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사랑합니다> 제작진이 인공 눈을 골목길에 뿌리고 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내 사랑> <호로비츠를 위하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8월의 크리스마스>…. 설경(雪景)이 눈길을 끄는 영화다. 이들 영화 속 눈(雪)과 설경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그림 같은 설경을 담기 위해 제작진이 감내한 눈(雪)과의 전쟁을 살펴본다.

# ‘그 마을에 가고 싶다’

‘그 마을에 가고 싶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만석’(이순재)과 ‘이뿐’(윤소정)이 대면하는, 언덕을 따라 아담한 집들이 즐비한, 가로등이 따뜻한 느낌을 더해주는 눈 내리는 새벽녁 골목길 장면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이들의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사랑에 가슴을 여미면서 든 생각이기도 하다.

추창민 감독은 영화의 대표적인 장면이 될 이 장소를 찾는 데 의욕을 불살랐다. 프러덕션이 시작되기 무려 4개월 전부터 연출·제작·촬영 파트 인원으로 팀을 꾸려 도심 곳곳의 골목길을 찾아다녔다. 어렵게 찾아낸 곳은 인천의 한 작은 동네. 아기자기하면서 따뜻한, 강풀의 동명 원작에서 보았던 느낌이 그대로 묻어나는 곳이었다.


그런데 촬영에 들어가는 날까지 추창민 감독 등 제작진은 고심을 거듭했다. 계획한 대로 3일에 걸쳐 촬영해야 할지, 하루에 몰아 찍을지, 둘 가운데 하나를 놓고. 3일 동안 찍으려면 준비한 분량의 눈을 나눠 사용해야 했고 효과가 떨어지는 점이 염려됐다.


추 감독은 결국 하루에 다 찍기로 했다. 3일 동안 써야 하는 분량의 눈을 예쁜 골목 어귀어귀에 넉넉하게 뿌려 눈이 소복이 쌓인 골목을 완성시켰다. 사랑에 빠찌는 두 남녀의 설렘을 담아내기 위해 쉼 없이 눈발을 날렸다. 이와 함께 촬영지와 분위기가 비슷한 서울 성북동 등에 눈이 올 때 찍어둔 필름을 활용했다.



이 영화 유상옥 PD에 따르면 강풍기의 바람을 타고 내리는 눈은 식물성 세재로 만든 거품이다. 과거에 사용된, 화학용 세제로 만든 거품은 액상이어서 배우의 얼굴이나 신체에 묻으면 티가 나는 단점을 보완한 제품이다. 환경피해가 없다는 장점도 지녔다.


소복히 쌓인 눈은 쌀가루로 만든 종이, 식용소금, 녹말 등을 혼용했다. 쌀가루로 만든 종이는 비가 오면 없어져 수거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식용소금은 수거하는 데 용이하도록 하얀 비닐과 스폰지 같은 천을 깐 다음에 뿌렸다. 두 배우의 발길이 밟는 곳에는 실제 눈을 밟을 때 느낌이 들도록 물에 탄 녹말을 뿌린 뒤 후반작업 때 CG로 보정했다.


식용소금은 2.5톤 트럭 두 대 분량을 사용했다. 밤샘 촬영이 끝난 시간은 오전 6시. 그리고 10시까지 네 시간 동안 식용소금을 수거했다. 절반은 수거해 이후 작업 때 사용했고, 나머지 절반은 사용하겠다는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유상옥 PD는 “특수효과는 ‘이펙트 스톰’이 맡았다”며 “눈 특효는 국내 최고를 인정받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비용에 대해서는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알려줬다. “그간의 정리를 감안해 이펙트 스톰에서 재료비 정도만 받았다”면서.

# 한여름에 한겨울 만들기
2003년 12월17일에 개봉된 차태현·김선아 주연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감독 이건동)는 한여름에 찍었다. 여러 가지 여건상 한겨울까지 기다릴 수 없는 데에다 촬영을 눈오는 날에 맞춰 하는 게 용이하지 않고, 극중 분위기에 맞게 눈이 온다는 보장도 없어 한여름에 촬영을 강행했다.

제작진은 눈(雪)과의 전쟁을 벌였다. 튀긴 쌀가루를 강설기로 날리고 15㎏짜리 400포대 분량의 식용 소금을 사용해 눈 효과를 냈다. 고드름, 눈사람 등도 만들어 사용했다. 고드름은 특수 실리콘으로 만든 뒤 접착제로 일일이 붙였고 눈사람은 스티로폼 등으로 만들었다. 재래시장에서 연탄을 긴급 공수, 모두 화로로 태워 거리의 소품으로 비치해 겨울 분위기를 자아냈다


거리에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드는 것도 관건 가운데 하나였다. 제작진은 이를 위해 20일에 걸쳐 대전시의 협조를 받아 유성구 봉명동 온천거리에 11m 높이의 화려한 대형 트리를 세웠다.



그런데 이 트리 주변의 나무들이 문제가 됐다. 겨울 분위기에 맞지 않게 잎이 무성했던 것이다. 카메라 앵글을 아무리 조정해도 불가능. 방법은 잎을 모두 떼내는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은 이를 위해 나무병원에 조언을 구했다. 잎을 모두 제거하더라도 나중에 생육증진제 등 수관주사를 놔주면 나무가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다는 소견을 듣고 유성구의 승인을 받아냈다. 카메라 앵글에 걸리는 5그루 나무의 입을 모두 일일이 떼어낸 뒤 촬영을 마쳤다. 현장 주변 팻말에 연유를 고지했지만 일부 시민들은 혀를 차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2007년 12월 18일에 개봉된 <내사랑>(감독 이한)에는 눈이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소현’(이연희)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지우’(정일우)에게 반하는 장면에서다. 계절상으로 봄이지만 소현이 지우에게 반하는 환상적인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 눈이 내리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 장면도 한여름에 찍었다. 서울 회기역 굴다리에서. 배우들은 한여름에 한겨울 옷을 입고 연기를 하느라, 제작진은 소금 50포대 등과 강설기를 사용해 눈 장면을 연출하느라 애를 먹었다. 1~2분에 지나지 않는 장면이지만 작업을 하는 데에는 온종일이 걸렸다. 굴다리 너머 멀리까지 눈을 깔고, 내리게 하고, 수거하느라.


이렇듯 눈 장면은 이중삼중고를 치른다. 바닥에 쌓여 있는 눈은 주로 식용소금을 사용하는데 이를 뿌리고 제거하느라 고역을 치른다. 집과 거리 구석구석에 비닐을 깔고 소금을 뿌린 뒤 촬영이 끝나는 대로 수거해야 한다. 재활용이 가능한 소금은 수거하고 나머지는 호스로 물을 뿌려 녹인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감독 홍상수)에서는 눈 작업에 아르바이트생 7~10명을 따로 고용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눈을 뿌리는 데에는 평균 3시간 정도가 걸렸지만 수거하는 데에는 3일이 걸린 적도 있다.


# 눈이 내렸으면, 그쳐야 하는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에서 눈은 드라마의 단서를 제공한다. 눈이 낮술에 취기가 오른 ‘문호’(유지태)와 ‘헌준’(김태우)의 센티멘털리즘을 자극, 7년 전의 첫사랑 ‘선화’(성현아)를 찾아가는 돌발 행동을 감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눈이 내리거나 쌓여 있는 곳은 문호의 집과 주택가 골목, 중국집 거리, 선화네 집과 부천의 호텔 등등이다. 제작진은 9월에 가짜 눈을 만들어 내리게 하고, 쌓여 있게 하고, 말끔하게 원상복구하는 작업에 매달려야 했다. 사용한 가짜 눈은 모두 5가지. ‘꽃소금’ 외에 ‘C90’이라는 특수 소재로 된 수입 종이 제지, 스노스틱, 쌀가루, 폴리머스노 등이다.


이 눈은 장소·용도별로 각기 달리 사용됐다. 소금은 거리에 깔린 눈을 연출할 때, C90과 폴리머스노는 나뭇가지·지붕·철문·자동차 등 소금을 치면 안 되는 곳에 쌓인 눈을 찍을 때, 뻥튀기한 쌀가루와 스노스틱은 내리는 장면에 썼다. 가장 많이 사용된 건 소금. 홍상수 감독이 와이드 앵글을 선호해 무려 70여톤이 들었다. C90은 효과는 가장 뛰어나지만 수거하는 데 어려움이 많고, 스노스틱은 바람에 약해 상대적으로 덜 쓰였다. 각종 눈을 구입하고 사용하는 작업에 약 8000만원이 들었다.


한편 이 영화 제작진은 겨울에 눈 장면을 찍을 때에는 눈이 그치기를 기다려야 했다. 눈이 온 날과 촬영이 맞아떨어진 날은 딱 하루밖에 없었다. 눈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 계속 내리고 있는 장면인데 그마저 아침에 조금 내리고 그쳤다. 일기예보를 통해 이를 알고 있던 제작진은 미리 뿌려놓은 소금이 눈에 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비닐 등으로 덮어놓고 눈이 그치기를 기다린 뒤 촬영했다.


권형진 감독의 <호로비츠를 위하여>(2006)에선 눈이 그치기를 기다리다가 포기, 촬영을 강행했다. ‘지수’(엄정화)와 ‘경민’(신의재)이 하우스 콘서트를 마친 뒤 마침 내리는 첫눈을 보면서 환호하는 장면으로 제작진은 일기예보를 감안해 촬영일정을 잡았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강설기도 준비했다. 그런데 강설기를 가동할 필요가 없었다. 함박눈이 내린 것이다. 너무 많이 내려 촬영을 못할 정도로. 제작진은 촬영을 강행, 관객들에게 회자되는 장면을 담아냈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는 국내는 물론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도 초청받은 화제작이다. 일본의 한 극장에서는 무려 1년 동안 상영됐다.


1998년 1월 24일에 개봉된 이 영화는 1997년 9월부터 12월 초까지 찍었다. 했다. 서울과 이리의 화장터 등 일부 장면을 빼고 모두 군산에서 찍었다. ‘정원’(한석규)의 사진관 앞에 내린 눈은 소금 300가마와 솜 200가마로 만든 것이다. 제작진에 따르면 동네 주민들이 그해 김장은 촬영 때 쓴 소금으로 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눈이 내린 장면은 보충 촬영 때 찍었다. 촬영을 한 군산에 40년 만에 폭설이 내린 것이다. 제작진은 “하늘이 도와준다고 기뻐했는데 훗날 유영길 촬영감독님이 A프린트 작업을 마친 뒤 작고하셨다”며 “희비가 이렇게 엇갈릴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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