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준상(43)이 질주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과 <북촌방향> 이후 <비상:태양가까이> <터치> <다른 나라에서> 등 영화를 세 편이나 찍었다. 뮤지컬 <삼총사>와 <잭 더 리퍼> 앙코르 공연도 가졌다. 한국예술원 뮤지컬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는 작업도 여전히 열심이다. 유준상의 ‘나는 배우다’


유준상은 배우다. <이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북촌방향> 등의 그는 유준상이 아닌 유준상이다. 지난 8일 24개 스크린에서 개봉, 17일 현재 2만1539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감상한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에서는 능청스러운 인물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풀어냈다. 일례로 그는 두 여인과 잠자리를 갖기 전후에 완전히 달라진다. 오래도록 세간에 오르내릴 듯한 장면이다.

눈발이 날리는 골목길 흑백영상이 강렬한 이미지를 더해주는 세 차례 키스신도 마찬가지. 유준상은 “몇 테이크 안 찍어 촬영할 때에는 몰랐는데 영화를 보면서 놀랐다”고 털어놨다. “솔직히 걱정도 됐다”면서. “아내(탤런트 홍은희)가 아직 안 본 것 같은데 보고 나서 아무 말도 안 하면 좋겠다”며 화제를 돌렸다.

“누가 지었는지 ‘아트버스터’(Artbuster)라고 잘 지었더군요. 관객 수도 수지만 많이 웃었고, 이런저런 상념에 젖게 했다는 평가도 좋아 만족해요. 홍 감독님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홍 감독과 세 편째네요.
“세 편 전에 <해변의 여인>(2007)을 하는 줄 알았어요. 너댓 시간 동안 술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주위에서 그러면 캐스팅 된 거라고 했는데 다른 배우가 하더군요. 아무 연락도 없어 오기도 생겼는데 그때 많은 이야기를 통해 많이 알게 된 게 결과적으로 오늘에 이른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로 만났는데요.
“제주도에 내린 지 한 시간도 안 지나 촬영을 마쳤는데 기분이 묘하면서 좋았어요. 새벽 별을 보면서 ‘또 찍고 싶다’고 느꼈던 기억이 생생해요. 소극장에서 연습을 마친 뒤 밤·새벽공기 마시며 귀가했던 대학 시절,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행복했던 그때의 저를 되찾게 해줬거든요.”

-<하하하>(2010) 때에는 어땠고요.
“감독님이 놀러 오라고 해서 사무실로 갔는데 다른 배우들이 계셨어요. 다 아는 분들인데 함께 할 배우들이라고 하더군요. 다들 놀러오라고 해서 왔대요. 그렇게 시작했어요. 이런저런 절차 없이. 통영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고, 끝나고 나서 ‘또 하고 싶다’고 또 느꼈죠. 감독님과 한 방을 쓰면서 칸(국제영화제)을 인근 지방 여행도 하며 로드무비 찍듯이 다녀오는 동안 정말 행복했어요.”

<하하하>는 ‘주목할 만한 시선’ 주문에 초청받은 뒤 ‘주목할 만한 시선’ 상을 수상했다. <북촌방향>도 같은 부문에 초청받았다.

 

                                                                                                                    사진제공/ 씨네21

“감독님이 ‘겨울에 뭐하니? 하나 하자’고 하셨고, 그 작품이 <북촌방향>이에요. 1개월을 비워뒀는데 보름여 만에 총 7회차 촬영으로 마쳤어요. 눈(雪)은 저와 (김)보경이가 찍을 때까지 안 왔어요. 다른 분들은 촬영을 다 마쳤고, 예보가 맞을는지 모른다며 차에서 기다렸는데 새벽에 펑펑 내렸어요. 눈이 안 왔으면 안 찍었고 영화는 당연히 달라졌을 거에요. 감독님 영화는 그래요. 오면 오는 대로,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현장 상황에 따라 달라져요. 대사나 상황이.”


-매번 아침에 쪽 대본을 받는지요.
“그럼요. 마지막 날에는 아홉 장을 받았어요. 오전·오후 장면도 그랬고 ‘성준’(유준상)이 ‘영호’(김상중) ‘보람’(송선미)과 함께 삶과 우연에 대해 주고받는 장면 대사도 즉석에서 감독님 디렉션에 따라 해요. 누구 한 사람이라도 대사 토씨 등 어느 하나라도 감독님 성에 차지 않으면 다시 찍어요. 20~30 테이크를 넘기는 건 기본이고, 50 테이크를 넘기기도 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롱테이크로. 이 과정을 통해 배우와 극중인물이 하나가 돼요. 촬영 당시에는 엄청 고통스럽고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데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하고 좋은 기억만 남고, 영화를 볼 때마다 다른 걸 얻고, 일상에서 저도 모르게 극중 대사를 하고…. 또 하고 싶어요.”


유준상은 홍 감독의 열세 번째 장편 <다른 나라에서> 촬영을 마쳤다.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윤여정·문성근·정유미 등과 호흡을 맞췄다. 촬영 후 남는 시간을 활용, 홍 감독의 단편 <리스트>도 찍었다. 김동원 감독의 <비상:태양가까이>에서는 정지훈(비)·신세경·김성수·이하나 등과, 민병훈 감독의 <터치>에서는 김지영 등과 함께 했다. <비상:태양가까이>는 한반도의 위기를 헤쳐내는 공군 조종사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터치>는 시력을 잃어가는 딸과 이 아이 부모의 삶을 그렸다. 영화의 규모·장르가 제각각이고 유준상은 각기 다른 인물로 변신을 거듭했다. <이끼>의 검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망나니, <북촌방향>의 바람둥이 등과 차별화된 인물로 우리네 삶의 희노애락을 녹여냈다. 이와 함께 <잭 더 리퍼>와 <삼총사> 무대에도 열정을 쏟았다.  


유준상은 원조 뮤지컬 배우다. 동숭동 출신 유명 배우들과 달리 1990년대 후반부터 뮤지컬 무대에서 관객과 함께했다. 탤런트·배우로 이름을 얻은 뒤에도 뮤지컬을 놓지 않았다.

“아내와 소속사에 미안하고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뮤지컬은 내 삶의 원동력이에요.”

<삼총사>는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오는 11월 초부터 성남과 지방 순회 앙코르 무대에 오른다. 내년 8월에는 국립극장 무대에 서고 일본 도쿄 공연도 갖는다.

“카메라 앞에 서고 무대에 오를 때, 관객과 교감할 때, 내가 아닌 내가 돼 아픔과 기쁨을 느껴요. 어떻게 하면 그 맛을 온전히, 더 누릴 수 있을는지 고민하고 노력해요.”

평소에 틈틈히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을 찍는 것도 그 일환이다. 아내와 아이들의 웃음에서 큰 힘을 얻는다. 유준상은 배우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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