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중 저예산영화(제작비 10억원 미만) 비중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05년 16편(19.3%)이던 저예산영화는 2006년 25편(23.1%), 2007년 35편(31.3%), 2008년 38편(35.2%), 2009년 64편(54.2%) 2010년 73편(52.1%)으로 증가했다.

                                 <사물의 비밀> 촬영현장.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 10월 ‘한국영화동반성장협
                                         의회’를 발족했다. 이를 통해 수직계열화 
문제, 스크린 독과점에 따른 중소형
                                         영화상영 위축 문제 해
소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어떤 성과를 거
                                         둘는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예산영화의 증가는 충무로에서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제작비를 투자받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걸 방증한다. ‘창작자 생존위기’가 올 초 중요 이슈로 급부상한 데에서 알 수 있듯 영화인들이 어렵게 살고 있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참고로 2008년 현재 영화산업 종사자는 1만9908명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비정규직이 전체의 43.8%를 차지(영진위 자료 기준)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인들이 실로 어렵게 만든 저예산영화는 극장에서 외면받기 일쑤이다. 개봉 스크린을 확보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데에다 그나마 입성한 얼마 되지 않는 극장에서 ‘퐁당퐁당’(띄엄띄엄 상영) 소개되다가 종영되는 게 다반사다. 유명 배우가 출연하지 않고, 홍보마케팅(P&A) 비용이 적다보니 어떤 영화가 개봉ㆍ상영됐는지 모른 채 묻혀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다. 20일 <사물의 비밀>을 연출한 이영미 감독(필름프론트 대표)이 보내온 메일은 이에 따른 한숨과 눈물, 한 가닥의 간절한 기원이 담겨 있다.

                                          <사물의 비밀> 촬영장에서 이영미 감독(왼쪽)이 배우들과 함께 촬영 장면을
                                           모니터하고 있다.
 

이 메일은 “벌써 개봉 3일 후, 돌아가는 상황들을 보다가 너무 마음이 아파 이 글을 씁니다”로 시작된다. 이 글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개인적인 심정으로 기자님들의 마음을 어지럽혀 드리고 싶지 않으나 본 영화의 감독으로서 너무 당황스럽고 억울하여 글을 올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11월 17일, <사물의 비밀>이 상업영화로서 극장에서 개봉을 하였고 이제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이게 감동을 느낄 사이도 없이 많은 고뇌가 저를 잠못 이루게 합니다.

10월 20일 제작보고회를 시작으로 11월 2일의 기자시사, 1400명이 참석한 VIP시사회에서의 반응, 그리고 10여 차례의 일반 시사를 통한 관객님들의 좋은 반응들에 이런 상황을 예측 못했었는지도, 그만큼 순진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영화사에 전화가 계속 옵니다. ‘도대체 이 영화 어디서 볼 수 있냐?’고. ‘왜 강남에는 개봉관이 이리 없냐?’ ‘시간배정은 왜 이렇냐?’고.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입소문과 보고 싶어하는 관객분들은 점전 더 많아지는데, 가서 볼 극장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 얘기를 듣는 제 가슴은 찢어집니다.

전 주에 22개의, 유례없이 많은 영화들이 몰렸다는 점은 알지만, 개봉 일주일 전까지 50~100개관을 배급사와 함께 계획했고 확정적으로 알고 있었던 저희가 개봉날 직전에 20개도 안 되는 극장수로, 그나마 ‘퐁당퐁당’이 되어버려 한 주도 기약할 수 없어졌다는 현실에 경악하였습니다. 아무런 사전 양해도 없이 저희의 상영관을 고스란히 잃어버린 것입니다.

저와 작은 영화사 ‘필름프론트’ 식구들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철퇴였습니다. 그리도 눈물을 머금고 상영일부터 극장을 돌아보았는데, 그나마 몇 개 안 되는 서울 변두리 극장들에서조차도 메이저와 마케팅비 많이 쓴 영화의 포스터만 걸려 있고 심지어 전단 배치도 잘 안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것조차도 작은 영화는 밀린단 말인가요? 

‘독립자본의 상업영화’가 설 길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이러니, 이보다 더 작은 독립영화들은 어떤 조건일까요?!!

제 영화가 한 번 볼 가치도 없는 그런 영화라면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선보여 관객들의 냉정한 반응이든 호응이든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열어주기 바랍니다. 이건 상도에 어긋납니다. 시나리오부터 투자/배급을 받기 힘들어 결국 저 개인이 발로 뛰어 힘겹게 제작했고, P&A도 저희가 힘겹게 뛰어 투자를 끌어오면서 고생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옵니다. 결국 영화를 만들고, 열악한 예산에서 최선의 광고홍보를 하였고, 영화제와 여러분들의 평가와 사랑을 받은 기쁨도 잠깐, 이렇게 정정당당히 겨뤄볼 기회조차 박탈당해야 합니까. 저는 피눈물이 납니다.

아무쪼록 양식있는 배급사와 극장들의 현명하신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뺏긴 50개의 극장을 돌려주십시오. ‘독립자본의 상업영화’와도 함께 공생한다는 믿음을 보여주십시오. 이러한 진정성을 무시함으로써, 모든 걸 다 걸고 영화를 만든, 아무리 힘들어도 영화에 한 열정 하나로 꿋꿋이 한국영화계를 지켜온 사람들을 벼랑 끝에 내몰지 말아주기를 바랍니다.”

<사물의 비밀>은 연상연하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독특한 시선으로 조명한 파격 감성 멜로영화로 손꼽힌다. 혼외정사에 관한 논문을 준비 중인 마흔 살 사회학과 교수 ‘혜정’과 스물한살 된 제자 ‘우상’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담았다. 이들의 심경 변화는 복사기와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 보여진다. 욕망과 사랑에 관한 비밀과 함께.

장서희ㆍ정석원을 비롯해 이필모ㆍ심이영ㆍ윤다경 등이 호흡을 맞췄다. 지난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예매 오픈 9분 만에 매진되는 등 화제를 낳았고 모스크바국제영화제, 몬트리올국제영화제 등에도 초청받았다. 장서희는 악녀 이미지를 벗은 섬세한 내면연기를 펼쳐 40대 여성 관객에게 특히 주목받고 있다. “바로 내 이야기”라며. 정석원은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옴므파탈 연기로 ‘아시아의 키아노 리브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혜정의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횟집녀’로 출연한 윤다경은 6분간의 롱테이크 파격 정사신으로 이목을 끌었다.

이영미 감독은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와 영국국립영화학교(NFTS) 연출과를 졸업했다. 영국 유학 당시 줄리아 로버츠·휴 그랜트 주연 <노팅힐> 후반작업에 참여하며, 한국과 영국의 현장을 치열하게 경험했다. <또 하나의 생> <물과 기름> <작곡> <택시기사> <샐리 가든> 등 10여 편의 중단편을 연출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등 28개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신선한 영화’를 기치로 2008년 영화사 ‘필름프론트’를 설립, 첫 장편 <사물의 비밀>을 연출·제작했다.

<사물의 비밀> 상영 스크린은 21일 밤 현재 15개다. 아트하우스 모모·미로 스페이스·메가박스 강남·롯데시네마 강동·롯데시네마 영등포·CGV압구정·CGV상암·CGV군자·CGV신도림(서울), 롯데시네마 부평역사·프리머스 부천소풍·CGV평촌·CGV동수원·CGV동탄스타(인천·경기) 롯데시네마 부산대·롯데시네마 진주(부산·경남) 롯데시네마 포항MBC(경북) 롯데시네마 상무(광주) 메가박스 천안(충청) 메가박스 원주(강원) 메가박스 제주(제주)이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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