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 감독이 <공공의 적 2012>를 연출합니다. 이 영화는 <공공의 적> 시리즈 제 4편에 해당합니다. 그간 선보인 작품은 <공공의 적>(2002) <공공의 적2>(2005) <강철중:공공의 적 1-1>(2008) 입니다. 설경구ㆍ이성재 주연 <공공의 적>은 303만438명, 설경구ㆍ정준호 주연 <공공의 적2>는 391만1356명, 설경구ㆍ정재영 주연 <강철중:공공의 적 1-1>은 430만670명이 감상했습니다. 새 작품이 전편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시네마 서비스에서 보내온 <공공의 적 2012> 보도자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강우석 감독이 시상식 때 <공공의 적 2012>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공공이 원하는 진짜 ‘공공의 적’은?

강우석 감독 신작 <공공의 적 2012>에서 만난다!

<공공의 적 2012>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 선정
설경구, 강신일 외 원년 멤버 대거 출연, 2012년 본격 크랭크인

한국영화 최초 흥행시리즈 <공공의 적>, 명실상부한 최고의 캐릭터 ‘강철중’을 <공공의 적 2012>로 다시 만난다. 강우석 감독은 최근 ㈜시네마서비스 주최로 <공공의 적 2012> 시나리오 공모전을 열었고 지난 9월 26일 왕십리 CGV 골드클래스에서 진행된 시나리오 공모전 시상식을 통해 최종 당선작 1편(윤종민, 31세 / 상금 3천만원)과 가작 1편(박선주, 37세 / 상금 1천만원)을 선정, 이를 바탕으로 <공공의 적 2012>가 출발할 것임을 알렸다.

                        권병균 시네마서비스 대표ㆍ강신일ㆍ윤종민(당선작가)ㆍ설경구ㆍ박선주(가작작가)ㆍ강우석
                              감독(사진 왼쪽부터)이 시상식 후 자리를 함께했다.

강우석 감독을 비롯한 ㈜시네마서비스 관계자 및 <공공의 적> 제작진, 주연 설경구, 강신일 등이 참여한 이 날 시상식에서 강우석 감독은 축사를 통해 “일반인 혹은 비전문가들의 <공공의 적>에 대한 관심이 너무도 커서 깜짝 놀랐다. 나보다도 더 이 영화를 많이 보았고 인물에 들어가 있는 깊이가 상당했다. 단순히 영화 전문가들이 이렇게 하면 재미있을 것이다 해서 만들어 낸 일방적인 것이 아닌 <공공의 적>을 사랑하는 관객들의 요구와 바램이 반영되어 진짜 ‘공공의 프로젝트’로 거듭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공공의 적 2012> 시나리오 공모전 수상자들에 대한 감사와 격려를 표했다.

전문가, 비전문가 구분없는 열린 ‘공공의 공모전’ 큰 성과
한국형 흥행시리즈를 넘어선 ‘공공’이 참여하는 성장형 흥행시리즈로

지난 5월 11일부터 7월 31일까지 진행된 ‘<공공의 적 2012> 시나리오 공모전’은 기성작가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참여의 폭을 넓혔고 석달여 동안 시나리오 부문 총 67편, 시놉시스 부문 총 93편의 작품들이 대거 접수되었다. 강우석 감독과 <공공의 적> 제작진을 중심으로 비공개 심사를 통해 최종 당선작과 가작 총 두 편을 선정하였고 이의 영화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

                                                   강우석 감독은 시상식 후 "앞으로 <공공의 적>은 흥행 시리즈
                                                   로서 작품의 해당년도를 중심으로 표기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우석 감독은 “<공공의 적>으로 시작해 <공공의 적 2>, <공공의 적 1-1>까지 인물의 캐릭터 변화에 각기 다른 숫자의 의미를 부여했다면 이후 시리즈는 시대와 함께 성장하는 흥행시리즈로서 작품의 해당년도를 중심으로 표기될 것”이라며 “영화 <공공의 적>은 개인적으로 길게 이어져 갔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는데 이번 공모전의 높은 참여율과 관심으로 인해 한 번 더 그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며 <공공의 적>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변함없는 애정을 덧붙였다.

                                          배우 강신일(왼쪽 사진 왼쪽)과 설경구(오른쪽 사진 왼쪽)이 가작 및 당선작
                                          작가에게 시상하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번 공모전을 주관한 ㈜시네마서비스 관계자는 ‘<공공의 적 2012> 시나리오 공모전’은 기성 영화인과 예비 영화인의 새로운 만남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그러한 ‘열린 참여의 장’이 되었음을 물론, <공공의 적 2012>의 출발점이 되어 일거양득의 성과를 거두었다며 수상자 외 공모전에 참여한 또 다른 예비작가들의 가능성 또한 높음을 시사했다.

강우석 감독은 공모전 이후 수상작을 바탕으로 시나리오 작업 중이며 시나리오가 완성되는대로 <공공의 적 2012>의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할 예정이다. 



[충무로 파일]강우석 감독 흥행성적
배장수기자 cameo@kyunghyang.com
입력: 2010년 07월 09일 18:07:37

강우석 감독의 <이끼>가 오는 14일(수) 개봉된다. 동명 웹툰을 영상화한 화제작이다. ‘흥행귀재’로 손꼽히는 강우석 감독이 그간 연출한 영화의 흥행성적을 들여다봤다.


# 최다 연출
국내에서 영화 관객은 2003년부터 전국단위로 집계되고 있다. 이전에는 배급방식의 차이와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연동 미흡 등으로 인해 집계가 이뤄지지 않은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에 따라 서울 관객수만 발표됐다.

한국영화연감(2003년 이전 작품은 각 배급사 기록 참조)에 따르면 2010년 6월 30일 현재 전국에서 300만명 이상이 관람한 한국영화는 모두 57편이다. 57편 가운데 1000만명 이상은 <실미도>부터 <괴물>까지 5편이다. 5000만 이상 1000만 미만은 <추격자>부터 <디워>까지 20편이다. 300만 이상, 500만 미만은 <거북이 달린다>부터 <동갑내기 과외하기>까지32편이다.


57편 가운데 최다 연출자는 강우석 감독이다. <공공의 적>(2002) <실미도>(03) <공공의 적2>(05) <한반도>(06) <강철중:공공의 적 1-1>(08) 등 5편을 선보였다.


2위는 윤제균·김용화·박찬욱 감독이다. 윤 감독은 <두사부일체>(01) <색즉시공>(02) <해운대>(09) , 김 감독은 <오! 브라더스>(03) <미녀는 괴로워>(06) <국가대표>(09) , 박 감독은 <공동경비구역JSA>(00) <올드보이>(03) <친절한 금자씨>(05) 등 각각 3편을 내놓았다.

이어 봉준호·강제규·곽경택·최동훈·김지운·정용기·김상진·유하·박진표 감독 등 9명이 각각 2편을 연출했다.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03) <괴물>(06), 강제규 감독은 <쉬리>(1999) <태극기 휘날리며>(04), 곽경택 감독은 <친구>(01) <태풍>(05), 최동훈 감독은 <타짜>(06) <전우치>(09), 김지운 감독은 <장화, 홍련>(03)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08), 정용기 감독은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05) <가문의 부활-가문의 영광3>(06), 김상진 감독은 <신라의 달밤>(01) <광복절특사>(02), 유하 감독은 <말죽거리 잔혹사>(04) <쌍화점>(08), 박진표 감독은 <너는 내운명>(05) <그놈 목소리>(07) 등이다.

이밖에 이준익·심형래·강형철·박광현·김지훈·김동원·장훈·조진규·정윤철·정흥순·나홍진·김경형·곽재용·이정향·임순례·신태라·박철관·김유진·이재용·김호준·송해성·추창민·전윤수·강대규·이연우 감독 등 24명이 각각 1편을 내놓았다. <왕의 남자>(05) <디워>(07) <과속스캔들>(08) <웰컴 투 동막골>(05) <화려한 휴가>(07) <투사부일체-두사부일체2>(06) <의형제>(10) <조폭마누라>(01) <말아톤>(05) <가문의 영광>(02) <추격자>(08) <동갑내기 과외하기>(03) <엽기적이 그녀>(01) <집으로…>(02)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08) <7급 공무원>(09) <달마야 놀자>(01) <신기전>(08)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03) <어린 신부>(04)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06) <마파도>(05) <식객>(07) <하모니>(10) <거북이 달린다>(09) 등이다.

# 최다 동원
57편 연출자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불러들인 감독 역시 강우석이다. <실미도>는 1108만1000명, <강철중>은 430만670명, <공공의 적2>는 391만1356명, <한반도>는 388만308명, <공공의 적>은 303만438명이 관람했다. 5편 총 관객은 2620만3772명이다.

2위는 윤제균 감독이다. <해운대> 1151만6992명, <색즉시공> 408만2797명, <두사부일체> 330만5271명 등 모두 1890만5060명을 기록했다.

3~5위는 봉준호·김용화·강제규 감독이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 1301만9740명, <살인의 추억> 525만5376명 등 1827만5116명이다. 김용화 감독은 <국가대표> 837만6937명, <미녀는 괴로워> 661만9498명, <오! 브라더스> 314만8748명 등 1814만5183명이다. 강제규 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 1174만6135명, <쉬리> 620만9893명 등 1795만6028명이다.

6~10위는 이준익·최동훈·박찬욱·곽경택·김지운 감독이다. 이 감독은 1230만2831명(왕의 남자), 최 감독은 1289만7485명(타짜-684만7777명, 전우치-604만9708명) 박 감독은 1274만9228명(공동경비구역JSA-583만228명, 친절한 금자씨-365만, 올드보이-326만9000명) 곽 감독은 1227만5772명(친구-818만1377명, 태풍-409만4395명) 김 감독은 983만2205명(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668만5988명, 장화 홍련-314만6217명)을 불러모았다.

강우석 감독은 <달콤한 신부들>(1988)로 데뷔, <이끼>까지 18편(옴니버스영화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 포함)을 연출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89)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91) 등으로 주목받은 뒤 <미스터 맘마>(92) <투캅스>(93) <마누라 죽이기>(94) <투캅스2>(96) 등을 선보이면서 흥행감독으로 각광받았다.


한국영화연감에 따르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15만5321명(이하 서울관객 기준)이 관람, <서울무지개> <매춘2>에 이어 1989년 흥행 3위(이하 한국영화 기준)에 올랐다. <미스터 맘마>(22만7294명)는 <결혼이야기>에 이어 1992년, <투캅스>(86만433명)는 <서편제>에 이어 1993년에 각각 흥행 2위를 차지했다. <마누라 죽이기>(34만4900명)는 <너에게 나를 보낸다> <닥터 봉>에 이어 1994년 흥행 3위, <투캅스2>(63만6047명)는 1996년 흥행 1위를 기록했다.

빅5 영화 연간 순위는 다음과 같다. <공공의 적>(116만1500명)은 <가문의 영광> <집으로…>에 이어 2002년 3위, <실미도>(256만9826명)는 <태극기 휘날리며>에 이어 2004년 2위, <공공의 적2>(116만7828명)는 <웰컴 투 동막골> <말아톤> <가문의 위기> <친절한 금자씨>에 이어 2005년 5위, <한반도>(107만7033명)는 <괴물> <왕의 남자> <타짜> <투사부일체>에 이어 2006년 5위, <강철중>(129만8197명)은 <놈놈놈> <추격자>에 이어 2008년 3위를 기록했다.

# ‘미다스의 손’
6월 30일 현재 전국에서 200만명 이상이 관람한 작품은 102편(<투캅스> 등 일부 미집계작 제외)이다. 이 가운데 최다 연출자도 강우석 감독으로 5편이다. 이어 윤제균·곽경택·박찬욱·김상진 감독이 각각 4편(곽 감독 공동연출작 포함)을 연출했다. 그리고 봉준호·김용화·최동훈·유하·박진표·장진 감독이 각각 3편, 이준익·김지운·정용기·곽재용·전윤수·김대우·안권태 감독이 각각 2편(안 감독 공동연출작 포함)을 내놓았다. 심형래·강형철·박광현·김지훈 감독 47명이 1편을 선보였다.


최다 관객 동원 감독 역시 강우석(2620만3772명)이다. 이어 윤제균(2165만5517명) 봉준호(2125만1627명) 김용화(1814만5183명) 강제규(1777만6028명) 곽경택(1645만8351명) 순이다.

강우석 감독의 빅5는 모두 2000년대 작품이다. 연출작 5편이 모두 300만명 이상이 감상하는 ‘흥행불패 신화’를 썼다. 윤제균·봉준호·김용화·최동훈 감독 등도 불패 기록을 잇고 있다.

강우석 감독의 빅5는 이를테면 ‘남자영화’다. 5편 모두 여주인공이 설정돼 있지 않다. 특히 <실미도>의 경우 여배우는 버스승객 등 보조출연에 지나지 않는다. 이같은 경우는 102편 중 <실미도>가 유일하다.

<이끼>는 이들 전작과 다르다. 마을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을 묵묵히 주시하는 의문의 여인 ‘이영지’(유선)가 등장한다. 영화 원작인 동명 웹툰에서도 인기를 끈 캐릭터로 영화에서는 다른 역할도 하는 등 비중이 더욱 강화됐다.

<이끼>는 또 그간 강우석 감독이 손대지 않은 스릴러다. 마을의 비밀을 캐려는 이방인 ‘유해국’(박해일)과 그를 내몰려는 이장 ‘천용덕’(정재영) 등의 맞대결을 담았다. 유선·유해진·김상호·김준배·유준상·강신일 등이 호흡을 맞췄다. 강한 드라마를 선호하는 강우석 감독이 스릴러 장르에 주특기인 유머를 가미, 영화적 재미를 자아내면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메시지도 전해준다. ‘스릴러 + 유머 + 검증된 연기…잠시도 숨돌릴 틈이 없네’ 등 호평이 잇따르면서 기대를 모우고 있다.

강우석 감독은 ‘강우석 프로덕션’에 이어 1995년 투자·배급도 겸하는 ‘시네마서비스’를 설립했다. 그간 130편 정도를 제작, 혹은 투자·배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미도>로 첫 ‘1000만 신화’를 쓴 데 이어 <왕의 남자>를 배급, ‘1000만 영화’ 2편을 내놓았다. 칸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취화선>과 여우주연상 수상작 <밀양>도 배급했다.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주도해온 강우석 감독이 이번 영화 <이끼>로는 어떤 성적을 거둘는지 주목된다.


[웰컴 투 충무로] ‘충무로 아이콘’ 강우석
입력 : 2011-06-08 11:26:47

# 강우석은 날마다 일어선다 
한 청년이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1981)에 심취한다. 대학을 그만두고 ‘충무로’에 뛰어든다. 영화감독을 꿈꾸며. 늘 차비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생활이 어렵고, 과연 코미디영화로 데뷔할 수 있을는지 길이 보이지 않지만 꿈을 접지 않는다. 의지를 불태운다.

청년은 7년 뒤 마침내 <달콤한 신부들>(1988)로 데뷔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1990)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 <열아홉 절망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노래>(1991)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1991) 등을 속속 선보인다. 각광을 받고 외면을 받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제작사 설립을 전후로 <미스터 맘마>(1992) <투캅스>(1993) <마누라 죽이기>(1994)를 잇따라 연출·제작, 흥행감독으로 부상한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여전하다. 투자·제작한 영화들이 고배를 마시는 바람에.


제작·투자·배급사를 설립한 그는 <투캅스2>(1996)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1996)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1998) <공공의 적>(2001) 등을 내놓으면서 열탕과 냉탕을 오간다. 투자·제작·배급한 영화 성적에 따라 그 열기와 냉기는 널을 뛴다.


이런 가운데 그는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천만신화’를 쓴다. <실미도>(2003)로. <공공의 적2>(2004) <한반도>(2006) <강철중:공공의 적 1-1>(2008) <이끼>(2010) <글러브>(2011) 등 히트작을 속속 연출·제작, 한국 감독 최초로 개인 통산 3천만 명 동원 기록을 수립한다. 이와 함께 <주유소 습격사건>(1999) <신라의 달밤>(2001) <가문의 영광>(2002) <광복절 특사>(2002) <왕의 남자>(2005)  <거북이 달린다>(2009) 등 히트작과 <취화선>(2002) <밀양>(2010) 등 유명 국제영화제 수상작을 투자·제작·배급한다.


그는 ‘충무로 아이콘’ 강우석 감독(50)이다. 그는 날마다 일어선다. 자신의 영화를 위해, 한국영화계의 르네상스를 위해.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강우석은 어릴 때부터 영화를 즐겨봤다. 어머님 덕분에. 1960년 11월 10일 경북 경주에서 3남2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의 영화감상 단골 파트너였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극장에 갈 때면 그는 마냥 행복했다.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엄마와 영화 보는 게 더 즐거웠다. 울다가도 극장 가자고 하면 울음을 뚝 그칠 정도로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 툭툭 던지는 한 마디로 친구들을 곧잘 웃겼던 그는 특히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그걸 만든 사람이 영화감독이란 걸 알게 됐고, 크면 영화감독이 돼 코미디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품고는 했다.


그런가 하면 강우석은 영민했다. 특히 산수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주산(전자계산기가 없던 당시에는 방과 후에 주산학원을 다니는 초등학생이 많았다)을 배운 지 2년여 만인 4학년 때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는 8~9단의 실력을 지닌 데에다 5학년 1학기 때에는 전국 암산왕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강우석의 이와 같은 능력은 그가 영화감독이 된 뒤에 십분 발휘되고 있다. 그는 영화를 빨리 찍고 그러면서도 버리는 필름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화를 찍으면서 동시에 편집을 하고 필요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첨삭하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례로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의 경우 후반작업을 할 때 단 한 컷(cut)도 잘라낸 게 없다.  각 쇼트(shot)·신(scene)·시퀀스(sequence)의 시간까지 계산해서 촬영을 한 것이다. 


아무튼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어린 강우석이 훗날 수학자나 경제학자가 될 거라고 전망했을 듯하다. 그러나 강우석은 형·누나들에 이어 5학년 2학기 때 서울로 전학을 오면서 주산과 암산을 버리고 평범한 학생이 됐다. 영화를 좋아하고 승부욕이 강한 반면 공부에는 열정을 쏟지 않았다.


강우석은 이에 대해 “1등을 못할 거면 아예 안 한다”고 했다. “1등을 할 수 있었으면 공부를 했을 것인데 공부를 잘 하는 얘들이 많았다”며 일례를 들었다. “서울대학교에 간 고등학교 때의 한 친구는 맨 날 노는데 전교 1등은 항상 그 얘 차지였다”고. “학창시절 나보다 공부도 훨씬 잘하고 잘나가던 친구가 내 밑에서 조감독을 했다”면서 “행복은 (학교) 성적순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진리”라고 역설했다. 이어 “내 영화에 베드신이 없는 것도 도무지 적성이 맞지 않고 잘 찍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4년 6개월여 동안 다수의 멜로·에로영화로 현장 경험을 쌓은 걸 감안하면 실로 아이러니하다.


# 절망 끝에 부르는 사랑노래

강우석의 중학교 시절 생활기록부에는 장래 희망이 영화감독으로 적혀 있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즐겨 본 그는 고 하길종 감독이 연출한 <바보들의 행진>(1975)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연소자 관람불가’인 이 영화를 중학생인 그는 몰래 여섯 번이나 봤다. 한 번은 선생님에게 들켜 혼쭐이 났다.


<바보들의 행진>과 함께 강우석의 감독 행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작품은 앞서 밝혔듯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영화적으로 흥미롭게 풀어낸 두 작품의 공통점은 강우석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두 작품이 강우석 감독에게 끼친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은 대학교 2학년 때 봤다. 연극영화과는 ‘딴따라’가 되는 곳이라는 부모님의 의견을 수렴, 영어영문학과(성균관대)에 진학한 그는 신학기 등록금으로 술을 마시고 대학생활을 접었다. 고2~3 때 아버지의 사업이 완전히 몰락하는 바람에 궁핍한 생활을 경험한 그는 영화로 돈벌 자신이 있었다. 강우석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어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 대학생활을 계속하는 게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였다”고 회상했다.


영화는 국방부 홍보영화로 시작했다. 방위병으로 복무하던 시절 인연을 맺은 국방부 홍보영화를 찍으면서 강우석은 충무로 진입을 시도했다. 정인엽 감독의 <애마부인>(1982) 연출부에 ‘세컨드’(‘퍼스트’ 즉, 조감독은 고 하길종 감독의 연출부 출신으로 훗날 <단> <어느 중년부인의 위기> 등을 내놓은 김행수 감독이 맡았다)로 입문했다. 강우석은 이에 대해 “이장호 감독의 연출부를 원했지만 자리가 없었다”면서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한번 맺은 인연은 질겼다. <애마부인>에 이어 <애마부인2>(1983·감독 정인엽) <사슴 사냥>(1984·감독 노세한) <작은 사랑의 노래>(1984·감독 노세한) <장대를 잡은 여자>(1984·감독 노세한) <애마부인3>(1985·감독 정인엽) <춤추는 딸>(1986·감독 노세한) <유혹시대>(1986·감독 정인엽) <성 리수일뎐>(1987·감독 이석기) 등의 연출부와 조감독, 각색, 시나리오 작가 등을 맡은 것이다. 정진우 감독이 연출하는 <여명의 눈동자>에서 조감독을 맡아 멜로영화 탈출을 기도했지만 불행히도 이 영화 제작은 중단되고 말았다.


연출부 생활을 고달팠다. 도제 시스템에 따라 왕이나 다름없는 선배의 양말과 속옷을 빨아야 하는 등 사적인 것도 감수하며 영화를 배워야 했다. 얼마 되지 않은 개런티는 몇 차례 술을 마시면 바닥이 나버려 늘 차비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혹독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마저도 선택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어서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여건을 탓하며 떠난 자리는 금방 얼마든지 채워질 수 있으므로. 자기가 좋아하는 코미디영화로 데뷔할 수 있을는지 절망 속에 잠을 청하고, 일어나면서 다시 한 줄기 희망을 좇는 나날을 보냈다.


흥행 감독 밑에서 조감독을 하면 통상 데뷔하는 게 쉬운 편이다. 제작자들이 원하는 게 애정영화여서 강우석의 경우는 더욱 용이해 보였다. 하지만 강우석은 그 때문에 더 어려웠다. 자신이 하고 싶은 영화와 제작자가 만들고 싶어 하는 영화가 판이하게 달라 주어지는 기회를 뿌리쳐야 했기 때문이다. 강우석 감독은 지금도 여전히 멜로영화에는 손사래를 친다. “그 장르를 폄하하는 게 아니라 나와 맞지 않다”면서 “제각각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장르가 있고 모두가 각각 자신 있는 분야에서 매진할 때 한국영화가 다양해지고 풍성해진다”고 했다. 


강우석 감독은 자신의 데뷔시절에 대해 “충무로에서 나만큼 고생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면서 “자살하는 사람의 심정도 그때 알았다”고 토로했다. “예나 지금이나 스태프에게 각별히 신경을 쓰는 건 당시 경험이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박중훈이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1987) 때 받은 개런티로 강제규와 나에게 사준 삼겹살이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맛  있었다고 생각나는 건 당시에 그렇게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시네마서비스

강우석 감독은 1993년 강우석프로덕션에 이어 1995년 시네마서비스를 설립했다. 2011년 6월 현재, 130여 편의 한국영화를 제작, 혹은 투자·배급했다. 수입·배급한 외국영화까지 더하면 약 300 편에 달한다.


강우석 감독은 그간 몇 차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벼랑 끝까지 몰린 위기의 순간도 치렀다. 일례로 <투캅스2>를 찍을 당시 통장에 남아 있는 돈은 고작 100만원, 빚은 16억원이나 됐다. <투캅스> 성공 이후 다소 방만한 투자로 인해 쌓인 빚이었다.


<투캅스2> 성공으로 빚을 다 갚고 30억원 넘게 남았지만 이후에 제작한 몇 편의 영화가 다시 실패하면서 또 빚더미에 올랐다. 광고대행사에서 시네마서비스의 어음을 하나하나 체크할 정도였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주유소 습격사건> <텔미썸딩> 등의 성공으로 다소 해소한 뒤 1999년 미국의 워버그핀커스에서 2000만 달러를 투자받으면서 도산 위기를 극복했다. 회계장부를 다 뒤져 실사한 결과 법인 대표이사가 100원짜리 하나 횡령한 게 없다는 게 투자를 받는 요인이 됐다.


<실미도> 성공으로 100억원 넘게 벌었지만 또 6~7편의 영화가 잇따라 흥행에 실패하면서 강우석은 다시 빚더미에 쌓였다. 한국영화계에 꼭 필요한 서울액션스쿨·아트서비스 등을 지원·운영하고, 한국영화 최초의 칸국제영화제 수상작 <취화선>에 44억원을 투자하는 등 예술영화를 지원한 것도 한 요인이다.


시네마서비스의 도약과 위기는 여전히 현재상황이다. 강우석은 말한다. “훗날 영화로 돈 번 강우석이 아니라 영화작품 자체로 기억되고 싶다”고. “그 사람 영화계에 좋은 일 많이 하고 갔다”고 회자되기를 바란다. 돈보다는 영화를 남기겠다는 강우석 감독과 시네마서비스의 행보가 기대된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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