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45)와 한수연(29)이 영화 <이방인들>에서 주연으로 호흡을 맞췄다. 서울대 철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인 김중기가 주연을 맡은 건 <몽실언니>(2009),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를 졸업한 한수연은 <참을 수 없는>(2010) 이후 처음이다. 비록 주연은 오랜만지만 그간 꾸준히 활동해 온 이들이 꿈꾸는 배우세상은 어떤 빛깔일까?

 

 

<이방인들>(감독 최용석)은 한 여성이 의문의 화재 사고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한 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한수연은 그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여성 ‘연희’로, 김중기는 보험금을 노리고 화재를 냈다고 오해받는 장난감 공장 사장 ‘성진’으로 출연했다. 지난 10일부터 전국의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상영중이다.

-둘 사이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연희가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고, 성진에게 ‘선생님은 왜 우리 엄마에게 내 이야기를 했어요?’라고 묻는  점 등을 감안해 둘 사이가 부절적한 관계였다고 봤어요. 연희는 10대이고 성진은 유부남이고. 작은 마을이니 소문이 금방 퍼졌고 어린 연희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겠죠.”
“성진도 연희를 사랑했다고 봐요. 어느 정도 관계였는지 알 수 없지만, 성인과 미성년자, 성가대의 지휘자와 반주자 사이여서 마을과 교회에서 용납이 안 되었을 거에요. 성진이 연희 엄마에게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 말이 연희를 더욱 힘들게 했고.”
“엄마와 ‘석이’(여현수) 아빠와의 관계도 연희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에요. 이런저런 일이 엎친 데 덮쳐 몹시 힘들었고 그래서 도피하듯 마을을 떠난 거죠.”

-극중에서 딱 한 차례 만난다.
“연희가 사랑을 키운 결정적 공간에서 성진과 다시 만나요. 앞서 만나는 사람들과 성진의 만남을 통해 연희는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돼요.”
“연희가 7~8분의 독백을 하고 끝내 오열해요. 저는 전날 잠을 못 잔 데에다 종일 촬영으로 졸음이 쏟아지는 바람에 의도한 대로 연기가 안 돼 애를 먹었어요. 수연씨가 잘 했고 극중에 잘 살아 있어 다행이에요.”
“그 장면 촬영 때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선배님이 몇 마디 안 했는데 그 대사나 리액션 하나로 제가 더 몰입이 됐거든요. 오열 장면은 즉석에서 감독님과 상의해서 만들었는데 한 번 촬영으로 오케이(O.K)가 난 것도 그 덕분이에요. 새로운 경험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선배님께 감사드려요.”

 

<이방인들>은 여느 장르영화와 달리 이렇다 할 사건이 펼쳐지지 않는다. 각각 결핍의 아픔을 지닌 등장인물의 캐릭터 또한 내적으로는 동적이지만 외적으로는 정적이다.

-연기하기가 쉽지 않은 배역이다.
“연희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고, 사랑의 상처가 깊고, 엄마랑 떨어져 살았고…. 상실감이 커요. 그 굴레에 짓눌려 있고.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고 후반부에 감정을 표출하기 전까지 일정한 감정을 유지하는 게 힘들었죠. 캐릭터의 외향성은 줄이고 내향성은 깊게 판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성진은 연희보다는 연기하기가 쉬운 인물이에요. 1년 전에 화재 사건을 겪었고, 이후 아내는 집을 나갔고, 공장은 망했고, 방화범으로 오해받고…. 겉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건 장난감 행상과 실랑이하는 장면에 지나지 않지만 어떤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는 근거가 있거든요.”

-모처럼 주연이다. 제의받고 어땠나
“시나리오가 완성되기 전에 제의받았어요. 오디션 없이 제의받은 첫 영화이기도 해요. 독립·예술영화를 워낙 좋아하고, 공간을 통해 아픔을 지닌 사람들 이야기를 하겠다는 기획·연출의도가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시나리오가 완성될 때까지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눈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앞으로 연기를 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될 것 같아요.”
“저는 처음에는 비중있는 형사 역이었어요. 주연이 아니에요. 부산까지 가서 하기에는 좀 애매한데 부산에서 온 후배들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보면서 거절하는 게 곤혹스러웠죠. 거절할 수 있는 자연스런 분위기를 만들려고 함께 술을 마셨고 그 자리가 2·3차로 이어지면서 결국 하게 됐어요. 형사가 아니라 성진으로. 성진도 원래는 조연인데 촬영·편집하면서 커졌어요.”
“시나리오가 종종 바뀌었어요. 현장상황에 맞춰.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의미 또한 남달라요. 힘들었지만 신선했어요.”
“촬영이 지연돼 애초와 달리 서울·부산을 오르내려야 했고 현장이 습해 잠 못 드는 밤이 많았지만 보람있는 작업이었어요.”

-개봉 소감은.
“고마워요. 지난해 제5회 시네마디지털서울의 ‘버터플라이’ 부문에 초청받고, 제13회 부산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소개된 것으로 끝날 줄 알았거든요. 이렇게 홍보 일정을 밟고 정식으로 개봉된 게 믿기지 않아요.”
“여기까지 오는 데 어려움이 많았어요. 배우 세 명 빼고 출연·제작진이 다 부산 영화인들이에요. 그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열정 덕분에 영화가 완성돼 개봉될 수 있었어요. 많은 분들이 힘을 실어주셨으면 해요.”

김중기는 1988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남북청년학생회담 남측 대표로 활동했다. 투옥된 뒤 평생 운동을 하려면 이성적 면만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감성을 키워야겠다고 판단, 연기를 시작했다. 공연예술아카데미 연기과정 수료 후 연극원에 입학했고 김응수 감독이 러시아에서 찍은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1997)로 데뷔했다. 한수연은 초등학생 때부터 9년 동안 헝가리에서 생활하며 유럽영화를 즐겨 감상했다. 줄리엣 비노쉬를 롤모델로 삼아 배우의 꿈을 키웠다. 2001년부터 영화·연극·뮤지컬에 단역으로 출연하기 시작했고, 검정고시를 거쳐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에 입학했다. 조의석 감독의 <조용한 세상>(2006)으로 데뷔했다.

-어떤 배우를 꿈꾸는지.
“배우는 시(視)·청(聽)·후(嗅)·미(味)·촉(觸), 5감을 다 열고 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삶을 사는 게 고맙고 행복해요.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본능적으로  5감이 살아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상업영화는 물론 독립·예술영화 필모를 탄탄하게 쌓는 게 배우로서 갖는 꿈이에요. 꾸준히 활동하면서 제가 맡은 인물에 공감하는 관객들과 폭넓게 소통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싶어요.”
“연기를 하면서 인간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을 받아요. 조금씩 사람과 삶에 대해 알게 되는 경험을 하거든요. 배우가 안 됐으면 모르고 지나왔을 거에요. 그런 경험이 살아있는 연기를 잘 하고 싶어요. 결과에 앞서 과정도 중요해요. 자유롭고 열려 있는 연기로 연기를 하는 나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즐겁고 행복했으면 해요.”
배우들은 신인 시절 ‘작은 역은 없다, 출연하는 시간이 적을 뿐’이라는 말을 곧잘 듣는다. 단역이라고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의미로. 김중기와 한수연은 “주·조연보다 중요한 건 인물과 드라마가 살아있느냐는 점”이라며 “맡은 인물의 생동감을 살려내 관객의 지지를 끌어내는 소명을 다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타가 인정하는 굵직한 대표작을 남기고 싶다”는 소망을 숨기지 않았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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