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광(60). 영화 <26년>의 ‘그 사람’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조 내관’이고 <도가니>의 ‘교장 형제’이다.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중퇴한 뒤 1976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뒤 주로 성우로 활동해 왔다. 지난해 8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출연한 영화 데뷔작 <도가니>부터 개성파 배우로 각광받고 있다. 예순 살에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그에게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를 들었다.

 

 

장광의 영화배우로서의 이력은 특별하다. 데뷔작 <도가니>(2011)와 올해 출연작 <광해, 왕이 된 남자> <내가 살인범이다> <26년> <음치클리닉> 등 다섯 편으로 2200만 명이 넘는 관객과 함께했다. <도가니>(감독 황동혁)는 466만2829명(이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광해, 왕이 된 남자>(〃 추창민)는 1229만4509명(이하 22일 현재), <내가 살인범이다>(〃 정병길)는 272만9551명, <26년>(〃 조근현)은 283만5450명, <음치클리닉>(〃 김진영)은 33만8131명이 관람했다. 다섯 편 가운데 네 편이 200만 명 이상이고, 한 편은 1000만 명이 넘는다.

-흥행 성적이 대단하다. 작품 선정 때 무엇을 중시하나.
“의미 있고 재미있는 작품을 좋아한다. ‘신인’이어서 거절할 입장이 아니지만 출연작을 정할 때 이 점을 중시한다. 운이 좋았고, 하나님이 인도해줬고, 함께한 배우·스태프 덕분에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현재 H스타 컴퍼니 소속이다. <26년> 촬영이 끝나갈 즈음 경합이 붙은 서너 군데 매니지먼트사 가운데 <광해, 왕이 된 남자> PD가 추천해 준 곳과 2개월 쯤 전에 계약을 했다.

-‘전두환’ 배역과 인연이 깊다.
“MBC드라마 <삼김시대>(1998)에서 전두환 역을 맡았다. 원래 56부작인데 김기팔 작가가 작고, 작가가 교체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26부작으로 종영되고 말았다. 큰 역을 맡은 것은 그때가 처음인데 연기가 자리를 잡을 즈음 끝나 못내 아쉬웠다. <제5공화국>(2005)에서 동국대 연극영화과 동기인 이덕화가 전두환 역을 맡아 이제는 끝났구나 했는데 <26년>이 들어와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제4공화국>(1995~96)에서는 정종준이 전두환 역을 맡았다. 그는 대머리 가발을 썼다. 장광은 이 드라마에 별을 두 개 단 소장으로 출연했다. 전두환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었다. 당시 연출을 맡은 고석만 PD(현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는 양쪽 다 전두환 같아 안 되겠다며 장광에게는 실내지만 모자를 쓰라고 했다. <삼김시대>를 연출하면서 장광을 전두환 역에 캐스팅했다.

 

-<광해~>로 다소 해소됐는데 다시 악역을 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는지.
“부담이라면 <도가니> 때가 컸다. 크리스천이어서 천하에 둘도 없는 악역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반면 이번에는 <삼김시대> 때 아쉬움을 해소하고 싶었다. 5·18 당시가 아니라 26년이 지난 뒤의 이야기여서 못 했던 부분도 새롭게 하고 싶었다. 2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니고 있는 남다른 담력과 기질이 보이도록 했다. 그것이 역으로 관객들에게는 더 밉살스럽게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좀 더 악독하고 잔인하게 표현하고 싶었는데 개인적으로 조금은 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촬영 앞두고 어떤 준비를 했나.
“많은 자료를 보면서 표정·눈빛·말투 등을 관찰하고 연습했다. 재판을 받을 당시 당당함 등을 캐릭터를 설정하는 데 참고했다. <삼김시대> 때와 달리 몇 편의 영화로 경험을 쌓은 뒤여서 조금은 더 자유롭게 연기했다.”

-기억에 남는 일화는.
“영화 막바지 맞는 장면에서 고생 좀 했다. 처음에는 보호대를 했는데 몸이 부어 보여 좀 빼자고 했다. 무술감독이 촬영할 때 보호대를 대지 않는 곳에 많이 맞는다고 말렸지만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는 후회했다. 얼마나 아픈지 저절로 비명을 질렀다. 감독이 ‘그 사람’은 비명을 안 지를 것 같다고 해서 꾹 참고 다시 찍었다. 한 번 맞을 걸 두 번 이상 맞았다. 개인적으로 죽어가는 경호실장(조덕제)을 발로 차버리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조덕제는 총탄 파편이 이마로 튀어 다쳤는데 엔지(N.G.)를 내지 않으려고 계속 연기를 했다. 링거를 맞아가며 촬영을 강행한 진구 등 최선을 다하는 배우·스태프들과 함께하면서 영화배우로서의 긍지와 보람을 다시 느꼈다.”

 

장광은 동국대 연극영화과 70학번이다.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 제대 후 1976년부터 극단 멕토에서 활동했다. 멕토의 <열 개의 인디안 인형>에 참여한 성우들의 대사 소화 능력을 보고 연기력을 배양하기 위한 일환으로 78년 동아방송에 성우로 입사했다. 80년 12월 언론통폐합으로 KBS에서 활동했다. 방송사와 극장 애니메이션 <슈렉> 시리즈의 ‘슈렉’ 등 그간 성우로 활동한 작품수가 A4용지로 10장이 넘는다. 극단 제작극회·현대극장 등의 무대에 서면서 영화 <휘파람 공주>(2002)에 한 장면만 나오는 ‘북한 간부, 단장’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도가니>의 ‘교장 형제’ 역할은 경쟁률이 엄청났다.
“800 대 1이라고 들었다. 당시 연기에 대한 갈증,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영화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시>(감독 이창동) <댄싱퀸>(〃 이석훈) 등 5~6편에서는 떨어졌다. <도가니> 오디션을 볼 때에만 해도 교장 형제 역에 캐스팅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미지와 나이가 맞고 성우·연극 경력이 보탬이 됐다고 본다. 그런데 정작 캐스팅된 뒤에는 갈등했다. 원작을 읽은 뒤에는 더했다. 하지만 배우가 되려면 해야 했다. 내가 안 하면 누군가가 할 것이고, 내가 더 돋보이게 하고 싶었다. 하기로 한 만큼 최선을 다했고, 배우로 이름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시나리오가 원작보다 다소 강렬함이 떨어졌고, 수위를 낮추느라 촬영한 섬뜩한 장면이 꽤 편집됐는데, 그럼에도 개봉 이후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 영상(영화)의 힘이 대단한 걸 새삼 실감했다. 나는 지탄의 대상이 됐지만 ‘도가니법’이 제정되는 데 일조하지 않았나 하는 데에서 보람을 느꼈다.”

-<광해~ >에서는 ‘하선’(이병헌)의 멘토 역할을 하는 ‘조 내관’으로 주목받았다.
“원래는 대감 가운데 한 명을 지망했다. ‘조 내관’을 제안받고 ‘하선’에게 도망가라고 하는 장면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감독의 의중과 달라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이불 속에서 조 내관의 대사를 되새기는데 감독이 원하는 게 와닿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 다시 오디션을 봤고, 감독이 90% 만족한다면서 10%는 현장에서 찾아내자고 하더라. 사실 이미 내정했는데 다시 오디션을 보겠다는 전화를 받고 이런 열정이라면 소화할 수 있겠다고 여겼다면서.”

촬영을 마친 <신세계>(감독 박훈정)에서 그는 이정재·최민식·황정민·송지효 등과 함께했다. 요즘 <은밀하게, 위대하게>(〃 장철수)를 찍고 있다. 김수현·박기웅·이현우·손현주·이채영 등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는 “아침마다 5㎞를 뛰고 영화를 예전과 달리 공부하는 자세로 많이 본다”면서 “대학에 입학하면서 꿈꾼 삶을 40여 년이 지난 뒤에 이룬 게 꿈만 같다”고 했다. “밤샘 작업을 해도 끄떡없다”며 “어떤 배역이든, 배역이 크든 적든 다양한 인물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그려내 오랫동안 관객과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Posted by 배장수

댓글을 달아 주세요

김의성(47)은 1980~90년대 연극배우 출신 영화배우 1세대로 손꼽힌다. 서울대 경영학과 84학번인 그는 1987년 극단 천지연을 필두로 한강·한양레파토리·연우무대·학전 등에서 활동했다.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1995)로 영화와 인연을 맺은 뒤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바리케이트> <억수탕> 등의 주연배우로 각광받았다. 이후 약 10년간 베트남에서 영화 수입·배급, TV드라마·연극 제작을 했다. 2010년 여름에 귀국, <북촌방향> <건축학개론> <남영동1985> <26년>에 출연했다. 요즘 송강호·이정재·백윤식·김혜수·조정석 등과 함께 <관상>을 찍고 있다.

 

 

■연극으로 사회 참여
김의성은 서울대 경영학과 2학년 때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교내 연극을 보고 뒤풀이에 따라 간 게 계기가 됐다. 김의성은 “이념 서클에 들어가고, 데모에 참여해 돌도 던졌지만 그보다 연극을 통해 발언을 하는 게 체질에 맞았다”며 “그게 지금 배우로 살아가는 운명의 출발점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듯 실존 문제로 고민이 많았어요. 암울한 시대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했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연극만 하면서 살 수 있을지…. 결국 휴학을 했고, 친구가 있는 부산의 한 공장에 취직해 공원 생활을 했어요. 영장이 나와 입대했고.”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뒤에는 1987년 대학 연극·탈춤반 출신으로 결성된 극단 천지연 활동에 주력했다. 졸업만 하면 어디든 취직이 가능한데 연극을 한다고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자 집안의 반대가 거셌다. 김의성은 극단에 불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라는 아버지와 형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연극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정진영과 함께 2인극 <동팔이의 꿈>을 전국의 공장·학교를 순회하며 1년 동안 공연하는 등 문화 운동에 앞장서고 파업 현장을 찾아 다녔다.

극단 한강 시절에는 밥만 먹어도 좋았다. 연우무대에서는 밥을 꼬박꼬박 사줘 더욱 좋았다. 학전에서는 계약까지 해줘 고마웠다. 하지만 수입은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과외교사로 한 달에 20만~30만원을 벌어 생활했다.

“당시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 월급이 70만원인가 했으니 꽤 많이 번 거죠. 당시 작품으로 가장 큰 돈을 받은 건 TV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이에요. 최하등급으로 계약한 뒤 재계약을 했는데 7개월에 1000만원 정도를 받았어요.”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에서 김의성은 정선경·이경영·최진실 등과 호흡을 맞췄다.

 

김의성은 5년쯤 연극을 하던 시기에 이현승·여균동·김성수·이재용 감독들과 알고 지냈다. 그 인연으로 영화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감독 이현승)에서 비중있는 배역을 맡았다.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김동빈)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자>(〃 오병철)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홍상수) <바리케이트>(〃 윤인호) <억수탕>(〃 곽경택)의 주연배우로 각광받았다.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맡는 등 90년대 중후반 최고의 배우로 손꼽혔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김의성은 김진성·조은숙·이응경 등과 호흡을 맞췄다.

 

■영화로 시대 발언
‘강 과장’과 ‘최 계장’. 김의성이 영화 <남영동1985>(감독 정지영)와 <26년>(감독 조근현)에서 맡은 경관 역이다. 강 과장은 <남영동1985>에서 민주화운동가 ‘김종태’(박원상)를 취조하고 동료들과 함께 고문전문가 ‘이두한’(이경영)을 돕는다. 최 계장은 <26년>에서 전 대통령 ‘그 사람’(장광)을 응징하려는 ‘곽진배’(진구) 등의 계획에 맞선다.

김의성은 두 인물의 캐릭터를 명확하게 구분했다. 강 과장은 “평범한 사람, 피곤한 사람”이라고 했다. 최 계장에 대해서는 “노련한 사람, 안위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했다.

 

“강 과장에게 고문은 일의 하나에요. 그 일을 하면서도 프로야구에 관심이 많아요. 간혹 어깨·목을 주물러요. 고문·일과, 김종태 수사가 그저 빨리 끝났으면 하는 인물이에요. 최 계장에게 경호는 관할 서에서 하는 업무에요. 그 일에 능숙하죠. 일의 결과가 자신의 안위를 좌우하기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처리해요.”


 

김의성은 두 영화에서 각기 다른 경험을 했다. <남영동1985>에서는 두 차례 소름이 돋았다. 두꺼비 출현과 귀신(?)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양수리 세트에 두꺼비가 나타났어요. 인근 숲에서 세트장까지 먼 길을 걸어 온 거에요. 그런데 인재근 의원이 ‘민청련’의 상징이 두꺼비였다고 하더군요. 뱀에게 먹혀 자신이 지닌 독으로 뱀을 죽여 종족을 보호한다면서. 그분께서 잘하라고 와주신 게 아닌가 했어요.”

김종태를 심하게 고문하는 장면을 찍을 때에는 아무도 ‘커트’(cut)를 하지 않았는데 여자가 커트하는 소리가 들렸다. 녹음도 됐다. 현장에 여자가 없었는데. 김의성은 “두꺼비 출현보다 더 불가사의했다”며 “사고가 날 수 있었던 걸 미연에 방지해준 게 아닌가”라고 풀이했다.

 

<26년>은 어렵게 시작한 데 비해 현장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김의성은 “고소공포증이 있어 크레인에 올라가 ‘심미진’(한혜진)의 저격을 저지할 때 정말 무서웠다”고 했다. “혜진이가 오르내리기 귀찮다며 더 높은 곳에서 머물며 간식도 먹는 걸 봤기 때문에 꾹 참고 촬영했다”고 털어놨다. <26년>에 대해 “촬영 기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편집본이 두 가지”라며 “상영작은 줄거리 전개가 보다 매끄러운 것보다 각 장면마다 날 것의 감정을 살린 편집본”이라고 공개했다.

 

                     지난 11월 16일 열린 ‘서울광장 <26년> 콘서트 ’에서 <26년> 출연진이 사회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재미있게 살아라”
김의성은 <남영동1985>와 <26년>에서 문성근·이경영 등과 함께했다. 김의성은 “감회가 새로웠다”고 했다. “두 분 선배를 보면서 ‘나이 먹는 게 괜찮구나’ ‘배우로 늙는 것도 참 좋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남영동1985>의 문성근은 영화 데뷔작 <네온 속으로 노을 지다>에서 만났다. 김의성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원’ 역을 맡았고, 문성근은 CF감독 ‘김규환’으로 출연했다. 출판사가 경영난을 겪을 때 김원은 말도 없이 사라지고 광고회사에 카피라이터로 입사한 ‘이상민’(채시라)은 김원을 가슴에 묻어두고 김규환과 가까이 지낸다.


이경영은 <남영동1985>에 이어 <26년>에서도 함께했다. <네온 속으로 노을 지다>에 이어 주연을 맡은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에서 호흡을 맞춘 선배다. 두 번째 영화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에서 김의성은 유부녀 ‘은재’(최진실)와 조심스런 만남을 갖는 유부남 ‘진우’(이경영)의 친구 ‘창세’ 역을 맡았다. 창세는 의부증이 있는 아내를 둔 인물로 애정 없는 남편에게 실망한 은재의 친구 ‘윤수’(정선경)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이경영과는 인연이 남다르다. <네온~>에 앞서 출연한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에서도 함께했다. 이 드라마에서 김의성은 ‘황일천’ 병장(박중훈) ‘김기수 병장(이경영)’ 등이 소속한 1소대장 ‘이 중위’로 출연했다. 김의성은 원래는 병사였다. 첫 로케이션 때 촬영 준비가 덜 돼 한 장면도 못찍고 그냥 돌아왔고, 소대장 역을 맡은 배우가 아픈 바람에 대신 이 중위 역을 맡게 됐다.

 

 

요즘 출연작은 영화 <관상>이다. 이 영화에선 송강호 등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송강호는 김의성의 연우무대 후배이다.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김의성의 소개로 출연했다. 김의성은 “어느 날 술자리에서 강호가 대뜸 ‘이 형님이 나를 맨 처음 영화하게 해주신 분’이라고 했을 때 좀 쑥스러웠다”며 “예전과 다름없이 배우로 살아가는 선·후배들과 연기를 하는 나날이 즐겁다”고 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부딪쳤던 실존 문제에 대한 고민이 30년이 지난 뒤에 완전히 풀렸다”고 했다. “연극을 한다고 노발대발하셨던 아버지가 임종 하루 전에 ‘재미있게 살아라’고 하셨다”며 “살아온 날의 삶이 녹아든 연기로 오랫동안 관객을 만나고 싶다”고 기원했다.

Posted by 배장수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배우 안석환(53)은 단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 대학 1학년 때부터 교내 극예술연구회에서 활동했고 1987년 극단 연우무대의 <달라진 저승>으로 데뷔했다. 영화는 1992년 <명자 아끼꼬 쏘냐>로 인연을 맺은 뒤 1994년 <태백산맥> <너에게 나를 보낸다> 등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7·1998년 동아연극상 연기상 등을 비롯해 2005년 KBS 연기대상 조연상을 받았다. 지난해와 올해 TV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와 <너라서 좋아> <패밀리>, 연극 <대머리 여가수>와 <웃음의 대학>, 영화 <후궁: 제왕의 첩>과 <26년>으로 기치를 높이고 있다.

 

 

“니가 헐라고 허는 일, 그거시 참말로 그 방법뿐인지…. 그거시 맞는 길인지, 솔직히 난 잘 모르겄다. 근디, 최소한 그런 거슬 생각조차 안 해보고 살았던 나는, 틀렸던 것 같아야.” “이태꺼정 암 생각 없이 금남로를 싸댕긴 거시… 인자와서 죄스럽네. 하… 아, 쪽팔리다 잉. 긍께… (웃음) 난 여그 들어와 있어도 싸다.”

영화 <26년>(감독 조근현)에서 화제를 낳고 있는 대사다. 영화 상영 중 이 대사가 나올 때 감탄하거나 고개를 숙이는 중년 관객들이 적지 않다. 최근 육상효 감독은 이 대사가 나오는 장면에서 “가장 울컥했다”고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이 대사는 ‘안수호’(안석환) 사장이 교도소로 면회를 온 ‘곽진배’(진구)에게 하는 말이다. 안수호는 광주 금남로를 주름잡는 조폭 두목으로 대형 나이트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곽진배는 안수호가 신뢰하는 수하이다. 곽진배는 사설 경호업체의 ‘김갑세’(이경영) 대표가 설계한 작전에 따라 저격수 ‘심미진’(한혜진), 정보원 ‘권정혁’(임슬옹), 브레인 ‘김주안’(배수빈) 등과 함께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군인들의 발포는 자위권 발동이었다고 주장하는 파렴치한 전 대통령 ‘그 사람’(장광)을 응징하는 데 앞장선다. 안수호의 대사는 이에 관한 것으로 그는 면회를 서둘러 마치면서 곽진배에게 “돌아보지 말고 앞만 봄서 냅다 뛰어”라고 한다.

“양아치인데 큰놈이에요. 대사가 좀 길었는데 조근현 감독, 진구와 함께 대본 연습을 하면서 짧게 정리했어요. 큰놈답게. 말이 많으면 잘아 보이잖아요. 구체적인 진배와의 관계, 지역 주민의 정서, 시대 상황은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게 좋고.”

 

 

안석환은 <26년>에 대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영화”라며 “역사의 아픔과 교훈은 기록으로 남겨야 영원 불멸성을 지닌다”고 했다. “출연 제안을 받고 영화배우로서 고마움을 느꼈고, 출연·제작진과 고사를 지내면서 기뻤고, 진구·한혜진·임슬옹·배수빈… 시대의 아픔을 안으려는 젊은 배우들이 있다는 게 반갑고 뿌듯했고, 함께 기분 좋게 작업했다”고 털어놨다.

■기관원, 핑크 캐릭터로
안석환이 조폭의 두목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7년 8월 개봉작 <넘버 3>(감독 송능한)가 우선 손꼽힌다. <넘버 3>에서 안석환이 맡은 인물은 깡패 두목 ‘강도식’이다. 넘버 2를 다투는 ‘태주’(한석규)와 ‘재철’(박상면)을 카리스마로 쥐락펴락한다.

 

안석환은 “보스가 말이 많으면 보스답지 않다”면서 “눈빛만으로 말이 되도록 대사를 다 없애거나 줄였다”고 했다. 일례로 강도식이 수하들과 자리를 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의 경우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강도식이 손을 내밀면 담배가 손가락에 끼워지고, 담배를 입에 물면 불이 붙여지고, 탁자에 재떨이가 자동적으로 준비되도록 설정했다.

안석환이 영화배우로 눈길을 끌기 시작한 작품은 1994년 개봉작 <태백산맥>(감독 임권택)과 <너에게 나를 보낸다>(감독 장선우)이다. 9월 17일에 개봉된 <태백산맥>에는 빨치산 토벌에 나선 방첩대장 ‘전원장’으로, 10월 1일에 개봉된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는 기관원 ‘색안경’으로 출연했다. 전원장은 극우 마초이고, 색안경은 여자 같은 기관원이다. 두 영화가 잇달아 개봉된 뒤 관객은 물론 영화인들조차 전원장과 색안경으로 나온 배우가 한 사람인 줄 몰랐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는 안석환이 예명(안진형)을 써 더더욱 다른 배우인 줄 알았다.

“기관원=검은색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장정일 원작인 점을 감안해 색안경의 캐릭터 색깔을 핑크로 설정했죠. 감독님은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했는데 자꾸 말씀드리니까 일단 해보라고 하더군요. 새롭고 재밌으니까 통과된 거에요.”

 

안석환은 “가운을 입고 애드립도 했다”며 “여성적인 말투가 유행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했다. “그전에는 연봉이 400만원 정도에 불과했는데 두 영화를 하면서 1000만원을 넘어섰다”고 덧붙였다.

■술자리 소재·분위기 좋아서
안석환은 단국대 경영학과에 입학하면서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동아리 활동을 해라, 넓게 살아라’는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고른 게 극예술연구회였다. 안석환은 “한두 명이 각자 행동하는 다른 동아리들과 달리 극예술연구회는 여러 명이 빙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데 끌렸다”고 했다.

“입회 이후 수업이 끝나는 오후 5시부터 통금(자정) 전까지 거의 매일 술을 마셨어요. 1학년 신입생부터 제대하고 복학한 고참까지 한데 어울려서. 대화의 주소재가 인생과 예술에 대한 것이었죠. 처음에는 연극보다 그런 술자리가 더 좋았어요.”

등사판 밀어서 만든 대본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연습하고, 망치질해서 무대 만들고, 조명기 닦아 달고, 여학생들은 무대 의상 만들고…. 안석환은 “굽은 못은 펴서 사용할 정도로 어려운 가운데 막은 올라갔고, 관객과 함께 희로애락을 나눴고,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연극에 매료됐다”고 했다.

매년 정기공연 두 번, 워크숍 무대를 두 번 올렸다. 1981년에 입대, 제대 후 복학 전 1년 동안 학비를 벌기 위해 특수운송회사에 다녔다. 1985년 복학한 뒤에도 직장생활을 병행했다. 학생과 직장인으로 바빴고, 수입도 짭짤했지만 견딜 수 없었다. 연극을 하고 싶어서. 결국 1986년 10월에 직장을 그만두고 극단 연우무대에 들어갔다. 이듬해 졸업한 뒤에는 극단에서 살았다. 그해 가을, 연우무대의 <달라진 저승>(김광림 작·연출)으로 데뷔했다.

“데뷔 후 5년 내에 성공하지 못하면 아버지 장사를 잇기로 했어요. 장사하는 게 싫어서 기를 쓰고 연극을 했는데 신통치 않아 5년쯤 했을 때 상심이 컸죠. 그런데 그 즈음부터 출연 섭외가 줄을 잇더군요. 10년 전후로 상도 받으면서 인정을 받았고.”

1997년 <이세상 끝>, 1998년 <남자충동>으로 2년 연속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았다. 한국연극협회 최우수남자연기상과 우수공연상 연기상,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 세계연극제 연극인이 뽑은 인기배우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받았다. 동물 닮기, 자연으로 돌아가기에 기초한 ‘안석환식 인물 창조’로 각광받았다. 2005년에는 <별남별녀>와 <쾌걸 춘향>으로 KBS 연기대상 조연상도 받았다. 방송·영화에 출연하면서 꾸준히 연극을 하는 안석환은 지난해 <대머리 여가수> 각색·연출을 맡았고 <웃음의 대학>을 장기 공연했다. 안석환은 “가슴으로가 아니라 세포가 느낄 정도로 변신해야 한다”면서 “부단히 연구하고 연습해서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게 배우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Posted by 배장수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