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훈 감독(41)은 <범죄의 재구성>(2004)을 필두로 <타짜>(2006), <전우치>(2009), 그리고 올해 <도둑들>을 내놓았다. 수상·흥행기록이 돋보인다. <범죄의 재구성>으로 대종상·청룡영화상·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각각 신인감독상과 각본상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과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타짜>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과 감독상, 대한민국 영화대상 각본각색상,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을 받았다. <범죄의 재구성>은 212만9358명(한국영화연감 기준), <타짜>는 684만7777명, <전우치>(2009)는 613만6928명이 관람했다. 한국영화사상 여섯 번째로 ‘1000만 고지’를 정복한 <도둑들>은 10일 현재 1285만3717명(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감상, 최고 흥행작 등극을 앞두고 있다.

 

 

사기꾼들과 도둑들이 펼치는 합동작전의 전말을 그렸다. <범죄의 재구성>에서 사기꾼들은 한국은행 금고에서 50억 원을 빼낸다. <도둑들>에서 한국과 중국의 도둑들은 마카오의 한 카지노에 숨겨진 300억 원이 넘는다는 다이아몬드를 훔친다. 각각 ‘최동훈표 범죄영화’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준다.

■보습학원서 국어 강사
“영화는 비주얼 예술이지만 그 뼈대는 이야기에요. 그 이야기를 꾸리는 데 소설을 많이 읽고 영화를 많이 본 게 큰 힘이 됩니다.”

최동훈 감독은 초등학생 때부터 소설을 즐겨 읽었다. 밥상머리에서 소설을 읽다가 아버지한테 꾸중을 듣기 일쑤였다. ‘밥 먹을 때에는 그냥 밥 먹어라’ ‘공부를 그렇게 더 열심히 해라….’

중·고교시절과 서강대 국문학과(90학번) 재학생 때에도 소설은 그의 절친이었다. 국문학과는 제3지망이었다. 제1·2지망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적은 경영학과와 경제학과였다.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경영·경제학과에 떨어지고 국문학과에 다니면서 그토록 좋아하던 소설을 맘껏 읽은 게 오늘의 영화감독 최동훈이 되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될 거라고는 그때는 몰랐다.

                                                  <범죄의 재구성> 개봉 당시 최동훈 감독.

 

신촌 대학가 인근의 헌책방에서 손꼽히는 단골이었던 그는 또 영화광이었다. 2학년 때부터 교내 영화 동아리 ‘영화공동체’에서 활동한 그는 비디오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 ‘씨앙씨에’ 등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이른바 B자 비디오를 틀어주던 그 곳은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은 그에게 안식처이자 꿈의 산실이었다. 그는 “(비디오를) 미친듯이 봤다”고 했다. “선배들이 권하는 영화는 무조건 봤다”며 “그때는 몰랐는데 훗날 진가를 깨달은 <재와 다이아몬드>(감독 안제이 바이다) 등도 그때 본 작품”이라고 했다.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감독으로 알프레드 히치콕과 마틴 스콜세지를 우선 꼽았다.

대학생 때 그의 원래 꿈은 기자였다. 전공 수업에 소설·영화를 가까이 하느라 기자 시험 준비를 거의 하지 않은 그는 4학년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꿨다. 졸업 후 영화감독 등용문으로 손꼽히는 영화진흥위원회 부설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진학하려고 했다. 그런데 합격 여부를 떠나 돈부터 벌어야 했다. 대학을 졸업(1997)한 마당에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건 염치가 없어 입학금 등을 스스로 마련해야 했던 것이다.                                        

                 최동훈 감독이 <도둑들> 촬영 현장에서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목동의 한 보습학원에서 ‘국어! 떴다 최 선생’이란 직함으로 강사 생활을 했다. 8개월 간 강의를 맡은 뒤 1998년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제15기), 2년간 수학했다. 졸업 후 임상수 감독의 <눈물>(2000)의 연출부 막내로 충무로에 입성했다. 임상수 감독 및 연출부 선배·동료들과 함께 구로동 등을 중심으로 거리의 청소년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3개월 동안 임상수 감독과 연출부에서 인터뷰한 청소년은 700여 명. 임 감독은 이를 근간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최 감독은 연출부에서 보조출연·의상·분장 분야를 맡았다.

“열정적인 임 감독에게 1년여 작업을 하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범죄의 재구성> 연출 당시 힘들 때마다 ‘감독님은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낼까’라고 생각하면서 고비 고비를 넘겼습니다. 감독님은 형 같은 스승이에요. <범죄의 재구성> 제작자인 차승재 전 싸이더스 대표(현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도 그런 분이에요.”

■실제 사례 찾아 발품 3만리
<범죄의 재구성>은 서점에서 보험사기를 다룬 책을 본 뒤 구상했다. 대학 4학년 때 전세금 1800만원을 떼인 적 있는 그는 사기를 다룬 한국영화가 드문 점을 감안, 2001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제작사에서 전문 작가를 붙여주겠다고 했지만 고사, 혼자 매진했다.

 

최 감독은 <눈물> 작업 때 경험을 살려 발품을 팔았다. 제작사의 소개를 받아 사기 전과자 등을 만나고 사기꾼들이 자주 가는 경마장 등도 찾아가 사례와 은어 등을 수집했다. 청와대 고위직이나 검사 등을 사칭한 사기극 가운데에는 흥미진진한 게 많았다. 취재를 하도 많이 해 시나리오 작업이 오히려 더 힘들었다. 먹잇감을 놓고 흙탕물 속을 뒹구는 사기꾼들의 지리멸렬한 삶을 엮으면서 ‘재미있게’를 철칙으로 삼았다. 22개월에 걸쳐 열여섯 번을 새로 썼다. 4개월여 촬영기간을 포함해 후반작업까지 약 8개월 만에 완성했다. ‘대단한 데뷔작’으로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받았다.

<도둑들> 시나리오 작업은 8개월이 걸렸다. 각본·연출 작업 당시 ‘한국판 오션스 일레븐’이란 말을 듣지 않으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범죄의 재구성> 후반작업 때 ‘최창혁’(박신양)과 ‘서인경’(염정아)의 멜로 부문을 덜어냈던 것과 달리 <도둑들>에서는 ‘마카오 박’(김윤석)과 ‘팹시’(김혜수), ‘첸’(임달화)과 ‘씹던 껌’(김해숙) 등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줄타기·총격 등 액션을 한층 강화했다. 두 장르영화의 재미를 가미, 감상 포인트가 풍성한 범죄영화로 풀어냈다.

 

각본 작업은 영화아카데미 동기이자 <눈물>에서 연출부로 고락을 나눈 이기철과 함께했다. 제작비는 <범죄의 재구성>보다 약 네 배에 해당하는 110억원. 홍콩·마카오 해외 로케이션을 포함해 5개월 보름 동안 찍었다.

영화감독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일례로 영화아카데미 15기 열여덟 명 가운데 장편 영화를 내놓은 이는 최동훈 감독이 유일하다. 데뷔도 못한 동기들과 달리 네 편이나 연출, 작품·흥행성을 인정받아 왔다. 그런 그지만 그 역시 데뷔작을 내놓기 전에는 숱한 실패를 맛봤다. 글 꽤나 읽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작업한 시나리오는 번번이 미역국을 먹었다. 국내의 모든 시나리오 공모전에 약 10편을 춤품했지만 한 편도 당선되지 않았다. 싸이더스에서 작가생활을 하면서 쓴 두 편의 시나리오도 모두 영화화되지 않았다.

 

최 감독은 자신의 영화사 이름을 ‘케이퍼필름’이라고 지을 정도로 이른바 ‘케이퍼 무비’(caper movie)에 관심이 많다. 다섯 번째 작품으로 경찰영화, 화이트 칼라 범죄영화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 그는 “요즘도 시네마테크에서 빌리 와일더의 <뜨거운 것이 좋아> <하오의 연정> 등을 보면서 흠 잡을 데 없는 내용과 구성, 연출력에 감탄한다”면서 “언젠가는 로맨틱 코미디도 연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데뷔 이래 지금까지 계속 오락영화를 찍었어요. <도둑들> 시사 후 제일 기뻤던 평이 ‘1급 오락영화’예요. 내가 만든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즐거워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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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한국영화는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김의석)가 최근 발표한 ‘2012년 8월 한국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한국영화 관객은 1701만891명을 기록, 8월 기준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전 최다는 2007년 8월의 1636만4689명이다. 당시 흥행작은 <디워>842만2973명) <화려한 휴가>(730만7993명) 등이다.

 

                     <도둑들> 출연ㆍ제작진이 촬영을 마친 뒤 자리를 함께했다. 1천만 명 돌파 등을 예감한 듯 표정이 모두 밝다.


시장 점유율은 70.2%를 기록했다. 올 들어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이 70%를 넘긴 것은 지난 2월(75.9%)에 이어 두 번째다. 이전에는 2011년 9월(73.2%), 2007년 8월(78.95%), 2007년 2월(76.4%)에 기록했다.

영진위 영화정책센터 김수현 연구원에 따르면 전국 각 극장·스크린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 연동률은 2007년부터 약 100%에 달했다. 2004~2006년 전국 관객 수(한국영화연감 기준)는 kobis와 각 배급사의 기록을 놓고 정리한 것이다. 이 기간 중 한국영화 최고 시장 점유율은 2006년 10월에 기록한 85.3%다. 당시 상영작은 <타짜>(684만7777명) <가문의 부활-가문의 영광3>(346만4516명)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313만2320명) 등이다.

                 8월에 월등한 성적을 거둔 세 작품은 이른바 ‘떼거리 주연’ 영화다. 주연배우가 <도둑들>은 10명,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은 9명, <이웃사람>은 8명이다.

 

지난 8월 한국영화 개봉작은 12편, 상영작은 100편이다. 1701만891명이 관람하고 시장 점유율 70.2%를 기록한 것은 <도둑들>의 1천만 돌파(15일)에 이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430만 명을 넘어서고, 말에 개봉한 <이웃사람>까지 흥행에 힘을 보탠 덕분이다.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은 53.4%였다.

외국영화 개봉작은 29편, 상영작은 262편이다. 외국영화는 7월 개봉한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이후 눈에 띄는 흥행작을 내놓지 못했다. 722만7754명이 관람했고, 시장 점유율은 29.8%에 그쳤다.

이렇듯 올해 8월은 ‘한국영화 최고의 달’이었다. <도둑들>이 한국영화 사상 6번째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해운대>가 1천만 명을 돌파(2009년 8월 23일)한 이후 3년 만의 일이다. 8월 31일을 기준으로 <도둑들>은 1239만804명을 기록, <괴물>(1301만9740명)에 이어 한국영화 흥행 순위 2위를 달리고 있다.

한국·외국영화 총 관객 수는 2423만8636명이다. 월별 관객 수 역대 최고이다. 전녀 8월(2006만1970명) 대비 20.8% 상승했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을 기준으로 봤을 때, 월 관객이 2천만 명을 넘긴 달은 2007년 8월, 2009년 8월, 2011년 8월, 그리고 2012년 7월뿐이다.

8월 흥행 상위 10위 작품은 한국영화와 외국영화가 각각 5편이다. 편수는 같지만 점유율 면에서 한국영화가 월등히 앞선다. 흥행 1~10위 작품은 아래와 같다.

①도둑들(853만2712명, 누적 관객수 1239만804명) ②바람과 함께 사라지다(435만2393명, 〃 436만4779명) ③다크 나이트 라이즈(178만6108명, 〃 637만7032명) ④이웃사람(159만5725명) ⑤새미의 어드벤처2(140만6324명, 〃 141만832명) ⑥토탈 리콜(117만9714명) ⑦R2B:리턴 두 베이스(113만2136명, 〃113만2440명) ⑧아이스 에이지4:대륙 이동설(94만372명, 〃 163만4084명) ⑨스텝업4:레볼루션(77만7415명) ⑩나는 왕이로소이다(76만5161명, 〃78만6371명)

김수현 연구원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토탈 리콜>, 방학용 애니메이션 <새미의 어드벤처 2>와 <아이스에이지4: 대륙이동설> 등의 전형적인 성수기 시즌 영화들이 상위 10위권에 포진했다”며 “벨기에 영화 <새미의 어드벤처 2>가 여름 방학을 맞은 학생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어 유럽 영화의 점유율이 상당히 상승했다는 점도 2012년도 8월 박스오피스의 신선한 변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스텝업4: 레볼루션>을 제외하고는 모든 영화들이 40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개봉했다”며 “흥행 성적과 스크린 수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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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이 변변찮아 처가살이 3년
배우 김응수(52)는 충무로에 뒤늦게, 우연찮게 들어왔다. 영화 데뷔작이 서른여섯 살에 일본에서 찍은  김상진 감독의 <깡패 수업>(1996)이다. 사고를 친 뒤 일본으로 피신한 건달 ‘황성철’(박중훈)과 일류 바텐더의 꿈을 안고 일본에 온 ‘손해구’(박상민)의 이야기를 그린 범죄·액션·코미디다.

 

 

김응수는 해구의 여자친구 ‘삼순’(조은숙)이 일하는 한국인 술집의 웨이터로 출연했다. 촬영을 앞두고 한국인 웨이터 역이 설정됐고, 시간이 없어 스태프 가운데 누군가가 해야 했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 끝에 유학을 오기 전 ‘극단 목화’에서 배우로 이름을 알린 김응수가 맡았다. 당시 김응수는 세계적인 거장으로 손꼽히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1926~2006)의 일본영화학교에서 연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깡패 수업>에는 일본 촬영 진행을 돕기 위해, 현장 경험을 쌓기 위해, 연출부로 참여했다.

촬영은 도쿄에 있는 실제 한국인 클럽에서 했다. 그 술집에 있던 웨이터 의상이 마침 김응수에게 딱 맞았다. 웨이터는 원래 대사가 없었다. 술집 사장인 명계남이 공백을 메꾸느라 ‘너, 손님들에게 외상 주지 마’라고 애드리브를 했고 김응수가 ‘다 쳐마시고 나서 돈이 없다는데 어떡하냐’고 응수하면서 대사가 생겼다. 김응수는 “그렇게 출연한 걸 계기로 귀국 후 계속 배우로 활동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며 “운명으로 여긴다”고 했다.

                                     <깡패수업>의 김응수. 일본 도쿄에 있는 한국인 술집의 웨이터로 출연

                                               했다. 사장(명계남)이 “너, 손님들에게 외상 주지 말라”는 애드리브에

                                               “다 쳐마시고 나서 돈이 없다는데 어떡하냐”고 말하고 있다. 사진/MBC

                                               섹션TV ‘스타 라이징’ 캡쳐.

 

7년 간의 유학생을 마치고 1997년에 귀국한 김응수는 2년여 동안 <투캅스3> <처녀들의 저녁식사> <유령> <주유소 습격사건> <눈물> 등에 출연했다. <투캅스3>에서 ‘수하2’, <처녀들의~ >에서 ‘껍데기집 사내’, <유령>에서 ‘찬석(정우성) 부’, <주유소~ >에서 ‘경찰1’ 등 단역을 맡았다. <투캅스3>와 <주유소~ >는 김상진 감독이 연출했고, <처녀들의~ >와 <유령>은 <깡패 수업>을 만든 우노필름의 차승재 대표(현 동국대 교수·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사장)가 제작했다. <처녀들의~ >와 <눈물>은 임상수 감독이 연출했다.

김응수는 이렇듯 한 번 인연을 맺은 감독·제작자들이 다시 찾는 배우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출연료가 적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극단 목화 시절에 만난, 잠시 배우를 하다가 그만두고 KBS 1TV의 인기 교양 프로그램 <사랑방중계>에서 보조작가로 활동했던 아내와 어린 딸에게 미안함을 금할 수 없었다. 김응수는 “수입이 변변찮아 처가에서 3년간 살았다”며 “그 후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전셋집을 얻었고 둘째 딸도 그런 다음에 낳았다”고 했다.

                                  영화 <선생 김봉두>(감독 장규성)의 김응수(가운데). 평범한 여학생 ‘남옥’의

                                           아버지로 출연했다. 장 감독은 <깡패수업> 연출부의 조감독이었다.

  

30대 중반을 넘긴 배우가 맡을 만한 비중 있는 배역은 그리 많지 않아 현재는 물론 미래가 불투명하다. 하지만 김응수는 다른 길을 찾지 않았다. 단역 출연이 감독으로 데뷔하기에 앞서 미리 충무로 현장을 경험하기 위한 일환이었지만 배우로 시작한 만큼 연기자로 성공한 뒤에 만들고 싶은 영화를 연출하자고 다짐했다. 3년 동안 <화산고> <신라의 달밤> <패밀리> <취화선> <광복절 특사> <싱글즈> <바람난 가족> <선생 김봉두> <여선생 vs 여제자> <안녕! 유에프오> 등 15편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김응수는 이 과정에 유학 가기 전 극단 시절에는 자신에게 말도 못 붙이던 후배들이 주연 배우로 거드름을 피우는 걸 감내했다. <화산고>의 경우 도입부에 ‘분필을 던지고 맞는 교사’로 나왔지만 엔딩크레디트에 소개되지 않는 난감함도 치렀다. 연극을 다시 하면 당당히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겠지만 이 상태로 돌아가는 건 자존심이 허락치 않아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풀을 뜯지 않는 호랑이처럼 당당하게 생활, 충무로에서 지평을 넓혀갔다.

■ “부자의 인연을 끊자”
김응수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어릴 때부터 한학과 고전을 탐독했다. 명문 군산 제일고 시절 부모의 기대와 달리 소설가가 되기 위해 문예창작학과에 가고 싶었다. 서울에서 재수를 하면서 종합예술에 매력을 느껴 연극영화과를 지망했다. 한학자로서 아들이 판검사가 되는 걸 기대했던 아버지는 ‘부자의 인연을 끊자’고 했고, 김응수는 안방을 나온 뒤 동국대 원서를 찢어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형이 서울예대에 원서를 내줘 합격했고, 재학생 때부터 극단 동랑레파토리와 목화에서 활동했다. <운상각> <오구> 등의 주인공으로 각광받았다.

영화에서 비중있는 배역을 맡은 첫 작품은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2004)이다. 김응수는 육사 출신으로 10·26 당시 ‘김 부장’(백윤식)의 수행비서였고, 그의 거사를 ‘주 과장’(한석규)과 함께 주도하는 ‘민 대령’ 역을 맡았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감독 임상수)의 김응수(오른쪽). 그는 육사 출신으로

                                           중앙정보부장 ‘김 부장’(백윤식)의 수행비서로 ‘주 과장’(한석규)과 함께 거사

                                           를 일으키는 ‘민 대령’으로 출연했다. 실제 인물인 박흥주 대령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고 연구한 뒤 열연을 펼쳤다.

 

김응수는 출연에 앞서 민 대령의 실제 인물인 박흥주 대령 육사 졸업앨범을 구해 보고, 박 대령의 서울고 동창인 유가족 후원회장을 만나는 등 자료조사를 철저히 했다. 박 대령이 책을 많이 읽었고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장의 오른팔이었지만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지 않아 가난한 동생들에게 원망을 들었고, 그 역시 단간 셋방에서 살았다는 사실 등을 연기하는 데 반영해 <그때 그 사람들>을 꽃피웠다.

그럼에도 단역 생활은 계속됐다. <청연> <천군> <강력3반> <투사부일체> <나의 결혼 원정기> <역전의 명수> <한반도> <잔혹한 출근> <가문의 부활-가문의 영광3> 등 2년여 동안 13편에 출연했다. <타짜>에서 중학교도 못 나온, 밑바닥에서 시작해 한 조직을 거느리는 두목이 된 조연 ‘곽철용’으로 주목받았고,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2007) 우정출연을 마지막으로 단역 행진을 10년 만에 마감했다.

김응수는 2006년 KBS 2TV 드라마 <인생이여 고마워요>를 필두로 안방극장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인생이여~ > 출연은 창작극만 올리는 극단 목화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던, 영화는 하고 있지만 TV드라마는 하지 않겠다던 그로서는 일생일대의 선회였다.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극계 선배들 표정이 밝지 않아 드라마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고향에 갔을 때, 전화로 안부를 여쭐 때에 ‘너는 언제 테레비에 나오냐’던 어머니가 눈에 밟혀 마음을 바꾼 것이다. 김응수는 “내가 TV드라마에 나오자 어머니가 어찌나 기뻐하시는지 효도가 따로 없었다”며 “진작 할 걸 후회했고 드라마를 계속 하는 건 솔직히 어머니에게 효도하기 위한 점도 있다”고 했다.

                                  드라마 <닥터 진>과 <해를 품은 달>, 영화 <가비>와 <코리아>(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의 김응수.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에 이어 <미스터 고>

                                          를 찍고 있고 <26>에 합류한다. 오는 가을이나 내년 봄에 연출 데뷔작 <미녀

                                          농장>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영화 <가비> <코리아> <돈의 맛>, TV드라마 <해를 품은 달> <각시탈> <닥터 진>. 김응수의 올해 출연작이다. 최근 장규성 감독의 <나는 왕이로소이다> 촬영을 마쳤고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 고>를 찍고 있으며 조근현 감독의 광주민주화운동 소재 영화 <26년>에 출연한다. 고전과 인문학 서적을 두루 읽고 아침에 일어나면 시를 낭독하면서 발성연습을 한다는 김응수의 연기철학은 ‘정직하자, 거듭 연습하자, 인격을 갖추자’이다. 김응수는 연출 데뷔작으로 준비해온 일곱 여인의 산중생활을 그린 <미녀농장>을 오는 가을이나 내년 봄에 찍을 계획이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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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43)은 ‘타짜’다. 연기 및 흥행에서. <완득이> <황해> <전우치> <거북이 달린다> <즐거운 인생> <추격자> <천하장사 마돈나> <타짜> 등에서 영화적 캐릭터를 현실적 인물로 체화, 관객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김윤석이 달린다’.

<완득이>가 달리고 있다. 26일 현재 464만2289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감상, 한국영화 역대 흥행 톱100에서 33위에 올라 있다. 톱100 작품은 <타짜>(684만7777명·14위) <전우치>(605만913명·20위) <추격자>(507만1619명·28위) <거북이 달린다>(301만1993명·67위) 등과 함께 다섯 편. 이 가운데 <완득이>와 <거북이 달린다>는 김윤석의, 김윤석에 의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완득이>는 역대 10월 개봉작 중 1위, <거북이 달린다>는 역대 6월 개봉작 가운데 <신라의 달밤> <강철중:공공의 적 1-1> <포화속으로> <장화, 홍련> 등에 이어 5위에 올라 있다.

-출연작 정할 때 흥행성도 염두에 두는지요.

“영화는 우리 삶을 다뤄요. ‘생존’과 ‘생활’을 그린 두 부류로 나뉘죠. 생존이든 생활이든, 이야기의 타당성,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지가 중요해요. 등장인물의 몸에 피가 흐르는지, 그게 관객의 보편적 감성·정서를 건드리면 흥행이 된다고 봐요.”

-<완득이>에서 그것은 뭔가요.
“가장 온전한 사람관계는 부모와 자식 사이죠. ‘완득’(유아인)이는 17년 만에 엄마가 있고, 필리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요. 이 대목에 전율이 일었어요. 피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 완득이는 과연 어떻게 맞딱뜨려 나갈까? 이때 완득이 담임 ‘동주’(김윤석)는 완득이와 ‘엄마’(이자스민)를 보조하는 존재, 안내자예요. 이 점을 잘 소화하면 된다고 봤어요.”

-<거북이 달린다>에서는.
“수면 위로 드러난 건 형사(김윤석)가 탈주범(정경호)을 잡는 거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딸(김지나)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 실추된 아버지·가장의 위상을 되찾는 거예요. 저간에 깔려 있지만 놀아볼 수 있는 판이었죠. 레드카펫이냐 거적대기길이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절실하게 지켜내야 하는 걸 공감가게 풀어내는 거예요. 드라마와 코미디의 접점, 바람도 막아주고 습도도 조절해주는 창호지(문풍지) 같은 코미디 드라마를 추구했어요.”

-얼마나 예상했는지요.

“이제까지 예상 관객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어요. 편집본을 보고 70점 정도면 어필하겠다는 느낌을 받죠. <완득이>는 그 이상이었어요. 모니터 시사 점수는 굉장히 좋았고. 흥행에서 중요한 점은 감동과 그것을 끌어내는 구체적인 드라마예요. <완득이>는 살아있는 코미디, 웃기면서 공감을 끌어내는 실질적·구체적 드라마가 영화를 끌고 가요.”

-대본 리딩을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신(scene)에 맞춰 그룹별 리딩을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죠. 이 과정을 통해 리얼하게, 담백하게, 다큐에 가깝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톤을 찾아내고 통일시키자고 했어요. 대사를 바꾸기도 하고, 언제 어떻게 치고 나오고 어떻게 받아주고, 의논하면서 연습을 거듭했어요. 애드리브가 아닌가 하는 대사들도 사실은 다 사전에 연습한 거에요.”

김윤석은 부산의 동의대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송강호·오달수 등과 함께 부산 연극배우 출신 영화배우를 대표한다. 뮤지컬 <의형제>에서 함께한 배우 방주란과 2002년에 결혼, 두 아이(10·7살)를 두었다.


-강호씨와 부산에서도 함께 했나요.

“서울에서 만났어요. ‘연우무대’의 <국물 있사옵니다>(1993)에서. <여성반란> <지젤> <자전거>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도 함께 했죠. ‘학전’의 김민기 선생님이 멘토예요. 연기하면서 연출부였어요. 연극은 종합예술이죠. 노동이고. 전방위로 달리고 또 달리면서 완성을 추구하다 보면 정신적·육체적 거품이 빠지지요. 진정성을 갖게 돼요. 그것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근원이라고 생각해요. 연극밖에 모르는 저를 인정해준 부모님, 가족의 사랑 덕분에 외롭지 않았고 의지를 잃지 않을 수 있었죠.”

-영화계에서 동료들이 먼저 뛸 때 조바심이 나지 않았는지.

“바로 그 조바심이 사람을 망치죠. 관건은 내가 카메라 앞에서 온전히 잘 할 수 있느냐 없느냐예요. 조바심을 낸다고 될 일이 아니죠. 평생을 할 일인데 조금 빠르거나 늦게 시작하는 것이 뭔 대수겠습니까.”

휴대폰, 담배…. 김윤석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떠오른 두 가지다. 그의 휴대폰 앞자리 번호는 016이다. 그는 “처음부터 016이었다”고 했다. 2G 서비스가 조만간 종료된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바꿔야 한다는 말에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딸과 약속한 것 중에 지키지 않은 게 있는냐는 물음에 “담배요, 끊어야 하는데….”라며 멋쩍어 했다.

“우리 감독들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전체를 보는 시야도 갖춰야 하고.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 무엇보다 감독은 하고 싶은,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해요. 연기든 연출이든, 중요한 건 기본에 충실하고 정면 돌파하는 거에요. 기본에서 삐끗하면 전체적으로 무너지는 건 순간이죠.”

-닮고 싶었던 배우는 누구였나요.

“예전과 달리 요즘은 우리 배우들이 더 흥미로워요. 특히 젊은 배우들에게 더 눈길이 가요. 나를 움직이게 해요. 정유미·심은경·유아인, 갱년기인가? 하하하….”

김윤석은 요즘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을 찍고 있다. 김혜수·이정재·전지현·김해숙·오달수 등과 함께. 김윤석은 “영화상의 생존과 생활은 곧 배우들의 삶”이라고 했다. “물든 물리든, 닭 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걸로 끝나선 안 된다”며 “한계점 이상의 끈기를 갖고 연기 아닌 연기로 생존과 생활을 보여줘야 하는 살얼음판”이라고 했다. “배우의 길은 그래서 힘들지만 그게 또한 달리고 싶은 매력”이라며 기지개를 켰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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