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관객 1만 명은 상업영화 관객 100만 명에 해당하는 상징성을 지닌다. 정재은 감독(43)의 휴먼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 관객이 4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3월 8일 개봉, 지난달 30일까지 4만637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공동체상영 2015명 포함)이 관람했다. 정 감독과 <말하는 건축가> 제작과정 등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고 정기용(1945~2011) 건축가. <말하는 건축가>의 주인공이다. 고인은 서울대 응용미술학과와 대학원 공예과를 졸업했다. 1971년 프랑스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선발돼 파리 장식미술학교·제6대학·제8대학에서 실내건축·건축·도시계획을 전공했다. 1986년 귀국, 기용건축을 설립한 뒤 대한민국 공공건축사를 새로 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그는 자신의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평생을 월셋방에서 살았다. 가족·지인과 나무·바람·하늘·공기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말하는 건축가>는 그의 2년여 마지막 여정을 담고 있다.

-고인의 죽음을 예상했는지.
“선생님은 자신의 병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적이 없다. 나중에 사모님에게 자세히 듣고 실로 괴로웠다. 촬영한 지 6~7개월이 지난 2010년 초여름에 선생님이 건강이 너무 안 좋고, 더 나빠지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그만 찍자고 했다. 그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씀드리자 ‘그러면 됐다’면서 지리산 실상사 리모델링 하는 걸 찍자고 했다. 5년여 투병 중에 총 여섯 권의 책을 정리하셨고, 회사 일과 강의를 하시고, 다큐멘터리를 위해 일하고, 전시회를 치르고, 작품집도 정리 하고…. 그렇게 빨리 운명하실 줄 몰랐다.”

 

-마지막 봄나들이 장면이 압권이다.
“타계 1주일 전에 선생님이 앰뷸런스를 대절해 ‘기용건축’ 직원들과 함께 경기도 과천 아천동에 갔다. 급작스런 일이어서 촬영할 사람을 구할 시간이 없어 가지고 있던 아이폰으로 찍었다. 2011년 초 선생님의 건강이 악화됐고, 운명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매일 8~10시간씩 편집에 매달렸는데 보여드리지 못 했다.”

-처음에는 어떤 다큐를 만들려고 했나.
“스타일리시한 건축 다큐였다. 한 건축물이 완성되는 과정을 담으면서 그 건물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다.”

-건축 다큐를 기획한 동기는.
“평소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극영화 <고양이를 부탁해>(2001)와 <태풍태양>(2005), 인권영화 <여섯개의 시선> 중 <그 남자의 사정>(2003)을 연출할 때 도시 풍경, 건물 공간을 중시했다. 개봉 후 매 번 여러 차례 건축가들 모임에 초청을 받았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관심을 갖게 됐고, 2009년 서울국제건축영화제를 관람한 뒤 기획했다.”

-고인은 어떻게 만났나.
“누구를 할지 알아보던 중 추천을 받았다. 고인의 <감응의 건축>을 읽은 뒤 무주 프로젝트를 둘러봤는데 건축에 대한 내 생각이 편견이란 걸 깨달았다. 면사무소에 목욕탕을 만들었고 공설운동장은 등나무가 둘러싸고 있었다.”

 

 

고인은 사람·자연과 소통하는 건축을 지향했다. 건축의 사회적 양심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건축을 통해 공동체성 회복을 열망했다. <말하는 건축가>에는 도서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기적의 도서관’과 시공할 곳에 있는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그 나무를 감싼 원형 건물 등이 소개된다.

-첫 만남 때 동의를 받았는지.
“안국동의 선생님 단골 밥집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취지를 듣고 ‘그러면 네가 계속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니는 것이냐, 그것 참 재미있겠다’면서 단번에 오케이를 했다. 이후 두세 달 동안 매주 수요일에 기용건축 사무실에서 반나절 안팎 인터뷰를 했다. 지난 삶과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소격동 한옥 프로젝트를 영화의 기둥으로 삼았다.”


-그 프로젝트는 연기된다.
“두 번 정도 찍었을 때 선생님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본관 자리 옆인데 완공되면 땅의 조건과 상황이 많이 바뀔 거니까 이 한옥은 그 이후에 어떤 집으로 만들는지 결정해도 될 거다’면서 연기했다. 실상사 리모델링도 ‘100년을 내다봐야 한다’면서 몇 개월 간 세미나만 계속했다. 애초 의도를 살릴 수 없는 이런 상황이 2010년 초여름까지 계속됐다. 독립 다큐멘터리로 시작한 만큼 경비가 부담 돼 촬영을 최소화, 이벤트 중심으로 했다. 7~8개월 간 영화의 기둥이 잡히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

-제작비는 어떻게 마련했나.
“신용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받고 아르바이트를 계속 했다. EBS와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지원작 심사에 떨어졌다. ‘두타연’의 투자와 서울·제주영상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지만 후반작업을 앞두고 영화 완성과 개봉이 불투명했다. 건축 분야의 인문학적 연구작업을 지원해온 ‘심원문화사업회’ 후원 덕분에 빛을 봤다.”

-일민미술관 건축전이 비중 있게 나온다.
“가뭄에 단비 같은 소재였다. 건축전을 기획한, 선생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다른 강성원 큐레이터가 다른 분들과 달리 선생님의 말씀을 과감히 자르거나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해 쾌재를 불렀다. 영화의 보편적인 갈등의 축이 형성된 거다.”

-춘천 자두나무집과 고인의 월셋집인 명륜동 다가구 주택이 대조를 이룬다.
“자두나무집은 지은 지 10년 됐다. 선생님은 거실에서 보이는 논에 사계절 풍광이 담기도록 설계했다. 실제로 황금빛 들판이 펼쳐진 걸 보고 무척 행복해 했다. ‘이 집에서 몇 달만 쉴 수 있다면 내 병이 다 나을 텐데….’라고 하실 때 찡했다. 거실에 햇살이 드는 월셋집에 대해 ‘나의 집은 백만 평’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만족하고 의식 또한 자유로웠지만 자연에 파묻힌 자두나무집 같은 곳을 필요로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이 마을회관을 찾은 장면을 영화의 앞뒤에 편집했다.
“돌아가신 걸로 끝맺음을 할 수 없어 그 동안 찍은 장면을 다시 보고, 2년여 동행과정을 돌이켜보면서 선생님이 누굴 위해, 왜 건축을 하는지 알게 됐다. 설계를 할 때 건물을 사용할 사람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많이 듣고 반영을 하는 것이다. 엔딩 장면에 대해 스태프들은 의아해 했지만 지금 생각도 다르지 않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축물은.
“무주 프로젝트 중 ‘추모의 집’이다. 산꼭대기에 있는 납골당인데 산하와 자연을 전혀 거스르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든 좋아하는 공간에 가면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추모의 집에서 그랬다.”

<말하는 건축가> 촬영 분량은 400시간이고, 러닝타임은 92분이다. 스폰지하우스 광화문 등에서 상영중이다. 네이버·다음·맥스무비·벅스·곰TV·씨네21즐감·인디플러그·예스24 등에서 굿다운로더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정 감독은 “영화에 담지 못해 안타까운 장면이 많다”면서 “선생님을  추모하고 고인의 지인과 관객들을 위해 DVD에는 넉넉하게 넣고 유튜브에 올리겠다”고 했다. 요즘 서울시청 신청사 완공 과정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시티:홀>을 찍고 있는 정 감독은 빌딩 내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SF호러도 준비하고 있다. 배두나·이요원·옥지영 등과 <고양이를 부탁해>의 스무 살 주인공들이 마흔 살이 됐을 때 이야기도 찍기로 했다. 정 감독은 “선생님과 <말하는 건축가>는 내가 왜 영화를 만드는지에 대한 소중한 깨달음을 줬다”면서 가슴을 여미었다.

Posted by 배장수

댓글을 달아 주세요