연극을 본 뒤부터 배우를 동경했다. 1993년 성균관대 교육학과에 입학한 뒤 연극·국악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3학년 1학기 때에는 기성 극단 한강에 입단했다. 우편물 작업 등 사무보조를 하면서 청소도 했다.

그런 중 창작극 <교실 이데아>로 데뷔했다. 다른 배우들과 달리 연습이 한창 진행되던 중간에 들어갔다. 극중에서 배우들이 다루는 악기가 하모니카 등에 지나지 않아 보완이 필요했다. 문소리는 중학생 때부터 바이올린을 켤 줄 알았다. 덕분에 부잣집 여학생 역을 맡아 예상보다 빨리 무대에 섰다.

연극 공연 외 판소리·발레 등을 배우고 익히느라 문소리는 동기들보다 대학을 1년 반 늦게 졸업했다. 문소리는 지식과 실력을 쌓고 인맥을 넓히기 위해 서울예대 연극학과를 지망, 합격했다.

 

그 무렵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2000) 오디션에 경험 삼아 응모했다. 될 거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잇달아 예심을 통과, 고민에 빠졌다. 최종 합격이 불투명한 가운데 오디션을 포기해야 할지, 대학을 포기해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문소리는 고민 끝에 대학을 포기했다. 2~3개월이 걸린 오디션에 최종 합격, ‘영호’(설경구)의 첫사랑 ‘순임’ 역을 맡았다.

이창동 감독은 당시 남자주인공은 신인으로 하더라도 여자주인공은 유명 배우로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하지만 오디션 때 얼굴부터 목까지 붉어지며 연기하는 문소리가 적임자임을 굽히지 않았다. 만약 문소리가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면, 이 감독이 자신의 주장을 굽혔다면, 오늘의 문소리는 존재하지 않을지 모를 일이다.

■‘한공주’로 공주 등극
문소리는 <박하사탕>으로 데뷔한 뒤에도 충무로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블랙컷> <외계의 제19호 계획> <봄산에> <상암동 월드컵> <승부> 등 단편영화에 출연하거나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교사자격증이 있는 문소리는 이와 함께 한 복지관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장애인들을 가르쳤다. 초등학생 대상 한자교실 수업도 맡았다. <오아시스>의 여주인공 ‘한공주’ 역을 맡게 된 것은 이와 관련이 깊다.

한공주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한국은 물론 외국의 경우도 유명 여배우가 이런 배역을 해낸 전례가 없다. 이창동 감독은 유명 여배우의 출연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점을 감안, 문소리에게 6mm 비디오 카메라를 주고 2주 동안 연습하면서 그 과정을 찍어오라고 했다.

문소리는 <나의 왼발> 등 장애인이 나오는 비디오는 빼놓지 않고 관람하고, 방문을 잠그고 연습을 거듭했다. 눈을 돌리면 팔과 입이 풀리고, 몸이 되면 감정이입이 안 돼 애를 먹었다. 2주 뒤 오디션장에서는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카메라의 플레이 버튼을 못 누르고 그만 눈물을 쏟았다. 그러고는 못 하겠다면서 카메라를 들고 도망치듯 영화사를 나와 버렸다.

이 감독은 이때 <오아시스>를 덮어야 하나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여자로서, 여배우로서 문소리와 얘기를 나눠봐 달라고 오지혜에게 도움을 청했다. 오지혜는 신인에게 오디션 기회가 주어진 게 어딘데 거부하느냐고, 그런다고 자존심이 사느냐고 문소리를 나무랐다. 어설픈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던 문소리는 선배의 말에 자신이 부끄러웠고,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내놓았다. “해볼만 하다”는 오지혜의 말에 용기를 냈다.

문소리는 이후 2개월여 동안 연습에 몰두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또 읽었고 휠체어를 타고 거리로 나가 장애체험도 했다. 이어 6개월의 촬영기간에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살았다. 한공주가 일종의 사회부적응자 ‘홍종두’(설경구)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과일 깎는 칼로 손목을 그어 자살하는 장면 등을 놓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남성 중심적인 시각이 녹아들지 않도록 제작진과 논의를 많이 했다. 이 감독의 주문에 응하느라 실신 지경에 이를 만큼, 촬영을 모두 마쳤을 때에는 골반이 약간 뒤틀려 교정이 필요할 정도로 혼신을 다했다.

■“우리가 좋은 영화 만들어보자”
<분노의 윤리학>(감독 박명랑). 21일 개봉되는 문소리의 최근 영화다. 미모의 여대생 살인사건의 전말을 그린 블랙코미디이다. 나쁜 놈, 잔인한 놈, 찌질한 놈, 비겁한 놈, 그리고 단호한 여자가 얽히면서 드러나는 살인사건의 전모와 인간의 각기 다른 본색을 다뤘다.

이 영화는 문소리를 비롯해 유명 배우·스태프가 제작을 이끈 국내 최초의 작품이다. <부러진 화살>(감독 정지영)이 모든 배우·스태프의 러닝개런티 수용에 힘입어 저예산으로 제작된 데 반해 <분노의 윤리학>은 문소리·이제훈·조진웅·김태훈·곽도원과 김우형(촬영)·조화성(미술)·김선민(편집) 등 배우와 스태프가 의기투합, 지분 참여 형식으로 함께 제작을 주도했다. 참여한 배우들은 자신의 배역도 시나리오를 읽은 뒤에 스스로 정했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있는데 제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영화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재미있게 만들어 볼 방법이 없을는지….’

문소리가 지난해 초에 들은 말이다. 문소리는 호기심이 발동, 시나리오를 읽고 출연 의사를 밝혔다. 동료 배우·스태프들이 뜻을 함께하면서 국내 최초로 유명 배우·스태프가 제작을 주도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문소리는 “배역의 비중을 떠나 한 명의 관객으로서 보고 싶은 영화였다”며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들도 같은 생각이 들어서 함께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에도 이렇게 독특하고 재미있는 영화가 한 편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보고 역할을 골랐는데 신기하게도 주요 배우분들이 선택한 역할이 겹치지 않았고, 감독님 의견과 다르지 않았다”고 전했다.

문소리의 다음 영화는 <협상종결자>(감독 이승준)다. 남편의 정체를 모르는 비밀요원의 아내가 일급 첩보작전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박하사탕>과 <오아시스>에서 함께한 설경구 등과 호흡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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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규 감독(53)은 영남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김현명 감독의 <아가다>(1984) 연출부로 충무로에 입문했다. 1986~1991년 일본대학·일본영화학교·와세다 대학원에서 영화공부를 했다. 귀국 후 프로덕션을 설립, SBS의 <꾸러기 카메라> <스타, 이런 모습 처음이야> <악마의 속삭임> <결혼할까요> 등을 연출·제작했다. 영화 데뷔작 <조폭마누라>(2001)로 공전의 히트를 친 뒤 <어깨동무>(2004) <조폭마누라3>(2006) 등에 이어 9일 박신양·김정태·엄지원·정혜영 주연 <박수건달>을 내놨다. 

 

 

“지랄 같아도 지나고 나믄 다 이유가 있는 기다” “그라믄 사람 패고 해꼬지하고, 그건 니가 할 짓이가” “다 필요 없드라. 죽도록 용 써봤자 옷 한 벌이다. 나중에 니는 무슨 옷을 입고 갈 낀데….”

영화 <박수건달>의 주제를 대변하는 대사들이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주인공 ‘광호’(박신양)다. 그는 건달이다. 그 세계에서 잘 나가던 그는 어느 날 신내림을 받는다. 박수(남자 무당)와 건달, 이중생활을 한다. <박수건달>은 바람직한 삶과 삶의 구원에 대해 묻는다. 코미디에 액션, 판타지를 곁들여 웃음은 물론 눈물도 쏙 빼놓게 한다. 그간 심심찮게 영상화된 이른바 ‘조폭 코미디’와 차원을 달리 한다. 제목은 B급 영화의 전형이지만 보고 나면 생각을 바꾸게 된다.

-왜 <박수건달>인가.
“딜레마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코미디에 딱 맞는 소재이다. <박수건달>은 딜레마에 관한 영화다. 한 남자가 성공을 목전에 두고 신이 내리는 바람에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남자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를 치러내면서 삶의 가치관이 달라지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의 재미를 더 끌어올리고 다양한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복합 장르로 그려냈다. 요즘은 관객의 욕구가 실로 다양해 한 영화를 한 장르로만 그려내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다.”

 

-언제 기획했나.
“동료인 정연원 감독에게 이야기를 들은 건 4년쯤 전이다. ‘조폭에게 신이 내렸다’는 인터넷 뉴스를 봤다면서 이 소재를 코미디로 만들 때 가장 쉽고 재미있게 풀 수 있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정 감독 얘기를 듣고 안 하겠다고 했다. ‘또 조폭이냐’는 말을 듣기 싫어서, 자칫 ‘조폭 영화 전문 감독’으로 분류될 것 같아서, 이제는 다른 장르 영화를 하려고 한다고 사양했다.”

그리고 3개월이 넘게 지났다. 조 감독은 자신의 의지와 달리 무당인 조폭 이야기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자 결국 생각을 달리 먹었다. 도망치지 말고 정면 돌파하기로. 건달이 처한 딜레마를 소재로 삶의 깨달음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장르의 생산적·발전적 진화를 꾀해 보자고 달려들었다. 우선 <사랑과 영혼>을 수십 번 봤다.

-시나리오 작업을 얼마나 했나.
“3년간 했다. 50~60번쯤 새로 쓴 것 같다. 주인공을 건달이 아닌, 직업이 검사·교수 등인 남자로도 여러 차례 설정했다. 그런데 쓰기 힘들었고, 만족도가 떨어졌고, 주위 반응도 좋지 않았다. 광호가 신을 받는 게 죽는 것 만큼 싫은데 받아야 했듯, 나 역시 주인공이 건달인 게 누구보다 싫어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데 피할 수 없었다. 마초적이고 욕망과 허세가 강한 집단이고 그 소속이어야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구축하고 복합 장르로 구성하는 게 용이한 측면이 많았다. 깨달음의 극대화도 꾀할 수 있고. 재미있고 구성도 좋은데 시나리오가 맛있게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무속을 취재하고 영화에 반영하는 건 어떠했나.
“광호의 두 면 가운데 박수를 살아있는 캐릭터로 만들어내는 게 관건이었다. 신병에 시달릴 때와 내림굿 진행과정, 작두에서 춤출 때, 무속인으로 첫 손님을 받고 점을 볼 때의 심정·모습…. 많은 무속인들을 찾아가 손님 입장으로 관찰했고, 솔직히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집요하게 물어보고 조목조목 캐내 시나리오에 반영했다. 무속을 문화적 관점으로 연구하고 문화계 인사들과 폭넓은 인맥을 지닌 황해도 만신(무녀) 이해경 선생의 조언과 도움을 많이 받았다.”


-광호 캐릭터와 박신양의 연기가 매력적이다.
“광호는 박수와 건달을 오가는 캐릭터다. 마초적인 건달은 물론 박수무당이 지닌 여성성도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를 손꼽을 때 가장 먼저 박신양이 떠올랐다. 터프한 남자와 그 남자가 커밍아웃을 선언했을 때 느낌을 표현해 달라고 했다. 기대한 대로 상반적인 두 면을 잘 조합해 냈다.”

-캐스팅은 어떠했나.
“캐스팅이 쉬운 영화나 드라마는 없다고 본다. <박수건달> 역시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박신양·김정태·엄지원·정혜영·조진웅·김성균·윤송이, 적재적소에 좋은 배우들이 들어와 자신의 역할을 십분 발휘해 주었다. 아역 윤송이는 오디션 응모자 700~800명 가운데 뽑았다. 3개월간 부산 사투리 연습을 시켰는데 이 또한 소화 능력이 뛰어나 안심하고 맡겼다. 눈물연기 등이 정말 탁월했다.”

-광호는 유령을 보고 대화도 나눈다.
“무속 취재 당시 무당이 유령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특별해야 해 박수와 유령의 접목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령이 나오는 영화의 재미는 동종 혹은 이종 간의 접촉과 대화, 이에 따른 업보의 해소에 있다. 그걸 어떻게, 다른 영화와 다르면서 재미있게, 의미있게 승화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유령은 무서운 존재로 인식돼 있지만 사실은 불쌍한 존재다. 건달은 일견 폼나 보이지만 실제로는 범법자다. 무당은 숨기고 싶은 신분인데 실질적으로 좋은 일을 한다. 이 세 점을 염두에 두고 구성했다.”

광호가 못 다한 사랑에 아파하는 여인(천민희)과 검사(조진웅), 딸(윤송이)과 의사(정혜영)의 한을 풀어주는 과정과 장면이 영화의 재미와 의미를 더해준다. 광호와 검사 사이에 진지하고 웃기고 슬픈 상황이 번갈아 펼쳐지는 취조실 장면이 압권이다. 웃기다가 울리고 다시 웃기는 걸 반복, 희·비극의 공존을 보여준다. “코미디 영화의 명장면으로 오래도록 회자될 것”이라는, “코미디 영화의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는 네티즌의 감상평이 잇따르고 있다.

조진규 감독은 “코미디는 일단 재미있어야 하지만 관객은 기존의 조폭 코미디에 식상해 있다”면서 “새로운 코미디의 방향을 계속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박수건달>에 대해 “재미와 성찰의 미덕을 담는 데 최선을 다했다”며 “다음에는 인간과 영혼, 초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삶을 돌아보고 내다보는 시간을 관객과 나누고 싶다”고 기원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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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진 감독(47)이 새 영화 <용의자X>로 돌아왔다. 이 영화는 지난 18일 개봉, 6주 동안 정상에 올라 있던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끌어내리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면서 3일 동안 44만1429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관람했다. <오로라 공주>(2005) 이후 다시 달리는 방은진 감독의 개선 행진곡을 들었다.

 


<용의자X>는 살인사건을 다루면서 사랑 이야기를 녹여놓았다.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을 각색, 영상화했다. 제목 앞에 명기, 영화가 어떤 작품인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태그라인(Tagline)이 ‘천재 수학자의 완벽한 알리바이’다. <용의자X>는 이 알리바이의 전모를 보여준다. 완벽한 알리바이로 인해 미궁에 빠지던 사건은 석고의 사랑이 단서가 되면서 새 국면을 맞는다. 천재 수학자 ‘석고’는 류승범, 이웃집 여인 ‘화선’은 이요원, 형사 ‘민범’은 조진웅이 맡아 열연을 펼쳤다.

-원작 소설은 언제 읽었나.
“국내에 출간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오로라 공주> 촬영감독 권유로 읽었다. ‘죽인다’는 그의 말대로 흥미로웠다. 어떻게 하면 판권을 살 수 있을는지, 고심만 하다가 다른 작품을 준비하느라 잊었다. 일본에서 소설과 같은 제목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국내에 배급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쉬웠다. 기회가 없어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본영화 <용의자X의 헌신>은 2009년 4월 9일 개봉됐다. 9만4790명(한국영화연감 기준)이 관람했다.

-결국은 만들었다.
“판권은 케이앤엔터테인먼트가 갖고 있었다. CJ엔터테인먼트가 개발, 케이앤과 공동제작했다. 나는 CJ에 한 작품의 기획안을 내놓고 개발을 하고 있고, CJ는 어느 정도 시나리오를 끝내고 감독을 찾고 있던 시점에 만났다. 연출 제안을 받고 내가 심리를 다루는 데 장점이 있다고 보나 보다 했다. 하고 싶었던 작품이었는데 5년여 만에 내 손에 들어온 데에서 운명이란 느낌을 받았다. 앞서 두 영화사에서 준비했던 작품이 다 무산됐고, CJ에 내놓은 새 기획 작품은 해외로케 등 일정 시간이 필요했다. <용의자X>는 잘 할 수 있는 소재였고, 하고 싶은 작품이어서 달려들었다. 잘 만들어서 앞으로 연출을 하는 데 탄력을 받고 싶었다.”

 

-각색 작업은 얼마나 했나.
“각본 작업은 이공주·이정화·김태윤 작가가 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3개월 간 감독고(監督稿) 작업을 10고(稿)까지 했다.”

-각색·연출작업 때 어디에 주안점을 뒀는지.
“소설에서 사랑은 숨겨져 있다. 수면 아래에 있는 사랑을 영화에서는 위로 올렸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품은 진심과 사랑을 담는 데 무게를 뒀다. 사랑이 사람을 구원하는 이야기를 풀어넣어 울림이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감성 미스터리를 지향했다.”

-촬영작업은 어땠는지.
“촬영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개월까지 60회에 걸쳐 찍었다. 빛으로 감정을 다루는 이철오 조명감독, 핸드헬드 촬영(들고찍기)의 천재라고 했을 만큼 역동적인 순간의 감정을 포착해 내는 최찬민 촬영감독-이 영화에서는 외려 정적인 카메라이긴 하다-, 감정을 소리로 증폭하는 신이경 음악감독 등 최강의 스태프와 최고의 배우들과의 합작품이다.”

촬영할 최적의 장소를 찾는 게 힘들었다. 계단과 마당을 갖춘 복도식 아파트는 전국을 헤맨 끝에 찾은 대구의 오래된 맨션이다. 살인사건, 장르적 특성 때문에 주민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석고가 지나다니는 길목의 낡고 오래된 굴다리는 전국을 헤매다가 신촌의 외진 곳에서 기적적으로 발견했다. 중요한 단서가 되는 저수지는 강원도 화천의 오지에서 찾았다.

-일본영화 <용의자X의 헌신>은 봤나.
“각색 작업을 마친 뒤에 딱 한 번 봤다. 그 전에는 일부러 보지 않았다. 작업 후에 보니까 주요 인물(물리학자)이 없어졌고, 나이를 낮췄고, 멜로에 중점을 둬 그 영화와의 차별화 등은 굳이 고려하지 않아도 됐다.”

소설 등을 각색·영상화한 작품은 곧잘 원작과 비교된다. 문자언어와 영상언어, 표현의 무한성과 한계성, 단독 작업과 공동 작업, 작업비용 등에 걸쳐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원작에 비해 이러저러하다는 평가를 받고는 한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그린 영화에 비해 평가에서 불리한 실정이다.

-원작에 비해 어떻다는 감상평이 잇따른다.
“소설과 영화는 엄연히 장르가 다르고 그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비교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맞닥뜨리니까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미스터리에 심리·멜로를 가미해 호·불호가 있겠지만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영화의 재미를 더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먼저 읽었든 아니든, 원작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영화 자체의 재미와 의미를 느꼈으면 한다.”

 

-석고의 사랑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성별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 대체로 남자들은 ‘미친 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울컥해 한다. 여자들은 ‘완전한 사랑’이라며 ‘받고 싶다’고 한다. ‘(그런 사랑) 있으면 좋겠다’ ‘희망을 얻어간다’는 분들도 있다. 영화상의 이야기지만 가능한 사랑이라고 본다.”

심리학자 장근영 박사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석고의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석고가 화선에게 보여주는 것은 헌신밖에 없고, 화선은 석고에 대해 전혀 모르고, 석고에 대해 감정이 생기려 하지만 석고 혼자 다하고 있다”며 “이런 사랑을 스턴버그는 ‘공허한 사랑’이라고 하고 색채이론에서는 ‘아가페적 사랑’이라고 한다”고 했다. “아가페적 사랑이라는 건 신의 사랑”이라며 “가장 큰 사랑을 한 인간(석고)이 가져가고 있다는 것에 있어 굉장히 경외로웠다”고 했다.

-원작자는 영화를 봤나.
“보셨다. 격조가 있고 좋다고 했다. 과장되지 않고 차분한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라며 캐릭터들의 갈등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고 하셨다. 각색을 할 때 작가가 몇 가지 조건을 걸었다. 화선과 ‘윤아’(김보라)의 관계, 화선의 행보, 제목 등등에 대해. 이를 좀 배반했는데 모두 용인해 주셨다. 범인과 형사 사이에서 고뇌하는 물리학자가 그려지지 않은 데 대해 ‘약간 아쉬울 수 있으나 신념에 근거를 둔 과감한 각색’이라고 했다.”

방 감독은 초등학생 때 KBS 어린이합창단에서 활동했다. 아역배우도 했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중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1994)으로 데뷔했다. 박철수 감독의 <301, 302)(1995)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연기상 등을 받았다.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2000)으로 대종상 여우조연상 등을 받았다. 감독 데뷔작 <오로라 공주>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과 황금촬영상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용의자X>는 멜로가 살아있는 미스터리다. 방 감독은 “세상이 각박하고 사랑도 일회적·조건적인 데 익숙해지고 있다”면서 “<용의자X>를 보고 나서 우리가 염원하는 사랑의 절대 가치를 되찾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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