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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16 안석환, 동시 개봉작서 극과 극 연기 “한 사람 맞아?”
  2. 2011.03.05 베드신도 하고….

배우 안석환(53)은 단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 대학 1학년 때부터 교내 극예술연구회에서 활동했고 1987년 극단 연우무대의 <달라진 저승>으로 데뷔했다. 영화는 1992년 <명자 아끼꼬 쏘냐>로 인연을 맺은 뒤 1994년 <태백산맥> <너에게 나를 보낸다> 등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7·1998년 동아연극상 연기상 등을 비롯해 2005년 KBS 연기대상 조연상을 받았다. 지난해와 올해 TV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와 <너라서 좋아> <패밀리>, 연극 <대머리 여가수>와 <웃음의 대학>, 영화 <후궁: 제왕의 첩>과 <26년>으로 기치를 높이고 있다.

 

 

“니가 헐라고 허는 일, 그거시 참말로 그 방법뿐인지…. 그거시 맞는 길인지, 솔직히 난 잘 모르겄다. 근디, 최소한 그런 거슬 생각조차 안 해보고 살았던 나는, 틀렸던 것 같아야.” “이태꺼정 암 생각 없이 금남로를 싸댕긴 거시… 인자와서 죄스럽네. 하… 아, 쪽팔리다 잉. 긍께… (웃음) 난 여그 들어와 있어도 싸다.”

영화 <26년>(감독 조근현)에서 화제를 낳고 있는 대사다. 영화 상영 중 이 대사가 나올 때 감탄하거나 고개를 숙이는 중년 관객들이 적지 않다. 최근 육상효 감독은 이 대사가 나오는 장면에서 “가장 울컥했다”고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이 대사는 ‘안수호’(안석환) 사장이 교도소로 면회를 온 ‘곽진배’(진구)에게 하는 말이다. 안수호는 광주 금남로를 주름잡는 조폭 두목으로 대형 나이트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곽진배는 안수호가 신뢰하는 수하이다. 곽진배는 사설 경호업체의 ‘김갑세’(이경영) 대표가 설계한 작전에 따라 저격수 ‘심미진’(한혜진), 정보원 ‘권정혁’(임슬옹), 브레인 ‘김주안’(배수빈) 등과 함께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군인들의 발포는 자위권 발동이었다고 주장하는 파렴치한 전 대통령 ‘그 사람’(장광)을 응징하는 데 앞장선다. 안수호의 대사는 이에 관한 것으로 그는 면회를 서둘러 마치면서 곽진배에게 “돌아보지 말고 앞만 봄서 냅다 뛰어”라고 한다.

“양아치인데 큰놈이에요. 대사가 좀 길었는데 조근현 감독, 진구와 함께 대본 연습을 하면서 짧게 정리했어요. 큰놈답게. 말이 많으면 잘아 보이잖아요. 구체적인 진배와의 관계, 지역 주민의 정서, 시대 상황은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게 좋고.”

 

 

안석환은 <26년>에 대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영화”라며 “역사의 아픔과 교훈은 기록으로 남겨야 영원 불멸성을 지닌다”고 했다. “출연 제안을 받고 영화배우로서 고마움을 느꼈고, 출연·제작진과 고사를 지내면서 기뻤고, 진구·한혜진·임슬옹·배수빈… 시대의 아픔을 안으려는 젊은 배우들이 있다는 게 반갑고 뿌듯했고, 함께 기분 좋게 작업했다”고 털어놨다.

■기관원, 핑크 캐릭터로
안석환이 조폭의 두목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7년 8월 개봉작 <넘버 3>(감독 송능한)가 우선 손꼽힌다. <넘버 3>에서 안석환이 맡은 인물은 깡패 두목 ‘강도식’이다. 넘버 2를 다투는 ‘태주’(한석규)와 ‘재철’(박상면)을 카리스마로 쥐락펴락한다.

 

안석환은 “보스가 말이 많으면 보스답지 않다”면서 “눈빛만으로 말이 되도록 대사를 다 없애거나 줄였다”고 했다. 일례로 강도식이 수하들과 자리를 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의 경우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강도식이 손을 내밀면 담배가 손가락에 끼워지고, 담배를 입에 물면 불이 붙여지고, 탁자에 재떨이가 자동적으로 준비되도록 설정했다.

안석환이 영화배우로 눈길을 끌기 시작한 작품은 1994년 개봉작 <태백산맥>(감독 임권택)과 <너에게 나를 보낸다>(감독 장선우)이다. 9월 17일에 개봉된 <태백산맥>에는 빨치산 토벌에 나선 방첩대장 ‘전원장’으로, 10월 1일에 개봉된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는 기관원 ‘색안경’으로 출연했다. 전원장은 극우 마초이고, 색안경은 여자 같은 기관원이다. 두 영화가 잇달아 개봉된 뒤 관객은 물론 영화인들조차 전원장과 색안경으로 나온 배우가 한 사람인 줄 몰랐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는 안석환이 예명(안진형)을 써 더더욱 다른 배우인 줄 알았다.

“기관원=검은색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장정일 원작인 점을 감안해 색안경의 캐릭터 색깔을 핑크로 설정했죠. 감독님은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했는데 자꾸 말씀드리니까 일단 해보라고 하더군요. 새롭고 재밌으니까 통과된 거에요.”

 

안석환은 “가운을 입고 애드립도 했다”며 “여성적인 말투가 유행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했다. “그전에는 연봉이 400만원 정도에 불과했는데 두 영화를 하면서 1000만원을 넘어섰다”고 덧붙였다.

■술자리 소재·분위기 좋아서
안석환은 단국대 경영학과에 입학하면서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동아리 활동을 해라, 넓게 살아라’는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고른 게 극예술연구회였다. 안석환은 “한두 명이 각자 행동하는 다른 동아리들과 달리 극예술연구회는 여러 명이 빙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데 끌렸다”고 했다.

“입회 이후 수업이 끝나는 오후 5시부터 통금(자정) 전까지 거의 매일 술을 마셨어요. 1학년 신입생부터 제대하고 복학한 고참까지 한데 어울려서. 대화의 주소재가 인생과 예술에 대한 것이었죠. 처음에는 연극보다 그런 술자리가 더 좋았어요.”

등사판 밀어서 만든 대본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연습하고, 망치질해서 무대 만들고, 조명기 닦아 달고, 여학생들은 무대 의상 만들고…. 안석환은 “굽은 못은 펴서 사용할 정도로 어려운 가운데 막은 올라갔고, 관객과 함께 희로애락을 나눴고,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연극에 매료됐다”고 했다.

매년 정기공연 두 번, 워크숍 무대를 두 번 올렸다. 1981년에 입대, 제대 후 복학 전 1년 동안 학비를 벌기 위해 특수운송회사에 다녔다. 1985년 복학한 뒤에도 직장생활을 병행했다. 학생과 직장인으로 바빴고, 수입도 짭짤했지만 견딜 수 없었다. 연극을 하고 싶어서. 결국 1986년 10월에 직장을 그만두고 극단 연우무대에 들어갔다. 이듬해 졸업한 뒤에는 극단에서 살았다. 그해 가을, 연우무대의 <달라진 저승>(김광림 작·연출)으로 데뷔했다.

“데뷔 후 5년 내에 성공하지 못하면 아버지 장사를 잇기로 했어요. 장사하는 게 싫어서 기를 쓰고 연극을 했는데 신통치 않아 5년쯤 했을 때 상심이 컸죠. 그런데 그 즈음부터 출연 섭외가 줄을 잇더군요. 10년 전후로 상도 받으면서 인정을 받았고.”

1997년 <이세상 끝>, 1998년 <남자충동>으로 2년 연속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았다. 한국연극협회 최우수남자연기상과 우수공연상 연기상,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 세계연극제 연극인이 뽑은 인기배우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받았다. 동물 닮기, 자연으로 돌아가기에 기초한 ‘안석환식 인물 창조’로 각광받았다. 2005년에는 <별남별녀>와 <쾌걸 춘향>으로 KBS 연기대상 조연상도 받았다. 방송·영화에 출연하면서 꾸준히 연극을 하는 안석환은 지난해 <대머리 여가수> 각색·연출을 맡았고 <웃음의 대학>을 장기 공연했다. 안석환은 “가슴으로가 아니라 세포가 느낄 정도로 변신해야 한다”면서 “부단히 연구하고 연습해서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게 배우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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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맥>에서 ‘하대치’가 ‘장터댁’의 육욕을 채워주고 있다. 빨치산 활동에
                                           필요한 군인과 경찰 등의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태백산맥> 화면 캡처.                               

                           
# 꿩 대신 닭?
 베드신도 하고…. 데뷔한 지 햇수로 1년쯤 지났을 때이다. 극중 비중도 높고 매우 중요한 조연급으로 베드신'도' 하는 인물을 만났다. <태백산맥>(감독 임권택ㆍ1994)의 ‘하대치’다. 

감독님이 <태백산맥>을 연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눈이 번쩍 뜨였다. 엄청난 작품인 데에다 ‘하대치’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당시 나는 배우 오정해에게 <태백산맥> 한 질을 선물했다. <서편제>의 오정해가 정말 좋아서, 광팬으로서 그녀의 대학 졸업 기념선물 겸 <태백산맥>의 ‘소화’를 소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경향신문 인근의 한 신문사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잠시 들른 그녀와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선물받고 싶었는데….”라며 기뻐하던 오정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만 해도 ‘하대치’ 역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오정해가 감독님에게 나한테 책을 선물 받았다고 하자 감독님이 고마워하면서 칭찬하셨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기회에 감독님을 뵙고 진지하게 청탁을 해봐….'

이후 며칠을 고민했다. ‘과연 엄청난 배역을 해낼 수 있을까, 할 수 있고 없고는 다음 문제이고 하려면 기자를 그만둬야 한다. 그래, 하게 해주면 그만 두자. 아니, 그 전에 살부터 빼자. 뚱뚱한 빨치산은 말이 안 되니까. 굶주려서 부황이 들었다고 해도 전시에, 빨치산이 이렇게 살이 쪄선 곤란하지. 일단 신체적 조건을 갖추고 감독님께 말씀드리자….'

그리고는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감독님을 뵙게 됐다. 책을 선물해줘 고맙다는 감독님께 하대치 역을 시켜달라고 말씀드렸다. 다이어트를 하고 있으며 10㎏ 이상을 빼고, 회사(당시 레이디경향 영화 담당이었음)를 그만두겠다면서. 계속 배우를 하고 정히 힘들면 다시 취직하겠다면서. 이 말이 부담이 됐는지 감독님은 부정적 운을 뗐다. 

                                  ‘하대치’는 과부가 된 지 10년이 된 ‘장터댁’과 코피가 날 정도로 다섯 번이나
                                           관계를 갖는다. 계란을 먹어가며. 이렇게 ‘장터댁’을 사로잡은 뒤 ‘하대치’는
                                           그녀로부터 갖가지 정보를 얻어낸다. <태백산맥> 화면 캡처.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저녁을 굶고 3개월 동안 밤에 1시간씩 운동을 했다. 30분을 뛰고 30분은 맨손체조 등을 했다. 100% 실행에 옮기지 못한 탓에 7㎏을 빼는 데 그쳤다. 그 즈음 후속 캐스팅이 발표됐고 하대치 역은 한 연극배우에게 돌아갔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었고, 감량과 관계없이 미역국을 먹어 그 동안 고생한 게 억울하기도 했다. 훗날 인공시절 보성군당 부위원장으로 출연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하대치’역에 물은 먹은 뒤 북한에서 내려온 보성군당 부위원장(오른쪽)으로
                                          출연했다. <태백산맥> 화면 캡처.

# 내 복을 마다하다니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감독 박광수ㆍ1995)은 <태백산맥>과 상반된다. 박 감독은 당시 청계피복상가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국내에서 최초로 보도한 경향신문 기자 역을 나보고 하라고 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전태일 평전’에도 나와 있는 자랑스러운 선배를 연기하는 건 더없는 영광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역은 하지 못했다. 다이어트가 너무 힘들어 일찌감치 백기를 들고 말았다.  

                                 
출연키로 한 뒤 수소문한 결과 선배는 호리호리한 분이셨다. 실제 주인공이 호리호리하지 않았다 해도 뚱뚱한 몸매로 선배 역을 하는 게 용납되지 않았다. 전태일 등 근로자들은 못 먹어 말랐고, 영양실조 등에 걸려 있는데 문제의식을 갖고 사태의 심각성을 보도한 기자는 비만이라는 게 어불성설로 여겨졌다. 선배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촬영에 앞서 박 감독에게 1개월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위에서 밝힌 이유를 들어. 박 감독은 흔쾌히 동의해줬고, 곧바로 굶으면서 강도 높은 운동을 시작했지만 1주일을 채 넘기지 못하고 박 감독에게 항복 선언을 했다. 박 감독은 그리 문제될 게 없다고 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실존 인물의 이미지와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결국 그 역은 MBC TV의 김승수 PD가 했다. 

# 더 뚱뚱했으면….
인권영화 <그녀의 무게>(감독 임순례ㆍ2003))에서는 살을 찌워야 했다. <여섯개의 시선>에서 서막을 장식한 <그녀의 무게>에서 맡은 배역은 영어교사. 수업시간에 여학생들의 외모, 목소리, 걸음걸이 등을 문제 삼는 반 인권적 교사인데 그 역시 뚱뚱한 인물이었다. 

                                  <그녀의 무게>에서 똥배가 나온 영어교사가 뚱뚱한 여학생에게 “취업을 하
                                          려면 살 좀 빼라“고 핀
잔을 주고 있다. 자신은 남자라서 괜찮다며.

촬영 1주일을 앞두고 임 감독은 내게 살을 더 찌울 것을 주문했다. 특히 배가 현재보다 더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순간 찌우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나중에 뺄 것을 생각하니 암담했다. 외모가 따라주지 않아도 성격이나마 매력적인 인물로 나오고 싶은데 그 반대인 점도 찝찔했다. 학생들의 인권옹호를 위해 투쟁하는 교사면 좋을 텐데…. 쩝쩝.

그렇다고 배역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차별을 소재로 만드는 첫 인권영화인 데에다 당시 인권위 출입 기자로서 영화 기획에 관여했고, 박광수·박진표·박찬욱·여균동·임순례·정재은 감독의 단편을 엮는 옴니버스 영화라는 점 등이 포기할 수 없는 이유였다.


하루에 대여섯 끼를 먹어 2~3㎏을 찌웠다. 촬영 당일 아침은 밥을 두 그릇을 먹고 물도 세 컵이나 마셨다. 의상도 조금 작아 보이는 양복을 입었다. 살이 찌기 전에 입었던. 그리고 양복 안에는 배가 잘 드러나도록 와이셔츠가 아닌 티셔츠를 입었다. 힘이 좀 들었지만 허리띠를 평소보다 한 구멍 더 졸라맸다.


그럼에도 촬영에 앞서 임 감독은 배가 더 나와 보여야 한다고 티셔츠 속에 뭔가를 집어넣을 것을 주문했다. 촬영장소가 선정여자실업고등학교여서 다행히 이용할 만한 소품이 많았다. 의상팀이 전해준 조그마한 쿠션을 넣자 배가 출산이 임박한 산모보다 더 불룩했다. 배가 너무 많이 나온 데에다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이것저것을 집어넣어 검사를 받았다. 결국 머플러를 넣은 배로 합격을 받아 촬영을 마쳤다. 

참고로 임산모의 배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만든다. 옷을 걷어낸 불룩한 배는 대역을 쓰거나 제작을 해서 붙인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제작을 할 경우 특수분장팀이 여배우의 체형을 뜨고, 체형에 맞게 살 재질의 불룩한 배를 만든다. 3주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작업이 마무리. 여배우의 실제 살과 만든 뱃살이 표시가 나지 않도록 붙이는 작업으로 대략 5~6 시간이 걸린다.

# ‘
설경구식 연기’

몸으로 하는, 신체를 많이 사용하는 연기로는 에로·액션연기가 우선 손꼽힌다. 여기에 한 가지를 추가한다면 ‘설경구식 연기’를 들 수 있다. 어떤 장르·인물이든, 먼저 몸을 만든 다음 그 몸에 마음을 덧입히는 연기이다. 

설경구는
‘고무줄 체중’으로도 유명하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감독 박흥식·2000)를 마친 뒤 <공공의 적>(감독 강우석·2001)에서 권투선수 출신 형사 역을 해내기 위해 14㎏을 찌워 88㎏으로 만들었다. <오아시스>(감독 이창동·2002)에선 시나리오 지문에 ‘갈비뼈가 드러나 보인다’고 적혀 있는 점을 감안해 한 달 보름 동안에 18㎏을 빼 정신장애가 있는 전과자로 변신했다. <광복절특사>(감독 김상진·2002)에서 탈옥한 죄수 역을 소화하기 위해 8㎏을 찌웠고, <실미도>(감독 강우석·2002)에서는 6㎏을 뺐다. <역도산>(·감독 송해성·2002)2004)에선 <실미도> 때 70㎏이던 몸무게를 96㎏으로 만들어 100~140㎏의 전·현직 레슬러들과 경기를 펼쳤고 <공공의 적2>(·감독 강우석·2005)에서는 냉철한 검사가 되기 위해 한 달 동안 16㎏ 정도를 감량했다. 바지 사이즈가 <역도산> 때 39였고, <공공의 적2> 때에는 33에 지나지 않았다.


참고로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을 위해 설경구의 살 빼기 비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8㎏을 뺄 당
시 식사는 하루에 두 끼만 먹었다. 아침은 오전 10시, 저녁은 오후 4시 즈음에 먹었다. 식사량은 평소의 3분의 1로 줄였다. 그리고 하루에 5~6시간씩 운동을 했다. 잠도 5시간 정도로 줄였다. 조금 먹고, 운동하고, 덜 자고. 비법이라고 했을 때 눈이 번쩍 뜨였던 독자들은 배신감을 느낄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적인 다이어트는 덜 먹고 꾸준히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다.


이정재의 경우를 들자면 그는 <순애보>(감독 이재용·2000) 촬영을 앞두고 1주일에 4~5㎏을 빼야 했다. 그는 하루 세 끼를 오렌지 주스, 야쿠르트, 우유 한 잔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팔굽혀펴기 등을 100회씩 했다. 실로 초인적이다. 배우는 몸이 재산이니까 당연하다고 할는지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나 몸은 가장 소중한 재산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니까.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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