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화 감독 회고전’이 오는 22일까지 열린다. 상암동 DMC단지 내 시네마테크 KOFA 1관(한국영상자료원 지하 1층)에서 ‘한국 액션영화 대부’로 손꼽히는 정창화 감독(82)의 대표작 12편을 상영한다.

상영작 12편은 <노다지>(1961) <장희빈>(1961) <사르빈 강에 노을이 진다>(1965) <예라이샹>(1966) <위험한 청춘>(1966) <황혼의 검객>(1967) <나그네 검객 황금>(1968) <천면마녀>(1969) <아랑곡의 혈투>(1970) <7인의 협객>(1971) <래여풍>(1971) <죽음의 다섯 손가락>(1972) 등이다. 12편 모두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참조 시네마테크KOFA 홈페이지(www.koreafilm.or.kr/cinema). 문의 (02)3153-2076~77.

12편 중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에 따르면 한국의 안양필름과 홍콩의 쇼브라더스가 합작했다. 1972년 5월 26일 홍콩에서 <천하제일권>(영문명 KING BOXER)으로 먼저 개봉됐다. 한국에서는 같은 해 12월 2일에 <鐵人>(철인)으로 개봉, 스카라 극장에서 6만263명이 감상했다. 73년 3월 21일 미국에서 <FIVE FINGERS OF DEATH)로 개봉,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5주 동안 박스오피스 5위권에 머물렀다. 미국에서 이 시기의 개봉영화는 <대부>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이었다.


자료출처/네이버

정창화 감독은 훗날 한국영상자료원 측에 “<철인>은 내 영화가 아니다”면서 “(감독명에서) 내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KMDb에 <철인>은 감독 이름이 없다. 한국영화고 극영화며, 러닝타임 85분에 중학생 관람가 작품으로 기록돼 있다. 반면 미국의 IMDb에는 홍콩영화고, 액션·드라마·로맨스며, 러닝타임이 104분이고, 관람등급은 R(17세 미만 부모나 성인 보호자 동반 요망)이다.

KMDb에 따르면 정창화 감독은 해방 이듬해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최인규 감독 밑에서 영화연출 수업을 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운이 따랐는지 부친과 최 감독의 형이 친분이 있어 그분의 소개로 최인규 감독을 만나 연출수업을 받았다.

정창화 감독은 1950년대와 60년대 초까지 한국 장르영화를 주도했다. 데뷔작은 <최후의 유혹>(1953)이고 마지막 작품은 <파계>(1977)다. 총 51편을 연출했다. 51편 중 <유혹의 거리>(1954)는 제작, <대지여 말해다오>(1962) <래여풍>(1972) <흑야괴객>(1973) 등은 각본도 썼다. 임권택·강대진·정진우 감독 등이 정 감독에게 연출 수업을 받았다. 감독 일선에서 물러난 뒤 <어느 여대생의 고백>(1979)을 비롯해 <수렁에서 건진 내딸2>(1986)까지 29편을 제작했다.

정창화 감독은 액션영화뿐만 아니라 멜로·사극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고 노력했다. 액션영화에도 잔인한 장면을 피하고 철학이 담긴 따뜻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50년대 한국영화의 많은 대사와 느린 템포를 탈피하고자 액션영화에 전념했다. 이 장르를 통해 현실에서는 이룰 수없는 어른들의 꿈을 그리고자 했다.

정창화 감독은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햇빛 쏟아지는 벌판>(1960)을 꼽았다. 미국의 대형영화들이 영화계를 석권할 때 우리 관객들을 모으기 위해 정 감독은 중국벌판을 무대로 한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지평선>(1961)과 같은 대륙영화를 만들었다. 홍콩에서 <아랑곡>(한국제목-아랑곡의 혈투>이란 무협영화를 만들었는데 당시 홍콩은 장철·호금전 등의 무협영화가 각광받았다. <아랑곡>은 이방인인 한국 사람도 무협영화를 잘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다.

정창화 감독은 이 때부터 무협과 현대 액션영화 장르에 정진했다. 그는 <죽음의 다섯 손가락>에 대해 “그간 정립한 연출력의 정점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면서 “나름대로 색다른 영화를 만들어보고자 중국역사서를 뒤져 신비한 이야기를 찾아 자료를 구해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정창화 감독은 영화 속 명소로 <사르빈강에 노을이 지다>의 밀림지대를 꼽았다. 이 장면 촬영은 버마 로케이션을 필요로 했지만 당시 제작여건은 이것을 허용하지 않아 광릉에 열대수를 심어 밀림지대를 재현했다. 또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자비를 들여 인천 월미도 옆 무인도에서 촬영했다. <장희빈>에서 귀향가는 행렬은 잠실에서 촬영했다. 당시 잠실은 아무 것도 없는 벌판이었다. <햇빛 쏟아지는 벌판>(1960)의 중국거리를 재현한 오픈세트는 돈암동에 지어서 촬영했다.

1960년대 후반 홍콩으로 건너가 70년대 후반에 은퇴했고, 미국에서 거주하는 등 오랜 공백기를 가진 정 감독은 소수의 팬들에게 한국 액션영화의 거장 혹은 전설로 회자됐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2002년 영국의 영화비평지 ‘사이트 앤 사운드’를 통해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세계영화사 걸작 베스트 10’ 가운데 한 편으로 손꼽으면서 다시 주목을 끌었다. 2003년 10월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회고전을 갖고 핸드프린팅에 초대했으며, 2003년 11월 홍콩영상자료원과 2004년 6~7월 필름페스티발 ‘파리시네마’가 회고전을 갖고, 2005년 칸국제영화제가 클래식 부문에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초청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정창화 감독은 이와 관련해 “난 한국영화 초창기의 척박한 터전에서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모색한 한국 영화감독이었지만 늘 이방인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준 또 다른 이방인기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51편의 연출작 중 한국영상자료원에 필름이 보존돼 있는 작품은 19편에 불과하다. 자긍심 부재, 자료 결핍…. 한국영화계의 일면이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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