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복? 회항!
이준익 감독(51)이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상업영화를 그만 만들겠다고 밝혔다. 다른 이도 아닌 이른바 ‘천만 감독’의 선언이어서 뜨거운 화제를 낳고 있다.

“평양성, 250만에 못미치는 결과인 170만. 저의 상업영화 은퇴를 축하해 주십시오.”


이준익 감독이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이 감독은 <평양성> 개봉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 때 밝힌 대로 상업영화 연출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뒤 방송용 다큐멘터리 제작차 몽골로 떠났다.


이 감독의 상업영화 은퇴 선언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한국에 다섯 명밖에 없는 이른바 ‘천만 감독’의 항복 선언인 데에다 출세작 <황산벌> 속편에 해당하는 <평양성>의 흥행 실패에 따른 것이어서 그 파장이 이 감독 개인사에 그치지 않고 한국영화계에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감독은 반어적으로 자신의 은퇴를 축하해 달라고 했다. 어쨌든 그의 상업영화 은퇴는 이 감독 개인은 물론 한국영화계의 미래를 생각할 때 결코 축하할 만한 일이 아니다.


독립·예술영화 등 비상업영화도 흥행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않다. 따라서 이 감독 역시 어느 정도 이상의 흥행성적을 내야 한다. 국내는 물론 칸·베를린·베니스 등 유명 국제영화제를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된다.


한국영화계는 최근 회생하고 있다. 이 감독의 상업영화 은퇴 선언으로 투자 열기가 다시 수그러들면서 제작 영화 편수가 줄고, 편수는 유지하더라도 저예산영화가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는 점 등이 우려된다. 만약 이같은 점이 다른 요인과 겹치면서 현실로 드러나면 영화인들의 일자리가 줄고, 외국영화와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한국영화계는 매출 및 수익성이 악화되는 등 총체적 어려움에 빠지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블록버스터나 평작이든 저예산영화든, 감독에게 흥행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실상 주요한 과제다. 다음 영화 연출이 흥행성적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행지상주의는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자칫 저급한 작품이 양산되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을 낳을 수 있다. 영화 다양성이 점점 축소돼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비판을 사면서 결국 모두 외면받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 감독은 이번 선언으로 일단은 상업영화 연출일선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현역에서 물러날 때까지 상업영화와 담을 쌓을 것 같지는 않다. 이번 선언에 얽매어 작품성이 돋보이는 상업영화 연출을 굳이 배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감독의 은퇴 선언이 항복이 아니라 회황으로 읽히는 이유이다.


# 은퇴? 중퇴!

이준익 감독은 세종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대학 중퇴 후 월간지 ‘주부생활’과 ‘여성자신’에서 임시직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씨 등이 ‘주부생활’ 기자로 뛰던 시절이었다.

영화계에는 서울 종로3가 서울극장의 광고 담당으로 입문했다. 훗날 <내친구 제제>로 데뷔한 이세룡 ‘주부생활’ 부장이 직장을 서울극장·합동영화사로 옮기면서 이준익을 영입한 것이다. 참고로 당시 피카디리는 현 신씨네 신철 대표, 단성사는 <친구> <말아톤> 등을 제작한 시네라인의 석명홍 대표가 광고 담당을 맡고 있었다.


이 감독은 서울극장·합동영화사에서 실무를 익힌 뒤 1987년 ‘씨네시티’를 설립, 본격적인 홍보·마케팅에 나섰다. 약 1000편의 영화 광고를 담당한 뒤 영화제작사 ‘씨네월드’를 설립했다. 1993년 <키드캅>을 연출, 감독으로 데뷔했지만 쓴 잔을 마셨다. 영업을 마친 배화점을 배경으로 한 한국형 <나홀로 집에>(1990)라고 할 수 있는 <키드캅> 관객이 2만1454명(이하 서울 관객 수·한국영화연감 기준)에 그친 것이다.



이 감독은 이후 외국영화 수입·배급을 하면서 <간첩 리철진>(1999) <아나키스트>(2000) <공포택시>(2000) <달마야 놀자>(2001) 등을 제작했다. <간첩 리철진>은 17만2474명, <하나키스트>는 23만6900명, <공포택시>는 15명이 관람하는 데 그쳤지만 <달마야 놀자>는 크게 성공(서울 125만3075명, 전국 376만6689명)했다.


이 감독은 이후 상업영화 감독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277만1236명(이하 전국 관객 수·한국영화연감 기준)이 관람한 <황산벌>(2003)을 연출, 흥행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사극 코미디영화의 새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1230만2831명이 관람한 <왕의 남자>(2005)를 연출, <실미도>의 강우석 감독과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에 이어 세 번째로 ‘천만 감독’ 왕관을 썼다. 두 작품과 달리 관객의 입소문에 따라 스크린이 속속 늘어나는 데 힘입어 천만 고지를 정복한 기록을 세운 데에다 작품성도 더욱 인정받는 영예를 누렸다. 187만9501명이 관람한 <라디오 스타>(2006)를 통해 작품성도 돋보이는 흥행작 연출 감독으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그런데 이후 세 작품이 속속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즐거운 인생>(2007)이 126만3835명, <님은 먼 곳에>(2008)가 170만6576명,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이 138만5275명을 동원하는 데 그친 것이다. 작품성 평가도 찬반이 엇갈리는 이중고를 치렀다.


이 감독의 은퇴 선언을 놓고 ‘충무로의 손실’이라는 의견이 비등하다. ‘흥행 실패가 이 감독만의 책임이냐’는 의견도 적지 않다. 어떻든 이 감독은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상업성이 남다르고 작품성을 겸비한 영화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투자·배급사에서도 그가 변방에서 지내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이 감독이 상업영화를 그만만들겠다는 선언이 은퇴가 아니라 중퇴로 읽히는 이유이다.

'충무로 파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종병기 활> 500만명 돌파  (0) 2011.09.04
임권택의 카메오  (0) 2011.03.24
이준익 감독, 은퇴할까?  (0) 2011.03.02
박찬욱, 또 베를린 정복  (0) 2011.02.20
‘흥행 퀸’ 김수미  (0) 2011.02.18
개봉 주말 박스오피스  (1) 2011.02.01

Posted by 배장수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