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관 감독(41)은 ‘올해의 감독’ 가운데 한 명이다. 서영주·이정현 주연 영화 <범죄소년>의 각본·연출을 맡아 토론토·도쿄·부산·우디네이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받았다. 도쿄에서는 심사위원특별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지난달 22일 개봉, 인권영화로는 드물게 1만 명이 넘게 본 가운데 6일부터는 온라인 상영도 시작했다. 강이관 감독과 <범죄소년> 및 ‘범죄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범죄소년’은 14세 이상 19세 미만으로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자를 말한다. 이들은 형사책임을 진다. 영화 <범죄소년>은 이를테면 강이관 감독의 해피엔딩 <피에타>다. 범죄소년(서영주)에게 어느날 죽은 줄 알았던 엄마(이정현)가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가짜 모자(母子)의 자살에 구하는 자비 못지않게 가진 것 없는 진짜 모자의 새로운 동행에 햇살이 가득하기를 기원하게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강이관 감독의 영화사 남원이 함께 만들었다. 강 감독은 <범죄소년>에 대해 ‘철없는 엄마와 조숙한 아들의 사랑 만들기’라고 소개했다.

 


-범죄소년 이야기를 택한 동기는.
“평소 청소년 문제, 특히 중학생에게 관심이 많았다. 청소년 문제는 상업영화로 만드는 게 힘들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연출 제안을 받고 물어보니 그간 공개된 작품 중 재소자·노인 문제를 다룬 영화가 없었다. 그래서 청소년 재소자, 범죄소년을 선택했다.”

-시나리오 작업은 얼마나 했나.
“시나리오 작업에 앞서 5개월간 국가인권위와 법무부의 도움을 받아 전국의 소년원, 보호관찰소, 청소년 쉼터 등을 찾아 자료 조사를 했다. 자료 조사 후반부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 3개월 만에 완성했다. 연출 제안을 받은 건 작년 4월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예산 문제로 늦어도 12월 중으로 촬영을 시작해야 했고 그래서 자료 조사와 시나리오 작업에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작년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장편 극영화를 1년 만에 만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고, 영화사도 만들어야 했고, 연출 외 돈 문제까지 신경써야 해 여러모로 힘들었다.”

강이관 감독은 고려대 사회학과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했다. 데뷔작 <사과>(2008)로 제3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 제53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신인각본상을 받았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8번째 영화 <시선 너머> 중 탈북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이빨 두 개>를 연출했다.

 

-자료 조사 때 실상이 어땠는지.
“80% 이상이 가정 환경이 안 좋은 학생들이었다.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사이가 안 좋거나, 한부모 가정 아이였다. 그리고 뉴스에 나오는 어른 같은 범죄를 지은 아이들은 일부였다. 단순 절도나 폭행으로 들어온 아이들이 70%였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관심을 받지 못하면서 절도·폭행을 반복한 거다. 개인의 잘못에 앞서 구조적인 탓이 컸다. 어른들이 그들을 만들고 사회는 그들을 사회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는 거다. <범죄소년>을 만들기로 한 출발점이 거기에 있다.”

영화 속의 법원·경찰서·유치장·보호관찰소·소년원 등은 모두 실제다. 배경으로 흐릿하게 나오는 아이들은 실제 소년원생들이다.

-중학생 아들과 30대 미혼모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한 쉼터에서 가출한 아이들이 역할극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노는 걸 봤다. 저희들끼리 엄마·아빠 역할을 하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내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때 한 소년과 젊은 엄마를 떠올렸다.”

-중학생 배우는 공모를 했다.
“우리나라에 초등학생과 고교생 배우는 많다. 중학생 때는 공부를 하느라 활동하는 이들이 적다. 배우 에이전시를 통해 적임자를 찾다가 포기하고 서울·경기 지역 중학교에 공문을 보내고 공고도 내 공개 오디션을 봤다. 서류 심사-면접-토론회를 가졌다. 면접 때 연기력과 장기를 심사, 20명을 뽑았다. 토론회 때 역할 바꾸기와 주제 토론을 갖고 서영주(15) 등 청소년 배우들을 뽑았다.”

6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서영주는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에서 어린 김윤석 역할을 맡았다. 이에 앞서 영화 <살인의 강> <쌍화점>, TV드라마 <메이퀸> <패션왕> <계백> 등에 출연했다. <범죄소년>에 ‘지구’로 출연, 제25회 도쿄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엄마 ‘효승’ 역은 이정현이 맡았다.
“극중 엄마는 17살, 여고생 때 아이를 낳은 미혼모다. 엄마 같지 않은 엄마다. 30대 초반의,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결혼하지 않은, 연기의 폭이 넓은 배우를 찾았다.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 부문 황금곰상 수상작 <파란만장>(감독 박찬욱·박찬경)을 봤을 때 이정현이 인상적이었다. <꽃잎>의 소녀만큼 돋보였다. 가수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이정현이면 충분히 소화해 줄 같았다. 배역이 미혼모여서 선뜻 응하지 않았는데 몇 차례 대화 이후 개런티도 받지 않고(재능 기부) 출연해 줬다. 장석용·강래원 등 배우들과 스태프들, 재능 기부로 참여해 준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지구는 실제 인물을 기초로 했나.
“인물과 드라마 모두 취재한 내용에 상상력을 덧붙인 거다. 지구의 경우 어렸을 때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본 적이 없다. 병든 외할아버지와 살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여자친구이다. 빈집 절도 사건에 휘말리고 돌봐줄 어른이 없어 소년원에 들어간다. 복역 중 외할아버지가 사망하고, 세상에서 완전히 버려졌다고 느꼈을 때 죽은 줄 알고 지낸 엄마를 만나게 된다.”

-엄마 캐릭터가 영화의 재미와 의미를 한층 더해준다.
“엄마는 조숙한 아들에 비해 다소 철 없어 보이는 인물이다. 모정은 절절한데 표정은 천진난만하다. 효승은 극중에 나오듯 17살에 놀러갔다가 덜컥 임신했다. 가출한 뒤 온갖 세파를 겪었다. 위기를 거짓말과 애교로 넘기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13년 만에 만나게 된 아들과 잘 살아보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다. 아들의 여자친구가 임신했었다는 데 분개하고 절망한다. 아들에게서 아들의 아빠를, 자신의 과거를 본 거다. 하지만 효승은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일어선다. 서로가 과거와 현재를 공유, 모자 간에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이뤄진 거다. 부동산 중개소 앞에서 얘기를 하는 효승의 미소와 햇살은 모자의 삶에 드리우는 희망을 말한다.”

-보호관찰소에서 가진 시사회 때 실제 인물들 반응은 어땠나.
“영화 만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찰소 관계자가 여태까지 한 시사회 중 아이들의 집중도가 가장 높았다고 하더라. 관객과의 대화 때 ‘내 상황과 맞는 부분이 많아 공감했다. 주인공들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재미있게 봤다. 의미있는 영화다. 나가면 잘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받았다…’고들 하더라. 국제영화제 관계자·관객들 평가나 개봉 이후 극장 관객들 반응도 다르지 않다.”

제작 당시 여건이 너무 안 좋아 강이관 감독은 과연 완성할 수 있을는지 걱정했다. 다 만든 다음에는 개봉할 수 있게 되기를 고대했다. 개봉한 지 2주가 지난 요즘 바람은 두 가지다. 완성하게, 개봉하게 해달라고 했던 당시보다 더 간절한 바람이다.

“좀더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해요. 범죄소년과 미혼모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이라도 불식돼 그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배려심을 갖게 되었으면, 나아가 재능 기부로 참여해 주신 배우·스태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을 할 수 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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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사회>(가제).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이지승 감독(42)이 연출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미국의 뉴욕대에서 영화이론을 전공한 이 감독은 <색즉시공> <청춘만화> <해운대> <통증> 등의 프로듀서로 활동했고, 영화진흥위원회 부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장편 총괄 책임 교수로 4년째 재직하고 있다. <공정사회>는 감독 데뷔작이다.

 

 

<공정사회>는 딸을 성폭행한 자를 응징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감독은 “3년쯤 전에 인터넷에 난 ‘딸 성폭행한 범인 직접 찾아낸 엄마의 40일 추적기-세상의 모든 엄마가 울었다’는 기사를 보고 만든 영화”라고 했다.

 

“그 엄마를 찾아가려고 했다가 그만뒀어요. 그 엄마에게 사건을 다시 상기시키는 게 마음에 걸리고, 영화적으로 구성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를 것 같아서. 그래서 국내외의 유사사건을 참조해 실제와 허구의 조화를 꾀했어요.”

시나리오는 지난해 연말부터 썼다.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으로 드라마를 구성했다. 올해 3월 말에 완성한 뒤 장영남·마동석·배성우·황태광 등을 캐스팅했다. 아역 이재희는 오디션을 통해 뽑았다. 장영남은 엄마, 마동석은 비리형사, 배성우는 장영남의 남편,  황태광은 범인, 이재희는 딸 역을 맡았다.

 

                  <공정사회>에서 장영남(왼쪽)은 딸 성폭행범을 직접 찾아내 응징하는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마동석(오른쪽)

                   은 장영남의 신고에 부실 수사를 하는 비리 형사로 출연, 장영남과 호흡을 맞췄다.

 
“예산을 짜보니까 10억원 이상이 필요하더군요. 오랜 경험상 대기업 투자를 받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출연·제작진에게 러닝캐런티로 하자고 했어요. 촬영·연출 계획서를 보여주면서. 모두들 기꺼이 동참해 줬고, 덕분에 5000만 원으로 가능했죠. 배우·스태프에게 큰 빚을 졌어요. 앞으로 갚을 수 있게 되었으면 해요.”

촬영은 지난 5월 17일부터 6월 4일까지 했다. 이 기간 중 촬영을 한 날은 9일이다. 뉴욕대 동문인 황기석 촬영감독과 논의, 두 대의 중소형 HD 카메라로 여느 영화 3~4일 간 촬영분을 하루에 마쳤다. 낮은 물론 밤 장면도 자연광을 이용했다. 이 감독은 “영상이 다소 투박하고 거칠 수밖에 없는 점이 스릴러 장르에 더 어울린다”며 “사실주의와 더불어 표현주의를 추구했다”고 밝혔다.

 

“하이라이트는 엄마가 범인에게 응징하는 거에요. 경찰의 부실수사 등으로 인해 더욱 상처를 받는 피해자들을 비롯해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풀었어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영화로는 가능하잖아요.”

이 감독은 태흥영화사 이태원 대표(74)의 셋째 아들이다. 태흥영화사는 <무릎과 무릎사이> <기쁜 우리 젊은 날> <아제아제 바라아제> <젊은날의 초상> <장군의 아들> <경마장 가는 길> <서편제> <화엄경> <태백산맥> <춘향뎐> <취화선> 등 38편(한국영상자료원 기준)을 제작해 1980~2000년대 한국영화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한국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인 대표적인 영화사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극력 반대하셨어요. 아버지는 무척 힘들 거라고 하셨고. 아버지가 하신 말씀의 의미를 대학에 들어가서야 알았어요. 누구의 아들이란 점 때문에 정말 힘들었거든요. 뉴욕대에서 영화이론을 전공해 교수를 지망하고, 귀국 후 프리랜서로 활동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현장 데뷔는 미국에서 했다. 박사과정을 앞두고 뉴욕에서 찍은 김혜수·금성무·미라 소르비노 주연 <투 타이어드 투 다이>(감독 진원석), 데이비드 맥기니스 주연 <컷 런스 딥>(감독 이재한)에서 프로듀서를 맡았다. 진·이 감독의 요청을 받아들여. 귀국한 뒤 태흥영화사의 <세븐틴> <세기말> <춘향뎐> 등을 거쳐 프리랜서 프로듀서로 활동해 왔다.

 

“아버지를 존경해요. 감독·배우를 발굴하고, 국제영화제를 개척하고, 웰메이드 필름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일궈내는 과정을 통해 아버지에게 배운 게 도전정신이에요. 프리랜서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5000만원을 지원하는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영화 제작연구과정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도전정신은 저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됐어요.”

장편 스릴러를 9회 촬영으로 마치는 등 <공정사회>도 도전정신으로 만들었다. <공정사회>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잇 프로젝트’에 출품, 21개국 93개 프로젝트 가운데 20편에 선정돼 최종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영화제 기간 중 심사를 거쳐 지원작에 선정되면 후반작업 등에 도움을 받게 된다.

 

“후반작업 일정상 7월말에 마감하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은 어려울 것 같아요. 내년 초에 열리는 선댄스영화제를 염두에 두고 있어요. 개봉은 그 이후에 했으면 해요.”

이 감독은 “제작비가 적게 든 영화 개봉·흥행은 국제영화제에서 인정을 받아야 유리하다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한국영화가 더욱 발전하려면 다양성이 구현되어야 한다”고 했다. “영화 다양성은 창작인의 열정과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가능하다”면서 “다양한 영화로 국내외 시장과 영화제를 개척하는 데 혼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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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 되려면 ‘머나먼 다리’를 건너야 한다. 장편 극영화 데뷔작 <시체가 돌아왔다>(제작 씨네2000)로 주목받고 있는 우선호 감독(38)도 실로 멀고 먼 길을 걸어왔다.

 

 

고3 때 그의 지망 대학은 한의대였다. 수능 성적이 기대한 만큼 안 나오자 그는 부모에게 돌연 연극영화과를 가겠다고 했다. 아버지의 극력 반대에 부딪쳐 1994년 중앙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연극반(또아리) 활동을 하면서 단편영화 작업에 매달렸다. 2003년 졸업 후 영화진흥위원회 부설 한국영화아카데미(20기)에 입학, 연출 공부를 했다. 2005년 2월에 졸업했고 졸업작품으로 만든 <정말 큰 내 마이크>로 미쟝센단편영화제 ‘희극지왕’ 부문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약 7년이 지난 2012년 3월에야 각본·연출을 맡은 <시체가 돌아왔다>를 내놓았다. 영화감독을 떠올린 뒤 장편 극영화로 그 꿈을 이루는 데 무려 18년이 걸렸다. 영화아카데미 20기 중에 데뷔한 감독은 그가 유일하다.

“<시체가 돌아왔다>는 처음부터 씨네2000에서 준비했어요. 산에 들어가 두 달 동안에 쓴 시나리오 초고가 이미 나와 있었고 (제작사에서) 마음에 들어했는데 개봉까지 7년이 걸릴 줄이야….”

물론 7년 동안 <시체가 돌아왔다>에만 전념한 건 아니다. 씨네2000에서 <거북이 달린다>(2009) <체포왕>(2011) 등을 제작하느라 <시체가 돌아왔다>를 진행할 수 없을 때에는 오리온·대한항공 등의 CF와 TV드라마 <시리즈 다세포 소녀>(2006) 40부작 중 6부작을 연출했다. 연기학원에서 연기지도를 맡기도 했고, <시체가 돌아왔다> 외 두 장편 시나리오와 저예산 로맨틱코미디 시나리오도 썼다.

 

<시체가 돌아왔다>는 범죄사기극이다. 우 감독이 외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불쑥 든 ‘만약 시신이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을 발전시킨 작품이다. 시신이 바뀌면서 일파만파로 번지는 소동을 코미디·범죄·사기·추격 드라마로 풀었다. 시나리오 작업 당시 주·조연의 개성과 드라마의 구성을 수없이 새로 설정하고 구축했다. 원하는 것은 같지만 목적은 각기 다른 개인·기업·사체업자·국정원 등이 뒤얽힌 각축전으로 빚어냈다. 지난달 29일 개봉, 17일 현재 90만여 명이 관람했다.

“영화는 배우(캐릭터)가 살아야 해요. <시체가 돌아왔다>를 하면서 그 점을 가장 염두에 뒀어요. ‘배우를 통제하지 못 했다’는 말이 있는데 천만에요. 배우들이 충분히 놀 수 있게 마당을 펼쳐주고 그것들 중에서 선택을 하자는 방식을 택했어요. 캐릭터·이야기·상황이 맞물려 흐르면서 객석에서 자연스런 웃음이 터지도록 유념했고. 특히 코미디로 가다가 신파로 빠지는 걸 지양했어요. 어쨌거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건 제가 짊어져야 할 몫이라고 생각해요.”

우 감독은 고3 때 난데없이 연극영화과를 가겠다고 밝힌 데 대해 “핏줄”을 들었다. “중고교 시절 영화광”이었다며 “아버지가 고 고영남·이형표 감독님 연출부에서 조감독까지 했는데 데뷔를 못 했고, 그런 점 등을 고려해 극력 반대를 한 걸 훗날 알았다”고 했다. 학창시절 인상깊게 본 영화로 <시네마천국>(1988)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 <집시의 시간>(1989) <하얀전쟁>(1992) 등을 들었다.

 

우 감독은 대학시절 전공 공부는 뒷전이었다. 최전방 수색대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뒤에도 취직은 안중에 없었다. 연극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 <윈터 헌터> 등에 출연하고, 세 찌질이 탈옥범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스튜디오 점령 소동을 그린 창작 희곡 <드림 캐스팅>을 써 연출도 했다. 아르바이트로 마련한 캠코더로 금단 현상과 실연의 아픔을 엮은 <금연>(禁緣)을 비롯해 <메모리얼 #1> 등의 단편을 기획,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감독·편집 등을 도맡았다. 도시에서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혼자 있는 시간> 등도 만들었다. <금연>으로 삼성디지털창작제(2000)에서 3등, <메모리얼 #1>로 KBS 디지털영상제(2001)로 금상, <혼자 있는 시간>으로 SBS VJ영상제(2002)에서 4등상을 받았다.

“4학년 때 야심차게 단편을 하나 찍었는데 편집한 뒤 곧바로 태워버렸어요. 너무나 마음에 안 들어서. 그때에야 영화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있다는 걸 알고 부랴부랴 입시 준비를 해 합격했고. 연극·단편영화를 하느라 대학을 10년 만에 졸업했는데 도서관에서 3개월 공부한 게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시체가 돌아왔다> 원제는 <시체는 울지 않는다>였다. 우 감독은 “제목 교체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지만 ‘시체’를 뺀 적은 없다”고 했다. 제목이 주는 거부감이나 선입견에 대해 “영화상에 시신이 나오는 건 한 번밖에 없다”며 “개봉되면 자연스레 해소될 수 있도록 각본·연출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다음 영화로 트렌스젠더가 차력하는 이야기 등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제는 결혼도 하고 관객분들에게 유쾌한 에너지를 심어주는 정서적인 장르 영화를 만들겠다는 소임을 언제까지나 다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독립영화를 찍던 그 순수한 열정을 잊지 않고, 열심히 하되 미련하게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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