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권현상(31)과 남보라(22)가 영화 <돈 크라이 마미>(감독 김용한)에서 함께했다. <돈 크라이 마미>는 청소년 성폭력 사건을 다룬, 실화를 근간으로 한 픽션이다. 권현상은 가해자 ‘박준’, 남보라는 피해자 ‘유은아’ 역을 맡아 유선·유오성·동호·이상민 등과 호흡을 맞췄다. 권현상·남보라와 함께 <돈 크라이 마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검찰청 2009년 집계에 따르면 성폭행 사건이 하루 44.3건, 시간당 1.8건 발생했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대부분 무죄, 또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돈 크라이 마미>에서 세 청소년 폭행범 가운데 두 명은 증거불충분 등으로 무죄를 선고받는다. ‘박준’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1년 6개월을 받는다. 이에 앞서 잇단 성폭행에 시달리던 ‘유은아’는 생일에 목숨을 끊는다. 엄마(유선)에게 ‘Don’t Cry Mommy’가 새겨진 케이크를 남기고. 엄마는 개전의 의지가 없는 박준 등을 직접 응징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다.

-시나리오를 읽고 어땠나.
권현상= 어찌나 가슴이 울렁거리고 심장박동이 가빠지는지 단숨에 읽을 수 없었어요. 픽션이지만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어서 눈을 감고 가슴을 진정시켜 가면서 읽었어요. 가해자 역할이어서 특히 그랬던 것 같아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치를 떤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남보라=전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은아 입장과, 딸보다 더 고통스러운 엄마 생각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두 모녀가 너무나 안타깝고, 이런 모녀가 단지 영화속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사회에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어요.

 

-배역을 맡는 게 꺼려지지 않았는지.
권현상=주변 반대가 좀 셌어요. 박준이 은아를 잇달아 강간하면서도 죄책감을 못 느끼는 ‘인간 쓰레기’거든요.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 <혼> 등 그간의 작품에서 악역을 많이 했는데 이번 역할이 가장 세요. 악역 이미지가 고착될까봐 우려하는 주변 반대 때문에 고민하던 중 결심했죠. ‘나는 배우다, 이제 4년밖에 안된 배우다. 변신기회는 앞으로 있을 것이다. 지금은 구제불능인 박준이 되자. 그게 배우다….’ 그렇게 마음먹고 달려들었어요.

남보라=초고를 오래 전에 받았어요. 영화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 TV드라마 <로드 넘버원>을 할 때에요. 그때부터 하고 싶었어요. 잘할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들었고. 완고(完稿)는 초고와 많이 달라요. 더욱 극적이고 구성도 세련됐어요. ‘하자, 잘 하자, 극한에 처하는 인물의 격한 감정을 실감나게 연기해서 은아 같은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된다는 영화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각인시키는 데 기여하자’고 다짐했죠.

김용한 감독은 <돈 크라이 마미> 초고를 2008년 후반기에 썼다. 2009년 상반기에 완고를 내고, 하반기에 캐스팅 작업에 들어갔다. 투자를 받는 게 차질을 빚으면서 2011년 3월에야 현재의 배우들로 출연진을 확정,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촬영을 했다.

 

-촬영은 순조로웠나.
권현상=그땐 정말 바빴어요. 드라마 <공주의 남자>, 영화 <도시의 풍년>과 촬영 일정이 우연찮게 겹치는 바람에. <공주의 남자>에서는 병약한 왕세자, <도시의 풍년>에서는 부지런한 공무원을 맡았어요. 세 작품 모두 캐릭터가 달라요. 하루에 세 작품을 모두 찍은 적도 있어요. 정말 신나고 재밌었죠. 부담도 됐지만 상호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느낌을 받았고 ‘연기가 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남보라=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무척 힘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힘들 줄이야, 요즘 말로 ‘멘붕’(멘탈 붕괴)이었어요. 두 달 정도 은아의 감정을 유지하면서 일상 생활에도 지장을 받고는 했어요.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예요.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벗어나려고, 잊어버리기 위해 온 종일 잔 적도 있어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고 우울증세가 나타나 심리 상담도 받았어요.

인터넷 등에 공개된 <돈 크라이 마미> 티저·메인 예고편, 열연 영상, 사건파일 영상 등을 보면 남보라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느낄 수 있다. 성폭행이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에게도 얼마나 깊은 상처와 아픔을 주는지 전해준다. <돈 크라이 마미>가 시사하는 의미를 실로 절감하게 한다.

-남보라(은아)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겠다.
권현상=촬영할 때 보라가 많이 울었는데 그때마다 측은하고 미안했어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고. 그래서 일부러 보라 옆에 잘 가지 않았고, 말도 잘 안걸었어요. 그게 보라가 감정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니까.

-권현상(박준)을 대할 때마다 오싹했겠다.
남보라=오빠들 덕분에 제가 더 극중에 몰입할 수 있었어요. 극중 상황은, 액션에 리액션이 착착 맞아 떨어질 때 잘 살아나잖아요. 오빠들은 카메라 앞에 있을 때와 바깥에 있을 때가 달랐어요. 그런 게 눈에 보일 때 자극을 받았어요.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처음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을 때 어땠나.
권현상=박준과 ‘윤조한’(동호) ‘한민구’(이상민) 등은 정상적인 10대가 아니에요. 교복을 입은 파렴치한이에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딘가에 있을 인물이죠. 그들이 영화를 보면 엄청 찔릴 거에요. 거울을 보는 것 같을수록 그들은 반성하게 될 겁니다. 그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봐 못보게 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봐요.

남보라=종종 뉴스로 접하듯 <돈 크라이 마미> 이야기는 단순한 픽션이 아니에요. 극중의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실제로도 적지 않다고 봐요. 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들이 영화를 보면 느끼는 게 많을 거에요. 반성하고 경각심을 가질 겁니다. <돈 크라이 마미>를 만든 이유가 그런 데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권현상은 임권택 감독의 둘째 아들이다. 임 감독이 배우가 되는 걸 반대, 단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에도 쇼핑몰 사업 등을 했다. 그런 중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의 후광을 입지 않고 홀로 서기 위해 예명을 짓고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스물여덟 살에 영화 <고사: 피의 중간고사>(2008)로 데뷔했다. 올해 <돈 크라이 마미>에 앞서 MBC 드라마 <더 킹 투 하츠>, OCN 드라마 <뱀파이어 검사2>, 영화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등에 나왔다. <강철대오>에서는 미문화원을 점거한 운동권 대학생 리더 ‘남정’으로 출연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남보라는 동덕여대 방송연예학과를 졸업했다. 배우로 데뷔하기 전 MBC <우리들의 일밤-천사들의 합창>과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서 13남매의 맏딸로 주목받았다. KBS 시트콤 <웃는 얼굴로 돌아보라>로 데뷔, 영화 <악마를 보았다>와 tvN 시트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생초리> 등을 거쳐 영화 <써니> <하울링> <무서운 이야기>,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성폭행은 육체적 상흔을 넘어 영혼을 살해한다. 권현상은 “악역은 좀 그만하고 싶다”고, 남보라는 “이제는 웃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둘 다 “작품이 좋으면 또 할 것”이라며 배우로서의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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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장영남(38)은 ‘정통파’다. 계원예고와 서울예대에서 연극을 전공했고, 창작극 전문 ‘극단 목화’와 문화창작집단 ‘수다’ 등에서 활동했다.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2002) 등을 수상한 뒤 <아는 여자>(2004)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박수칠 때 떠나라> <거룩한 계보> <헨젤과 그레텔> <하모니> <굿모닝 프레지던트> <7급 공무원> <불신지옥> <헬로우 고스트> <김종욱 찾기> <푸른 소금> 등을 통해 ‘연기파’ 배우로 각광받고 있다. <이웃사람>에 이어 <늑대소년>과 <공정사회> 개봉을 앞두고 있다.

 

 

■죽거나 혹은 죽은 여자
장영남은 극중에서 죽거나 혹은 죽은 여자 역을 적잖게 맡았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분장실> <부자유친> <코소보 그리고 유랑> <웰컴 투 동막골>, 영화 <아는 여자> <헨젤과 그레텔> <불신지옥> <헬로우 고스트> 등이 대표작이다.


 

올해 초 장안에 화제가 된 드라마 <해를 품은 달>도 빼놓을 수 없다. 장영남은 이 드라마 첫 회에 특별출연, 모진 고문을 받다가 사지가 찢겨 죽음을 맞는 무녀 ‘아리’로 열연을 펼쳤다. “미친 존재감” “소름 돋는 명품 연기” 등 시청자의 찬사를 한 몸에 받으면서 <해를 품은 달>이 인기 드라마로 부상하는 데 톡톡히 기여했다.

 

장영남은 첫 영화도 죽는 여자로 시작했다. <아는 여자>(감독 장진)에 ‘사고녀’로 출연했다. 야구장에서 남자친구와 큰 소리로 싸우고, 횡단보도에서 자동차에 치여 죽는 여자다. 이 여자는 죽어가면서 “ 사랑은 살아있을 때 느끼는 것”이라고 읊조린다. ‘동치성’(정재영)은 이 말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먼 길을 달려 바텐더 ‘한이연’(이나영)을 찾는다. 한이연을 그냥 좀 아는 여자에서 특별한 여자로 여긴다.

                   영화 <아는 여자>(감독 장진)의 장영남. 남자친구에게 “사랑을 잡으라” 등 소리를 지르고 투수에서 외야수로

                   전락한 ‘동치성’(정재영)이 이 소리에 신경 쓰느라 외야로 날아든 공을 잡지 않는 바람에 팀은 패한다. 

 

장영남에게 죽는 역할은 역사가 깊다. 서울예대 92학번인 장영남은 1995년 극단 목화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작은 <로미오와 줄리엣>. 세익스피어의 동명 원작을 한국적으로 풀어낸 이 작품에서 장영남은 덜컥 줄리엣 역에 캐스팅됐다. 그런데 연습을 시작한 지 한 달여 만에 잘리고 말았다. 로미오의 친구 역을 맡아 남장을 하고 무대에 올랐다. 여주인공에서 졸지에 단역으로 전락한 것이다.

 

장영남은 이를 악물었다. 오기와 독기로 실력을 쌓았고 6년여 뒤 동명 연극에서 줄리엣 역을 맡아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을 수상했다. 일본·독일·영국·중국 등 해외에서도 공연, 한국 연극의 기치를 드높였다. 장영남은 “그때 오태석 선생님이 저를 자르지 않았다면 오늘의 저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잘린 뒤에 배우로 살아남기 위해 독하게 마음먹고 부단히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장영남. 신인 때 당당 줄리엣 역에 캐스팅된 장영남은 연습을

                                  시작한 지 한 달만에 잘리고, 장영남은 이를 계기로 연기력을 쌓는데 혼신을 다한다.

장영남이 대학로에서 ‘캐스팅 1순위’ ‘흥행 보증수표’ ‘대학로 만인의 연인’ 등으로 손꼽힌 데에는 이처럼 인고의 세월을 거친 데 기인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은 장영남이 ‘대학로의 스타’로 등극한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장영남은 목화에 대해 “내게는 연기학교였다”고 했다. “오태석 선생님의 지도 아래 본격적으로 수업을 받았다”며 “돈을 내고 받아야 하는 석·박사 과정을 오히려 돈을 받으면서 이수하는 행운을 누렸다”고 했다. “키와 발성에 콤플렉스가 많았고, 못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면서 “선배들에게 칭찬을 듣는 날은 하늘의 별을 딴 기분이었다”고 했다. “콤플렉스가 자산”이라며 “그래서 더 악착같이 달려들었다”고 역설했다.

목화 초년 시절 장영남은 안팎으로 힘들었다. 극단에서는 연기 외 잡다한 일에 치이고, 집에서는 그만두라는 압박에 시달렸다. 계원예고와 서울예대를 나와 남부럽지 않은 스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했던 막내가, 늦게 들어오거나 귀가조차 하지 않는 날이 잇따르면서 시작된 집안의 반대는 거셌다. 장영남은 결국 1년쯤 무대를 떠났다.

 

“다른 일을 하려고 알아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할 줄 아는 게 없더군요. 그러니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럴수록 무대가 어른거려 동숭동을 다시 찾지 않을 수 없었어요.”

■배우의 덕목을 아는 여자
그때 계원예고 스쿨버스를 보지 않았다면, 이웃사촌 중에 연극영화과에 다니는 언니가 없었다면…. 장영남의 배우 인생은 ‘숲 속에 난 두 길 가운데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게 한다.

 

 

중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시내버스를 타고 등교하는데 창밖의 계원예고 스쿨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신호등 앞에 나란히 서 있는데 자기가 탄 버스와 저쪽 버스의 공기가 너무도 달라 보였다. 어린 마음에 이쪽이 시장통이라면 저쪽은 동화의 나라 같았다.


 

장영남은 이때 계원예고에 가자고 마음먹었다. 이때까지 장영남은 연극을 한 편도 본 게 없었다. 그런 그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것은 계원예고를 지망한 것처럼 엉뚱하다. 같은 동네에 살던 한 언니가 연극영화과에 다니는 걸 알게 된 뒤 무작정 같은 과를 지망한 것이다. 장영남은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우스꽝스럽게 연극·영화와 인연을 맺게 됐다”며 “별나지만 그렇게 내 인생의 길이 정해진 게 오묘하고 ‘운명’이라는 낱말에 소름이 돋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영화배우로 활동하게 된 과정도 여느 연극배우들과 다르다. 장영남은 영화 오디션에 응모한 적이 없다. <아는 여자>는 대학 선배인 장진 감독이 연출한 연극 <웰컴 투 동막골>에 미친 여자로 캐스팅된 게 계기가 됐다. <웰컴 투 동막골>은 목화가 아닌, 처음으로 출연한 다른 극단(문화창작집단 수다) 작품이다.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의 장영남. 용의자의 치부를 북북 끍어대는 검사로 출연했다.

동명 영화에서 강혜정이 맡은 역할로 각광받은 장영남은 <아는 여자>에 이어 장진 감독의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용의자의 치부를 북북 긁어대는 검사, <거룩한 계보>에서 쌍욕으로 조폭들을 훈계하는 캐디로 주목받았다. 이후 길을 잃은 뒤 아이들에게 붙잡혀 다락에서 죽어가는 여자(헨젤과 그레텔), 점차 미쳐가는 이웃집 여자(불신지옥), 원칙을 중시하는 교도소 교정 과장(하모니), 소박하고 털털한 국정원 요원(7급 공무원), 온종일 우는 귀신(헬로우 고스트) 등 각기 다른 장르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연기파’ 배우로 각광받아 왔다.

 

 

최근작은 <이웃사람>(감독 김휘)이다. 재건축조합 설립 등 아파트 일로 동분서주하는 동안 자신과 딸이 살인마의 표적이 된 걸 모르는 부녀회장 ‘태선’으로 열연을 펼쳤다. 이 영화는 17일 현재 242만1124명이 관람했다. 오는 10월 개봉되는 <늑대소년>(감독 조성희)에서는 극의 분위기를 밝게 해주는 두 딸의 엄마,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선보일 예정인 <공정사회>(감독 이지승)에서는 딸을 성폭행한 범인을 직접 찾아내 응징하는 엄마로 출연했다.

                    영화 <공정사회>(감독 이지승)의 장영남. 딸을 성폭행한 범인을 찾아내 응징하는 엄마로 출연해 형사 역할을

                    맡은 마동석 등과 호흡을 맞췄다. 

 

장영남은 <너무 놀라지 마라>(2009)로 동아연극상과 대한민국연극대상 여자연기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산불>에 출연 국립극장 무대를 사로잡았다. ‘무대 위의 거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장영남은 “어떤 역할이 주어질지 알 수 없어 답답하지만 그게 바로 배우의 삶”이라며 “찬사는 힘이 되지만 이내 사라지는 거품 같은 것”이라고 했다. “드라마의 경우 캐스팅 막바지에 주인공이 안 된 적이 있다”면서 “그런 데 미련을 갖지 않는다”고 했다.

“주어지지 않은 배역에는 조금도 연연하지 않고 주어진 배역에는 혼신을 다해요. 스타를 꿈꾼다면 늦었을 수 있지만 배우를 꿈꾼다면 시간은 많다고 봐요. 지금처럼 배우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게 꿈이에요.”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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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해를 품은 달>. 배우 김응수(51)의 요즘 출연작이다. 제목만 보면 알 수 있듯 세 작품 모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김응수가 나오면 히트한다’는 세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는 1981년부터 극단 동랑레파토리와 목화에서 활동했고, 서울예술대학과 세계적인 거장으로 손꼽히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1926~2006)의 일본영화학교를 졸업했다. 영화배우로 활동한 지 올해로 16년째를 맞은 김응수의 남다름과 특별함을 들었다.

<부러진 화살>에서 교수(안성기)에게 석궁 화살을 맞았다는 판사,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로비스트(최민식)에게 뇌물받고 그의 뒤를 봐주는 고위 검사, <해가 품은 달>에서 왕(김수현)에게 맞서는 영의정. 공교롭게 세 배역 모두 악역이다.

-찬사와 더불어 욕도 많이 먹죠.

“친구들까지 악역 운운하는데…. 세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소개된 데에다 히트하는 바람에 악역 전문으로 비치는데 실제로는 선한 역할이 훨씬 많아요. <싸인> <나쁜 남자> <추노> <타짜> <그때 그 사람들> <선생 김봉두> <바람난 가족> 등 히트작도 많고. 최근 동네에서 맥주를 사는데 손등이 다 트신 계산대 아주머니가 ‘부러진 화살 잘 봤다’고 하시더군요. 순간 그 동안 들은 욕이 싹 달아나는 것 같았어요. 영화·드라마 등을 통해 그려지는 ‘분노의 미학’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체화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봐요. 어쨌든 요즘 정도전의 <답전부>(答田父)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부귀영화에 연연 않고 열심히 사는 그런 촌부 역할을 빨리 만나고 싶네요.”

<답전부>는 고려말 정도전(1342~1398)이 지은 문답 형식의 글이다. 정도전이 귀양살이를 할 때에 그곳에서 만난 농부와 나눈 대화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펼쳐 냈다. 김응수는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아버님 뜻에 따라 한학을 공부했다”면서 “인성 교육을 위해 한문 교육을 다시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욕을 먹는 건 그만큼 연기를 잘 했다는 거지요.

“배우로서 기쁘고 긍지를 느껴요. 악이 돋보여야 선이 빛을 발하거든요. 그런데 선악의 기준은 주체의 관점에 따라 달라져요. 박봉주 판사, 최주동 검사, 영의정 윤대형은 남들에게는 악인이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선이에요. 연기할 때에 그 점을 중시해요. 표현의 무기는 눈이에요. 눈에 그 사람을 담아요. 저로서는 모두 선을 그리지만 그것이 타인의 눈에는 선과 악으로 나뉘죠.”

-출연작마다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출연·제작진이 최선을 다한 결과지요. 간혹 ‘운이 좋다’고들 하시는데 전적으로 공감하지 않아요. 작품을 잘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한 작품이 히트를 친 거니까요.”

-작품 선택 기준은 뭔가요.

“한 마디로 ‘재미’에요. 그 재미는 삶의 희노애락이 진정성 있게 담겼느냐에 달려 있죠. 우선 그 점부터 살피고 내가 맡을 인물을, 상대방과의 밸런스를 봐요. 저보다 주인공이 더 돋보여야 해요. 나는 작품의 밀알이 되고 빠지는 게 맞아요. ‘뜨고 싶다’는 욕망이 앞서면 망한다고 봐요. 작품은 아닌데 캐릭터는 돋보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인물이 탐나도 재미가 떨어지면 스케줄 등을 핑계로 사양해요. 거절하는 작품이 많은데 그때마다 안타까워요.”

-연기력의 힘이 어디에서 나온다고 보나요.
“콤플렉스예요. 명문고 졸업해서 부모님 기대대로 판검사 못된 콤플렉스가 저의 창조력의 원동력이에요.”

군산 제일고 시절 김응수는 부모의 기대와 달리 소설가가 되기 위해 문예창작학과에 가고 싶었다. 서울서 재수를 하면서 종합예술에 매력을 느껴 연극영화과를 지망했다. 아버님은 ‘부자의 인연을 끊자’고 하셨다. 7년 전 돌아가실 때까지 아들의 출연작을 한 편도 보지 않으셨다. 아들을 볼 때마다 ‘니는 테레비에 언제 나오냐’고 하시던 어머님은 아들이 나온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른다. 김응수는 “이게 효도구나 했다”면서 “솔직히 드라마 계속 하는 건 그런 점도 있다”고 털어놨다. “진즉 했으면 아버님도 쉽게 보시고 좋아하셨을 것 같다”며 “하늘에서 보고 계신다고 생각한다”고 읊조렸다.


김응수는 또 독서와 관찰을 연기의 힘으로 꼽았다. “고전과 인문학 서적을 두루 읽고 아침에 일어나면 시를 읽으면서 발성연습을 한다”고 했다. “특히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좋아한다”며 “사기에는 인간군상이, 영화상의 캐릭터가 다 있다”고 소개했다. “인간을 많이 알면 알수록 연기하는 데 도움이 돼 관찰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서 “연기철학이 정직하자, 거듭 연습하자, 인격를 갖추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뒤늦게 일본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대학 1학년 때 오디션을 거쳐 동랑레파토리에 들어갔고 졸업한 뒤 창작극만 올리는 목화에서 활동했죠. 목화 시절 꽤 이름을 날렸지만 연극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어 서른 살에 모든 걸 뒤로 하고 일본으로 영화 공부를 하러 갔어요. 당시 일본은 유명 국제영화제 상을 휩쓸고 자국 영화 편수도 할리우드보다 많았거든요. 7년 간 연출 공부를 하면서 인간에 대해 진실하게 탐구하는 자세와 열정을 배운 게 저의 소중한 자양분이 됐어요.”


-연출은 않고 배우만 하고 있는데요.
“영화 데뷔작이 3학년 재학 때 일본에서 찍은 <깡패수업>(1996)이에요. 연출부를 하면서 한국인 술집의 웨이터로 출연했는데 이때 맺은 인연으로 귀국한 뒤에 계속 배우를 하게 됐어요. 재미있고, 경험과 인맥도 두터워지고, 모두 저의 자신이죠.”

-집에 ‘술방’이 따로 있다고 하던데요.

“서제와 통하는 조그만 방이에요. 술을 좋아해요. 직접 만들어서 마시기도 해요. 한약재 하수오, 약초 야관문 등을 넣어 저도 마시고 주변에도 줘요. 술은 제게 일종의 ‘씻김굿’이에요. 술자리에서 캐스팅된 경우도 많아요.”


다음 작품은 영화 <미스터 고>(감독 김용화)와 <나는 왕이로소이다>(감독 장규성), TV드라마 <각시탈>(연출 윤성식) 등이다. 김응수는 “신이 창조한 최고의 예술품이 여자”라면서 “하반기부터 20대 여자들을 주인공으로 노자(老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을 담은 영화 연출 준비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5공화국에서 용공으로 몰아붙인 군산 제일고의 ‘오송회 사건’도 영화로 만들고 싶다”기원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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