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주 감독(45)이 질주하고 있다. 새 영화 <화차>(火車)로. 개봉 7일 만에 100만 명을 돌파, 벌써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발레교습소> 이후 7년 만에. 비장의 카드로 <화차>에 올라탄 변영주 감독의 개선행진곡을 들었다.
 


'선영'(김민희)이 결혼을 앞두고 사라진다.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수의사 '문호'(이선균)는 사촌형인 전직 형사 '종근"(조성하)과 함께 연인 선영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선영은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선영이 아니다. 지옥행 불수레 '화차' 같은 존재이다.

이 영화는 '미미 여사'로 불리는 일본의 인기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가 원작이다. 변영주 감독이 각색,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도 했다. 영화적 재미와 함께 신용불량, 파산, 사채, 개인 정보 누출, 1인 가구, 무관심 등 우리 사회의 첨예한 문제를 심도 있게 짚어냈다. <도가니> <완득이> <부러진 화살> 등의 뒤를 잇고 있다.


-원작을 읽은 게 언제인지요.

"2005년 이맘 때예요. 친구인 <발레교습소>의 신혜은 PD와 함께 경주에 갔을 때 읽었어요. 경주는 제 삶의 화두 같은 걸 묻고 풀어보는 소중한 공간이에요. 대학 3학년 때 <안녕하세요 하나님>(감독 배창호)을 본 이후로. 아무튼 서울을 떠나기 전 서점에서 서둘러 두 권의 소설을 샀는데 하나가 가네시로 카즈키의 <레벌루션 NO.3>이고 다른 하나가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예요."

<레벌루션 NO.3>는 <발레교습소>와 관련해 많은 반성을 하게 했다. <이유>는 미유키에 대한 궁금증과 그의 다른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변 감독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무작정 서점으로 달려갔다. 이때 구입한 소설이 <모방범>과 <화차>. 변 감독은 이후 미미 여사의 열혈 팬이 됐다.


-여러 작품 중 <화차>가 가장 욕심이 났나요.

"<화차>는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에요. 피해자가 자신과 유사한 인물을 골라 피해자로 만드는 걸 통해 당대의 사회적 문제를 극대화했죠. 그런데 원작이 영화화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았어요. 주변에서 부정적 의견이 강했죠. 한 유명 제작자께서 저보고 '미쳤냐'는 소리까지 할 정도로."


-그럼에도 왜 <화차>를 택했는지요.

"오기민·신혜은 PD가 미미 여사의 작품 중 영화 판권을 구입한 게 <화차>였어요. 판권은 대개 자국부터 해결하고 외국에 파는데 <화차>가 먼저 풀린 거에요. 판권 샀다는 얘기를 듣고 내게 맡겨 달라고 졸랐죠. 그런 중 시나리오와 연출 제의를 받고 정말 기뻤어요. 동시에 걱정도 적잖았죠. 공간과 시간 문제로. 원작은 1990년대 초를 배경으로 버블경제 붕괴로 인한 일본의 범사회적 이상 징후를 그렸는데 제가 만들어야 할 영화의 시공간은 현재의 서울, 한국이거든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왜 다들 반대했는지 알았어요."

-시나리오 작업은 얼마나 했나요.

"3년 넘게 썼어요. 원작의 힘과 정서를 어떻게 바로 지금의 이곳으로 가져오느냐가 관건이었죠. 사건을 의뢰하고 빠지는, 원작에 없는 문호라는 여자의 약혼자 캐릭터를 만들면서 돌파구를 찾았어요. 원작의 주인공은 경시청의 지혜롭고 유능한 형사에요. 그는 사건을 사건으로 추적, 세상의 비정함을 펼쳐내요. 영화는 여자를 사랑하고, 믿고, 그녀가 절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행복한 삶을 공유했던 남자예요. 제3자가 아니라 피해 당사자인 남자를 이야기의 축으로 놓으면서 바라보는 영화가 아니라 직접 체험하는 영화가 가능했죠. 그리고 형사는 문호의 조력자로 삼았어요. 엘리트가 아니라 남자의 사촌으로, 찌질이 전직 형사, 백수로 설정해 체험의 여지를 더욱 넓힐 수 있게 했어요."


-김민희에 대한 칭찬이 자자합니다.

"민희씨의 경우 즉흥적인 캐스팅이었어요. 선영이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분량이 적어 고민하던 중 우연히 민희씨 소속사에서 보내온 달력을 보고 연락을 했죠. 주변에선 '할까?' 했지만 전 확신했고, 실제로 곧바로 확답을 받았어요. 선영이 지문을 지우는 장면은 시나리오에 없었는데 민희씨의 연기력을 믿고 콘티를 짜면서 만들었어요. 상상에 맡기지 않고 직접 보여줘도 관객분들이 그 이상을 읽을 수 있을 거라고 봤거든요."


-투자받는 건 용이했나요.

"아니에요. 시나리오는 좋다고 하면서 들어오지 않아 애를 먹었어요. 이선균·김민희 등이 하겠다고 하는 데에도. 가장 큰 문제가 감독이 저 변영주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 중 20억원 미만의 영화를 만드는 필라멘토픽쳐스가 나서줘 기사회생했어요."

-순 제작비가 20억원 미만인가요.

"18억원이에요. 배우들이 출연료를 깎아줬죠. 흥행이 되면 보전받는 방식으로. 저도 연출료를 낮췄고, 믹싱·편집팀 등도 저렴한 비용으로 해줬어요. 원래 비 오는 장면이 엄청 많았는데 선영이 사라지는 고속도로 휴게소 외에는 다 날렸어요. 그 밖에 운영의 묘를 많이 살렸는데 실패한 적이 많은 감독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준 배우·스태프 덕분에 해낼 수 있었죠."

-촬영은 얼마나 했나요.

"70일 동안 54회 나갔어요. 용산역 외 대부분의 장면을 한 대의 카메라로 찍었어요. 돈이 없어서. 문호가 자동차의 사이드 미러를 발로 차 깨는 장면의 경우 감정 리허설만 열 번 하고 부수기 전에 '컷'을 외쳤죠. 돈도 돈이지만 시간과의 싸움도 힘겨웠어요. 배우·스태프의 스케줄 때문에 70일 이내에 끝내야 했거든요. 그래서 배우들이 감독의 말만 믿고 모니터를 보지 않기도 했어요. 저와 촬영감독과 PD는 매일 시뮬레이션을 통해 여러 대안을 준비해야 했고 ."

막바지 용산역 장면 촬영 때에는 그간 아꼈던 비용을 쏟아 부어 대형 장비 등을 총동원했다. 하지만 전면 통제가 불가능한 현장 상황 때문에 순서대로 찍을 수 없었다. 감정의 흐름을 타야 하는 배우들은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지만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해줬다. 덕분에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엔딩 장면 고민이 많았겠어요.

"여러 버전이 있었는데 현재 장면을 택했어요. 논리적으로는 아쉽지 않은데 감정적으로는 아쉬움이 남아요."


-원작의 제목을 그대로 썼습니다.

"제목이 60년대 영화 같은 느낌이 들고 뜻도 확 와닿지 않기는 해요. 영어 제목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헬프리스>(Helpless)인데 우리말 제목은 <화차>보다 나은 게 없었어요. 원작이 갖고 있는 미덕을 살리고, 열심히 홍보를 하면 관객분들이 알아주실 거라고 생각해서 <화차>로 정했어요."

-원작자는 영화를 봤는지요.

"일본어 자막을 단 DVD를 보여드렸는데 굉장히 마음에 드셔 하셨어요. 한국에 돌아온 뒤 미미여사의 메일을 받았는데 세 번째 보고 있다면서 소설을 쓸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으로 인간관계를 새롭게 조명한 점을 높이 사주셨어요. 초반부터 서스펜스가 넘치고 종국에 가서는 가슴 아픈 사랑을 다룬 영화라고 하시면서. 배우들도 칭찬하시면서…."


변 감독은 <화차>의 선영에 대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주변의 이웃"이라고 했다. "<화차>를 어떻게 보셨든 보신 게 맞다"면서 "다만 평소에 무심하게 지나쳤던 주변과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되면 더할 나위가 없다"고 피력했다.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기원한다"면서. 변 감독은 또 "데뷔 이래 처음으로 연출을 의뢰하는 시나리오가 들어오고 있다"며 "다음 영화는 내년에 준비해 내후년에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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