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이 변변찮아 처가살이 3년
배우 김응수(52)는 충무로에 뒤늦게, 우연찮게 들어왔다. 영화 데뷔작이 서른여섯 살에 일본에서 찍은  김상진 감독의 <깡패 수업>(1996)이다. 사고를 친 뒤 일본으로 피신한 건달 ‘황성철’(박중훈)과 일류 바텐더의 꿈을 안고 일본에 온 ‘손해구’(박상민)의 이야기를 그린 범죄·액션·코미디다.

 

 

김응수는 해구의 여자친구 ‘삼순’(조은숙)이 일하는 한국인 술집의 웨이터로 출연했다. 촬영을 앞두고 한국인 웨이터 역이 설정됐고, 시간이 없어 스태프 가운데 누군가가 해야 했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 끝에 유학을 오기 전 ‘극단 목화’에서 배우로 이름을 알린 김응수가 맡았다. 당시 김응수는 세계적인 거장으로 손꼽히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1926~2006)의 일본영화학교에서 연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깡패 수업>에는 일본 촬영 진행을 돕기 위해, 현장 경험을 쌓기 위해, 연출부로 참여했다.

촬영은 도쿄에 있는 실제 한국인 클럽에서 했다. 그 술집에 있던 웨이터 의상이 마침 김응수에게 딱 맞았다. 웨이터는 원래 대사가 없었다. 술집 사장인 명계남이 공백을 메꾸느라 ‘너, 손님들에게 외상 주지 마’라고 애드리브를 했고 김응수가 ‘다 쳐마시고 나서 돈이 없다는데 어떡하냐’고 응수하면서 대사가 생겼다. 김응수는 “그렇게 출연한 걸 계기로 귀국 후 계속 배우로 활동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며 “운명으로 여긴다”고 했다.

                                     <깡패수업>의 김응수. 일본 도쿄에 있는 한국인 술집의 웨이터로 출연

                                               했다. 사장(명계남)이 “너, 손님들에게 외상 주지 말라”는 애드리브에

                                               “다 쳐마시고 나서 돈이 없다는데 어떡하냐”고 말하고 있다. 사진/MBC

                                               섹션TV ‘스타 라이징’ 캡쳐.

 

7년 간의 유학생을 마치고 1997년에 귀국한 김응수는 2년여 동안 <투캅스3> <처녀들의 저녁식사> <유령> <주유소 습격사건> <눈물> 등에 출연했다. <투캅스3>에서 ‘수하2’, <처녀들의~ >에서 ‘껍데기집 사내’, <유령>에서 ‘찬석(정우성) 부’, <주유소~ >에서 ‘경찰1’ 등 단역을 맡았다. <투캅스3>와 <주유소~ >는 김상진 감독이 연출했고, <처녀들의~ >와 <유령>은 <깡패 수업>을 만든 우노필름의 차승재 대표(현 동국대 교수·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사장)가 제작했다. <처녀들의~ >와 <눈물>은 임상수 감독이 연출했다.

김응수는 이렇듯 한 번 인연을 맺은 감독·제작자들이 다시 찾는 배우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출연료가 적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극단 목화 시절에 만난, 잠시 배우를 하다가 그만두고 KBS 1TV의 인기 교양 프로그램 <사랑방중계>에서 보조작가로 활동했던 아내와 어린 딸에게 미안함을 금할 수 없었다. 김응수는 “수입이 변변찮아 처가에서 3년간 살았다”며 “그 후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전셋집을 얻었고 둘째 딸도 그런 다음에 낳았다”고 했다.

                                  영화 <선생 김봉두>(감독 장규성)의 김응수(가운데). 평범한 여학생 ‘남옥’의

                                           아버지로 출연했다. 장 감독은 <깡패수업> 연출부의 조감독이었다.

  

30대 중반을 넘긴 배우가 맡을 만한 비중 있는 배역은 그리 많지 않아 현재는 물론 미래가 불투명하다. 하지만 김응수는 다른 길을 찾지 않았다. 단역 출연이 감독으로 데뷔하기에 앞서 미리 충무로 현장을 경험하기 위한 일환이었지만 배우로 시작한 만큼 연기자로 성공한 뒤에 만들고 싶은 영화를 연출하자고 다짐했다. 3년 동안 <화산고> <신라의 달밤> <패밀리> <취화선> <광복절 특사> <싱글즈> <바람난 가족> <선생 김봉두> <여선생 vs 여제자> <안녕! 유에프오> 등 15편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김응수는 이 과정에 유학 가기 전 극단 시절에는 자신에게 말도 못 붙이던 후배들이 주연 배우로 거드름을 피우는 걸 감내했다. <화산고>의 경우 도입부에 ‘분필을 던지고 맞는 교사’로 나왔지만 엔딩크레디트에 소개되지 않는 난감함도 치렀다. 연극을 다시 하면 당당히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겠지만 이 상태로 돌아가는 건 자존심이 허락치 않아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풀을 뜯지 않는 호랑이처럼 당당하게 생활, 충무로에서 지평을 넓혀갔다.

■ “부자의 인연을 끊자”
김응수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어릴 때부터 한학과 고전을 탐독했다. 명문 군산 제일고 시절 부모의 기대와 달리 소설가가 되기 위해 문예창작학과에 가고 싶었다. 서울에서 재수를 하면서 종합예술에 매력을 느껴 연극영화과를 지망했다. 한학자로서 아들이 판검사가 되는 걸 기대했던 아버지는 ‘부자의 인연을 끊자’고 했고, 김응수는 안방을 나온 뒤 동국대 원서를 찢어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형이 서울예대에 원서를 내줘 합격했고, 재학생 때부터 극단 동랑레파토리와 목화에서 활동했다. <운상각> <오구> 등의 주인공으로 각광받았다.

영화에서 비중있는 배역을 맡은 첫 작품은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2004)이다. 김응수는 육사 출신으로 10·26 당시 ‘김 부장’(백윤식)의 수행비서였고, 그의 거사를 ‘주 과장’(한석규)과 함께 주도하는 ‘민 대령’ 역을 맡았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감독 임상수)의 김응수(오른쪽). 그는 육사 출신으로

                                           중앙정보부장 ‘김 부장’(백윤식)의 수행비서로 ‘주 과장’(한석규)과 함께 거사

                                           를 일으키는 ‘민 대령’으로 출연했다. 실제 인물인 박흥주 대령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고 연구한 뒤 열연을 펼쳤다.

 

김응수는 출연에 앞서 민 대령의 실제 인물인 박흥주 대령 육사 졸업앨범을 구해 보고, 박 대령의 서울고 동창인 유가족 후원회장을 만나는 등 자료조사를 철저히 했다. 박 대령이 책을 많이 읽었고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장의 오른팔이었지만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지 않아 가난한 동생들에게 원망을 들었고, 그 역시 단간 셋방에서 살았다는 사실 등을 연기하는 데 반영해 <그때 그 사람들>을 꽃피웠다.

그럼에도 단역 생활은 계속됐다. <청연> <천군> <강력3반> <투사부일체> <나의 결혼 원정기> <역전의 명수> <한반도> <잔혹한 출근> <가문의 부활-가문의 영광3> 등 2년여 동안 13편에 출연했다. <타짜>에서 중학교도 못 나온, 밑바닥에서 시작해 한 조직을 거느리는 두목이 된 조연 ‘곽철용’으로 주목받았고,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2007) 우정출연을 마지막으로 단역 행진을 10년 만에 마감했다.

김응수는 2006년 KBS 2TV 드라마 <인생이여 고마워요>를 필두로 안방극장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인생이여~ > 출연은 창작극만 올리는 극단 목화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던, 영화는 하고 있지만 TV드라마는 하지 않겠다던 그로서는 일생일대의 선회였다.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극계 선배들 표정이 밝지 않아 드라마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고향에 갔을 때, 전화로 안부를 여쭐 때에 ‘너는 언제 테레비에 나오냐’던 어머니가 눈에 밟혀 마음을 바꾼 것이다. 김응수는 “내가 TV드라마에 나오자 어머니가 어찌나 기뻐하시는지 효도가 따로 없었다”며 “진작 할 걸 후회했고 드라마를 계속 하는 건 솔직히 어머니에게 효도하기 위한 점도 있다”고 했다.

                                  드라마 <닥터 진>과 <해를 품은 달>, 영화 <가비>와 <코리아>(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의 김응수.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에 이어 <미스터 고>

                                          를 찍고 있고 <26>에 합류한다. 오는 가을이나 내년 봄에 연출 데뷔작 <미녀

                                          농장>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영화 <가비> <코리아> <돈의 맛>, TV드라마 <해를 품은 달> <각시탈> <닥터 진>. 김응수의 올해 출연작이다. 최근 장규성 감독의 <나는 왕이로소이다> 촬영을 마쳤고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 고>를 찍고 있으며 조근현 감독의 광주민주화운동 소재 영화 <26년>에 출연한다. 고전과 인문학 서적을 두루 읽고 아침에 일어나면 시를 낭독하면서 발성연습을 한다는 김응수의 연기철학은 ‘정직하자, 거듭 연습하자, 인격을 갖추자’이다. 김응수는 연출 데뷔작으로 준비해온 일곱 여인의 산중생활을 그린 <미녀농장>을 오는 가을이나 내년 봄에 찍을 계획이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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