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 (주)영화사 비단길 대표(45)가 또 홈런을 날렸다. 16일 700만 명을 돌파한 <늑대소년>을 제작, 비단길을 다시 깔았다. <음란서생>(2006) <추격자>(2008)에 이어 세 번째다. <작전>(2009)과 <혈투>(2010)도 제작, 5편 가운데 4편이 성공을 거두면서 충무로 대표주자 군단에 합류했다. 김수진 대표의 성공 노하우는 무엇일까?

 


<음란서생>(감독 김대우)은 257만6022명(이하 한국영화연감 기준), <추격자>(〃 나홍진)는 507만1619명, <작전>(〃 이호재)은 153만4407명, <혈투>(〃 박훈정)는 4만3947명이 관람했다. <늑대소년>(〃 조성희)은 16일 오후 5시 현재 701만2145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관람했다. 한국영화 역대 흥행순위 16위에 올라 있다. <추격자>는 32위이다.

-<늑대소년>을 처음에는 얼마나 기대했나.
“손익분기점이 200만 명 정도이다. 1차 바람은 200만 명을 넘는 거였고, 나아가 500만 명 넘기기를 희망했는데 그 이상이어서 감개무량하다. 이 자리를 빌어 관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인터넷에 올라왔는데 한 여성 관객은 45번을 봤다. 관람 티켓을 찍어 공개했다. 개봉(10월 31일)후 한 달쯤이니까 하루에 두 번도 본 거다. 이처럼 여러 번 봤다는 분들이 많다. 처음에는 20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30~50대 주부들이 가세했다. 남성들도 많아졌고. 전체 성비는 6 대 4로 여성이 많다.”

-흥행 요인을 요약한다면.
“카피 문구가 ‘세상에 없는 사랑’이다. 관객들이 꿈꾸는 사랑, 영원한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인스턴트 사랑이 넘쳐나는 시대여서 관객들은 평생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철수’(송중기)의 일편단심에 감동하고 대리만족도 느끼는 게 가장 크다고 본다. 멜로에 판타지와 액션을 가미, 독창적이고 따뜻하고 재미있는 영화로 여러 층의 관객에게 공감을 얻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늑대소년>은 철수와 순이의 러브스토리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떠올리게 한다. 철수는 변종 인간이다. 한국전쟁 후 강한 인간을 만들려는 국군의 실험 중 부작용으로 태어났다. 그는 몸이 아파 시골로 이사온 문학소녀 ‘순이’(박보영)에 의해 세상에 나온다. 순이와 철수는 가족 혹은 친구 관계에서 가르침을 주고받는 사이로, 그리고 남녀 관계에 이른다. 순이의 “기다려”라는 한 마디에 철수는 평생을 기다린다.

-언제 기획했나.
“조성희 감독(33)이 영화학교 재학 당시 쓴 장편 트리트먼트(시나리오와 시놉시스의 중간 단계)에서 출발했다. 할리우드 영화 속 늑대인간의 이야기와 다른 판타지 멜로 드라마로 멜로영화의 확장을 꾀했다. 작업 과정에 한국적인 요소를 넣었다. 6·25, 전쟁고아, 낯선 아이를 집에 데려와 먹여주고 재워주고 목욕도 시켜주는 인심 등이다. 조 감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에 중점을 두고 보다 넓고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조 감독은 서울대 산업디자인과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25기)했다. 첫 단편 <남매의 집>(2009)으로 칸국제영화제 학생 단편 경쟁 ‘시네파운데이션’ 부문 3등상, 미쟝센단편영화제 대상 등을 수상했다. 중편 <짐승의 끝>(2010)으로 밴쿠버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등에 초청받았다. <늑대소년>은 그의 장편 데뷔작이다.

-<남매의 집>을 보고 손을 잡은 건가.
“대단한 연출적 재능을 읽었다. 특히 대사나 장면 사이 침묵과 정적을 잘 활용하는 독창성이 눈에 띄었다.”

 

-김대우 감독도 <음란서생>으로 데뷔했다.
“김 감독은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할 때부터 알고 지냈다. 2004년 11월에 귀국, 영화사 비단길을 차렸을 때에는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2003) 등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는 유명 작가였다. <음란서생>은 김 감독이 <스캔들> 전에 구상한 작품이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음란소설을 쓰면서 맞는 행복과 역경을 그렸다. 사극인데 댓글·동영상·폐인 등 현대의 낱말을 접목했다. 시대를 교차했을 때 발생하는 재미와 의미 등 내가 만들고 싶은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영화여서 창립작으로 선택했다.”

 

-<추격자>도 나홍진 감독의 데뷔작이다.
“<추격자>는 모든 투자사로부터 외면받았던 작품이다. 전직이 형사인 출장안마소 사장과 연쇄살인마가 주인공이고, 90% 정도가 밤 장면인데 그중 절반 이상은 비가 오고, 신인 감독에 연기력은 뛰어나지만 톱스타가 아닌 배우…. 투자사의 구미에 맞는 조건이 없었던 거다. 하지만 한 여자를 구하기 위해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잡는 플롯이 새롭고 좋았다. 긴장감이 관객들은 여자가 어디 있는 줄 알지만 주인공은 모르는 데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당시엔 스릴러 장르에 대한 산업적 이해도나 시장에 대한 예상 자체가 없었고 투자환경은 아주 좋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 고민하고 노력한 것이 더 완성도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됐다. 감독과 의논해서 시나리오를 1년 넘게 30번 이상 수정했고 신생투자사를 만나 제작에 들어간 뒤 추가된 비용은 제작사가 책임지고 완성했다. 다행히 5백만이 넘는 관객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고 이후 충무로에 스릴러 붐이 일고 안정된 스릴러 시장이 형성된 게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전>과 <혈투>는 성적이 미흡했다.
“<작전>은 본전을 넘겼다. 개봉했을 때 주식시장이 곤두박질을 쳐 영화 외적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혈투>는 <악마를 보았다>(감독 김지운) <부당거래>(〃 류승완)를 쓴 박 감독의 연출 데뷔작인데 내·외부적으로 문제가 좀 많았다. 결과도 안 좋아 못내 안타까웠다.”

김 대표는 1985년 이화여대 독문과에 입학,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영화 동아리(누에)를 만들어 8·16㎜ 영화를 만들었다. 여성문제를 다룬 페이퍼 다큐멘터리로 1000만원 상당을 벌기도 했다. 89년 졸업, 하명중영화제작소에 입사해 기획·제작·홍보·극장업무 등을 두루 익혔다. 2년 뒤 영화사(영화센터)를 설립해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이석기) <꽃잎>(〃 장선우) 등을 기획했고 외화 <퐁네프의 연인들> <레옹> 등을 수입했다. 외화 수익금을 고스란히 사기를 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99년 전셋집을 처분해 미국영화연구소(AFI)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재학 중 <다이하드> <매트릭스>로 유명한 워너브라더스의 자회사(조엘실버 프로덕션)에서 4개월여 인턴을 했고, 졸업 후 워너브라더스 본사에서 1년 6개월 동안 공동 제작 및 판권 구매 업무를 봤다.

-미국 유학·근무 때 배운 첫 번째를 꼽는다면.
“영화적인 이야기를 완결하는 거다. 재능있는 감독을 찾고 함께 일하는 방법이다. 관객들은 늘 새로운 이야기를 원한다. 새롭고, 내가 보고 싶고, 감독이 만들고 싶은 영화가 의도한 대로 나오도록 물심 양면으로 돕는 게 제작자의 역할이다.”

-여성 제작자로 힘든 점은.
“여자여서 딱히 힘든 점은 없다. 제작자들 모두가 겪는 기본적인 고난을 극복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한다. 완성도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끈기와 집념을 갖고 노력하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갈수록 제작자의 입지나 역할이 영화산업 시스템과 투자환경의 변화로 인해 점점 축소되고 경시되는 현상들이 있어 더 어렵다.”

비단길은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를 한글로 옮긴 것이다. 김 대표가 만들고 싶은 영화, 가고 싶은 길을 뜻한다. 김 대표는 “기획·제작자로서 오랫동안 좋은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는 게 꿈”이라고 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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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은 연극배우 출신 영화배우를 대표한다. 최근 <도둑들>로 ‘1000만 영화’ 주인공 대열에 합류했다. <타짜>의 조연으로 주목받기 시작, 첫 주연작 <즐거운 인생>을 필두로 <추격자> <거북이 달린다> <전우치> <황해> <완득이> 등을 통해 남다른 연기력과 흥행력을 인정받아 왔다. 요즘 임순례 감독의 <남쪽으로 튀어>를 찍고 있다.

 

배우의 길은 연기력과 흥행성적에 좌우된다. 김윤석(44)은 연기력은 물론 남다른 흥행성적을 낸 최고의 배우로 손꼽힌다. <즐거운 인생>(2007)으로 126만3835명, <추격자>(2008)로 507만1619명, <거북이 달린다>(2009)로 305만9812명, <전우치>(2009)로 613만6928명, <황해>(2010)로 216만7426명, <완득이>(2011)로 531만502명, <도둑들>로 1112만7671명(8월 19일 현재) 등 이제까지 3413만7793명을 동원했다. 최근 5년 동안 이같은 성적을 거둔 배우는 김윤석이 유일하다.

 

■부산으로 돌아가 라이브 카페 등 운영
살다보면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던 것에 회의를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이 개인이 아니라 구조적인 데 있다고, 시간을 유예시킨다고 달라질 것 같지 않다고 여겨질 때 용기있는 사람들은 모험을 감행한다. 김윤석이 그랬다. 30대 초반에 배우생활을 접고 부산으로 돌아가 이때부터 5년간 연극·영화와 인연을 맺지 않았다.


김윤석은 “연극이라는 것 자체가 가지는 속성에 대해 회의가 생겼다”고 했다. “공연은 필름으로 남지 않고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회의가 짙게 밀려왔고, 내가 추구하는 것 때문에 부모·형제와 주변 사람들이 받는 고통도 무시하기 힘들더라”고 했다. “한번 생각을 바꾸니까 연기를 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어 배우 생활을 접었다”고 털어놨다.

경제적인 문제도 적지 않았다. 연극 한 편 올리는 데 걸리는 기간은 3개월 정도인데 수입은 50만 원에 불과했다. 한 달에 50만 원이 아니라 세 달에 50만 원이어서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무대에서 느끼는 희열로 심신의 고단함을 달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다시 부산에 둥지를 튼 김윤석은 지인의 부탁으로 라이브 재즈카페를 봐주기도 했다. 음악과 술에 취해 살면서 처음에는 좋았다. 사람들에 치이는 것도 참을만 했다. 그런데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었다. 장사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문제를 떠나 매일 밤 술을 마셔 얼굴은 늘 붉었고 살이 퉁퉁하게 쪘다. 몸도 풍선처럼 부풀었다. 옷 사이즈가 어마어마하게 늘 정도로. 김윤석은 “30대 초반인데 거의 반평생 산 사람의 모습이었고, 청바지 뒷주머니에 현금이 가득 든 지갑을 넣었을 때 뒤태가 가관이었다”며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가차 없이 접었다”고 털어놨다.

 

 

■“배우가 뭐해, 배우는 연기해야 돼”
자신의 꿈을 격려해 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 건 복이다. 부산에 있는 동안 김윤석은 종종 김해가 고향인 송강호의 전화를 받았다. “배우가 연기 안 하고 뭐 하고 있느냐?” “서울로 와서 다시 연기를 하라….”

김윤석은 송강호의 말처럼 다시 연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배우로 생존하면서 생활도 해야 하는, 그 고난한 삶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게 망설여졌다. 낙향할 때보다 더 뜨거운 용기를 필요로 했다. 한 가닥 남아있는 자존심도 걸림돌이었다.


 

자신과의 싸움이 계속 됐다. 현재의 삶에 드리운 빨간불을 목격하는 나날이 계속되면서 달라져야 한다는 절박감에 휩싸였다. ‘네 젊음을 어디에 던지고 싶은가?’

 

대답은 연기였다. 묻고 또 물어도 정녕 하고 싶은 건 연기였다. 다시 한 번 가보자, 미련 없이 달려들어 보자고 마음먹고 새 세기가 시작될 즈음 짐을 쌌다. 친분이 있는 극단 ‘학전’을 찾아가 뮤지컬 <의형제> 등에 출연했다.

                     <범죄의 재구성>(왼쪽)과 <타짜>(오른쪽)의 김윤석.

 

<의형제>는 한국전쟁부터 1970년대 말을 배경으로 쌍둥이 형제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렸다. ‘꼴통’ 역을 맡은 김윤석은 이 작품으로 전윤수·최동훈 감독, 배우 조승우·방주란 등과 남다른 인연을 얻었다. <의형제>를 관람한 전윤수 감독의 <베사메무초>(2001)에 ‘집달관1’로 출연해 영화와 인연을 맺었고 최동훈 감독의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2004)과 빅히트작 <타짜>(2006)에 각각 ‘이 형사’와 ‘아귀’로 등장해 주목을 끌었다. <의형제>에서 해설자이자 걸인으로 출연한 조승우와 <타짜>에서 호흡을 맞췄고, ‘어머니’ 역을 맡아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방주란과 2002년 결혼해 두 아이를 두고 있다.

 

■평생 갈 길, 거북이 걸음으로 정진

필연은 우연에서 출발한다. 충북 단양이 고향인 김윤석은 1986년 부산 동의대학교 독어독문학과 1학년 2학기 때 연극과 우연히 인연을 맺었다. 민주화 투쟁으로 휴교·휴강이 잇따라 입대를 염두에 뒀던 그는 어느 날 야외에서 극예술동호회 소속 교우 몇 명이 모여 연극 연습을 하는 걸 보고, 그 모습과 열정에 매료됐다. 곧바로 입회,  <색시공> 등에 출연했다.  2학년 때에는 기성 극단 무대에도 뛰어들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에도 출연했다. 전공 수업은 아랑곳 않고 연극에 몰두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혈혈단신으로 상경, 소극장 연극의 메카로 손꼽히는 ‘연우무대’를 찾아갔다. 여느 극단과 달리 연우무대는 단원제가 아니고, 워크숍 공연도 갖지 않아 입단이 불가능했다. 김윤석은 그럼에도 무작장 청소부터 시작했다. 언젠가는 받아주겠거니 하고.

 

이때 같은 처지의 송강호를 만났다. 부산에서 연우무대의 <최선생> 공연을 보고 무작정 상경한 송강호를 만나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면서 배우의 꿈을 키웠다. 연우무대의 <국물 있사옵니다>(1993)를 필두로 <여성반란> <지젤> <자전거>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 등에 함께 출연했다. 장현성·설경구·황정민·조승우와 함께  극단 학전의 ‘독수리 5형제’로 불리면서 배우와 스태프로 땀을 흘렸다. 대개 그러하듯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고 입장권도 팔았다.

김윤석은 “학전의 김민기 선생님이 멘토”라며 “학전에서 3년간 연기를 하면서 연출부로도 뛰었다”고 했다. “연극은 종합예술이자 노동”이라며 “전방위로 달리고 또 달리면서 완성을 추구하다 보면 정신적·육체적 거품이 빠지면서 진정성을 갖게 되고 그것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근원으로 본다”고 했다.

 

송강호·설경구·황정민·조승우 등이 영화계에서 먼저 인정을 받을 때 ‘조바심이 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바로 그 조바심이 사람을 망치게 한다”고 답했다. “평생을 할 일인데 조금 빠르거나 늦는 게 무슨 대수겠느냐”며 “관건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온전히 잘 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고 했다.

연기력이 힘이다. 인내로 정진. 김윤석이 그랬다. 김윤석이 달린다. 거북이 걸음으로.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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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43)은 ‘타짜’다. 연기 및 흥행에서. <완득이> <황해> <전우치> <거북이 달린다> <즐거운 인생> <추격자> <천하장사 마돈나> <타짜> 등에서 영화적 캐릭터를 현실적 인물로 체화, 관객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김윤석이 달린다’.

<완득이>가 달리고 있다. 26일 현재 464만2289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감상, 한국영화 역대 흥행 톱100에서 33위에 올라 있다. 톱100 작품은 <타짜>(684만7777명·14위) <전우치>(605만913명·20위) <추격자>(507만1619명·28위) <거북이 달린다>(301만1993명·67위) 등과 함께 다섯 편. 이 가운데 <완득이>와 <거북이 달린다>는 김윤석의, 김윤석에 의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완득이>는 역대 10월 개봉작 중 1위, <거북이 달린다>는 역대 6월 개봉작 가운데 <신라의 달밤> <강철중:공공의 적 1-1> <포화속으로> <장화, 홍련> 등에 이어 5위에 올라 있다.

-출연작 정할 때 흥행성도 염두에 두는지요.

“영화는 우리 삶을 다뤄요. ‘생존’과 ‘생활’을 그린 두 부류로 나뉘죠. 생존이든 생활이든, 이야기의 타당성,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지가 중요해요. 등장인물의 몸에 피가 흐르는지, 그게 관객의 보편적 감성·정서를 건드리면 흥행이 된다고 봐요.”

-<완득이>에서 그것은 뭔가요.
“가장 온전한 사람관계는 부모와 자식 사이죠. ‘완득’(유아인)이는 17년 만에 엄마가 있고, 필리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요. 이 대목에 전율이 일었어요. 피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 완득이는 과연 어떻게 맞딱뜨려 나갈까? 이때 완득이 담임 ‘동주’(김윤석)는 완득이와 ‘엄마’(이자스민)를 보조하는 존재, 안내자예요. 이 점을 잘 소화하면 된다고 봤어요.”

-<거북이 달린다>에서는.
“수면 위로 드러난 건 형사(김윤석)가 탈주범(정경호)을 잡는 거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딸(김지나)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 실추된 아버지·가장의 위상을 되찾는 거예요. 저간에 깔려 있지만 놀아볼 수 있는 판이었죠. 레드카펫이냐 거적대기길이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절실하게 지켜내야 하는 걸 공감가게 풀어내는 거예요. 드라마와 코미디의 접점, 바람도 막아주고 습도도 조절해주는 창호지(문풍지) 같은 코미디 드라마를 추구했어요.”

-얼마나 예상했는지요.

“이제까지 예상 관객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어요. 편집본을 보고 70점 정도면 어필하겠다는 느낌을 받죠. <완득이>는 그 이상이었어요. 모니터 시사 점수는 굉장히 좋았고. 흥행에서 중요한 점은 감동과 그것을 끌어내는 구체적인 드라마예요. <완득이>는 살아있는 코미디, 웃기면서 공감을 끌어내는 실질적·구체적 드라마가 영화를 끌고 가요.”

-대본 리딩을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신(scene)에 맞춰 그룹별 리딩을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죠. 이 과정을 통해 리얼하게, 담백하게, 다큐에 가깝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톤을 찾아내고 통일시키자고 했어요. 대사를 바꾸기도 하고, 언제 어떻게 치고 나오고 어떻게 받아주고, 의논하면서 연습을 거듭했어요. 애드리브가 아닌가 하는 대사들도 사실은 다 사전에 연습한 거에요.”

김윤석은 부산의 동의대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송강호·오달수 등과 함께 부산 연극배우 출신 영화배우를 대표한다. 뮤지컬 <의형제>에서 함께한 배우 방주란과 2002년에 결혼, 두 아이(10·7살)를 두었다.


-강호씨와 부산에서도 함께 했나요.

“서울에서 만났어요. ‘연우무대’의 <국물 있사옵니다>(1993)에서. <여성반란> <지젤> <자전거>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도 함께 했죠. ‘학전’의 김민기 선생님이 멘토예요. 연기하면서 연출부였어요. 연극은 종합예술이죠. 노동이고. 전방위로 달리고 또 달리면서 완성을 추구하다 보면 정신적·육체적 거품이 빠지지요. 진정성을 갖게 돼요. 그것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근원이라고 생각해요. 연극밖에 모르는 저를 인정해준 부모님, 가족의 사랑 덕분에 외롭지 않았고 의지를 잃지 않을 수 있었죠.”

-영화계에서 동료들이 먼저 뛸 때 조바심이 나지 않았는지.

“바로 그 조바심이 사람을 망치죠. 관건은 내가 카메라 앞에서 온전히 잘 할 수 있느냐 없느냐예요. 조바심을 낸다고 될 일이 아니죠. 평생을 할 일인데 조금 빠르거나 늦게 시작하는 것이 뭔 대수겠습니까.”

휴대폰, 담배…. 김윤석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떠오른 두 가지다. 그의 휴대폰 앞자리 번호는 016이다. 그는 “처음부터 016이었다”고 했다. 2G 서비스가 조만간 종료된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바꿔야 한다는 말에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딸과 약속한 것 중에 지키지 않은 게 있는냐는 물음에 “담배요, 끊어야 하는데….”라며 멋쩍어 했다.

“우리 감독들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전체를 보는 시야도 갖춰야 하고.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 무엇보다 감독은 하고 싶은,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해요. 연기든 연출이든, 중요한 건 기본에 충실하고 정면 돌파하는 거에요. 기본에서 삐끗하면 전체적으로 무너지는 건 순간이죠.”

-닮고 싶었던 배우는 누구였나요.

“예전과 달리 요즘은 우리 배우들이 더 흥미로워요. 특히 젊은 배우들에게 더 눈길이 가요. 나를 움직이게 해요. 정유미·심은경·유아인, 갱년기인가? 하하하….”

김윤석은 요즘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을 찍고 있다. 김혜수·이정재·전지현·김해숙·오달수 등과 함께. 김윤석은 “영화상의 생존과 생활은 곧 배우들의 삶”이라고 했다. “물든 물리든, 닭 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걸로 끝나선 안 된다”며 “한계점 이상의 끈기를 갖고 연기 아닌 연기로 생존과 생활을 보여줘야 하는 살얼음판”이라고 했다. “배우의 길은 그래서 힘들지만 그게 또한 달리고 싶은 매력”이라며 기지개를 켰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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